성냥팔이 소녀

나단비 | 2024.01.29 16:35:48 댓글: 6 조회: 194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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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

 
 Acoustic café - A Tree of Grave Stone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추운 어느 겨울날, 눈발이 매섭게 휘날리는 어두운 거리를 한 소녀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난한 그 소녀는 맨발에 모자도 쓰고 있지 않았다. 사실 소녀가 집을 나설 때엔 슬리퍼를 신고 있었으나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추위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그 슬리퍼는 소녀의 어머니가 신던 것으로 너무 컸기 때문에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두 대의 마차를 피하려고 서둘러 길을 건너다 그만 벗겨져 나가고 말았다. 소녀는 슬리퍼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한 짝은 찾을 수가 없었고, 다른 한 짝은 사내애가 가지고 달아났다. 동생을 갖게 되면 동생 요람으로 쓰겠다면서.



이렇게 해서 소녀는 추위에 검붉어진 맨발로 거리를 걷게 된 것이다. 소녀의 낡은 앞치마에는 한 무더기의 성냥이 있었고 한 다발은 손에 들려 있었다. 소녀는 하루 종일 성냥을 팔러 다녔지만 성냥을 사는 사람도, 소녀에게 돈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소녀는 추위와 배고픔에 덜덜 떨면서 기다시피 살살 걸었다. 어깨를 내리덮은 긴 금발 머리 위로 눈송이가 떨어졌지만 소녀는 무표정했다.

집집마다 창문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왔고 거리에는 거위 고기를 굽는 맛있는 냄새가 그윽했다. 그날은 마침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소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처마가 쑥 나와 있는 집 사이의 귀퉁이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작은 발을 깔고 앉았지만 추위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녀는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냥을 한 개비도 못 팔았으니 집으로 가져 갈 돈이 없었고, 그걸 알면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집이라고 해서 여기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눈비를 막을 지붕뿐이었으며, 짚과 넝마로 커다란 틈새를 막긴 했지만 세찬 바람이 지붕을 뚫고 들어왔다. 소녀의 작은 손은 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다. 아!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다면 손가락을 녹일 수 있을 텐데! 소녀는 성냥 한 개비를 빼냈다.

“치직!” 성냥개비가 타면서 얼마나 따뜻한 소리를 냈던가. 작은 불꽃은 작은 촛불처럼 따뜻하고 밝은 빛을 냈다. 소녀는 그 위에 손을 올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불빛이었다. 번쩍이는 놋쇠발과 장식이 달린 커다란 난롯가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소녀는 불꽃이 너무도 따스하게 보여 두 발을 녹이려고 뻗었다. 그러나 불꽃은 이내 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난로도 사라져 버렸다. 소녀의 손에는 반쯤 타다만 성냥 꼬투리만 남아 있었다.

소녀는 새 성냥개비를 꺼내 벽에 그었다. 그러자 환한 불꽃이 타오르면서 벽을 비추었다. 벽이 베일처럼 투명해지더니 방 안이 들여다보였다. 눈처럼 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 위에는 맛있는 음식과 거위 구이가 차려 있었는데, 사과와 자두로 채워진 잘 구워진 거위 구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위가 접시에서 뛰어내려 뒤뚱거리며 방바닥을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에 칼과 포크가 꽂힌 채. 바로 그때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다. 이제 보이는 것은 두껍고 차가운 벽뿐이었다.

소녀는 또 하나의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제 소녀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앉아 있었다. 그것은 성탄절 전날 밤에 소녀가 부유한 상인 집 유리문을 통해 본 나무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푸른 가지에는 수천 개의 촛불이 타올랐고, 진열장에서 본 것과 같은 색색의 화려한 그림들이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가 나무를 향해 손을 뻗자 성냥불이 꺼져 버렸다.

크리스마스 촛불들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가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보였다. 그때 별 하나가 화려하게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누가 죽어 가나 봐!” 하고 소녀는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서 소녀를 사랑해 주었던 단 한 사람인, 돌아가신 할머니가 소녀에게 얘기해 주었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은 한 영혼이 하느님의 품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소녀는 다시 성냥불을 켰다. 그러자 주위가 환해지면서 불빛 속에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로 서 계셨다.

“할머니! 절 데려가 주세요. 성냥불이 꺼지면 가 버릴 거죠? 따뜻한 난로처럼, 맛있는 거위 구이처럼,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사라졌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리실 거죠?” 소녀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남아 있는 성냥 더미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를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이다. 성냥 더미에 불이 붙자 주위가 대낮보다 더 환해졌다.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거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할머니는 소녀를 품에 안고 밝은 빛을 내며 지구 너머 먼 곳으로 아주 높이 올라갔다. 그곳에는 추위도 배고픔도 고통도 없었다. 바로 하느님 곁이었으니까.



다음날 새벽, 어슴푸레한 빛을 받으며 길모퉁이에 한 가엾은 소녀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뺨은 창백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바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 밤에 얼어죽은 소녀였다. 새해의 태양이 떠올라 죽은 소녀 위에 빛을 뿌렸다. 소녀는 타 버린 성냥 다발을 손에 쥔 채 시체가 되어 꼼짝않고 앉아 있었다.

“쯧쯧 몸을 녹이려고 했던 게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으나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새해 아침에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 영광스런 나라로 갔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출처 : 안데르센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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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aro (♡.136.♡.15) - 2024/01/29 16:40:52

와우 그림들이 참 좋네요 ㅋ예전에 이런 그림 자료로 쓰고 싶어 한참을 찾아다녔그만 ㅋㅋㅋ지금은 비록
성냥팔이 소녀
갑자기 강타가 부른 섬이 더오르네요 ㅋ뭔 의미는 모르는 영화와 노래가사들 ㅋㅋㅋ

나단비 (♡.252.♡.103) - 2024/01/29 16:42:06

핀에서 찾았어요 ㅋㅋ

Figaro (♡.136.♡.15) - 2024/01/29 17:16:40

아하 그때 내가 핀을 앓았더라면.

나단비 (♡.252.♡.103) - 2024/01/29 17:20:28

그리핀도르 ㅋㅋ

비공식회원 (♡.33.♡.86) - 2024/01/29 16:51:59

조금은 슬픈데 어릴때 성냥팔이 소녀 라는 만화책을 어디서 읽어본 같기도 하네요.
덕분에 좋은글 읽고 갑니다.

나단비 (♡.252.♡.103) - 2024/01/29 16:54:29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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