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속에 내가 산다면 7~8

단차 | 2023.11.16 15:35:35 댓글: 4 조회: 381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18074
7.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2)


서연은 소파에 앉아서 하은과 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이 굴러가는 소리에 이어 볼링핀이 쓰러지는 소리가 사방에 울리면서 들려왔다.

더블 스트라이크를 치고 온 하은이 좋아서 방방 뛰었다.

“와, 언니 봤어? 하, 나 진짜 멋있었어. 나는 역시 볼링에 재능이 있나 봐.”

하은이 기쁨을 주체 못 하고 서연의 두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그러게, 몇 번 안 쳐봤다더니 잘하는데?”

“오, 하은 씨 대단한데? 멋지다 멋져!”

그 옆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과장되게 호응을 해주는 재현이었다.

처음에는 방 탈출 카페에 가자고 하더니, 왜 볼링장에 와있는 건지 서연도 의문이었다.

카페에서 셋이, 셋이라고 해 봤자 하은과 재현이 열심히 떠들긴 했지만, 어느 정도 지켜보니 알게 된 건 그들의 대화 주제가 어디로 튈지 예측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은 씨, 우리 내기할래? 진 사람은 저녁 사기 어때?”

아직 서연의 손을 잡고 놓지 않고 있던 하은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 좋아! 언니도 할 거지?”

서연이 난감한 듯 웃으며 답했다.

“그냥 둘이 하는 게 어때? 나는 알다시피 도랑 전문이라서.”
“흠, 뭔가 아쉬운데.”

하은이 머리를 긁적이며 재현을 돌아보자, 재현이 가까이 다가왔다.

“누나, 내기 시작하기 전에 내가 볼링 치는 거 좀 알려줄까?”
“그게 그렇게 금방 배울 수 없을걸?”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연을 본 재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구경만 하면 재미없잖아. 정 안되면 몇 번 해보기만 하고 내기는 나랑 하은이가 할게.”
“그래, 뭐 좋아.”

서연은 재현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누가 와도 저 무해한 미소를 보면 무조건 예스만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현이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며 공을 잡은 채 자세를 잡고 서서 볼링핀 쪽을 쳐다보다가 볼링공을 부드럽게 던졌다.

공이 직선으로 굴러가더니 볼링핀을 아홉 개를 쓰러뜨리고, 곧 하나 남은 볼링핀이 기우뚱하더니 마저 쓰러졌다.

재현은 으쓱하더니 서연을 돌아보았다.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눈빛이라 신기한 마음에 그를 쳐다보니 서연의 시선을 마주한 재현이 싱긋 웃으며 그녀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설마 윙크한건 아니겠지.’

서연은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섰다.

“저거 어떻게 한 거야?”
“나도 잘하진 않아.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하하.”

“겸손한 척하는거 아니야?”
“물론 누나 가르칠 실력은 되지.”

재현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자신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재현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누나, 진짜 다른 의미로 대단한데?”
“응, 칭찬 고마워.”

서연이 그의 시선을 피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도 그럴 듯이 서연은 나름 열심히 해본다고 했지만, 도랑파기 전문가로 거듭날 뿐이었다.

어쩌다 한번 핀을 3개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 문제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재현을 뒤로 하고 서연이 어느새 뻐근해진 팔을 주무르며 소파에 가서 털썩 앉았다.

하은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헛기침했다.

“나는 이쯤 할게. 둘이 내기하고 있어.”
“그래, 언니. 고생했어.”

하은이 그런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며 어깨를 토닥였다.

“언니. 연습은 다음에 나랑 같이 더하자. 오늘은 내가 대신 재현이 멋지게 이겨줄게.”

하은이 비장하게 선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짓 진지한 척하는 하은의 표정을 보니 민망한 와중에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세 좋게 나간 하은이와 재현은 나름 치열하게 경기를 이어 나갔다.

약간의 점수 차로 이기고 돌아온 하은이 서연에게 하이 파이브를 했다.

“언니, 내가 대신 복수해 줬어. 잘했지? 칭찬해 줘. 헤헤.”
“그래, 우리 하은이 수고했어.”

망연하게 점수 전광판을 쳐다보던 재현이 뒤늦게 둘 옆으로 걸어왔다.

“아, 나 원래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았어.”
“응, 다음 패배자의 변명.”

재현이의 말에 하은이 코웃음을 쳤다.

서연은 내기하기 전에 재현의 힘을 빼놓은 자신 때문에 그의 실력이 부진했던 건 아닌지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들었다.

재현을 보니 딱히 크게 아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기에 졌으니까, 저녁은 내가 살게.”
“좋다, 좋아. 재현 씨. 비싼 거로 사줘.”

하은이 신나서 옷을 챙기고 신발장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신발을 갈아 신은 서연은 코너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재현을 만나 같이 걸어갔다.

재현이 서연의 걸음을 맞추며 물어봤다.

“누나, 내가 자주 가는 파스타집이 있는데 파스타 괜찮아?”
“음, 파스타 좋지.”

서연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가 다녀 본 가게 중에서 제일 맛집이거든. 맛은 보장해.”
“오, 맛집 많이 다녀봤나 봐.”

“응, 맛집 찾아서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다니는 게 내 취미야.”

자랑스럽게 답하는 재현을 보던 서연의 시선이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있는 하은의 뒤를 쫓았다.

그들은 골목 뒤 편에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 있는 가게에 들어섰다.

둘러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한 가게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인테리어를 신경을 쓴 티가 났고 좌석도 반 이상은 차 있었다.

깔끔한 좌석과 널찍한 내부 때문에 모퉁이마다 크고 작은 오브제와 화병들이 놓여있음에도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저녁이라 더 분위기 좋은 아늑한 조명과 은은한 음악이 부드럽게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여기는 데이트하러 오는 곳 아니야?”

하은이 두리번거리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뭐 데이트하러 와도 좋고, 여기 파스타가 진짜 맛있어.”

재현이 하은의 혼잣말 같은 질문에도 냉큼 대답했다.

“여기서 바로 주문하면 돼.”

재현이 테이블에 놓인 주문용 태블릿을 가리켰다.




8.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3)


재현은 태블릿을 가운데 가져와서 메뉴를 천천히 넘겼다.

“여기 뭐가 맛있어? 추천 좀 해줘 봐.”
“어떤 종류를 좋아해? 토마토, 크림, 오일 종류별로 다 있어. 내가 먹어봤을 땐 봉골레 파스타가 맛있었어.”

하은이 서연을 돌아보았다.

“아, 그럼 나 그거 먹을래. 언니는 뭐 먹고 싶어?”
“나는 크림 파스타로 할게.”

익숙하게 메뉴를 주문 한 재현은 물을 가져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하은, 너 무슨 생각으로 쟤 데려온 거야?”
“아, 재현이가 언니랑 단둘이 있으면 언니가 불편해하는 것 같다며 같이 만나서 놀자고 하길래.”

하은이 뭐가 문제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답하자, 서연은 헛웃음이 나왔다.

“재현이가 언니 마음에 든다는데, 언니가 보기엔 별로야?”
“아무리 그래도 좀 아니지 않아? 나이 차이도 있고. 게다가 아직 학생이고.”

하은이 재현이가 사라진 방향을 슬쩍 보더니 서연이 쪽에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언니, 걱정하지 마. 쟤 돈 많아.”
“야, 나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정 그렇다면 나처럼 친하게만 지내도 되고.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 언니.”

하은이 두 손을 들고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음악의 노래 가사를 흥얼거렸다.

얼마 안 지나 직원이 천천히 트레이를 끌고 와서 식기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직원이 트레이에 놓여 있는 불투명하고 예쁜 유리병을 탁자에 올렸다.

“여기 물이에요.”

일반적인 가게에서 나오는 물병은 아니었다.

의아하게 보고 있던 하은이 세팅된 식기와 물잔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요, 저희 세 사람인데요?”
“아. 손님, 여기 네 분 예약하신 거 맞아요.”

직원이 가볍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떴다.

“뭐야, 누가 더 오나? 그리고 물이 셀프가 아닌데? 무슨 이벤트지?”

하은이 나지막이 내뱉고는 독특한 디자인의 물병을 기울여 물을 따라서 서연에게 건넸다.

“설마 꽃다발 사 오고 그런 거면, 나 쟤랑 친하게 안 지낸다 진심.”
“그럴 리가.”

문득 엉뚱한 소리를 내뱉으며 몸서리치는 하은이 말에 서연은 내심 불안해하며 답했다.

“어, 저기 온다. 재현이.”

하은의 말에 쳐다보니 재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빈손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 들어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저 사람이 왜?”

그 누군가의 실루엣이 드러나자 당황스러운 마음이 툭 나와버리고 말았다.

“뭐야? 언니, 아는 사람이야?”
“아, 저번에 재현이 만난 날에 잠깐 보긴 했어.”

그러거나 말거나 재현은 기분 좋게 성큼 다가왔다.

“누나, 지민이 형이 마침 근처라길래 오라고 했어. 합석 괜찮지?”

‘데려오고 나서 물어보면 어떡하라는 거지?’

서연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하은이 재현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너무하네. 나는? 나한테는 왜 안 물어봐?”

“뭐 하은 씨야, 무조건 좋다고 할 거잖아.”
“치.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군. 분하다.”

지민은 벌써 떠들썩한 하은과 재현을 잠깐 쳐다보다가 슬쩍 자리에 앉았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진 서연과 다르게 그는 뭔 일이 있었냐는 듯 덤덤해 보였다.

밝은 곳에서 보니, 그날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게 보였다.

“형, 서연이 누나랑은 저번에 인사했지?”

지민은 서연을 쳐다보면서 작은 인사 제스처를 보냈다.

서연도 반사적으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하은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재현과 지민을 번갈아 보았다.

“근데 나한테는 소개 안 해줘?”
“아, 나랑 친한 형이야. 이름은 차지민이고.”

재현이 앉자마자 재촉하는 하은에게 답했다.

“오 그럼, 오빠네? 반가워요. 저는 이하은이라고 해요.”
“네, 반가워요. 하은 씨.”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물론 오빠도 말 편하게 하셔도 되고요.”
“뭐 어떻게 부르건 상관은 없는데, 말 편하게 하는 건 천천히 할게요.”

“아, 그러시구나. 뭐 천천히 하는 것도 좋죠.”

그의 정중한 거절에 하은이 머쓱하게 웃고는 물잔에 물을 마저 따라서 두 사람에게 건넸다.

‘성격 한결같네.’

서연은 물잔을 내려놓으면서 하은을 살폈다. 
하은은 별로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언뜻 서연에게 머무는 듯해서 돌아보니 그는 시선을 재현에게 돌려버렸다.

‘나 저 사람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찍힌 거 아니야?’

서연은 파스타가 과연 잘 넘어갈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재현이랑 동갑인데, 지민 오빠는 몇 살이에요?”
“네 살 더 많아요. 그쪽보다.”

“아. 그래요. 하하. 하시는 일은 어떻게 돼요?"
"그냥, 회사 다녀요."

하은은 그의 연이은 단답형의 말투에 약간은 당황한 눈치였다.

재현은 버퍼링 걸린 듯한 하은을 보더니 헛기침하며 말을 꺼냈다.

“맞다. 우리 여기 온 김에 와인이라도 한잔하는 게 어때?”
“와인? 좋지. 너의 지갑을 거덜 내야겠어!”

금세 텐션을 회복한 하은이 즐겁게 그의 말을 받았다.

네 사람이 앉아있었지만, 말을 하는 건 어쩐지 두 사람뿐이었다.

가끔 하은이나 재현이 서연과 지민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하는 게 다였다.

서연은 슬슬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한 참이라 가볍게 반응이나 하고 미소만 지었다.

메뉴가 나오고 나서 겨우 조용해졌다 싶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자 두 번째로 2인 토크쇼가 시작되었다.

반쯤 와인을 들이킨 하은이 잔을 내려놓더니 새삼스러운 듯 말했다.

“그런데 지금 나랑 재현 씨만 말하는 것 같네. 그렇지? 재현 씨?”
“그러게, 우리만 재밌는 거 아니야? 누나. 괜찮아?”

재현이 옆에 앉아있던 지민의 눈치를 보다가 갸웃하고는 서연을 보며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좀 피곤해서.”
“응? 볼링은 우리가 더 많이 쳤는데 억울하네.”

하은이 의아한 듯 말하고 웃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나온 서연은 뭐라 할 말을 고르다가 그냥 같이 웃었다.

재현이 빈 와인잔을 가볍게 돌리다가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는 게 어때?”
“응, 그래도 되는데, 대신 내일 또 봐 우리.”

하은이 덥석 대답하자 재현이 피식 웃고는 지민을 돌아보았다.

“형, 차 가지고 왔지? 우리 좀 데려다줘. 술 안 마셨잖아.”

지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지민은 와인 대신 물만 마시고 있었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7 06:32:46

서연이랑 지민이 사기면 둘다 말없어서 재미없을것같은데 재현이랑
엮자면 서연이는 연하 좋아하지 않는것같고.갑자기 둘이나 나타나
갖고 혼란스럽게 만드네요.

이러다 둘다 놓치는거 아닐까? 에라모르겟다.근데 여기서도 봉골레
파스타가 나오네요.

단차 (♡.252.♡.103) - 2023/11/17 06:45:11

그렇죠? 내성적인 사람끼리 어떻게 만나게 될까요.

그리고 봉골레 파스타가 등장한건 어쩔 수 없어요. 제가 파스타 좋아하니까요.ㅋㅋ

요보요보 (♡.93.♡.223) - 2023/11/24 11:15:03

재현은 정말 멍청하군요, 서연에게 저런 엄청난 훈남을 소개시켜주다니..

단차 (♡.252.♡.103) - 2023/11/24 11:23:50

그런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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