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44회)

죽으나사나 | 2024.03.19 07:14:09 댓글: 10 조회: 269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4794
너를 탐내도 될까? (44회) 누나 곁에 그 사람은 안 돼.
딱 한 사람,
고고하게 내 앞에 앉아 음미하듯이 한 입씩 딤섬을 베어 무는 권대표만 아니었다면 참 맛있는 저녁이었는데...
온 신경이 그한테로 쏠려서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 모르겠다.
[한 번뿐인데, 내 얼굴을 잘 봐요.]​
그날 그의 집에서 느른한 표정으로 낮게 속삭이던 그 말들이 떠올라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누나, 열나는 거 아니야? 귀가 엄청 빨개."
어느새 그걸 또 바로 발견한 서울이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아, 아니. 그냥 좀 덥네."
윤하정!
바보같이 이런 상념에서 빨리 나와.
태연하게 딤섬을 먹고 있는 저 태도를 봐.
너만 이렇게 혼자 멍청하게 그날을 떠올리고 있다고. 이 바보 같은 여자야.
하정은 제 뺨을 세차게 한대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 우리 이제 슬슬 가야겠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보러 가야지!"
정연이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이들을 재촉했다. 
이제 제법 어둑해진 밖에는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계산은 이미 저분이 하셨습니다.>
밥값을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먼저 다가갔던 이한이가 들은 건 벌써 식당을 빠져나가고 있는 기혁을 가리키며 유창한 영어로 답하는 종업원의 말이었다.
언제 또 계산까지...
아까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설 때 했나 보네. 
이한은 자기가 알던 권대표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란 걸 아는지라 공짜 밥을 얻어먹은 거에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이들은 곧장 밖으로 나와 여러 무리의 사람들과 어울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8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은 모두들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연이가 말한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빅토리아항에서 매일 밤 8시에 펼쳐지는 음악과 레이저 쇼다. ​이 쇼는 40개가 넘는 건물에서 13분간 펼쳐진다고 한다.
후덥지근했던 날씨는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많이 누그러들었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정연은 가이드라도 된 듯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곳은 '스타의 거리' 라고 했다. 유명한 홍콩 배우들과, 감독들의 손도장이 새겨져 있다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있었다.
"정연 씨 홍콩에 대해 잘 아네요?"
이한이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 말에는 분명 누구랑 왔었는지 빨리 불라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음~ 글쎄요~"
처음 제대로 하는 연애에 꽤 불여우 같은 답을 한 정연이가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 뒤로는 애가 타는 이한이가 따라붙었고 서울과 하정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는 기혁이가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곧 쇼가 시작되었다.
무수히 우뚝 솟아 있는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레이저 빛들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다. 그 오색영롱한  빛들이 수면에 그대로 반사되어 더 근사했고 더욱더 시야를 꽉 채워줬다.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춘 불빛은 시시각각 바뀌어 황홀함까지  선사했다.
"와아..."
쇼에 푹 빠진 하정의 입에서  어느새 옅은 감탄이 나오고 있었다. 
"서울아, 저것 봐."
응당 제 곁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하정이가 화려한 불빛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왼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고르고 하얀 이를 보이며 활짝 웃던 하정의 입꼬리가 차츰 흘러내려왔다. 

있어야 할 서울은 어디에 갔는지 없었고 언제부터 저를 보고 있었는지 모를 기혁의 검은 눈동자가 그녀에게 깊게 꽂혀있었으니. 

형형색색의 레이저 잔상이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도 담겨 있었다. 

하정은 바로 고개를 틀어 다시 쇼를 바라보는 척했다. 이대로 그를 더 쳐다보다간 짧게 마주한 그 깊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빠져 허덕일 거 같았다. 
​분명히 고개를 돌렸지만 왠지 계속 자신을 바라볼 거 같은 생각에 왼쪽 뺨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때,

익숙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하정의 코를 건드렸다. 

“예쁘네.“

없어졌던 서울이가 나타났다. 

쇼에 시선을 꽂은 채 옅은 감탄을 하며 정확히 기혁이와 하정이 중간에 뚝 멈춰 섰다. 

하정은 그런 서울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기혁이 못지않게 장신인 서울이가 우뚝 서있자 불편하다고 여겨졌던 기혁의 얼굴이 잘 안 보였다. 

불편했는데,

이리도 쉽게 시야에서 사라지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서울이가 저한테 시선을 고정한 하정에게 비스듬히 고개를 틀었다. 
​“누나가 더 예쁘긴 하지만.”

그의 입술에서 제법 뺨을 간지럽히는 말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서울은 저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쇼에 집중했다. 

13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났고 화려하던 쇼는 막을 내렸다. 

그 많던 인파가 홍해 가르 듯이 쭉 흩어졌다. 

“우리 이제 홍콩의 야경을 제대로 구경하러 가야지?”

정연이가 또 앞서갔다. 

빅코리아 피크라는 곳으로 올라간다고 피크트램을 타야 한다며 신나는 모습을 보였다. 엄청난 대기 줄을 보고 그냥 돌아가야 되지 않나 싶었지만 이한이가 미리 산 두 장의 티켓과 정연이가 본래 계획했던 티켓 네 장으로 다섯 명 모두가 너무 길게 기다릴 필요가 없이 탈 수가 있었다. 

하정은 한 번씩 이런 체험을 해볼 리가 없을 기혁을 힐끔힐끔 여겨보았다. 허나 걱정와는 달리 많은 인파 속에서 구김 하나 없었고, 인상이 변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많이 한가한 건가,

아님 이참에 체험이라도 하는 건가. 

우리가 있어서. 

여기저기 유심히 훑는 그의 모습은 꽤 찐한 호기심까지 곁들어 있는 듯했다. 

평지를 달리는 트램과 달리 피크트램은 꽤 가파른 경사 길을 천천히 오르면서 달렸다. 올라가면서 본 홍콩의 야경은 정말로 화려하고 멋졌다. 

“와아, 여기 예쁜 물건이 엄청 많아.”

트램에서 내리니 바로 여러 상품들을 빼곡히 진열을 해둔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전망대로 올라가 빨리 홍콩 야경을 봐야 한다던 정연과 하정은 자석에 이끌리듯 그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냉장고에나 현관에 붙일 다양하고 귀여운 마그넷을 한참이나 구경했다. 

그중 ‘I ???? HONGKONG’ 이란 문구가 적힌 홍콩 야경을 담은 마그넷을 잡은 하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별거 아닌 게가 그리 마음에 쏙 들었는지 만지작거리자 서울이가 그녀에게로 손을 뻗었다. 

“마음에 들면 사. 다른 것도 필요하면 더 보고.”

뻗은 손으로 그녀에게서 마그넷을 넘겨받은 서울은 하정이가 이것만 필요하다고 하자 미리 환전해온 홍콩 화폐를 지갑에서 꺼냈다. 물론 정연이가 이것저것 고른 물건도 계산을 해주고 나서야 가게 밖으로 나와 전망대로 향했다. 

“고마워.”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곁에 조용히 서있는 자신에게 활짝 웃으며 고마움을 표하는 하정이가 너무 예뻐 보이는 건 왜일까. 

얼마 안 하는 마그넷을 사주고도 이런 사랑스러운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누나가 예뻤다. 

누구한테도 보여주고 않고 꽁꽁 숨겨서 저만 보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정은 그저 헤벌쭉 웃기만 했다. 나만 보기 아까운 그 미소를 여기저기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예쁘게  접으며 웃던 그 모습은  저 딱딱해 보이는 얼굴과 마주치면 바로 입꼬리를 내렸다. 

권기혁 대표. 

홍콩에 출장이 잡힌 권기혁을 따라오려던 건 누나가 아닐 터였다. 어느 호텔에 묵는 건지도 몰라서 정연 누나에게서 링크를 받아서 저한테 알려주었으니. 

그렇다는 건 이 여행의 계획자는 정연 누나라는 건데. 

왜?

눈치를 보아하니 이한이라는 비서실장과 정연 누나는 사귀는 사이고. 

근데 왜 굳이 하정이 누나까지 데리고 왔을까. 

권기혁까지 넷이서 짧은 여행을 할 예산이었다는 건데. 

누나와 권기혁한테는 왠지 모르게 차가운 바람만 일고 있었다. 

연애하는 사이라면 오늘 보았던 그 모습들은 매칭이 안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누나한테 붙고 그하고 떨어지게 만들었다.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 왔을지 모르는 사람들과 옷깃을 스치며 우뚝 서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동안 찝찝했던 서울의 마음에 확신을 가했다.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크루즈선에서 그의 모습을 좇던 누나의 시선을 이제야 확실히 이해가 갔다. 

누나도 권기혁을 좋아한다. 

근데 둘은 좋아하는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서로의 마음을 피하고 있었다. 

왜?

그렇다면…

진짜 강은서라는 쌍둥이 언니 때문인 걸까. 

누나는 모르는 거 같은데. 

쌍둥이 언니의 존재 자체를. 

이번 주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던 서울은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발길을 갑자기 돌렸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K 룸살롱이 근처에 있다는 걸 깨닫고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였다. 들어갈 생각까지는 아니었고 그 앞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보통 술집과는 다르게 화려한 네온판이 아닌, 올블랙으로 도배된 간판에 K라는 영어 글 하나만 달랑 적혀있었다. 

한참을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다 돌아가려던 서울의 귓등에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오던 웨이터들의 대화가 흘러들어왔다. 

[권대표가 요즘 강 실장 보러 덜 오는 게 느껴지지?]

[그러게. 신문에 올라왔던 여자가 강 실장 아니란 말이 있더라고. 다른 여자가 생긴 건지. 뭐, 영진 그룹 오너가 우리 강 실장만 여태 보고 살았다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지.]

[강 실장이라 하는 분은 강은서를 말하는 건가요?]

누구도 없을 줄 알고 속닥이었는데 뒤에서 생각지 않은 음성이 들리자 와들짝 놀란 웨이터들이 고개를 돌렸다.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 생각이 맞았다. 

영진 그룹 오너, 권기혁 대표. 

바로 정리가 들어갔다. 

그는 오래전부터 누나의 쌍둥이 언니인 강은서와 아는 사이였다. 

어떻게 누나와 연이 닿았나 생각을 해보았다.  거래처 회사라 해도 누나가 권기혁을 직접 만날 이유까지는 원래 없었을 것이다. 

김포공장의 납품일 지연으로 계약 해지 사태까지 이르자 누나의 등을 떠민 건 리더스였을 거다. 

권기혁이나 누나의 의지로 만나게 된 건 아니란 거다. 

권기혁은  강은서와 똑닮은 누나를 보고 적잖이 놀랐을 거다. 

아닌가?

강은서한테서 이미 쌍둥이 동생에 대해 들었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동생이라…

그것도 똑같이 생긴 쌍둥이 동생. 

강은서를 두번만 보았음에도 그거 하나만은 알 수가 있었다. 

성격은 너무나도 다른 두 쌍둥이. 

충분히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는 있었다. 

누나는 또 톡톡 튀는 매력이 넘치는 성격을 가졌으니까. 

근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다는 여자의 동생을 좋아하는 건 도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지 않나.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정에게 관심을 두던 서울에게는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분명 누나에게 상처를 줄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권기혁을 저리 의식하고 있는 누나를 보며 서울의 짙어진 눈동자는 결의에 찼다. 

권기혁은 절대 안 된다.
추천 (1) 선물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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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비 (♡.252.♡.103) - 2024/03/19 08:41:36

짝사랑은 힘드네요.

죽으나사나 (♡.101.♡.179) - 2024/03/19 09:08:11

맞습니다. 불쌍한 사람이죠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8:26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8:39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8:48

잘 보고 가요 ㅎㅎㅎ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9:02

잘 보고 가요 ㅋㅋㅋ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9:07

ㅎㅎㅎ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9:12

ㅋㅋㅋ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9:16

ㅎㅎ

힘나요 (♡.208.♡.50) - 2024/03/27 06:59:21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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