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그라운드 브리핑ㅡ1ㅡ시체와 입을맞추다

뉘썬2뉘썬2 | 2024.03.04 21:11:10 댓글: 3 조회: 533 추천: 1
분류단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1639
김종혁 지음

2007년 발행



소설은 축소된 한국정치판이다.



한국 최대로펌의 젊은변호사가 의문의 피살을 당한다.사건을맡은 경찰청
강력계 반장에겐 비밀리에 사건을 마무리하라는 상부의 압력이 계속된다.
이사건을 폭로한 기자는 목숨을건 추적끝에 정계 사조직의 실체를 밝혀낸
다.영구집권을 위한 가공할 단체가 배후엿다.


언젠가 한 정치인은 "정치는 살아잇는 생물"이라고 말햇다.한국정치는 여
전히 이합집산에다 변화무쌍이다.시대가 변해도 변치않는것은 권력을향
해 달려드는 불나방들이다.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왜 우리주위에는 이토록 권력중독자가 많을까.
저자는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대표하는 이 자웅동체의 군
상을 절묘하게 그려냇다.


이소설을 읽고나면 사실이곧 진실인 현직기자의 날카로운 필봉도 상상의
날개를펴면 또한번 화려한 비상이 가능함을 느끼게 될것이다.많은 기자출
신의 좋은소설가들처럼 말이다.


ㅡ일간스포츠



권력과 언론의 실상을 이처럼 잇는그대로 드러낸 소설이 나온것은 축복
이다.


ㅡ김차수(동아일보 정치부장)




ㅡㅡ




1




((미신인줄 알면서도 시체와 입을맞춰야 범인을 잡을것 같앗다.))



경찰백차들이 토해내는 번쩍이는 붉은빛속으로 진눈깨비가 미친듯이 쏟
아져내렷다.목덜미를 파고드는 오싹하는 한기에 광섭은 서둘러 빌딩현관
을 향해 걸어갓다.폴리스라인 앞에서 광섭을 막아서던 앳돼보이는 경찰
관 한명이 옆의동료가 거수경례를 붙이는걸 보고는 주춤대며 물러섯다.


광섭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회전문을 밀치고 건물안으로 들어섯다.
환한불빛아래 종종걸음으로 부산을떠는 형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왓다.



경비원은 대리석바닥에 한쪽턱과 귀를 납작 붙인채 엎어져잇엇다.광섭은
30대초반쯤 돼보이는.푸르스름한 청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봣다.반쯤
벌어진 입속으로 혓바닥이 뻣뻣하게 말려올라가고 잇엇다.사후경직 현상
이다.감식반의 윤형사는 시체주변을 뱅뱅돌며 이리저리 각도를잡아 사진
을 찍엇다.



"사인이 뭔거같아?"
광섭이 심드렁하게 물엇다.


"글쎄아직은.잘모르겟습니다."


윤형사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햇다.어렴풋이 술냄새가 낫다.아마 새벽
에 출동전화를 받고 투덜대며 끌려나왓을 것이다.


"내일오전까지는 부검을 할수잇도록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에 연락해 놓겟
습니다."



광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엿다.부검의가 수술칼로 시체의 머리껍질부터
벗겨내겟지.하얀 당구공처럼 드러난 두개골을 톱으로써는 소리가 광섭의
귀에 환청처럼 들려왓다.


오래전 일이지만 처음 부검장에 갓을땐 의사가 쪼글쪼글한 뇌를 햄조각처
럼 얇게 자르는걸 보고 기겁을 햇엇다.



"이속에 혹시 뭐가 박혀잇지 않은지 확인하는겁니다."


나이가 지긋한 부검의는 광섭을 장난기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햇엇다.피
부껍질을 벗기고 가위로 갈비뼈를 끊어낸다음 간장.심장.쓸개따위를 포
도송이처럼 떼여내 검사할것이다.


피비린내와 노린내.내장에남은 배설물악취가 뒤범벅된 부검실의 역겨운
냄새가 떠올라 광섭은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엿다.조각난 장기와 갈비뼈
를 배속에 한꺼번에 쓸어담고 얼기설기 꿰매면 부검은 끝이다.


"불쌍한놈."


광섭은 발아래잇는 경비원을 내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렷다.


형사들은 곳곳에서 법석을떨며 새벽한기를 몰아내고 잇엇다.출입구옆 경
비원 책상은 여기저기 감식용 파우더를 뒤집어써 허얫다.감식반원들은
손톱만한 흔적만 보이면 감식테이프를 붙여 지문을 떠냇다.


입구 회전문 오른쪽에는 전람회 팸플릿에서나 본듯한 금속조형이 서잇엇
다.형사들은 감시라도하듯 차갑고 쌀쌀맞은 모습이다.광섭은 기가질렷다.


'재수없군.하필 왜 이런데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나그래.'


이런 휘황찬란한 빌딩안에서 시체가 발견됏다는게 반질대는 대리석을 딛
고서잇는 자신의 낡은구두만큼이나 어색하게 느껴졋다.


"윤주임님!어.반장님도 와계시네요?"


감식반 서형사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다 아는체를햇다.


"뭐가 잘안돼?"


"책상에서 지문은 여러개 찾아냇는데 아무래도 범인건 없는것 같습니다.
대부분 와상문 4번타입 같은데 도대체 현장에 핏방울하나 없으니..진공흡
입기로 주변을 다 훑어봣는데도 머리카락 한올 안나옵니다."



서형사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햇다.광섭과 윤형사는 눈을 껌벅거리며 서
로 마주봣다.윤형사가 감식가방 안에서 흰장갑을 꺼내 주섬주섬 끼더니
만 시체의 옷을벗겻다.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진 경비원의 몸뚱이를 이리저
리 살펴보는 윤형사의 콧잔등에 구슬땀이 맺혓다.



"반장님.이겁니다.여기를 한방 맞앗네요."



거무튀튀하게 핏방울이 응고된 경비원의 머리카락 사이로 콩알만한 구멍이
뚫려잇엇다.


"죽은지 오래되진 않앗습니다."


경비원의 허벅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피부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을
어림짐작하면서 윤형사가 말햇다.광섭은 경비원옆에 엉거주춤 엎드렷다.그
는 자신의 귀를 천천히 시체의 입술에 갖다댓다.주변을 오가던 형사들이 킥
킥거리며 웃어댓다.


"반장님요.또 시체하고 키스합니꺼."



광섭은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앗다.형사들의 웃음도 이내 잦아졋다.이런걸
한두번 본것도 아니엿다.얼음장같이 싸늘한 시체의 입술이 귀에닿앗다.전기
에 감전된듯.뭔가가 찌르르 등골을타고 내려갓다.그는 부르르 진저리를쳣
다.



시골파출소 순경에서 시작해 형사반장이 되기까지 경찰생활 34년동안 광
섭은 살인현장에 갈때마다 이의식을 거르지 않앗다.미신인줄 알지만 왠지
살해된 시체와 살 을한번 비벼대야 범인을 잡을수 잇을것만 같앗다.


광섭이 시체를 만지고 껴안는걸 보고 질색하던 서울경찰청 공중의는 시체를
좋아하는 네크로파일인지 뭔지라고 떠들고 다녓다.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
는 것이엿다.연쇄살인범들한테 많이 나타나는 정신병의 일종이라고햇다.광
섭은 며칠뒤 집앞에 잠복해 잇다가 퇴근하는 의사를 낚아챗다.


"나는진짜 정신병잔데 한번만더 헛소리를 나불대면 네 혓바닥부터 잘라버리
겟어."


의사는 다음날 질린표정으로 출근해 말없이 사표를냇다.그이후에는 아무도
광섭을 방해하지 않앗다.


"반장님.반장님요."


시체에서 막 몸을일으키는 광섭을향해 오형사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왓다.


"2층 화장실 입구에도 또한명 쓰러져 잇심더."


주름살 투성이인 광섭의 얼굴이 공기빠진 풍선처럼 우그러들엇다.


"이런지미랄.두놈이나 뒈져버렷응게 영락없이 수사본부 차려야것구만.아이
고.위에선 만난 볶아대고 기자놈들은 생지랄 떨것 아니것냐고."


입이걸기로 소문난 박형사가 대놓고 투덜댓다.형사들은 부리나케 2층으로
뛰여올라갓다.덩치가 커다란 경비원은 술취한 사람처럼 복독끝 화장실앞에
편안하게 누워잇엇다.


윤형사가 허겁지겁 청년의 머리카락을 들춰보더니 당황하는 표정을 지엇다.
광섭은 사나운 눈빛으로 시체를 노려봣다.



범인은 새벽이되자 움직이기 시작햇을 것이다.수상한 소리를 확인하러 올라
온 경비원은 느닷없는 습격에 가슴을 움켜쥐면서 고개를 숙엿겟지.범인은
그순간 경비원의 두개골을 내리쳐 도살해버렷다.단 한방에.광섭은 질끈 눈
을감앗다.


아래층으로 뚜벅뚜벅 걸어내려가는 살인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랏다.싸
늘하게 웃고잇는것 같앗다.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사내를 발견한 1층경
비원이 놀라 일어서며 허둥지둥 가스총을 꺼내든다.외마디 비명소리..


현관입구에 누워잇던 시체의 입술에 귀를댓을때 광섭은 새벽상황을 모두 전
해들은것만 같앗다.이마가 서늘해지면서 식은땀이 배여나왓다.살인자의 낄
낄대는 웃음소리가 윙윙 귓전을 때렷다.



광섭은 서울경찰청 강력계 사무실벽에 붙여놓은 800여장의 시체사진들을
떠올렷다.김장 비닐봉지에 싸여 1년가까이 독속에서 절여진 40대여자는 살
가죽과 뼈다귀가 찰싹 달라붙은채 미라로 변해잇엇다.


비닐봉지 안을 3분의1쯤 채운 샛노란 액체는 몸에서 빠져나간 근육과 수분
이엿다.시체를 옮기다 비닐봉지가 터져버렷을때 형사들은 일제히 코를 감싸
쥐고 집밖으로 뛰쳐나갓다.



우이동 산기슭에서 찾은 남자의 변사체는 내장을 짐승들에게 모두 파먹힌채
하얀눈을 뒤집어쓴것 같앗다.나뭇가지로 팔을 들어올리자 구더기는 후드득
떨어져내리고 뼈다귀만 달랑달랑 딸려왓다.형사들을 쫓아온 어느신문사의
여기자는 그광경을 보고는 기절햇엇지.



광섭의 입가에 어렴풋이 미소가 서렷다.옛날 기억들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생생햇다.그는 사진속 시체들과 대화를 나눳다.


'넌왜죽엇니?어떻게하면 그런상처가 남는거니?'


시골농고 중퇴학력으로 서울경찰청의 전설적인 강력계형사가 되기까지 시
체들은 그의 친구이자 교사엿고 교과서이기도 햇다.



한창때는 살인현장에 가면 무당처럼 으슬으슬 몸이떨렷다.그러면서 범인의
몽타주가 머릿속에 떠올랏다.그런 영감따위는 이젠 기대하지도 않는다.하지
만 도대체 현장에서 티끌만한 증거조차 찾을수 없다니.줄지어 피워댄 새벽
담배의 니코틴이 낡은위장을 콕콕찔럿다.목이 칼칼하고 골치가 지끈거렷다.



장동훈 강력계장이 회전문을 밀치며 허둥지둥 들어섯다.탱크가 돌진하듯 주
변공기가 함께 출렁이며 밀려왓다.


"아.김반장.수고많습니다."


장계장은 남들보다 머리가 하나쯤은 크고 골격도 굵직굵직한 거인풍의 사내엿
다.하지만 경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햇을만큼 머리회전이 빨랏다.성격도 원만
한 편이여서 나이가 훨씬많은 부하형사들도 그를좋아햇다.


"정년도 얼마안남은 말년에 이런게 자꾸터져서 어떡합니까?"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닦아내며 장계장이 인사치레를 햇다.그러면서도 실
눈을뜨고 재빨리 주변상황을 살폇다.



"여기가 베스트 서비스라는 법률회삽니다.이름은 들어보셧죠?"


"그래요.귀에익은데요."
장계장이 고개를 끄덕엿다.


"소속변호사가 수백명이나 되고 이건물 6개층을 변호사 사무실로 쓰고잇답
니다.세이프라는 용역회사가 경비를 맡아왓고요.매일 자정과 새벽네시에 본
사에서 상황체크를 하는데 오늘새벽에는 응답이 없더랍니다."


장계장은 건성으로 듣는것 같앗다.하긴 서울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이 어디
한두건인가.


"강남서에서 먼저 출동햇습니다.저희가 도착햇을땐 다행히 현장은 잘 보존돼
잇엇습니다."


"그러니까 경비원 한명이 피살됏다는거죠?"
장계장이 대수롭지 않다는듯 물엇다.


"아니.둘입니다.한명은 1층현관.다른하나는 2층 화장실입구에서 찾아냇습
니다.둘다 DOA엿습니다."


장계장의 얼굴시 조금더 굳어졋다.


"어이 이봐요.잠깐만.내가좀 봅시다."


장계장은 들것으로 시신을 운반하던 병원직원들을 불러세우더니 시트를 들
추고 숨진 경비원을 살펴봣다.


"스탭은 아닌데 흉기는 뭡니까."


"외상이 잘안보여 살펴봣는데 둘다 정수리를 뭔가에 찍혓습니다.단한방씩
이엿고 반항도 못햇습니다.그럴시간도 없엇을테지만."


"그게 무슨소립니까?"


"전문가들 솜씨라는거죠.청부살인 전문가들!"


"국내에 그런프로들이 잇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이 없는데."


장계장이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렷다.


"그건그렇고 도대체 변호사들의 텅빈 사무실엔 왜 침입햇죠?어디가 털렷
는지 확인은 해봣습니까?"


"문이전부 잠겨잇습니다.괜히 변호사들 사무실 잘못뜯고 들어갓다가 나중
에 곤욕을 치를것 같아서요."


장계장은 고개를 끄덕엿다.변호사는 기자만큼이나 골칫거리니까.


"베스트 서비스의 대표 변호사한테 연락을 햇으니까 곧 도착할겁니다.이름
이 김영진인가 그러던데."


"잠깐.누구라고요?김영진 변호사?"


장계장이 화들짝 놀라며 쏜살같이 되물엇다.광섭도 엉겁결에 마주봣다.

"네.혹시 개인적으로 아는분입니까?"

"아니.아니오.내가그런 거물변호사를 어떻게.."


광섭은 장계장이 말없이 담배한대를 다 피울때까지 물끄러미 서잇엇다.


"김반장.기자들은 아직 눈치 못챗겟죠?"


한참만에 장계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엇다.그의눈길은 바쁘게 주변을 오가
는 형사들을 조심스레 살폇다.


"아직은 모르겟죠.그런데 어디 보안이 지켜지겟습니까?경비원이 둘씩이나
살해된 마당에."


"내가 김변호사에 대해서 좀아는데.이거 골치아프게 됏습니다.보통거물이 아
닌데다 우리 청장님도 신경을쓰는 인물이니.."


양미간을 잔뜩 찡그린채 장계장이 말햇다.


"개각때마다 법무부장관 물망에 오르는 변호사가 아닙니까.그러니 위에서
방침을 결정하기전에 사건이 먼저 보도돼버리면 윗분들의 입장이 곤란하게
될겁니다.우리도 귀찮아질테고."


장계장은 잠시 뜸을들엿다.


"어쨋든 우리도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않습니까.일단 시간을 법시다.혹
시 기자들이 야근돌다가 확인하러 올지 모르니까 빨리 백차들을 건물뒤로
빼세요.여기가 기자들 야간 마와리코스 아닙니까."


'이거야원.장계장도 마찬가지구먼.'


광섭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한동안 미적거렷다.경찰대생은 뭔가 다를것이라고.
아니 적어도 장계장은 다르다고 믿엇기때문이다.그는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겻
다.뭐든 마음먹기가 어렵지.합리화시키긴 쉬웟다.


그는속으로 '한솥밥먹는 장계장을 반장인 내가 아니면 누가 챙기겟어'라며 스
스로를 위안햇다.


장계장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엿다.나이든 부하에게 사건을 숨기라
고 지시한게 꺼림칙햇다.그래도 어쩔수 없엇다.


그는조용히 어금니를 깨물엇다.작년 인사에선 물을먹엇다.총경승진 명단에
서 장계장은 자기이름을 찾을수 없엇다.경찰대 동기들과의 선두경쟁에서 밀
려난것이다.게다가 올해인사는 이제얼마 남지도 않앗다.


'하필이면 이런때..'


입맛이 씁쓸햇다.이런사건은 해결해봐야 생색도 안난다.대신 뭔가 잘못되면
모든책임을 뒤집어쓰기 일쑤엿다.



'난 승진운이 없는걸까?'


그런생각을 하자 뻥뚫린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휙 스쳐지나갓다.뿌옇게 밝아
오는 건물밖으로는 진눈깨비 뒤섞인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잇엇다.끔찍한
하루의 시작이엿다.



((바로그때.차갑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왓다.))



와이셔츠의 마지막단추를 채운뒤 넥타이를 조여매며 정봉은 변호사는 거울
에비친 여자를 힐끗밧다.그녀는 침대모서리에 다리를 꼬고앉아 담배를 피우
고잇엇다.속이거의 비치는 얇은 팬티차림이엿다.날씬한 몸매에 비해서는 꽤
나 풍만한 가슴을 과시하듯 그대로 드러내고 잇엇다.



하관이 빠르지만 뽀얀피부에 콧날이 오뚝하고 눈꼬리에서 색정이 뚝뚝 묻어
나는 여자엿다.



그녀는 술집 손님들에게는 아르바이트 여대생이라고 속엿다.그러면 사내들
은 황홀한 표정을 지엇다.사실은 여고2학년때 퇴학당햇고 강남의 룸살롱을
10여년째 전전하고잇는 베테랑이엿다.


남자들에 대해선 비뇨기과의사 뺨칠정도로 많은걸 알앗고 스물여덟 살이엿
다.담배연기로 도넛모양의 동그라미를 만들던 여자가 물엇다.


"오빠.언제또보지?"
정변호사는 피식 웃음을 흘렷다.


"왜 오늘좋더냐?"


여자는 대답대신 혀를날름 내밀엇다.정변호사는 벽시계를 힐끗봣다.오전1시
40분.아내는 자고잇을게 뻔햇다.애초에 남편이 무슨짓을 하고다니는지 관심
도없는 여자엿다.갑자기 불쾌해졋다.


정변호사는 평생 남의논을 부치며 살아온 소작농 아버지의 다섯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생이됏다.그가 S대법대에 합격햇을때 동네마을회관엔 플래
카드가 내걸렷다.가난때문에 그는 언제나 바빳다.학비를 마련하려고 부지
런히 아르바이트를 뛰여다녓다.



아내인 희경도 과외선생님과 제자사이로 만낫다.정변호사의 장인은 대법관
을 지낸 법조계 원로엿다.장인은 똑똑하고 성실한 그를 맘에들어햇다.사실
은 가난때문이엿지만 공손함과 비굴함이 몸에밴 그의태도를 보며 장인은 흡
족해햇다.


"저친군 요즘 젊은놈들하곤 달라."


졸업을 하기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년차이던 그다음해에 회계
사 시험도 패스하자 장인은 명령하듯 말햇다.


"자네 내딸을 데려가게."


해군법무관을 마치던해에 정변호사는 대학을 막 졸업한 희경과 결혼햇다.그녀
가 체육특기자로 입학햇고 상류층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며 갖가지 소문속에서
대학생활을 햇다는건 알고잇엇다.


그래도 상관없엇다.아무리 똑똑해봐야 자신을 받쳐줄 변변한 배경이 없엇던
봉은에게 대법관 출신 장인을 둔다는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엇다.


결혼후에도 희경에겐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끊이지 않앗다.주로 남자들이엿
다.부부싸움도 많이햇지만 희경은 아랑곳하지 않앗다.게다가 시댁식구들을
벌레보듯 피햇다.결혼직후 마지못해 딱한번 시골로 인사를 간게 전부엿다.그
후몇년간 희경은 설이든 추석명절이든간에 시댁에 내려가지 않앗다.


"당신.내가그렇게 지저분한 방에서 더러운 이불덮고 못잔다는거 알잖아."


시골집에 한번 내려가자는 말을꺼내면 희경은 그렇게 매몰차게 쏘아붙엿다.부
부싸움만 하면 친정에울며 전화를 걸어대는것도 지긋지긋햇다.


그는 이를악물고 꾹꾹참앗다.변호사로서 남부럽지않게 자리를잡은 마당에
사랑은커녕 정조차없는 희경과 한평생 살생각은 전혀없엇다.하지만 이혼소
송을 빨리 매듭짓고 위자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약점이 필요햇다.


정변호사는 몰래 뒷조사를 시작햇다.예상햇던 대로엿다.그는 배신감에 몸을
떨며 한동안 괴로워햇다.하지만 따지고보면 그럴필요없다고 오히려 잘됏다
고 마음을 바꿔먹엇다.장인과 희경에게 증거를 들이대며 몰아세울 결정적
인 순간을 그는 하루하루 카운트다운 하듯이 꼽고잇엇다.


'내가받은 수모를 열배로 복수해주마.'
그런생각에 정변호사의 입가에서 통쾌한 미소가 어렷다.


"오빠.뭐가좋아서 혼자웃어?"


코맹맹이 소리에 정변호사는 퍼뜩 현실로 돌아왓다.그는 지갑에서 백만원짜
리 수표두장을 꺼내 스탠드옆 탁자위에 올려놓앗다.



"자.이걸로 옷이나 사입어라."
여자의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번져갓다.


"멋쟁이라니까.아무튼 조심해서가.부인한테 혼나지말고."


여자는 정변호사를 뒤에서 끌어안고 머리카락에입을맞췃다.여자의 입에서
니코틴 냄새가 풍겨왓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상에 잇는 러브호텔 '파라월드'는 그의 단골이엿다.이
곳에선 아는사람을 만나 낭패를당할 가능성이 거의없엇다.그는특히 호텔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한강변의 야경을 좋아햇다.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옆에 쭈그리고 앉아잇던 대리운전사가 벌떡일어나며
인사를햇다.까만 폴로 운동모자를 눌러쓴 사내다.정변호사는 거만하게 승용
차를 향해걸엇다.까만모자는 뒷문을 열어주더니 다람쥐처럼 쪼르르 운전석
에 올라탓다.


"도곡동."


나지막이 행선지를 일러준뒤 정변호사는 편안히 등을기댓다.창밖으로는 진
눈깨비가 여전히 을씨년스럽게 내리고잇엇다.온몸이 나른햇다.상미는 갈수
록 버거웟다.


"색골같은 년!"


정변호사는 혼자 중얼거렷다.하지만 1년넘게 만낫어도 싫증나지 않은건 상
미가 처음이엿다.그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스르르 잠속으로 빠져들엇
다.얼마나 시간이 흘럿을까.몸이 한촉으로쏠려 정변호사는 잠에서 깨여낫다.


승용차가 급커브를 튼것같앗다.목덜미에 땀이 흥건햇다.기억은 나지않지만
악몽을 꾼것같앗다.그는 눈을비비며 시계를봣다.오전 2시30분이다.술때문
에 머리가 욱신거렷고 갈증이 심하게낫다.


"벌써 이렇게됏나?그런데 대체 여기가 어디지."


정변호사는 혼자 중얼거리며 정신을 차리기위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엇다.한밤
중인데다 유리창에 서린 물방울때문에 밖이 잘보이지 않앗다.차는 한적한 교
외의 국도를 달리는것 같앗다.멀리서 작은불빛 하나가 흐릿하게 깜박이는게
보엿다.


"이봐.여기가 어딘가?"
정변호사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운전사에게 물엇다.


"..."
그는 짜증스럽게 다시물엇다.


"이봐.귀가먹엇나.여기가 어디냐니까."
"..."


여전히 묵묵부답이다.정변호사는 어리둥절해졋다.덜컥 알수없는 불안감이
밀려왓다.바로그때.차갑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왓다.



"이봐.가만히 구겨져잇어.귀찮게 하지말고."


정변호사는 어안이 벙벙해져 운전석 위쪽에달린 거울을통해 사내를봣다.헤드
라이트의 희미한 반사광속에 까만모자가 얇은입술을 한쪽으로 무너뜨리며 혼
자 웃고잇엇다.정신이 번쩍들엇다.


'이친구가 지금 나를 납치?'


정변호사는 침을 꿀꺽삼켯다.간간이 강도로 돌변한 택시운전사들 얘긴들엇다.
그러나 그런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수 잇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앗다.


"이봐요.당신지금 무슨짓 하고잇는지 알기나 하는거요?형량이 얼만줄알아?평
생을 감방에서 보내고싶어서 그럽니까?"


정변호사는 점잖고 위엄이깃든 목소리로 말햇다.


"돈이 필요해서 그런것 같은데 우리 대화좀 합시다.그깟돈몇푼 때문에 인생
을 망가뜨려야 되겟어요?"


일단 말을 걸어야만한다.대꾸만 해오면 설득은 시간문제다.일류변호사가 그
까짓 강도한명을 다루지 못한대서야 말이되는가.정변호사는 속으로 그런생각
을 햇다.운전대를 잡은 까만모자의 어깨가 아래위로 마구 흔들렷다.그는 한동
안 미친듯이 낄낄대더니 말햇다.


"말은 청산유수시구먼.협상?좋지.얼마를 주시려고?많이 챙겨놓은 모양인데.이
봐 정변호사.웃기지좀 말라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앗다.까만모자가 자신을 알고잇는것 같앗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혹시 상미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엇다.하루이틀 사귄것도 아니고 그녀는 그렇게 교활하
지도 멍청하지도 않앗다.순간.아내희경이 뇌리에 떠올랏다.


'내가 자기뒷조사를 하고잇다는걸 알아챈게 아닐까?그래서..'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움직일수없는 진실인것처럼 여겨졋다.가소롭다는 생
각에 코웃음이 저절로 나왓다.


"이것봐요.당신 뭐하는 사람이오?누구 부탁받고 이런짓 하는지 알것같은데 나
하고 협상합시다.내가 당신이 받기로한 돈의두배를 줄테니까."


정변호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갓다.서희경.내가널 가만두지 않을테다.그는
이를갈앗다.하지만 상황은 정변호사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돌아갓다.까만모
자의 태도가 돌변한것이다.싱글싱글 웃던 그의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졋다.


"뭐야.이새끼야?아가리 못닥쳐.곧 뒈질새끼가 협상 좋아하네."


까만모자는 비스듬히 고개를돌려 정변호사를 쏘아봣다.어둠속에서 시퍼런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나왓다.악마의 눈빛이 저럴까.정변호사는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앉앗다.


"날 미워하지 말라고.난 지시받은대로 할뿐이야.알겟어?"
"지시?"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섬광처럼 떠올랏다.


"혹시..X?"


까만모자는 대꾸하지 않앗다.정변호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앗다.불현듯 어
린시절 고향에서 봣던 장면하나가 떠올랏다.커다란 독에빠진 새끼쥐엿다.밖
으로 튀여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솟구치던 쥐는 한쪽구석에 몸을잔뜩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엇다.


심장박동에 따라 쥐의옆구리가 불룩거리던게 생각낫다.정변호사는 자기가
그쥐새끼처럼 된것같앗다.사나운 암고양이 한마리를 집어넣엇을때 독안에
선 귀를 찢는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졋다.그때의 충격때문에 정변호
사는 고양이를 끔찍이 싫어햇다.승용차는 강을끼고 달리는것 같앗다.


'X가 보냇다면 날 죽이고야 말거야.맙소사.'


초조와 공포로 온몸이 뜨거운 프라이팬위의 베이컨 조각처럼 오그라들엇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다니 말도안돼.'
정변호사는 절규햇다.


'침착하자.침착해.'


그는수없이 되뇌엿다. 까만모자가 방심하고잇는게 그나마 다행이엿다. 고개
를 숙인채 살그머니 넥타이를 풀기 시작햇다. 까만모자는 기분이 좋은듯 느
긋하게 휘파람을 불어댓다.


정변호사의 두손은 사시나무처럼 후들거렷다.매듭이 꼬이기라도 한것처럼
넥타이가 잘안풀렷다.손가락도 뻣뻣햇다.정변호사는 안간힘을 썻다.휘파람
소리가 돌연멈췃다.


"야.이새끼야.너지금뭐..억.이새끼가!"


정변호사는 스프링처럼 튕겨일어나며 번개같이 넥타이를 까만모자의 목에둘
럿다. 운좋게도 목젖부근에 정확히 감겻다. 정변호사는 온힘을다해 넥타이를
잡아당겻다.


"이나쁜새끼.네가 먼저죽어."
예상치 못햇던 공격에 까만모자는 속수무책이엿다.


"컥.컥!이.이새끼가.."


까만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랏고 목에선 퍼런핏줄이 툭툭
불거졋다. 승용차가 강물쪽으로 돌진해갓다.까만모자는 기를쓰고 핸들을 꺾
으면서 브레이크를 맹렬하게 밟앗다.


'끽!'


정변호사의 몸이 앞으로 쏠렷다. 그바람에 넥타이를 놓쳣다.까만모자는 거
친숨을 헐떡대며 뒤쪽으로 손을뻗엇다.정변호사는 승용차 밖으로 뛰여나갓
다. 차가운 진눈깨비가 얼굴을 때렷다.방향분간이 안됏다.그는 무작정 반대
방향을 향해 줄달음쳣다. 멀리서 불빛하나가 빠른속도로 다가오는게 보엿
다.



"사람살려!"
정변호사는 목이터져라 고함을 질럿다.


"이새끼.잡히기만 하면 갈아마셔 버리겟어."


비틀비틀 차밖으로 나와 가쁜호흡을 토해내던 까만모자가 저주를 퍼부으며
정변호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햇다. 진눈깨비가 녹아 살얼음이 깔린 도로
에 미끄러지면서 정변호사는 떼굴떼굴 뒹굴엇다.


안경이 벗겨져 날아갓다.얼굴에선 피가줄줄 흘럿다.까만모자는 30미터 뒤까
지 따라붙엇다.정변호사는 절뚝거리며 일어나 이를악물고 달렷다. 금방이라
도 뒷덜미를 낚아채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슴이 터질것 같앗다.


커브길을 꺾어들던 승용차 한대가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섯다.사람
들이 뛰여내렷다.


"사람살려."


정변호사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부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다가갓다.
살앗다는 안도감에 다리에 맥이탁 풀렷다.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만 싶엇다.
까만모자는 저만치서 난데없는 상황변화에 당황한듯 머뭇거렷다.


"도와줘요.저기강도가.."


정변호사는 차에서내린 사내들에게 말햇다.다들 놀란 표정이엿다. 정변호사
는 까만모자가 금방이라도 들이닥칠것같아 자꾸만 뒤를돌아봣다.그사이에
차에서내린 사내들중 하나가 서둘러 정변호사에게 다가왓다.


"억!"


정변호사가 외마디 비명을 터뜨렷다.정수리가 불에덴듯 화끈거렷다.눈앞에
서 폭죽처럼 밝은불꽃들이 일제히 터지더니 순식간에 시커먼 블랙홀속으로
빨려들어갓다.무릎을 꺾으며 정변호사는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졋다.


목구멍에서 꾸르륵하는 소리가낫다.이를 부드득갈며 다가온 까만모자가 숨
이 끊어져가는 정변호사의 얼굴에 발길질을 해댓다.코뼈가 뭉개지고 입술이
터지면서 축늘어진 그의 몸뚱이가 힘없이 꺾엿다.


사내들은 팔짱을낀채 무표정하게 그광경을 지켜봣다.누군가 갑자기 낄낄대
며 웃기 시작햇다. 하얀 저주같은 진눈깨비가 산자와 죽은자 모두에게 세차
게 쏟아져내렷다.

추천 (1) 선물 (0명)
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IP: ♡.169.♡.51
나단비 (♡.252.♡.103) - 2024/03/04 21:20:12

도망친줄 알았는데 결국 죽네요.

뉘썬2뉘썬2 (♡.203.♡.82) - 2024/03/04 21:31:38

네 청부살인.왜 죽엿는지 의문부호만 남앗어요.

나단비 (♡.252.♡.103) - 2024/03/04 21:34:28

서두에서 말한 정치판과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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