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7회)

죽으나사나 | 2024.02.16 16:44:43 댓글: 2 조회: 348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7642
너를 탐내도 될까? (7회) 새로운 만남의 시작.

기혁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빚 때문에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니었나. 이 음침한 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왔으면 해서 원치 않은 결혼과 아버지 회사를 택했다.

근데 이런 반응이라면… 대체 자신은 무얼 한 걸까.

“미안해. 화를 내려던 게 아닌데…”

은서의 그 여린 눈에 두려움이 차올라 있었다. 기혁은 은서가 자신을 그 미친놈들이랑 똑같이 보는 거 같아 바로 고개를 누그러뜨렸다.

은서는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한곳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다시 기혁이한테 무감한 시선을 두었다.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꺼내야 하는 말들.

그러면 자신한테 그 쓸데없는 연민을 보이겠지.

“나한테 빚이 있다는 건 쉽게 알아냈을 텐데 어쩌죠?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무슨…”

은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궁금해진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다시 물을게요. 아저씨 저를 좋아하세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좋든 말든 자신은 이미 결혼까지 한 몸인지라, 입을 함부로 굴릴 수가 없다는 걸 알기에.

”만일 저를 좋아하는 거라면 욕심을 부려도 되나요?“

”무슨 욕심?“

”저랑 결혼할 수 있나요?“

은서가 묻는 그 질문은 이미 기혁에 대해 모든 걸 다 꿰뚫었으면서 굳이 하는 조롱 같은 거였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은서가 왜 거기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지.

벌써 물들었나. 사람은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라 하지만 벌써 그런 곳이 좋아지기라도 했나 걱정이 앞섰었는데 어느 날, 우희라는 여자와 마주치고는 알게 되었다.

[은서한테서 들었어요. 그 많은 빚을 갚아주셨다고요. 그 자들은 미쳤어요. 은서 아빠가 남긴 신체포기각서를 거들먹거리면서 이자를 터무니없이 올리고 진짜 악질 중에 악질이에요.]

그 어린애가 부모님 없이 어떻게 그리 밝을 수 있었는지는 그 여자를 보고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몸은 비록 약해빠져도 은서를 사랑하는 마음은 엄청 컸겠구나.

그녀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은서를 그리 쉽게 보낼 수는 없었겠지. 참담한 현실에 좌절을 하면서.

[그자들이 은지로 협박을 했어요. 은서가 안 하면 은지를 데려오겠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모를 은지한테까지 손을 뻗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은서가 선택한 길이에요. 거기서 다시 만나자는 은지와의 약속이 있어서 못 나가는 걸 거예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그자들이 알고 있어야 은지한테 안 찾아갈 거 같은 생각도 있고요. 미련한 생각이란 걸 은서도 알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은 가봐요. 거기를 무작정 떠나기에는.]

기혁이가 빚을 다 갚았는데도 은서는 그 자들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꽤 큰 규모의 사채업을 하고 있는 그 자들을 해체시키기에는 기혁이한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자들을 망가뜨릴 증거를 많이 모아야 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는 은서네 가족 같은 비극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얼마 안 가 아버지인 승호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돌아가셨다. 회장 자리는 내어놨을지 언정 기혁이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승호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버거워서 더 회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거쳐 회사가 완전히 기혁이 스타일로 안정화되면서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집에 들르거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도연이와 함께 홀로 계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연이는 빼고 홀로 본가에 오라고 하시는 어머니.

[너희들 부부 문제없는 거지?]

기혁이가 본가에 들어서자마자 꽤 많이 기다린 어머니가 급하게 물어온다.

[네.]

담담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지만.

[너희 결혼한 지 5년이 되어가.]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연이가 점점 생기를 잃는 거 같더라. 원래도 마른 애가 요즘 살도 부쩍 빠진 거 같고. 바깥으로만 돌지 말고 네가 좀 더 잘해줘.]

[ 네.]

도연이….

기혁이가 집에서나 밖에서나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려는 사람이 도연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묻길래 바로 있다고 했던 건 내심 그녀 입에서 파혼 얘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도 끝까지 결혼을 선택한 건… 도연의 이유가 뭘지 한 번쯤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어찌 보면 그 상대가 누구던 상관없는 정략결혼이라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더 깊게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은서가 차지한 것도 있고, 가끔 분명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도 미소를 잃지 않는 도연이 그 모습도 사실 질려가고 있었다.


“웬일로 아침을 드세요?”

생각은 그리했다만 어머니의 말씀도 있으시니 오랜만에 도연이와 아침을 먹으려고 마주 앉았다.

도연은 최근 들어 더욱 보기 힘들었던 기혁이를 이 이른 아침에 마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좋은 듯 얼굴이 많이 상기되었다.

“요즘 어디 아파요?“

냅킨으로 입을 슥 닦으며 기혁이가 물어왔다.

”아니요. 괜찮아요.“

어머니 말을 듣고 이 며칠 가만 보니 확실히 전보다 많이 야윈 거 같은 도연이를 발견했다.

”아니면 다행이고. 혹시나 어디 아프면 진 박사님 불러요.”

“…”

“왜요?”

단둘이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으니 상대방이 잘 보인다. 할 말은 있어 보이는데 입만 달싹이는 도연이를 보고 기혁이가 입을 열었다.

“기혁 씨가 절 챙기는 게 기분이 이상해져서요.”

숟가락을 들고 있던 기혁이 잠깐 멈칫했다.

“아, 기분 나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에요.”

도연이가 급히 두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어댄다.
그런 도연이를 바라보는 기혁이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도연으로 하여금 들고 있던 손이 무안해져서 바로 내리게 하게끔.
"식사 다 했어요? 난 이제 가봐야 해서."
수저를 가지런히 내려놓고 냅킨을 집어 든 기혁이가 하는 말이었다.
"아, 네. 다 먹었어요."
도연이는 당황하며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분명 도연이 앞에 밥과 국이 남아있는 걸 보았지만 아침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여긴 기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자신을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줄로 모르고 기혁은 그렇게 현관을 나섰다.
...
그때부터 아팠을까...
도연이는...
아무리 원하는 결혼이 아니었어도 옆에 있는 여자가 언제부터 아팠는지도 몰랐다는 게 무감하던 기혁이 가슴속을 너무나도 후벼파는 일이었다.
오늘 낮에 도연이 남동생인 도하와 식사를 했다. 회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긴 하지만 도연이 가족이라 괜히 미안한 마음에 만나기 꺼려지는 상대였다.
도하는 영진 그룹 본부장이다. 도연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경영 체계가 흔들리던 기혁이에게 나이는 기혁이보다 어려도 경영에 더 빨리 뛰어든 자기 동생을 불러들였다. 기혁이를 잘 보필하라고. 잠깐만 도우려고 했는데 장인어른의 회사보다 여기가 더 자신 스타일과 맞다면서 눌러 앉았다.
[대표님. 27 일 크루즈 여행 시범 운항 때 행사를 더 끼워 넣는 게 어떻습니까?]
요즘 도하는 회사에서 추진 중인 크루즈 여행 사업에 매진 중이었다. 도연이가 죽고 나서 도하는 회사에는 그냥 남아있었지만 기혁이한테 더이상 매형이란 호칭을 입에 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기혁이가 입을 열었다.
[패션쇼가 따로 9월에 있긴 한데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크루즈 시범 운항 때 행사로 넣으면 어떨까 합니다.]
말이 없는 기혁이 눈치를 보며 도하는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께서 이번 중소기업 콜라보 사업에 크게 관심이 없는 건 압니다. 다만 이번에 컬렉션이 성공을 한다면 이사회에서 결정 난 그 계획을 더 빨리 진행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루즈 여행은 ‘로망의 여행’이라고 불렸지만 코로나 이후 그렇게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이슈에 이슈를 더 하자고요.]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짧지 않나?]
[2주 정도 남았는데 대표님께서 사인만 해주신다면 운항 전까지 완벽하게 맞춰보겠습니다.]
기혁은 응할지 말지를 생각하는지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르리고 있었다.
[여기 기획 제안서입니다.]
기혁이 입에서 안된다는 말이 새어 나오기 전에 도하는 서류 가방에서 제안서를 꺼내 기혁이 앞으로 내밀었다.
제안서를 받아들면서 기혁은 픽 하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요즘 뭐 하느라 바쁘나 했더니 이걸 생각하고 있었어?]
[그게... 아시잖습니까. 크루즈 사업은 저 김도하한테도 꼭 성공하고픈 사업이었다는걸. 어떻게든 그 시작을 멋지게 오픈하고 싶습니다.]
[하, 이럴 때는 본부장이 꼭 대표 같네.]
[무슨 소리입니까. 전 지금 자리에서 엄청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도하가 끔찍하다는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부장이 있어서 다행이란 뜻이야.]
기혁은 당황해하는 도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눈이 둥그레져 있던 도하도 어느새 따라서 빙글 웃었다.
기혁은 낮에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다가 서랍 속에 넣었던 도하가 준 제안서를 다시 꺼내들었다.
[근데 이거 직접 짠 거야?]
제안서에는 꽤 거부할 수 없는 글들로 도배를 했더랬다. 영진 그룹은 크루즈 여행 사업을 홍보하며 중소기업 콜라보 컬렉션을 미리 공개함으로써 선한 영향력을 시행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도 상승할 거고 그와 함께 쇼 장소인 크루즈선에서의 여행도 극대화될 수 있다고 한다.
[저는 아니고... 제 사무실 비서가...]
[누구?]
[그게...]
도하가 쭈볏거리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비서 중 한 명이 리더스 직원이랑 친구더군요. 얼마 전에 대표님한테 쫓겼다고 그러던데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길래 들여보냈거든요.]
도하는 그날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린 기혁이한테 술술 불었다.
[누구시라고요?]
[리더스 마케팅 팀장 윤하정이라고 합니다.]
[리더스? 이번에 의류 사업 콜라보 한 회사요?]
[네. 맞습니다.]
오 비서의 부탁으로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사정을 해서 응했지만 어찌나 당돌한 모습의 여자였던지.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거죠?]
[일단 이거 먼저 보시죠.]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꼭 감싸고 있던 서류 봉투에서 제안서를 꺼내서 도하 앞에 내미는 하정이.
[2주 후면 크루즈 시범 운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거 VIP 회원분들과 인플루언서, 유명 인사들이 초청을 받았다고 들었고요. 3박 4일이라고 하시던데 시험 운항이라 그냥 남해 바다에 머물다 온다는데 4일은 사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아니거든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첫 이틀은 어떨지 몰라도 그 뒤로는 신선감이 뚝 떨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요?]
흥미가 생겼다. 생각지 않은 발언을, 그것도 다른 회사 직원이 꺼내는 제안은 처음이었으니.
[패션 컬렉션을 그 예쁜 남해 바다 위에서 하는 게 어떤가 싶습니다. 다들 무료해질 한 3일 차에?]
[흠... 우리한테 그리 나쁜 제안이 아니긴 한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번을 계기로 리더스를 더 큰 시장으로 이끌려고요?]
[사실은 저희 회사는 어제 권기혁 대표님한테 까였습니다.]
[네?]
[공장 사고로 납품 일을 못 지켰거든요.]
[아.]
보고를 받긴 했었다. 권 대표는 시간 약속을 우선으로 보는지라 당연히 계약서 대로 처리했겠지.
[그래서 말인데... 저희 회사 도와주세요. 본부장 님.]
돌고 돌아서 결국 그 윤하정이 김도하를 구워 삶았다는 소리였다.
기혁은 손에 든 제안서를 내려놓으면서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
강은서.
윤하정은 네 동생이 맞긴 하나보다. 당돌하고 고집이 센 너의 쌍둥이 동생.

추천 (1) 선물 (0명)
IP: ♡.214.♡.18
나단비 (♡.252.♡.103) - 2024/02/16 17:11:16

남자주인공이 결혼을 했네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요.

죽으나사나 (♡.214.♡.18) - 2024/02/16 18: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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