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일곱 번째 이야기 (완)

나단비 | 2024.01.29 09:54:31 댓글: 4 조회: 166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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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야기 : 눈의 여왕의 성과 그곳에서 일어난 일
 
Acoustic café - Polovetsian Dances


눈의 여왕이 살고 있는 성의 성벽은 휘몰아치는 눈으로 되어 있었고, 창문과 대문은 살을 에는 듯한 바람으로 되어 있었다. 성에는 수백 개가 넘는 방이 있었는데, 모두 눈으로 되어 있었으며 제일 큰 방은 몇 마일씩이나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북극광으로 조명이 되어 있는 방들은 휑 하니 텅텅 비어 있어 몹시 춥고 눈부셨다. 폭풍을 음악 삼아 곰들이 뒷발로 서서 춤을 추는 장기 자랑을 할 수도 있었으련만, 그곳에는 오락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불붙은 브랜디 접시 속에서 건포도를 꺼내 먹는 놀이라든지 여우 아가씨가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는 일조차도 없었다. 하나같이 웅장한 눈의 여왕의 방들은 휑 하니 비어 있어 쓸쓸하고 추웠다. 깜빡이는 북극광은 하늘 높이 떠 있든 낮게 떠 있든 간에 성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눈으로 만들어진 끝없이 이어진 홀 한가운데에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수면이 수천 개로 금이 가 있었다. 각 얼음 조각들은 모두 모양이 같아 예술 작품 같았으며 눈의 여왕이 집에 머물 때면 호수의 한가운데에 앉아 쉬곤 했다. 여왕은 그 호수를 ‘이성의 거울’이라고 불렀으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카이는 멍이 든 것처럼 추위로 온몸이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느끼지 못했다. 눈의 여왕이 카이에게 입맞춤을 하여 추위를 몰아냈고 카이의 심장은 이미 얼음 덩어리로 차갑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는 뭘 만들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열심히 이리저리 맞추었다. 그것은 우리가 나무토막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와 같았다. 카이의 손가락은 예술 감각이 매우 뛰어났다. 카이가 하고 있는 놀이는 차가운 이성이었다. 카이의 눈에는 자신이 만든 모양이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 그의 눈에 아직도 거울 파편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는 얼음 조각들을 짜 맞추어 여러 가지 글자를 만들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만들어지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원’이라는 글자였다.

눈의 여왕은 카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 글자를 맞춘다면 넌 네 자신의 주인이 되지. 그럼 네게 이 세상 전부를 선물하고, 새 스케이트도 주겠어.”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난 곧 따뜻한 나라로 갈 거야. 가서 에트나와 베수비오라는 활화산 꼭대기에 있는 검은 분화구를 살펴봐야겠어. 그 분화구들을 하얗게 만들어 놔야 해. 그게 레몬과 포도에 좋으니까.” 눈의 여왕은 이렇게 말하고 훌쩍 떠나 버렸다. 거대한 홀에 카이만 덜렁 남겨 둔 채. 카이는 얼음 조각을 바라보며 혼자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카이의 모습은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시간에 게르다는 거대한 성문을 통과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아우성쳤으나 게르다는 기도에만 열중했다. 그러자 바람이 잠을 자듯 잦아들었다. 걸음을 재촉하여 거대한 홀에 이르렀을 때 카이가 보였다. 게르다는 곧장 카이에게 달려들어 목을 껴안고 외쳤다. “카이야, 카이야! 보고 싶었어.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러나 카이는 꼼짝도 않고 뻣뻣하게 앉아만 있었다. 게르다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뜨거운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떨어져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눈물은 얼음 덩어리를 녹였고 얼음과 함께 작은 거울 파편도 씻겨 내렸다. 카이는 꿈에서 깨어난 듯 게르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게르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장미는 피었다 지네.
하지만 우리는 아기 예수를 보게 되리라!”
 
이번에는 카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하여 눈에 박혀 있던 거울 파편이 씻겨 내려갔다. 게르다를 알아본 카이는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게르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그동안 어디 있었어? 여긴 어디지? 여긴 너무 춥고 쓸쓸해.” 카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이는 게르다에게 꼭 매달렸다. 게르다는 너무 기뻐서 웃다가 또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본 얼음 조각들은 즐거워서 춤을 추었다. 신나게 춤을 추던 얼음들이 지쳐서 주저앉자 글자 모양이 되었다. 바로 눈의 여왕이 알아맞히면 온 세상과 새 스케이트를 주겠다고 약속했던 ‘영원’이란 글자였다. 게르다가 카이의 뺨에 입을 맞추자 뺨이 다시 발그레해지고, 눈에 입을 맞추자 눈이 별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게르다는 카이의 손과 발에도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카이가 예전처럼 건강하고 씩씩해졌다.

이제 눈의 여왕이 돌아와도 두렵지 않았다. 카이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반짝이는 얼음 조각으로 된 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르다와 카이는 손을 잡고 거대한 성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할머니와 지붕 위에 핀 장미꽃에 대해 이야기하며 걸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면 바람이 잠잠해지고 해님이 고개를 내밀었다. 빨간 딸기가 열린 관목 숲에 도착하자 순록이 어린 순록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순록은 통통한 가슴을 내밀어 아기 순록들에게 따뜻한 젖을 주며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카이와 게르다를 먼저 핀란드 여자의 집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이 따뜻한 방에서 몸을 녹이는 동안 핀란드 여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두 사람은 그곳을 나와 곧 라플란드 노파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카이와 게르다에게 새옷을 지어 주고 썰매도 고쳐 주었다.

순록들은 썰매 옆에서 달리면서 국경까지 따라왔다. 국경에는 그 해에 처음으로 푸른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잘 있어!”

푸른 잎이 울창한 숲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었다. 그때 숲 속에서 아름다운 말이 나타났다. 황금 마차를 끌던 바로 그 말이었다. 말 위에는 빨간 모자를 쓰고 허리에 총을 찬 도둑의 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집에 있는 것이 따분해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 북쪽으로 여행하던 길이었다. 도둑의 딸은 게르다를 단번에 알아보았으며, 게르다도 그녀를 알아보았다. 뜻밖에도 그런 곳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다니 정말 잘됐구나. 게르다가 널 찾아 온 세상을 뒤졌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인지 한번 봐야겠어.” 도둑의 딸이 카이에게 말했다.

그러나 게르다는 도둑의 딸의 볼을 토닥거리며 공주와 왕자 소식을 물었다.

“그들은 외국으로 갔어.”

“그럼 까마귀는?”

“까마귀는 죽었어. 궁전 까마귀는 이제 과부가 됐지. 다리에 검은 털실을 매고 다닌단다. 그 까마귀는 딱하게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어. 그건 그렇고 카이를 어떻게 데려왔는지 말해 봐.”

게르다와 카이는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와, 결국 다 잘됐구나!” 도둑의 딸은 이렇게 말하고 게르다와 카이의 손을 잡고 약속했다. 언젠가 도회지에 가게 되면 꼭 그들을 찾아가겠노라고. 그리고 나서 도둑의 딸은 말을 타고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게르다와 카이는 손을 잡고 고향을 향해 계속 걸었다. 신록과 아름다운 꽃으로 단장한 봄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곧이어 교회 뾰족탑이 보이고 종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살던 바로 그 도시였다. 두 사람은 계단을 뛰어올라 할머니 방으로 갔다.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았다. 시계는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시계 바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문을 들어서는 순간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이 어른이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어느덧 아름다운 숙녀와 의젓한 청년이 된 것이다.

처마 홈에 놓인 장미가 활짝 피어 창문 틈새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고 예전처럼 의자가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카이와 게르다는 의자에 앉아서 서로 손을 꼭 잡았다. 눈의 여왕이 살던 성에서 경험했던 추위와 황량함이 악몽처럼 기억에서 사라졌다. 할머니가 햇볕을 쬐며 앉아서 성경 구절을 큰 소리로 읽었다. “너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카이와 게르다가 서로 마주보았다. 두 사람은 이제 옛 노래의 의미를 이해하였다.
 
“장미는 피었다 지네.
하지만 우리는 아기 예수를 보게 되리라!”
 
이제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거기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찬란하게 아름다운 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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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aro (♡.136.♡.15) - 2024/01/29 10:03:39

와우 이 스토리가 이렇게 장편이었군요 크하 ㅎㅎㅎ

나단비 (♡.252.♡.103) - 2024/01/29 10:04:47

장편소설이죠 ㅋㅋ

봄냉이 (♡.216.♡.90) - 2024/01/29 10:16:30

일단 노무 길어서 나중에 또 보러 올께요 ㅋㅋ

나단비 (♡.252.♡.103) - 2024/01/29 10:20:37

언제든지 시간나실때 오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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