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8회)

죽으나사나 | 2024.01.24 09:10:26 댓글: 0 조회: 167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2715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8회)  내가 혜주네 집으로 간 이유. 
민서는 자신을 부르는 술 취한 민수의 말투에 주변을 살피며 고개를 돌려보았다. 민수는 흐트러지는 몸을 가까스로 버티며 그리 멀지 않은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민서야….”

뭐에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말은 없이 민서의 이름만 불러댔다. 

하…

민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저벅저벅 민수한테로 다가갔다. 

또 이런다. 이럴 때만 또 나를 찾지. 

하민수. 너는 그거 알아? 네가 이럴 때마다 난 네가 미워서 미치겠다는걸. 
그렇게 매정하게 나를 떠나 혜주한테로 갔으면  주혁이한테서 혜주를 뺏어 오기라도 해야지. 

그럼 내가 확실하게 마음을 접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몇 년이니. 지금. 
모든 게 쉬워 보이는 너한테 왜 혜주가 그리도 어려운 존재인 거니. 

이렇게 네 옆에 쉬운 나를 두고 그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네가 너무너무 밉다. 

그 어려운 길을 몇 년째 가고 있으면서도 날 한 번도 맨정신에 안 찾은 너는 진짜 나한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거겠지. 이렇게 술을 진탕 마셨을 때만 생각나는 그 짧은 옛정, 작은 습관 같은 거겠지. 

미움, 서러움, 증오가 뒤섞인 민서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내 그 눈물을 팔뚝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너 때문에 우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하민수. 


“하아…”

오늘도 민수의 카드를 찾아 결제를 하고 흐트러진 민수의 허리를 꽉 잡고 겨우겨우 호텔방 침대에까지 눕힌 민서는 아픈 허리를 톡톡 치며 침대 끝자락에 앉았다. 

곤히 잠든 거 같은 지금만큼만은 아무 고민이 없어 보이는 
민수를 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아. 맞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이것도 잊으면 안 되지. 

민수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통화 기록까지 마저 지워야 민서가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는 걸 모를 테니. 

비번이 걸려있는 휴대폰에 민수의 엄지를 갖다 대니 바로 해제가 되었다. 

“타닥타닥.”

통화 기록에서 자기 이름을 삭제한 민서는 휴대폰을 침대 옆 협탁에 조용히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이상했다. 침대를 짚고 일어나려는 민서의 작은 손안에 따뜻한 무언가가 잡혔다. 

당황함에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커다란 손이 민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머리를 홱 돌려 뒤에  누워서 자고 있을 민수를 바라보았다. 

눈을 뜨고 있다. 민수는. 

주변의 공기가 멈춘 듯 민서도 순간 숨을 들이켜기만 하고 멈추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검고 그윽한 눈동자. 

몇 초 더 지났을까, 놀란 두 눈을 해서 민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민서가 별안간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도 이랬지. 

눈을 번쩍 뜨길래 깬 줄 알았는데 다시 잠을 자더니…

민서는 자신의 손을 잡은 민수의 손을 빼려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더 꽉 잡아버리는 민수의 악력. 

의아해서 다시 민수의 눈을 바라보니 여전히 천천히 눈을 껌뻑이며 민수는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 제 정신일 때는 찾지도 않더니 술만 꽐라되면 이러지. 으으~~“

짜증이 올라와 다시 힘을 주어 손을 빼려는데  술 때문인가, 굵게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식으로 나를 여기에 데리고 왔었구나.“

응??!

자는… 거 아니었니? 민수야. 

입이 떠억 벌어진 채 자리에 굳어버린 민서를 보며 민수는 아직 술이 덜 깬 몸을 힘겹게 일으켜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너 취한 것처럼 쇼 한 거였어?”

민서는 자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늘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하길래 많이 마셨는데, 아까 밖에서 바람 맞고는 정신이 조금 나갔어. 그래서 너한테 전화를 한 거 같고. 그리고 금방 네가 나를 짐짝 버리듯이 침대에 버리는 통에 정신이 많이 말짱해졌고.”

민수는 아픈 관자를 꾹 누르며 또박또박 답했다. 

그건 네가 무거우니까… 

민서는 입을 꾹 다문 채  말을 안 했다. 

”내가 술에 취한 날이면 매번 너한테 전화를 한 거였어?“

난 당연히 내 발로 기어 온 줄 알았어. 이렇게 다녀간 흔적을 다 지우는 줄 몰랐지. 

네가 눈앞에 아른거린 건 내 꿈인 줄 알았어. 저번에도…

”깼으면 나 그냥 갈게.“

민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잘 숨기던 사람이 저번엔 왜 번호를 안 지웠어?“

민수의 나긋한 목소리가 귀에 박히었다. 

그땐… 

맞다. 
가려던 나를 갑자기 잡고 늘어진 민수 너 때문이잖아. 그런 자세로 한참을 누워있다가 도망치듯이 나왔는데 번호를 지울 생각조차 못 했으니…

근데… 그러고 보니  연락을 한 기록을 보고도 여태껏 나한테 안 물었다는 얘기네. 

하… 실망의 연속이다. 

“그건 민수 네가…”

머리를 홱 돌리며 돌아서는 순간, 놀라서 자빠질 뻔한 민서. 

어느새 인기척이 없이 민서의 뒤에 떡하니 서있는 민수의 가슴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내가 뭐?”

낮게 뱉는 민수의 말이었다. 

말을 말자. 내가 너한테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냐.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중얼거리는 민서의 가냘픈 턱 끝에 따스한 손길이 다가갔다.  조심스레 민서의 턱 끝을 손으로 올렸다. 

“민서 너 아직도 날 좋아하니?”

“…”

민수의 진지한 표정에 민서는 더 어이가 없었다. 

좋아하면 뭐 다시 만나기라도 하게? 

“묻잖아. 김민서.”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하려는 민수. 

“좋아하면 뭐, 날 다시 만나주게?”

머리랑 다르게 저도 모르게 입에서  툭 튀어나온 민서의 말이었다. 

아… 미친…

네 앞에만 서면 이리 절제가 안되어서야…

눈을 질끈 감고 무슨 답을 할지 모를 민수의 얼굴을 피했다. 

다행히 민수는 아무 말도 없었고 다시 침대 방향으로 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내가 취해서 실수를 했나 봐.”

민서를 등진 채  나지막이 뱉는 민수의 말. 

그래… 실수지. 알아. 

민서는 쓴웃음을 짓고는 다시 현관으로 몸을 돌렸다. 

나가려던 민서가 현관에 아무렇게 놓여있는 신발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까 들어오면서 쓰러지는 민수의 신발을 겨우 벗기고 자기도 허둥지둥 벗느라 두 쌍의 신발은 그냥 널브러져 있었다. 

”넌 그럼 그렇다고 나한테 말을 하지. 나도 내가 취하면 왜 너한테 전화를 한 건지 모르겠네. “

민수가 중얼거렸다. 

”하민수.“

신발만 물끄러미 쳐다보던 민서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서 민수를 불렀다. 

민수는 대답 대신 민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너…”

잘못 본 게 아닐 거야. 정확히 기억이 나. 신발밖에 안 보였지만 혹시나 단서가 있을까 하고…

“왜 그래?”

민수야… 네가 낯설게 느껴져. 

”너 혜주가 살해되던 날, 그날 혜주네 집에 갔었니??“

민서는 물어보면서도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유독 하얗고 크게 도드라져 있는 브랜드의 로고. 평범해 보이지만 이번에 이 브랜드에서 한정판으로 몇 개 안 나온 신발. 민서도 사고 싶어서 꽤 주목을 했던 터라 한눈에 알아봤다. 

신발만 보이던 블랙박스에서 봤던 신발. 그걸 오늘 민수가 신고 있었다. 이게 그냥 우연일까?

제발 아니라고 답을 해줘. 하민수. 

민서 못지않게 민수의 동공이 확장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꿈… 아니었던가?

혜주네 집으로 갔던 게???!

“하민수! 똑바로 말해. 왜 그날 갔었다는 말을 안 했어?”

말을 안 한 네가 너무 수상해지잖아!!

민서는 아니길 바라면서 목청을 높였다. 

제발. 제발 아니라고 해줘.

민서의 화난 목소리를 들은 민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찾아갔었다. 내가 혜주를. 

**10월 8일. 저녁. 

[5년간 매주 빠지지도 않고 달렸던 촬영이 무사히 마감을 하여 너무 기쁩니다. 그 마지막엔 남주혁 씨랑 같이 장식을 하게 되어서 더욱 영광이었고요.]

예능 막방 촬영을 끝내고 회식자리를 가진 감독이 주혁이를 마주하면서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자신의 기분을 전달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감독님이랑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제가 더 영광입니다. 앞으로 또 불러주십시오.]

주혁이가 오고 가는 인사에 기분 좋게 센스를 발휘했다. 

[그러니 오늘은 죽도록 마셔보자고. 남주혁 씨. 이것 좀 마셔보게.]

처음 보는 작은 술병을 꺼내든 감독. 

주혁이의 소주잔에 절반 정도 따라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러시아 술이야. 독하긴 한데 뒤끝이 없고 엄청 개운해.]

[그래요?]

주혁은 새로운 물건에 먼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저기 하민수 라고 했지? 주혁 씨 매니저.]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민수한테 감독이 말을 걸었다. 

[네.]

간결한 대답에 감독은 술병을 민수 앞에서 흔들며 잔을 들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에 민수는 잔을 들어 조금씩 채워지는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매니저가 이렇게 피지컬이 좋을까. 주혁 씨한테서 매니저만 할 사람이 아닌데. 다음에 일반인도 출연하는 방송에 꼭 한번 나와봐요. 하민수 씨.]

감독의 칭찬에 민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하고는 술잔을 비웠다. 

목구멍에서 타들어가듯이 내려가는 술. 목구멍에서 가슴, 위장까지 들어가는 순간을 다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맛이었다. 

근데 술이 다 들어 간 자리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아니, 개운하다는 감독의 말이 진짜였다. 

[끝이 괜찮지? 이거.]

자신의 말에 긍정을 바라는 감독의 뜨거운 시선에 민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내일 스케줄 없지? 많이 마시자고.]

그렇게 감독이 주는 술을 빼지도 않고 많이 마셨을 무렵,
민수한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야, 하민수. 주혁이 걔는 뭐 하느라 전화를 안 받냐?]

성현이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주혁이?]

금방 옆에 있었는데 폰을 두고 화장실로 갔나 보다. 

[왜? 무슨 일인데.]

[하… 내가 이런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주혁이한테 전해. 김혜주 걔를 잘 간수하라고. 이제 더 나대면 죽여버리는 수가 있다고.]

민수도 술김이라 약간 어질했지만 상대방은 더 취한듯한 목소리였다. 

[혜주는 왜 갑자기 거들먹거리고 그러냐? 뭔 일인데.]

[됐고, 나 지금 혜주 찾으러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혼쭐을 내야 정신을 차릴 거 같으니까.]

[네가 이러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혜주가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만한 짓도 안 했을 거 같은데?]

[하, 씨 X . 늬들 걔를 몰라서 그래. 얼마나 독한 년인지. 남주혁을 위해서 그런다지만  사람 피 말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그년.]

말끝마다 욕을 섞는 성현이의 말에 민수는 인상이 확 구겨졌다. 

[욕은 그만하지? 듣기 거북하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하고 말해.]

[됐어. 씨  x.]

전화는 뚝하고 끊어졌다. 

박성현이 술을 마시면 이렇게 사람이 변한다고?

만취 상태인 거 같은데 혜주를 찾아간다고?

무슨 일이지…

별안간 불안해지기 시작한 민수는 자리를 박차고 밖에 나와 택시를 잡았다. 

무슨 일인지 혜주한테 가서 직접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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