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1회) 분명히 이 세상과는 안녕이었는데.
마포대교 위. 날은 이미 많이 저물었지만 형형색의 조명들과 불이 안 꺼진 아파트들로 인해 아직은 한창 밝은 서울 야경…
따뜻한 6월의 바람은 너무 좋다. 바람이 산들산들 콧구멍을 타고 들어오는데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난, 이 좋은 날씨, 이 좋은 야경을 보면서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금방... 뭐라고 하셨어요?]
제 귀를 의심했다. 최근에 들어 잦은 두통과 불면증으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CT를 찍었다가 MRI 검사까지 받았다.
[요즘 기억력이 예전 못지않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들은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 젊은 층에서도 간간히 발병하고 있는데요.]
뜸을 들이지 말라고요. 뭔데 이래요?
[치매입니다.]
[네? 그게 무슨...]
[가족 중 치매로 앓으셨던 분이 계십니까?]
삐—. 머릿속에서 굉장한 기계음이 울렸다.
[아직 초기니까 약을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면 진행속도는 충분히 줄일 수 있습니다.]
[저 이제 32살밖에 안 되었는데요? 생일도 안 지났어요. 만으로 30살이라고요.]
[…]
병원에서 어떻게 나왔더라… 기억이 안 났고 평소 안 마시던 술을 밑 빠진 독에 퍼붓듯이 부어댔다.
하…
[환자분, 술은 드시면 안 됩니다.]
그랬었지. 근데 술이라도 안 들어오면 맨 정신으로 못 버티겠는걸.
열심히 살아왔는데, 한창 승승장구할 나이에 내가 무슨 치매라고? 웃기지도 않아.
내 이름은 윤하정이다. 현재 그리 작지 않은 중소기업에 마케팅 팀에서 팀장직을 달고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24살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온 첫 직장이다. 그때는 신생아 수준의 작은 회사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같은 업계에선 꽤 알아주는 중소기업으로 성장을 했다. 그 덕에는 분명 나도 있을 터.
밤낮없이 어떻게 하면 회사가 커나갈지 연구하고 전략을 세웠다. 성과가 좋으니 자연스레 승진을 빨리했고 지금은 또래들 사이에선 꽤 빨리 팀장직을 달았다.
난 일할 때 기분이 좋다. 그 성과가 이루어졌을 때 느끼는 그 희열과 짜릿함이란…
근데 뭐?
치매?? 지금은 그런 게 거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억이 흐릿해지고 바보가 된다는 말이잖아.
완치라는 치료제도 없단다.
그냥 진행속도만 늦출 뿐이라 했다.
하,
또 헛웃음이 나갔다.
“지이이이잉…”
아까부터 휴대폰 진동은 그냥 울려댔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정 과장의 전화다. 회사에 뭔 일이 있으려나, 생각을 하다가 그만뒀다.
이제 정상이 아닌 나한테 제대로 된 회사 생활이 가능하기나 할까.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한다. 회사에서 그렇게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리바리해서 앉아있을 걸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난 이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럼 난 어디로 갈 수가 있을까. 회사밖에 몰랐던 내가 이제는 무얼 할 수가 있을까.
술을 퍼붓는 와중에도 머리는 그냥 돌아갔다. 답은 없었지만.
“혼자야? 나랑 같이 놀래?”
한참을 혼자서 술을 퍼마시고 있으니 똥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여기도 더 이상 있을 데가 아니구나.
밖으로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승승장구로 뚫려있던 내 세상이 암흑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새로 론칭할 의류 사업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공장에서 이제 첫 납품 건은 거의 다 찍어가고 있는데…. 나의 땀과 노력이 깃든 건 물론이고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의류 사업이라 기대가 컸는데.
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난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될 테니.
여기까지 생각하니 회사밖에 몰랐던 나의 짧은 삶이 너무나도 허탈했다.
정신 나간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완벽한 모습일 때 이 세상을 떠나는 게 맞지 않을까? 사람들한테 흉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그래. 맞아.
생을 마감할 생각까지 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만큼 난 흐트러진 나 자신을 그 누구한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뭐, 지금은 또 다른 의미에서 몸이 흐트러져 있지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술집에서부터 들고 온 와인병을 한 손에 웅켜 쥐고 콧바람이 좋은 이 마포대교 위에 우뚝 서있는 거다.
머리칼이 내 뺨을 스치며 나를 간지럽히는데 술을 마셔서 그런지 느낌이 너무 좋다.
남자의 손이 닿으면 이런 느낌일까,
살면서 단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이성, 남자.
죽으려고 마음을 먹으니 우습게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라는 생명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이 정도면 눈치를 챘겠지만 32년을 살면서 남자랑 살을 맞댄 적이 한 번도 없다.
연애? 소꿉장난처럼 딱 한번 했던 기억은 있다.
[너 너무 하는 거 아냐? 윤하정. 무슨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곁을 안 주냐? 도대체 너한테 나는 뭐냐?]
대학생 시절, 같은 과 선배였다.
나를 좋다고 자꾸 쫓아다니길래 만났는데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남자라는 생명체.
사귀기로 한 그날부터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날 벗겨 먹을까 생각하는 그 음침한 눈빛.
솔직히 더러웠다. 그래서 심한 철벽을 쳤더랬지. 그렇게 결국 내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본 선배는 어느 날 드디어 화가 나서 빽 소리를 질렀고 그렇게 나는 차였다.
뭐,
슬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첫 연애였고 좋아한다는 말에 사귀기로 했으니 헤어지자는 말을 굳이 내 입에서 하기 귀찮아서 기다려줬을 뿐이었으니.
남들 눈에는 내가 차였으니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 그 선배가 아니라.
그래. 난 남의 시선이 극도로 두려운 여자였다.
그래서 모든 일에 똑 부러져야 했고 나만의 틀이 있었다.
근데 죽으려고 마음을 먹으니 남자가 궁금해졌다?
윤하정. 너도 참 웃기는구나. 이 순간에 남자가 궁금해지다니.
비틀거리면서 난간에 바짝 붙으려고 보니 거기에 짧은 글귀가 보였다.
<내일은 해가 뜬다.>
그래 해가 뜨겠지. 근데 그건 나의 해는 아닐 테고.
옆으로 둘러보니 또 다른 글귀가 보였다.
<용기를 내세요.>
픽 하고 웃으면서 와인병을 들어 그대로 입안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용기를 내야지. 이제.
난간 제일 아래에 발을 올렸다.
한 발, 두발.
윤하정,
일밖에 모르고 살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살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좀 제대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보자. 이번 생은 그냥 이 정도로 끝내자.
끙끙대면서 나는 한쪽 다리를 난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뭐지?
여기가 지옥인가, 지옥의 촉감이라기엔 너무나도 느낌이 좋은데…
냄새도 너무 좋은 거 같아. 무슨 향수지?
킁킁…
냄새를 따라 앞으로 얼굴을 더 갖다 대니 무언가에 코가 닿았다.
물체라기엔 조금 말랑하고, 또 그렇다고 하나도 물렁대지 않는 이 딱딱함은…
따뜻한 바람이 참다못해 터지듯 내 머릿결과 이마를 간지럽혔다.
음?
눈이 떠졌다.
깜빡깜빡.
그 물체에 올린 내 손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만지작거렸고
얼굴은 거기에 파묻혀있었다.
이게 뭐지?
이번엔 정수리에 따뜻한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머리를 들었다.
!!!
물체와 가까웠는데 분명히…
까만 눈동자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고 두 눈썹 사이는 왠지 많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앗!!”
저도 몰래 비명소리가 나갔고 그 ‘물체’에 올렸던 내 손은 사정없이 그걸 밀어냈다.
뭐 밀린 건 그쪽이 아니라 나였고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나의 팔을 꽉 당겨 잡은 건 그 ‘물체’였다.
의도와는 다르게 다시 그 ‘물체’와 한 몸이 된 듯 바짝 붙었다.
100년 묵은 빙하에 얼어붙은 듯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그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난 황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가운이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윗옷을 안 입은 …
픽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면서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숨 막혀 죽어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한테 걱정인지 경고인지 모를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어디로 가는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가 침대에서 멀어지자 난 이불을 내리고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없다.
옷을 벗고 있었는데 나간 건가?
이때, 욕실에서 샤워기를 튼 물소리가 들렸다.
아…
난 당황해 죽겠는데 씻으러 간 거였구나.
허.
어이가 없었다.
그나저나 나는 분명히 마포대교 위에서 죽으려고 난간까지 밟았는데 왜 지금 여기에, 그것도 저 처음 보는 남자랑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눈을 굴려 주위를 잠깐 스캔을 해보니 호텔이 분명했다.
뭐지? 뭐지??
벌써 치매 증상이 나오는 걸까.
기억이 안 난다.
미치지, 내가…
“지이이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난 습관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팀장 님!! 왜 이제서야 전화를 받으세요!!?“
깜짝 놀랐다. 전화기 너머로 거의 자지러지듯 소리를 지르는 꽤 무례한 정 과장 때문에.
”팀장 님. 우리 큰일 났어요!“
”뭔데.“
지금 회사 일이 나한테 중요하지는 않지만 일단 들어볼게.
”김포공장에서 사고가 터졌어요.“
김포공장? 요번에 의류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로 계약한 하청업체인데.
”무슨 사고를 쳤는데.“
정 과장은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히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가 그때 분명 개발 때 나온 상품은 완벽했었잖아요. 납품일이 코앞이라 어제 부장 님이 갑자기 김포공장에 방문을 하셨는데… 발칵 뒤집어졌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무슨 문제가 터졌는데. ”
정 과장한테 다그치면서 옷이 어디에 있는지 주위를 둘어보았다.
시선이 침대 옆 협탁에 고정되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까 해서 바닥만 여기저기 보다가 한참 뒤에야 발견한 곳이었다.
너무나도 각지게 개여놓은 옷과 그 위에는 너무 노골적이라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든 하얀색 속옷이 고스란히 올려져 있었다.
내가 저렇게 놓았을 리는 없다. 그러면…
”요즘 김포공장에 인력난을 겪고 있었대요. 그래서 얘네들이 우리한테 말은 안 하고 납품일을 맞춘다고 공정 하나를 빼먹었대요. 당연히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랬다지만 부장님께서 어제 들고 온 의류를 보니…“
하…
시선은 제 속옷에 꽂힌 채 절로 한숨이 나갔다.
”샘플과 너무 달라요. 도저히 그대로 납품을 할 수가 없어요. 납품을 할 회사가 그 깐깐하기로 유명한 영진 그룹인데… 어떡하죠? 우리 망했어요. 팀장님!“
난 또 몰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를 수밖에 없었다.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 회사로 가야 했다. 일단 공정을 빼먹었다는 그 옷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을 해야 하고 정 안된다 싶으면 납품일을 미루어야 한다. 당연히… 영진 그룹엔 양해를 구하는 쪽으로….
옷을 부랴부랴 챙겨 입고 나올 때까지 그 사람은 욕실에서 안 나왔다.
뭐, 모르는 사람인데 인사까지 하고 갈 이유는 없지.
난 급히 그 호텔 방에서 나왔다.
근데 걷다 보니 옷에서 뭔가 향이 올라오는데 내가 평소 쓰는 향수 냄새도 아니고 섬유 냄새도 아니다.
킁킁.
섬유 냄새에 가까운 이건 …
뭐지? 세탁을 한 건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생각을 하다 바로 앞에 멈춰 선 택시를 잡고 난 회사로 향했다.
와우~! 신작 연작~!ㅋㅋㅋ
술술 읽혀져요 ㅋ가독성이 좋아요 나름 ㅋ(독자로서 ,단순하고 머리 안쓰고 쉽게 읽히는글 좋아 함.)
뭐랄까.므튼 좋습니다 ㅎ2화 어디갔어요?
깊이가 있는 글은 .... 사실 한계가 있어서 못 쓰는 겁니다. ㅋ
아직 쓰는 중이라 천천히 올리겠습니다.
윤하정은 미인임다,얼마나 스트레스 많겟슴까,아때부터..일찍 시집가야되는데..거기다가 사업광이지,또 스트레스 쌓이지..시집가기 힘들어짐다..근데 다행인것은 탐나는 남자가 드디여 나타나서 좋슴다..볼것다봣는데 시집가야지..잘 보구감니다.
아….. 이제 1회를 올렸는데 결말을 내리셨군요.
결말이 중요하지 않슴다.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봄다.어떤 사랑이야기를 펼쳐갈지 궁금함다.혹시 남자주인공이름을 정하윤 이라 하면 어떠신지?자꾸 작품에 끼여들고 싶어하는 일인임다,후......
와우~~신작 1화 너무 재밋게 보고 갑니다. 글쓰기 힘드시죠? 화이팅요~ 저는 2화 보러 갈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