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탐내도 될까? (23회)

죽으나사나 | 2024.03.01 17:25:07 댓글: 0 조회: 216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1004
너를 탐내도 될까? (23회) 우리의 스캔들.

“번호도 아는데 생일을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겠어요?”

여유로운 서울의 말투였지만 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오늘이 내 생일이 맞긴 하지만 주민번호에 있는 날짜와 다르다는 건 친한 정연이 빼고는 모를 테니.

주민번호상 생일은 잠시 머물렀던 보육 시설에서 나를 발견한 날짜로 신고를 한 거였고, 
부모님이 나한테 정한 생일은 7월 6일인 오늘이었다. 

그걸 서울이가 알 리가 없다. 서울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알 리가 없었다. 

“거짓말…”

서울한테 따지려고 뒤돌아섰다가 초조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느긋하게 벽에 기대고 서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고 나서는 다그치려던 마음을 접었다. 

“내 생일도 다 기억하고. 기분이 좋은데? 서울 씨가 나 밥 사줘.”

여기를 벗어나야겠다. 

마주 보고 있는 기혁이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싱긋 웃으며 통화를 끝냈다. 만날 장소는 문자로 알려달라는 말을 잊지 않은 채. 

서울이에게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지만 이렇게 타이밍을 맞춰서 전화를 해온 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들었겠지만 저 급한 약속이 있어서 이제 이만 갈게요. 그럼…”

최대한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얼른 떠야 했다. 

급히 차에 올라탔고 시동을 걸다 우연히 백미러에서 아직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기혁을 보았다. 

그러나 고개를 직접 돌려서 보았을 땐 기혁은 대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착각인가 보네. 후우….

대문으로 들어가려던 기혁은 등 뒤로 급히 출발하는 하정이 차량을 뒤돌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어디에 갔다 오시는 거예요?”

걱정 어린 얼굴을 한 이한이가 정원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기혁이가 안 보여서 한참을 찾았다. 밖에서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지라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 누구 좀 만나고 오느라.”

“누구요?”

누구냐고 묻는 이한이 질문에 흠칫했다. 묻는 게 당연했겠지만 차라리 거짓말이나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 있어."
대충 둘러대고 성큼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기혁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방으로 들어온 기혁은 2층 테라스에 나가서 후덥진 여름날의 바람을 들이켰다.
[착각을 해서 방에 들어간 건 실수였겠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대표 님은 실수를 해서 꼭 그렇게 싫기만 했나요? 실수였지만 아주 찰나라도 생각지 않은 변수가 없었나요? 원칙에 어긋나는 일,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 아닌 거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송곳처럼 날카로웠다가 상처받은 강아지마냥 축 처졌다가를 반복하던 하정의 속을 알 수 없는 말들을 되새겼다.
그리고 생일이라니... 당신의 진짜 생일은 이미 지났어. 그걸 당신이 알 리가 없겠지만.
어찌 되었던 그 생일을 서울이란 사람이랑 보내는 건가.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
"서울 씨, 내 생일인 건 어떻게..."
그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이와 만나자고 약속을 했으니 찍은 주소대로 왔다. 그러나 서울이가 알려준 그곳은 가게가 아니라 개인 오피스텔이었다. 
1층에서 벨을 누르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현관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하정이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서울이한테 다짜고짜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린 건 하정이었다.
발에 걸려있던 하이힐이 스르륵 벗겨져 나갔고 그녀의 시야에 가득 채운 건 식탁 테이블을 밝히는 화려한 촛불 장식과, 드넓은 거실 창에 떡 하니 붙여져 있는 <HAPPY BIRTHDAY> 라는 알록달록한 문구와 함께 그 아래엔 여러 모양의 풍선들이 즐비해 있었다.
"생일 축하해요."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꽃다발이 하정이 앞에 훅 들어왔다. 멍힌 하정의 시선이 꽃다발에게  떨어지고 그 뒤로는 언제나 그랬듯 활짝 웃는 서울이 모습이 보였다.
"왜..."
오래된 친구였거나 남자친구였다면 아무 문제 없을 깜짝 이벤트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너와 나는 그런 사이는 아니잖니....?
하정이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뭐 하는 짓이냐는 노골적인 반응이었다.
"깜짝 놀래 주려고 그랬는데, 좀 오바...긴 하죠?"
서울이가 머쓱해하며 웃었다.
허,
아는구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이런 생일 축하는 부담스러워. 받은 걸로 하고 난 이만 갈게."
주소가 오피스텔일 때부터 좀 이상하긴 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서울이가 이해가 안 되었다.
"잠시 만요."
서울은 돌아서 가려는 하정이 손목을 급히 잡으며 불렀다.
"이렇게 왔는데 식사하고 가요. 제가 몇 시간 동안 준비를 한 거란 말이에요. 오늘 연차까지 쓰면서."
"뭐?"
고개를 홱 돌린 하정이 미간을 좁히며 서울을 째려보았다.
"연차까지 쓰면서 서울 씨가 왜 나한테 생일 축하를 해주는데?"
내가 뭐라고. 나 서울이한테 이런 걸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지 않아?
하려던 말은 일단 삼켜버렸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건 서울인 거 같았으니까.
"팀장 님을 좋아했어요. 쭉."
서울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고백을 하며 훅 들어왔다. 고요한 호수 같은 그 진지한 모습은 하정으로 하여금 뭐라고 반박을 할 수 없게 끔 만들었다.
***
미쳤어...
그런 뜬금없는 고백을 듣고 그 자리에 더 있을 수는 없었다. 서울이한테는 미안했지만 허둥지둥 거기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은 그러는 날 잡으러 나오지는 않았다.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야 했었는데 당황해서 그냥 뛰쳐나오다니...
[팀장 님을 좋아했어요. 쭉.]
허공에 흩어지 듯 뱉은 서울의 고백이 자꾸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
며칠 후, <K> 룸살롱.
"너 이번 감기 되게 오래 가네. 여름 감기는 멍멍이도 안 걸린다던데."
"그렇죠? 약을 먹어도 안 되고 링거를 맞아도 잘 안 낫네요. 어떡해요? 이 나이에 벌써 이러면?"
오늘 예약자 명단을 확인한 은서가 아직도 콜록 거리는 수미를 보며 놀리 듯 걱정을 한다. 그에 바로 애교를 부리며 나이 타령을 하자 은서가 머리를 콩 주먹으로 내리박았다.
"아, 실장 님!"
수미는 은서가 유독 예뻐하는 아이다. 처음 자신이 여기에 발을 들였을 때의 모습이랑 닮았던 수미는 은서한테는 자신의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은서와는 달리 타의에 의해 주어진 환경에서 활달함을 놓치지 않는 수미한테 정이 갔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자신이랑 다르게.
자신도 혹시 수미처럼 그렇게 비관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것처럼 살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더 행복했을까.
그러면 ... 욕심도 내보았을까.
"실장님, 5번 룸에서 실장님을 찾으신다는 데요?"
5번 룸에 추가 주문 서빙을 마친 웨이터가 은서를 찾았다.
"컴플레인 있어?"
"아니요. 그냥 실장님을 불러 달라고 하던 데요."
"알았어."
"5번 룸은 태양 일보 기자들 모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그건 맞는데..."
왜 자신을 찾는지 몰라 머리를 갸우뚱하는 은서를 보며, 
좀 전에 그 룸에 들어갔었던 다른 언니한테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던 수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 조심해요, 실장님.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응? 왜?"
"그게..."
아까 들었던 얘기를 은서한테 알려주었다.
[배운 것들이 더 지랄이라더니,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왜 그래요? 언니.]
온갖 짜증을 내며  수미한테 언니라고 불리는 여자는 전자 담배를 꼬나물며 욕을 담기 바빴다. 지나가던 수미가 물어오자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5번 룸 새끼들 말이야. 왕 게임이네 뭐네 하면서 사람을 기분 더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 기자 새끼들이 미쳤어. X 발.]
더 듣고 싶었지만 화를 잔뜩 내며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뒷얘기는 더 듣지 못했다. 실장까지 찾아서 뭘 하려는지 괜히 걱정이 앞섰다.
"뭐 진상 손님이야 하루 이틀을 보니? 네가 걱정할 정도 아닐 거야."
은서는 피식 웃으며 근심이 서려있는 수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5번 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니 안에는 담배 연기로 꽉 차서 바로 헛기침이 나왔다.
"오우~ 혹시 여기 실장님 맞으신가요?"
세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고 중간에 앉은 한 남자가 기분 나쁜 감탄을 하며 금방 들어선 은서를 아래 위로 훑었다. 앉아있어서 하체까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상체와 얼굴을 보아선 운동과는 거리가 먼지 삐쩍 말라 있었고 모범생답게 생긴 심심한 얼굴의 남자였다. 옆에 남자들도 그저 평범한 얼굴들이었고 인성은 뭐 그다지 괜찮은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 같이 낄낄대고 웃고 있었다. 
"왜 그러고 계셔요? 여기 옆에 와서 앉으시죠."
삐쩍 마른 그 남자는 자기 옆자리를 톡톡 치면서 은서한테 눈짓을 했다.
은서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부러 끝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죠?"
자신의 뜻을 어긴 채 끝 자리에 앉은 은서를 보던 남자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양주를 손에 들고는 빈 잔에 거침없이 콸콸 따랐다. 은서 앞에 쓱 내밀며 또  턱 끝으로 가리켰다. 
"아가씨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여기 실장님이 왕년에 에이스였다길래 한번 꼭 뵙고 싶었거든요. 오늘 예약도 여기 자주 다니시는 왕 사장님 덕분에 가능했던 거고요. 저희는 선량한 남자들이라 이런 곳은 처음이라서 좀 자극이 되긴 하네요? 특히나 얼굴이며 몸매 자체가 명품이신 실장님을 보니 더 꼴리는데요? 남자들 왜 이런 곳에 한번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지 단박에 알 거 같네요."
비꼬는 어투로 잘도 입을 털고 있는 남자였다.
"룸살롱에 거의 안 와보셨다니 드리는 말씀이다만, 저희 이 가게는 그래도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에요. 물론 아가씨들도  TOP 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다른 곳에 가보시면 확실히 알 게 될 겁니다."
은서는 조곤조곤 한마디마다  힘을 실어서 답을 했다.
"네에~ 그러시군요. 근데 어쩌죠? 어린 아가씨보다 난 이렇게 맛깔스럽게 여문 실장님 같은 여자가 내 취향인데."
짓궂은 얘기에도 은서는 곧잘 웃었다.
"다른 아가씨로 들여보내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눈으로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실장님  '낮져밤이' 인가요?"
점점 도를 넘는 말들에 은서는 대꾸를 안 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아, 큰 비밀이었다면 미안하게 되었네요. 혹시 낮에는 청순 모드, 밤은 또 이렇게 섹시 모드로 이중생활을 하시나 해서요."
이때까지는 무슨 얘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냥 여기저기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게에 와서 분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냥 그런 부류라고만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 대문짝만하게 뜬 뉴스가 아니었다면 쭉 모를 뻔했다.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실장님, 뉴스 봤어요?"
늦은 새벽에 잠이 들었으면서도 불구하고 은서는 매일 같이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이 생활을 하기 전에 루틴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간단한 조식을 먹고 소파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별안간 걸려온 수미의 전화에 의구심을 품었다. 이 시간에 절대 깰 리가 없는 수미였으니.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뉴스라니?"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요. 심심해서 이것저것 뒤지다가 속보 하나  발견했거든요? 근데, 충격이에요! 실장님이 뉴스에 나왔어요!"
"응?"
다급한 수미의 말에 은서는 잘못 봤겠지 싶으면서도  네이버 X  앱을 켰다.
<영진 그룹 권기혁 대표의 숨겨진 여자?>
<사별 남 권기혁 대표 새 인연이 닿았나? 본가 저택 앞에서 손을 잡아.>
뉴스 메인에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가득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권기혁에 대한 거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떨어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그중 한 제목을 꾹 눌렀다. 화면이 금방 바뀌었고 거기엔 파파라치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여자 얼굴은 모자이크를 했다. 다만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
어딘가 막혀있었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은 은서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랑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저 여자는...
은지일 거다.
어제 그 기자들 짓인가...
[혹시 낮에는 청순 모드, 밤은 또 이렇게 섹시 모드로 이중생활을 하시나 해서요.]
아저씨 옆에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을 하고 온 거 같았다. 은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거 같고.
그렇다는 건 전부터 아저씨와 나를 쭉 주시했다는 걸까?
가만, 그럼 아저씨는 지금 괜찮은 건가?
은서는 급히 기혁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괜찮아야 할 텐데. 아저씨도 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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