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9회)

죽으나사나 | 2024.02.18 07:29:10 댓글: 4 조회: 647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7888
너를 탐내도 될까? (9회) 너한테 관심이 있는 거 아냐?

“정 과장. 부장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셔? 나 오늘 좀 늦게 출근하면 안 되냐고 여쭤보려고 했는데.”

지하 주차장에서 스피커 폰으로 회사 부하직원이랑 통화 중인 하정이다. 

“부장님 오늘 아침 일찍부터 회의 중이세요. 대표님이랑 같이요.“

”응? 출근 시간 전인데 벌써?“

”네에~. 저희도 깜짝 놀랐다니깐요.“

휴대폰 너머 들려오는 정 과장의 목소리가 꽤 업 되어있었다. 

“근데 아까 부장님 지시가 있긴 했었어요. 팀장님한테서 연락 오시면 전달해 주래요.”

“뭐라고 전달을 하라는데?”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쉬던 하정이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었다. 

“영진 그룹에서 연락 왔었나봐요. 납품일을 늘려 줄테니 팀장님이 필요하시다 해서 마음대로 갖다 쓰라고 하셨다고…”

“뭐?? 갖다 쓰라고 했다고??”

하, 내가 물건인가? 

“네에~ 그래서 팀장님 보고 외근, 아니, 출장으로까지 잡아줄 수 있으니  영진 그룹에 매진하라는데요?”

정 과장의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대충 알았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아니. 내가 다른 회사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알기나 알고 막 갖다 쓰라는 거야? 와아… 웃기는 양반이네. 내가 퇴사한다고 하니까 벌써부터 갖다 버리는 거야. 뭐야.“

혼자 궁시렁 대던 하정이 휴대폰 화면에 뜬 시간을 보더니 급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어젯 밤, 오늘 9시 30까지 영진 그룹 8층 회의실로 오라는 비서실의 문자를 받았으니. 서둘러야 했다. 

영진 그룹에 도착하니 저번엔 그렇게 매몰차게 밖으로 쫓던 보안 직원이 윗선 지시를 제대로 받은 건지 친절하게 보안 게이트에 카드까지 찍어주며 직접 열어준다. 그날은 미안했다며.

그래. 당신들이야 뭐 지시대로 움직였을 테니 별 수 있겠어. 
꽤 쿨한 척 괜찮다며 웃어 넘겼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8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반쯤 닫히려는데 다시 열린다. 

어?

진청색 슈트를 근사하게 차려입은 하정이 시야에 확 들어오는 저 사람은,

권기혁이다. 

하정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성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뒤로 저번에도 같이 다니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도 같이 들어왔다. 

남자는 하정을 보더니 목례를 간단히 하고 살짝 한 발 뒤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뒤쪽으로 빠졌다. 

몇층으로 가는지 누르지 않는다. 8층으로 바로 가나보다. 

하, 또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하는  하정이. 

삐걱 거리는 머리는 차마 못 돌리겠으니 허공에 대고 머리를 푹 숙여 인사를 먼저 건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안녕하세요.”

왠지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하정이 인사를 무시할 거 같았던 기혁이 바로 응답을 한다. 

머리를 살짝 돌려 앞만 주시하고 있는 기혁을 힐끔 훔쳐 보았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저 기럭지는…키가 몇인 거지?

대표란 사람이 쓸데없이 잘 생겼다. 베테랑 신이 온갖 정성을 들여 몇날 몇일을 고민하며 곱게 빚어낸 조각 같은? 
차가운 눈매는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 같지만 어제 살짝 웃을 때 보아서 알지. 완전 다른 인상이던데?
지금은 얼음이지만 그 순간만은 촉 처진 눈매가 어찌나 귀엽…

뭐래니. 윤하정. 저 차가운 얼굴이 어딜 봐서 귀여운 상이니.

그리고… 요즘 대세는 남자던 여자던 날렵한 턱선이 유행이라 하지만 그러면 상남자의 매력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권대표는 왜 저리 서글서글하고 훈훈해? 찐하고 두꺼운 눈썹까지… 페이스 밸런스가 너무 맞아! 무표정인 지금은 아이스 왕자, 아니. 아이스 King 같아! 
어? 그게 뭔데? 아. 몰라 몰라. 

 그리고 그 턱선 끝으로는 남자의 상징인 뾰족한 목울대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목울대가 저렇게도 움직일 수가 있구나. 

뭔가 처음으로 신기한 걸 발견한 아이처럼 하정이 시선은 저도 모르게 노골적이었다. 

“윤 팀장님. 여긴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아닙니다.”

뒤에 가만히 서있던 남자의 한마디에 하정은 기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잠겼던 사색에서 깨어났다. 

“아, 네?”

남자를 뒤돌아보았다. 

“이 엘리베이터는 대표님 전용입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아까 그래서 보안직원이 엘리베이터 어쩌고 하는 거 같더라니…. 난 또 엘리베이터 문까지 열어주겠다는 줄로 알고 황급히 자리를 떴지. 뒷 얘기가 안 쪽 엘리베이터를 타라는 얘기였구나. 이거 말고. 

띵- 하는 소리와 함께 8층으로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얼굴이 발개진 하정이가 먼저 급히 내렸고 그 뒤로 기혁이와 남자가 내렸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기혁은 성큼 앞으로 걸어갔고 멀뚱히 서있는 하정이한테 남자가 입을 떼었다. 

”저는 대표님 비서실장 이한이라고 합니다.“

”아, 네.”

이한은 아까와는 달리 부드러운 말투와 함께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근데 제가 꼭 브리핑까지 해야 하나요? 저는 그냥 제안만 했을 뿐이지 여기 직원도 아닌데 제가 꼭 회의까지 참석 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이한이 뒤를 바짝 붙으며 하정이가 속닥거렸다. 

”네. 대표님이 하시랍니다.“

잠깐 멈추는 듯 하던 이한이가 매정한 한마디를 뱉고 기다란 보폭으로 벌써 저 앞으로 간 기혁이 뒤를 쫓아갔다. 

자기 편이 하나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어깨가 축 처진 하정이가 무거운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겼다. 

회의실에는 다행히 기혁이와 이한. 그리고 김도하 본부장이랑 그 옆에는 두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하정까지 총 6명. 인원이 적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졌다. 

”윤하정 팀장님. 이분은 저희 패션 디자이너 이정희 팀장님이시고요. 그리고 이분은 크루즈팀 마케팅 장연호 실장입니다.“

그렇게 서로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모두의 시선이 하정이한테로 쏠렸다. 

“이번 크루즈 패션쇼 기획 제안서는 영진 그룹과 저희 리더스가 신사업에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장점을 기대하고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하정이가 서두를 떼었다. 걱정과는 달리 평소 하던 그대로 자신의 역량을 표출했다. 

20분 안 되는 브리핑이 끝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꽤 괜찮은 제안이라는 건 틀림없는 거 같았다. 

“사실 시범 운항이라  국경까지 드나들진 않아서 3박 4일이란 시간은 너무 길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들이 있긴 했어요. 불꽃쇼나 각종 퍼포먼스를 준비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한계는 있었어요. 주로 크루즈에 포커스를 맞췄지 다른 사업을 끼워 넣을 생각은 안 했던 거죠. 패션쇼 제안은 생각밖이긴 했어요.“

김도하 본부장이 하정의 노력에 칭찬을 했다. 

하정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하는 짓이었으니 당연한 거였다. 

“그럼 운항 3일차 늦은 오후에 쇼를 진행하는 거로 하고요. 
장소는 세군데가 가능하긴 한데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첫번째 장소는 12층 선상 위에 있는 수영장 쪽인데요. 근처에 산책로가 있어서 런웨이 하기엔 좋은데 화려한 도시가 아닌 남해 바다 중간에서 해가 떨어져도 쇼를 진행하려면 무대를 장식 할 장비들이 대거 투입돼야 한다는 거예요. 예산도 예산이지만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크루즈팀 장 실장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번째 장소는 농구장인데 3일 째 낮에 VIP분들 간단한 농구 시합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장소는 넓어서 통로를 내기도 편하긴 한데 그날 밤에 바로 쇼를 진행하기엔 준비시간이 너무 짧고요. 세번째로는 8층에 있는 대극장인데 워낙 설치된 조명도 많고 여러 환경을 보면 여기가 제일 합당하긴 합니다. 스크린 무대 쪽으로만 런웨이를 하기엔 관객과의 거리가 좀 있으니 좌석 간 통로를 무대로 이용하는 것도 좋을 거 같고요.“

”극장에서 쇼를 진행하는 걸로 하고 자세한 건 보고서를 갖고 오도록 하세요.“

기혁이가 내리는 결정은 빨랐다. 한치의 고민도 없이. 

앗싸! 이제 나랑은 끝이겠지!

하정이가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걱정되었던 계약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내 할일은 끝이야!’ 라고 생각되었던 것과는 달리 하정은 ’크루즈 패션쇼 프로젝트‘ 팀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들 틈에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크루즈 여행이 주제인지라 패션쇼 자체를 너무 화려하게 진행하면 안된다 하여 콜라보 사업에 관한 건 쏙 빼고 현수막에 간단히 ‘24년 S/S 패션쇼’ 라고만 씌여져 있을 거고 모델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을 찾았다. 승객들이 가볍게 즐길 수가 있게끔 말이다. 

그냥 패션쇼 예산을 적게 잡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영진 그룹 그 분들이 거의 주도를 하시고 하정은 심부름꾼이었지만 그거에 만족했다. 더 깊게 빠져서 뭔가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빨리 이 일이 끝났으면 했다. 

“하정아. 여기야~!“

영진 그룹 본부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전화로  사정사정을 해서 도움을 받은 뒤로 얼굴은 진짜 오랜만에 보는 정연이가 가게에 들어서는 하정을 보고 밝게 두 팔을 흔들었다. 

“기지배. 얼굴 보는 게 얼마 만이야. 그날 이후로 그렇게 소식이 뚝 끊기다니. 난 네가 무슨 큰 사고라도 친 줄 알았어!”

투덜투덜 한 소리를 하면서 어느새 메뉴판을 하정이 앞에 무심하게 툭 던지는 정연이다. 
정연은 하정이랑 같은 동네에서 쭉 같이 자라 초중고 다 같은 학교를 나온 오래된 절친이다. 

영진 그룹 비서로 취직 되었다고 했을 때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축하주도 마시고 그랬는데 그게 이젠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나 똥집 먹을래.“

”으으~ 그놈의 똥집.“

혀를 끌끌 차며 정연은 알바생을 불러 똥집구이와 호프 한잔을 추가로 주문한다. 

“맞다. 너 저번에 두통 때문에 검사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 병원에서 뭐래?”

“아, 별 거 아니래.”

사실대로 말하기 싫었다. 단지 별 거 아닌 자신의 삶을 주위 사람한테까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무심하게 뱉는 하정이 대답에 정연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만 끄덕이었다. 

”본부장님한테서 들어보니까 납품일 연장 되고 너네 회사 디자인으로 크루즈 패션쇼를 한다며?”

“응.”

하정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 알바생이 갖고 온 호프잔을 번쩍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카아~ 좋네.”

“한번 마음을 먹으면 절대 했던 말을 뒤집는 분이 아니신데…. 아직도 안 믿겨져.”

“모가?”

서비스로 나온 뻥튀기를 한 웅큼 잡아 마구마구 쑤셔넣던 하정이가 볼을 우물거리며 묻는다. 

“우리 대표님 말이야! 권. 기. 혁 대표님!”

워낙에도 큰 눈을 거의 튀어나올 듯이 번쩍 뜨고는 정연은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 주위에서 시선이 집중 되자 바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뭐… 나도 그렇게 듣긴 했는데.”

“그랬는데?”

이번엔 호기심이 가득찬 똘망한 눈빛을 사정없이 보내는 정연이. 

“아, 몰라. 내 제안서가 그리 좋았나보지.”

배가 고파서 뻥튀기라도 빨리 씹고 있는데 자꾸 말을 시키는 정연한테 팔을 휙휙 저으며 입안에 남은 뻥튀기를 마저 삼켰다. 

“요즘 바빠 죽겠어. ‘크루즈 패션쇼 프로젝트’ 팀이라 지 멋대로 만들어놓고 나까지 껴서 죽겠어. 하루종일 그 사람들 따라 다녀야 돼.”

하정이 뻥튀기를 또 한 웅큼 잡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 하정이 참 열심히 사는 구나. 이번 일 해결 되면 너네 회사에서 너한테 큰 상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를테면 승진이라던가.”

정연이는 월급쟁이뿐인 하정이가 회사를 위해 너무 열심히 달리는 거 같아서 걱정된 시선을 보냈다. 

“그러게. 내 짧은 인생 지금 회사에 너무 목을 매었어.”

하정이는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곧 끝나갈 자기 인생을 되짚어보니 참 재미도 없었고 한심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얼마 전에 우리 회사 로비에서  대표님을 목청이 터져라 불렀던 게 하정이 너지?“

”어, 관심을 받아야 했으니까. 그래도 씹혔지만.“

”저번 한동안 난리였어. 과연 어떤 여자가 얼음 왕같은 권대표를 겁도 없이 그리 불러댔을까 하고 말이야. 근데 얼마 안 지나 네가 연락 오고나서 설마 너인가 생각을 하긴 했거든.”

하, 너도 얼음 왕이라 부르는구나. ㅋ

“아, 그랬어? 꽤 큰 소리로 부르긴 했지만 쳐다도 안 보던데 뭐.”

무참히 쫓겼던 그날이 떠올라 기분이 잡치는 하정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대표님이 너를 달리 보는 게 틀림없어.“

”어?“

정연이가 갑자기 이상한 발언을 한다.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자기 신념을 번복할 사람이 절대 아니거든!“

정연이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멀뚱히 앉아있는 하정이한테 시선을 고정했다.

추천 (2) 선물 (0명)
IP: ♡.101.♡.169
나단비 (♡.252.♡.103) - 2024/02/18 18:03:29

여주시점으로 보니 재밌어요 ㅋㅋ

죽으나사나 (♡.101.♡.169) - 2024/02/18 21:06:45

>.<

Figaro (♡.162.♡.127) - 2024/02/18 21:41:38

작가님 화이팅 ~!

죽으나사나 (♡.101.♡.169) - 2024/02/18 22:52:44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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