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34회)

죽으나사나 | 2024.03.11 08:16:00 댓글: 20 조회: 575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3056
너를 탐내도 될까? (34회) 왜 울어요?
일을 그만두고 나서 하정을 괴롭히던 지독한 불면증은 이상하게 차츰 사라지고 있었고  늦잠 자는 습관이 생겼다. 
대학교를 다닐 때 부모님은 곁에 없어도 학자금과 용돈은 꼬박꼬박 통장에 넣어주셨다. 그걸로 충분히 대학 생활은 편하게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던 하정은 그 돈은 그대로 놔둔 채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생활비도 알바를 해가면서 채워갔다. 그러니 당연히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는 잠도 사치인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었다.
자신의 허전함을 달래려 졸업하고 나서 처음 입사한 리더스에서는 죽어라 일만 했다.
자신을 혹사시키니 진짜 거짓말처럼 항상 마음 한편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외로움은 차츰 옅어지기 시작했더란다.
그러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두니 진짜 할 게 없다.
밤늦게까지 그동안 못 보았던 드라마나 예능을 몰아서 보았다. 그걸 정주행이라고 하던가.
정 과장이 동료들이랑 자주 하는 얘기였다. 그땐 뭐 그런 거에 쓸데없는 시간을 파나 싶었다.
보다 보니 재미있었고 그 주인공들한테 닥치는 상황마다 자기가 빠져서 같이 울고 같이 욕했다. 
예능은 또 어떤가, 요즘 트렌드에 대해 알 수가 있었고 몰랐던 그 연예인의 다른 모습도 엿볼 수가 있어서 은근 재미가 있었다.
오늘도 저절로 눈이 떠져서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둡게 드리운 암막 커튼을 촤락 펼치자 뜨거운 햇살이 스며 들어왔다. 하정은 눈을 찡그리며 다시 커튼을 닫아버렸다.
하정에게는 이제야 평온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늘은 또 뭐 할까.
주방으로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뭘 먹을지 아래 위로 훑다가 어제까지 다 마셔버린 우유가 생각나 장을 보는 게 좋겠다 생각해 대충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덥다.
맴맴맴맴~ 매미 우는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이제 진짜 찌는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귀여운 곰돌이 문양이 있는 양산을 쫙 펴고 라탄 장바구니를 앞뒤로 흔들며 하정은 가벼운 발걸음을 떼었다.
"... 누나."
누군가 자신을 누나라 부를 사람은 없는 거 같았다. 그냥 들리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봤을 뿐이었는데.
거기에는 초췌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그녀를 힘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박... 서울??"
옅은 미소를 지으려는지 살짝 입매를 올리려던 그가 몸을 위태롭게 움직이더니 그대로 꼬꾸라졌다.
"서울씨!!"
***
"서울 씨, 정신 들어?"
바로 병원에 가려고 했다. 그의 어깨를 흔들며 정신없이 깨우려 들자 다행히 정신은 잃지 않은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누워 있을 수 있냐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다시 집에 들어왔고 침대에 그를 부축해 눕히고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30분 정도 지났으려나,
눈을 감고 있던 서울이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고요한 눈은 하정을 공허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무엇 때문에 며칠 만에 이리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닌 거 같아서 기다리던 하정에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아... 

“그렇게 밉던 엄마인데… 돌아가셨다니 이상하게 힘들어지네요.”
말하는 서울이 얼굴은 많이 어둡고 가라앉아 있었다. 
"누나."
자꾸 왜 자신을 누나라고 그리 편하게 부르는지 모르겠다만 하정은 대답을 했다.
"응."
서울이가 무거운 상체를 일으키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미안해요. 저번에 저 때문에 많이 놀랐을 텐데. 찾아올 사람이 누나밖에 없었어요. 나 지금 위로가 필요해요."
축 가라앉은 그 눈매와 떨리는 목소리가 거짓말 같지가 않아서 더 마음이 이상했다.
그리고 왜 굳이 나한테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나는 내가 진짜 기억 안 나요? 우리의 첫 만남이 언제였었는지?"
하정이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만 보자 서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1년 전엔가, 누나를 우연히 회사 근처에서 봤어요. 몇 년을 그리워했던 누나인데 보는 순간, 누나라는 걸 알았죠. 가까운 거리에서 누나의 회사 명찰을 확인하는데도 누나는 나를 모르더라고요. 절 기억 못 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되게 슬펐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누나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를 한 거고요. 급하게 다가가지 않았어요.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누나의 모습이랑 너무 다르게 잘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나란 존재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걸 흐트릴가봐."
듣고도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어 하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에 있었다. 
"그러다 마포대교 위에서 누나가 죽으려고 하는 걸 보았죠. 누나가 아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때부터 누나 눈에 도장을 찍기로 마음을 먹은 거예요. 그때처럼 내가 옆에 있을 거니 그 어떤 일이던 좌절하지 말라고. 내가 누나 옆에 항상 있어 줄 테니 제발 죽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이상했다.
여기까지 들으니...
뭔가가 떠오를 듯 아닐 듯 하정이 머리를 맴돌았다.
"기억 안 나요? 내 이름도 기억이 안 나요? 박서울.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이라고 이름 지어줬냐고 누나가 깔깔대며 웃었잖아요. 누나가 14살 그때."
서울은 이래도 자신을 모른다는 게 안 믿겨 지는지  하정의 양어깨를 부여잡았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초조했다.
박서울....
박서울이라....
​[여기서 왜 울어요?]

차가운 통 미끄럼틀 안에서 웅크리고 울던 여자아이에게 다가와 묻는 남자아이는 저보다 훨씬 작은 남자아이였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뜨거운 눈물을 금방 식혔다. 처음에 흐릿하던 그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지고 드디어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 작은 시야에 제대로 들어왔다. 

저 못지 않게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아이는 저처럼 눈물이 고여있지는 않지만 그 여린 눈빛 또한 많이 떨고 있었다.
서로를 한참이나 마주보고 있었다.
[나도 들어가도 돼?]
하정에게 물었지만 답은 필요 없었는지 남자아이는  그 좁은 통 미끄럼틀 안으로 그대로  엉덩이를 들이밀고​  들어왔다.
비좁아.
어느새 눈물은 쏙 달아났다.
[하정이 누나지?]
앉아 있는 키도 한참이나 작은 남자아이가 아까부터 거슬리게 반말을 하더니 하정이 이름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분명 교복도 안 입었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놀이터에서 가끔 누나를 봤어. 교복 명찰 보고 이름을 알았고.]
무심하게 대꾸하며 남자아이는 나이에 맞지 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넌 왜 이 시간에 밖에 있어? 엄마 아빠가 널 안 찾아?]
새벽인 그 시간은 누가 누굴 뭐라 걱정할 시간은 아니었다. 중학생인 자신도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 건 정상은 아니었을 테니.
[엄마랑 사는데 오늘도 내가 잠이 들자마자 나갔나 봐. 나쁜 아줌마.]
입으론 욕을 뱉으면서 상처를 받은 얼굴이 역력했다.
[누난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어?]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며 묻는 남자아이에 하정은 금방 자신이 저질렀던 일이 떠올라 괴로움에 두 눈을 찔 끈 감았다.
오늘 엄마 아빠가 저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질투심 때문에.
이 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 없는 운이 좋은 아이였다.
세상 인자하신 대학교수인 아빠, 모든 걸 감싸주며 사랑을 주시던 중학교 교사인 엄마를 곁에 뒀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처음으로 같은 반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았다.
생일이었던 그 친구는 예쁘게 꾸며진 현수막과 각종 풍선들로 가득 장식된 그 공간에서 친구들의 생일 축하 노래로 행복한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엄마 아빠의 축하와 함께 많은 선물들을 받았었고 맛있는 음식들도 엄청 많았다.
부러웠다. 그리고 기대를 했다.
곧 있을 제 생일도 그렇게 꾸며주겠지? 엄마 아빠는 날 사랑하니까.
8살 생일날이었다.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깼다. 
생일이면 먹는다던 미역국은 없었고 평소 먹던 토스트에 우유였다.
괜찮았다. 
[엄마, 나 오늘 저녁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도 돼?]
[왜?]
[왜긴, 내 생일이잖아. 파티 안 해요?]
그날 처음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는 답이 없었고 난 당연히 생일 파티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9살, 10살,11살이 되는 해에도 난 미역국도 없는 생일을 보냈다.
엄마는 울었고 아빠는 한숨을 내쉬었다.
13살이 되던 해에 알았다. 그날은 내가 보지도 못한 엄마 아빠의 아들 기일이었다는걸.
혼자 서러움을 꾹꾹 참으며 그래도 생일날 빼고는 자신한테 잘해주는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근데 왜일까, 
14살이 되던 그해, 그날도 친구네 생일 파티에 다녀온  난 우울하고 비참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뭐에 홀리듯 그동안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꾹 잠긴 그 문 앞에 아빠의 공구를 찾아 들고 멈추었다.

집에는 항상 큰 자물쇠로 잠겨있는 방이 있었다. 여긴 왜 잠겨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창고라고만 했고 한 번도 안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곳이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건 아니었다. 고작 창고가 아닐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미 죽은 그 아이의 물건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쾅, 쾅,
 
둔탁한 공구로 자물쇠를 마구 내리찍었다.
몇 번 찍었더니 고장 난 자물쇠가 금세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그 방문을 열었다.

그냥,

차마 버리지 못한 아이의 물건들이 있을 줄 알았다.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방 정중앙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처음 보는 아이의 사진과 함께 그 앞에는 각종 선물들이 쌓여있었다. 먼지 한 톨 없이. 

쪽지도 있었다. 

<우리 아가. 첫돌 생일 축하해.>

<2살 생일 축하해.>

<3살이 된 걸 축하한다. 사랑한다. 아들.>


그분들한테는 내 생일만 없었을 뿐이었다. 

엄마 아빠는 해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정성껏 생일 선물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기껏해야 짜장면 같은 걸 사주었으면서.

화가 치밀기 시작하자 손이 떨리고 어떻게 해야 이 더러운 기분을 풀 수 있을지 생각했다. 

바로 떠오르는 건 그분들이 아끼는 이 모든 걸 망쳐버려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안방 서랍에 있는 흡연자였던 아빠의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그 쪽지들에 불을 지폈다. 

다 없어져!
내 눈에 다시는 띄지 않게 다 사라지란 말이야.

작은 불씨가 점점 커지면서 금세 빨간 화염에 휩싸였다. 

[하정아!!! 위험해! 물러서! 여보 불이에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먼저 집안에 들어선 엄마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질렀다. 

뒤이어 들어온 아빠도 겉옷을 벗어던지더니 이내 불길이 거세지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코를 막고 옷으로 그 불길을 잡으려고 했다. 엄마는 울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고 아빠의 119에 전화하라는 소리에 떨면서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가 자옥한 그곳에서 꼼짝 않고 있자 문밖으로 날 밀어낸 건 엄마였다. 

불길 속에 함께 뛰어들었던 엄마 아빠는 119 소방대원들이 왔을 때는 연기를 많이 흡입한 탓에 실신을 하고 병원에 실려갔다. 

그냥 그 집에서 나와서 소방대원들이 오기까지 기다려도 될 것을. 

그분들은 죽은 아이의 추억이 이대로 사라지는 게 두려워 나올 수가 없었다.

추천 (1) 선물 (0명)
IP: ♡.234.♡.142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5:12

잘 보고 갑니다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5:24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5:32

잘 보고 가요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5:45

잘 보고 가요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5:53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5:57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6:02

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19 05:56:06

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1:25

잘 보고 갑니다 ㅎㅎㄹ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1:35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1:45

잘 보고 가요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1:55

잘 보고 가요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2:01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2:06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2:34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2:44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2:53

잘 보고 가요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3:02

잘 보거 가요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3:09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0 16:53:15

ㅋㅋㅋ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40
죽으나사나
2024-04-24
1
196
죽으나사나
2024-04-23
1
192
여삿갓
2024-04-21
4
525
죽으나사나
2024-04-21
0
306
여삿갓
2024-04-20
3
1045
죽으나사나
2024-04-18
2
942
죽으나사나
2024-04-16
2
985
죽으나사나
2024-04-16
1
296
죽으나사나
2024-04-15
1
209
죽으나사나
2024-04-15
1
211
죽으나사나
2024-04-14
1
284
죽으나사나
2024-04-14
1
219
죽으나사나
2024-04-13
0
267
죽으나사나
2024-04-13
0
177
죽으나사나
2024-04-12
0
204
죽으나사나
2024-04-12
0
189
죽으나사나
2024-04-11
1
174
죽으나사나
2024-04-11
0
121
죽으나사나
2024-04-10
1
232
죽으나사나
2024-04-10
0
129
죽으나사나
2024-04-09
1
240
죽으나사나
2024-04-09
1
157
죽으나사나
2024-04-07
1
202
죽으나사나
2024-04-07
1
174
죽으나사나
2024-04-04
2
263
죽으나사나
2024-04-04
1
228
죽으나사나
2024-04-02
2
298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