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12

나단비 | 2024.02.07 21:57:06 댓글: 0 조회: 12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118
제12장 아이들이 납치되다

해적들의 공격은 완벽한 기습이었다. 이 점이야말로 파렴치한 후크가 그 일을 부적절하게 했음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인데, 인디언들을 기습한다는 것은 백인의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24)

야만인과의 전투에 관한 모든 불문율에 따르면 공격을 하는 쪽은 항상 인디언이고, 그 종족 특유의 교활함에 의거하여 항상 동이 트기 직전에 공격을 가하는데, 바로 그 시간이 백인들의 용기가 가장 저하될 때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백인들은 저만치 기복이 있는 땅에서도 하필이면 언덕 꼭대기에 어설픈 방책을 만들어 놓게 마련이고, 그 언덕 아래로는 당연히 개울이 하나 흐르고 있다. 왜냐하면 물 있는 곳에서 멀다는 것은 크나큰 재난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백인들은 습격을 기다리는데, 풋내기는 각자의 권총을 꽉 움켜쥐고 나뭇가지를 밟아서 소리를 내지만, 숙련자는 동이 트기 직전까지 평온하게 잠을 잔다. 길고도 어두운 밤 동안에 야만인들의 정찰병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풀밭을 지나가면서도 풀잎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를 숲이 조용히 덮어 버리는 모습은, 두더지가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그 자리를 모래가 덮어 버리는 모습과도 같다. 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으며, 이들이 기막히게 흉내 내는 코요테의 외로운 울음소리만이 예외로, 이 울음소리에 다른 인디언 전사들도 똑같이 응답한다. 심지어 그들의 일부는 코요테 중에서 솜씨가 별로 신통찮은 녀석들보다도 이 울음소리를 더 잘 흉내 낸다. 그리하여 섬뜩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난생처음 이런 일을 겪는 얼굴 허연 사람들에게는 그 기나긴 불안이야말로 무시무시할 정도로 힘겨운 것이 된다. 하지만 숙련자에게는 그 섬뜩한 울음소리며, 더 섬뜩한 침묵이 기껏해야 밤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암시에 불과할 뿐이다.

일반적인 절차가 이러하다는 사실은 후크도 이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를 무시했을 경우에도 그는 무지 탓이라는 핑계를 차마 댈 수가 없었다.

피커니니족은 암묵적으로 후크의 명예를 신뢰했기 때문에, 이날 밤에 그들이 보여 준 모든 행동은 후크의 행동과 뚜렷이 대조되었다. 인디언들은 자기네 부족의 평판에 알맞게끔 모든 일을 했다. 문명화된 사람들을 즉시로 놀라고 또 절망하게 만들었던 특유의 예리한 감각 덕분에, 해적 하나가 마른 나뭇가지를 밟아 소리를 낸 바로 그 순간부터 이들은 해적들이 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코요테 울음소리가 시작되었다. 후크가 부하들을 이끌고 상륙한 지점부터 땅속에 있는 아이들의 집 사이의 길은, 뒷굽이 앞에 달린 모카신을 신은25) 인디언 전사들이 이미 은밀하게 조사한 후였다. 이들은 개울 옆에 있는 언덕이 단 하나뿐임을 발견했고, 따라서 후크에게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즉 해적 선장은 반드시 여기서 채비를 갖추고, 동이 틀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악마적인 교활함으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나자, 인디언들은 각자의 이불을 펼쳐 놓고, 자기들에게는 남성다움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느긋한 태도로 아이들의 집 위에서 웅크리고 앉아, 창백한 죽음을 다루어야 하는 냉랭한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즉 날이 밝자마자 자기들이 후크에게 가할 여러 가지 정교한 고문을 뜬눈으로 그리던 저 순진한 야만인들 앞에, 갑자기 저 믿을 수 없는 인간 후크가 나타났다. 이때 그 살육을 가까스로 피했던 인디언 정찰병들이 훗날 내놓은 설명에 따르면, 후크는 회색빛 하늘과 뚜렷이 대조되는 그 언덕을 똑똑히 보았을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거기 멈춰 서서 공격당하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이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섬세한 정신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듯했다. 심지어 그는 밤이 다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그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오로지 공격한다는 생각만으로 공격을 가했다. 당황한 인디언 정찰병들은 어쩔 줄을 몰랐는데, 그들이 전쟁의 각종 책략에 숙달해 있기는 했어도 이런 경우만큼은 예외였기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이들은 해적들의 뒤를 따르다가 자칫 몸을 노출시켜 치명적인 상황에 처하기도 하면서, 줄곧 애처로운 코요테 울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타이거릴리는 부족의 가장 강인한 전사 열댓 명과 함께 있었는데, 저 배반하기 잘하는 해적들이 갑자기 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제야 승리를 눈앞에 선하게 비추어 주었던 얇은 막이 이들의 눈에서 떨어져 나갔다. 더 이상은 이들도 화형 기둥에서 고문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들에게는 이제 행복한 사냥터로 갈 일만 있었으니까. 이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했다. 이들에게는 밀집 대형을 만들 시간 여유가 있었으며, 만약 재빨리 그렇게 했더라면 해적들도 그걸 쉽게 깨뜨리기는 어려웠을 텐데, 자기네 종족의 전통 때문에 인디언들은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고귀한 야만인은 백인이 나타난 상황에서 깜짝 놀란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되는 법이다. 해적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이 인디언들에게는 분명히 끔찍했겠지만, 이들은 한동안 태연한 모습을 유지했으며,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해적들을 바라보는 인디언들의 모습은 마치 초대받고 찾아온 손님을 바라보는 주인과도 같았다. 그런 다음에야 이들은 자기네 전통의 당당한 지시에 의거하여 각자의 무기를 집어 들었으며, 전쟁 구호가 공중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

전투라기보다는 학살이었던 일을 묘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이로써 피커니니족의 꽃들 가운데 여러 송이가 지고 말았다. 그도 죽기 전에 복수는 했으니, 린울프〔마른 늑대〕는 앨프 메이슨을 쓰러뜨려서, 더 이상은 그 해적이 카리브 해를 교란시키지 못하게 했다. 이때 땅에 얼굴을 박은 사람 중에는 조 스커리, 채스 털리, 알자스인 포거티도 있었다. 털리는 무시무시한 그레이트빅리틀팬서의 전투용 도끼에 쓰러졌는데, 팬서는 결국 타이거릴리와 자기 부족의 소수 생존자들이 해적들 사이로 지나갈 길을 텄다.

이때의 전략에 대해 후크가 어느 정도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는 역사가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자. 만약 그가 언덕에서 적절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학살을 당한 쪽은 오히려 그와 부하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후크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면, 이런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만 공평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새로운 방법을 따르려 한다는 점을 자기 적들에게 알려 주었어야 마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기습의 요소가 제거되기 때문에, 결국 그의 전략도 아무 소용이 없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이 사건을 둘러싼 모든 질문에는 갖가지 어려움이 포진하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최소한 이처럼 대담한 계획을 고안한 그의 재치에 대해서만큼은, 그리고 그 일을 실행한 잔인한 천재성에 대해서만큼은 차마 존경심을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승리의 순간에 후크는 스스로에 대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었을까? 그의 개들은 무척이나 알고 싶었을 것이다. 이들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단도를 닦으면서, 선장의 갈고리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모인 채, 족제비 같은 눈으로 이 비범한 사람을 흘끔거렸다. 그의 가슴은 의기양양해졌지만, 그의 표정은 그런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어둡고 고독한 수수께끼로서, 그는 정신에서나 존재에서나 자기 부하들에게서 외떨어져 서 있었다.

그날 밤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가 무찌르기 위해 찾아온 상대는 인디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인디언들은 어디까지나 꿀을 얻기 위해 우선 연기를 피워 쫓아 버려야 하는 벌 떼에 불과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팬이었고, 팬과 웬디와 그들의 무리였으며, 그중에서도 주로 팬이었다.

피터는 워낙 작은 남자아이였으므로, 어른인 이 남자가 피터를 이토록 미워한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길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피터가 후크의 한쪽 팔을 악어에게 던져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단순히 그 일만 가지고는, 또는 악어의 집요함으로 인해 후크의 생활이 점점 더 불안정해진 것만 가지고는, 이처럼 혹독하고 악의적인 복수심을 차마 설명할 수가 없었다. 진실은 무엇인가 하면, 피터에게 있는 뭔가가 이 해적 선장을 광분하게끔 자극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용기도 아니었고, 그의 매력적인 외모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그의─굳이 에둘러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인데, 그게 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니, 따라서 한 마디로 이야기해 보자. 그건 바로 피터의 거들먹거림이었다.

바로 그것이 후크의 신경을 거슬렀다. 그의 쇠갈고리를 움찔거리게 했으며, 밤이면 마치 벌레처럼 그를 괴롭혔다. 피터가 살아 있는 동안, 이 고통 받는 남자는 갑자기 날아 들어온 참새 한 마리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며 안달하는 우리 속의 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가, 또는 그의 개들이 나무를 따라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후크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부하들을 훑어보며 그중에서도 가장 몸이 마른 놈을 찾았다. 해적들은 불편한 듯 몸을 꿈틀거렸으니, 자기네 두목이라면 부하 하나를 구멍에 집어넣고 장대로 쑤셔서 밀어 넣는 일도 기꺼이 해치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처음 들렸던 순간에 그들을 보았는데, 이때 아이들은 돌조각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들 입을 벌리고 양팔을 뻗으며 피터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입을 다물고, 양팔은 옆에 늘어뜨린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위에서 벌어진 수라장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중지되고 말았으며, 마치 거센 바람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이 일이 자기네 운명을 결정지을 것임을 알았다.
과연 어느 쪽이 이겼을까?

나무의 구멍 입구에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던 해적들은 아이들이 저마다 내놓는 질문을 듣게 되었으며, 아아, 심지어 피터의 대답까지도 듣고 말았다.

“만약 인디언들이 이겼다면” 피터가 말했다. “당연히 북을 쳤을 거야. 그게 바로 승리의 신호니까!”

그러자 스미는 북을 찾아냈으며, 즉시로 그 위에 걸터앉아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희야말로 두 번 다시는 북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거다.” 물론 남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는데, 왜냐하면 지금은 철저한 침묵이 준수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크는 즐거워하면서 스미에게 북을 치라는 신호를 보냈다. 스미도 이 명령의 끔찍스러운 사악함을 천천히 이해했다. 이 단순한 사람이 후크를 이보다 더 존경한 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스미는 악기를 두 번 두들겼고, 그러고 나서는 손을 멈추고 즐거워하며 귀를 기울였다.

“북소리야!” 사악한 자들은 피터의 외침을 들었다. “인디언이 이긴 거야!”

불운에 처한 아이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그 소리야말로 위에 있는 가슴 시커먼 사람들에게는 음악이나 다름없었지만, 아이들은 곧바로 피터에게 거듭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에 해적들은 어리둥절했으나, 자기네 적들이 곧 나무를 통해 위로 올라올 것이라는 최우선의 기쁨 때문에 다른 감정은 그만 무시되고 말았다. 이들은 서로를 향해 능글맞게 웃어 보이며 손바닥을 비볐다. 재빠르고도 조용하게 후크는 명령을 내렸다. 해적 한 명이 나무 하나씩을 담당했고, 나머지 해적들은 2미터 간격으로 늘어섰다. 



24) 이하의 단락에서 화자는 백인과 인디언의 전투를 묘사한 모험소설마다 마치 판에 박은 듯 반복되는 진부한 설정들을 하나하나 꼬집고 있다.
25) 발자국의 진행 방향을 숨기기 위해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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