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20)

혜원1008 | 2018.12.20 08:48:37 댓글: 14 조회: 2964 추천: 18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3797698

나 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혜원

4 장 투쟁의 꽃

(4)

점쟁이를 찾거나 사주팔자를 보거나 하면 보통 그런 말들을 들어봤을것이다. 초년운, 중년운, 말년운 이라고. 사주팔자를 풀어주는 책들을 보면 대개 사람들은 평범하게 공평한 운때를 가지고 태어나드라. 내가 말하는 공평함이란 태여날때부터 다 똑같다는게 아니다. 우리의 신은 굉장히 똑똑하고 또 엄청 정확한 저울을 가지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초년운이 좋은 사람한테는 불운한 중년을 행복한 중년한테는 고생스런 말년을 결국은 복이라는 것을 골고루 나누어 주곤 했다. 한 사람이 백가지 복을 다 독차지 할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이지 불운한 초년을 겪는다고 아니면 정말정말 힘든 중년을 겪는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좌절할건 없다. 그건 곧 말년에 남들이 누릴수 없는 어마어마한 행운이 눈앞에 뚝 하고 떨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어떠한 부분에서 힘들어진다고 해도 그 또한 그 부분일뿐 반드시 다른 한 쪽은 남들보다 쉽게 넘어가게끔 할것이니 진정 하늘이 무너져내릴 만큼 힘들더라도 태양이 더이상 떠오르지 못할듯이 깜깜하고 절망적이더라도 우린 애써 눈을 비벼 그 다른 한쪽 희망스런쪽을 찾아가야 한다. 똑같은 이치로 한때 젊음에 잠깐의 부귀영화나 명예에 너무 으시대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건 그냥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아주 잠깐 좋은 운을 맞이 하였을뿐 결코 평생갈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것이니까말이다.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일수록 겸손할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숙이는 참 힘겨운 초년운을 타고 났다. 아마 우리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불운을 평생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나 접해봤을것이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순탄치 않은 만큼 우리의 경숙이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굳세져갔다. 돌은 정을 맞아야지 예술적인 조각이 되듯이 그렇게 경숙이 인생은 점점 아름답게 완성이 되어 갔다. 그건 결코 그 누구의 덕도 아닌 오로지 경숙이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차례차례 바뀌어 갈때까지 경숙이는 책속에 뭍혀서 살았다. 사무실 직원들은 의아해 했다. 청소용 걸레를 든채 태정태세문단세...’하면서 조선왕조 역대 왕들을 외우고 있는 이 특별한청소직원을 보면서 말이다. 간혼 호기심에 머 하냐고 질문하는 직원들도 있었고 수능준비 한다는 경숙이 말에 다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곤 했다. 그 어떤 나라에 그 어떤 사람들이던 간에 포기할수 없는 꿈과 피터지는 노력에 대해선 다들 경의를 표시하니까 말이다.간혼 도와주겠다는 직원들도 있어서 경숙이는 정말이지 새로운 세상에 온 느낌까지 받았다. 그리고 한겨울 손끝이 얼어붙는 추위와 함께 대망의 그날이 왔다. 대한민국은 수능시험을 겨울 11월에 본다. 경숙이는 3년전에 이루지 못한 대학시험의 꿈을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이루었다.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능시험장에 들어서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경숙이는 혼자 시험장에 들어갔다. 누가 올 사람도 없었고 몇달전 한국에 와서 건축일 하고 있는 아버지 한테는 알리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굳이 누가 따라올 필요또한 없었다. 어차피 경숙이 혼자서 오로지 독립적으로 완성해가야 하는게 인생이라는것을 경숙이는 명백히 아니까.(박경숙 화이팅. 열심히 했으니까 후회는 없어. 끝까지 최선을 다 하면 되는것이야...) 화이팅이라는 말을 경숙이는 한국에 와서 배웠다. 영어의 싸우자(Fighting)을 이나라는 그렇게 한국식으로 발음했다. 그래 함 싸우자.. 어차피 이 세상이 다 덤벼오는 판에 피할데도 없는판에 정면승부가 최고의 선택이지. 경숙이는 씩씩하게 시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경숙이 몰래 멀리 길 건너엔 익숙한 그림자가 있었다. 창휘는 이날 경숙이가 시험보는걸 안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1년전에 경숙이를 정대표한테 맡길때까지만 해도 경숙이가 컴퓨터 용어를 잔뜩 적어가지고 물어본다고 찾아올때까지만 해도 결코 경숙이가 수능까지 도전할줄은 몰랐었다. 도대체 이 여자의 끝은 어딘가? 그 어떤 시련과 난관도 우리의 경숙이를 쓰러뜨릴순 없었고 결국 수능을 잘보는가 못보는가를 떠나서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 도전할 용기조차 없었을텐데 그러한 부분에서 우리의 경숙이는 이미 승자였다. 경숙이를 응원 할려고 시간 맞춰서 시험장에 온 창휘는 손에 이쁘게 포장한 달콤한 엿사탕(한국은 시험에 잘 붙으라고 엿을 선물한다.)도 들고 있었다. 이제 시험 다 보고 나오면 짠 하고 선물을 건네야지. 창휘는 옷깃을 여미면서 마음속으로 화이팅을 웨쳤다.

사실 우리의 경숙이는 단한번도 혼자인적이 없었다. 지금 시험장에 들어간 이 순간도 말이다. 경숙이를 응원하는 또 한사람 정대표가 있으니까. 시험 날짜를 경숙이는 정대표한테 따로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대신 시험 보는날 휴가를 신청했고 정대표는 말없이 휴가신청서에 싸인을 해줬다.그 흔한 시험잘봐도 없이 말이다. 그래도 오늘날까지 온게 다 정대표덕이여서 경숙이는 너무 많이 고마웠다. 이제 시험을 잘 보고 나면 꼭 크게 한턱 쏘리다.. 경숙이는 알지 못했다.사실 우리의 츤데레 정대표가 언녕 거기에 있었다는것을. 아침일찍 시험장 멀찌감치 차를 대놓고 시험장 들어가는 경숙이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신은 경숙이한테 온갖 시련을 주고 온갖 괴롭힘을 주는대신 항상 경숙이 곁에 의지할수 있는 귀인들을 숨겨놓았다. 언젠가 부터 경숙이는 그걸 느낄수 있었고 더이상 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 모든것들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경숙이는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수능이라는 관문을 아주 훌륭하게 넘어버렸다. 이제 경숙이는 오매불망 바라던 대학생이 되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꽤 알아주는 성균관대 무역학과에 말이다.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은날 경숙이랑 엄마는 수화기를 잡고 한동안 울었다. 엄마는 이젠 여한이 없다고 하셨다.

대학 등록금이 문제가 되긴 하였지만 그부분은 정대표가 흔쾌히 빌려준다고 했고 이듬해부턴 장학금을 받을수 있어서 경숙이의 대학생 생활을 가능케 하였다. 경숙이는 낮에는 대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밤에는 정대표네 회사에서 미국 유럽 야간대응팀으로 일을 할수 있었고 공부하는동안 경숙이는 하루에 4시간씩 잠을 자며 버텼다. 그래도 대학다니는 내내 경숙이는 반에서 손꼽힐 만큼 공부를 잘했다. 그도그럴것이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이제 인생역전을 위해 필사적으로 목숨걸고 공부하는 경숙이를 지금껏 공부만 해온 수능통과하고 약간은 풀린 애들이 이길방법은 없었다. 몸은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항상 즐거웠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바로 실무적으로 써먹을수 있어서 경숙이의 업무능력또한 나날이 향상이 되었다. 그리고 1994년 중국과 대한민국은 정식적으로 수교하였고 1995년 그니까 경숙이가 대학 들어간 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중한무역이 활발히 진행 되었다. 경숙이한테는 더할나위 없이 잘된 일이였다. 정대표네 회사는 이제 미국 유럽뿐 아니고 중국쪽으로도 수출 수입 업무가 많이 진행되었고 때마침 거기엔 중국어가 능통한 우리의 경숙이가 있었다. 서류업무부터 나중의 전화대응까지 경숙이는 정대표의 완벽한 조력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경숙이의 인생이 한창 꽃을 피워가고 있을때 또 한명의 꽃을 피워가고 있는 분이 있었으니 바로 경숙이의 아버지였다.처음 한국에 와서 경숙이 아버지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철로에서 승무원일에 역무실업무를 해온게 다여서 처음 한국에 노가다판에 뛰어들었을땐 정말말이지 오야지 말대로 완전히 폐인이였고 쓸모없는사람이였다. 제일 밑바닥 벽돌나르는 일 조차도 잘 못했으니 말이다. 저녁에 숙소에만 들어오면 삭신이 쑤셔왔고 파스 없이는 하루도 잠들수가 없었다. 그래도 버텼다. 한국에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했을때 마중나온 경숙이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몰래 울었었다. 2년 좀 된 사이에 통실통실하고 밝기만 하던 딸은 온데간데 없고 아버지 눈앞에 서있는 사람은 서른이 훌쩍 넘어가 보이는 이혼녀가 돼 있는 비쩍 마른 경숙이였으니까 말이다. 저것이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저렇게 됐을까 싶었지만 그것을 묻지는 않았다. 무슨 자격으로 묻겠는가... 부모가 못나서 어린 딸네미를 그 고생을 시켜놓고 말이다. 아버지는 힘들때마다 경숙이를 떠올렸다. 이제 사무직으로 일한다고 하는데 본인이 뼈가 부서지더라도 결코 경숙이를 더이상 고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가느다란 팔다리는 결국 노가다 판에서 점점 굵어가고 나이 50넘어서 어린 놈의 오야지 한테 온갖 자존심 상하는 욕지거리를 다 받아내면서 버텼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의 큰딸이 대학에 붙었다고 했다. 그것도 한국에 있는 유명한 대학에 말이다. 아버지는 그날 같이 일하는 최씨랑 고량주를 왕창 마셨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껏 취했다. <우리 딸이.. 우리 큰 딸이 한국에 대학에 붙었다재요...> 이 말만 무한반복하면서 많이 우셨다. 지난 세월동안 느꼈던 모멸감따윈 한꺼번에 날려줄수 있는 그런 소식이였다. 이제 오야지가 아무리 잘난척 해도 경숙이 아버지는 코방귀를 뀔수가 있었다. (~ 그래봤자 무식한 니놈이랑 다르게 우리 딸년은 대학생이라고...) 경숙이가 학업에 무역사무에 눈이 아홉이 되어가며 매진을 하고 있을때 우리의 아버지도 열심히 노력을 가했고 팔다리 성한데 없이 여기저기 데어가면서 배운 용접기술덕에 일당도 꽤 쏠쏠해졌다. 단 아쉬운건 비오는 날엔 건축공사장 대부분에서 일을 할수가 없는 상황이였고 남들은 다 날씨만 탓하면서 쉬고 있을때 경숙이 아버지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비오는 날엔 어김없이 실내 인테리어노가다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경숙이의 대학생꿈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아버지의 아파트 꿈도 점차 가까워 졌다. 이제 아버지는 통장잔고에 늘어가는 동그라미를 바라보며 웃을수가 있었다.

모든 일들이 이제부터 행운만 있을거라고 희망차게 나아가고 있을때 고향에 계신 경숙이 엄마는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다. 그 생각은 예전부터 오랫동안 머리속을 맴돌고 있었고 경숙이가 대학에 붙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날저녁 확고해 졌다. 그날부터 엄마는 약을 점차 줄여갔고 투석도 한번씩 건너뛰었다. 엄마의 병이 다 나아서냐고? 그럴리가 있겠는가... 이제 경숙이 엄마는 일주일에 투석 두번씩 꼬박꼬박 받아야지 유지가 되는 정도였다. 그 외에 복용하고 있는 약 또한 값이 만만찮은 수입약들이였다. 이제 여한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였다. 그 동안 이 부질없는 목숨을 끈질기게 잡고 있었던건 그렇게 팔려간경숙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떠나고싶지 않아서였다. 그때 그냥 그렇게는 도저히 눈을 감을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괜찮을거 같았다. 아직 어린 철용이가 마음에 걸리기도 하지만 어차피 삶에 대한 욕심을 다 채워갈수는 없을터.. 그럴바엔 차라리 경숙이랑 애들 아버지라도 덜 힘들게 자기가 먼저 떠나는게 맞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계속 치료받는다고 해도 이 병은 그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였으니까 말있다. 경숙이가 한창 공부에 매진하고 있을때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인생의 성취감을 바야흐로 맛보고 있을때... 그리고 아내와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고자 아버지가 쉬는 날 없이 불티들과 싸움을 하고 있을때... 그렇게 서서히 엄마는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몰랐다. 이 희망찬 시점에 이 새로운 삶이 보이는 시점에 엄마의 생명의 불씨는 도리여 점점 꺼져가고 있다는것을... 경숙이가 한국에 도착한지 4년뒤 엄마랑 울면서 헤어진지 4년만에 엄마는 돌아가셨다. 예고도 없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그날도 웃으면서 병원간다고 나가신 엄마는 차디찬 길바닥에 쓰러졌고 그렇게 집이랑 몇백미터 떨어진 길에서 숨을 거뒀다. 경숙이랑 아버지는 허둥지둥 한국에서 달려왔으나 안치실엔 싸늘히 식어있는 경숙이 엄마의 시신뿐이였다. 경숙이는 엄마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집에 언녕 다녀오려고 했었는데 사실 국적을 취득한 그날에도 당장 비행기티켓을 끊어 엄마 보러 갈려고 했었는데.. 아니 그 때가 아니더라도 수능 합격통지서를 받고 나서도... 그 뒤에도 여러번... 엄마 본지 몇년이 돼가면서 언젠가는 엄마 보러 연길에 한번 갈려고 했었다. 그 놈에 돈 돈 돈 때문만 아니면 말이다. 항상 티켓 값을 확인하곤 관뒀었다. 그 돈이면 혜숙이 학비를 보탤수가 있었고 또 그 돈이면 엄마 한테 옷 할벌 사보낼수 있었고 또 그 돈이면 엄마 약값이라도 보탤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남은건 후회뿐이였다. 결국 그 개도 않먹는 돈을 아낄려다가 우리의 불쌍한 경숙이는 엄마 임종조차도 못보고 그렇게 차디찬 길바닥에서 돌아가신 엄마를 한평생 가슴에 묻어야 했다.

가족이 중요한가 돈이 중요한가 물으면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가족이 중요하다고 대답할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선택한다. 있을때 잘해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경숙이는 엄마 유골을 두만강에 뿌렸다. 엄마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된 유서에는 그리 적혀져 있었다. 두만강 물을 타고 굽이굽이 흘러다니면서 못다한 세상구경 하고 싶다고 말이다...

엄마가 그렇게 가시고1년뒤 경숙이네는 연길시에 집중난방아파트를 장만했다. 아버지는 꿈을 이루셨지만 대신 웃음을 잃으셨다. 아파트는 그때 당시 제일 유행하는 스타일을 본따 아버지가 직접 자재를 구하면서 인테리어를 하셨지만 정장 입주 하고는 채 일주일도 않돼 아버지는 다시 한국으로 오셨다. 말로는 이제 집을 샀으니 돈 모아서 애들 뒤바라지 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경숙이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없는 집이 아무리 이쁜들 아버지한테 따듯함이 남아 있겠나 말이다... 결국 모든걸 다 포기하면서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이랑 떨어져 사는걸 선택해서 바꿔온 값비싼 아파트지만 정작 거기엔 할머니와 철용이만 외로이 살고 아버지랑 경숙이는 한국에 혜숙이는 대학기숙사에 엄마는 하늘나라에 ...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무엇을 위해 한국으로 떠났던가? 과연 가족을 위한게 맞았었던가? 경숙이는 그 답을 찾을수가 없었다.

다들 행복을 위해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쓴다. 그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타향살이도 마다하고 남의나라 대한민국에 와서 온갖 무시를 견디면서 몸도 마음도 상처만 더해가면서 일을 하고 또 해서 돈을 벌어 모으곤 했다. 그러기를 30년 다 돼가는 지금 과연 몇사람이나 행복을 얻었는지 묻고 싶다. 떠날땐 다들 무슨 대단한 영광의 길에 들어서는 듯이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새옷에 새신발 맞춰신고 신나서 떠나지... 정작 당신들은 그걸 아는가? 세월이라는건 흘러가는 물과 같은거라서 흘러흘러 지나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수 없다는것을.. 그리하여 당신이 타향살이 하면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흘러보낸 그 아까운 시간은 사실 부부사이 서로 의지하고 다독이면서 삶을 가꿔나가야 했던 시간이고 엉금엉금 기는 자식이 커가면서 재롱부리는걸 만끽하며 천륜의 낙을 느껴야 했던 시간이며 결코 사랑으로 정으로 온 집을 서로서로 따뜻하게 데워가면서 가족이 있어서 이 차디찬 세상에서 결코 외롭지 않고 주머니가 좀 비였더라도 마음만은 풍성한 그런 삶을 느낄 기회였다는것을... 그대는 아는가, 얼마나 소중한걸 잃었었는지?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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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839 (♡.164.♡.104) - 2018/12/20 09:03:10

오늘은 기쁨.감동.슬픔이 섞인 기분속에서 글을 봤습니다.
정대표와 강변은 경숙이 인생에 더없이 고마운.분들이시고 마음
따뜻한 분들이십니다.경숙이 어머님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셔서
가엾습니다.오늘은 읽어내려가면서 눈물투성이가 됐습니다.

레몬나무 (♡.216.♡.95) - 2018/12/20 09:22:24

잘 읽었습니다 이젠 경숙이한테도 해뜰날이 오네요.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한국행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보건대는 경제상에서 많은걸 얻은것 같지만 실제는 잃은것이 더욱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은 항상 다 같이 한집에서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국에 가서 고생하는것만큼 고향에서 고생하면 한가족이 먹고 사는데는 아무런 영향없이 함께 살수 있지 않을까요 ?한족들은 해외로 안나가도 너무나 다들 한가족이 고향에서 잘 살잖습니까?한꺼번에 큰돈을 쥐려하지말고 하나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는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쓸데없는 소비와 자존심,승격심 등은 버리고요. 참으로 작가님의 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임자이 (♡.108.♡.136) - 2018/12/20 10:05:04

다음회 기대 합니다

해피아이디어 (♡.14.♡.100) - 2018/12/20 10:07:45

역시 경숙이는 해냈네요! 야무진 경숙이!
우리조선족사회의 30년을 경숙이 인생을 통하여 생동하게 서술하여 주셨네요.
어느 고마운 감독님이 드라마로 찍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나간 세월속에서 우리조선족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후대들에게 남길수 있는 교훈은 어떤것들인가?
저희어머님 세대의 무작정 출국행이 자식들의 대학행을 이루어주었지만
우리 젊은 세대도 부모님세대처럼 비젼이 없는 무작정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할수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될런지, 어떻게 자기것을 지켜야하는지...
이 모든것들이 우리 30대, 40대가 고민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kim제니하루 (♡.34.♡.209) - 2018/12/20 10:16:04

잘 읽었습니다.요즘은 작가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여 너무 고맙습니다.다음집 기대합니다.

hengz (♡.238.♡.236) - 2018/12/20 10:26:42

날짜와 횟수를 똑같이 맞춰가면서 매일 올리시는 작가님 센스 만점입니다.
이렇게 쭉 템포 맞춰가시기를 응원합니다ㅎㅎ
오랜만에 모이자에서 이렇게 좋은 글을 읽습니다.
오늘 편을 보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드네요..
설에 고향 가지만 한달 남짓한 남은날들이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동해원 (♡.35.♡.186) - 2018/12/20 10:35:37

아무말필요없이 추천입니다,

핑핑엄마 (♡.194.♡.121) - 2018/12/20 11:05:58

아, 눈물나네요.마작막 구절 너무너무 맘에 와 닿습니다. 우리 조선족의 출로는 어디에 있을가요 ?

이쁜아짐 (♡.131.♡.162) - 2018/12/20 11:18:30

혜원님을 처으엔 그냥 경숙이 본인인줄알고

그냥 자기실화를 쓰는 일반인으로

생각했는데

문장표현력이나 서술능력이

작가수준이시네요

덕분에 매일 잘보고 있습니다

해브꿋타임 (♡.167.♡.50) - 2018/12/20 12:18:00

참 많은것을 느끼고 갑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보라빛추억 (♡.6.♡.74) - 2018/12/20 14:37:35

마지막구절 너무 공감이 됩니다. 그 돈을 위해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소중한것들을 잃고 사는지.
어머니를 살리려고 꿈 청춘 다 포기하고 한국에 팔리다싶이 갔는데 결국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네요.
또한 이게 많은 중국조선족들의 축영이죠.

그래도 여전사같은 경숙이한테 너무 탄복이 됩니다. 나도 경숙이처럼 노력해서 좀 더 좋은 미래를 맞이해야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잎새7 (♡.151.♡.138) - 2018/12/20 17:45:48

글 쓰신분 너무 대단하십니다~ 담회도 기대합니다.

해피투투 (♡.37.♡.93) - 2018/12/20 20:10:09

임할매가 너무나 고맙네요!

그리고 주변 귀인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이 하루하루 성장해나가는 경숙이가 너무나 대단합니다!

독신남자 (♡.111.♡.233) - 2018/12/21 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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