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그라운드 브리핑 3ㅡ특종

뉘썬2뉘썬2 | 2024.03.26 10:44:31 댓글: 0 조회: 117 추천: 1
분류단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6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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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침이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할 기사를 묵묵히 지켜봣다.))



마감이 끝난 오후6시가 넘으면 출입처에 나가잇던 기자들은 어슬렁거리며
하나둘씩 회사로 들어왓다. 어쩌다 특종거리라도 챙긴기자는 득의양양한
표정이지만 대부분은 지치고 피곤해보엿다.


사회부 기자들은 이날 부장자리옆에 놓인 소파근처에 삼삼오오 흩어져잇엇
다. 내색하진 않앗지만 모두들 회사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걸 감으로 알앗
다. 기자들은 굳게닫힌 국장석옆 소회의실을 힐끔대며 바라봣다. 안에선 서
동건 편집국장이 두번째로 똑같은 질문을 하고잇엇다.



"팩트는 분명한거지?"
금테안경너머로 보이는 그의눈빛이 서늘햇다.


"그렇습니다. 피살된 경비원들 신원도 다 파악됏습니다. 정변호사는 실종된
게 분명하고요. 경찰이 베스트 서비스 인근에잇는 테헤란 PB에다 수사본부
를 차렷습니다."



민기가 1차보고를 마치자 사건기자 팀장인 노형대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받앗다.



"경비원 가족들도 다만나서 코멘트를 땃습니다."


하지만 편집국장의 표정은 별로 밝아지지 않앗다. 노형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띤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갓다.



"베스트 서비스 애들이 얼마나 구워삶아놧는지 피살자 가족들 만나느라 애많
이 먹엇습니다. 그나마 가족 한명한테 알아낸건데 베스트 서비스가 보상금으
로 유족들에게 한장씩 줫답니다.1억원씩 말입니다. 보나마나 입을 다물라는
거겟죠."


"야 김민기. 니들말하는 베스트 서비스가 사회봉사 열심히하는 그로펌 아니가?
우리가 지난번에 수재의연금 모금할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햇잖아."


변태룡 정치담당 부국장이 끼여들엇다. 국장대리인 그는 편집국 2인자엿다.


"맞습니다. 그런데 베스트 서비스에대한 소문은 안좋습니다. 기부금을 많이내
는 이유도 켕기는게 많아서 그걸 물타기하기 위해서랍니다. 변호사 업계에선
베스트 서비스가 외국기업들의 한국기업 인수합병을 대행하면서 미공개정보
로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소송에서 쌍방대리도 심심찮게 하고요."


"야 이놈아들아.그거 상대편 로펌에서 괜히 배가아파서 하는소린데 뭘그러노."
변부국장이 서국장을 힐끔거리며 말을잘랏다.


"정변호사 가족들은 접촉해봣지?"


머리가 하얗게세 국장보다 나이가 더들어보이는 황창배 사회부장이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재빨리 질문을햇다.



"도곡동 아파트는 비여잇습니다. 강도가 들엇던 다음날 부인이 딸을데리고 압
구정동 친정집으로 가버렷답니다."


"정변호사는 어디잇는지 영 안나와?"


"실종된게 확실합니다. 정변호사가 자작극을 꾸미고 잠적햇을 가능성이 잇긴
하지만 경비원을 둘씩이나 죽여가면서 그럴리는 없잖습니까?"


서동건국장은 눈을꽉감고 듣기만햇다.


"베스트 서비스는 사건을 덮으려고 별짓 다하고잇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사 업계에서도 어지간히 소문이 낫을거고 편집국 내에
서도 사회부 후배들이 알지않습니까."



민기는 후배들이 안다는 얘기를할때 변부국장을 힐끗 쳐다봣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잇엇다.



'이건방진 자식!'


그의표정은 그렇게 말하고잇엇다. 민기는 변부국장이 편집국장이 되면 자신
의 기자생활이 순탄치 않을것같아 두려웟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물러서긴 싫
엇다. 황창배부장은 살얼음판위에 서잇는것처럼 조마조마햇다.


'민기.저자식은 평소에는 멀쩡하던 놈이 왜 기삿거리만 나오면 저렇게 강경해
지는지 몰라. 칼이 너무잘들면 들고잇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법인데.'



황부장이 속으로 그런생각을 하는데 변부국장이 다시나섯다.


"그런데말야. 정변호사는 어떻게 되는거야. 그친구가 납치된거라면 기사가 나
가는 순간에 범인들이 정변호사를 죽여버릴게 아니냐고. 너희들 어린애 납치
됏을때 경찰과 가족이 원하면 엠바고걸고 보도안하잖아."



"아니.변국장.그건다릅니다. 물론 생명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변호사가 실
종된지 열흘이 넘엇고 범인들로부터 협박전화가 온것도 아닌데 그러면 공개
수배를 하는게 당연하죠."


노형대의 흥분한 목소리가 회의실 전체에 쩌렁쩌렁 울렷다.


"제가보기엔 정변호사 그친군 벌써 어디서 시체가 돼잇을겁니다. 베스트 서
비스는 조져야 합니다. 지난번에도 우리가 쓴기사 로비해서 깔아뭉개고 뒷
구멍으로 온갖 나쁜짓은 다하면서.."



노형대가 변부국장에게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대들듯 말햇다.


변부국장의 볼이 노기로 실룩거렷다. 그는 사회부 내에서도 왈짜로 소문난
노형대를 노려봣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체면상 새카만 후배와 맞
대놓고 다툴 위치는 아니엿다.



"노형대. 너무슨 말버릇이그래?"


황부장이 서둘러 진화에 나섯다.


"아니 황부장.베스트 서비스가 뒷구멍으로 나쁜짓 하는거 잘 아시잖아요. 그
리고 팩트가 다 확인됏는데 무엇때문에 기사를 안쓴다는겁니까?"



그때서 국장이 감고잇던 눈을 번쩍떳다.


"결정은 내가 내리는거니까 노형대. 넌 입다물고잇어."


국장의 노기띤 목소리에 노형대는 풀이죽은듯 고개를 숙엿다.


"김민기. 기사는 다돼잇나?"
국장이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엇다.


"취재를 다햇고 틀을 잡아놧으니까 금방 쓸수잇습니다."


"그럼내가 상의해서 결정할테니까 너희둘은 나가잇어."


서국장이 다시 차갑게 말햇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민기와 노형대에게 변 부
국장의 사나운 눈초리가 화살처럼 꽂혓다.



"김선배. 정말 열받아서 일못한다니까요."


노형대는 분이안풀린듯 밖에 나와서도 씨근거렷다. 민기가 노형대의 등을
두드렷다.



"참아라. 기자생활을 하루이틀 하는것도 아닌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부국장이라는 시람이 왜 후배들이 발바닥 닳도
록 뛰여서 기사를 물어오면 꼬투리를 못잡아서 난립니까? 걸핏하면 엿바꿔
먹을 생각이나하고..국장하고 황부장도 그렇지. 특종하라고 만날 닦달하면
서 정작 화끈한거 가져오면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전염되는 법이다. 노형대가 분통을 터뜨리자 주변에잇
던 경찰출입 기자들의 얼굴에도 은은한 노기가 서렷다.


"그러려면 도대체 왜 해동일보 월급 받아먹는지 몰라. 그렇게 봐주지 못해서
안달이난 놈들밑으로 가서일하지.에이.씨팔.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는다니까."


노형대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뛰엿다. 사회부옆의 체육부쪽에서
도 몇몇 기자들이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폇다. 후배들이 이해는갓다. 편집국
장이 베스트 서비스 변호사들의 도박사건을 덮어버렷을때 민기도 마찬가지
심경이엿다.



하지만 그걸단순히 전임 민수철국장 개인의 도덕성문제로 돌리기도 어려웟
다. 민국장은 김영진 변호사와 대학동창이엿다. 아마 베스트 서비스의 파트
너들과도 고등학교나 대학 선후배로 얽혀잇을게 뻔햇다. 그런식으로 평생
친분을 맺어왓는데 상대방이 어쩌다 부탁하는걸 매몰차게 내치긴 쉽지않앗
을 것이다.



"기다려보자. 설마 살인사건을 감싸고 돌기야 하겟어. 그러면 나도 생각이
잇으니까."



민기의 목소리가 비장하게 들렷는지 노형대는 입을 다물엇다. 10여분쯤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황창배부장이 회의실에서 나왓다. 그는 손짓으로 기
자들을 불럿다.



"베스트 서비스 반론을 꼭받아서 기사에다 보충해. 변호사들한테 소송당
하지 말고. 수도권에 배달되는 *43판부터 쓸테니까. 스트레이트는 1면사
이드. 사회면에 정변호사 실종미스터리 정리하고 해설박스도 쓰고.."


"1면사이드 톱이라구요?"
노형대의 입이 금방 쫙 벌어졋다.


"그래인마. 네놈들때문에 내가못살겟다."


황부장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햇다.후배기자들은 왁자지껄한 분위기
엿다. 밤11시가 넘엇을때 민기는 베스트 서비스의 김영진 변호사에게 연
락햇다. 김변호사 대행이라는 석일만 변호사가 대신 연결됏다.



그는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다급하게 말햇다. 하지만 계속 코멘트를 요
구하자 아무것도 확인해줄게 없다며 차갑게 전화를 끊엇다.


민기는 석변호사의 말을 인용한 마지막 문장을 만들어 기사를 넘겻다. 사
회부 기자들은 대부분이 편집국안에서 어슬렁댓다. 다들 아침이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할 기사가 만들어지는걸 묵묵히 지켜봣다.


자정이되자 편집자가 컴퓨터 조판기에서 *기사대장을 출력해 야간국장과
사회부장 책상앞으로 갖다놧다. 민기는 후배기자들과 함께 황부장뒤에 서
서 대장을 살펴봣다. 고딕으로 찍힌 시커먼 1면사이드 톱제목이 눈에확
들어왓다.


로펌서 2명피살 변호사실종


국내최대 로펌중 하나인 베스트 서비스에 강도가들어 경비원2명이 살해되
고 소속변호사 1명이 같은날 실종된 사실이 16일 뒤늦게 밝혀졋다.


지난달 27일 오전 3시쯤 서울 테헤란로에 잇는 베스트 서비스빌딩에 강도
가침입. 경비업체 (주)세이프소속 경비원 박균동씨와 성진구씨 등 2명을 살
해하고 달아낫다. 부검결과 박씨와 성씨는 쇠망치로 추정되는 둔기로 머리
를 맞은뒤 즉사한것으로 확인됏다.'관계기사 10면'


또이날새벽 4시쯤엔 베스트 서비스소속 정봉은 변호사의 강남구 도곡동 아
파트에 강도가들어 잠자던 정변호사부인 서모씨와 딸을묶고 정변호사의 컴
퓨터 CD등을털어 달아낫다. 정변호사는 전날오후 6시쯤 사무실에서 퇴근
햇으나 실종됏다. 경찰은..



스트레이트 기사는 1면오른쪽 4단을 할애해 복잡한 사건을 자세히 적엇다.


"김선배. 내일아침이면 베스트 서비스에서 곡소리 나겟네요."


주철민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햇다.


사회면은 '변호사 실종미스터리'라는 톱기사아래에 '로펌정보누출 가능성'
이라는 박스기사가 실렷다. 민기는 자리에서 일어낫다. 윤전기가 토해낸 신
문더미를 싣고 배달트럭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눈에선햇다.


쿠데타가 일어나 수도권일대의 차량통행을 차단하지 않는한 이젠 누구도
신문이 독자들에게 배달되는걸 막지못할 것이다.



"김선배 한잔 때립시다."


노형대가 신바람난 표정으로 민기를 쳐다보며 눈짓햇다. 기자들은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해진 회사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갓다.




((그소리가 망망대해 뱃전에서 듣던 봄우레 같더라는거지.))




어떤 직장이든지 회사근처에는 직원들이 주로가는 단골술집이 한두곳 잇
게마련이다. 누가 어디로 가자고 한마디도 안햇지만 해동일보 기자들은 밖
으로 나오자마자 일본식 기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잇는 회사뒤편 골목길
로 발걸음을 옮겻다. 이들은 카페 '사계'의 문을열고 우르르 몰려들어갓다.



이가게의 원래이름은 '가을'이엿다. 그러다 해동일보 기자들이 가을에만 술
을 마시라는거냐고 불평하자 주인은 냉큼 이름을 바꿔버렷다. 50대초반쯤
인 주인곽씨는 단골기자들의 이름과부서. 출입처 등을 줄줄이 꿰고잇엇다.
카운터에앉아 꾸벅꾸벅 졸던 곽씨가 입이 찢어지게 편안한 하품을하며 기
자들을 맞앗다.



"아니. 지금이 몇신데 집에 안들어가고 술마시러와. 나도 이제 파장해야 하
는데."


"어?우리 꽉꽉이 사장님 돈많이 벌더니 손님을 막내쫓네.아.그럼 미리문닫
고 들어가지 왜 여태껏 열어놔요?"



노형대가 곽씨의 별명을 부르며 농담을햇다.


"나도진작에 들어가려고햇지. 그런데 위층에 정치부 기자들이 와잇거든.
자정쯤 들어와서는 붕어처럼 계속 마셔대니 갈수가 잇어야지."



후배기자들이 킥킥대며 웃엇다.


"사장님 우리오늘 기분좋으니까 빨리 술갖다줘요. 김선배.그래도 폭탄주
한잔씩은 해야죠? 여기일단 맥주열병하고 가짜아닌걸로 국산양주 큰거한
병 주시고."


노형대가 걸쭉한 목소리로 수선을떨며 자리를 잡더니 마구 술을시켯다.


"어허 노기자. 우리집이 룸살롱인줄 알아?우린 가짜술 안파는걸 잘알면서
그래."


곽씨의 목소리가 주방쪽으로 멀어져갓다. 맥주와 양주를섞은 폭탄주가 몇
순배 돌면서 기자들은 순식간에 취해갓다.



"난 폭탄주가 낫더라.맥주는 배부르고 양주는 독하니까. 후딱마시고 얼큰
해지는데 최고지."


주철민이 숨도한번 안쉬고 술을비우더니 잔을흔들어 딸랑딸랑 소리를 내
면서 껄껄웃엇다.



"김선배. 우리도 칵테일이나 포도주. 이런거 마시면 안되나요?"


여기자인 문지연이 웃으며 말햇다. 수습기자때는 소주석잔이 정량이던 문
지연은 1년만에 소주두병을 마시고도 끄떡없이 버틸만큼 주량이 늘엇다.


그게 오기라는건 모두알앗다. 게다가 취하고나면 술을 더마시자고 졸라대
는통에 동료나 선배기자들은 문지연에겐 가급적 술을 권하지 않앗다.


"김선배. 그런데 폭탄주는 누가처음 만들엇을까요. 미국영화 '흐르는 강물
처럼'인가를 보니까 거기서도 신문기자인 브래드피트가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더라고요."



경찰청에 출입하는 유창동이엿다.


"나도 들은얘긴데 아주오래전에 유럽수병들이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마셧다
는거야. 원래이름이 봄우레엿다나 뭐라나. 수병들이 잔을 한꺼번에 흔들어
대면 그소리가 망망대해 뱃전에서 듣던 봄우레소리 같더라는거지."



민기의말에 후배들은 고개를 끄덕엿다.


"아하.그러니까 폭탄주는 원래부터 군인들이 마셧던거구만요."


노형대가 골뱅이를 한점집어 우물우물 씹으며 말햇다.


"그렇다고 할수잇지. 폭탄주가 우리사회에 알려진게 80년대 초반부터인데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들이 정치인들한테 전파하고 그게 관료들하고 판사.
검사들한테 번진다음에 기자들까지 가세해서 천지사방에 퍼진거지뭐."


"그런데 말입니다 김선배. 폭탄주는 군사문화를 고스란히 닮앗다니까요. 개
인주량을 불문하고 강제로 돌리고 몇잔마시면 다취하니까 체면치레 필요없
고."


별명이 교수인 유창동이 사각뿔테안경을 매만지며 말햇다. 후배들 몇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신바람이나서 입담을 세웟다.


"1980년도에 광주에서 시민들 죽이고 집권한 정치군인들이 논리나 대화에
는 별로 자신없엇을거 아냐. 그러니까 폭탄주를 돌리면서 '싸나이답다'는 군
인정신을 앞세워서 민간인들 기를확 죽인거라구."



"어쭈. 누가 유교수 아니랄까봐. 너 아무튼 해석은 죽여준다. 폭탄주가 군사
문화의 상징같은거라면 넌왜그리 마셔대냐?"


노형대가 코웃음을치며 핀잔을줫다.


"사실 사건기자들이 군인하고 다를게 뭐가잇습니까. 시위현장이나 쫓아다니
고 큰사건 터지면 만날 경찰서에서 밤새우고 코멘트하나 받아낸답시고 남의
집앞에서 몇시간씩 죽치잖아요. 그렇게 몸으로 때우며 살아가니까 우리한테
도 폭탄주가 딱맞는다 이말씀입니다."


유창동이 항변햇다.


"김선배. 어쨋거나 이번건은 잘됏어요. 아까뭐라고 하셧죠. 봄우레? 몇시간만
지나서 신문보면 베스트 서비스 변호사들이 봄우레소리 좀듣겟네요."



문지연의 비유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렷다.


"김영진 변호사. 이번에 잘걸렷어. 지난번에 윗사람들에게 로비해서 우리가
취재한걸 다 깔아뭉개버리더니."



술이약한편인 송인기도 홍당무처럼 새빨간 얼굴로 말햇다.


"난 베스트 서비스에잇는 변호사들이 세금을 얼마씩 내는지 한번캐봣으면
좋겟어. 불쌍한 월급쟁이들만 만날봉이고."


후배들은 술기운에 호기가 발동하는듯 여기저기서 기세를 올렷다. 민기가
술잔을 들엇다.



"당장 내일부터가 문제다. 타사애들이 벌집쑤신듯 난리가 날텐데. 이제부터
한판붙어야 할거다. 다들정신 바싹차리고 뛰자고."


"아무튼 김선배는 못말린다니까. 아*도쿠다이해서 기분최곤데 술맛떨어지
게 벌써무슨 내일 기삿거리 얘기를해요.아.오늘은 그냥마셔요."


주철민이 폭탄주를 만들어 민기에게 건네며 핀잔을줫다.


어지간히 취한 민기네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나무계단이 삐걱대며 2층
에서 정치부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내려왓다.



"여어. 김민기. 너 여기잇엇구나."


눈자위가 토끼처럼 빨개진 정치부 신현구가 성큼성큼 다가와 민기의 어깨
를 얼싸안앗다.


"우리 한잔더하자."


입사동기인 신현구는 정치부의 베테랑이엿다. 비썩마른 큰키에 머리를 짧
게 깎고다니는 그는 형식에 구애받지않고 열정적이여서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앗다.


시끌벅적한 작별인사가 오간뒤 후배들은 대부분 다음날 취재를 핑계로 자
리를떳다. 민기와 신현구. 노형대와 주철민. 그리고 정치부 진명호만이 남아
다시술잔을 돌리기 시작햇다.



주인곽씨는 정말 집에안갈거냐고 몇번 성화를 하더니 눈이라도 붙이려는지
주방쪽으로 사라져버렷다. 신현구가 술잔을 건네며 말햇다.


"니네오늘 사고쳣다면서. 나도대충 얘기는 들엇다. 베스트 서비스쪽에서 로
비를해서 기사가 못나갈뻔햇는데 민기네가 버텻다는거 말이야."


"내가아니고 후배들이 한거지. 국장도 많이도와줫고."
민기가 겸연쩍게 대답햇다.


"아니. 내가널알지.야.민기. 어떡하면 너처럼 국장. 부국장한테 깡다구좋게
대들면서 살수잇냐."


신현구가 껄껄웃엇다.


"그런데 신선배. 변태룡 부국장은 왜그러는지 모르겟어요. 무조건 꼬투리를
잡지못해 난리더라고요."


노형대가 저녁에 잇엇던일이 분이 안풀린다는듯 끼여들엇다.그는 신현구에
게 술을꽉꽉채워 따르면서 투덜댓다.



"지난번에도 변부국장이 앞장서 우리기사 못나가게 한건아시죠? 도대체 김
영진 변호사하고 변부국장이 무슨관계라도 잇는건가요?"


신현구는 한참동안 큰눈을 껌뻑이더니 말햇다.


"글쎄. 두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관계인지 나야 잘모르지만 김영진 변호사
가 대단한건 분명하지."


그는 땅콩을 몇개 집어들면서 독백하듯 말햇다.


"내가보기엔 베스트 서비스는 단순한 로펌이 아냐. 거긴 신종권력기관이야."


"권력기관이요?"
주철민이 놀라 되물엇다.


"그래. 권력기관이지. 아마 베스트 서비스가 갖고잇는 고급정보는 국내어떤
대기업보다 많을거야. 돈이되는 정보로만 따지면 베스트 서비스가 언론사
보다 훨씬더많이 갖고잇을걸."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후배들의 표정을보며 신현구가 코웃음을쳣다.


"야.니들 이형님말 못믿냐. 베스트 서비스는 정보만 쥐고잇는게 아냐. 이친구
들은 정보를 법률지식하고 연결해서 보이지않게 우리사회를 쥐고흔든단 말
이야. 세상사람들이 변호사를 욕하지만 베스트 서비스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
사인걸."



"그렇게 기고만장하다 이번에 우리한테 걸렷잖아요. 하지만 변호사라고 다
그런건 아니지않나? 가난한 사람들 무료로 변론하는 변호사들도 잇던데."



주철민이 끼여들엇다.


"물론이야. 하지만 굿캅몇명이 좋은일한다고 경찰전체가 달라지냐? 조직전
체의 분위기가 문제인거지."


신현구는 들릴듯말듯 한숨을 내쉬엿다.


"하긴 남욕하면 뭐하냐. 그렇게 따지면 우리조직도 할말없긴 마찬가지지."


"신선배가 조직얘기 하시니까 저도 드리는 말씀인데. 전변부국장 진짜 기분
나빠 죽겟어요. 그양반은 자기가 정치부 출신이라서 그런지 다른부서에잇
는 후배들은 기자취급도 잘안하려고 한다니까요."


신현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형대가 또 물고늘어졋다.


"젠장. 솔직히 그선배가 정치부에 오래잇으면서 제대로한게 뭐가잇어. 선
거때마다 뒷구멍으로 봐줄놈은 수단방법 안가리고 봐주고. 자기가 싫어하
는놈은 무자비하게 조져서 박살내놓고 말입니다. 그런식으로 우리신문 정
치면을 개판으로 만든게 바로 부국장 아닙니까?"



술기운이 노형대를 몰아가고 잇엇다.


"형대야. 이제그만해라."


민기가 말을끊엇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엿다.


"신선배.전말이죠. 그양반이 기자인지 아니면 기술자인지를 잘모르겟어요.
이근안이가 고문기술자라면 그선배는 선거때마다 여론조작을 전문으로하
는 선거기술자인것 같단말입니다. 도대체 정치부 기자를 오래하면 모두다
그렇게 되는겁니까. 껍데기만 기자지 알고보면 정치인 하수인 아닙니까?"


노형대의 건너편에 마주앉은 정치부 진명호의 얼굴색이 변하고잇엇다. 술
때문은 아닌게 분명햇다. 그역시 성질팔팔하고 자존심세기로는 편집국에
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엿다.


"아니.잠깐만예..노선배.뭔말을..그럼 정치부 기자들은 다 쥑일놈이다 이말
입니꺼."


그는 벌겋게 상기돼 노형대를 사납게 노려봣다.


"지도 변부국장한테는 불만이 잇심더. 하지만 선배 아닙니꺼. 변부국장이
정치부에 오래잇엇다캐서 정치부 후배들까지 싸잡아서 매도하면 어쩌자는
겁니꺼."



"뭐? 이자식이. 어딜건방지게.."


노형대가 험상궂게 인상을 쓰면서 눈을 아래위로 희번덕거렷다.


"야 인마 내가 틀린말햇어? 권력놀음하라고 정치부기자 시킨줄알아? 따
지고보면 한국정치를 이따위로 만든건 정치부책임이 제일크단말야."


대드는 후배를보고 그냥넘어갈 노형대가 아니엿다. 하지만 진명호 역시
화가 머리끝까지 난듯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대들엇다. 흥분때문에 그의
사투리가 훨씬 심해졋다.



"아니.노선배예.변부국장한테 그런식으로 말하면서 왜 자긴 선배대접 받
을라캅니꺼. 그라고 어떻게 후배앞에서 그딴식으로 선배를 씹을수가 잇
심니꺼. 정치부가 뭐 어쨋다는겁니꺼.씨팔. 노선배는뭐 죽을때까지 사회
부에만 일을라캅니꺼."


"이새끼. 너지금 뭐라고햇어? 뭐.씨팔이라고? 이게어따대고.."


노형대가 당장 주먹이라도 날리겟다는듯 자리에서 벌떡일어섯다. 옆자
리에 앉아잇던 주철민이 번개같이 노형대를 감싸안앗다.


"이거놔! 너지금 저새끼 하는얘기 들엇지?"
노형대가 씨근벌떡거리며 고함쳣다.


"에이. 씨팔 선배면 답니꺼?증말 드러버서."


진명호도 맞받아칠 기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낫다. 맥주병과 술잔들이
우르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냇다.


"아니. 왜들그래. 이게 무슨짓이야. 같은신문사 동료들끼리."


주인곽씨가 놀라 달려왓다. 노형대를 한동안 노려보던 진명호가 거칠게
곽씨를 밀치며 밖으로 뛰쳐나갓다.


"진선배.진선배."


주철민이 부랴부랴 진명호를 두쫓아갓다. 술이 한꺼번에 확 깨는것 같앗
다.


"야 노형대! 네가 베스트 서비스건으로 열받앗다는건 알지만 너 도대체
이게뭐야. 선배들앞에서 그런식으로밖에 못해?"



민기가 노형대를 매섭게 노려봣다. 정작 신현구는 말없이 술잔만 기울엿
다. 분위기가 썰렁햇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잇던 노형대가 신현구에게
잔을건넷다.


"신선배. 죄송합니다. 너무흥분해서..신선배야 후배들이 다 존경하는데
변부국장이 하도 열을받게하니까 괜히 정치부에 화가나서 그랫습니다."


신현구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햇다.


"됏다.됏어. 다 술먹다 한얘긴데."


신현구는 노형대가 준 술잔을 천천히 들이키더니 빈잔을든채 묵묵히 앉
아잇엇다. 속으로 화를 삭이는것 같기도햇다. 노형대가 쥐구멍에라도 들
어가고싶은 표정으로 신현구의잔에 또 술을따랏다.


"하지만말이다. 지금 정치부에잇는 선후배들을 몽땅 매도하는건 아무래
도 너무하다."



눈자위까지 붉어졋던 신현구의 얼굴색은 이젠 하얗게 변하기 시작햇다.


"편집국에서 정치부에대해 무슨말이 오가는지 나도알아. 또 정치부가 그
동안 잘못한게 많은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지금잇는 정치
부 기자들이 다 책임져야 하는건 아니지않느냐 이말이야."



신현구는 변명을 하는것자체가 짜증스러운 듯햇다.


"그리고 과연 정치부만 그런가? 사회부나 경제부는 문제가 없냐고."


"..."


"남의부서 물고 들어가자는게 아니다. 정치부의 잘못된 관행을 왜당장
깨지못하느냐고 다그치면 할말도없다. 하지만 신문사 조직이든 뭐든 세
상사가 엿장수 가위질하듯 돌아가지는 않는다는걸 형대. 너정도 기자생
활 햇으면 이해할수 잇는거아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앗다.셋은 말없이 술잔만 돌렷다. 술에취해 상체를
앞뒤로 흔들어대던 신현구가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웟다.


"야. 이놈들아. 내말잘들어. 권력의 속성은 똑같은거야. 니들은 권력이란
게 정치판에만 잇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의얼굴은 이젠 백지장처럼 새하얗고 입술만 립스틱을 바른듯 빨갯다.


"일반회사에는 권력다툼이 없냐? 좀 잘나간다싶은 놈이잇으면 냅다 씹어
제끼고 어제까지 욕하던 놈한테 오늘은 알랑대잖아. 학생운동이나 재야
운동햇다는 놈들도 마찬가지고. 시민단체니 노조니 하는데도 똑같아. 조
직이 생기면 당연히 권력문제가 제기되는거고 그걸둘러싼 인간의 갈등은
본질적으로 다른게 없단말이다. 민기. 넌어떻게 생각해? 내말이 틀렷나?"


민기는 고개를 끄덕엿다.


"그래. 남얘기 할게뭐잇냐. 우리회사도 마찬가지지. 정치인들은 대놓고
하니까 차라리 나을지도몰라. 겉으론 온갖명분 내세우면서 뒷구멍으로
별의별짓 다하는 인간들이 더 추악하지."


"아니. 그러니까 언론과 권력은 서로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것아닙니까.
그런데 우리언론은 독자는 우습게알면서 권력에는 쩔쩔매고.."



노형대가 둘사이에 끼여들며 또다시 흥분햇다.


"독자?야. 노형대 이씨팔놈아. 너걸핏하면 입에 달고다니는 그 독자소리
좀작작해. 그게 민주주의하고 똑같은거아냐?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걸핏하면 민주주의. 할말없으면 독자여러분이야? 넌 눈만뜨면
민주주의 외치는 놈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개판으로 사는지몰라? 독자니
시청자니 하는게 다 허울좋은 명분인거 모르냐고? 우리회사에서도 봐라.
목소리 큰놈들중에서 진짜로 일제대로 하는놈잇나. 어디든 다 마찬가지
야.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말장난하고 선동만 일삼는 아마추어 새끼들
투성이라고."


한바탕 쏟아낸 신현구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낫다.


"난 말다햇다. 나 간다."


"신선배. 제가 모셔다 드릴테니 같이가시죠."
노형대가 재빨리 신현구의 팔짱을 끼엿다.


"아니.괜찮아.진짜로.나혼자 갈수잇어.민기.술고래놈아 난 간다."


신현구가 노형대를 뿌리치며 비틀비틀 걸어나갓다. 오전3시가 넘어서
고 잇엇다. 지금쯤이면 보급소로 배달소년들과 아줌마들이 신문을 돌
리기위해 모여들고 잇을것이다.


"김선배. 난가끔가다 대체 기자가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건
지 잘모르겟어요."


노형대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햇다. 민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낫다.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몇시간만 지나면 타사들이 난리를 치면서 전
쟁이 시작될테니까 거기서 살아남으면 그때 생각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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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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