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년 in 제주

lian1124 | 2018.05.13 11:56:41 댓글: 29 조회: 3923 추천: 14
분류타향수기 https://life.moyiza.kr/mywriting/3626002

내가 살던 고향은 길림성 소속 꽃피는 산골이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향긋한 봄내음을 맡으며 모닝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건 우리 동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1년 365일 코를 찌르는 소똥 냄새과 더불어 길을 걷다보면 누구 집 게사니가 목을 빼들고 쫓아오지를 않나…또 누구집에서는 툭하면 돼지가 담을 넘어 뛰쳐나와서는 온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만들군 했다.무슨 명절만 되면 남녀노소가 다 모여 이번엔 보신탕 다음엔 추어탕 하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술판에 춤자락을 날리군 했다.어릴 때 부터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던 나는,난 이런데서 살 사람이 아니야! 라는 착각과 동시에 나중에 커서 보란 듯이 대도시에서 살테야 !라는 꿈을 무럭무럭 키워갔다.

그로부터 20년도 넘는 세월이 흘러 나도 서른살의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있는 이곳은 바로 제주도,그것도 제주도 도민이 되어 살고 있다. 어린 시절 그토록 꿈꿔왔던 도시 꿈은 보기 좋게 무산된 체 한국의 농촌에서 살고 있다. 소똥냄새 대신 말똥냄새를 맡으면서 말이다.

제주도에는 전철이 없다. 내가 사는 곳은 제주에서도 서쪽 촌구석이라 버스도 1시간에 한대, 24시 편의점은 이곳 실정에 맞게 저녁 10시까지만 운영된다.외롭다느니 촌구석 같다느니 젊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고 지지리 궁상을 떨며 내년엔 서울 올라가야지 하고 노래 부른지도 3년째다.그러면서도 아직도 떠나지 않은 이유는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 지금도 아리쏭하지만 분명한건 제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 가 있기 때문이 아닐가?


내가 제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단 공짜를 좋아하는 나를 매료 시킨 도민 혜택이 라는게 있다. 국내 항공권 할인은 물론 , 모든 제주도 관광지는 도민무료 또는 도민 할인 이라는게 적용된다.겨울철 보건소에 가서 제주도 주소가 박힌 신분증을 내밀면 공짜로 독감주사도 맞을 수 있다.

제주도 바다

나는 수영은 잘 못하지만 바다는 엄청 좋아한다. 제주 바다는 지역에 따라 그 빛깔도 다르다.유명한 걸 꼽자면 동쪽엔 에메랄드 빛 함덕해변이 있고 서쪽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검푸른 빛 협재해변이 있다.도민들이 제일 좋아하는 해변가로는 노천탕이 딸린 곽지과물해변,그리고 제주에서 최고로 깨끗하다는 중문 색달해변이 있다.여름에 해수욕장이 개장하면 남자들은 비키니 입은 미녀를 기웃거리고 여자들은(정확히 말하면 나는) 어디 잘 생긴 근육남이 없나 힐끔거린다. 가끔은 한강을 보며 우울감에 젖어있다는 강남 사모님들을 어설프게 흉내내며 감성에 푹 빠지기도 한다.어릴 적 마을앞 작은 강이 젤 큰 줄만 알았던 꼬마가 이제는 큰 바다를 마주서 있다. 세상은 참 넓고 크다.

제주도 음식

나는 먹성이 좋아서 어디를 가든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제주도로 왔으니 다이어트는 그야말로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불판에서 지글지글 흑돼지 고기 익어가는 소리,냄비에서 보글보글 갈치조림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내 몸에서도 덕지덕지 살이 붙는 소리가 들린다.관광지에 가면 어렵잖게 제주도 해녀들이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물을 맛볼 수 있고 5일에 한번 열리는 민속오일장에는 제주 특산품에 국수,전,떡볶이,튀김, 순대 막걸리 등등 없는것이 없어 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정신줄을 놓게 된다. 제주에서만 먹을수 있는 옥돔구이,밀면,몸국,보리빵,오메기떡도 맛있지만 밭에서 직접 따먹는 감귤 또한 꿀맛이다.

제주도 오름

오름은 제주 방언에서 자그마한 산이라는 뜻이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제외하고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단성화산을 말하는데 제주도에는 크고 작은 오름이 360개나 된다.운동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지만 그래도 나름 자부하는게 있다면 오름 오르기이다. 대표적인걸 꼽자면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된 거문 오름, 해마다 3월에 들불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삼둥이가 갔다 온 용눈이 오름이 있다. 그리고 가장 예쁜 오름으로 선정된 저지오름과 효리네 민박에서 소개된 백약이 오름도 있다.제주의 전망대라고도 불리우는 오름에 오르면 싱그러운 제주 전경을 즐길수 있고 운이 좋으면 예쁜 일몰도 구경할 수 있다. 제주 가을은 오름을 타고 온다. 하늘 높고 말이 살찌는 제주도의 가을은 오름 전체가 억새로 은빛물결을 이룬다.


제주도 사람

제주도는 삼다도 그리고 삼무도라고 알려져 있다. 삼다도 인즉 여자가 많고 바람이 많고 돌이 많다는 뜻이고 삼무도란 대문이 없고 거지가 없고 도적이 없다는 말이다.제주도 여자라면 해녀를 일컫는 말이다.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물질하며 해산물을 체취하는 해녀들을 볼수 있는데 이들은 제주 바다와 함께 억척스레 살아온 ,잠수장비 없이 어려운 작업 환경을 딛고 생업을 영위해 온 제주 여성의 상징이다.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소중한 해녀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 바로 제주도이다.

삼무도 라는 말에서는 정직하고 순박한 제주도민들의 심성을 엿볼 수 있다.칠칠맞아서 뭘 잘 흘리고 다니는 나라서 제주 생활 3년이래 지갑,핸드폰 수도 없이 잃어버렸지만 그때마다 누군가에 의해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오군 했다.처음 혼자 제주에 놀러왔을 때 길을 몰라 헤매이는 나를 정류소까지 데려다주고 어디어디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줬던 학생, 얼떨결에 들린 미술관에서 드립커피 한잔 시키고 죽쳐 앉아있는 내게 직접 만드신 쿠키랑 한라봉을 주시던 관장님,펜션 체크인 시간이 늦어지자 걱정되어 관광지까지 마중나오신 펜션 사장님...지나가는 길에 귤밭이 있길래 하나 슬쩍 따다 주인한데 들켜 어디 내가 들어갈 만한 쥐구멍이 없나 찾고 있었더니 봉지 하나 주면서 많이 따가라고 하시던 주인 아주머니,그리고 제주도 첫 직장 다닐 때 외지에서 고생한다며 항상 계란후라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던 구내 식당 이모님.이렇게도 따뜻하고 인심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내 제주생활은 외롭지 만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제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릴적 내가 살던 동네와 닮아서 일지도 모르겠다.어렸을 때 명절이라서, 풍년이 들어서, 날이 좋아서 등 온갖 이유를 만들어 잔치를 하던 우리 동네처럼 제주도에도 이런저런 축제가 많다. 벚꽃이 피면 벚꽃 축제, 유채꽃이 피면 유채꽃 축제, 귤의 섬 답게 감귤 축제에다 반딧불 축제, 하다못해 걷기 축제까지 있다.9월이면 제주도 대표 축제인 탐라 문화제가 열린다.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생활을 즐기는 그 모습들은 어느 순간 어릴적 동네 사람들 모습과 겹쳐 온다. 빡빡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유로움이다. 전철 타러 뛰어다니고 야근에 시달리고 미세먼지에 눈쌀 찌프려지는 것 또한 제주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또 어쩌면 나 자신이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촌년이여서 촌에서 살 운명을 타고 난건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살리라!고 맹세에 맹세를 거듭하며 북경에 있는 대학에 갔더니 일본의 어느 한적한 시골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한국에 오게 되어 서울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리라 다짐했건만 제주도 정착한지가 3년째다. 이렇듯 촌에서 태여나 도시를 비껴가서는 다시 촌으로 가는 내 운명,나에게 도시꿈은 한낮 개 꿈에 불과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더이상 촌생활이 싫지 않다는 점이다. 가슴 시원히 뚫리는 상쾌한 공기가 좋고, 철 따라 피어나는 꽃향기가 좋고 서로 나눠먹고 도와주는 시골 인심이 좋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진 않더라도 얼굴에 가장 예쁘고 순진한 웃음이 걸려있던 시절이 촌에서 살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 英小莲在济州

추천 (14) 선물 (0명)
IP: ♡.43.♡.73
럭키2018 (♡.70.♡.53) - 2018/05/13 15:41:08

추천...

럭키2018 (♡.70.♡.53) - 2018/05/13 15:42:16

날이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는 꽃피고 새가우는 논밭에 뭍혀서? 씨뿌려 가꾸면서 땀을 흘리며? 냇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조용히 살고파라 강촌에 살고싶네? 해가지면 뻐꾹새가 구슬피게 우는밤? 희미한 등불밑에 모여앉아서? 다정한 친구들과 정을 나누고? 흙내음 마시며 내일위해 일하며? 조용히 살고파라 강촌에 살고싶네

lian1124 (♡.43.♡.73) - 2018/05/13 17:43:51

조용한 강촌에서 물 흐르듯이 살고싶네요.ㅎㅎ

20141006 (♡.108.♡.117) - 2018/05/13 21:47:43

멋있네요~ 잘보고 갑니다

lian1124 (♡.223.♡.14) - 2018/05/13 22:06:50

감사해요^^

asiana988 (♡.65.♡.95) - 2018/05/14 08:25:24

내가 원하지만 할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님이 부럽습니다~

lian1124 (♡.223.♡.14) - 2018/05/14 10:14:29

글을 쓰면서 그동안 내게 없는건만 쫓아다니다가 얼마나 소중한걸 잊고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어요.어떤 생활을 하시든 행복하세요~~

악플담당 (♡.36.♡.142) - 2018/05/14 10:52:31

글이 너무 길어서 보다 짜증나서
지금 댓글 갈깁니다 ㅎㅎ
감성이 풍부하시고 글도 아주 구수하게
잘 엮었습니다.
제주도는 저도 두번 가봤습니다
서귀포시에 사시나 보는데요

옛날에 영감들이항상 옆집김치가 맛있다고
햇듯이 제주도 자랑을 그렇게 왕창 느려
놓으시고 서울 좋다하면 좀 모순 되기도 하고요~
사람은 욕심이란 끝이 없어요
아무리 소똥냄새든 말똥냄새든
주어진 현실을 만족하고 살아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lian1124 (♡.223.♡.14) - 2018/05/14 13:51:44

이왕 댓글 남기시는거 다 읽고 남기셨음 하네요.제주도 자랑해놓고 서울 좋다고 한적 없는데...
남의 떡이 커보일 순 있어도 가장 소중한 건 내 손에 쥔 떡입니다.

부코푸 (♡.173.♡.250) - 2018/05/14 13:42:30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 계셔서 너무 부럽네요~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항상 행복하세요~

lian1124 (♡.223.♡.14) - 2018/05/14 13:55:37

감사해요,부코푸 님도 항상 행복하세요~~

nilaiya (♡.116.♡.216) - 2018/05/14 19:25:41

그곳에서가정 이루 거나 아님 마음 드는 사람있나 보죠

lian1124 (♡.223.♡.14) - 2018/05/14 21:05:20

마음에 드는 사람은 많아요~ㅋㅋ

nilaiya (♡.116.♡.216) - 2018/05/14 22:05:37

아이.고런거 말구 그런거..

lian1124 (♡.223.♡.14) - 2018/05/15 08:54:46

고런거 말고 그런거 도 있어요 ㅎ

벼랑우에새 (♡.161.♡.36) - 2018/05/14 21:55:24

시내의 좋은점이란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할수 있다는것 뿐이지요~
그러나 필요치 않은게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소음, 혼잡, 자동차방귀...
그러나 농촌의 냄새가 얼마나 구수합니까~
이젠 소를 기르지 않지만 그 우사칸의 냄새~ 아~~ 소똥냄새는 아름답지요~ 허허~
그런 닭똥이나 돼지똥과는 사뭇 다른 그리운 냄새지요~

lian1124 (♡.223.♡.14) - 2018/05/15 08:55:39

농촌 냄새 구수하죠~

기계사람 (♡.38.♡.122) - 2018/05/15 11:42:40

글을 재주있게 잘 썼네요......
개인이사 혼자서 어떻게 편하게 나름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옆에서 보느라면, 능력있는 사람은 그래도 대도시서 활개차게 자신 가치를 맘끗 펼치면서 사는게 보기 좋죠......ㅋㅋ

lian1124 (♡.223.♡.14) - 2018/05/16 12:35:30

글쎄요...인생 사 정답이 있나요,마음 가는대로 사는거죠~

bhb525 (♡.214.♡.124) - 2018/05/15 12:57:20

잘보고갑니다

lian1124 (♡.223.♡.14) - 2018/05/16 12:35:47

감사요^^

파란하늘5 (♡.10.♡.215) - 2018/05/18 12:37:02

구수하고 정감이 넘쳐나는 글 ...댓글까지 잘 읽엇읍니다...님의 말처럼 남의 손에 떡은 남의 손에거일뿐입니다...내손의 떡을 소중이 아낄즐 알고 즐길줄 아는게 정답이 아닐가싶습니다...제주도 ,아름다운 곳이지요...여러번 갓엇지만 님이 쓴 글을 읽고나니 다시 한번 가보고싶어졋어요 님의 글에서 읽은 내용들 다시한번 상기하면서...ㅎㅎ

lian1124 (♡.249.♡.163) - 2018/05/18 15:10:16

제 글속에 담긴 내용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에요~ㅎㅎ
다음에 오시면 구제주 앞돈지 라는 식당에 가셔서 쥐치조림 함 드셔보셔요
도민 맛집이에요 ~

sxnt9 (♡.211.♡.204) - 2018/05/28 09:55:23

잘보고갑니다

lian1124 (♡.223.♡.71) - 2018/06/01 15:38:23

감사요^^

초초마미 (♡.13.♡.117) - 2018/05/28 15:54:00

글 참 재미있게 쓰셨네요.
고향의정도 느낄수 있고 남들이 다 가고싶어하는
곳이기두 하고
공기 좋고 물 좋고 산좋고 사람도 좋아
참 부럽네요

lian1124 (♡.223.♡.71) - 2018/06/01 15:41:53

감사해요~늘 행복하세요^^

아이줌 (♡.47.♡.42) - 2018/05/29 17:43:02

홍보대사 하셔두 되겟슴다 ㅎㅎㅎ

글 읽다 보니 또 가보구 싶게 만드네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lian1124 (♡.223.♡.71) - 2018/06/01 15:51:06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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