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31)

개미남 | 2019.06.14 11:23:10 댓글: 0 조회: 457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3936816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 - 6.

우에다 시게오는 네모난 장기 말처럼 턱이 튀어나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 어깨까지 움츠리고 있으니 목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기무라 일행 앞에 앉은 그는 내내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도난 신고를 하지 않아 경찰로부터 혹시나 벌금형이라도 맞는 게 아닌가. 잔뜩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면 이 DVD는 모두 댁의 상품이라고 인정하는 거지요?"
하기무라의 물음에 우에다는 짧은 목을 더욱더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아마 그럴 거예요."
"아마. 라니‥‥‥?"
"아, 그게 아니고. 네. 우리 상품이겠죠. 네. 틀림없어요." 꾸벅꾸벅 머리를 숙였다.
요코스카 경찰서 회의실에서 하기무라는 가시와바라와 함께 우에다 시게오의 사정청취를 하고 있었다. 회의 책상 위에는 도난 차량에서 발견된 DVD며 낡은 가방이 놓여 있었다.
"피해가 별로 큰 것도 아니고, 경찰에 신고하면 이래저래 조사를 하실 거고, 그러면 우리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거 아닙니까. 우리 같은 업종은 하루라도 쉬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예요. 게다가 가게를 갑자기 쉬어버리면 손님들한테도 피해가 가거든요. 그러니 우선은 신고를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우에다는 꼭 뒤에 손을 대며 계속 머리를 숙였다.
하기무라는 가방을 우에다 앞으로 밀어놓았다.
"이 가방, 본 적 있어요?"
우에다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건 모르겠는데요? 정말이예요. 이런 가방은 본 적도 없어요. 내 것이 아닙니다. 쓰지모토 가방인가?"
"쓰지모토 씨에게는 이 가방 사진을 보여줬는데 모른다고 했어요."
"그렇습니까? 그럼 역시 우리 것이 아니네요." 우에다는 말했다.
하기무라는 가방 안에서 몇 개의 비닐봉투를 꺼냈다. 가방 안에 있던 것은 하나하나 투명한 비닐봉투에 넣은 것이었다.
"이 중에 당신이 아는 물품이 있습니까?"
우에다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책상에 펼쳐진 것을 바라보았다. 빈 사탕 깡통, 지갑, 손목시계, 콤팩트, 루주였다.
이윽고 우에다는 손목시계가 들어 있는 봉투에 손을 내밀었다. 그것을 찬찬히 관찰한 뒤에 책상에 다시 내려놓았다.
"모르겠어요. 전부 다 내 것이 아닙니다."
"시계를 살펴보시던데?"
"나한테도 그 비슷한 시계가 있어서 한 번 들여다본 것뿐이예요. 하지만 전혀 다른 거군요."
하기무라는 가시와바라 쪽을 보았다.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벽장은 언제부터 그런 상태였어요?" 가시와바라가 우에다에게 물었다.
"그런 상태라는 건 무슨?"
"팔다 남은 DVD를 아무렇게나 쌓아뒀던데, 언제부터 그런 모양새였느냐는 거예요."
"아하하. 아, 그게 언제부터였나."
우에다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한참이나 그쪽에는 손을 못 댔어요. 1년‥‥‥. 아니지, 좀 더 오래 됐나. 마지막으로 그 벽장을 열어본 게?"
"도둑맞은 DVD에는 2년 전의 라벨이 붙어 있던데요." 하기무라가 말했다.
"아. 그렇지, 그래요. 그러니까 그 DVD를 벽장에 넣어둔 게 라벨을 죄다 새로 붙인 직후였을 겁니다. 역시 2년은 더 되었네요."
"그럼 가게 시작했을 때부터 벽장에 재고품을 넣어뒀어요?" 가시와바라가 물었다.
우에다는 턱을 쑥 내밀며 몇 번을 끄덕였다.
"그렇죠. 그 가게를 처음 빌렸을 때는 이층을 사무실 같은 거로 쓸 생각이었어요. 근데 막상 가게를 열고 보니 사무실 같은 건 필요도 없고. 그 대신 재고를 보관해둘 장소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뭐. 벽장까지 다 그런 식으로 쓰게 됐죠. 벽장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이층은 죄다 창고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잘 좀 생각해봐요." 가시와바라는 선 채로 책상에 두 손을 짚고, 앉아 있는 우에다를 내려다보듯이 윗몸을 쓰윽 내밀었다.
"당신 말고 이층을 드나든 사람. 혹은 예전에 드나들었던 사람은 없어요? 아주 짧은 기간이라도 괜찮은데."
우에다는 기가 질린 듯 몸을 슬쩍 뒤로 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은 없었을 텐데? 그야 뭐, 종업원이 몇 번 바뀌었으니까 누군가 마음대로 개인 소지품을 거기 놔두는 일은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일일이 파악할 수가 없어요."
"그럼 창고로 쓰기 전에는 어땠어요? 이층은 어떤 상태였지요?"
"창고로 쓰기 전에? 그야 그냥 빈 방이었죠. 그러니 재고품을 거기 갖다둔 겁니다."
가시와바라는 하기무라를 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질문할 사항은 더 이상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하기무라는 알아보았다.
"저어‥‥‥." 하면서 우에다가 눈을 슬쩍 치뜨며 바라보았다.
"이건 어떤 사건의 취조예요? 그 이층이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는요, 거기에 팔다 남은 DVD를 놔뒀을 뿐이지 이상한 물건을 감추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아, 취조가 아니예요. 그저 수사에 협력해주십사 하는 것뿐입니다." 하기무라가 말했다.
"근데 왜 요코스카 경찰서지요? 우리 가게는 관할구역 밖이잖아요?"
"이 물건들이 요코스카 경찰서 관내에서 발견된 도난 차량에서 나왔거든요."
"아아, 도난 차량이‥‥‥."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댁의 가게에 침입한 절도범에 대해 뭔가 짐작 가는 건 없어요? 예전 종업원이 가게 안을 잘 아는 점을 이용해서 자기가 다니던 직장에 물건을 훔치러 오는 일도 많은데."
우에다는 얼굴을 찌푸리며 양 입 끝을 축 늘어뜨린 채 생각에 잠겼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우리 가게에 도둑질하러 와봤자 훑어갈 게 없다는 건 걔들이 가장 잘 알 테니까요."
하기무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에게서 의미 있는 정보는 얻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또 뭔가 문의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잘 부탁합니다." 우에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도 됩니까?"
"네. 돌아가셔도 됩니다."
"이건 어떻게 되지요?" 우에다는 책상 위의 DVD를 보았다.
"우선은 도난 신고부터 해주셔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필요한 수속이 끝나면 돌려드리도록 하지요."
하기무라의 설명에 우에다는 미적지근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방을 나갔다.
가시와바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 아저씨, 도난 신고도 하기 싫고, DVD도 받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네."
"수속하기도 귀찮고, 이런 재고품은 돌려받아봤자 처치 곤란한 모양이죠. 그나저나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에다는 관계가 없을까요?"
"응, 관계없을 거야." 가시와바라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가방을 봤을 때도 딱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 연기는 아닌 거 같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예요. 하지만 이 물건들이 그 가게의 벽장 안에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책상 위에 늘어놓은 비닐봉투들을 보며 하기무라는 말했다.
가시와바라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루주였다.
"이 루주의 뚜껑이 거기에 떨어져 있었으니, 그렇겠지?"
그 루주는 도난 차량 안에서 발견된 시점에는 뚜껑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가시와바라가 손에 들고 있는 루주는 분명하게 뚜껑이 덮여 있었다.
그 뚜껑은 <굿 소프트> 이층의 벽장 안에 있었던 것이다. 하기무라 자신이 발견했다.
그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하기무라는 즉각 도난 차량에서 발견된 루주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가시와바라에게 연락하여 <굿 소프트>까지 루주를 가져와 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확인해본바, 뚜껑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현재 <굿 소프트>의 이층에는 감식반이 투입되었다. 이제 곧 결과가 나올 테지만, 도난 차량을 탔던 인물이 그곳에 침입했다는 건 일단 틀림없을 거라고 하기무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 감식반 친구하고 전화로 이야기했는데, 그 벽장의 점검구는 역시 최근에 열린 것으로 보인다던데?" 가시와바라가 말했다.
"벽장의 천장 말이지요?"
"응." 가시와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건 더 자세히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누군가 최근에 천장 위쪽을 더듬어본 흔적이 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그 위로 올라간 건 아니고 점검구로 손을 넣어서 위를 더듬어본 정도인 모양이야."
"쓰지모토나 우에다도 천장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 가는 게 없는 눈치였어요. 그러면 역시 도둑의 소행인 걸까요?"
"그렇게 보는 게 맞겠지." 가시와바라는 회의 책상에 놓인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절도 상습범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그리 큰 수확이 없을 경우에는 우선 벽장 천장 위를 들여다본다고 하더라고. 운이 좋으면 비상금 감춰둔 것이나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넣어둔 보물을 발견하는 수가 있대."
"아,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사탕 통은 천장 위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걸 도둑이 훔쳐냈다는 거겠죠?"
"그리 대단한 게 들어 있지는 않지만 맨손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훔쳐냈을 거야. 그 참에 DVD도 가져왔다ㅡ. 대충 그런 거 아닐까?"
"절도범의 실토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건 이미 물 건너간 얘기가 됐네요."
"아니, 아직 죽었다고 결론이 난 건 아니라고."
"그야 그렇습니다만."
간논자키 바다에서 발견된 보트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였다. 즉 그 비슷한 익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물결에 휩쓸렸을 경우에는 사체가 우라가스이도를 통해 외해로 떠내려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절도범이 살았건 죽었건 이번 사건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요. 문제는 누가 사탕 깡통을 천장 위에 감췄는가 하는 거겠죠."
"그건 글쎄‥‥‥."
뭔가 좀 더 말을 하려던 가시와바라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냈다. 매너모드로 착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두세 마디 이야기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우리 쪽 감식반에서 온 거야. 우에다나 쓰지모토도 시계의 지문과는 일치하지 않았대."
"역시."
"이걸로 <굿 소프트>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게 분명해졌군."
하기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의 비닐봉투로 시선을 돌렸다. 금시계가 들어 있는 봉투였다.
그 금시계에만 비교적 또렷한 지문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살해된 아리아케 유키히로나 도코의 지문이 아니라는 건 14년 전의 자료와 대조하여 이미 확인해두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가시와바라가 물어왔다.
"<굿 소프트> 쪽을 더 조사해봐야죠."
"그 가게를? 감식 결과라면 우리한테 보내주기로 되어 있어."
"부동산에 한번 가보려고요." 하기무라가 대답했다. "사탕 통을 거기에 감춰둔 건 우에다가 그 가게를 빌리기 전인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듣기로 가게 수리는 일층 매장 쪽만 한 것 같았어요."
"아, 그렇군." 가시와바라는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그럼, 가보자고."
우에다에게 전화를 걸어 <굿 소프트>의 건물주를 확인해보았다. 요코하마 역 바로 옆에 있는 부동산중개소에서 임대를 대행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와 둘이서 그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빌딩 일층의 부동산중개소 사무실에서 담당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안경을 쓴 젊은 남자 직원이었다.
"그 점포는 몇 차례 세입자가 바뀌었어요. 땅 주인이 의상실을 해보려고 건물을 지었는데 장사가 잘 안 되니까 남에게 임대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남자 직원은 파일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지금 임대한 사람 이전에는 누가 사용했었지요?" 하기무라가 물었다.
"<굿 소프트> 이전에 말입니까? 으음, 음식점이군요. <도가미 정>이라는 식당이예요."
"<도가미 정>?"
"이렇게 씁니다."
남자 직원이 파일의 해당 페이지를 하기무라 쪽으로 보여주었다. <도가미 정亭>이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도가미 정‥‥‥.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하기무라 옆에서 가시와바라가 중얼거렸다.
직원이 뺨을 풀며 슬쩍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요즘은 아주 유명한 양식당이 되었죠."
"양식당?" 그 말에 하기무라가 반응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틀림없어요?"
남자 직원은 안경 안쪽의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는 듯 의아한 얼굴이었다.
"네. 그 <도가미 정>이 그 자리에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그 점포에서 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좀 더 큰 곳으로 이전하고 체인점을 내고 그렇게 점점 커졌다고 하던데요? 하야시라이스가 아주 호평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아, 이건 그저 전임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하기무라는 가시와바라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굿 소프트> 이전에 점포를 임대했던 것은 <아리아케>와 꼭같은 양식당이었다.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ㅡ.
"<굿 소프트>에 임대했을 때, 일층을 수리했다고 하던데 이층은 어땠어요? 이층도 공사를 했나?" 가시와바라가 물었다. 유난히 담담한 어조였지만, 아마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탓일 거라고 하기무라는 짐작했다.
남자 직원은 다시 파일을 들여다보았다.
"임대 계약 후에 우에다 씨 쪽에서 수리를 한 것 같군요. 여기 기록으로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일층 부분만 수리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층 부분은 손을 대지 않았을 거예요."
"혹시 건물주 쪽에서 이층을 수리했다는 기록은 없어요?"
"그렇습니다. 아마 청소 정도는 했는지 모르지만 대대적인 수리는 하지 않은 듯합니다."
부동산중개소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하기무라는 가시와바라에게 말했다.
"DVD 가게 이전에 양식당이였다니,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
가시와바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휴대전화를 꺼들었다.
"그 친구한테 물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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