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다섯 번째 이야기

나단비 | 2024.01.29 09:32:55 댓글: 2 조회: 137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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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이야기 : 도둑의 딸

Acoustic café - Some Day My Prince Will Come





마차는 울창한 숲 속을 가로질러 힘차게 달렸다. 마차의 눈부신 황금빛이 횃불처럼 숲을 환히 비추었다. 그렇게 화려한 황금 마차를 본 도둑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금이다, 금!” 도둑들이 기뻐서 날뛰며 뛰쳐나와 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기수와 마부와 하인을 때려죽이고 게르다를 마차에서 끌어냈다.

“통통하고 귀여운데. 호두를 먹고 살쪘나 봐!” 나이든 도둑의 아내가 말했다. 도둑의 아내는 까칠까칠한 수염에 눈썹이 눈까지 덮을 정도로 무성했다. “살찐 양처럼 참 맛있겠는걸!” 도둑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면서 무시무시하게 번쩍이는 칼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등에 업혀 있던 딸이 귀를 문 것이다. 딸은 거칠고 고약했다. 도둑의 아내는 욕을 퍼부어 대며 딸과 씨름하느라 게르다에게 칼을 내리칠 겨를이 없었다.

“저 아이랑 놀 거야. 토시랑 예쁜 옷이랑 줄 거야. 내 침대에서 같이 자고 싶어.” 도둑의 딸이 이렇게 말하며 엄마 귀를 또 물었다. 도둑의 아내는 너무 아파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 모습을 본 도둑들이 재미있어 깔깔거렸다. “저것 좀 봐. 딸과 춤추는 꼴 좀 봐.”

“마차에 탈 테야.” 도둑의 딸은 고집불통이었다.

그래서 도둑의 딸과 게르다는 마차를 타고 나무 둥치와 바위를 지나 점점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도둑의 딸은 게르다와 키가 비슷했지만, 힘이 더 세고 어깨도 더 넓었다. 그러나 피부는 게르다보다 검었으며 늘 우울한 표정이었다.

“우릴 귀찮게 하지 않으면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그런데 넌 공주니?” 도둑의 딸이 게르다의 허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아니.”

게르다는 이제까지 겪은 일과 자신이 카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모두 얘기해 주었다. 도둑의 딸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게르다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혹시 너한테 화가 나게 되더라도 저들이 널 죽이진 않을 거야. 내가 직접 널 죽이게 될 테니까.” 도둑의 딸은 게르다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자기의 두 손을 부드럽고 따뜻한 예쁜 토시 안에 집어넣었다.

마차가 조용히 멈추었다. 그곳은 도둑의 성에 있는 마당이었다. 성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금이 가 있었고 뻥 뚫린 구멍으로는 까마귀들이 날아다녔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사람을 삼켜 버릴 듯한, 사납고 큰 불독들이 여기저기서 뛰어다녔다. 그러나 짖지 못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짖지는 않았다. 연기가 자욱한 홀 한가운데서는 불이 활활 타올랐고, 굴뚝이 따로 없어서 연기가 천장으로 치솟았다가 여기저기 틈새로 빠져나갔다. 커다란 가마솥에선 수프가 끓었고 토끼들은 꼬챙이에 꿰어져 구워졌다.
“오늘 밤엔 내 꼬마 동물들이랑 나랑 같이 자야 해.” 식사를 마치자 도둑의 딸이 말했다. 그녀는 짚이 깔린 홀 구석으로 게르다를 데려갔다. 욋가지와 횃대 위에는 백 마리가 넘는 비둘기들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잠든 것 같았다. 두 소녀가 다가가자 비둘기들이 몸을 움츠렸다.

“저것들은 모두 내 거야.” 도둑의 딸이 이렇게 말하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비둘기 발을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그러자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였다. “입맞춰.” 도둑의 딸이 이렇게 말하며 비둘기를 게르다의 얼굴에 갖다 댔다.
“저기엔 산비둘기가 앉아 있지.” 도둑의 딸이 벽에 뚫린 구멍 옆에 매달린 한 무더기의 욋가지와 새장을 가리켰다. “숲 속의 악당인 저 두 녀석은 잘 가둬 놓지 않으면 날아가 버려. 그리고 이건 내가 사랑하는 오랜 친구 음매야.” 도둑의 딸이 순록의 뿔을 잡아 끌어냈다. 순록은 목에 번쩍이는 구리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음매도 꼭 묶어 놓지 않으면 도망가 버려. 난 매일 저녁 뾰족한 칼로 음매의 목을 간지럽힌단다. 그래서 이렇게 날 무서워하지.”

도둑의 딸은 벽 틈에서 긴 칼을 꺼내어 순록의 목에 대고 천천히 그어 내려갔다. 불쌍한 순록은 놀라서 발길질을 해댔다. 그러자 도둑의 딸이 깔깔대더니 게르다를 침대로 끌고 갔다.

“너, 이 칼 가지고 잘 거야?” 게르다가 두려운 표정으로 칼을 보며 도둑의 딸에게 물었다.

“난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그건 그렇고, 아까 하던 카이 얘기 계속해 봐. 네가 어떻게 해서 이 넓은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 말야.”
그래서 게르다는 밤늦도록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비둘기들이 모두 잠들어 조용했다. 새장에 갇힌 산비둘기들의 구구거리는 소리만이 어둡고 적막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한쪽 팔로는 게르다의 목을 껴안고,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이야기를 듣던 도둑의 딸이 곧 곯아떨어져 코를 골았다. 그러나 게르다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산 속에서 죽게 될지도 몰랐다. 도둑들이 불 둘레에 빙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셨고, 도둑의 아내는 비틀거리며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게르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때 산비둘기들이 말했다. “구구! 구구! 우린 카이를 보았단다. 하얀 닭이 그의 썰매를 끌고 갔지. 그는 눈의 여왕의 마차를 타고 있었어. 우린 그때 숲 속 보금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마차가 우리 옆으로 세차게 지나가는 바람에 아기 비둘기들은 모두 죽어 버렸단다. 우리만 겨우 살아남았지. 구구! 구구!”

“뭐? 눈의 여왕은 어디로 갔지? 그걸 아니?” 게르다가 다그쳐 물었다.

“아마 라플란드로 갔을 거야. 그곳은 북유럽 끝에 있어. 항상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지. 저기 줄에 묶여 있는 순록에게 물어봐.”

“맞아. 그곳은 항상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 얼마나 멋진지 몰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넓은 얼음 평야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단다. 눈의 여왕은 거기에 여름 별장을 가지고 있지만 성은 북극의 뾰족산이란 섬에 있지.” 순록이 말했다.

“오, 카이, 카이야!” 게르다가 한숨을 쉬었다.
“좀 조용히 해. 안 그러면 칼로 찔러 버릴 테야.” 자고 있던 도둑의 딸이 말했다.

아침이 되자 게르다는 도둑의 딸에게 산비둘기가 한 얘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도둑의 딸은 진지하게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넌 라플란드가 어디 있는지 아니?” 도둑의 딸이 순록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걸. 난 거기서 태어나서 눈으로 덮인 평야를 뛰어다니며 자랐으니까.” 순록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잘 들어. 지금 남자들이 모두 밖에 나가고 없어. 집엔 엄마뿐이야. 하지만 엄마는 한낮이 되면 거나하게 취해서 한잠 잘 테니까, 그때 내가 어떻게 해볼게.” 그리고 나서 도둑의 딸은 침대에서 뛰어내려 와 엄마 목을 끌어안고 수염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엄마, 잘 잤어?”

그러자 엄마는 딸의 코 끝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건 애정의 표시였다.

엄마가 술병을 비우고 곯아떨어지자 도둑의 딸이 순록에게 가서 말했다. “난 날카로운 칼로 널 간지럽히는 게 즐거워. 무서워하는 네 모습이 아주 재미있거든. 하지만 그런 재미가 없어져도 괜찮아. 널 풀어 줄 테니까 라플란드로 가. 네 튼튼한 다리로 이 애를 눈의 여왕이 있는 성으로 데려다 줘. 이 애의 친구가 있는 곳으로 말야. 이 애가 내게 하는 얘기를 다 들었지?”

순록은 기뻐서 펄쩍 뛰었다. 도둑의 딸은 게르다를 순록의 등에 태우고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깔고 앉을 방석까지 주었다.

“추워질 테니까 털장화를 가져가. 하지만 토시는 내가 가질게. 예쁘니까. 대신 엄마 것 벙어리 장갑을 줄게. 네 팔꿈치까지 덮으니까 춥지 않을 거야. 자, 끼워 봐. 그걸 끼니까 꼭 못생긴 우리 엄마 손 같네.”

게르다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네가 울면 나도 속상해. 자, 이제 기쁜 얼굴을 해 봐. 빵 두 쪽하고 햄이야. 이거면 충분할 거야.” 도둑의 딸이 음식을 순록의 등에 동여매고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불독들을 구슬려 안으로 들여보내고 날카로운 칼로 순록이 묶여 있던 줄을 끊어주고는 말했다.

“자, 달려! 하지만 내 친구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달려야 해.”

게르다는 커다란 벙어리 장갑을 낀 손을 도둑의 딸에게 내밀며 작별 인사를 했다. 순록은 나무 둥치와 바위를 넘고 거대한 숲을 지나 늪과 평야를 힘차게 달렸다. 늑대들이 울부짖었고 까마귀 떼가 까악거렸으며, 하늘에서는 불꽃 같은 붉은 빛이 번쩍였다.

“저건 내 오랜 친구인 북극광이야. 얼마나 멋지게 빛나는지 봐.” 순록이 말했다.

순록은 밤낮을 쉬지 않고 더욱더 빨리 달렸다. 그러나 그들이 라플란드에 닿을 무렵에는 빵과 햄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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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썬2뉘썬2 (♡.169.♡.51) - 2024/01/29 13:57:17

도둑의딸이 참 착하네요.게르다가 귀인을 만낫네요.

나단비 (♡.252.♡.103) - 2024/01/29 13:58:55

귀인을 만나는 것도 운이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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