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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 신화서점 조선말 도서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23)

혜원1008 | 2018.12.23 13:25:56 댓글: 7 조회: 2041 추천: 9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3800681

나 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혜원

5 장 새삶의 꽃

(2)

1999년 경숙이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대학졸업증서랑 학사증을 받을수 있었고 어엿한 대졸학력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 지난1년 경숙이는 서울을 떠나 안산에 숨어있었고 결국 우진이는1998년 그해 졸업한뒤 얼마 않지나 영국으로 떠났고 경숙이는 휴학1년만에 나머지 논문을 완성하고 결국은 1년 늦은 1999년에야 졸업장을 받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후회는 없었다. 충분히 생각하고 한 선택이였으니까. 슬픔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 어떤 만남도 끝나는 날은 있을테니 함께 할때 서로 많이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되는것이였다. 그리고 경숙이는 자신만의 슬픔을 빨리 잊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건 곧 일에 빠져 사는것이였다. 그날 서울을 떠나려고 경숙이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맨 먼저 보이는 버스를 탔었고 그게 하필이면 안산가는 버스 였다. 무작정 한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에 내린 경숙이는 그 길로 일자리부터 찾았다. 이제 몇년동안의 한국생활로 잔뼈가 굵어진 우리의 경숙이한테 그건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역에서 멀지도 않은 한 새로 생긴 치킨집에서 경숙이는 일자리를 찾았다. 그리 크지도 않은 치킨집은 몇달전까지만해도 대기업에서 일을 하던 사장님이 IMF땜에 구조조정당하면서 받은 쥐꼬리만한 퇴직금으로 차린 것이였다. 치킨집엔 사장님이랑 사모랑 두사람이서 손맞대고 경영하고 있었고 오픈한지 두달만에 꽤 장사가 잘돼 똘똘한 홀서빙을 구하던중 마침 경숙이가 찾아들었던 것이였다. 경숙이는 굳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중국에서 시집와서 국적을 바꾼 사람이며 지금 대학공부하다가 1년휴학하고 등록금이랑 마저 마련하기 위해서 일을 찾는다고 했다. 사장님내외는 반가워 했다. 대학생 알바생 쓰는게 나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 길로 다음날 출근하마 약속까지 하고 사장님이 가르켜준 그리 떨어지지 않은곳에서 경숙이가 묵을만한 고시원을 찾아 숙소문제도 해결했다. 말이 숙소지 거긴 채 한평이 될가말가 한 성냥갑만한 방이 전부였다. 화장실 주방은 전부다 공용시설로 원래는 고시준비 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마련된 곳인데 IMF 터지고 나서는 여기저기 일자리 찾는 젊은이에 노가다판에 내 몰린 아저씨까지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경숙이는 더 고르지도 않고 빛한점 않드는 그 방에 짐을 풀었다. 어차피 대부분 시간은 일만 할것이니까 잠자는 곳은 머 좁아도 상관이 었었고 거긴 밥도 공짜 김치까지 공짜로 제공되기도 해 나쁘지 않은 조건이였다. 그렇게 손바닥만한 방안에서 경숙이 몸만 누우면 단 1센치의 공간도 않남는 침대위에서 돌아누울때마다 옆에 벽에 쿵쾅 부딪히는 그런 방에서 옆방의 재채기 소리에 코고는 소리까티 생생하게 들리는 그 을 연상케하는 방에서 경숙이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어쩌면 일부로 그런 방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시점에 몸이 너무 편해지면 우진이 생각이 많이 나게 되어 마음이 더 힘들어질까바 그럴바엔 몸이 힘든게 나았으니까 말이다. 기업이나 공장같은데도 취직을 알아보긴 했었지만 그때 한창 경제위기땜에 있던 직원들도 짜르는 판에 아직 대졸도 못한 경숙이를 받아주는데는 없었다. 어차피 경숙이는 고생을 마다하는 성격도 아니였고 일단은 막일이라도 할 판에 그나마 익숙한 홀서빙일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다행이 치킨집 사장내외는 사람들이 착했다. 평생 대 기업에서 틀에 맞춘 일만 하던 분들이라 사실 좀 고지식하기도 했다. 치킨을 튀겨내는 기름은 엄격하게 몇마리 이상 되면 새 기름으로 바꿨고 치킨에 씌우는 튀김가루도 저울까지 대동해서 딱 배운 정량대로 지켰던게 오히려 손님들한테는 먹혔다. 그 치킨가게는 기름을 자주 바꿔 바삭하고 맛있고 깨끗하기까지 하다고 소문이나서 장사는 나날이 잘됐다. 그리고 장사가 잘 되는데는 경숙이도 한몫을 했다. 밝고 웃는 얼굴에 항상 친절하고 팽이처럼 빨리 움직이는 경숙이를 손님들은 많이 좋아했고 크지 않은 가게지만 경숙이의 날렵함 덕분에 손님 회전율도 높았다. 일한지 채 한달도 않돼서 치킨집 사장 내외는 여기저기 동네방네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 우리집 알바생이 너무 똑부러져서 좋다고 말이다. 식사때면 경숙이가 머 좋아하는지 물어까지 가면서 경숙이를 따로 챙길만큼이였다. <오늘도 저녁에 힘들테니 우리식구는 맛있는거 먹자. 경숙이 머 먹을래...> 거의 매일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이였고 매일 닭다리 한두개를 정성스레 튀겨서는 경숙이 너무 야위였다면서 손님 없을때 얼른 먹으라고 까지 했다. 처음 그 입에서 식구라는 말이 나왔을때 경숙이는 가슴이 찡했다. 이제까지 경숙이는 스스로가 완전한 이방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들은 온전히 그를 자기들의 식구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렇게 한없이 따뜻하고 착한 그 사장님 내외는 하필이면 강원도 사람들이였다. 바로 그렇게 까지 경숙이를 고생시켰던 그 강원도 말이다. 서른살이 채 되기 전에 경숙이는 피부로 느꼇다. 세상엔 사실 한국사람이라서 나쁘거나 일본사람이라서 반드시 독하거나 그런게 없다는 것을... 그저 사람들은 착한 사람 악한 사람 혹은 그 어떤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나빠진 사람 등등으로 나뉜다는것은... 사람은 원체 선하게 태여난다는 말은 세상 그 어느 구석에 그 어떤 인간한테도 다 적용이 되는 그런 말이라는것을 말이다.

치킨집은 오후 3시즘 오픈해서 새벽 1시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대부분 주변의 대학생들 혹은 직장인들이 2차로 걸쳐서 치킨에 소주한두병 가볍게 마시고 가는 그런 장소였다. 날이 추워지기 전엔 치킨 가게는 문앞에 길옆까지 테이블이랑 플라스틱 의자로 셋팅을 해 손님을 받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저녁마다 그물스타킹에 속옷이 보일락말락 입은 화장을 진하게 한 언니들이 명함에 사탕을 붙여가지고 와서는 호객행위를 많이 하기도 했다. 처음엔 잘 알지 못했다. 언니들은 멀 하는 사람들인지를...하지만 그들이 올때마다 경숙이네 사장님은 질색팔색 했었고 급기야몸파는 드러운 년이라고 욕까지 하고 했다. 언니들은 그 지역 꽤 큰 업소에서 그런 일하는 사람들이였다. 경숙이는 그러나 말거나 별로 신경을 않썻다. 윤정이가 그런 모습을 하고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윤정이는 경숙이의 중학교때 동창이였다. 집안 환경도 않좋았고 성적도 별로 였던 윤정이는 고중도 채 못다니고 광주에 공장에 취직해서 멀고도 험난한 돈 버는길에 나섰더랬다. 한국에 시집오기전 경숙이는 한때 윤정이한테 찾아갈까도 생각했었다. 결국 그리 되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돈을 잘 벌고 있다던 윤정이가 왜 그 골목에 경숙이네 치킨집앞에 나타났는지 경숙이는 의아했고 처음엔 잘못본줄 알았다. 하지만 경숙이와 정면으로 맞닿은 윤정이도 잠간 주춤 했고 이윽고 두사람은 얼싸 안았다. 우리모두들 동창이나 옛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친구끼리 외국에서 만나면 특히 고생하다가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한참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얼싸 안았던 두사람은 각자 일이 끝나고 담날 새벽 가까운 주점에서 다시금 자리를 했다. 경숙이의 지난 몇년동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윤정이는 함께 울어주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광주에 도착해서 공장에 들어가서는 라인에서 조립하는 여공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족이여서 한국말을 알아들을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쉽게 계장에 주임직까지 하다가 결국은 사무실직원으로 승진을 하였고 문제는 그때부터였다고 한다. 그 공장 사장은40대후반의 한국 사람이였고 처자식은 한국에 남겨둔채 한달에 보름 이상은 광주에 숙소를 두고 살고 있었고 나이도 어리고 키크고 이쁜 윤정이한테 꽂혔다. 처음 몇번은 거절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장의 물질공세는 끈질기게 이어졌고 듣도보도 못한 상상도 할수 없는 명품들을 끄러안고 윤정이는 어쩌면 사장애인 하면 힘들게 일하는것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수 있지 않을가라는 생각을 했고 조금은 쉬운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윤정이는 그 공장사장의 애인이 되였고 그때 그와 같은 여자들을 남들은현지처라고 불렀다고 한다. 물론 윤정이는 더이상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었고 다달이 나오는 월급 외에 생활비 용돈 명목으로 사장한테서 따로 돈을 받아쓰기 시작했고 물론 숙소도 아예 사장님댁으로 옮겼다. 그 부분을 그 공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윤정이는 거기서 사모님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이였다. 사람들은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윤정이를 대우해줬지만 등만 돌리면 환향년이라고 몸 파는 년이라고들 욕을 했고 결국 그런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도 못했다. 누군가의 고자질로 사실을 알게 된 진짜 사모님이 애들 까지 대동하고 공장에 들이닥쳤고 윤정이는 결국 온갖 욕설과 모욕을 당하고는 거기서 쫓겨났다. ‘모든사람들의 바램처럼 말이다. 떠나면서 윤정이는 보았다. 한때 사랑한다고 나중에 호랑이 같은 애들 엄마랑 이혼하고 너랑 결혼할것이라던 사장이 무책임하게 와이프등뒤에 숨는 모습을 말이다. 윤정이는 꽤 어린나이에 알아버렸다. 이 세상 남녀사이의 제일 추악한 현실을...그리고 돈의 맛까지도 .. 공장에서 나오고 나서는 더이상 광주에 있을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광주 몇 안되는 한국회사에서 일하던 조선족들은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였고 그런 않좋은 소문은 금세 퍼져 윤정이는 아예 모았던 돈을 다 들여서 한국에 노무수출로 나와버렸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여러군데 취직해서 일을 해보았으나 힘든 일에 비해 쥐꼬리만한 돈이 들어오니 결국 참을수 없었고 돈에 대한 욕심은 많으나 결코 그 어떤 노력이나 발전은 거부하는 여인들이 할수 있는 일은 딱 한가지였다. 그건 아주 태초부터 존재했던 직업으로 이세상 그 어떤 구석에도 존재하는 사람의 욕망이 존재하는한 절때 없어질수 없는 그런 원시적인 직업이였다. 경숙이의 월급 액수를 들으면서 윤정이는 코방귀를 뀌였다. <너가 한달내내 뼈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을 우리는 야 이틀이면 번다야>윤정이는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리곤 덧부쳤다. <경숙아 그러지 말고 우리 가게도 사람을 구한다. 같이 이 일 해서 돈바짝 벌고 연길에 가서 가게나 하면서 사장소리 듣고 살면 좋재야. 지금 그게 추세다. 우리 가게만 해도 지금 조선족애들이 점점 더 많아 진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경숙이는 눈앞에 윤정이가 점점 멀게만 느껴졌고 너무 안타까웠다. 언제부터였던가... 정조를 지킨다고 사또를 거부하여 매를 맞던 춘향이 이야기는 더이상 미덕이 아니였고 대신 그 어떤 방식으로던 돈만 많이 벌면 되고 웃음을 팔던 몸을 팔던 백만장자 억만장자만이 미덕이 된 그 시점이 말이다. 경숙이는 단호히 거절했다. 난 그런 일 할 생각이 없다고. 윤정이는 아직은 경숙이가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렇다면서 한소리 했다. ‘몸뚱아리는 어차피 아꼈다가 썩을날밖에 없는데 처녀도 아니면서 머가 그리 지킬게 많냐고 말이다. 그때가 마지막이였다. 윤정이를 만난게. 한때 꽃다운 십대를 머리 맞대고 같은 꿈을 꾸며 사춘기를 함께 보냈었던 절친이였는데 지금은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두갈래의 길을 가고 있었고 그 길은 한때 자매보다도 더 친했던 두 사람을 결코 넘을수 없는 벽으로 갈라놓았다. 경숙이는 가끔 생각을 했더랬다. 어쩌면 그때 윤정이는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해서 절친이였던 경숙이가 조금이나마 더 편하고’’쉬운방법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했을수도 있었다고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숙이는 단호했고 그 부분에 자존심이 상했던지 윤정이는 다시는 그 가게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윤정이 말대로 그 동네에는 조선족 언니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몇년 지나서 일부 조선족들 싫어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선 조선족 여자면 다 몸파는 년이라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심지어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사장이나 사장남편을 꼬실수도 있는 여우년이라고 오해를 받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개도 않먹는 돈을 벌어드리는 대신 우리의 조상들이 피터지게 싸워서 지켜왔던 가슴에 은장도까지 품고 지조를 지켰던 우리 민족 여성의 명예를 욕되게 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들은 모를것이다. 얼마나 대단한걸 내주고 얼마나 부질없는것을 얻은것인지를 말이다.....

경숙이는 그 치킨 가게에서 휴학한 일년내내 일을 했다. 사실 우진이가 영국으로 확실하게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아쉬운 마음으로 그 가게를 떠날 준비를 했더랬다. 떠날때 치킨집 사장은 눈물까지 보이며 두둑하게 퇴직금까지 챙겨줬다. 안산을 지날때면 꼭 들리라고 신신당부까지 하고 말이다. 물론 그 뒤로 경숙이는 때때로 인사차 들렸고 그렇게 지냈던 분들은 전부 다 경숙이의 소중한 지인이 되었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귀한 인맥이 되어갔다. 그리고 경숙이는 더이상 강원도라는 지역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몇년이 지난 그 시점에야 강원도에 임할매한테도 문안하러 다녀왔다. 임할매는 부쩍 연로하였지만 경숙이를 첫눈에 알아보곤 너무 반가워 눈물까지 보였다. 거기서 경숙이는 강변의 소식도 듣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삶은 그리 순탄치가 않았다고 한다. 거긴 여자들이 할 일만 넘쳤고 평생 책만 들고 있던 강변이 할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그리하여 강변은 미국가서 채2년도 못버티고 처자식만 두고 혼자 돌아왔다고 했다. 그찬아도 경숙이가 연락이 않된다고 했다면서 임할매는 강변의 새로운 핸드폰번호까지 정성스레 적어 주었다. 그리곤 몇년전처럼 또 다시 당부를 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강변을 찾아가라고 말이다. 그 이듬해 임할매는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그날 마을 입구까지 따라나와서 바래주던 임할매를 한번 안아주지 못한게 여직까지 남은 경숙이의 한이였다.

대졸하고난 경숙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또 다른 무역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능통한 중국어에 영어에 확실한 실무경험까지 바탕이 된 경숙이를 회사에서는 보배단지 얻은마냥 아꼈다. 정대표한테 배웠던 그 모든 세세한것들은 경숙이가 일을 해가는데 보물과 같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고 그 회사에서 경숙이는 대리에 과장직함까지 달며 승승 장구 했다.

한국의 IMF 대혼란은 꽤 오래 갔고 2000년에 들어선 김대중정부는 금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디작은 나라의 국민들은 집에 금붙이란 금붙이는 다 떼어다가 나라에 무상으로 바쳤다. 거기엔 할머니한테서 물려받은 해묵은 금반지도 있었고 첫애돌잔치때 받았던 돌반지도 있었다. 경숙이는 정대표한테서 우수직원상으로 받았던 금반지를 들고가서 바쳤다. 그 반지엔 J&이라는 문자까지 찍혀 있었지만 그런식으로 경숙이는 정대표에 대한 그리움을 기렸다. 반지 바치는 분들 이름을 적으라고 한 리스트에 경숙이는 ’’’’이라고 적었다.

다음회에 계속......

추천 (9) 선물 (0명)
IP: ♡.52.♡.182
형단 (♡.189.♡.223) - 2018/12/23 15:04:25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monica (♡.18.♡.96) - 2018/12/23 15:54:57

매회마다 정성스럽게 적어주셔서 잘 공감하고 감니다

hengz (♡.238.♡.199) - 2018/12/23 16:06:44

역경과 고난을 겪을때마다 더 강해지네요.
손오공이 불가마에 갇혔다가 훠얜찡찡이 되여 나오듯이

잘살아보세839 (♡.94.♡.108) - 2018/12/23 16:39:50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자신의 신념을.굳건히 지키는 경숙이가 존경스럽습니다.담회도 기대합니다.

해피투투 (♡.36.♡.166) - 2018/12/23 17:30:32

모든일에 열심에 성실을 다하는 경숙이가 대단합니다! 임할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해무리 (♡.29.♡.201) - 2018/12/23 21:10:50

글을 물 흐르듯이 담담하게 정말 잘 쓰네요...

kim제니하루 (♡.34.♡.209) - 2018/12/24 09:10:13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어제 낮에 문장 올렷는지 확인하니 없었어요. 11시 넘어서 치매가 점점 심해지는 엄마때문에 고민하다가 다시 확인하니 등록이 된 글도 다 읽고 오늘 아침도 조회 끝나고 또 부랴부랴 읽었어요.비록 엄마 병때문에 마음 고생은 있지만 경숙이 고생하는걸 보니 저의 고생은 별거 아니구나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날 용기가 생겼어요.작가님 고맙습니다.중국에서 지금까지 혁명한 우린 정말 너무 호강하고 경숙이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 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어디서나 열심히 응원 하고 기도 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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