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10회)

죽으나사나 | 2024.01.14 12:00:30 댓글: 0 조회: 176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0296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10회) 혜주의 편지.
"딴따라. 그만 자고 이제 일어나."
"으음..."
누군가 곤히 자고 있는 팔을 툭툭 건드렸다.
"나 좀 더 자게 내버려 둬. 주혁아."
"뭐라고?"
비웃는 듯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혁의 목소리가 아닌데?
응???
눈을 번쩍 떴다. 앞에는 시커먼 남자들이 모여서 주혁이가 언제 일어나나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아악!!""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은 자리에서 발로 밀면서 뒷걸음을 쳤다.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니 교도소다.
돌아왔다.
"아..."
찔린 부위인가, 배가 아파졌다.
"칼 맞은 데는 어떠냐?"
많은 재소자들 중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덩치였다.
비꼬던 보기 역겨운 표정은 없고 많이 평온해진 얼굴이었다.
​​
"어떻게 된 거야?"
주혁은 대답 대신 아픈 배를 끌어잡고는 물었다.
"네가 형을 구했어. 너도 다행인 게 칼이 빗나가서 그냥 위에 살짝 긁힌 수준이야."
옆에 있던 멸치가 덩치 대신 답을 했다.
긁힌 수준이 이렇게 아프다고? 많이 아픈데??

네가 한번 찔려볼래??
주혁은 온갖 인상을 구기면서 아픈 배를 만졌다.
"고맙다. 딴따라. 아니, 남주혁이라고 했나?"
확 달라진 덩치의 태도에 적응이 안 된다.
"뭐... 고맙긴 하겠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려줬으니."
주혁은 시선을 일부러 다른데 둔 채 혼자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덩치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렇게 얼마 안 지나, 구속적부심 심사가 통과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우리 또 보게 될 거야. 남주혁 씨. 어데 도망칠 생각 말고 부르면 재깍재깍 옵시다. 아직 우리한테는 할 말이 많잖아."
서늘한 표정의 최반장이 나오는 주혁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주혁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 옆을 슥 지나갔다.
하... 저 새끼. 내가 너를 다시 처넣는다.
최반장의 작고 째진 눈이 이글거렸다.

"어서 와. 남주혁. 고생했어. 요 며칠 동안."
교도소 밖에 나오니 윤호가 평소 주혁이가 타던 벤을 가리키며 올라타라고 머리를 까딱했다.
"오늘은 내가 네 매니저를 해주지."
"고마워. 형."
주혁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벤에 올라타려고 했다가 다시 발을 내렸다.  뒤에서 누군가 주혁의 이름을 불렀다.
"남주혁."
뒤를 돌아보니 거의 못 알아볼 뻔한 민서가 서있었다. 혜주의 친한 친구자 주혁의 동창이기도 한 여자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혜주랑 같이 민서도 자주 만났었다. 민서는 다른 지역 대학을 가게 되고 주혁이도 점점 배우 일로 바빠지면서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혜주는 따로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근데 민서가 왜 갑자기 나를...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그녀의 눈은 어딘가 많이 어두웠다. 혜주 때문에 온 거겠지...
**시내의 한 카페.
딱 봐도 자기가 빠져야 될 거 같은 분위기에 윤호는 벤을 타고 혼자 먼저 돌아갔고 주혁은 민서의 차로 이동해서 시내에 있는 모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다. 남주혁."
"어... 응. 오랜만이야."
왠지 민서 앞에 있으니 얘한테 죄를 지은 거 같아 몸이 더 무거워졌다. 혜주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나무랄 거 같았다.
민서는 그런 주혁을 보고는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가방 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게... 뭐야?"
"나도 몰랐었어. 그게 뭔지."
눈처럼 하얀 봉투 위에는 <민서에게> 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너한테 온 편지야? 왜 나한테 지금..."
주혁은 도통 알수 없는 민서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서가 입술을 달싹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뉴스를 보고 알았어. 혜주가 너한테 살해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뉴스."
주혁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처음에는 설마, 진짜? 그럴 리가? 하면서 몇 년을 못 만났는데 10대인 그때랑 충분히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이제 너는 일반인이 아닌 남들이 다 알아보는 스타가 되었으니 혜주 따위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 근데 생각해 보면 몇 개월 전에 만났던 혜주한테는 그런 낌새가 하나도 없었어. 그냥 온통 네 생각, 네 걱정에 정신이 없었지. 그래서 너희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알콩달콩 잘 살고 있구나 하고 꽤 부러워했어."
차를 한 모금 들이켜던 민서가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 집  우편함에 들어있었어. 언제 넣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우편함을 거의 확인을 안 해서 알 수가 없거든. 보아하니 편지로 보낸 게 아니라 혜주가 직접 넣은 거 같아."
 민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군 주혁을 불렀다.
"주혁아."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기가 죽어있던 주혁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빛은 많이 어두워졌고 눈엔 초점이 없는 주혁을 마주하고는 한숨을 또 길게 내쉰 민서는 중요한 말을 꺼냈다.
"편지가 이상해. 어제 읽어보았는데 너무 이상한 편지야. 혜주는 꼭 마치 자기가 죽을 걸 알고 있었던 거 같았어. 그리고 네가 살인자로 몰릴 걸 안 것처럼 편지를 썼어."
뭐??? 그게...어떻게... 가능하기나 해??
주혁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 속의 편지를 꺼내들었다. 

< 민서야, 안녕. 고등학생일 때도 안 썼던 편지를 이렇게 쓰려니 왠지 조금 오글거리려고 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 단짝 친구 민서야. 10대 시절 공부밖에 모르던 암담한 시간들에 네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 내 주위에는 민수를 포함해서 너 같이 좋은 친구들만 있었던 거 같아서 너무 행복했어. 물론 주혁의 옆에 있는 30대인 지금도 너무 행복해. 비록 너를 자주 보지는 못해도 난 네가 가는 모든 길들을 응원하고 또 응원해. 자주 만나지 못해서 미안해. 
민서야. 요즘 나 고민이 생겼어. 주혁이가 자꾸 나랑 결혼을 하자네? 그렇게 힘들게 지금 자리로 올라왔으면서 아직 정상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공개 연애에 결혼까지 하자고 하네. 난 당연히 너무 좋지. 나만 생각한다면야. 근데 있잖아. 너도 우리 자주 만났을 때의 주혁이가 생각 날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부터 주혁은 이 자리에 올라오려고 미친 듯이 달려왔잖니. 나 하나 좋자고 차마 주혁이의 말대로 할 수는 없겠더라. 
내 자랑만 하고 서두가 길었지? 
너한테 오늘 편지를 쓰는 이유야.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날 시기가 오는데 그게 빨리 오냐 천천히 오냐인 거 같아. 나는 왠지 있잖아. 
이 세상에 오래 있을 사람은 아닌 거 같아. 그냥… 그럴 거 같아. 놀라지 마. 최대한 버텨볼 건데. 안된다면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난 내가 이 세상에 없어지는 게 사실 두렵지가 않아. 나 때문에 슬퍼할 주변 사람들이 걱정이 되는 거지. 
제일 걱정되는 게 주혁이고. 나만 바라보고 나밖에 모르면서 살아온 주혁인데. 힘들 때 꼭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주면 바로 있던 불면증도 없어지는 아이 같은 남자인데. 
내가 갑자기 없어지면 어떡하지? 
나를 잊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너무 무서워졌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가봐. 
또 나의 사라짐이 주혁이한테 많은 피해가 갈까 봐. 
주혁은 아무 잘못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바보인데…
염치가 없지만 민서 네가 도와줄 수 있을까? 우리 주혁이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 그리고 이 편지가 주혁이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그때 공개해 주렴. 
너무 미안해. 민서야. 너한테 이런 부탁을 하게 되어서. 
넌 내가 믿는 제일 친한 친구라서 그래. 
사랑한다. 내 친구. >

편지를 다 읽은 주혁이가 테이블 위에 팔이 스르륵 떨어지자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던 민서가 입을 열었다. 

“오늘 사실 경찰서에 가서 제출하려고 했어. 그때 네가 교도소에서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기다린 거였어.“

주혁이의 심하게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액체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민서가 뭐라고 하는지 그 뒤로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혜주 넌 네가 죽을 걸 알았구나. 죽을 걸 알면서도 온통 내 걱정이었고. 
혜주야. 난 어떡하니. 네 말처럼 원래처럼 아무 일 없이 살 수가 없을 거 같은데. 이제 내 일상은 엉망이 될 건데. 네가 없으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미덥지 못했니. 죽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왜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었니. 내가 널 도울 수도 있었잖니. 혜주야. 왜 왜…

난 너를 이제 잘 모르겠다. 혜주야. 긴 세월 동안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던 혜주가 너무 낯선 여자 같았다. 

그렇게 밤은 어두워지고 강남에 있는 자기 오피스텔로 돌아온 주혁은 멍하니 창문 밖에 훤히 보이는 고요한 한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려한 불빛 사이 대교에는 많은 차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방음이 잘 되는 여기에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혜주가 여기로 빨리 이사를 왔어야 했다. 

언론에 위치가 어느 정도 공개되었다고 데려오지 못했는데..  혜주는 이 좋은 야경도 몇 번 못 보았는데. 

혜주의 생각에 가슴이 그냥 쓰리고 퉁퉁 부은 눈에는 또 자그마한 이슬이 맺히더니 바닥에 투둑하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아 놔…  서 씨도 참 일을 골 때리게 하네. 그 중요한 키를 범죄자들 공동욕실에  두고 오면 어떡하잔 소리야.”

혼자 중얼거리면서 강 교도관이 이 밤에 홀로 교도소 재소자들이 사용하는 욕실로 들어와 등을 탁 켰다. 

“왔나? 강진찬 교도관님?”

누구도 없어야 할 욕실 뒤에서 섬뜩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씨는 불안감이 불현듯 몰려오기 시작했고 덜덜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천천히 뒤돌아섰다. 

덩치와 멸치 등 여럿 재소자들이 피식 웃으며 강 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려…”

강 씨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니 어느새 빠른 한 놈이 잽싸게 강 씨의 입을 틀어막았다. 

덩치가 얼굴에 서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너무 놀란 나머지 동태 눈깔이 되어버린 강 씨의 앞으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우리가 친구는 아니지만 난 나름 강 문지기를 내 친구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나 봐? 내가 여기서 편의를 보는 대신 물질적으로 많이 보탬을 해줬고 그거면 우리한테는 서로 끊을 수 없는 신뢰가 있다고 생각했지.“

덜덜 떨고 있는 강 씨한테 바짝 붙어서 서늘한 눈빛에서 독기 어린 눈으로 바뀐 덩치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강 씨는 위협을 느끼고 도망치려고 발악을 했다.  꽉 잡힌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나를 배신하는 순간 이런 날이 올 줄 알고는 있었지?”

덩치는 허리 줌에 숨겨두었던 매서운 칼날을 꺼내들었다. 자신을 찌르려고 했던 그 칼날. 

“푹.푹.푹!!”

몇 번을 찔러댔는지 모른다. 강 씨의 눈동자가 더 이상 안 보여 죽은 물고기처럼 하얗게 뒤집힌 눈을 보고 나서야 멈추었다. 

내 동생 예빈아. 미안하다. 평생 깡패 짓을 하고 다니는 이 쓰레기 같은 나를 오빠라고 많이 챙겨주고 그랬지. 너의 아름다운 결혼식 신부 드레스는 내가 꼭 보고 싶었는데… 
다음 생에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좋은 오빠로 다시 만나. 
​*** 서울시장 집무실. 

“시장님. 집에 안 들어가십니까? 늦었습니다.”

비서실장 조규태가 밤늦게까지 집무실에서 서류를 만지는 시장 유성렬을 걱정되어 물었다. 

“이제 가야지.”

유성렬은 지친 몸을 일으키며 옷걸이에 걸려있는 검은색 슈트를 집었다. 

”저 시장님. 오늘 남주혁이 풀려나왔답니다.“

조규태의 말에 내내 무표정이던 유성렬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벌써? 좀 더 묶어놓으라고 했을 텐데. 전달이 제대로 안 됐나?”

“그게…”

조규태는 유성렬의 질책에 한 템포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소속사 대표가 인맥을 이용해서 꽤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한 듯합니다. 원래 처음부터 증거 부족이었고 그날 사망한 시간으로 보나 남주혁이 범인일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

”그럼! 내 아들이 범인이란 소린가!!“

온화해 보이던 유성렬이 본색을 드러내 듯이 책상을 쾅 내리치며 조규태를 향해 사정없이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그 뜻으로 말한 건 아닙니다. 남주혁을 더 이상 구속시킬 명분이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유성렬의 호통에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돋은 조규태가 그를 향해 허리를 더 굽혔다. 
조규태의 안절부절못하는 태도에 유성렬은 크게 숨을 내쉬고는 무거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절대 내 아들이 그 집에 갔었다는 말이 새어나가서는 안 될걸세. 곧 대선이라 나한테 그 어떤 흠집도 생기면 안 되니까.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시장님. ”

“아, 그리고.”

서류를 챙기려는 조규태를 향해 유성렬이 또 입을 열었다. 

“그 뭐였더라?  남주혁?”

“네. 맞습니다.”

“허튼짓하고 다니는 게 아닌지 좀 지켜봐.”

“알겠습니다.”

유성렬은 짜증 나는 속내를 꾹 누르며 헛기침을 하고는 집무실에서  나갔다. 

그런 유성렬을 허리를 굽혀 배웅하고는 조규태는 바로 누군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남주혁이 요즘 누구를 만나고 뭐하고 다니는지 일일이 다 보고하도록 해. 시장님 지시야.”

주혁은 꿈에도 몰랐다.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을 그렇게 밟고 다니는 줄은. 

그리고 혜주의 죽음에는 자신이 모르는 음모가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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