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피장편 6

3학년2반 | 2022.01.02 07:45:22 댓글: 0 조회: 857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057
  제 6장 제자
  1
  심의의 집에는 행랑방이 둘이 있는데  한 방에는 상길이 내외가 있고 다른 한 
방에는 홀어미 모자가  있었다. 그 홀어미는 아들의 이름이 유복이라  심의의 집
에서 유복 어멈이라고  불렀다. 유복 어멈은 본래가 황해도 강령  사람으로 남편
이 허무한 죄에 서울로 잡혀오게  되어서 그 뒤를 따라왔다가 남편은 옥에서 죽
고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때에  갖바치의 지시로 심의의 집에 와서 행랑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유복  어멈의 남편은 농군이었다. 그러나 아이적에 글방에 다니
며 꼬부랑 글자 낱을 배워두었던  까닭에 구실집 수 적은 것쯤은 곧잘 알아보아
서 동네에서 대접을  받던 농군이었다. 서울로 잡혀오던 해 여름에  가뭄이 몹시 
심하였는데 품꾼 두 사람과 같이 밭벼의 이듬을 매다가 새들새들한 벼포기에 정
이 떨어져서 “이렇게  가물어서는 올 농사도 다 보았네. 요  몇해지간은 연년이 
살년이니 사람이 살  수 있나. 이게 다른  까닭이 아니야. 서울 조재상이 벼슬을 
잘 살아서 우순풍조하고 국태민안하던 것인데, 상감이  소인의 말을 듣고 조재상
을 죽인 까닭에 하느님이 역정이 난 것이야.  금년에 각골 봉물짐이 서울로 올라
가는 것을 보지. 조재상이 있으면  될 일인가. 상감 못 만난 덕으로 우리 백성만 
못 살아.” 하고 수다스럽게 지껄이었더니 그때 품꾼  두 사람중에 남의 집 머슴
으로 품앗이왔던 자가 무슨 큰  수나 날 줄 알고 슬그머니 서울 와서 고변을 하
였었다. 유복 어멈의 남편은 서울로 잡혀와서 마침내 맞아 죽고, 그때 품꾼의 한 
사람은 고변 아니한 죄로 볼기를 맞고, 큰  수를 바라던 머슴은 고변한 상급으로 
무명 세  필을 받았었다. 유복 어멈은  단 내외 살다가 남편이  잡혀오니까 전후 
불계하고 뒤를 따라왔던 것인데  남편이 옥에서 죽고 보니 사고무친한 서울에서 
어찌할지 몰라서 옥문 밖에서 목을 놓고 울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가까이 와서 
“울지 말고  죽은 남편 감장할  도리를 생각하시오.”하고 친절하게  말하여 그 
사람과 말을 하게 되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혜화문 안 갖바치였
다.
  갖바치가 지시하여 심의의 힘을 입어서 죽은 사람을 장사도 지내게 되었고 또 
그 집에 와서 행랑살이도  하게 되었다. 행랑살이를 시작한 뒤 두어  달 만에 유
복이를 낳았는데, 유복자라고  유복이란 이름을 지었다. 유복이가 대여섯 살되며
부터 갖바치에게  다니며 글을 배우게  되었는데 유복의 글동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갖바치의 이웃에서 사는  이 봉학이라는 아이였다.  봉학의 아버지는 
이학년이라는 유명한 사람인데 그 아버지가 비명에 죽게 되며 그 어머니가 놀라 
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남편의  졸곡도 못 지내고 남편의 뒤를 따르게 되어
서 돌도 채 지내지 못한 봉학이가 외조모  손에서 암죽으로 길려나게 되었다. 봉
학이가 나이로는 유복이보다 한  살 손위이지만 몸이 가냘프고 약하여 유복이보
다 어려 보이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르고 약은  것은 유복이는 고사하고 나이 이
십이 가까운 갖바치의 아들 금동이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금동이는 갖바치의 첩의 소생인데  부모와는 딴판으로 우락부락한 위인이었다. 
갖바치가 엄하게 구는 까닭으로 갖바치가 집에 있는 때는 안방 구석에 처박히어 
꿈쩍을 못하지만, 갖바치가  어디 출입을 하고 집에 없는 때는  바깥방에 나와서 
봉학이와 유복이를  데리고 무식스럽게 장난을  하였다. 꿀밤을 준다고  두 아이 
머리를 밤톨같이 부릍게  하기는 예사이었다. 이 까닭에 두 아이는  그 선생님인 
갖바치가 출입만 하면 성문턱에  올라가서 흙장난을 할망정 방에 들어앉았지 아
니하였다. 누가 말하였던지  선생이 이것을 알고 하루는 출입을 하면서  두 아이
를 보고 “장난을 하더라도  방에서 해라. 성문턱에 올라가지 마라.” 하고 일러
서 두 아이가 방에서 바스락장난을  하고 있는데 금동이가 옳다 좋다 하고 나와
서 두 아이를 볶기 시작하여  두 아이가 애구 소리를 지를 때 방문이 열리며 선
생이 들어섰다. 금동이는 쥐구멍을 찾았다. 선생이 금동이를 앞에 꿇어앉히고 이 
다음에 또다시 아이들을  귀찮게 하면 눈앞에 두고  보지 않을 터이라고 준절히 
일러 내보냈다.  그 뒤에 금동이가 한번  저의 아버지 없는 틈에  아이들 데리고 
못비 장난을 하였더니 그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며 곧 금동을 불러세우고 “내가 
이른 말이 있는데 그 동안  잊었단 말이냐? 너는 오늘부터 집에 있지 말고 나가
거라.” 하고 호령하여  내쫓아서 금동의 어머니가 빌다 빌다 못하고  마침내 유
복의 주인의 청으로 간신히 용서를 받게 되었다.  그 뒤로는 금동이가 두 아이를 
밉게는 볼망정 머리에 밤톨은 만들지 못하였다.
  2
  심의가 원래 갖바치와  상종이 잦아서 하루도 몇번씩  왔다갔다 하던 터에 그 
형님의 복제를 당한  뒤로는 갖바치의 집에 와서 줄곧 살다시피  하였다. 아이들
은 선생님이 두  분 있는 셈이라 심의를 심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갖바치를 주인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때 봉학이와 유복이는 여망은  살씩 되었고 금동이는 이
십여 세의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금동이는 양주 백정 임돌이의 딸과  정혼 하였
다. 금동이의 스무남은  살은 과할 것이 없지마는 금동이와 동갑인  색시는 과년
한 터이라 혼인이 급하였다. 혼인을  완정하기는 삼사 년 전 이이나, 그 동안 색
시의 어머니 되는  사람이 죽어서 대 삼년하느라고 혼인이 늘어졌던  것이다. 색
시의 아버지 돌이는 데릴사위로 들어간 사람인데 데릴사위로 근 삼년 지내는 동
안에 장인 장모가 모두 죽고  내외 살림으로 살아오다가 안해가 죽고 보니 늙지 
아니한 사람이 홀아비 노릇하기가 어려운 것은 고사하고 집안 살림이 갑자기 주
장이 없어져서 혼인 대사를 지내도록 두서를 차리기가 어려운 까닭에 딸의 혼인 
전에 헌 여편네  하나를 얻었었다. 그리하여 금동의 어머니가 “사위  자랑 장모
라는데 갓 들어온  의붓장모가 무슨 사랑이 있겠느냐.” 하고 재미없이  말한 일
까지 있었다. 
  색시의 집에서 혼인을  재촉하여 정한 혼인날이 가까웠다.  신랑의 옷가지까지
라도 심의의 집에서  돌보아주었다. 금동이가 관례하여 상투를 쪼진 지  며칠 아
니되어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기었다. 그것은 보삼에 잡혀간 이야기다. 그때 여편
내의 개가는 막히고 사주팔자는 꼭  믿던 까닭에 대가집 딸로서 과부 될 팔자라 
하면 액때움으로 보쌈을  하였는데, 안여편네들이 주장하여 하지마는  사랑 사나
이도 알면서 모른체하던 것이다. 어느 날 밤에  남부 혜민서 근처에 화재가 났었
다. 금동이가  갖바치 몰래 불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구리개를 지나오자, 
어느 어두운 옆골에서 건장한 사람 네댓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금동에세 와락 
대어들어 사지를 각각 붙들며 “이놈 찍 소리만  했다 보아라. 당장에 멱줄을 따
놓을 게니.” “이놈  꿈적 마라.” “아무 소리  말고 가민히 있으면 수가 생긴
다, 이놈.” 하고 여러  사람이 으름장을 놓으며 옆골목으로 끌고 들어와서 가죽
으로 만든 큰 자루 같은 것에 집어넣었다.  금동이는 물론 자루에 아니 들어가려
고 뻗대 보았지만 강약이 부동으로 할 수  없이 들어갔다. 소리를 지르려고 하였
으나 한 사람이 버선짝 같은 것으로 입을  틀어막아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여
러 사람이 가죽 자루 주둥이를  동이어 들것 같은데 얹고서 무엇으로 덮은 뒤에 
메고 일어섰다. 속에 든 금동이는 ‘귀신 모르는 죽음을 하는 것이다.’ 하고 생
각하였다. 가기는 자꾸 가나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가는 동안이 오래니 만치 여
러 십리를 가는 것 같았다.  얼마 동안이 지난 뒤에 들것이 땅에 놓이었다. 금동
이는 산인지 강인지를 몰랐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왔소?” 하고 간단히 
묻는 말소리가 들리었다.  들것 위에 있는 가죽자루를 두어 사람이  앞뒤로 어깨 
위에 엇메는 것  같았다. 또다시 어디로 가는데 내려갔다 꼬불꼬불  돌았다 하는 
것이 험한 길로 들어가는것 같았으나 군데군데  인기척이 들리었다.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 가죽자루가 땅에 놓이었다. 자루 주둥이를 끄르고 금동이를 내놓았다. 
화려하게 꾸민 방안에 홍촛불이 키어 있고 아랫묵에  화려한 금침이 펴 있다. 메
고 온 사람들이 자루를 가지고 나간 뒤에 영창문이 열리며 화려한 옷을 입은 여
자 두 사람이 꽃같이 꾸민  색시 하나를 부축하고 들어와서 곱게 않혀놓고 나갔
다. 문은 밖으로  닫히었다. 금동이는 눈이 현황하였다. 꿈인지  생신지 의심하였
다. 눈앞에 꽃 같은  색시가 그림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차츰차츰 앞으로 나
가서 색시의 손을 만져보았다.  쇠기름 덩이로 만든 손 같았다. 금동이는 조금조
금씩 담이 커지며  색시를 금침 속으로 끌어보았다. 색시는 벙어리같이  말 한마
디도 없이 끄는  대로 끌리었다. 금동이가 잠이 들었다가 몸을  건드리는 바람에 
눈을 떠서 보니 같이 누웠던  색시는 간 곳 없이 없어지고 메고 왔던 건장한 사
람들이 방안에 들어섰다. 올  때와 달리 금동이의 두 팔을 결박하였다. 그리하고 
가죽자루에 넣었다.  금동이는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금동이는 자루 속에서 
구리개로 도로 갖다  주려니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안이 올 때보다  더 오래되
는 것 같더니 갖다놓이는 자리가 땅바닥  같지 아니하였다. 금동이가 가죽자루에
서 나와 보니 강물에  떠서 있는 배 속이었다. 이것이 웬일인가  하고 누인 채로 
누워 있자니까 뱃사공이  배를 강물 한중간으로 저어  나가더니 여러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금동이를  보고 “호강한 값을 받아라.” 하고 눈짓하며  금동이가 항
거할 사이도 없이 여러 사람이  함께 결박한 금동이를 번쩍 들어서 강물에 풍덩 
집어넣었다. 
  3
  금동이가 초저녁에 나가서 밤중까지 들어오지 아니하니 금동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여러 번  문간을 내다보기까지 하였다. 안에서 혼자 기다리다  못하여 바
깥방에 나와서 방문을 조그만치 열고 들여다보니 심의는 누워 있고 갖바치는 신
창을 달고 있다. “여보 나  좀 보시요.” 하고 목소리를 알아들을 만치 말을 하
였더니 갖바치는 “왜  그래?” 하고 돌아보지도 아니한다. 심의가  갖바치 내외
의 말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앉으며 갖바치를 보고 “좀 들어가  보지그려.” 하
고 권하여 갖바치는  그제야 손에 잡았던 일거리를  놓고 돌아보면서 다시 “왜 
그래?” 하고 물으니  금동 어머니가 문 밖에서 말하였다.  “금동이가 초저녁에 
나가더니 이때까지 들어오지 아니하니 무슨 일일까요?” “낸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나.” “불구경을 간 모양인데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닐까요?” “불구경에
서 난 독은 불구경으로 씻어야지.” 하고 갖바치가  빙그레 웃으니 남의 맘 졸이
는 것을 생각지  않고 맘 편하게 웃는다고 금동  어머니는 방문을 톡 하고 닫았
다. “아들에게 너무 범연한  것도 병이야.” 하고 심의가 옆에서 웃으니 갖바치
는 “아들인지 무엇인지.” 하고 곧 뒤를 이어서  “아비 소리 듣는 것만은 사실
이니까 그만한 책망은 지지요.” 하고 저으기 다시 웃었다. 문 밖에 있던 금동이 
어머니 귀에는 갖바치의  말에 뼈가 있는 것같이 들리었다. 갖바치가  고개를 문 
밖으로 돌리고 “여보, 금동이를 찾아와야 할 터이니까  첫닭 운 뒤에 곧 나와서 
나를 좀 깨워 주오.”하고  말하였다. 하필 첫닭울이에 찾으러 가려는 것은 무슨 
일인가. 금동 어머니는 괴상히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과연 닭이 첫홰치
며 나가서 “여보  여보.” 하고 방문을 두들기고 갖바치가 잠이  얕게 들었던지 
곧 “응, 알았어.”  하고 대답하고 일어났다. 같이 자던 심의도  잠이 깨어나 따
라 일어나니 갖바치가 “주무시지요. 나도 곧  도루 누울 터이오.” 하고 말하자, 
밖에서 듣던 금동 어머니가 “금동이를 찾으로 가신다더니?” 하고 나무라듯 말
하는데 갖바치는  방문을 열고 나와서 “가기는  어디를 가? 고만두고 안방으로 
들어가지.” 하고 딴청을 부리듯이 말하였다. “그러면 왜 남 잠도 못 자게 첫닭
울이에 깨어라 말아라 하셨단 말이오?” “잠을 좀 깨워 달라고 했기로 큰 낭패
될 것이 무어  있나. 이 사람이 소견도  빽빽하군.” 하고 갖바치는 허허 웃더니 
마당 한중간에 나와 서서  서남방을 향하고 입속으로 무어라고 중얼중얼하고 뜨
거운 국을 불듯이 후후 불기를 네댓 번 한 뒤에 도로 방으로 들어가며 금동어머
니더러 “걱정  말고 들어가서 자라구. 금동이는  내일 아침에 찾아올 것이니.” 
하고 말하였다. 금동 어머니는 맘에 좀 야속하나 어찌할 수 없었다. 안방으로 들
어가서 혼자 고시랑거리느라고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그날 밤에 여러 사람이 금동이를  집어넣고 돌아간 뒤 금동이는 처음에 물 속
으로 쑥 들어갔다가 다시 물 위에 불끈  솟았다. 금동이가 팔을 결박당하지 아니
하였더라도 헤엄을  치지 못하는 까닭에  살아나올 길이 없는데,  더구나 결박을 
당하여 허위적거리지도 못하니까  꼭 죽을 수 밖에 없이 되었다.  그런데 금동이
가 물 위에 솟았을 때,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서 물결을 치기 시작하며 금동이가 
물결에 밀리어 활  반 바탕 가량 떠내려와서 건너편 강가에  부딪치었다. 금동이
가 물을 토한 뒤에 가만히 생각하여 본즉 저의 몸이 모랫바닥 위에 와서 엎드러
져 있었다. 다시 죽을 힘을  다 들이어 용을 써서 등밀이로 올아왔다. 하늘에 별
이 총총한데 희미한 별빛이 비치어서 먼 데 서 있는 나무 형체가 알아볼 만하였
고, 먼 곳에서 우는 닭소리가 실날같이 들이었다. 금동이는 모든 것이 꿈속 같았
다. 그러나 추운  생각으로 생시인 것을 알았다. 몸이 얼어  굳을 것같이 추웠다. 
이가 딱딱 맞물리었다.  금동이가 추위를 배겨내느라고 애를 쓰는 중에  날이 새
게 되었다. 해뜨기  전 낚시질하러 나오는 어부가 모래사장에 누워  있는 금동이
를 보고 송장으로 놀랐다가 가까이 와서 산 사람인 것을 알고 결박한 것을 알고 
끌러주었다.
  4
  아침때 금동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금동이 어머니는  사설이 적지 않았으나 갖
바치는 앞에 와서 절하는 금동이를 보고 “살아  왔구나.” 하고 한마디 말한 뒤
에는 다른 말이  없었다. 금동이 어머니가 금동이의 일장 이야기를  듣고 “근래 
보쌈이라든가 무엇이  생겼다더니 네가  거기 걸려들었던게구나, 목숨을  부지한 
게 천행이다. 바람이 없어 물결이 잔잔했어면 어찌될  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슬
아슬하다.” 하고 금동이의 옷을 만지며 “옷은 어디서  말려 입었니?” 하고 묻
고 금동이가 “어부의  집에 가서 말려 입었소.” 하고 대답한즉  “데리고 가서 
옷까지 말려 입혔으니  고마운 사람이다.” 하고 일어서서 바꾸어 입을  옷을 찾
아다가 금동이를 주었다.  금동이 어머니는 어부의 고마운 것이 못  잊혀어서 “
어부가 내외 가진 사람이더냐?” 하고  물어본 뒤에 혼수 중의 세목 한 필을 끊
어내 내외의 버선을 짓고 버선목을 ‘보덕’이란 글자를 징거서 그동이 시켜 갖
다주게 하였다.
  이때 양주 돌이의 집에서는 대사 준비에  분주하였다. 대사에는 음식이 주장이
고 음식에는 고기가 주장인데 관포주의 집이라고  고기 걱정은 없지마는, 고기도 
먹게 만들려니 손이  돌아가야 하고 더구나 신랑  신부의 옷을 새로 짓노라니까 
자연히 분주할밖에 없었다.  동리 여편네로 와서 일하여 주는 사람이  없지 않지
마는 먹새 보탬가 떠드는  보탬이 절반이라 돌이가 안팎으로 드나들며 입방아를 
찧지 않을 수 없었다. 동리 여편제 중에  자살궂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는 돌이
를 보고 “사위를 보다가 나무신 굽이 닳겠네.”  하고 조롱하니 짚신 신은 발을 
내밀어 보이면서 “왜  나무신은? 멀쩡하니 짚신이요.”  하고  너털웃음을 웃는
데 그 여편네는 지지 아니하려고 “짚신이면  날이 나지라오.” 하고 야죽거리었
다.  “여보, 밉상부리지 마오.” “내가 밉상을  부리어? 참말로 밉상을 부려 볼
까?” “그래보지. 누가  말리오?” 그 여편네가 돌이의 발을 가리키며  “저 발
도 무던히 크지만 신랑의 발은 엄청나게 큰  게야.” 하고 부지런히 방으로 들어
가 자루같이 큰 진솔 버선 한 짝을 가지고 나와서 돌이를 보이며 “이것이 신랑
의 버선이라며? 이것이 자루지  버선이오? 소도적놈을 첫사위로 얻어오는 게지?
” “여보, 그게 무엇이 크오? 우리  사촌누이의 남편 이판서의 버선을 보았더면 
기함하겠구려.” “발이 크다고 판서하나?” “만수받이하고 있을 새가 없소. 내
가 지겠소.” 하고  돌이는 다시 너털웃음을 웃으며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다시 들어와서 “내가 처음  장가들러 올 때 양주의 이쁜 색시를 훔친다
고 양주대적이란 말을 들었더니 사위놈이 대를  잇는가.” 하고 소도둑 소리에서 
생각이 났던 말을 하고  “제기 발써 삼십 년이 가까웠어.” 하고  턱 아래에 수
북이 난 수염을 쓰다듬었다. 
  하루 이틀 지나가는 동안에  대삿날이 당도하여 갖바치가 금동이를 데리고 내
려와서 대사를 지내었다. 누가  보든지 색시의 인물이 신랑보다 훨씬 나았다. 색
시는 얼굴이 이쁘장스럽고 사람이 만만치 않아  보이었다. 색시는 이름이 이쁜이
요, 별명이 섭섭이었다.  그러나 본이름보다도 별명이 쓰이어서 집안에서는 고사
하고 동리사람들까지도 모두 섭섭이라고 불렀었다. 그  별명은 색시의 아버지 되
는 돌이가 아들을 바라다가 딸을  낳아서 섭섭하다고 우연히 지어 부른 것이 이
내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돌이의 안해는 첫딸을 낳은 위에  두서너 번 연
거푸 낙태하고 그 뒤에 아들하나를 낳았는데, 그  아들을 낳은 때에 난산이 되어
서 모자가 모두 위태할 뻔하였다가  갖바치의 방문을 얻어 약을 먹고 다행히 무
사하였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다시 생산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번에 금동이와 혼
인한 섭섭이가 단지 남매인데 그  사내 동생이 섭섭이보다 나이 십여 살이 처지
었다.
  5
  섭섭이의 사내 동생이 꺽정이니 꺽정이도 섭섭이와 같이 별병이 이름이 된 것
이다. 처음의 이름은  놈이었던 것인데 그때 살아 있던 외조모가  장래의 걱정거
리라고 “걱정아 걱정아.”  하고 별명 지어 부르는 것을 섭섭이가  외조모의 흉
내를 잘못 내어
꺽정이라고 되게 붙이기  시작하여 꺽정이가 놈이 대신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꺽정이가 어릴 때부터 사납고 심술스러워서 아래위의  앞니가 갓났을 때에, 무엇
에 골이 나서 우는 것을 그 어머니가  “성가시다, 우지 마라”하고 꾸짖으며 젖
을 물리었더니 꺽정이가  젖을 이로 물어서 젖꼭지를  자위가 돌도록 상한 일이 
있었고, 불과 너덧 살 되었을  때에 그 아버지와 겸상하여 밥을 먹는데, 저의 아
버지에게만 국그릇을 놓았더니 꺽정이가  아무 말도 없이 뜨거운 국그릇을 들어
서 저의 앞으로 옮겨놓은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라 “저것이 장
래 크면 무엇이 될라노”, “저것이 커서도  저러면 참말 걱정거리다”하고 장래
를 걱정하는 것이  그 외조모뿐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 돌이만은  아들이 귀
여워서 “사내자식이 그래야지 계집애 같아서야 무엇에 쓴담”하고 걱정은 고사
하고 도리어 칭찬하였다. 그리하여 집안에서 꺽정이를  꺾을 사람이 없어서 어린 
꺽정이의 기가 자랄 대로 자랐었다.
  꺽정이의 나이 칠팔 세쯤 된 때에 어느 날 꺽정이의 어머니가 방에 앉아 바느
질하다가 옆에 너부죽이 엎드려  발장구치는 꺽정이를 보고 “네가 커서 무엇이 
될래?”하고 물은즉 꺽정이가  “아버지처럼 소 잡지”하고 선뜻 대답하더니 다
시 그 어머니의 얼굴을 치어다보면  장래 될 것을 의논하듯이 말하여 그 어머니
도 웃으며 말대꾸하였다. “목사가  소 잡는 것보다 나을까?”, “나으면 어떻게 
할래?”, “그러면  목사하지, 목사보다도 나은  것이 있소?”, “그럼 있고말고. 
참판 영감도 있고  판서 대감도 있고 대장도  있고 정승도 있지, 많지”, “그중 
제일 꼭대기가  무어요?”, “정승이란다”, “정승  위에는 아무  것도 없소?”, 
“그 위에 상감이 계실  뿐이다”, “그러면 상감이란 게 꼭대기이구료. 내가 크
거든 상감 할라오”, “그런 소리 남 들으면  큰일난다”하고 그 어머니가  임금
께 대하여 말씀 한마디만 불공스럽게 하여도 역적으로 몰리어 죽는 것과 백정은 
천인인 까닭에 조그마한  벼슬도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서  “네 말대로 소 잡는 
게나 잘  배워라”하고 타이르니 “나 싫소.  사람 잡는 것이나 배우지  소 잡는 
건 안 배울라오”하고 꺽정이의 볼이 부었다. 그  어머니가 “사람 잡는 것을 가
르치는 데가 어디 있니?”하고 웃으니 “없으면 혼자 배우지”하고 꺽정이는 더 
말하기 싫다는 듯 벌떡 일어나 나갔었다.
  그때 마침 돌이가 들어와서 꺽정이의 어머니가 남편을 보고 꺽정이의 말을 그
대로 옮기고 나서 “좀 다잡아 이르시오.  그대로 자랐다간 큰일내겠소”하고 말
하니 돌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앉았다가 밖으로 나가서 꺽정이를 불러가지고 들
어왔다. “이얘,  내 이야기 좀 들어라”하고  사촌누이 봉단이가 사람이 잘나서 
지금 정경부인이 된 것을 이야기하고 그 뒤에 조상이 최장군을 길러내서 세상에 
대접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니 꺽정이는  최장군의 범 잡는 이야기가 재미가 나
서 “아버지, 그래”하고 이야기의 뒤를 재촉하였다. 돌이가 안해를 돌아보고 “
그 활을 좀 찾아오우”하고 말하여  활을 갖다놓은 뒤에 이 활이 최장군이 쓰던 
것인데 집에 전하여 오는 보배라고  말하여 활을 내서 보인즉 꺽정이가 손을 내
밀어서 활을 받아들고 “이까짓게 보내야”하고 두 손으로 양끝을 잡아 휘니 꺽
정이가 아이라도 힘을 세찰 뿐 아니라 활이  삭았던 까닭에 딱 하고 분질러졌다. 
돌이가 “저놈이!”하고 놀라  소리치고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하고 앉았더니 
꺽정이는 잘한 듯이 웃었다.  돌이가 그 웃는 것을 보고 화가  더 났던지 꺽정이
의 팔죽지를 끌고 마당으로 나와서 사매질을 하여 꺽정이의 몸에 구렁이를 감아
놓았다. 꺽정이는  이를 악물고 매를  맞는데 꺽정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가 
무섭기도 하고 아들의  당장 맞는 것이 애처롭기도 하여서 눈물을  흘리고, 섭섭
이는 그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 가며 동생  맞는 것을 말리었다. 꺽정이가 속으로 
보배될 것도 없는 활을 좀  꺾었다고 때리는 그 아버지가 옳지 않게 생각하였으
나 이렇게 몹시 맞은 뒤로 그 아버지 앞에서는 기를 펴고 심술부리는 일이 적어
졌다.
  6
  돌이가 동리  글방 선생에게 애걸하다시피 간청하여  꺽정이를 글방에 보내게 
되었다. 꺽정이가 처음 글방에 가던 날 돌이가  데리고 가는 길에까지 다른 아이
들과 싸우지 말고  선생님 말을 잘 들으라고  신신당부하였더니 불과 며칠 안에 
당부한 보람이 없어지게 되었다. 글방 아이들이  백정의 자식이라고 넘보고 업수
이 여기어서 꺽정이를 외톨로 돌리고 같이 놀지 아니하는데 꺽정이가 심술이 났
지마는 하루 참고 이틀  참고 하여 며칠을 참아왔다. 어느 날  선생이 어디 나간 
틈에 여러 아이들이 밖에 나와서  장난을 치는데 꺽정이가 혼자 따로 서서 구경
하다가 그 글방 아이들 중에서  거수 노릇하는 열댓 살된 반명의 아들 아이에게
로 와서 “이애 나하고 같이  고누 두자”하고 짓궂이 걸어보았더니 그 양반 아
이가 대번에 “백정놈의  자식이”하고 욕을 내놓았다. 꺽정이가  두말 아니하고 
주먹다짐을 시작하여 싸움이 되었다. 꺽정이가 나이로는  그 아이보다 훨씬 아래
지만 기운이 세기는 그 아이 네다섯이 함께 덤벼도 당치 못할 만하던 까닭에 그 
아이는 대가리도 얻어맞고 볼퉁이도 쥐어질리었다. 선생이  돌아온 뒤에 다른 아
이가 고자질하여 선생이 꺽정이를  불러 세우고 “양반의 댁 도련님에게 손찌검
을 하다니, 너 이놈 매 좀 맞아라”하고 종아리채를 해오라고 야단을 쳤다. 꺽정
이는 선생의 층하하는 것이 아이들의 업신여기는 것보다 더 분하게 생각하여 책
을 들어서 선생의 면상에 내던지고 “글을 안 배우면 고만이다”하고 횡하게 집
으로 돌아왔다. 돌이가  이것을 알고 꺽정이를 걱정할 뿐 아니라  꺽정이 대신으
로 선생에게 사죄까지 갔었으나 꺽정이가 다시 글방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갖바치가 위요로 와서  꺽정이를 보았다. 열한두 살 먹은 아이가  열대여섯 되
었다고 하여도 곧이들릴 만큼 숙성하였다. 살빛이  거무스름한 네모 번듯한 얼굴
에 가로 찢어진 입도 좋고 날이 우뚝한 코도 좋거니와 시커먼 눈썹 밑에 열기가 
흐르는 큼직한 눈이 제일 좋았다. 인물이 그릇답게 생기었다. 갖바치가 “대장감
으로 생겼구나”하고  칭찬하고 빙그레 웃은 돌이는  “우리네 자식이 잘생기면 
무엇하오”하고 한숨을 지었다. 
  갖바치가 이삼 일 새사돈  집에서 묵었는데 하룻밤에는 돌이가 갖바치를 보고 
꺽정이의 성질이 사나운 것을  걱정하다가 “우리 아버지가 위하고 위하던 조상
님을 그 자식이  꺽어버리었소.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보았더면 그  자식을 죽여
놓거나 자기가 죽거나 했을  것이오”하고 말하고 “글이나 좀 가르치면 성질이 
고쳐질까 하고 글방에를 보냈더니 백정놈의 자식이라고 하고 하대한다고 반명의 
자식과 싸울 뿐 아니라 선생까지 욕을 보이어서 글방에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어
요. 그래서 될  대로 되라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는데 그 자식이 기운이 장사요. 
팔구 세  때부터 몽근 벼 한  섬을 예사로 드날랐소. 기운이  이런데다가 성질이 
불 같아서 아이들은 고사하고 어른도 섣불리  건드리지를 못하였소. 저의 어미니
가 죽을 때 운명하기 전 정신기 있어서까지 성질을 좀 고치라고 중언부언하더니 
요 몇 해동안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나 그렇지만 천생이야 어디  가요. 지금도 
저의 비위에 틀리는  일만 있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아니하오. 내가  이르는 말이
나 저의 누이의 달래는 말을  좀 듣는 것이 저의 누이까지 가고 보면 더 걱정이
오”하고 한걱정을 삼아 말하였다.
  갖바치가 다 듣고 나서  “내가 맡아다 가르쳐 볼까?”하고 실없는 말 비슷하
게 말을 하자, 돌이는 들었다 보았다 하고 “그렇게 해주시면 작히나 좋겠소. 그
렇지 않아도 청을  하고 싶은 맘이 있던  차요”하고 기뻐하니 갖바치는 웃으며 
“생마 길들이는 값은 무엇인가?”하고 묻고서 돌이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
백정 설치인가”하고 허허  웃었다. 하여간 당자의 의향을  물어보아서 정하기로 
하고 그날 밤을 지난 뒤에  이튿날 갖바치가 꺽정이를 보고 “너의 아버지가 너
를 내게 맡긴다고 하니 네가 날 따라 서울 가려느냐?”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간
다 안 간다는 말하기 전에 “서울 가서  무어하오?”하고 도리어 물었다. “글공
부하지”, “글공부는 싫소. 그렇지만  서울은 갈라오”, “아무려나. 너 싫은 것
은 고만두지. 어려울 것이 무엇 있니”하고 갖바치는 웃었다.
  7
  갖바치가 금동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올 때, 꺽정이도 같이 왔다. 돌이가 “
딸년 신부례한  뒤에나 꺽정이를 보내리다”하고 말하는  것을 갖바치가 “가만 
있게. 그것도 저더러  물어보세”하고 꺽정이를 불러서 의향을  물어보니 하루라
도 일찍이 서울 오고 싶어하는  말이라 돌이를 보고 “제가 일찍이 가고자 하니 
이번에 내가 데리고 가겠네”하고 말하여 곧 같이  오게 된 것이다. 갖바치가 꺽
정이를 집에 데려다 둔 뒤에  지각 없는 어린아이로 보지 않고 점잖게 대접하는 
까닭에, 꺽정이는 갖바치를 어려워하면서도 따르게 되었다.
  꺽정이는 금동이 모자와 심선생이  맘에 조금 마땅치 못하였으나 봉학이와 유
복이 같은 맘에  맞는 동무가 있어서 좋아하였다. 봉학이는 동갑이나  생일이 아
래요, 유복이는 한 살 아래라  꺽정이가 두 아이의 맏형과 같았다.  봉학이와 유
복이가 글을 읽을  때 꺽정이 혼자서 심심하여  글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동생 같은 두  아이가 소학을 첫권, 둘쨋권 읽고 있는데 하늘 천 
따 지하는 천자문을 시작하기가 창피하여 말을  내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글을 
읽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두 아이까지 차차로  글공부를 싫어하고 달음질, 뛰엄질 
같은 장난에만 맘이 팔리게 되었으나, 갖바치는  한번 꾸짖지도 아니하고 저희들 
하는 대로 내버려 두다시피 하였다.
  어느 날 세 아이가 안 뒤꼍 담 밑에서 공기를 놀리다가 꺽정이가 공기가 적어 
재미없다고 말하여 큼직한  돌덩이를 가지고 공기를 놀리기  시작하였다. 꺽정이
는 돌덩이를 높이  치뜨리고 왼손으로 선뜻선뜻 받았지만 , 봉학이는  치뜨릴 생
각조차 못하고 유복이는 간신히 치뜨리기는  하나 두 손을 가지고도 잘 받지 못
하였다. 나중에 유복이가 한번 높이서 떨어지는  것을 받아본다고 허리를 굽히고 
힘껏 치뜨린다는 것이 돌덩이가 빗나가서 담 너머로 넘어가며 와지끈 소리가 났
다. 담 너머 이웃집  장독대의 장독이 깨어진 것이다. 유복이가 얼굴빛이 파래졌
다. 꺽정이는 “깨졌으면  고만이지 겁낼 것 없다”하고 장독 주인이  된 것처럼 
말하는데 봉학이가 “여기 있지 말고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자”하고 말하여 세 
아이가 밖으로 몰려 나와서 바깥 마당에서 뛰엄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 아니  되어서 이웃집 주인이 갖바치를 찾아왔다. 그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 뒤에 봉학이가 유복이를 보고 “탈방망이가 왔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탈방망이는 무슨 탈방망이?”하고 “가만 있거라.  내 들어가 보고 오마”하고 
방문을 여니 갖바치가  “들어오지 마라”하고 말하였다. 이웃  주인의 불공스러
운 말소리와  주인 선생의 온공스러운  말소리가 한동안 섞이어  나고, 심선생의 
말소리가 몇 마디 들린 뒤에 이웃집 주인이 나오더니 유복이와 봉학이보다도 꺽
정이를 많이 흘겨보며 돌아갔다.
  갖바치가 세 아이를  불러서 앞에 나란히 앉히고  “누가 이웃집 장독을 깼느
냐?”하고 묻는데  말소리는 높지 아니하나 말하는  모양은 전에 없이 엄숙하게 
보이었다. 봉학이는 뱅글뱅글 웃고 유복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꺽정이가 “
선생님, 제가  깼습니다”하고 똑똑하게  말하였다. “왜 깨었느냐?”,  “공기를 
받다가 돌이 빗나갔습니다”,  “힘에 겨운 큰 돌을 가지고 공기를  받다가 남의 
장독을 깨인 것이 잘한 일이냐?” 꺽정이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이 없다가 “
힘에 넘치는 공기는 다시 받지 않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선생의 묻는 말에  대답하는 동안에 봉학이는 여전히 뱅글뱅글하고 유
복이는 줄곧 고개를 숙이었다.
  갖바치가 세 아이를 나가서 놀라고 밖으로 내보낸 뒤에 심의가 “꺽정이가 깨
인 것을 숨기지 않는 것이 사내다워”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꺽정이가 제가 깨
인 것도 아닌 모양이오”하고  웃었다. “그러면 어느 놈이 깨었을까?”, “고개
를 들지 못하던 유복인 게지요”, “꺽정이가 유복이 죄를 가로맡은 모양이군”, 
“그런 모양이지요”, “대체 이웃 사람의 말로  보면 돌덩이가 물박같이 크다더
니 엄청나지. 그런 것을 가지고  공기를 받다니”, “세 놈이 모두 힘에 겨운 공
기를 받을 감들이오”하고 갖바치는 잠깐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8
  꺽정이가 글공부는  아니할망정 배우는 것과 익히는  것이 없지 아니하였으니 
배우기는 대개 주인 선생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배우고 익히기는 주장 두 동무
와 장난하는  데서 익히었다. 갖바치가  밤저녁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리어 
주는데 꺽정이가 제일 재미있어 하기는 옛날 명장의 싸움 싸우던 이야기였고 꺽
정이가 두 동무와 갖은 장난을  다하는데 셋이 다같이 좋아하기는 높이 뛰고 널
리 뛰고 하는  뛰엄질이었다. 꺽정이가 낮이면 두 동무와 장난하고  밤이면 갖바
치에게 이야기를 듣는 외에 별일이 없이 한 해를 보내었다.
  이듬해 봄에 금동이  어머니의 재촉으로 섭섭이를 신부례하여  왔다. 금동이는 
사람이 별미쩍고 무식스러우나 안해만은  부모보다도 더 각별히 위하여서 별 탈
이 없었지만, 금동이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까다로워서 섭섭이의  시집살이가 고
되었다. 처음에는  섭섭이가 무무하다고 잔소리쯤  하던 것이 날이  갈수록 차차 
심하게 되어서 “반찬 한 가지 똑똑히 맨들지 못하고 옷 한 가지 반반히 꿰매지 
못하니 나이  이십여 살 되도록 배운  것이 무엇이냐?”, “며느리를  얻어온 게 
아니라 상전을 얻어왔다”하고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정히  심하게 되면서 
섭섭이가 웃으면 “미쳤니?  시시거리게”하고 꾸짖고 섭섭이가 골을 내면 “주
둥이를 뽀르퉁하고 다니면 누가 겁을 내니”하고 야단치고 또 섭섭이가 조금 말
대답이나 할 때에는  “백정의 딸자식이라서 할 수  없다” 하고 근본 하자까지 
하여 섭섭이는 남모르게 눈물줄기를 좋이 흘리렀다.  금둥이는 저의 어마니가 안
해를 구박하는 것이 맘에 좋지 아니하여 저의 어머니가 야단치는 것을 보게되면 
“어머니 그만두세요.” 하고 말리기도  하였지만 “잔뼈가 굵어지니까 계집밖에 
모르느냐?” 이와 같은 말에 우박을 맞을 뿐이었다.  금동이가 섭섭이의 쓰는 건
넌방에 들어가는 것을 금동 어머니가 밉게 보아서 자고 나가는 이튿날이면 금동
이에게는 까닭없이 화를  내고 섭섭이는 공연히 들볶았다. 이런 날  섭섭이가 혹
시 무엇을 묻게 되면 “너는  잘 아는 것이 한 가지뿐이냐?” 하고 사람이 괴란
스럽게까지 말하였다. 이 까닭에 금동이가 방에  들러오는 것을 섭섭이는 반갑게 
알지 아니하지만, 금동이는  화받이하는 것을 대사로 여기지  아니하고 쇠귀신같
이 줄기차게  들어왔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나무 흔한 시골도  아니고 백사지 
땅 서울에서 군불나무를  대기도 힘이 키인다.” 하고 건넌방을 폐하고  안방 한 
방을 쓰게 하여 금동이는 낭패 보았으나 섭섭이는 맘의 송구스러운 것이 덜하여
서 다행으로 여기었다. 
  섭섭이는 꺽정이의 얼굴을 하루 한두 번씩 못 보지 앉지마는 조용히 이야기할 
틈이 적을 뿐이 아니라 성질  사나운 동생이 혹시 괴악을 부릴까 무서워서 고된 
시집살이를 이야기로는 고사하고 내색으로도 알리지 아니하려고 속으로 애를 썼
다. 그러나 한 집에 있는 까닭으로 걱정이가 자연히 알게 되었다. 하루는 섭섭이
가 저녁밥을 지을  때 꺽정이가 부엌 뒤로  돌아와서 “누님” 하고 불러놓고는 
첫마디에 “시골집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니  섭섭이는 “그건 무슨  소리냐? 
왜 가라니?” 하고 물었다. “이놈의  집에서 구박받고 있을 것 없지 않소.” “
이에 지각없이 지껄이지 마라.” “그래 누님, 아니 갈라오?”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누님이 안  간다면 그년을 죽여 없애기라도 해야지.”  섭섭이는 부
지갱이를 내던지고 뛰어나와서 동생을  붙들고 갖은 말을 다하여 달래고 “내가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너더러 말을 하마.  그 전에는 아무 소리도 말고 가
만 있거라.”  하고 말하며 꺽정이가 “아무리나  하오.” 하고 돌아서 나가려고 
할 즈음에 금동이가  저의 어머니 몰래 안해에게  말마디 해보는 재미로 가만히 
부엌 뒤로 오다가 꺽정이와 마주쳤다. 꺽정이가 ‘대체  저 못난 자식 때문에 우
리 누님이 고생하는  게렸다.’ 하고 생각하며 별안간에 나는 골을  걷잡지 못하
여 금동이의 뺨을  한번 보기좋게 후려쳤다. 금동이는 영문도 모르는  뺨을 맞고 
“이 자식 미쳤나!” 하고 침을 배앝고 “이 자식, 나가거라!”  “나가지 말래도 
나갈 테여.” 하고 꺽정이가 나간 뒤에 섭섭이게로  와서 동생을 시켜 뺨 대리게 
하였다고 당치 않게 시비하니 섭섭이는 가엾단 말 한마디 아니하고 “요량 없는 
소리 작작하오.” 하고 핀둥이를 주었다. 
  9
  꺽정이가 누이의 고생을 안 뒤에는  실상 죄없는 금동이를 밉게 볼 뿐이 아니
라 갖바치에게도 전과 같이 다르지 아니하였다.  금동어머니가 시어미 노릇 못되
게 하는 것을 갖바치가 전혀 모를 리 없을 것인즉 알면서도 짐짓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니 이것이 곧 시아비 노릇을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밤에 심의는 자기  집에 가고 갖바치와 꺽정이가 단둘이 앉아 있었는
데 갖바치가 장감이란 책을  펴서 놓고 새겨 이야기하여 가르쳐주다가 걱정이의 
얼굴에 딴생각하는 빛이 있는  것을 보고 “고만 듣기가 싫으냐?” 하고 물은즉 
꺽정이는 “아니오.” 하고  고개를 흔들고 “안에서 무슨 말소리가 나는  것 같
아서요.”하고 맘이 갈린 까닭을  말하였다. 갖바치가 책을 덮고 “사람 있는 데 
말소리 나기가 예사이지.”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꺽정아, 너의 누이 고생하는 
것이 맘에 걱정이냐?” 하고 다정하게 물으니 꺽정이는 속으로 '저것 보아. 번히 
알고도 모른 체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당신이라구 걱정도 아니하겠소.
” 하고 불쾌히  대답하였다. 갖바치는 다시 빙그레 웃고 “시집살이란  본래 그
만 고생하는 것이다.”  하고 이르고 뒤를 이어서 “너의 누이  시집살이가 동안
에 오래지 아니할 게니  걱정 마라.” 하고 따로 짐작하는 일이  있느 것같이 말
한 뒤에 “책  이야기나 더 듣지 아니하려느냐? 이 책을  다 들려 준 뒤에는 이 
책보다 더  좋은 육도삼략을 차례로 이야기하며  들려주마.” 하고 말하였다. 그 
다정한 어조가 사람의 뺏속에 사무칠 것 같아서 꺽정이는 불괘하던 생각이 사라 
없어지고 침착히 책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해 초가을에 금동 어머니가 토사병으로 급작스럽게  죽었다. 그 초종이 간단
하였다. 승새 굵은 북포로 수의를 짓고 닷푼널로  편을 짜서 송연을 칠하고 택일
도 아니하고 입관성복하던 이튿날, 두방망이 상여로  수구문 밖 북망산에 장사하
였다. 초상난 뒤 열흘이  채 못 되어서 안마루 한구석에 있는  상청 명색과 건정
으로 지내는 조석 상식 외에는 초상난 집  같지 아니하였다. 갖바치는 한번도 눈
물을 흘린 일이 없었으니 말할 것고 없고,  금동이가 오직 하나 서러워할 사람인
데 그 미련한 위인이 안해가 안방 차지하게 된 것만 다행으로 여기는지 저의 어
머니 죽은 것을 서러워하지 아니하였다. 갖바치의  집의 안살림이 섭섭이의 소임
이 된 뒤로는  꺽정이는 한걱정이 없어져서 맘이 편하였다. 꺽정이가  안방에 드
나들며 갖바치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꺽정이가  원식구 같고 갖바치는 도리어 
손님 같았다. 꺽정이가 안방에 있을 때는 봉학이와 유복이도 안방으로 들어왔다. 
처음에 봉학잉와 유복이는 섭섭이를 아주머니라 불렀는데,  어느 날 꺽정이가 두
아이를 보고  “이애들, 우리 결의형하자.” 하고  발론하여 세 아이가 형제의를 
맺으며 두 아이도  꺽정이를 다라서 누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금동이는  세 아
이가 안방에 와서 등쌀 놓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어서 안방에 있다가도 세 아이
들의 기척이 나면  “저것들 또 들어온다.” 하고 상을 찔그리고  일어서 나가는 
때가 많았다. 꺽정이가 매부라고 부르느 것은  싫어도 대답하지만 봉학이나 유복
이가 “여보, 매부!” 하고 부르면 “경칠 자식, 매부는  무슨 매부냐?” 하고 볼
메인 소리를 하는 까닭에 두  아이는 그것이 우스워서 부르지 아니하여 좋을 때
도 “매부, 매부,” 하고 불렀다. 금동이가 그  전만 같으면 그들 머리에 꿀밤 개
나 솟쳐 줄 것이지만, 그들이 열두서너 살씩  먹은 아이랄 뿐이지 억세기가 어른
볼 쥐어지기를 만하여 호락호락하게 꿀밤을 받지 않게 되었고 더욱이 장사 꺽정
이가 뒤에 있는  까닭에 금동이는 손댈 생의를 못하고 입으로만  “오라질 자식, 
고랑 찰 자식.”하고 욕할  뿐이었다. 꺽정이는 이것을 알고 두 아이를 부추기는 
때가 많았다.
  하루는 세 아이가 안방에  들어오며 금동이가 나가려고 일어서니 꺽정이가 “
매부, 나가지 말고 거기 앉으시오.” 하고  붙잡아 앉히었다. 꺽정이가 두 아이와 
같이 북새를 놓고  놀다가 “너희들 매부하고 팔시름해 보아라.” 하고  말을 내
어 두 아이가 매부 매부  하고 조르다시피 하여 금동이와 팔시름을 하게 되었는
데, 봉학이는  대번에 졌지만 유복이는 한참을  맞섰었다. 꺽정이가 “매부 세구
려, 나하고 한번 해봅시다.”하고 대어드니  금동이가 “너는 싫다.”하고 자빠졌
다.
  10
  봉학이와 유복이가 금동이의 골을 질렀다. 유복이가  “꺽정이 언니는 못 당할 
것 같지?”하고  입을 비쭉하고 봉학이는 “꺽정이  언니가 세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지요. 매부가 못 대어들고 자빠져서야 남부끄럽지 아니하오.?”하고 깔깔 웃
었다. 아니다를까 금동이가  골이 났다. 꺽정이를 보고 “어디  한번 해보자.”하
고 팔을 내미는데 꺽정이는 웃으면서 “회목  잡아 주리다.”하고 금동이의 손목
을 쥐려고 하였다. “주제넘은 소리 마라.”“두 팔 걸어도 아니 될 터인데 회목
잡이를 주제넘다고  ?”어디 해봅시다.“ 꺽정이가 힘도  들이지 않고 넘기었다. 
금동이는 힘쓰기 전에 넘기었다고 탈을 잡고 고쳐 하여 보았으나 별수없이 지고 
왼팔 씨름도 하여 보았으나  역시 할 수 없이 지고 나서  ”참말로 세다.“ 하고 
나앉으니 꺽정이가 ”그것 보시오. 회목 잡아도 좋지  앉을까?“ 내가 힘만 쓴다
면 회목 잡은 외에  왼팔을 더 걸어도 매부에게는 질 것  같지 않소.”하고 웃으
니 “흰소리  마라. 설마 그렇기야 하랴?”  “흰소리가 아니지요.”“어디 해보
자.”하고 금동이가 다시 덤비어  바른손목을 잡힌 위에 왼손까지 더 걸었다. 꺽
정이의 팔뚝은 쇠막대  세운 것 같았다. 금동이가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넘기려
고 힘을 써도  넘어가지 아니하였다. 나중에 금동이가 “목 이기겠다.”항복하고 
나앉는 것을 봉학이와 유복이는 저희들이 항복받으니나 다름없이 좋아하였다.
  세 아이가 형이니 동생이니 하기 전에도 맘이 맞아 잘 지내던 것이 형제를 맺
은 뒤로는 의가 자별하여 서로  말다툼 한번 아니할 뿐 아니라 봉학이나 유복이
가 혹시 다른 아이들과 싸움을 주고받다가 형세에 몰릴 때에는 꺽정이가 반드시 
역성하러 나서게 되고, 두 아이는 꺽정이 같은  역성꾼이 뒤에 있는 것을 든든하
게 생각하여 같은  아이들은 고사하고 여간 어른까지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조석 먹을 때와 잠잘 때 외에는 세 아이가 잠시를 서로 떨어지지 아니
하였는데, 그중에 봉학이가 몇 달 동안 갈려 지내지  앉을 수 없게 된 일이 있었
다. 
  봉학이의 외조모가 속앓이  본병이 있어 친한 중이  있는 것을 연줄삼아 서문 
밖 진관으로 북약하러 나가는  데 봉학이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 불과  몇 달 동
안이 아니지만은 세 아이는 각기 다 섭섭하였다.  봉학이가 진관 가서 있는 동안 
꺽정이가 유복이를 데리고 하루돌이로 찾아나갔다. 그  덕에 섭섭이의 안방이 조
용하여져서 금동이는 이외에  더 다행이 없이 생각하였다. 절에 와서  있는 봉학
이는 동무를 떨어져서 심심하였다. 꺽정이와 유복이가  자주 놀러나와서 같이 놀 
때분 이지 놀다  들어가면 더욱 심심한 것을 못견디어하였다. 심심한  끝에 싸리
나무로 활을 만들고 빼앙대로 살을  만들어 활장난을 시작 한 것이 하루하루 재
미가 들기 시작하여 며필  뒤에는 밥 먹을 것을 잊고 활을  쏘게 되었다. 나중에
는 한두 칸  앞에 나무쪽 과녁을 세우고 맞히기  시작하여 맞는 데서 재미가 더 
생기었다. 봉학이가  꺽정이를 보고 “언니, 활이  재미납니다.”하고 빼앙대살로 
나무쪽 과녁을 맞히어 보이니 꺽정이는 “한량  아우가 생겼구나.”하고 웃고 유
복이는 “그러면 나는  한량 언니라고 할까?”하고 따라 웃었다.  봉학이는 “태
조대왕이 활 잘 쏘았다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일이 있지 않소? 태조대왕의 핏
줄을 받은 내가 태조대왕만큼 활을 쏘고야  말터이니까 언니 두고 보시오.”“그
래, 활을  잘 쏘아서 둘째 태조대왕이  되어보렴.”“그러면 우리는 한량 언니의 
신하가 되게.”하고  세 아이가 다같이 웃었다.  봉학이는 참으로 활에 열성이었
다. 중이 조석 예불할 때 뒤에 가 서서 “부처님, 제가 태조대왕같이 활을 잘 쏘
게 하여 줍소서.”하고  가만히 빌기까지 하였다. 열성이란 것이  무서웠다. 봉학
이의 활재주가 나날이 늘어서 활장난 시작한 지 한 달 안에 굵은 싸리나무 활에 
끝을 깎은 싸리나무 살로 참새를 쏘아 맞힌  일이 있었다. 봉학이가 외조모와 같
이 절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문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봉학
이의 활솜씨가 처음에 장난으로 보고 웃던 것이 꺽정이까지 칭찬할 만큼 되었었
다. 
  11
  봉학이가 전과  같이 셋 동무로 섭슬려다니지마는  걱정이와 유복이가 뛰엄질 
같은 장난을 할 때, 봉학이는 그 틈에 끼이지 않고 혼자 다로 서서 활을 쏘았다. 
유복이가 심사가 나면 “한량은 사정으로 가시오.”하고  비꼬아 말하는 일도 있
었으나 이런 때는 꺽정이가 “조롱 말고  가만두어라.”하고 유복이를 눌러서 그
리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꺽정이는 가가다가는 혹시 웃으면서 “우리  한량 활
을 잘은 쏜다.”하고 조롱 반 칭찬할 때가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량이 봉학이
의 별명이 되어서 꺽정이와  유복이는 고사하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라도 한량이
란 말이 나오면 봉학이도 저의 말을 하거나  하고 무심결에 돌아보게 되었다. 봉
학이가 원래 손이  재고 눈이 빠른데다가 천생  타고난 궁재가 보이어서 장난감 
활일망정 쏘는 살리 겨냥애 틀리는 법이 없었다.  봉학이는 여러 가지 활에 여러 
가지 살을 만들어 가졌다. 봉나무 활에 조릿대 살도 있고, 앵두나무 활에 수숫대 
살도 있고, 또 대가지 활에  새괘기 살도 있었다. 그중에 대가지 활은 대쪽을 깎
아서 활 모양을 만든 것이니 작기가 장뼘  한 뼘이 될락말락하였다. 봉학이는 새
꽤기 살에 바늘촉을 박아서 파리를 쏘아잡는 까닭에 이 활을 파리활이라고 이름
지었다. 봉학이가 파리활로  앉은 파리를 쏘아서 백발백중 맞힐 뿐이  아니라 복
치로만 쏘는 것을  재미적게 여기어 일부러 파리를  쫓아 날리고 날치로 쏘기를 
공부하여 얼마 뒤에는 나느 파리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조그만 날개에 힘이 많
은 것을 자랑하듯이  날개치는 무당파리가 살을 맞아  떨어지게 되니 몸집이 큰 
쉬파리는 천생이 과녁감이었다.
  봉학이의 파리 사냥이 동리에서 다 알도록  유명하여졌다. 갖바치가 심의와 공
론하고 남촌에서 명수로 치는 궁장에게 부탁하여 자그마하고 이쁘장스러운 숙각
궁을 만들려고 엿돈쭝  유엽전을 극상으로 구하여 이쁜  전통에 넣고 활 소용에 
당한 제구를 갖추갖추 장만하여 세  아이의 눈에 뜨이지 않게 벽장 안에 넣어둔 
뒤에 어느 날  낮에 갖바치가 “오늘 우리 파적으로 한량의  시재를 보입시다.” 
말하고 봉학이를 불러서 파리를 쏘이었다. 심선생과  주인 선생이 아랫목에 나란
히 앉아 있고, 꺽정이 형과  유복이 아우가 윗목에 느런히 서 있다. 봉학이가 그 
중간에 들어서서 재주를  다하여 보이었다. 처음에 서너 마리는 벽에  앉은 채로 
꿰어 박아놓고, 그 다음에 너덧 마리는 일변 날리며 일변 쏘아 떨어뜨리고, 나중
에 두어 마리는 일시에  날리고 연발로 쏘아 맞히었다. 앉은 파리를  쏘아 꿸 때
부터 ‘허허’하고 감탄하던 심선생이  날치에다 연발까지 하는 것을 보고 “저
것 보아 저것 보아.”하다가 나중에 “귀신 같은 재주다!”하고 칭찬하여 갖바치
를 돌아보니 갖바치는  “태조대왕 같은 명궁이 되겠다.”하고  웃고 봉학이에게 
“심선생님께서 좋은 상급을  주실 터이다.”말하며 벽장문을 열고  활과 전통과 
및 다른 제구를  모두 내놓았다. 심선생이 낱낱이 집어서 봉학이를  주니 봉학이
는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절하고 받은 뒤에 팔찌를  매고 각지를 끼고 살수건은 
고사하고 노루발까지 달려  있는 전통을 메고, 그리하고 활을 들고  방에서 나와
서 겅중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에 봉학이의 외조모가 봉학이를 데리고 와서 심의와 갖바치를 보고 외
손자를 그와  같이 사랑하여 주니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이놈이 돌날  돌상에서 
활을 맨 처음에  쥐더니 지금 보면 활로 입신할 것  같소이다." 말하고 또 "저의 
아버지가 뼈는 근본이 있던 사람이고 죽기도  의리로 죽었으니까, 이놈이 다음날 
속신하여 호방으로 출세하면 만호, 첨사쯤이야 얻어 하겠습지요."  말하며 좋아하
였다. 봉학이가 정말 활을 얻은 뒤에는 궁방에  가서 궁장이를 친하여 활 먹이는 
것을 보고 시위 누이는  것도 보고, 또 활을 점화하여 버릇  고치는 것도 보아서 
혼자서 활을 다루게 되었고, 사정에 가서 한량을  친하여 하삼지로 줌통 쥐는 법
도 배우고 상삼지로 시위  그읏는 법도 배우고 각지손 떼는 법도  배우고, 또 비
정비팔에 흉허복실로 서는  법을 배워서 궁체를 얌전히 가지게 되었다.  아기 한
량의 색시활을 메고  다니는 것이 동소문 안의 명물이 되었다.  봉학이가 사실로 
명무에 지나가는 재주를 가졌지마는, 사정에 가서 활  쏠 잡이가 못 되는 까닭에 
삼선평에 나가서 먼장질을 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성균관 뒷산에 올라가서 새 
사냥을 하였다. 새 사냥할 때에는 꺽정이와  유복이도 반드시 따라다니며 구경하
였다.
  12
  어느 날 봉학이가 활을 메고 동소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유복이가 뒷산으
로 새 잡으러 가자고 붙잡으니 “새가  있어야지 잡지.”하고 봉학이가 뒷산으로 
가지 아니하려는 것을 꺽정이가“없거나  있거나 가보자꾸나.”하고 우기어서 세 
동무가 성균관 뒷산에를  올라왔다. 그윽한 곳에 있는 성한 나무숲에  새들이 없
을 리 없지마는, 아기 한량 활 그림자에 놀란  새들이 높이 날아 멀리 피하고 아
기 한량이 흥풀이하라고  남아 있지 아니하였다. 아기 한량까지 세  아이가 숲속
으로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에 산비둘기나 종새 같은  큰 것은 고사하고 솔새나 
굴뚝새같이 작은 것도 한 마리 만나지 못하고 흥이 없이 도로 내려오는 길에 봉
학이가 가죽나무 가지에 뒤로 앉은 까치를 보고  한번 시위를 당겼다. 그 까치는 
꽁지 밑에 살을  맞고 푸드득하고 날아서 옆가지 위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살대는 까치집 밖으로 내다보이나 까치가  나오지 아니하니 그 살 한 대는 잃어
버리지 않을 수  없이 되었다. 봉학이가 살이  아까워서 "저것을 어찌하나?"하고 
걱정하니 유복이가 "가만 있소."하고  잔돌을 주워가지고 와서 팔매를 치기 시작
하였다. 팔매가 까치집에 맞기도  하였지만, 꽁지 밑에 박힌 살을 주둥이로 뽑아 
보려고도 못하고 죽은 듯 엎드려  있는 까치가 겉팔매를 겁내서 나올 까닭이 없
었다. 봉학이가  팔매질이 소용없는 것을  보고 활과 전통을  유복이에게 맡기고 
나무에를 올라가려고 하니 꺽정이가  나무 밑으로 와서 나무의 위아래를 눈으로 
재어보며 "가만 있거라."하고 봉학이를 올라가지 못하게 한 뒤에 나무를 두 손으
로 흔들었다. 그 가죽나무가 크기는 얼마 되지  아니하여 밑동이 두 손으로 싸서 
쥘 만하였다.  나무가 흔들흔들하였다. 그러나  까치는 종시  나오지 아니하였다. 
봉학이가 "언니 소용없소."하고 말하니  저의 하는 일이 소용없다는 데 꺽정이가 
골이 나서 저고리를  벗어붙이고 나무를 뽑으려고 대어들었다.  유복이가 이것을 
보고 "땅에  박힌 생나무가 그렇게 쉽게  뽑히오? 언니, 소용없는 짓  마오."하고 
웃으니 저의 하려는 일이  소용없다는 데 꺽정이가 골이 더 올랐다. "가만, 있거
라, 어디 보자."하고 꺽정이는 허리를 구부려서 밑동을 아래로 껴안고 힘을 썼다. 
한두 차례 힘쓰는데 나무가 우쭉우쭉하여 뽑힐  것 같았다. 봉학이가 유복이에게
서 활과 전통을 찾아서  전통은 메고 활은 살을 먹여 들었다.  꺽정이가 눈을 부
릅뜨고 입을 악물고 한번 응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리하고 허리를 폈다. 가죽나
무가 뽑혀 넘어지며 까지가 날았다.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던 까치가 미처 멀리 
날지 못하여 살  한 대가 대가리를 꿰어뚫어서 허무하게 떨어졌다.  꺽정이는 저
고리를 집어서 안섶으로 얼굴의 땀을 씻고서 "인제도  소용없니?"하고 두 아이를 
돌아보았다. 두 아이의 눈에는 꺽정이가 사람 같아 보이지 아니하였다.
  유복이는 봉학이가  두 선생에게 상급을  받을 때 재주가  부러웠고, 꺽정이가 
뒷산에서 생나무를 뽑을 때 힘이 부러웠다. 힘은  부럽지만 천생이라 할 수 없고 
재주는 한  가지 배워보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활만은 배워야  봉학이만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무슨 재주를  배워 볼까?'하고 혼자서 궁리하였다. 그리하여 
유복이는 댓가지로 창을 만들어  가지고 수법도 모르면서 두르기며 찌르기며 던
지기를 공부하였다.  유복이가 사람이 의뭉한  까닭에 낮이면 선생의  집에 와서 
전과 같이 장난하고,  밤에만 집에 가서 창쓰기를 공부하는데 저녁때  조금 일찍
이 돌아가는 것 외에 꺽정이는  고사하고 약은 봉학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몰
래몰래 공부하였다. 유복이는  창을 어지간히 쓰게 된 뒤에 의형들을  놀래줄 작
정이었다. 심선생의 집 앞마당이  넓기는 하지만, 긴 창을 내두르기 어려울 때가 
많고 유복 어머니가 글공부  아니하고 장난 공부한다고 대창을 분지르기까지 한 
까닭으로 유복이는 그 어머니 그 어머니 몰래 조그만큼씩한 대창들을 만들어 두
고 꾀꾀로 틈을 타서 물건을 던져 맞히기를  공부하였다.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
에 차차로 손이 익숙하여 처음에  가까운 거리에 큰 물건이나 맞히던 것이 거리
가 조금씩 멀어지고 물건이 조금씩  작아져도 능히 맞히게 되어서 두서너 간 밖
에 있는 참새를 노릴만큼 되었다. 그러나 참새는  잡지 못하고 털만 뽑아놓을 때
가 많아서 제일로  귀신 같은 한량 형에게 재주라고 보이기가  부끄러웠다. 그러
한데 유복이가 던지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아무것도 아니 가진 맨손을 가지고도 
던지는 시늉을 내는 것이 봉학이 눈에 뜨이어서 “너 왜 손짓을 그렇게 하니?”
하고 괴상히 여기는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런 때마다  유복이는 “어깨
가 아파서 그러오.”하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여 대창 던지는 공부를 숨기었다.
  13
  유복이가 창 던지는  공부를 동무들에게까지는 숨기었지만, 그  어머니는 속일
래야 속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어머니 눈에  들킬 때마다 사설을 듣고 또 야
단을 맞았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무어라고 사설을 하거나 또는  야단을 치거나 
말거나 유복이는  꾸준히 창을 던졌었다.  한번은 그 어머니가  유복이를 붙들고 
“하라는 글은 아니하고 말라는  장난만 하니 어찌할 셈이냐? 너의 나이도 인제
는 셈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 너 하나를  바라고 사는 어미 생각을 좀 하려무나.
”하고 사정을 하다가 유복이의  입에서 시원한 대답이 떨어지지 아니하여서 “
네가 어미 생각을  아니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죽는다.”하고  발악하다시피 말
하였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듣기만 하던 유복이가“어머니, 왜 그러오? 내가 아
버지의 원수를 갚자면 칼도 쓸 줄  알고 창도 쓸 줄 알아야 할 것 아니오? 소학 
대학을 가지고 원수를 갚을 수 있소,  어머니?”하고 고개를 들고 어머니의 얼굴
을 바라보니 그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네가 그게 잘못 생각이다. 네
가 글 잘 읽어가지고 이담에  강령 원님이 되어 가면 그까짓 원수는 하루아침에 
갚을 수 있지만  네가 창질을 잘한다고 창으로 원수를  갚을 터이냐?” “글 잘 
읽으면 강령 원님해 가오? 그러면 우리 선생님은  황해 감사도 해갔게.” “너의 
선생님은 백정이니까 벼슬을 못했지.” “상놈의  자식은 백정보다 낫답디까? 어
머니 알지 못하거든 가만히  계시오. 별수 없어요. 아버지 원수 갚으려면 꺽정이
같이 힘이 장사거나  그렇지 않으면 봉학이의 활재주 같은 재주가  있어야지. 내
가 댓가지창으로 원수놈의 대가리를 꿰어놓을 날이  있으니 어머니 두고 보시오.
”
  유복 어머니는 유복이가 생각을  고쳐먹도록 말을 하다 하다 지펴서 그만두었
다. 유복 어머니가 그 아들의 장래를 걱정스럽게  여기지마는 그 뒤로는 장난 동
부한다고 유복이를 사설하거나  야단치거나 하지 아니하였다. 그뿐이  아니라 달
밤에 유복이가 혼자  마당에 나와서 ‘쉬, 쉬’하고 소리를 질러가며  대창을 던
질 때 뒤에 따라나와서 웃으며 구경하고 유복이의 던지는 창이 겨냥하는 과녁에 
벗어나가지 아니하고 꼭꼭  들어가 맞는 것을 보고는  “신통하게는 맞는다.”하
고 칭찬까지 하게  되었다. 유복 어머니의 칭찬이 안으로 들어가서  심의의 입을 
거치어 갖바치의 집으로 굴러왔다. 꺽정이가 이것을  듣고 “재주를 배우면 드러
내놓고 배우지 숨길 것이 무엇이냐?”하고 유복이를 나무라니 유복이는 못된 일
을 하다가 별안간  남에게 들킨 사람과 같이 얼굴이 붉어지며,  “끝끝내 숨기려
고 한 것도 아니오. 한번 언니들을 놀래 보려고 했더니 고만 들켰소.”하고 발명
하였다. “어림없는 것 같으니,  네가 하늘의 별을 따기로 놀라기는 누가 놀라겠
니? 대체 댓가지창을  가지고 얼마나 잘 던지나 내 앞에서  한번 해보아라.” “
아직 언니에게 보일  만큼 되지 못했으니 조금 더 참으시오.”  “네가 참으란다
고 보고 싶은 것을 참는단 말이냐? 오늘 한번 해보아라.”
  유복이는 꺽정이의 말을 어기지  못하여 저의 집에 가서 댓가지창들을 가져왔
다. 두어 간 밖에 세운 손바닥만한 나무쪽에  댓가지창 다섯 개를 내리꽂아 보이
었다. 꺽정이가 “용하다.” 한마디 칭찬하고  바로 갖바치에게로 하서 “선생님, 
유복이도 한번 시재  보이십시오.”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
었다. 이튿날 갖바치의  집 안마당에서 여러 사람들 보는 데서  유복이가 댓가지
창을 던지게 되었는데 갖바치와 심의는 바깥방에 앉아서 문을 열고 내다보고 꺽
정이와 봉학이 외에 금동이까지  유복이 좌우에 둘러서고 섭섭이는 안마루 끝에 
서서 바라보았다. 유복이 입에서 쉿쉿 소리가  나며 댓가지창들이 빨랫줄같이 건
너편으로 건너가서 담에 붙은 나무쪽 과녁에  들어가 박히었다. 맛없는 금동이가 
유복이를 툭툭치며 “가는  창을 만들어 가지고 봉학이처럼  파리나 잡아라.”하
고 말하니 “지금  하나 잡아보리까? 매부 상투에 한  마리가 붙었소그려.”하고 
별안간에 쉿 소리를 하며 댓가지창 하나를 던지어서 금동이의 상투를 가로 꿰었
다. 가까이서 던진 것이 빗나갈 까닭이 없었다. 이것을 보고 봉학이는 손뼉을 치
고 꺽정이와 심의는  허허 소리를 내고, 섭섭이는 입을 막고  갖바치까지 빙그레
하였다. 금동이가 내다보는 갖바치를 꺼리어서 맘대로  골을 부리지 못하나마 유
복이에게 목자를 부라리며 상투에 꽂힌 댓가지창을 뽑아서 분질러 버리었다.
  14
  심의가 봉학이는 상급을 주고 유복이는 아니 줄 수 없다고 대장장이를 시켜서 
조그만 제물자루창 다섯 개를 치이어서 상급으로  유복이를 주었다. 그것이 명색
만 창이지 크기는 손 작은 사람의 집게뼘 한 뼘쯤밖에 아니 되고 모양은 조그만 
댓잎에 굵은 줄기가  붙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유복이는 댓잎이라고  이름을 짓
고 봉학이는 뼘창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봉학이의  지은 이름이 여럿에게 쓰이
게 되었다.  그 뒤에 어느 날  꺽정이 남매가 조용히 안방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섭섭이가 “너도  무슨 재주든지 재주 한 가지 배우려무나.  봉학이의 활은 
고사하고 유복이 뼘창  잘 쓰는 것도 보기 부럽더라.”하고 동생의  눈치를 보니 
꺽정이는 탐탁하게 듣지 않고  “부럽거든 매우구려.”하고 문동답서로 대답하였
다. “내야 여편네  사람이 그런 것을 배워서 무어 하겠나.  네나 배우란 말이지. 
너 같은 장사가 신통한 재주까지 배워 두면  좀 좋겠니.” “언짢을 것은 없겠지
요.” “그애야, 언짢을  것만 없어? 배워 두면 이담에  잘 써먹게 될지 누가 아
니?” “잘 써먹지 못할 것 내가 아는걸.  그리고 쓸 데가 있으면 봉학이나 유복
이 같은 놈  불러다 쓰지 걱정이오?” “무엇이든지 남의  손을 비는 것이 내가 
하는 것만 하냐?” “누나 말대로 하면 옷도  내 손으로 지어 입어야지, 누나 손
을 빌어서는 못 쓰겠구려.”  “그렇게 할 말이 아니야. 도적질도 하지는 않을망
정 알아는 두란다고  무엇이든지 배워 두면 좋지, 언짢을 것이  무어 있니?” “
글쎄, 언짢을 건 없다니까 그러오?”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배워야지.” “차차 
배우지요.” ‘“내가 사내 같으면 너더러 배우라기  전에 내가 나가서 배우겠다
만.” “여편네는  배워 두면 어떻소?” “그럼  여편네가 활이나 창  같은 것을 
배워 두어서 무엇에 쓰니?” “쓰기는   무엇에 써요, 그저 배워 두는 것이지.” 
“여편네가 벼슬하는  나라 같으면 나도  배워 두다뿐이야.” “누나가  쓴다 못 
쓴다 하는 것이 벼슬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누나의 여편네나 나의 사나이가 못 
쓰기는 일반이오.”  “신령님이 인물을 점지할  때는 장래에 반드시  쓰일 곳이 
있을 것인데 너 같은 큰 인물을 왜 우리네 백정의 집으로 점지하셨을까?” “신
령님이란 다 무엇이오? 그런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있다고 해도 내가 
그 따위 것의 점지를 받아서 태어났을 리 만무하오.”
  남매의 문답이 그칠 줄을 모를 때에 금동이가 밖에서 뛰어들어오며 “너 여기 
있구나. 나는  봉학이하고 새 잡으러 간  줄로 알았지. 어서  나가 보아라.”하고 
미처 나가 보라는 까닭을 말하지 못하여 꺽정이는 “왜 나가라오?”하고 까닭을 
묻는데 순하지 아니한  어조가 듣기에 시비하려는 사람의 말 같기도  하였다. 금
동이가 대번에 골을  내며 “나가기 싫거든 고만두려무나.”하고  변덕스럽게 고
개를 흔드니 꺽정이가 웃으면서 “고만두지, 낭패될 일 없소.”하고 앉은 자리에
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금동이가 골이 조금  풀리며 섭섭이를 향하여 “장인님
이 오셨어. 꺽정이  어디 갔느냐고 물으시기에 새 잡으러 갔는가  보다고 말씀했
지.”하고 꺽정이더러  나가 보라던 까닭을  말하자, 꺽정이는  “매부 똑똑하오. 
버선 수눅은 바꾸어 신지 않겠소.”하고 벌떡 일어나 나갔다. “자식이 고분고분
치도 못하다.”
“그애 고분고분치도 못한 것 걱정 말고 당신이  좀 변변하게 구시오.” 하고 섭
섭이도 일어나서 방을  쓸어놓으려고 비를 찾았다. 얼마 아니 있다가  꺽정이 부
자가 같이 들어왔다.  섭섭이가 그 아버지를 이따금 보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
는 것이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방에 들어앉은 뒤에 “아버지, 이번에 어째 오
셨소?” 하고  섭섭이가 정답게 물으니 그  아버지는 턱으로 금동이를 가리키며 
“저애 아버지하고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하고 의논할 일이  무엇인것은 말
하지 아니하였다.
  돌이가 이번에 서울 온 것은 아들딸도 보려니와 데리고 사는 여편네가 태중에 
학질로 죽을 지경이 되어서  약을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날 밤에  두 사돈이 병 
이야기, 약 이야기를  하고 앉았는 중에 심의가 어디를 갔다가  돌아와서 중전이 
지금 태중이라는 소문을 전하였다. 갖바치가 “임금 한 분이 탄생하시려는 게지.
” 하고 적이 웃으니 심의는 “중전이 생남을 합신대도 동궁이 계옵신데 임금은 
무슨 임금, 한껏해야 대군이지.”  하고 허허 웃고 돌이는 “우리 집에도 이번에 
무슨 군이나 나려는지.”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15
  그 뒤에 돌이의  여편네가 병에 부대끼다 못하여  여덟 달에 사내아이 하나를 
지어 낳았다.  어린아이는 조막만한 것이  간신히 사람의 모양만  가졌을 뿐이지 
손톱 발톱도 변변히 생기지 못하였었다. 꺽정이는  동생 하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내려왔다.  갓난아이를 보고 동기가 귀엽다느니보다  인생이 불쌍하
였다. 아버지는 고사하고 아이의 어머니까지 며칠 못  살고 죽을 것으로 셈을 치
고 죽으라고 내버려 두다시피 하는 까닭에  더욱이 불쌍하였다. 꺽정이는 아이가 
울면 젖을 먹이라고 재촉에 재촉을 더할 때가 많을 뿐 아니라 곰살궂지 못한 손
으로 조심하여 살깃을 바꾸어 줄 때도 적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서울은 집 같
고 집은 객지 같아서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많지마는 어린 동생을 아이 어머
니에게만 맡겨두면 참말로 죽일 것 같아서 완구히 살 것을 보고 가려고 며칠 동
안 집을 떠나지 못하였다.  아이가 꼴보다 병은 없어서 몇 달  지나는 동안에 손
톱 발톱도 생기고 살점도 붙어서 비로소 사람의 아이같이 반반하여지니 아이 어
머니는 울기가 무섭게 젖을 물리고 아버지도 “인제는  사람 같다. 형이 애쓴 보
람이 있다.” 하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꺽정이가 내일 모레면 서울로 간다고 작정하였을 때 그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어
물도가에를 갔더니 어떤 손 하나를 중간에 앉히고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이야기
들을 듣고 있었다.  꺽정이도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뒤에 가서 들었다. 그 손이 
이야기한다.
  “그래 구슬원에서  잤더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을 공연히  객기로 나섰소그려. 
해가 다 저물어 갈 때 그 외딴 주막에를  오지 않았겠소. 과연 늙은이 하나가 삼
태기를 겯고 앉았습디다. 그래서  그 늙은이를 보고 이 근처에 칼  잘 쓰는 이가 
있다는데 그가 어디 사는지 아시오. 당신더러  물어보면 알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디다. 하고 물은즉, 그  늙은이가 대번에 ‘나는 모릅니다’ 하고 고개를 설
레설레 흔들더니 한참 있다가 ‘칼  잘 쓰는 사람은 찾아 무얼 하실라오’ 하고 
묻는 것이 다소간  묘맥이 있어 보이기에 검술을  배울 욕심으로 찾아 왔노라고 
바로 말했지요. 그랬더니  그 늙은이가 웃으면서 ‘이 앞 숲속에서  가끔 화적이 
납니다. 아마 그 화적이 칼을 잘 쓰는갑디다. 그렇지만 화적을 만나면 물건 빼앗
기고 잘못하면 목숨까지 빼앗기기만 하지 검술  배울 수가 있겠소. 생각마시오’ 
하고 말립디다. 그  화적이 어디 사는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그걸 알 수가 있
소? 화적 사는  곳을 알면 관가에 가서 고발하고 상을  탔겠소.’ 하고 대답합디
다. 화적 난다는 숲이 거기서 얼마나 되고 또  화적이 흔히 어느 때 나느냐고 자
세히 물어 가지고 늙은 이 주막에서 오 리나 착실히 되는 숲속에를 오지 않았겠
소. 그때 해 저문지가 한참 된 때라  어두운데다가 숲속이라 옆의 사람도 알아보
지 못할 만큼  캄캄ㅘ였소. 화적이 인기척을 들으면 나오려니 하고  일부러 큰기
침을 해가면서 차츰차츰 걸어나오는데 숲을 거의 다 나와서 뒤에서 새가 날아오
는 것 같은  기척이 나며 별안간에 ‘칼받아라’ 소리가 납디다그려.  나는 무망
결 주주물러 앉았지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칼을 배우러 왔습니다
’ 한마디 말했더니,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웃음 소리가 올빼미의 우는 
소리 같습디다.  웃음소리가 끝난 뒤에는 아무  소리가 없습디다그려. 그날 밤에 
숲에서 한 오  리 떨어져있는 동네에 와서 자는데  그 동네 사람들의 말이 어둔 
뒤에 그 숲을  지나오다니 목숨이 붙어 온 것이 천행이라고  말합디다그려. 나중
에 아니까 갓이  모자가 없어지고 상투까지 장리었습디다. ‘칼 받아라’  할 때 
머리위가 선뜻하더니 그때  그렇게 된 모양인데 나는 까맣게 몰랐었소.  이것 보
오.” 하고 갓을 벗고 솔잎상투를 보이면서 “인제  겨우 당줄을 동여맬 만큼 되
었소. 그래 내가 검술을 배우려다가 혼만 나본 일이 있소.” 하고 이야기를 마치
었다. 꺽정이는 검술  이야기에 귀가 뜨이어서 앞으로 나서서 그  손에게 “구슬
원이 어느 땅인가요?” 하고 물은즉 그 손은 꺽정이를 치어다보더니 “부평땅이
다. 그것은 왜 묻니? 네가  나처럼 혼이 나보고 싶으냐?” 하고 껄껄 웃었다. 꺽
정이가 심부름 왔던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손의 이야기대
로 보면 외딴 주막의 늙은이가 수상한 사람이다. 내가 한번 찾아가 보겠다.’ 하
고 생각하였다. 꺽정이는 떠나려던 날 집을 나서  서울로 오지 않고 부평 구슬원
을 찾아갔다.
  16
  꺽정이가 초행이라 물어가며 길을 걸었다. 서울을  비켜놓고 한강 하류를 건너 
김포 땅에서 남으로 내려오는데  구슬원길을 물어 나오기는 양주서 떠나던 이튿
날이었다. 무인지경 숲속길에를  들어섰다. 숲이 크거나 길지는 아니하지만 나무
가 빽빽히 들어선 까닭에 대낮에도 길이 어둠침침하였다.  ‘이 숲이 그 손의 상
투 잘린 곳이구나.’ 하고 꺽정이는 생각하며 그 숲을  지나 곧은 길로 한 오 리
를 와서 본즉 과연  외딴 주막이 하나 있다. 삼간 초가가  까치집 같이 엉성한데 
넓지 못한 앞마당에 늙은이 하나가 맷방석을 틀고 앉았다.
‘이 늙은이가 바로 수상한 늙은이구나.’ 하고  꺽정이가 속으로 생각하며 늙은
이의 앞으로 나가서 “다리가 아프니 좀 쉬어 갑시다.” 하고 말을 붙이었다. 그 
늙은이가 한번 흘긋 치어다보더니  고개를 돌이켜서 턱으로 봉당을 가리키며 “
저기 앉아 쉬어 가게.”  하고 손에 잡은 일거리를 놓지 않는  것이 일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꺽정이가 봉당 위에  올라앉아서 늙은이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
머리에 검은 털 하나  없는 늙은이가 눈의 열기는 어찌 그리  매서울까. 이 늙은
이가 확실히 수상하지.’ 꺽정이가 늙은이와 말을  하고 싶으나 말거리가 없어서 
“구슬원이 여기서  먼가요?” 하고 물어볼 것도  없는 말을 물었더니 늙은이는 
“멀지 않아.” 간단하게 대답하고 돌아다보지도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물어볼 
말씀이 있소.” 하고  말을 붙이니 늙은이가 “무어?” 하고  돌아보는데 “검술
배우려고 왔다가 이  앞 숲속에서 상투만 잘리고 간  사람이 있소?” “나는 몰
라. 듣지도 못했어.” 하고  늙은이는 일 방해하는 것이 재미없다는 듯이 현저히 
불쾌한 내색으로 고개를  흔들고 손에 잡은 일을 계속하였다. 꺽정이가  ‘이 늙
은이 보아라. 얼마나 재미있게 일을 하나 보자.’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봉당 위
에까지 뻗치어 올라온 맷방석 날을 두서넛 함께 집어 매듭을 지은 뒤에 봉당 중
간에 선 기둥을  들어 매듭이 들어갈 만한 틈을  내고 그 매듭을 틈에 끼워놓았
다. 늙은이가 맷방석  테를 들어올리다가 뒤에 걸리는 것을 알고  아이가 손으로 
붙잡았나 의심하고 돌아다보는데 꺽정이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먼 산을 바라보
고 있었다. 늙은이가 날을  잡아당기다가 기둥 밑에 끼인 것을 알았다. 늙은이가 
일어나서 몸에 붙은  검부적을 떨고 봉당위로 올라왔다. 한번 기웃이  기둥 밑을 
들여다보고 다시 물끄러미  꺽정이를 바라다보았다. 아무리 초가집의  약한 기둥
이라도 한 손으로 기둥을 들고 한 손으로 물건을 끼자면 여간 장사로는 되지 못
할 일이니 아직  몇 살 되어 보이지 아니하는 아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맷방석이 저절로 기둥  밑에 돌아 끼었을 리도  없고 대낮에 도깨비가 장난쳤을 
리도 없고 본즉 아이의 짓인 것은 틀림이 없다.
  늙은이는 한참 생각하고 섰다가 꺽정이 옆으로 와서 붙어앉으며 “이애?” 하
고 부르니 이때껏  시침을 떼고 앉았던 꺽정이가 “네.” 하고  대답하며 돌아보
았다. “너 어디 사니?”  “양주 사오.” “양주? 너의 아버지가 관푸주하니?” 
“그렇소. 어떻게 아오?” 늙은이가 꺽정이의 어깨를 툭 치며 “참말 장사다. 내
가 너의 장사란 말을 듣고 한번 보러 가려고  했더니 잘 만났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이냐?” “어디  가는 길이 아니라 여기까지  왔소.” 늙은이는 이  말을 듣고 
빙긋이 웃더니 “네가 상투 잘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투 자른 사람을 찾아
온 모양이냐?”  “그렇소.” “그 사람은  찾아 무엇하니? 힘겨룸해  보려냐?” 
“아니오. 그 사람에게 검술을  배워 보려고 왔소.” “다른 사람 같으면 일러줄 
수가 없지만 너니까 내가 일러주마. 내가 그 사람을 안다. 내게서 며칠만 묵으면 
자연히 그 사람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하고 늙은이는 연하여  싱글싱글 웃었
다. 꺽정이 만난  것을 진정으로 반가워하는 모양이었다. “이애,  맷방석을 꺼내
놓아라. 치워버리게.” 꺽정이가 한번 웃고 나서 한 손으로 기둥을 들고 한 손으
로 매듭을 잡아당겨  눌리었던 기둥 밑에서 떼어놓았다. 보고 있던  늙은이는 “
하늘이 내신 장사다.” 하고 칭찬을 마지 아니하였다.
  17
  그 늙은이는 홀아비의 혼자  살림으로 조그만 통노구에 밥이나 죽이나 끓여서 
소금찬으로 먹고 지내는  터이었다. 길가던 사람이 혹시 날이 저물어서  자고 가
게 되면 자기네  행중 양식을 자기네 손으로 끓여먹게 하는데,  퉁노구를 빌리고 
나무를 줄 뿐이지  막무가내로 다른 청하는 것은 받지 아니하였다.  손이 양식을 
가지지 아니하여 굶어 자게 된다고 쌀 한  보시기 떠주는 법이 없었다. 늙은이가 
꺽정이를 귀엽게 여기어서 없던  법을 개시하여 자기 양식으로 대접하는데 장사
라 양도 클 것이라고 퉁노구에  가득히 밥을 지어 많이 먹으라고 권하기까지 하
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 늙은이가 꺽정이의 집 일도 물어보고  꺽정이의 공부도 
물어보고 하는 중에 갖바치의 말이 나니 “내가 평산 박연중에게서 갖바치의 말
을 들은 일이 있다. 연중이란 사람은 입에 침이 없이 칭찬하더라.” 하고 늙은이
는 꺽정이더러 “너 그래 그에게  무얼 배웠니? 글 배웠니?” 하고 물으니 꺽정
이가 “병서를 배웠소. 내가 글을  못하니까 이야기로 배웠소.”하고 대답하였다. 
“병서를 이야기로 배워? 그래 잘 알겠디?”  “대강이야 알지요.” “어려운 병
서를 이야기로 가르치는  사람도 용하지만 이야기만 듣고  아는 너는 더욱 용하
다.” 하고 늙은이는 꺽정이를 칭찬하였다. 밤이 들어 바깥이 캄캄한데 늙은이가 
꺽정이를 보고 “너 먼저 자거라. 내 어디 좀 다녀오마.” 말하고 나가더니 보리
밥 한 솥 짓기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잠이 혼곤히  들었다가 무슨 소리에 놀라 깨었다. 방문  앞에서 사람
의 말소리가 난다.  늙은이의 쟁쟁한 소리와 다른 사나이의 무뚝뚝한  소리가 섞
이어 들린다. “내일  혼자 들여놓으시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은  다른 사나이
의 목소리요 “염려 말게.”  하고 대답하는 것은 늙은이의 목소리다. 나중에 쨍
쨍한 소리가 “수고했네.  잘 가게.” 하고 인사하니 무뚝뚝한  소리가 대답한다. 
그 대답이 끝난  뒤에 방문이 열리며 늙은이가 들어서니 꺽정이는  일어 앉았다. 
“이때껏 자지 않았니?” “아니오.  자다가 지금 깨었소.” “곤할 터인데 아니 
되었다. 다시 자거라.” 하고  늙은이는 꺽정이 옆에 와서 앉으며 “양식도 달리
거니와 너를 맨밥  먹이기 답답해서 양식하고 반찬하고 얻어 왔다.  내일 아침에 
고기 반찬해서 한밥  잘 먹자. 첫닭이 울었다. 어서 자자.”  하고 늙은이는 목침
을 베고 눕기가 무섭게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꺽정이가 속으로 ‘이 밤중에 어
디 가서 얻어왔을까?  훔치어 온 것이 아닐까?’  하고 별생각을 다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이른 식전에 꺽정이가 일어나서 보니  늙은이는 먼저 일어났었다. 늙은
이가 방에서 나오는 꺽정이를  보고 “이애, 저것을 윗방에 좀 들여놓아라.” 하
고 봉당에 놓인 멱대기를 가리키니 꺽정이는  “그러지요.” 하고 쉽사리 멱대기
를 들여놓았다. 쌀 열 말을 한 말 무게같이  드는 것을 보고 늙은이는 “이 담에
는 쌀을  얻으러 갈 제 너하고  같이 가야겠다. 어젯밤에 짊어지고  오는 사람이 
하도 낑낑대서 속이 터질 뻔했다.” 하고 웃었다. 이 날 식전부터 꺽정이가 늙은
이의 시중을 들기 시작하여 차차로 밥도 꺽정이가 짓고 집안도 꺽정이가 치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꺽정이가 늙은이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며칠을 지내었다. 그 동
안에 늙은이는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도 검술 이야기만은 입밖에도 내지 아
니하였다. 꺽정이가  어느 날 “만나게  된다든 사람을 언제나  만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늙은이는 “참,  검술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마고 했지. 대체 검술
은 배워 무엇하니?”  하고 말하는 것이 딴청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저 배워
두었으면 좋으려니 생각할  뿐이지, 무엇하려는 작정은 없소.” “작정없이는 배
울 수 없을라. 그  사람이 잘 가르쳐주지 않을걸.” “가르쳐주거나 아니 가르쳐
주거나 사람을 만나보아야지요.”  “만나보기는 쉽다. 오늘 저녁에는 만나게 하
마.” 하고 늙은이는 꺽정이를 보고 빙글빙글 웃었다.
  18
  저녁밥이 끝난 뒤에 늙은이가 “검술하는 사람을  만나러 나가자.” 하고 꺽정
이를 데리고 집  뒤로 돌아와서 “여기 잠깐 섰거라.” 하고  꺽정이를 뒷마당에 
세워두고 다시  앞으로 나갔다. 이때는 초생이라  반달이 서천에 걸리어 있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꺽정이가 한참 동안 이리저리 거니는데 홀저에 뒤에서 머리꽁
지를 지근지근 잡아당기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하며 한
참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번개같이 돌쳐서서 손으로 꽉 잡으려고 하니 눈앞
에서 어른하는 새까만  물건이 새같이 날아서 몇 간 밖으로  물러갔다.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바라보니 아래위에 검은옷을 입고 머리에 검은 수건을 쓴 사람
이 손에 막대를 잡고 섰다. 꺽정이가 앞으로  나가며 자세히 얼굴을 바라보니 그 
사람이 아니요, 곧 주인 늙은이다. “내가  검술을 아는 사람이다.” 그 목소리는 
평시같이 쨍쨍하지 아니하고  독 속에 울려나오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도 그
런 듯합디다.”하고  꺽정이가 가까이 가려고  한즉 늙은이는 뒤로  더 물러서며 
“네가 나를 한번 붙들어 보아라.”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늙은이를 붙들려고 손
을 벌리고 쫓아다니는데  늙은이는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여 붙들릴 것 같으며 
붙들리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못 붙들겠소.”하고  우뚝 서니 “그것 보아라. 
늙은 사람이 천하 장사에게 붙들리지 않는  것도 검술이다.”하고 늙은이는 웃으
며 막대를 내던지었다. “인제 나를 붙들어 보시오.” “너야 몇 걸음 안에 붙들
지.” “못  붙들면 어떻게 하실라오?” “어떻게  하긴 무얼 어떻게  한단 말이
냐?” “못 붙들면  검술을 가르쳐 주실라오.” “아따, 그래라. 그  대신 붙들리
면 어떻게 하려느냐?”   “무엇이든지 말씀하면 말씀대로 하지요.” “좋다. 그
리 하자.” “자, 붙드시오.”하고 꺽정이가  달음질을 치기 시작하였는데 참말로 
몇 걸음 나가기 전에  늙은이의 손이 등에 와서 닿았다. 꺽정이가  용을 써서 몸
을 공중으로 솟치어 피하니 “어 장사다. 그렇지만  내 손에 붙들리고 말 것이니 
보아라.”하고 늙은이는 날아다니는  새와 같이 가볍게 몸을  놀리어서 꺽정이가 
이리 피하면 이리 앞을 막고 저리 피하면 저리 앞을 막았다.
  꺽정이가 ‘이렇게 몰리다가는 참말  붙들리겠다.’하고 생각하며 뛰엄질을 시
작하였다. 처음에는 넓이로  뛰어 앞을 막는 늙은이의 너머로 몇  간씩 뛰어나가
다가 그래도 늙은이에게  몰리니까 나중에는 높이로 뛰었다. 힘껏 용을  써서 한
번에 집을 뛰어넘었다. 늙은이가 지붕 위로  뛰어올라와서 앞마당에 섰는 꺽정이
를 내려다보며 “장사라 할  수 없다. 못 붙들겠다.”하고 앞마당에 사뿐 내려서
서 꺽정이의 손을  잡고 “내가 한 나이나 젊었을  때 같으면 너의 뛰엄질도 못 
당할 내가 아니지만 인제는 늙었다.”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제 내기는 어떻게  하실라오.” “시행하지. 자, 고만 방으로 들어가자.”하
고 늙은이가 꺽정이를 방으로 들어와서 옷을 바꾸어 입고 앉은 뒤에 꺽정이더러 
“이리 와서 앉아라.”  하고 말하여 앞에 가까이 앉히고서 “너에게  검술을 가
르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받을 일이 있다.”하고 점잖게 말하였다.
  “검술하는 사람은 죄없는 목숨을 해치는 법이 없다.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탐관오리 같은 것도 죄없는 사람일까요?” “죄없는 탐관오리가 어디 있을꼬?
” “그럼, 할 수 있지요.” “여색을 탐하여 칼을 빼는 법이 없으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지요.” “악한 재물을 빼앗아  착한 사람을 주는 외에는 
재물 까닭으로 칼을 빼는 법이 없으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지요.
” “검술하는 사람은 까닭없는 미움과 쓸데없는 객기로 칼을 쓰지 않는 법이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이 세상에는  미운 것들이 많은걸요.”  “악한 것을 
미워함은 곧 착한  일이라, 그 미움은 금하는 것이 아니로되  까닭없는 미움으로 
인명을 살해함은 천벌을  면치 못 할 일이다.” “아무쪼록 천벌을  받지 않도록 
하지요.” “네가 지금 말한 것이 장래에 틀림없을  것을 다짐둘 수 있겠느냐?” 
“다짐둘 수 있지요.”  이러한 문답이 있은 뒤에 늙은이는 꺽정이의  맹세를 받
고 제자로 정할 것을 허락하였다.
  19
  늙은이가 나무칼 두 자루를 만들어서 한 자루는 자기가 쥐고 또 한 자루는 꺽
정이를 쥐이고 칼 쓰는  법을 가르치었다. 쥐는 법과 겨누는 법과  치는 법과 찌
르는 법과  그 외의 모든 법을  입으로 일러주고 손으로 바로잡아  주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낮에는 주막 늙은이  노릇을 하고 밤에만 검술 선생질을 하던 것이 
제자의 수단이 나날이 달라가는 데 재미를 붙이어서 낮에라도 앞길에 행인이 그
칠 떼는 앞마당에 앉아서 삼태기를 곁거나 맷방석을 틀거나 하지 않고 뒷마당으
로 들어와서 제자와 같이 나무칼을 잡게 되었다. 한  달 두 달 지나는 동안에 꺽
정이가 검술 배우기 시작한  뒤 거연히 일 년 세월이 지나갔다.  그 동안에 꺽정
이는 나무칼을 들고 악 소리를 질러가며 치고받고 하다가 쉬는 동안에 꺽정이가 
우연히 선생 늙은이에게  “참말 칼이면 재미가 더  있을걸요.”하고 말하였더니 
늙은이가 “너만하면 참말  칼 가지고도 할 만하니 어디 한번  해보자.”하고 방
으로 들어가서 깊이  간수하였던 환도 세 자루를 한꺼번에 꺼내  가지고 나왔다. 
짧은 환도 한 자루는 젖혀놓고 긴 환도 두 자루를 집을 벗기어서 꺽정이를 보이
며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너의 맘대로 골라잡아라.”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고른 뒤에 나머지를 자기가 쥐고 먼저 마당 중간에 나서서 “자, 이리 나오너라.
”하고 꺽정이를 불렀다. “칼끝에는 사정이  없으니 조심해라.” “염려 마세요.
” 두 칼이 어울리기 시작하였다.
  치는 칼에 막는 칼이 날에서  불을 내고 들어가는 칼에 쫓아오는 칼이 슴베에
서 소리를 냈다. 얼마  동안 두 칼이 왔다갔다 하며 어울렸다  풀렸다 하다가 그 
사이에서 “이애,  고만 쉬자.”하는 늙은이의 말이  떨어지며 선생 제자가 서로 
갈라서서 이마의  땀을 씻었다. 땀이 든  뒤에 늙은이가 “내 한번  칼춤을 추어 
보랴?”하고 짧은 환도를 빼어들고 마당에 나서서 전후좌우로 칼을 놀리는데 서
리 같은 칼빛이 백비단 같은 남빛과 서로  얼리어서 흰빛으로 사람을 휩쌌다. 번
쩍거리는 흰빛덩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었다.
  꺽정이가 보다가 신명이 나서 “선생님, 나도 한번 해봅시다.”하고 소리를 치
니 선생 늙은이가 흰빛을 거두고 나서며 “너는 긴 칼을 가지고 한번 추어 보려
무나.”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긴 칼을 들고 나서서 춤을 추었다. 칼이 길뿐이 아
니라 손이 선생같이 재게 놀지 못하여 흰빛이 연하지 못하고 토막토막 떨어져서 
중간에 선 사람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애, 신신치 않다. 고만두고 이리 오너라.
”하고 늙은이가 꺽정이를  불러다 옆에 앉히고 손에  쥐었던 짧은 칼을 보이며 
“이 칼은 내가 목숨같이 아끼는 칼이다. 이십칠팔  년 전 난리에 내가 출전하였
다가 전중에서 얻은 것이다.  너 오기 전에는 내가 울적하면 이  칼을 가지고 지
금같이 칼춤이나 한번씩 추어야 속이 시원하던 것인데,  너 온 뒤로는 너 가르치
는 데 재미를 붙여서  칼춤 한번 추지 않고 지내왔다.” 말하고  칼날을 집에 꽂
으려고 하니 꺽정이가  “어디 한번 써봅시다.”하고 청하였다. 늙은이가 “무엇
에다 써볼까?”하고 한참  생각하더니 짚단을 집어오라고 말하여 꺽정이가 집어
온 뒤에 짚 한 묶음을 아래위를 묶어서  세우고 “중간을 한번 베어 보아라.”하
고 꺽정이에게 칼을 주니 꺽정이가 받아들고 몇 걸음 밖에서 뛰어들어오며 한번 
가로 쳤다. 짚 묶음은 칼을 맞지 않은 것과 같이 그대로 서 있었다. 선생 늙은이
가 이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짚 묶음 앞에 와서 발길로 툭 차니 아래위 묶은 
것이 두 동강이 되어  땅에 쓰러졌다. “칼도 잘 먹지만 칼질도 제법이다.”하고 
칭찬할 제 “무엇이 제법이오?”하고 말끝을 채며 마당 한구석에 들어서는 사람
이 있었다. 늙은이가 “그게 누구냐?”하고 호령기 있게  물으며 그 사람을 바라
보더니 “나는 누구라고. 자네 웬일인가?”하고  일어서서 마주 나가다가 돌쳐서
서 “꺽정아, 칼들을 가지고 먼저 방으로 들어가거라.”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방
에 들어와서 한참 된 뒤에  늙은이가 혼자 들어오더니 분분히 검은 옷을 찾아내
서 짧은 칼과 같이 싸서  손에 들고 꺽정이더러 “내가 어디를 좀 갔다 올 터이
니 집을 잘 지키고 있거라. 늦어도 사오 일 안에 돌아오마.”하고 총총히 나가는
데 꺽정이는 ‘웬 사람이 무슨 일에 선생을 청해 가나’하고 의심하며 “안녕히 
다녀오시오.”하고 인사하였다.
  20
  사오 일 된 다음 늙은이가 과연 닷새 만에  돌아왔다. 그 동안 어디 갔다온 것
은 늙은이가 말하지도 아니하고 꺽정이가 묻지도 아니하였다.  그 뒤 어느 날 밤
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어서 꺽정이가 거의 밤마다 나가는 뒷마당에를 나가지 못
하고 방안에서 늙은이와  마주 앉았는데, 늙은이가 옛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고 
말하고 자기의 내력을 이야기하였다.
  늙은이는 본래 서울 사람으로 외소군관을 다니었는데,  삼포왜변이 났을 때 방
어사 황형의  부하로 출전하여  제포대전에까지 참예하였었다. 그때  선봉부대는 
녹각목으로 진전을 막아  산 위의 적병이 짓쳐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석전군을 
시켜서 돌팔매를 치게  하는 것이 장령이었는데, 그는 공을 탐하는  마음에 장령
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녹각목 밖에 나서서 가까이 내려오는 적병들을 쫓아가
며 목을 베었다.  성정이 포악한 황방어사가 이것을 알고 장령을  어긴 죄목으로 
진전에서 처참하라고 영을 내리었다. 그러나 그가  다행히 죽을 수를 면하느라고 
이때 마침 산 위의 적진이 깨어지며 무수한 적병이 개미떼같이 헤어져 바닷가로 
도망하니 이것을 뒤쫓기가 급하여 영을 미처 시행할  사이가 없었다. 그는 이 틈
을 타서 도망하여 어느  촌가에 들어가서 군복을 벗어버리고 전전걸식하여 서울
로 올라왔었다. 그 뒤로는 그가 성명을 내놓지  못하고 구차히 숨어 지내는데 이
웃에 간특한 사람이 있어서 군관으로 도망한 눈치를 알고 포청에 밀고하여 포교 
손에 잡히게 될 뻔하였다. 그는 잠시 피신하였다가  그 이웃 사람들을 죽이어 분
을 풀고 시골로 도망하여 몇 해 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중에 지내게 되었다. 
어느 해 서울 사람 하나가 그 동리에 사는 이성사촌을 찾아와서 그 집에서 형제
같이 친하게  되었다. 그 서울 사람이  평산 오던 이듬해에 칙사가  나왔다 가며 
우리나라 계집아이들을 뽑아다가 오랑캐를 준다는 소문이 나서 서울 시골 할 것 
없이 딸을 둔 사람들이 부랴부랴 딸을 치우는데 그 사람이 그때 나이 불과 이십
여 세라, 근동  사람 중에 그 안해  없이 지내는 것을 안 사람이  밤중에 밤중에 
딸을 업어다가 맡기다시피  하였다. 서울 사람은 장가들려는 맘이 있는  것도 아
니지만 밉지 않은 계집아이가 안해로 생기니까 싫다는 말을 하지 아니하여 내외
가 되었는데, 혼인 소동이 간정된 뒤에 그  색시가 사촌의 안해에게서 남편 되는 
사람이 무슨 죄를  짓고 숨어다닌다는 말을 듣고 친정 아비에게  말하였다. 친정 
아비가 이 말을 듣고 관가에 고하여 서울  사람이 관가로 잡혀들어갔다. 그 서울 
사람은 박연중이란 사람인데 당시 영의정을 죽이려던 사람이라 평산부사가 이것
을 알고 서울로 압송할 거조를 차리었다. 그는  형제같이 친하던 사람이 죽을 땅
에 들어간 것을 불쌍히 여기어서 칼 하나를 몸에 지니고 밤중에 읍에 들어가 옥
사장이를 찾아가서 칼로 겨누며  위협하여 옥사장이 시켜 옥문을 열리고 연중이
를 빼앗아  가지고 도망하였다. 연중이도  몸이 날쌘 사람이라  장독만 없었다면 
그 밤중에 멀리 도망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연중이가 장독으로 걸음을 걷지 못
하는 까닭에 성황산성 근처 으슥한  숲속에 숨어서 이틀 밤을 지내고 사흘 되는 
날 간신히 자모산성  근처로 옮겨와서 산속에서 다시 이삼 일을  지내었다. 그리
하는 동안에 연중이도 몸을 기동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이 갈 곳을 지정한 것도 
없이 나서서 산으로 들어간 것이 연분이 되어서 그가 화적의 두목이 되어가지고 
연중이와 같이  운달산에서 일이 년 동안을  지내었다. 그 뒤에 그는  그 두목을 
연중이에게 물려주고 세상에 나와서  다시 얼마 동안 떠돌아다니다가 부평 계양
산 적굴에서 다시 화적의 괴수 노릇을 하였다.  화적 노릇하기가 종시 맘에 불쾌
하여 늙은 것을 핑계하고 적굴에서  나와서 주막 늙은이 노릇한 것이 육십이 지
난 뒤의 일이라 인제 오륙 년밖에 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전 연분이 있어서 
운달산 사람과  계양산 사람이 연신은  그치지 아니하는데, 꺽정이가  처음 오던 
밤에 쌀, 고기를 보내줄 뿐이 아니라 계양산에  급한 일이 있어서 늙은이에게 청
병을 오니까 늙은이는 모른 체할 수 없어 잠시 갔다온 것이었다.
  21
  계양산은 부평읍내서 엎드러지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읍의 진산
이니 이 산 안에 명화적이  당을 짓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명화적이 부평부사와 
이웃하여 지내는 셈이었다.  도호부사로 진무영장을 겸한 부평부사가  비위를 눅
게 가지어 이웃 대접을 예에 맞도록 하여야망정이지 혹시 성깔을 부리어 큰소리
를 지를  양이면 계양산에서 울려나가는  소리가 동헌 대들보를  흔들었다. 그때 
부평부사가 나이 젊은 탓으로  동헌에 들어앉았기가 갑갑하여 고려 이상국의 놀
던 자취를 찾아 계양산 명월사에를 올라가려고 하니 이방이 부사 앞에 나아가서 
“계양에는 만일사가  좋다 하옵니다.  안전께옵서 행차합시기도 편하옵고  바다 
경치를 내다봅시기도 좋사옵고 또 절도 명월보다  훨씬 낫습니다. 명월사는 높이 
있다뿐이옵지 산이 가리어  바다도 잘 보이지 아니하옵니다.”하고  명월을 흠잡
아 말하였으나 부사는 공연한 고집으로 “구경은 가는 길이 좀 어려워야 좋으니
라.”하고 명월에  가려는 것을 변하지  아니하니 이방이 기어코  말릴 생각으로 
“말씀을 아뢰옵기도  황송하오나 명월은 화적당의 출입이  잦은 곳이라 불의의 
봉변을 하옵실까 두렵소이다.”하고  말하였다. 부사가 화적에게 봉변할 것을 헤
아리지 않고 명월에 올라가도록 구경에 팔리지 아니하여 구경 가려는 것을 중지
하니 이방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내 말에 고집을 세울 수가 있으랴.’
하고 생각하였다.  부사가 구경 못 가서  흥심이 꺾인 까닭으로 분이  나서 좌우 
병방을 불러들이어 “계양산 안에 명화적의 소굴이 있다는구나?  이것을 모른체
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관가에 수치가  될 뿐이 아니라 죄없는 백성에게 큰 피해
를 끼치는 것이니 너희들이 장교와  건장한 군노를 데리고 나가서 그 소굴을 찾
아 괴수를 잡도록  하여라.” 하고 분부하니 병방들이 속으로는 ‘이  양반이 화
적의 소굴이 있는 것을 언제 알았나?’ ‘장교 군노 따위를 데리고 화적의 괴수
를 잡느니  하늘의 별을 따기가  쉬울걸.’하고 생각들 하면서도  녜녜 대답하고 
물러나왔었다. 
  장교들이 칼을 차고 군노들이 활을  메기 전에 소문이 벌써 계양산 사람의 귀
에 들어갔다. 병방들이 도망질치기 쉬운 대낮에  군노들을 앞세우고 적굴로 들어
올 제, 적굴이 멀지 아니한 곳에서 화적 두 사람이 마주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은 다같이  몸에 가뜬한 검은 옷을 입고  머리에 긴 검은 수건을 두르고 
손에 긴 칼을 들었는데,  한 사람은 얼굴을 다 내놓고 다른  한사람은 머리에 두
르다 남은 수건으로 얼굴을 싸고 눈만 내놓았었다.   얼굴을 내놓은 사람이 “이
놈들 뒤어지고 싶거든 각기  제 손으로 목을 따 뒤어지지, 남의  칼을 더럽힐 생
각 마라.” 하고 호통을  질러서 앞을 선 군노가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병
방 한사람이 “더 나가지 말고 여기서 활을 쏘아라.” 하고 영을 내리었다. 방패
도 아니 가진 검은 옷 두 사람에게 대고 여럿이 활을 쏘니 한 살이라도 맞을 듯
하건마는 한 사람은 옆에 있는  나무 뒤로 숨어서 살이 맞지 않고 다른 한 사람
은 숨지도 아니하고 가까이 가는 살을 칼끝으로 받아 떨어뜨리어 이편에서 화살
만 허비하게 되었다. 
  활질이 끝나자마자 얼굴 내놓은 검은옷이 “이놈들 활  잘 쏜다. 인제 우리 칼
맛 좀 보아라.”하고 호통치는데 병방 두  사람부터 “이애들, 이거 아니 되겠다.
” 하고 뒤를 빼기  사작하니 장교나 군노는 말할 것도 없다.  병방 이하 삼사십 
명 사람이 일제히 뒷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얼굴 가린 검은옷이 나는 새같이 
쫓아내려오니 뒷걸음을  앞걸음으로 돌이켜 가지고 도망질들을  하는데 삼사 명 
사람의 머리  위에 칼빛이 번쩍번쩍하였다.  병방들이 멀리 도망하여  나온 뒤에 
간신히 정신을 진정하여 사람의 수효를 점고하니 다행히 죽거나 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나,  머리에 들쓴 벙거지가 모두  꼭지가 없어졌다. 이것이 검은옷의 
칼에 떨어진 것을 알고 간들이 서늘하였다. 병방  이하 여러 사람이 관가에 들어
와서 접전 전말을 아뢰고 꼭지 없는 벙거지를 바치니 부사가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리며 “부평부사는 고만 하직이다.” 하고 혼잣말 하였다.
  22
  부평부사가 계양산 사람을 어찌하지  못하여 한걱정을 하고 지내는 중에 향곳
마을에 사는 농군 하나가 적굴의 잔심부름하는 것을 염탐하여 알고 든손 잡아들
이어 화적의 동류로  다스리며 물어보았다. “화적 괴수놈이 칼을  잘 쓴다더냐?
” 하고 동헌 방안에 앉아 묻는 부사의 말을 계상 계하에 구부리고 섰는 관속들
이 차례로 받아내리어 농군이 듣게 되고
“괴수놈이 칼  잘 쓴단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장틀 위에  매어 있는 
농군이 대답한는 것을 관속들이 받아 내릴 때 차례를 거꾸로 하여 받아올리어서 
부사가 듣게 된다.
“검술을 잘못하고야 삼사십 명 사람의 벙거지 꼭지를 어떻게 잠시간에 도릴 수
가 있단 말이야?”  “그건 모르올시다.” 말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중에 “되우 
쳐라.” “되우 치랍신다.”  “네이.” 큰 소리와 긴 대답이 연하여  나며 한 어
깨를 벗어 맨 사령이 곤장을 들고 몇 걸음 밖에서 껑충 뛰어들며 허리를 직신하
니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죽는 소리가 농군의  입에서 나왔다. 한동안 뒤에 “바
루 아뢰어라.” “바루 아뢰랍신다.”  곤장 바람에 혼이 난 농군이 간신히 정신
을 차리고 “검술 말씀이오니까?  구슬린 근처 외딴 주막 늙은이가 검술이 세상
에 드물다고 화적이  칭찬하는 것은 들은 일이 있소이다.” 하고  아뢰어서 부사
가 듣고 잠깐 동안 생각하더니 농군을 옥에 내려 가두게 하고 관속들을 모두 퇴
출시킨 뒤에 이방과 병방을 따로 조용히 불러세우고 “주막 주인놈이 검술로 화
적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놈도 화적의 동류인 것은 분명하니 그 주막 주인놈을 
잡아들여라. 그런데  그놈이 검술을 잘한다니  섣불리 서둘지 말고  장교와 군노 
이십 명을 잘  단속하여 두었다가 밤중에 나가서 잡도록 하여라.”  하고 이르니 
이방.병방이 녜녜 하고 물러나갔다.
  이때 외딴  주막에는 앞마당에서 늙은이가 맷방석의  휘갑을 치고 뒷마당에서 
꺽정이가 나무칼로  칼춤을 추고 있었다.   늙은이의 일이 끝난 뒤에  해가 거의 
저녁때가 다 되어서 늙은이가 꺽정이를 데리고 저녁밥을 짓는 중에 얼굴 험상스
러운 사람이  하나 찾아왔다. 늙은이가 이사람이  오는 것을 보자 “자네  왜 왔
나?” 하고 몰풍스럽게 물으니 그 사람은 가쁜 숨을 돌려 가지고 “빨리 다녀오
라는 말씀이  있어서 숨이 턱에  닿게 줄달음을 쳐왔습니다.”  하고 휘황스럽게 
대답하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다냐?” “녜.”하고 그 사람이 꺽정이 듣는 것
을 꺼리는 눈치로 말하기를 주저하니 “염려 말고  아무 말이라도 하 게.” 하고 
늙은이가 말을 재촉하였다. “벙거지  꼭지 도리신 것이 탄로가 났답니다.  그래 
오늘 밤 중에 장교  군노 이십 명이 이리 나온답니다. 아까  이방에게서 급한 기
별이 왔겠지요.” 하고 한번 싱긋 웃고 다시  말을 이어 “그래 대장께서 주막은 
치우시고 곧 오시라고  말씀합디다.” 하고 말하니 늙은이가  꺽정이를 가리키며 
“저애하고 나하고 둘이 있으면 이십  명은 고사하고 이백 명이 온대도 겁이 없
네.” 하고 빙그레 웃고 다시 “인제 여기  주막은 지니고 있지 못할 모양이니까 
오늘 밤으로 치워버리고 갈 터일세. 자네 먼저 가서 말씀하게.” 하고 말하여 곧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꺽정이가 “그 사람이 계양산에서 왔나요?” 하고 물으니 늙은이가 고개를 끄
덕이고
 “얼른 저녁을 먹어치우자.” 하고  밥을 퍼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 제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선생 늙은이가 먼저 말하였다.  “일 년 넘어 
같이 지내다가 섭섭하지만 인제는 작별할 수밖에  없다.” “계양산에 가서 길래 
계실 터인가요?” “가서  보아야 알겠지만 아마 평산 박연중이게로  갈까 보다.
” “계양산까지 뫼시고 갔다가 나는 서울로 가지요.” “그럴 것 없다. 너는 그
런데 발을 들여놓을 것이 없다.  저녁 먹은 뒤에 너 먼저 떠나가거라. 나중에 나
는 집을 불질러 버리고 계양으로 갈 터이다.”  “장교들 나오는 것을 보고 가시
지요.” “글쎄, 혼들을 좀 내보낼까?” “나도  구경하고 가겠어요.” 선생 늙은
이가 꺽정이를 보고 “칼을 좀 써보고 싶으냐?”하고 빙그레 웃었다.
   23
  저녁밥이 끝난  뒤어 늙은이는 요긴하고 가벼운  물건만을 수습하여 조그맣게 
짐을 쌌다.  짧은 환도, 긴 환도 두 자루는 싸지 않고 내어놓았는데 늙은이가 짧
은 환도의 날을 뽀아들고 처음으로 보는 것같이 위아래를 치보고 내리보고 하다
가 날을 누이어  꺽정이를 보이며 “철색을 보아라.  철중쟁쟁이라니  이런 것이 
쟁쟁한 철이다.  그리하고 칼끝을 보아라. 명공의 비범한 솜씨가 아니면 저와 같
이 쏙 빠지게 될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제포 진중에서 얻은 뒤로  삼십 년이 가
까웠으나 날카롭게 드는 맛에는 언제든지 새삼스럽게  반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고 칼 칭찬이 굉장하였다.
  꺽정이는 써보지 못한 칼이라 드는 맛도 모르거니와 칼 보는 묘리에 서툴러서 
칼끝을 보고 명공의 솜씨인지 용공의 솜씨인지 분간할 줄을 모르는 까닭에 다만 
서리 같은 칼날의 쇠 좋은것만 들여보다가 어구  가까이 글자 박힌 것을 보았다. 
“무슨 글자가 박혔습니다.” “긴 장자, 빛 광자  장광이란 글자다.  아마 이 칼
을 치어낸 왜인의  이름인기 보더라.” 하고 늙은이는 날을 집에  꽂아 어루만지
며 “그래서  내가 이 칼 이름을  장광도라고 지었다. 이것을 정표로  너에게 줄 
터이니 나로 여겨 두고 보고 쓰게 될 때는  처음 맹세를 어기지 마라.” 하고 칼
을 들어 꺽정이를 주는데 선선히  주는 늙은이는 칼을 임자 찾아 전하는 것같이 
생각하나 오히려 얼굴에 슬픈 빛이 나타나고 공손히 받는 것같이 생각하나 오히
려 얼굴에 슬픈  빛이 나타나고 공손히 받는  꺽정이는 선생이 목숨같이 아끼는 
것을 주거니 생각하여 자연히 눈에 눈물이 고이었다.
  그날 밤, 닭이 울 때어 수교 한 명이  장교와 군노 이십 명을 영솔하고 나와서 
외딴 주막을 들이쳤다. 앞잡이가  방문을 열고 보니 방안이 비었었다. “벌써 어
느 틈에  김이 새었군.  감쪽같이  도망한 모양인데.” 하고  앞잡이가 돌아섰다. 
검술하는 늙은이가 도망한 줄 알고  비로소 맘을 놓고 이십 명이 앞뒤로 갈려서 
건정으로 수색하는 중에 별안간에 어디서 “이놈들,  망대로 남의 집을 뒨장질하
느냐?” 하고 호령하는 소리가 나며  검은옷 입은 사람이 손에 긴 칼을 쥐고 앞
마당에 나타났다. “여기  있다!” 하고 수교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소리지른 
놈이 누군냐?  내 칼 받아라.” 하고  검은옷이 나는 듯이 달려들어 칼등으로 어
깨를 내리치니 수교는 “아이쿠머니!” 하고 근두박질을 쳐서  어느 구석으로 들
어갔다. 검은옷의 칼이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하며 여기서도 아이쿠 소리요, 
저기서도 아이쿠 소리다.  창잡이는 대중없이 창을 내지르고  칼잡이는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다가 번쩍번쩍하는 칼빛이  눈앞에 닥치면 아이쿠 아이쿠 하고 머리
들을 싸쥐었다. 앞마당에 있던 사람이 이와 같이  우박을 맞을 때 뒷마당에 돌아
갔던 사람은 벼락을 맞았다. 아이쿠 소리도 변변히  못 지르고 이 구석에 엎드러
지고 저 구석에 자빠졌다. 앞마당에서는 과히  상한 사람이 없었지만 뒷마당에는 
어깨 떨어지고 이마 쪼개진  사람이 많았다. 앞뒤 마당에 화롯불이 밝아졌다. 상
한 사람들까지도 목숨 붙은 것만 다행으로 여기며 간신해 서로 붙들고 도망하였
는데, 부엌 구석에 쌓아놓은 잎나무  더미 속에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매에 쫓
긴 꿩과  같이 머리만 처박고  있었다. 이것이 검은옷에게  들키어서 “나무더미 
속에 있는 놈, 이리 나오너라!” 하는 호령을 듣고 벌벌 떨며 기어나와서 검은옷 
앞에 꿇어 엎드렸다.
“수교놈이구나.  다른  놈들은 목숨을 붙이어 보냈지만 네 목만은  용서치 않겠
다.” 얼이 빠지다시피 된 수교가 용서한다는 말로 잘못 듣고 “감지덕지하외다.
” 하고 고개를 정신없이 구부리니  환도날에 묻은 피를 불에 비춰가며 씻고 섰
던 아이가 검은옷  앞으로 나서며 “선생님, 죽인다는데 감사하다는 놈  죽여 무
엇하시오. 쫓아버립시다.”하고 말하였다. 검은 옷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가 쫓
아와서 엎드려 있는 사람을  두손으로 끌어안으려는 것같이 안아 일으키어 서너 
간 밖에 가서  떨어지도록 동댕이쳤다. 수교는 다행히 죽거나 병신이  되거나 하
지 않느라고 풀이  무성한 풀밭에 떨어져서 한동안 기절하였을 뿐이었다.   수교
가 정신이 들었을 때 눈앞이 대낮같이 환하였다.  “날이 밝았나?” 하고 의심할 
사이도 없이 눈에 불빛이  비치고 코에 내가 맡아졌다.  외딴  주막 삼간집이 한
참 타는 중이었다.  수교가 멀찍이 기어나와서 길가에 누워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찾아나온 관속들과 같이 불탄 자리만 돌아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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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꺽정이가 집에서 떠난 뒤에  양주서는 서울을 갔거니 생각하고 서울서는 양주
에 있거니 여기어서 찾지도 아니하였다가 서울에 오지 않고 양주에 있지 아니한 
것을 서로 알게 되며 처음 얼마 동안은  꺽정이의 소식을 알려고 서울.양주 양편
에서 한 달에 몇 번씩 사람이 왔다갔다  하였다. 양주의 돌이와 서울의 섭섭이가 
상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 범범하던 심선생까지도 궁금히 생각하여 
가끔 꺽정이의  일을 말하는데 아들같이 귀여워하던  갖바치만은 별로 걱정하는 
빛이 없었다.
  꺽정이의 간 곳을 몰라 성화하는 돌이를 보고는  “성화할 것이 없네.  어디를 
갔든지 간 사람이니 오기도 하겠지.” 하고 모호하게 말하기가 일쑤였다. 봉학이
와 유복이가 어른 몰래  공론하고 꺽정이를 찾아나서려고 하였더니 갖바치가 먼
저 눈치를 알았던지 두아이를  불러놓고 “꺽정이가 너희들 모르게 재주를 배우
러 간 모양이다. 지금 찾아가야  만나지 못할 것이요, 만나야 같이 오지 못할 것
이니 당초에 찾아갈  생각을 하지 마라.” 하고 일러서 두  아이가 찾아나서려던 
것을 파의하였다.
  섭섭이는 꺽정이가 재주 배우러  갔으리란 말을 듣고 ‘공연히 재주 배우라고 
사살을 하였더니, 동생의 결기에 망을 먹은 것이 있든 게다. 동생을 재주 배우라
고 내쫓다시피 하였으니,  나더러 배우라든 동생의 말을 생각하여 나도  한 가지 
재주를 배워야 하겠다.’ 하고  속으로 혼잣말하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틈에 부
지깽이나 혹은 식칼을 들고  날뛰어보기도 하였으나 재주답지도 못한 짓을 하다
가 남의 눈에  뜨이거나 하면 웃음바탕만 되려니 생각하여 한두  번에 그만두고, 
싸릿대활이나 대가지창은  남몰래 만들 수도 있었으나  남은 고사하고 유복이나 
봉학이에게 들키는 날은 창피를 보려니 생각하여 시작도 아니하고 그만두었다. 
  이와 같이 재주를 고르다 못한 끝에 무엇이든지 익히면 재주가 되려니 생각하
고 콩알을 입에  넣고 입힘으로 부는 것을 익히었다. 처음에는  가까이 떨어지던 
것이 차차로 멀리 가고 처음에는  대중없이 가던 것이 차차 대중에 맞게 가도록 
되었다. 재주가 늘어가는 데 재미를 붙이어서 섭섭이가 일 년 넘어 콩을 불었다.  
이것을 다른 사람은 조금도 알지 못하였지만 금동이만은 곧 알게 되어서 처음에 
보고는 “별짓 다하네. 입이 궁겁거던 손가락이나 빨지.” 하고 흉보기까지 하였
으나 남에게 말 말라는 안해의  말을 굳게 지키어 저 혼자만 알고 있었다뿐이지 
봉학이와 유복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섭섭이가  입 안에 콩을  넣고 입을 
뾰족하고 있을 때 금동이는  한참 재미를 부리느라고 “무얼 먹겠다고 주둥이가 
뾰족한구.” 하고 빈정거리다가  섭섭이 입에서 콩알 하나가  튀어나오며 금동이
가 “아이쿠 따라워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입술을 비비었다. 봉학이와 유복이
가 금동이의 입술이 부어오른  것을 보고 봉학이는 “매부 입술이 왜 부었소?” 
하고 묻고  유복이는 “벌에게 쏘인 게구려?”  하고 물었더니 금동이가 “벌이 
다 무어냐, 콩알을 맞았다.”하고 골난 김에 안해의 콩알 부는 것을 설파하여 봉
학이와 유복이는 일년이 넘은 뒤에 비로소 섭섭이의 재주를 알게 되었었다.
  돌이가 병이  나서 대단히 중하다는  기별이 있었다. 갖바치가  우복 어멈에게 
집을 맡기고 금동이  내외를 데리고 양주를 내려왔다. 돌이의 병이  홧병이라 갖
바치의 약으로 대세는 돌렸으나 졸연히 낫기가  어려웠다. 갖바치가 말벗도 없고 
소일거리도 없어서 심심하게 지내는  것이 보기에 딱하여 섭섭이가 서울로 갈것
을 말하니 갖바치는  “가면 내나 가지, 너까지 갈 것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서울 가셔서 식사를  어떻게 하시나요?” “식사는 걱정할 것  없다. 유복이네
게 얻어먹어도 좋고  심선생님댁게 붙여먹어도 좋지. 그러나 나도 하루  이틀 더 
묵어가겠다. 혹시 꺽정이가 오기나  하면 만나보고 갈까 한다.”“일 년 반이 지
나도록 소식 없던 아이가 그렇게 오겠습니까?”“오래 소식이 없었다고 오지 말
란 법이 있느냐? 어쩐지 수이 올 것같이  맘이 키이는구나. 일이일간 기다려보아
서 아니 오거든 서울로 가겠다.” 하고 갖바치는 빙그레 웃었다.
  이튿날 저녁때 갖바치가 문 밖에 나서서  거니는데 꺽정이가 돌아왔다. 꺽정이
가 등에 걸머졌던 거적 한 닢을 벗어놓고 갖바치 앞에 와서 절하고 일어서서 “
선생님이 왠일이십니까?”  하고 웃고서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하고 갖바치
가 꺽정이의 손을 끌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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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의 집 안방에 집안 식구가 모여 앉았다. 돌이는 “이 자식, 어디를 가려거
든 말이나 하고 가지, 그런  법이 어디있나? 망한 자식 같으니.” 하고 오래간만
에 돌아온 아들을 금시에 내쫓을  것같이 골을 내더니 아랫목에 일어 앉아서 아
들의 얼굴을 바라보느라고 병까지 잊은것 같고 갖바치는 돌이의 옆에 가까이 앉
아서 빙그레 웃고, 섭섭이는 문 맞은편 동생  옆에 붙어앉아서 동생의 입은 옷을 
만져보고, 또 돌이의  여편네는 어린아이 젖을 물리고 문앞에 앉아서  아이의 얼
굴을 건너편으로 내밀며“언니,  인제 오셨습니까? 그 동안 저는  어떻게 기다렸
는지 모릅니다.” 하고 어린아이  대신 말하고 웃었다. 꺽정이는 여러 사람을 돌
려보는 중에 병든 아버지의 야윈  얼굴과 어린 동생의 가냘픈 몸을 자주 바라보
고, 여러 사람의 눈은  꺽정이에게로 모이었다.“대체 어디 가서 그렇게 오래 있
었어?” 하고 먼저 묻는 것은 돌이의 여편네이었고 “무슨 재주 배워 가지고 왔
니?” 하고 뒤따라  묻는 것은 섭섭이었다. 꺽정이는 먼저 묻는  사람의 말을 접
어놓고“재주는 무슨 재주요.”하고  뒤에 묻는 누이의 말을  대답하며 싱글싱글 
웃었다.“그래 그 동안 어디 가 있었니?”하고 돌이가  여편네의 묻던 말을 다시 
물으니 “부평 땅에 가서 있었소.”하고 꺽정이의  대답은 간단 하였다“누게 가 
있고 무엇을 했어? 이야기 좀 해라.”하고 섭섭이가  독촉한 뒤에 꺽정이가 검술 
배운 것을 대강대강 이야기하는데, 외딴 주막을  암자라고 말하고 늙은이를 도승
이라고 말하고 외딴 주막 불지르고  도망한 것을 암자에 화재가 나서 도승이 정
처없이 떠나니까  검술을 다 배우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무 
말이 없이 듣고 있던  갖바치가 “도승이 검은옷을 입더냐? 흰옷을 입더냐?”하
고 대중할 수  없던 말을 물으니 꺽정이는  물끄러미 갖바치의 얼굴을 바라보며 
“예사 중들이 입는 옷을 입지요”하고 꾸민  말에 보태어 말하였다.“너 가지고 
온 거적 속에는  무엇이 들었니?”“도승이 정표로 준 것이오.”“어디  좀 구경
하자.”꺽정이가 갖바치의  말을 듣고 거적  속에 싸서 넣었던  장광도를 꺼내어 
왔다. 갖바치가 받아 들고  “왜도로구나. 중에게 왜도가 어디서 났을까?” 하고 
말하며 칼날을 뽑아보더니 “칼  좋다! 장광! 이름 있는 칼인가 보다.” 하고  다
시 집에 꽂아서 꺽정이를 주었다.
  꺽정이가 돌아온 뒤에  갖바치는 이삼 일을 더  묵다가 먼저 서울로 올라오고 
다시 십여 일이 지나서 돌이가  완구히 기동한 뒤에 꺽정이와 섭섭이 내외가 함
께 서울로 올라왔다. 꺽정이가 안방에 퍼더버리고 앉았는데, 섭섭이 내외와 봉학
이와 유복이가 옆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이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하고 저 사람이  저 이야기를 하던 끝에 봉학이가 “언니가 얼마나 
검술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누나의 콩알은  못당하리다.”하고 말하자, 섭섭이가 
곧 봉학이의 등줄기를 툭  치며 “누이라면서 그렇게 조롱하는 법이 어디 있니?
”하고 암상스럽게  말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꺽정이가  “콩알이 무어냐?”하고 
물으니 유복이가 싱글싱글하며 “매부더러  물어보오. 입살에”하고 말하는 중에 
금동이가 “이  자식이.”하고 떠다밀어서  유복이가 쓰러지니 섭섭이가  이것을 
보고 “아이고 잘코사니야.”하고  방그레 웃었다. 이때 마침 바깥방에서 꺽정이
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안으로 난 문을 열고 내다보던  갖바치가 안마루에 
나서는 꺽정이를 보고 “좀 나오너라. 심선생님이 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바깥방으로 나와서 심선생에게 절하고 앉으니 심선생이 “너의 선생
님께서 대강  말은 들었다만 천하 장사가  무쌍한 검객이 되었다지?”하고 허허 
웃고서 “그러나 백정의 아들이 탈이다.”하고 갖바치를  돌아보며 다시 허허 웃
으니 “꺽정이에게도 탈이  지만 세상에도 좋을 것은  없으리다.”하고 갖바치는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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