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14

나단비 | 2024.02.08 02:07:35 댓글: 0 조회: 102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147
제14장 해적선

초록 불빛 하나가 키드27) 개울 위로 깜박이고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해적 강의 어귀였고, 거기야말로 쌍돛대 범선인 ‘졸리 로저’호가 물 위에 낮게 떠 있는 곳이었다. 날렵해 보이는 배였지만 선체는 흉했고, 그 배의 모든 들보는 혐오스러웠으며, 마치 뽑혀 나간 깃털이 흩뿌려진 땅바닥과도 같았다. 이 배는 바다의 식인종이었으며 파수꾼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으니, 그 이름에서 풍기는 공포 때문에 안심하고 둥둥 떠 있을 수 있었다.

이 배는 밤의 이불에 감싸여 있어서 여기서 나는 소리는 바닷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소리라고는 거의 없었으며, 다만 이 배의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만은 예외였는데, 그 앞에는 스미가 앉아 있었다. 항상 근면하고 순종하는, 평범함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저 애처로운 스미. 어째서 그가 이토록 무한히 애처로운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 이유란 이토록 애처로울 정도로 자기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강인한 사람조차도 그를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서둘러 시선을 돌려야 했으며, 여름 저녁에 한 번 이상 그는 후크의 눈물샘을 자극하다 못해 결국 눈물이 흐르게 만들곤 했다. 다른 거의 모든 것에 관해서와 마찬가지로, 이에 관해서도 스미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해적 몇몇은 배의 난간에 기대어 선 채, 밤의 독기 속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른 해적들은 나무통 옆에 제멋대로 늘어져서 주사위며 카드놀이를 했다. 작은 집을 운반하느라 지친 네 명은 갑판 위에 완전히 퍼져 있었고, 잠자는 동안에도 후크의 손 닿는 범위에 있지 않으려고 솜씨 좋게 이리저리 몸을 굴렸는데, 그러지 않았다가는 선장이 지나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부하들을 갈고리로 할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크는 생각에 잠겨 갑판을 거닐었다. 아아,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이여. 지금은 그에게 승리의 시간이었다. 피터는 영원히 그의 앞길에서 제거되었으며, 다른 모든 아이들도 이 범선에 끌려와 있었고 곧이어 판자 위를 걸을 예정이었다. 이는 그가 바비큐를 굴복시킨 이후로 한 가장 냉혹한 행동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인간의 몸이라는 게 얼마나 헛된지를 알기에, 그가 갑판 위를 불안하게 오가며 자기 성공의 바람으로 몸이 부풀어 있다 한들, 굳이 놀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걸음걸이에는 우쭐대는 기색이 없었으며, 그의 우울한 마음의 행동과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후크는 깊이 낙담해 있었다.

밤의 정적 속에 배에서 생각에 잠길 때면 그는 종종 그랬다. 후크는 워낙 끔찍스럽게 혼자였다. 이 예측 불가능한 남자는 자기 개들에게 에워싸여 있을 때에 오히려 가장 외로움을 느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그보다 열등했기 때문이었다.


후크는 그의 진짜 이름도 아니었다. 그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밝힌다고 한다면, 심지어 요즘 시대에조차 이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행간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추측했겠지만, 그는 유명한 사립학교를 졸업했다.28) 그 학교의 전통은 여전히 그에게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뿐더러, 실제로 그가 옷을 입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지금까지도 그는 어떤 배를 공격 개시할 때에 입었던 옷을 공격이 끝난 후에 갈아입지 않은 채로 그 배에 오른다는 것에 불쾌해했으며, 여전히 자기가 다닌 학교 특유의 구부정한 걸음걸이에 맞춰 걸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좋은 모습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좋은 모습! 그가 제아무리 심하게 타락했다 하더라도, 좋은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잘 알고 있었다.

마음속 저 깊은 어디선가, 그는 녹슨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또렷한 똑똑똑 소리를 들었는데, 이는 마치 누구나가 잠 못 이루는 밤에 울리는 망치 두들기는 소리 같았다. “오늘 너는 좋은 모습을 보였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질문이었다.

“명성, 명성, 그 번쩍이는 싸구려, 그건 내 거야!” 그가 외쳤다.

“뭔가에서 두드러진다는 것은 매우 좋은 모습인가?” 그의 학교에서 나는 똑똑똑 소리가 대꾸했다.

“나는 바비큐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말했다. “그 플린트조차 바비큐를 두려워했지.”

“바비큐, 플린트, 그들은 어느 학교의 어느 기숙사 출신인가?” 날카로운 반박이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혹시 좋은 모습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나쁜 모습인가?

그의 몸은 이 문제로 고통 받았다. 그의 내면에 자리한 발톱은 쇠갈고리보다 더 날카로웠고, 이것이 그를 찢는 동안, 땀이 그의 번들거리는 얼굴을 따라 내려와서 상의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연신 소매로 얼굴을 닦았지만,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아, 후크를 부러워 마라.

자신의 때 이른 사멸에 대한 예감이 그를 엄습했다. 마치 피터의 끔찍한 맹세가 배 위에까지 들려오기라도 한 듯했다. 후크는 자신의 임종 연설을 하고 싶은 우울한 열망을 느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을 것이었다.

“후크에게는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을 텐데!” 그가 외쳤다. “그가 더 작은 야심을 가지는 편이 말이다.”

자신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만 그는 스스로를 3인칭으로 지칭했다.

“꼬마 아이들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그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으니, 이전까지는 한 번도 이 문제로 고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재봉틀이 그런 생각을 그의 마음에 가져온 것일까. 오랫동안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스미를 바라보았는데, 나지막이 흠흠 소리를 내는 저 스미는 아이들이 모두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를 무서워한다니! 스미를 무서워한다니! 이날 밤에 범선에 끌려온 아이 가운데 그를 벌써부터 사랑하지 않게 된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끔찍한 이야기를 했고, 심지어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차마 주먹으로 때릴 수는 없어서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에게 매달릴 뿐이었다. 마이클은 그의 안경을 빼앗으려 시도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스미를 사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스미 본인에게 이야기해 준다면 어떨까! 후크는 정말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처사 같았다. 대신 그는 이 수수께끼에 대해 숙고했다. 어째서 아이들은 스미가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는 냄새 맡는 사냥개처럼 이 문제를 추적했다. 만약 스미가 사랑스럽다고 치면, 과연 그를 그렇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갑자기 끔찍스러운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좋은 모습?”

만약 저 갑판장이 자기도 모르게 좋은 모습을 갖고 있다면, 과연 가장 좋은 모습이란 무엇일까?

팝29)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먼저 자기가 그런 자격을 갖고 있음을 본인은 모른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임을 그는 기억해 냈다.

분노로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그는 쇠갈고리를 들어 올려 스미의 머리를 겨냥했다. 하지만 차마 부하를 찢어 죽일 수는 없었다. 그의 손을 붙들어 놓은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이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를 찢어 죽인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나쁜 모습이야!’

불행한 후크는 땀으로 흠뻑 젖은 데다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고, 그만 잘라 낸 꽃처럼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그의 개들은 선장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 즉시로 규율이 느슨해졌다. 이들은 춤판을 벌였으며, 그것이 후크를 다시 한 번 제 발로 일어서게 만들었다. 마치 물을 한 양동이 뒤집어쓴 양, 인간의 나약함은 그에게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용히 해라, 이 쓸모없는 놈들아!” 그가 외쳤다. “안 그러면 몸에다가 닻을 박아 버릴 테니까.” 그러자 소음은 곧바로 잠잠해졌다. “아이들은 쇠사슬로 묶어서, 날아가지 못하게 해 두었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놈들을 위로 끌고 와라.”

웬디를 제외한 나머지 비참한 포로들이 선창에서 질질 끌려 나와 후크의 앞에 한 줄로 늘어섰다. 한동안 그는 아이들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편안하게 기대어 서서, 콧노래를 제법 그럴싸하게 흥얼거리고, 점잖지 못한 노래를 읊조리다가, 카드 한 벌을 셌다. 때때로 궐련 불빛이 그의 얼굴에 색조를 더해 주었다.

“좋다, 꼬맹이들아.” 그가 쾌활하게 말했다. “너희 가운데 여섯 놈은 오늘 밤 판자 위를 걷게 되겠지만,30) 마침 선실 급사 자리가 두 개 남아 있지. 너희 가운데 어떤 놈이 급사가 되고 싶으냐?”

“공연히 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는 마.” 웬디는 선창에 갇혀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그래서 투틀스가 얌전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투틀스는 이런 사람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싫어했는데, 그의 본능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오히려 신중한 방법이라 속삭이고 있었다. 비록 약간 어리석은 아이기는 했지만, 그는 오로지 어머니들만이 항상 완충물 역할을 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아이는 어머니에 관한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어머니를 경멸하면서도 실제로는 항상 이 점을 이용한다.

투틀스는 신중하게 설명을 내놓았다. “있잖아요, 선장님. 제 생각에는 우리가 해적이 되는 걸 우리 어머니들은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네 어머니는 네가 해적 되는 걸 좋아하실까, 슬라이틀리?”

투틀스가 윙크를 하자 슬라이틀리는 서글픈 어조로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아닐 것 같아.” 물론 목소리만큼은 오히려 그 반대였으면 좋겠다는 투였다. “네 어머니는 네가 해적 되는 걸 좋아하실까, 쌍둥이?”

“내 생각에는 아닐 것 같아.” 쌍둥이 가운데 첫 번째가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 역시 다른 아이들만큼 영리했던 까닭이었다. “닙스, 너네─”

“입들 닥쳐!” 후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대표자 격이었던 아이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너, 이 녀석,” 그는 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그래도 배짱이 약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넌 혹시 해적이 되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느냐, 귀여운 녀석아?”

존은 수학 예습을 할 때에 이런 갈망을 때때로 경험했다. 게다가 그는 후크가 자기를 지목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예전에 한 번 제가 레드핸디드 잭〔피로 물든 손의 잭〕이라고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가 어렵사리 대답했다.

“좋은 이름이로구나. 그러면 여기서도 너를 그렇게 불러 주마, 꼬맹아. 네가 우리와 한편이 된다면.”

“네 생각은 어때, 마이클?” 존이 물었다.

“제가 한편이 된다면 저를 뭐라고 부르실 거예요?” 마이클이 물었다.

“블랙비어드 조〔검은 수염 조〕.”

마이클은 당연히 감명을 받았다. “형 생각은 어때, 존?” 그는 존이 대신 결정해 주기를 바랐고, 존은 동생이 알아서 결정하기를 바랐다.

“그럼 해적이 되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국왕 폐하를 공경하는 백성인 건가요?” 존이 물었다.

후크의 이 사이로 답변이 흘러나왔다. “너는 이렇게 맹세를 해야 하는 거다. ‘국왕 따위 뒈져 버려라.’”

어쩌면 아직까지는 존이 그리 훌륭한 행동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그는 확실히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안 할래요!” 그가 외치며, 후크 앞에 있는 나무통을 걷어찼다.

“그리고 나도 안 할래요!” 마이클도 외쳤다.

“영국 만세!” 컬리가 소리를 질렀다.

격분한 해적들은 아이들의 뺨을 때렸다. 후크가 버럭 호통을 쳤다. “너희들의 운명은 이걸로 정해진 거다! 이 녀석들의 어머니를 데려와. 판자도 준비하고.”

그래 봤자 고작 아이였던지라, 주크스와 체코가 치명적인 판자를 준비하는 것을 보며 그들은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웬디가 끌려오자 그들은 애써 용감한 척했다.

웬디가 이 해적들을 어찌나 경멸했는지, 내 말로는 차마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수 없을 지경이다. 남자아이들은 최소한 해적식 이름이 어딘가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라고는 이 배가 몇 년은 청소하지 않은 듯하다는 점이었다. 현창의 때 묻은 유리들로 말하자면, 하나같이 그 위에 손가락으로 ‘더러운 돼지’라는 글자를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는 이미 몇 개의 현창에 그렇게 적어 놓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자기를 에워싸자, 당연히 그녀는 아이들 말고는 다른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리 아가씨.” 후크는 달콤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이제 당신의 아이들이 판자 위를 걷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훌륭한 신사기는 했으나 워낙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해 있느라 그의 주름 칼라는 더러운 채였고, 문득 그는 웬디가 그걸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다급한 몸짓으로 감추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다음이었다.

“아이들이 죽게 되나요?” 이렇게 묻는 웬디의 얼굴에는 어찌나 무시무시한 경멸의 표정이 떠올라 있던지, 후크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그래.” 그가 으르렁거렸다. “모두 조용히!” 그가 흡족한 듯 외쳤다. “아이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들어 봐야지.”

바로 이 순간 웬디는 당당했다. “내 마지막 말은 이거야, 사랑하는 아이들아.”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의 진짜 어머니들이 너희에게 주는 메시지를 내가 받은 것 같아. 그 메시지는 이런 거야. ‘우리는 우리 아들들이 영국의 신사처럼 죽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해적들조차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투틀스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할 거야! 넌 어떻게 할래, 닙스?”

“난 우리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할 거야. 넌 어떻게 할 거야, 쌍둥이?”

“나는 우리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할 거야. 존, 넌 어떻게─?”

후크는 다시 한 번 언성을 높였다.

“저 계집애를 묶어라!” 그가 소리쳤다.

그녀를 돛대에 묶은 사람은 스미였다. “내 말 들어라, 얘야.” 그가 속삭였다. “내가 널 구해 줄 테니, 내 어머니가 되겠다고 약속하지 그러니.”

하지만 스미에게조차 그녀는 이런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차라리 아이가 하나도 없는 쪽을 택하겠어요.” 그녀는 경멸스러운 듯 대꾸했다.

스미가 웬디를 돛대에 묶는 동안, 어느 아이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은 서글픈 사실이다. 아이들의 눈은 판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짧은 길 위를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걷게 될 것이었다. 더 이상은 아이들이 그 위를 남자답게 걸으리라고 희망할 수도 없었으니, 왜냐하면 생각하는 능력은 이미 그들에게서 사라져 버린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몸을 떨 수만 있을 뿐이었다.

후크는 이를 악문 채로 이들을 향해 미소를 보였으며, 웬디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그의 의도는 그녀의 얼굴을 돌려서, 아이들이 하나하나 판자 위를 걷는 모습을 그녀가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결코 다가가지 못했고, 그녀에게서 자아내려고 기대했던 고통의 울부짖음을 결코 듣지도 못했다. 대신 그는 다른 뭔가를 들었다.

바로 악어의 그 끔찍한 똑딱똑딱 소리였다.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해적들, 아이들, 웬디까지도. 그러자 모두의 머리는 곧장 한쪽으로 향했다. 소리가 들려오는 바다를 향해서가 아니라, 후크를 향해서. 곧이어 일어날 일은 오로지 그에게만 걱정거리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배우가 아니라 갑자기 관객이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에게 닥친 변화를 지켜보자니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그는 모든 관절에서 힘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그는 살짝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소리는 꾸준히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 소리가 지척까지 왔을 때 섬뜩한 생각이 그에게 떠올랐다. ‘그 악어란 놈이 배 위로 기어오르려나 보다!’

심지어 쇠갈고리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자기는 공격하는 상대가 원하는 목표물의 본래적인 부분이 아니라는 듯이. 그토록 끔찍스럽게 고립된 상태에서 여느 사람 같으면 두 눈을 질끈 감고 그가 넘어진 자리에 뻗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후크의 뛰어난 머리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으며, 그 머리의 인도하에 갑판을 네발로 기어서 최대한 그 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갔다. 해적들은 저마다 그가 지나갈 자리를 비켜 주었고, 다른 난간에 도달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목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내 모습을 가려라!”

해적들은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지만, 배 위로 다가오는 것으로부터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건 ‘운명’이었으니까.

후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야, 아이들은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굳어졌던 손발이 풀렸고, 급기야 악어가 기어 올라오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배의 옆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아이들은 ‘밤 중의 밤’에서도 가장 기이한 구경거리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을 돕기 위해 오고 있었던 것은 악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피터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환호성을 지르지 말라고 손으로 신호를 했으니, 혹시나 의심을 살까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곧이어 그는 계속해서 똑딱똑딱 소리를 냈다.




27) ‘부두 처형장’에서 교수형 당한 악명 높은 해적 윌리엄 키드를 말한다. 영국 왕실에서는 해적에게 본때를 보이기 위해 윌리엄 키드가 죽은 뒤에도 완전히 부패할 때까지 그대로 매달아 두었다. 그의 보물 전설은 수많은 문학작품에 소개되어 유명하다.
28) 이하에 암시된 바에 따르면, 후크는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이튼 칼리지 출신이다.
29) 이튼의 최고 엘리트만 가입하는 토론 및 사교 동아리.
30) 해적이 포로를 처형할 때에 쓰는 방법으로, 손이 묶인 상태에서 배 밖으로 내밀어진 판자 위를 걷다가 결국 바다에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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