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35회)

죽으나사나 | 2024.01.28 06:06:39 댓글: 0 조회: 164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3584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35회) 날 좋아해줘요.

"오빠!!"

5년 전이랑 어딘가 많이 달라 보이는 미나가 저 멀리에서 주혁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면서 뛰어왔다.

"어어, 미나야. 오랜만이네."

주혁은 떨떠름한 표정에  어색한 팔을 들어서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야 진짜! 오빤 여전히 잘 생기셨고!"

미나가 외국물을 먹더니 성격이 많이 활발해진 듯하다.

"가요. 우리."

"어디?"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곳은 오빠가 좀 부담스러운 거 아니에요? 우리 조용하고 유명한 곳으로 가요."

미나는 주혁을 보고 싱긋 웃으면서 요망한 윙크까지 흘렸다.

잠시 후, 미나가 운전하는 차에 앉아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한적한 어느식당.

미나는 주차를 주차장에 완벽하게 하고 내렸고 그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는 주혁을 발견하고는 문을 열어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당겼다.

“안 내리고 뭐해~”

미나의 힘에 이끌려 주혁도 차에서 내렸다.

“여기가 어딘데?”

“식당이잖아~”

미나는 주혁이의 손을 여전히 잡은 채 식당 안으로 끌어갔다.

주혁은 귀찮음이 얼굴에 잔뜩 올라왔지만 왜서인지 저도 모르게 미나의 뜻대로 움직여졌다.

“어? 벌써 오셨네?“

룸에 들어서기 바쁘게 미나가  이미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빠!"

설마 했다. 뒤따라 들어간 주혁은 미나에 가려진 그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미나, 너..."

"여기 와서 앉게."

주혁이가 확 올라오는 화를 삼키며 미나를 질책하려는데 김기석이 그런 주혁을 향해 한마디 했다.

"미안, 오빠. 미리 얘기하면 안 올 거 같아서."

미나가 사과를 했다.

하...

주혁이의 잇새로 깊은 한숨이 나갔다.

5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끔찍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주혁이가 뒤돌아서 가려는데 또 한 번 김기석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의 만남은 우리 애랑 상관없는 거니까 이리 와서 앉게."

평정심을 유지한 채 덤덤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김기석과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바랐던 김기석과의 사적인 만남이었지만 이렇게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올 줄은 몰랐다.

"윤월 작가 알지? 1년 전부터 준비해 온 작품이 하나 있어. 나도 그 작품이 욕심나서 기다리는 중이었고. 근데 윤월 작가가 조건을 달아주었네? 남주혁 씨 당신을 꼭 주연으로 써달라고."

자기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표정에 일말의 변화가 없는 김기석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윤월 작가 잘 알지. 손을 댔다 하면 포텐이 터지는 수많은 작품을 탄생 시킨  유명한 작가. 신입 때 그 3초 짤 작품이 윤월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 길로 점점 이름을 알리게 되어서 그 작가를 찾아가서 인사를 드린 적도 있었다. 잘나가던 작가인데 그때 얼마 안 가서 결혼 소식이 들려오면서 거의 활동을 안 하시던 윤월 작가.

그 작가가 이제 다시 자신만의 브라운관을 만들려고 하는 거 같다.

"아빠가 그 작가님이랑 통화하는 걸 듣고 내가 오빠를 데리고 온다고 했지. 나 잘했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이 없던 주혁이한테 미나가 옆에서 찰싹 달라붙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거 미나야. 좀 떨어질 수는 없니?"

김기석이 심기가 불편한지 눈썹을 씰룩거리면서 미나를 쏘아본다.

"우리 서로 좋은 감정은 없지만 이제 지나간 일이니 같이 한번 해보자고. 주혁 씨."

미나도 이제 제 발로 돌아왔고.

김기석은 자신 앞에 놓여있던 잔을 들어 주혁이한테 내밀었다.

주혁은 여전히 넋 나간 표정이었지만 이내 잔을 들어서 김기석의 잔이랑 가볍게 부딪히고 몸을 옆으로 돌리고 원 샷을 했다.

"오빠. 우리 아빠를 보는 순간 놀랬지? 또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김기석은  자세한 건 이제 잘 정리해서 윤월 작가랑 같이 다시 만나자고 하고 따로 할 일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아직도 주혁이의 옆에 가까이 앉아 있던 미나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주혁이한테 말한다.

"이제 그만 가자."

주혁이가 일어나려니 그의 팔을 꼭 잡고는 다시 그 자리에 앉히는 미나.

"아까 아빠 때문에 별로 못 먹었잖아. 여기 음식 맛있대. 내가 앞에 가서 앉을 테니 먹고 가자."

미나는 주혁이가 또 일어날세라 바로 김기석이 앉았던 그 자리로 갔다.

"미나야. 네가 나 예전부터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난 네가 그때고 지금이고 부담..."

"오케이. 됐어요. 거기까지."

미나는 끔찍한 걸 들었다는 듯 두 귀를 막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혁이가 입을 꾹 다물자 미나는 그제야 막았던 손을 떼면서 자기 잔에 술을 졸졸 따랐다.

"나 한국에 없는 동안에 승승장구하는 오빠를 항상 응원했었어요. 우리 아빠가 없어도 저렇게 잘나가는 사람인데 내가 그때 무슨 짓을 했나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이 부끄럽더라고요. 주혁 오빠. 저 안 밀어 내면 안 돼요? 한 번이라도 저 생각해 주면 안 돼요?"

오늘 마냥 장난기 어린 표정을 하던 미나의 눈빛이 사그라들어있었다.

"미나야."

주혁은 체념을 하며 미나를 불렀다. 미나는 주혁이의 눈을 마주하지 않은 채 술잔만 비웠다.

"나 여자친구 있어. 5년 전 그 친구야."

"알아요."

또 자기 잔에 술을 채우는 미나.

입안에 털어 넣으려고 하는데 주혁이가 미나의 손목을 잡았다. 주혁이는 말이 없었고 미나는 그런 주혁이의 깊고 짙지만 자신한테 전혀 동요가 없는 검은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나는 그런 주혁을 지그시 바라보다 갑자기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자기 쪽으로 당겨서는 유독 촉촉해 보이는 그 도톰한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 야!"

깜짝 놀란 주혁은 그런 미나의 손을 홱 뿌리쳤고 미나의 입꼬리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오빠. 나 이제 그때 그 어리던  대학생이 아니야. 오빠가 아직도 그 여자친구를  만날 거란 생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어. 괜찮아. 나는. 골키퍼가 있다고 공이 안 들어가나?"

"미나야."

어이가 없기도 하고 5년 만에 많이 과감해진 미나 앞에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저... 주혁 오빠. 저 오빠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얼굴이 데인 듯 빨개져갖고 겨우겨우 고백을 하던 미나는 이제 없다.

"오빠가 나 좋아할 때까지 골을 넣어볼 생각이야. 나는."

미나는 황당함에 입만 달싹이는 주혁이한테 쐐기를 박았다.

김미나, 너 외국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거니?  대체.

***

<월요일>

오늘 하루가 너무 긴 거 같다.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아른거리는 저 자식도 너무 거슬리고...

"팀장 님. 식사하러 가셔야죠."

유 대리가 점심시간을 딱 맞추어서 민서한테로 다가왔다.

"어? 어. 그래."

민서는 어차피 머리에도 안 들어오는 서류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서가 일어서자 바로 민수의 시선이 그리로 고정되었지만 민서는 아무것도 모른 척 사무실에서 유 대리랑 급히 나왔다.

주말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배 안 고파? 나가서 밥 먹자.]

호텔에서 민수 보고 뒤돌아 있으라 하고는 부랴부랴 옷을 다 입은 민서한테 하는 민수의 말이었다.

[밥? 넌 이 상황에 밥이 들어가니?]

민서가 짜증을 부리며 현관 쪽으로 향했다.

[지금 무슨 상황인데?]

느긋한 말투의 민수.

하.

한숨을 내쉰 민서가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 침대 헤드에 기대고 앉아있는 민수한테  또박또박 내뱉는다.

[어제 일은 실수야. 너랑 나는 그냥 회사 동료일 뿐이야. 왜 굳이 본사 아닌 지사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나의 그 실수 갖고 혼자 넘겨짚지 마. 아무 의미 없는 거니까.]

[... 알았어.]

타격감이 하나도 없는 저 여유로운 얼굴, 내가 지금 혼자서 팔딱 팔딱 뛰는 거니?

그렇게 호텔에서  도망치듯이 혼자 나오고 주말 내내 머리를 싸쥐고 후회를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 머리엔 도대체 뭐가 들어섰길래 그런 짓을 했을까...

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렇게 월요일이 찾아온 거였다.

“맛있게 드세요~”

사내식당 끝 쪽에 자리를 잡은 민서와 유 대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저도 여기 앉아도 돼요?”

첫 술을 들려는데 은근 슬쩍 민서의 옆에 와 앉는 이 사람.

앉아도 되냐고 묻기만 하고 답을 기다릴 맘은 없었는지 바로 앉아서 생글생글 웃는 이 사람.

“당연히 되죠. 같이 먹어요. 민수 씨.”

민서의 마음을 모르는 유 대리는 같이 싱긋 웃으며 온 얼굴로 민수를 맞이했다.

”팀장 님. 맛있게 드세요~“

굳어진 민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입꼬리를 올리고 인사하는 민수.

민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헤헤 웃음을 흘리는 유 대리 앞에서 내색은 안 내려고 노력을 했다. 민수 쪽은 거의 시선을 안 두고 식사에만 열심히 집중을 했다.

잠시 후,

식후로 커피가 생각났던 민서는 문을 덜컥 열고 탕비실에 들어갔다가 바로 문을 닫고 나왔다.

민수가 탕비실 안에서 커피를 타고 있었다.

그래, 커피는 사 먹어야지.

민서는 회사 1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따뜻한 라떼를 주문하고 자리 하나를 잡아 기다리고 있다.

맛있는 라떼를 생각하니 아까 잡쳤던 기분이 살살 좋아지려고 하는 순간,

“너도 바닐라 라떼 주문했어?”

또 민수다. 생글생글 눈웃음을 치면서 민서의 앞에 앉는다.

와…

“너라니? 여긴 엄연히 회사 내인데. 공과 사는 구분하시죠? 하민수 씨.”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너무 딱딱하게 말했나? 민수의 눈썹이 조금 떨리는 거 같은데?

민서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그녀를 몇 초 무표정으로 물끄러미 주시하던 민수는  픽 하고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

철벽을 또 이렇게 치시겠다? 알겠어요. 김민서 팀장 님.

“뭐예요? 그 기분 나쁜 웃음은?”

민서의 눈썹이 구겨졌다.

“아니요. 제가 잘못했네요. 팀장 님.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과는 다르게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

이 자식이 나를 갖고 논다…

”아까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지 않았어요? 여긴 왜 따라와갖고.”

“아… 나는 이미 마셨는데 다른 선배님들이 여기 커피가 생각나는지 얘기하고 있길래 제가 오겠다고 했죠. 우연히 여기서 팀장님이랑 마주친 거고요.”

굳이 안 와도 되는데 오겠다고 했겠지.

내가 후식으로 커피 없인 못 사는 걸 알고.

”지잉.“

커피가 완성되었다는 진동벨이 울리자 민서는 자리를 박차고 민수의 곁을 쌩하니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민수는 민서한테 자기 얼굴을 자주 비추며 주변을 맴돌았다.

”띠리리리링.“

퇴근시간이 되어 책상 정리를 하던 민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어, 주혁아.“

”술 당기는데 좀 마셔줄래?“

어딘가 축 처진 주혁의 말투다.

얘는 또 왜 이럴까.

민수는 아직 퇴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민서의 자리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어, 그 술집에서 보자.“

민서는 일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가는 민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회사에서 그렇게 불편하게 쫓아다니더니 퇴근 하나는 칼퇴네.

근데 뭐지? 어딘가 살짝 서운한 이 맘은?

아아아아!!!

내일 일이나 오늘 미리 해두자.

<** 술집>

“진짜? 김기석 감독이랑 작품을 하게 되었어?”

“어, 아직 시나리오랑 제대로 본 것도 아니지만  윤월 작가님 작품이라 뭐 볼 것도 없지. 사실.”

“와아~ 대단한데. 그렇게 몇 년을 애 먹이더니 그냥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기분이잖아? 미리 축하한다. 대스타 남주혁.”

민수는 이제 매니저도 아니지만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민수의 말대로 김기석 감독 작품에 들어가려고 애를 많이 먹긴 했지.

그런데 혜주의 죽음의 시작엔 김기석 감독의 작품에 들어가기 위해서  유지태를 만난 것부터 잘못되었다.

나의 그 이루지 못한 욕심만 아니었다면 혜주는 그런 일을 겪지도 않았을 거다. 과거가 바뀌면서 결말이 바뀌었지만 그 일이 아니었다면 혜주는 지금 이렇게 실종 상태도 아닐 거였다. 다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나 근데 그 작품 거절할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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