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8회)

죽으나사나 | 2023.12.19 08:23:36 댓글: 0 조회: 438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1151
*따스한 봄날이 올까
(8회) 식구가 되다.

다음날 아침, 벌써 여름이 되나 싶을 정도로 해가 벌써 쨍쨍하게 올라와서 레스토랑 창문 유리를 비추었다.

누군가가 걸어오고 레스토랑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만년 1등 출석 도장을 찍는 메인 셰프, 일명 주방장님인 조길이 들어왔다.

그는 도진의 미국에서의 대학 선배로 3년 전에 미국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다가 도진의 부탁으로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 한국에 연고가 없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도진이라면 무엇을 하던 실망을 안 할거 같아서 따라왔다. 도진이랑 같이 요리 연구를 하면서 지금까지 쭉 레스토랑 주방 터줏대감을 지켜왔다.

그리고 중요한 건 자기도 어릴 적 살아봤던 한국에서 한 번쯤 다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어? …“

당연히 자신이 1등이라 생각할 즘, 홀 구석에서 바닥을 닦고 있는 유나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유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있는 조길한테 밝은 미소를 띠며 힘찬 목소리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길…“

”저 여기서 다시 일하게 되었어요. 저번엔 레스토랑에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조길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얼마 안 지나 직원들이 속속들이 가게로 들어왔고 송 매니저는 모두를 모이라 하고 다시 오게 된 유나를 인사 시켜줬다.

“인사들 하세요. 며칠 전에 땅콩 사건으로 그만두게 되었지만 사실 뭐 오해도 있었고, 유나 씨가 또 워낙 일도 잘해서 다시 오게 되었어요. 같이 잘해 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들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유나가 다시 온 거에 반가워했다. 특히나 유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못 했던 화영이가 그녀한테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갔다.

“언니… 그날 언니가 나가기 전에 말했어야 했는데… 진짜 미안해요. 언니. 흑…”

미안함에 또 울음보가 터진 화영이를 유나는 꼬옥 끌어안아 주며 등을 토닥였다.

“아니에요~ 이렇게 다시 만났잖아요. 그날 너무 바빠서 저도 정신이 없어서 잘못은 저한테도 있어요. 자책하지 마요.”

“울 막내 또 우네. 이제 유나 씨도 왔는데 그만 울고 다시 잘해보자고~”

나리는 전이랑 다르게 많이 위축되어 있는 화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막내가 사장님이 무서워서 말을 못 했다고 하니까 유나 씨도 조금은 이해해 줄 수 있죠?”

석호가 화영이랑 유나를 번갈아 보더니 유나한테 찡긋 거리며 눈웃음을 날렸다.

“아까 피뜩 들어보니까 나랑 동갑인 거 같은데 우리 친구끼리 말 놓을까? 유나?”

“아. 진짜요? 27살이에요? 그래. 친구야. 반가워. “

석호의 넉살을 흔쾌히 받아주는 유나다.

도진은 그런 훈훈하고 따뜻한 모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들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고! 해산!”

송 매니저의 박수 소리와 함께 다들 자기 위치로 돌아가서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사장님. 어제 그 소녀의 글이 먹혔나 본데요? 전화예약도 다시 늘어나고 있고 금방 확인해 봤는데 인터넷 주말 예약은 다음 달까지 꽉 차 있어요. “

송 매니저가 기분 좋은 듯 도진한테 성큼 다가가 말을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 같다.

**

“으어어~~ 이렇게 바빠 본 지 며칠 만이냐. 와~ 한가하다가 바쁘면 더 미친다니까.”

주방에서  보조 셰프 태만이가 아픈 자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이렇게 금방 다시 손님이 들어오는 게 어디냐. 난 내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했다.”

메인 셰프 조길이 개수대에서 손을 씻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아. 맞다. 주방장님이랑 사장님이랑 미국에서 선후배라고 했죠. 평소 두 분이 거의 얘기를 안 하셔서 깜빡깜빡해요. 왜 사장님이랑 따로 크게 말씀을 안 하세요?“

석호가 접시 정리를 하면서 끼어들었다.

”맞아. 근데 나는 그것보다 더 까먹고 사는 게 주방장님이 미국 사람이라는 거야. 조길이라는 이름이나, 평소 말씀하시는 거나 다 그냥 한국 사람인데 말아야. 미국 땅은 한 번도 안 밟아 본 거 같단 말이지. 울 사장님 봐라. 어디 좋은 데서 온 귀공자 같잖아.”

”으흠. 다 들린다.“

나름 석호 옆에서 속삭였다고 생각했는데 조길이 어느새 태만의 뒤에 서 있었다.

”엇, 기분… 나쁘신 건 아니시죠?“

태만이가 수습하려고 하자 조길은 그의 등짝을 찰싹 내리치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태만이 네 말이 맞아서 기분 안 나쁘니까 눈치 보지 마라. 도진이랑 나는 선후배고 보다 싶이 요리는 잘 통하지만 나머지는 다 너무 달라. 난 김치찌개에 한국 소주를 즐기고 도진이는 딱 반대잖아. 서로 많이 다르지만 목표가 같고 서로 응원하고 협력관계. 오케이?“

”네에~지당하신 말씀입니다요.”

태만은 삐지지 않은 조길에 잠깐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맞장구를 쳤다.

”주방장님이 소주 얘기하니까 소주가 당기네. 셰프님들. 우리 오늘 유나가 다시 왔는데 사장님 보고 환영식 겸 회식 하자고 할까요?“

석호의 제안에 다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

레스토랑 근처 어느 곱창 가게에서.

”지글지글…“

뜨거운 불판 위에 갓 올려놓은 곱창이 기름을 튕기면서 맛있는 소리를 낸다.

”맛있겠다. 빨리 익혀주세요~ 석호오빠~!“

”알았어~ 막내 기다려!“

석호는 곱창 굽는 데는 자신 있다면서 구워주는 종업원이 있는데 굳이 본인이 하고 있었고  화영의 재촉에 더 급하게 재료들을 불판 위에 올려놓는다.

”근데 도진이 너  이런 걸 안 먹는 걸로 아는데  괜찮겠어?“

도진 옆에 앉아있던 조길이 그한테 물어본다.

”아… 괜찮아요. 이참에 먹어보죠 뭐. “

도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앞에 놓여 있는 물컵에 물을 꿀꺽 삼켰다.

사실… 도진이는 곱창류를 못 먹는다. 그냥 내장을 잘 못 먹는다. 하지만 아까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들은 얘기에 갑자기 회식 장소를 여기로 정했다.

[언니, 좀 있다가 회식 가잖아요. 다들 이 근처 가게는 이제 거의 다 먹어봐서 지금 고민들 중인데 언니는 뭐 먹고 싶어요?]

[음… 난 어차피 다 잘 먹으니까 어디든 괜찮아요.]

[에이~ 꼭 선택한 데로 간다는 보장은 없어도 한번 얘기는 해봐요.네?]

손님이 다녀 간 브레이크 타임에 홀에서 커피를 마시던 화영과 유나의 말을 우연히 들은 건 그 근처를 지나가던 도진이었다.

[음… 굳이 선택한다면 곱창?]

[곱창이요? 그것도 좋긴 한데요?]

[곱창 좋아하는데 못 먹어 본 지 꽤 된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어디든 괜찮아요. 요즘 못 먹어 본 게 많아서. ]

유나는 말하고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곱창이라…

잠시 후,

[사장님, 우리 어디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뭐 고깃집도 괜찮고 그렇긴 한데...]

가게 마무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송 매니저가 사장실에 들어와서 물었다.

[아까 보니까 요 근처에 새로 생긴 곱창 가게가 있더라고요. 거기가 어때요?]

[곱창이요?]

송 매니저는 몇 초 생각하는듯 하더니

[저희는 좋죠. 그럼 애들한테 말할게요.]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다들 곱창 가게에서 석호가 굽는 곱창이 다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 이제 다 됐다. 이제 드셔도 돼요!"

석호가 여기저기 음식을 나눠주면서 야단이다.

"자 그럼 우리 한 잔씩 할까요~? 요 며칠 레스토랑이  조금 힘들어졌었지만 다시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다 평소에 여러분들이 잘한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제 말이 맞죠? 사장님."

송 매니저가 술잔을 들고서 한 마디를 하였고 자기 말을 수긍이라도 해 달라는 듯 도진을 쳐다보았고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이쯤 되니 발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오늘도 모두 들 고생하셨고 술보다 안주를 많이 드세요. 그리고... 유나 씨, 다시 오게 된 걸 환영해요."

"유나 씨 환영합니다~"

"잘 해 봅시다~"

"자자, 한잔 합시다~!"

...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다들 알딸딸한 기분에 업 되었다.

"유나야! 너한테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어, 응. 물어봐."


오랜만에 먹는 곱창이라 맛나게 먹던 유나가 잠깐 멈추고 자신을 향해 질문하는  석호를 바라보았다.

"너 캐리어 맨날 들고 다니는 거 같던데 혹시 집에서 나왔어? 집에서 뛰쳐나오기엔 우리 나이가 이미 지난 거 같긴 한데 궁금했어."

"맞아맞아."

태만이도 술을 한잔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아, 그게..."

도진이도 궁금하였던 거다.

"맞아. 집 나왔어."

생각지 않은 단답형에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하,하하... 집 나온 거래. 설마 했는데 진짜야? 왜?"

"거 봐~ 내가 그런 거 같다고 했지?"

태만이랑 석호가 서로 아웅다웅하였다.

"난 집이 제일 좋던데. 맨날 따뜻한 밥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자취는 생각도 못 하겠어."

석호가 혼잣말처럼 중얼중얼 거렸고

"부모님이 간섭을 많이 하나보다. 뛰쳐나온걸 보니. 웬만하면 잘해 드려. 난 우리 엄마 아빠가 이젠 서서히 늙어 가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난단 말이야."

태만은 술김이라 그런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아~ 이 오빠 또 이러네. 술만 먹으면 울려고 해."

처음 있는 일이 아닌지 화영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휴지를 뽑아 앞자리에 있는 태만이한테 건네주었다.

"고마워."

태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쓱쓱 닦더니

"너 아직 20대라 그렇지 나처럼 30대 들어가 봐. 눈물이 안 나나."

"네네~ 명심할게요. 이제 30대 금방 들어갔으면서 뭐, 그래 오늘은 울지 말고 술만 마십시다~"

태만의 경고 아닌 경고에 화영은 아직은 모르겠지만 더 상대하면 끝날 거 같지 않아 이 분위기를 끊어냈다.

"하하...화영이가 이제 태만인 다 캐치 했네."

"그러게."

조길과 송 매니저도 한 잔씩 기울였다.

모두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 좋게 한 잔씩 하고 있는데 문득 자신의 앞에 앉은  도진이만 조용히 물을 마시고 있다는 걸 느낀  유나가 소주를  든다.

"한잔 하시죠. 사장님?"

도진은 그런 유나를 쳐다보고는 잔을 들었다.

"근데 곱창 거의 안 드시던데,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도진은 대답하면서 소주를 들이켰다. 평소 안 마시던 거라 목구멍에 내려가는 소주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설마 소주도 잘 안 마셔요?"

유나도 소주를 쭉 들이켜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린 도진을 보며 약간 놀리듯이 웃으며 묻는다.

"안주로 음~. 요 막창도 드세요."

그러면서 도진의 접시 위에 막창 한 점을 올려줬다. 도진은 먹기를 기대하고 있는 유나 앞에서 오늘 처음으로 막창을 입안에 구겨 넣었다.

"오~ 드시긴 하네. 그럼 한 잔 더~!"

유나는 또 도진의 잔을 채워 주고는 자기 잔에도 졸졸 따랐다.

"한 잔 더~"

신이 난 건지 또 건배를 하잔다.

도진도 질세라 피식 웃고는 잔을 쭉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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