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41회)

죽으나사나 | 2024.01.31 09:03:36 댓글: 0 조회: 175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4386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41회) 너와의 미래 계획. 
<크리스마스 당일>
밀린 업무에 정신이 없던 민서가 사무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올려다보았을 땐 벌써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큰 기지개를 하며 일어섰고 외투를 집어들었다.
이 정도면 그동안 밀린 업무를 어느정도 채웠으니 이제 집으로 가야 했다.
​띵- 하는 도착 소리와 함께 회사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또각, 또각.
조금 지친 발걸음의 하이힐이 바닥에 닿는 소리. 

“민서야.”

바깥을 나가려던 민서를 뒤에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안 돌아봐도 알 수 있는 그 목소리. 

“언제부터 기다렸어?”

“음… 한 두시간 쯤?”

“허얼…”

민서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아직 12시 안 되었어. 크리스마스는 여자친구랑 같이 있어야지.“

민수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근 채 민서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주위를 의식해 멈칫 하던 민서는 평일도 아닌 크리스마스에 회사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다는 걸 느끼고는 그 커다란 손을 잡았다. 

진짜 오래 기다렸나보다. 민수의 손이 많이 차가웠다. 

사실, 

저번날 낮에만 해도 민수와는 절대 다시 안 만날 거라고 다짐을 그렇게 하였던 민서였지만 어제 하루로 그게 무너졌다. 

퇴근하고 여느때랑 다를 바 없는 저녁이었다. 밥을 혼자 챙겨먹고 멍하니 TV를 보는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다들  엄청 신나하고 밖은 복잡하겠지? 그러다 외투를 집어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경쾌한 캐럴송이 가득한, 남들한테는 오늘만큼은 너무나 즐거운 거리들을 방황하다 발길이 멈춘 곳이 재즈바였다. 

복잡한 캐럴송보다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가 의외로 마음에  쏙 들었다. 평소 잘 안 들었었지만 이제 재즈의 매력에 푹 빠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연주에 정신이 팔려서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홀로 카운터 앞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민서한테 다가와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다 거절했다. 

애꿎은 휴대폰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 안 하네. 벌써 떨어져 나갈 셈인가. 열번을 더 튕겨도 안 튀어나갈 듯이 버티더니만 고작 그 정도에 떨어져 나간 거구만. 

하…

잇새로 한숨이 나갔다. 

얼마나 더 마셨을까, 언제 통화버튼을 눌렀는지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정신이 조금 들었을 땐 민수가 앞에 서있었다. 

[날에 날을 더할 수록 난 민수 너를 비워낼 거야.이 술잔에 술처럼. 다 비워지면 우리가 편하게 만나는 날도 오겠지. 분명.]

말 그대로 민수에 대한 마음을 덜어내려고 했다. 그걸 민수한테 알려주고 싶었다. 

[비워. 근데 네가 비우면 내가 다시 채워줄게. 비우는 건 네 마음인데 채우는 건 내 마음이야.]

민수의 그 말들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 사실 깨달아버렸다. 자신이 뭐라고 하던 여유로운 모습의 민수를 보니 자신은 그를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되는 상대였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버티고 싶었다. 그간 힘들었던 자신한테 보상을 받고 싶었다. 

“안 들어와?”

민수의 오피스텔 문 앞에 다다르자 또 후회가 되었다. 

밖에서 버티고 서있으니 먼저 들어갔던 민수가 다시 나왔다. 

그 긴 기럭지가 벽에 무심한 듯 툭 기대어 팔짱을 낀 채로 민서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안 들어갈 거야?”

나긋한 말투. 그대로였다. 

민수는 민서 앞에 손을 내밀었다. 시선은 여전히 고민하는 민서한테로 고정한 채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었다. 

여기로 들어가면 난 무조건 K.O 겠지?

민수가 무조건 이기게 되어있는 이 게임.

다시 시작해도 되는 걸까?

너와 나의 결말은 어떨까, 과연 행복할까?

“민서야. 내가 더 노력할게. 즈레 겁먹고 물러서는 건 아니라고 봐.”

민수가 나지막이 한 말이 너무 부드러워서 굳어서 경직되었던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짙은 눈동자는 블랙홀처럼 민서의 마음을 끌어들였고 자연스레 아까부터 내밀고 있는 민수의 손을 잡았다. 

내내 무표정으로 응시하던 민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기서 민서가 다시 간다고 할가봐 민서 못지않게 긴장되었던 마음에 안도와 함께 벅차 오른 가슴에 회오리가 쳤다. 

”앗!“

민수의 손바닥 위에 민서의 작고 여린 손이 올라오자  그녀를 힘으로 확 끌어당겼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절로 닫혔다. 

***

<남주혁 결혼 발표. 상대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일반인으로 고등학생 시절부터 연인사이로 이어져 오다 결혼까지 골인.>

<톱스타 남주혁 내년 봄 품절남 된다. 베일에 쌓인 그녀는 대체 누구?>

네이X를 켜니 주요뉴스에는 주혁이 얘기밖에 없었고 현재 검색어 앞 순위들은 다 주혁이 결혼발표로 핫했다. 

다들 여태 꼭꼭 숨겨왔던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토론하기에 바빴다. 

“진짜 괜찮을까?”

기사들을 훑던 혜주가 불안한 기색을 못 감추고 혼자 중얼거렸다. 

“괜찮으니까 걱정 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주혁을 보며 혜주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미간을 좁혔다. 

“네가 이럴 때면 항상 사고를 칠 때였는데.”

“아니야. 이번엔. 윤호 형한테도 동의를 받고 터뜨린 거니까.”

“그… 래? 근데도 그렇게 쉽게 동의를 했다고?”

결혼을 한다고 하면 분명히 타격이 클 텐데…

그걸 대표가 감안하고 동의를 해줬다고?

이해가 안 되어서 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주혁은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웃음기가 점점 가시는 혜주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걱정 마. 넌 신경 안 써도 돼.”

그 형은 아무 말 안 할 거니까. 

[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

한달 전인가, 
윤호 형이 갑자기 날 따로 보자면서 식당 예약을 했더라고. 

[어흠, 그게…]

평소 답지 않게 내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를 보고 어느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 

[요즘 이것저것 보다보니까 너 벌써 나랑 한 계약이 5개월밖에 안 남았더라고.]

[아… 그렇죠.]

[지금 소속사 건물은 네가 지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아마도?]

[그렇죠.]

서두를 길게 늘어뜨리는 윤호에 비해  주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응대를 해주었다. 

[그래서 너한테 고마운 게 진짜 많아. 사실 사업을 시작하고도 한참동안 방황을 많이 했었지. 여기가 내 길이 맞는지, 아니라면  빨리 접고 다른 걸 시도하는 게 더 빠른 길이 아닌지. 그러다 너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너랑 함께 했던 시간들은 더 할 나위없이 좋았어.]

[잠깐 잠깐,]

주혁이가 듣다못해 스스로 감동에 빠진 윤호를 불렀다. 

[이거 뭔 듣다보니 거의 고백 수준인데? 질질 끌지 말고 형이 하고 싶은 말은 뭔데.]

쓸데 없는 말로 포장하지 말고 본론을 말해봐. 

이런 식으로 더 듣다간 치킨이 될 거같아. 닭살 돋아서. 

[어디 가지 마라. 주혁아. 재계약 하자. 나랑.]

윤호의 간절해진 눈빛을 보고 주혁의 내려갔던 입꼬리가 슥 올라가기 시작했다. 

됐다. 이젠 내가 ‘갑’인 거지?

어깨가 확 올라갔다. 

재계약 조건을 걸었다. 내년 봄에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팔딱 뛰면서 반대를 할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흔쾌히 동의를 해버리는 윤호 형때문에 많이 수월해졌다. 

그렇게 혜주가 없는 동안에 난 그녀와의 결혼을 위한 계획을 차차 이루어 가고 있었다. 

아늑하고 조용한 곳에서 신혼을 시작하려고 단독 주택을 알아보았고 이미 인테리어가 진행된 상황. 

혜주가 보면 좋아하겠지? 

이쁘고 큰 마당도 있어 나중에 아이가 있으면 좁은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걱정하느니 널직한 마당에서 흙과 풀 냄새를 직접 느끼며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겠지. 

넌 당연히 나와 아이한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될 거고 나도 너한테 그런 존재가 될 거야. 내가 많이 노력하고 사랑할게. 

아직 없지만 곧 생기게 될 아이까지도. 

자식한테 과분한 사랑을 주셨던 울 아빠처럼, 

이제 난 일보다 가족을 위해 사는 남자가 될 꺼야. 

이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너라서 다행이야. 혜주야. 

진짜 많이 고맙고 사랑해. 

***

혜주는 연말에 민박 예약이 많다고 아줌마를 며칠만 더 도와드리고 온다고 했고 난 미나의 연락을 받고 아쉬운 대로 먼저 서울로 돌아왔다. 

“누가 왔다고?“

생각지 않은 인물이 회사까지 찾아왔다. 윤월 작가가 갑자기 찾아와서  급한대로 회사 1층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제 이번 작품에 주연으로 부탁드려요.남주혁 씨. “

”그거라면 이미 윤호 형한테 제 의사를 전달해달라고 말을 해서…“

”알아요. 거절 했다면서요?“

몇년 전 결혼 전의 윤월은 남이 보기엔 좀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표정이 참으로 많이 부드러워졌다. 결혼 생활이 많이 행복한 가보다. 

”시나리오는 읽어보았어요?“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 

”죄송해요. 그건… 사실 안 봤어요. 결혼도 할 거고 한 동안은 좀 쉬고 싶었어요.“

주혁이 솔직한 변명이 싫지는 않은 듯 윤월은 기분 좋게 픽 하고 웃어버렸다. 

“그럴 줄 알았어요. 어제 뉴스를 보았어요. 곧 결혼을 할 거라고요. 미리 축하드려요.”

“아, 감사합니다.”

어색한 표정을 지은 주혁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결혼이라는 게 참 좋죠. 좋아하는 사람이랑 쭉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게. 거기다가 그 사람을 닮은 예쁜 아이까지 생기면 더더욱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죠.”

윤월은 자신의 반쪽을 떠올린 듯 수줍게 웃었다. 

“그래서 저도 일을 다 접고 그 사람만 바라보고 몇년을 살았어요. 예쁜 쌍둥이 딸들도 낳았고요. ”

“쌍둥이요?”

주혁이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네. 사진 보여드릴가요?”

“네.”

이제 진짜 결혼 할 때가 된 듯 하다. 윤월이가 보여주는 쌍둥이들의 귀여운 사진들을 보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귀엽죠?”

주혁이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물론 가족이 일순위로 중요하죠. 근데 제가 쉬면서 느낀 게 있더라고요. 토끼같은 쌍둥이와 항상 든든한 우리 남편을 보며 이렇게 그냥 살 수 있을 것만도 같았는데 마음 한 구석은 그냥 갈증이 났어요.”

윤월이가 하던 말을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온 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남편과 쌍둥이한테 조금 미안해졌지만 다시 자신감 넘치는 제 모습을 찾은 거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 거 있죠. 이건 분명히 가족만 바라보고 살던 그때 기분이랑 너무 달랐어요.”

주혁은 이쯤 되니 작가님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거 같았다. 

“결혼식을 봄에 하고 싶다고 했는데 대충 언제일가요? 5월? 6월?”

“5월로 생각하고 있어요.”

“음…”

뭔가를 생각하는 거 같더니 윤월이 다시 입을 연다. 

“5월 이전에 촬영을 끝내죠. 신혼은 안 건드릴 게요. 결혼 준비를 하려면 또 바빠질 텐데 그런 시간은 빼드리죠. 김기석 감독님이랑 잘 조율할게요. 주혁씨 촬영 시간은 최대한 줄이되 최고로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봐요. 우리. ”

굳건해진 그녀의 표정. 

“저의 새로운 시작을 남주혁 씨와 함께 하고 싶어요. 이번 선택은  주혁 씨한테도 집에서 쉬는 동안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겁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더라면 분명히 오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근데 윤월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거두절미하고 무조건 맞는 말이었다. 

“좋습니다. 쉬기 전에 작가 님과 같이 하시죠.”

고민은 사실 아까 예쁜 쌍둥이를 보는 순간 끝났다. 

나만 바라보고 있을 혜주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사실 일도 무시할 수가 없는 세상은 맞다. 

좋은 환경, 행복은 사실 꾸준히 들어오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아빠도 그렇게 삶에 쪼들리지 않았더라면 아프지 않고 더 오래 살았을 거고 조금은 더 행복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남주혁 씨.”

활짝 웃으며 윤월은 주혁이앞에 손을 내밀었다.
추천 (1) 선물 (0명)
IP: ♡.101.♡.68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50
죽으나사나
2024-03-04
1
240
강자아
2024-03-03
4
818
나단비
2024-03-03
2
191
죽으나사나
2024-03-03
1
228
죽으나사나
2024-03-02
1
239
죽으나사나
2024-03-01
1
218
죽으나사나
2024-03-01
1
201
죽으나사나
2024-02-29
3
574
나단비
2024-02-29
4
597
죽으나사나
2024-02-29
2
209
죽으나사나
2024-02-28
2
247
죽으나사나
2024-02-28
2
238
죽으나사나
2024-02-27
2
228
죽으나사나
2024-02-26
2
259
죽으나사나
2024-02-24
2
254
죽으나사나
2024-02-23
2
246
죽으나사나
2024-02-21
2
290
죽으나사나
2024-02-21
1
268
죽으나사나
2024-02-19
1
349
죽으나사나
2024-02-19
2
343
죽으나사나
2024-02-18
2
649
죽으나사나
2024-02-17
2
715
죽으나사나
2024-02-16
1
349
죽으나사나
2024-02-15
1
359
죽으나사나
2024-02-14
2
310
죽으나사나
2024-02-10
3
496
죽으나사나
2024-02-06
0
463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