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14회)

죽으나사나 | 2024.02.23 06:50:19 댓글: 0 조회: 245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9057
너를 탐내도 될까? (14회) 그를 찾아 삼만리.

그런 질문을 하면서도 도연은 같은 여자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그것도 처음 보는 여자 앞에서 대놓고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은서는 생각지 않은 도연의 질문에 눈빛이 매서워졌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사모님. 진짜 멍청한 사모님이시네.

내가 처녀든 아니든 이런 곳에 오는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요. 이런 곳에 다니는 남편은 꼭 여기서 나만 불렀을까요? 그게 아니라고요.

[또 저를 멍청하다고 생각했죠?]

뜨끔했다. 이 여자는... 적어도 바보는 아니었다.

[제가 처녀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한 거 같지는 않은 거 같아서요.]

부정을 안 했다.

[미안하지만 저한테는 중요한 일이에요.]

꼭 대답을 듣겠다는 도연의 의지가 비쳤다.

[네. 룸살롱 아가씨한테서 이런 말을 듣는 게 우습게 들리겠지만 경험 없는 건 맞습니다.]

도연이 눈이 놀란 사슴처럼 확 커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서서히 돌아갔다. 안도의 한숨인지 모를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본 표정 중 가장 편안해 보였다.

[순정파신 저의 남편이 누군지 궁금하죠?]

순정파?

은서는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순정파 남편이라…

[영진 그룹 권기혁 대표예요.]

옅은 미소를 띠며 또박또박 뱉는 도연의 말에 은서는 놀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은서 씨가 오빠를 밀어내는 거겠지만 저한테만 그리 선을 그은 게 아니란 걸 알았으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네요.]

많이 가벼워진 그녀의 표정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건…]

뭔가 해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 입을 떼었던 은서가 정작  뒷말을 잇지 못했다. 차분해진 표정의 도연이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아까 얘기 다시 할게요. 제 남편을 부탁해요. 저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남편은 당연히 모르고 있고요. 죽는 그날에나 알았으면 해요. 저한테 정을 안 준 남편한테 남기는 마지막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지켜주실 수 있죠? 강은서 씨.]

뭘 어떻게 부탁한다는 말은 없었다.

도연이가 다녀간 후 몇 개월이 안 지나 뉴스로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기혁은 당연히 한동안 룸살롱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은서도 어설픈 위로를 하느니 차라리 조용히 있는 게 나은 거 같아서 굳이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다.

남편을 부탁한다는 게 무슨 뜻이었을까. 그때처럼 그 정도의 관계까지만 유지해달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대신에 옆에 있어다라는 뜻이었을까.

그녀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지만 적어도 2번이 아닌 1번이라고 생각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을 바꿔서 그런 상황이라면 저도 그걸 바랬을 거 같았으니.

“… 은서야?”

지나간 일에 생각이 잠겨 자신이 부르는 소리를 거의 못 듣자 우희가 은서의 팔을 흔들었다.

“아, 이모. 왜요?”

“넋이 나간 얼굴로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별거 아니에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요.”

은서가 어색하게 웃었다.

“좀 있다가 너 이모부랑 퇴원 수속을 밟을 거니까 넌 이제 그만 들어가.”

“왜 벌써요?”

“어제오늘 검사할 건 다 해봤잖니. 근육만 놀랐지 뼈는 안 다쳤대요. 나 병원이 싫단 말이야.”

우희가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다.

“정훈아. 우리 제발 집에 좀 가자. 응?”

은서는 정훈의 가슴을 투닥투닥 두드리며 소녀 같은 우희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너 집에서 폰도 못 챙기고 나왔다며. 이깟 다친 걸 갖고 뭘 그리 정신없이 뛰어온 건지. 암튼 너나 정훈이나.”

핀잔을 주는 말 치고는 표정은 꽤 좋았다.

“권 대표한테 연락을 해. 얼마나 걱정을 하실까. 온다던 사람이 안 오고 지금까지 연락도 없으니.”

우희의 꾸중에 은서는 그제야 기혁이한테 여태 연락을 안 했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너도 까먹었지? 나라도 생각을 하고 있어야 했는데. 내 폰으로 일단 연락할래?”

벙해 서있는 은서를 보더니 우희가 혀를 끌어 찼다.

“아니요. 저 지금 들어가 볼게요. 이모부 그럼 이모 잘 부탁드려요.“

”어, 그래. 은서야. 고생했어.“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은서는 병실에서 나왔다.

걱정 많이 하고 있겠지?

우희 이모가 크게 다친 줄 알고 정신없이 뛰어오느라 폰을 두고 나왔다는 것조차 어제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 가게 직원한테  전화를 하려고 보니까 폰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그 순간에도 기혁이한테 연락을 안 했단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빨리 가야겠다.

은서는 조바심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누군가 갑자기 그녀의 팔을 덜컥 잡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본의 아니게 더 지체되었다.

”저… 죄송한데 강은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은서의 팔을 꽉 잡은 상대방이 은서의 얼굴을 빤히 훑더니 활짝 웃어 보였다.

”강은서 맞네!! 진짜 오랜만이다!”

꽤 크고 들뜬 목소리에 자신을 잡은 팔에 시선을 두었던 은서의 고개가 그 남자한테로 틀어졌다.

“잘 지냈어? 강은서!”

아직도 어릴 때랑 똑같이 너무나도 밝게 웃어서 은서는 상대방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주인을 이제야 찾은 것처럼 얼떨떨한 은서한테 열렬한 눈빛을 쏘고 있는 이 남자,

은서가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 - 신준우였다.

“아, 안녕?”

은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한편,

긴 회의는 드디어 끝났고 다들 해산하였다. 내일 오전에 다시 만나기로 했고 그전에 별문제가 없다면 개인 시간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하정이 짐은 그들이 말하던 3층으로 옮겼다. 9층 룸 카드는 돌려주지 못했다. 기혁이가 줬으니 그한테 직접 줘야 할 거 같았다.

근데 사람이 안 보인다. 아무리 큰 크루즈라지만 하루 종일 눈에 안 보이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만큼 여기저기 많이 쑤시고 돌아다녔다.

“… 겨우 찾았네.”

혼자 중얼거리며 누군가 여기저기 훑느라 바쁜 하정이 앞에 떡하니 멈춰 섰다.

힐끔 쳐다보니 모르는 사람이었고 하정은 앞에 선 남자를 피해 오른쪽으로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남자는 같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하정이 왼쪽으로 가니 또 같이 왼쪽.

참다못한 하정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뭐하시…”

“강은서 팀장님.“

남자의 입에서 제 이름이 불리자 그 남자를 다시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누구…“

”아, 인사를 안 드렸군요. 저는 팀장님이랑 같은 회사 다니고 있는 박서울이라고 합니다.“

”에? 리더스요?“

”네.“

“리더스 직원이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하정이 심드렁해서 묻는다.

“팀장님이랑 같은 이유로?”

남자는 답하면서 싱긋 웃었다.

하, 미소가 싱그럽다.

우리 회사에 이렇게 꽃같이 예쁘고 훈훈한 남자 직원이 있었다고?

있었다는 거에 먼저 놀랐고 또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더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단톡방 대화창에 박서울이라는 이름도 본 거 같았다.

”근데 팀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아, 그게…. 그냥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어요.“

하정이가 시선을 딴 데로 돌리며 대충 둘러댔다.

”남은 시간은 자유 시간이라는데 팀장님, 우리 라이브 공연 보러 갈래요? 한 30분 정도 기다리면 시작하는데.“

마치 원래부터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오늘 처음 본 게 아닌 것처럼 박서울이라는 남자는 자연스레 하정이 팔을 끌어당겼다.

기혁을 찾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긴 했었던 하정은 어느새 서울이가 얘기하던 극장에 그와 같이 앉아있었다.

서울의 말에 의하면 극장 관람은 누구나 가능한데 복장 제재가 있다고 해서 둘 다 객실로 돌아가 반듯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크지 않은 캐리어에 화장품과 옷만 넣기 잘했다. 출발 전날 급하게 폰으로 검색해서 미리 정보를 얻은 결과물이었다.

“너무 예쁘신데요?”

갈아입고 나오니 벌써 객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울이가 단정한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하정을 지그시 바라보며 감탄을 했다.

그 역시 캐주얼한 옷을 입었던 아까와는 다르게 그의 몸에 각을 잰 듯한 딱 떨어지는 검은색 수트를 착용했다.

“자, 같이 가실 가요?”

서울은 뭐나 자연스러웠다. 길을 안내한답시고 어느새 그녀의 허리에 살짝 손을 올리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큰 거부감이 안 들었다.

극장이 들어서니 이미 많은 관객들이 앉아있었다. 오늘의 무대는 하정이는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유명하다는  '오페라의 유령' 이라는 뮤지컬이었다.

“어? 진짜 그분들이 오셨네?”

옆에 앉은 서울이가 하정이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누군데요?”

“모르세요? 저분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 유명한 분들이세요.”

공연은 곧 시작되었고 무대 위에 배우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서울이 표정이 한껏 신나 보였다.

황홀해하는 서울을 쳐다보다 하정은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뮤지컬을 라이브로 본 적이 없었던 하정한테는 꽤 놀라운 공연이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가창력을 뽑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흐트러져 있던 하정의 모든 멘탈을 꽉 사로잡았다. 특히나 여자 배우의 그 가녀린 몸에서 어쩜 저리도 쩌렁쩌렁 울리는 전율을 전달할 수가 있는지 진심으로 놀라웠다.

두 시간 조금 넘게 진행된 공연은 지루할 틈을 안 주고 관객들의 혼을 쏙 빼며 심금을 울렸고 큰 여운을 남기며 무대는 그렇게 마감했다.

“와아! 역시 명작은 명작이에요. 그쵸?”

극장에서 나오며 서울이가 감탄을 발사했다.

“그렇네요. 뮤지컬은 극장에서 처음 보는데 너무 대단한 거 같아요.”

하정은 그 굉장했던 무대의 잔상이 아직도 안 가셨는지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배고프다.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서울은 어느새 발걸음을 못 떼고 정신이 멀리 육지로 가출을 한 하정의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그러다 누군가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 하정이가 급하게 서울의 손에서 빼버렸다.

권기혁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혁은 아마 하정이네랑 같은 공간에서 뮤지컬 공연을 보고 나온 듯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서있기에 다가오는 하정과 서울을 볼 리는 없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우뚝 솟은 그의 뒷모습을 알아본 건 하정뿐이었다.

어젯밤 이후로 처음 보네.

만약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얼굴이 안 보이니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네.

“어? 윤하정 팀장님!”

기혁이한테만 시선을 뺏겨서 미처 몰랐다. 처음부터 그의 옆에 서있던 이한이가 하정을 발견하고 목례를 했다. 그에 하정도 바로 가볍게 인사를 했다.

”뮤지컬 보신 거죠? 저희도 금방 보고 나왔어요.“

이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네. 재밌더라고요.”

답은 이한한테 하면서 시선은 기혁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분명히 하정이가 뒤에 있는 걸 이한이 때문에 알게 되었을 텐데 그는 뒤돌아 보지도, 인사도 없었다.

큰 보폭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아, 팀장님. 나 아까 극장에 폰을 두고 나온 듯해요. 같이 갔다 와요.”

기혁이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서울에 의해 팔이 잡힌 하정은 기혁이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그렇게 자리를 급히 떴다.

한 풀 꺾인 표정을 한 하정이가 우두커니 극장 안에 멈춰있는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서울이가 그녀의 팔을 당겼다.

“가요. 밥 먹으러.”

하정이가 그를 의문스레 올려다본다. 폰을 두고 나왔다더니 서울이는 아까 앉았던 자리에 가지도 않았으니.

“아, 바지 주머니에 있더라고요.”

서울은 가볍게 웃으며 휴대폰을 하정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극장 안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서울이는 금방까지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슥 내려가며 표정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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