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발가락이 닮았다

더좋은래일 | 2024.05.06 15:38:24 댓글: 0 조회: 9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547


수필


발가락이 닮았다.


항일의 봉화가 타오르는 태항산에서의 일이다. 우리 조선의용군의 한 부대는 팔로군과의 협동작전으로 침략군의 거점-보루 하나를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였다. 교전하는 쌍방에 다 사상자가 난것은 더 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화약내와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보루안에 뛰여들어보니 가로세로 나가너부러진 적병들의 시체가 랑자하였다. 의전례하여 몸뚱아리가 아직 다 식지 않은 송장들의 몸뒤짐을 하다가 나는 한놈의 잡낭(즈꾸로 만든 멜가방)속에서 책 한권을 뒤져내였다. 태항산항일근거지는 책이 매우 귀한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게 웬 떡이냐?)

금시계라도 하나 뒤져낸것처럼 대견해하며 그 책을 다시 본즉 손바닥만한 수진본인데 앞뒤뚜겅이 다 떨어져나가서 누가 지은 무슨 책인지를 알수가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한것은 그 책이 일본글로 된것이 아니라 우리 한글로 된거라는것이였다.

(그렇다면...)

다음 순간 나는 속이 찡하여 어쩔할바를 몰랐다. 그러니까 분명... 내 발밑에 죽어넘어져있는것은 일본놈이 아니고 우리 조선사람이였다. 조선청년이였다. 조선에서 끌려나온 희생물-학도병이였다!

(만리이역에서-아무리 모르고 한 일이라도-동포를 죽이다니!)

나는 한동안 그 시체앞에 멍하니 서있다가

<<아 뭘 하구있어 학철이? 빨리 나오잖구!>>

하는 어느 전우의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서

<<아 이제 나가.>>

일변 대답하고 일변 그 학도병의 뜨고 죽은 눈을 감겨주었다.

전투가 끝난 뒤에 뒤적거려보니 그 로획품 수진본은 단편집인데 누가 쓴것인지는 몰라도 거기 수록된 10여편의 단편이 모두 시시껄렁한것들뿐이였다. 그중 한편의 제목이 눈을 끌어서 맨먼저 읽어보는데 그 제목은 기발하게도 <<발가락이 닮았다>>였다. 그 줄거리를 대강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어느(조신인) 인테리가 오입질이 심하여 성병(림질)에 걸렸다. 후에 다행이도 완치는 되였으나 그 후유증으로 생식적기능은 영영 파괴되고말았다. 그의 친구인 한의사가 검진을 해보고 내린 진단이였다. 그는 매우 실망하였으나-누구를 탓하랴-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후 결혼은 하였으나 아이가 생기기를 바라지는 못할 형편이였다. 그러던중 뜻밖에도 그의 안해가 임신을 하였다. 물론 그 안해는 남편의 생식적기능이 아주 파괴된것을 모르고 시집을 왔었다. 남편은 가슴이 뜨끔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녀편네가? ...)

아무리 안해의 행실을 의심하지 않을래야 않을 재간이 없었다. 남편은 이 충격적인 의문을 한시바삐 풀기 위하여 친구의사를 부랴부랴 찾아갔다.

<<여보게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네가 분명히 말해주지 않았었나... 나는... 인제... 안된다구. 그런데 녀편네가 아이를 배였으니... 이게 그래? ...>>

<<너무 흥분하지 말게. 어디 한번 다시 진찰을 해보세.>>

그 친구의사가 다시 면밀히 검진을 해본 결과 자기가 전에 내린바 있는, 생식적기능이 완전히 파괴되였다는 진단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니까 뒤집어서 말하면 그 친구의 안해가 행실이 부정하여 사이서방의 아이를 배였다는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한것이 되였다. 그러나 능란한 의사는 잔뜩 의심을 품고있는 친구를 안위하기 위하여

<<거참 기적적일세. 자네 생식적기능이 어느새 아주 제대루 회복이 됐네그려. 희한한 일일세. 반갑네 정말... 축하하네.>>

이렇게 얼렁뚱땅해 넘겼다.

그후 몇달이 지나서 안해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게 또 마침 옥동자라.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으랴! 그런데 한달이 지나고... 돌이 지나도... 아이가 아버지를-법률상의 아버지 즉 본남편을-조금이라도 닮으데가 있어야 말이지! 저와 모습이 판판결 다른 아이를 오랜 동안-여러달을 두고-의혹에 찬 눈으로 이리 살펴보고 저리 뜯어보고 하던 본남편 아버지는 끝내 닮은데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발가락이 닮았다! 발가락이 닮았다! 신통히 닮았다!>>

그는 이렇게 환성을 지르는것이였다.

일제의 철제하에 신음하는 민족의 고난에 외면을 하고 이따위 소설을 써서 민족의 반항정신을 마비시키는 그 이름도 모르는 너절한 작자에게 나는 침을 칵 뱉어주고싶었다.

몇해후, 일제가 무조건항복을 한 뒤에 나는 약 1년 동안 해방된 서울에서-독립동맹 서울시위원회에서-일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 남조선의 많은 문인들과도 접촉할 기회를 갖게 되였다. 진보적인 작가들의 조직인 문학가동맹의 기관지 <<문학>>편집부에서 한번은 무슨 좌담회를 개최하였는데 나도 초청을 받아서 참석을 하였다. 그 석상에서 나는 들떼여놓고 한번 물어보았다.

<<내가 전에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소설을 하나 읽어본적이 있는데... 그 작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모르구있습니다. 그게 대체 누굽니까?>>

좌석은 삽시에 웃음판으로 변하였다.

<<김동인이가 쓴겁니다. 김동인이가... 지금 <문필가협회>라는 우익단체를 꾸리느라구 열을 올리구있지요.>>

(오, 그러니까 그게 김동인이의 단편집이였구나!)

나의 오랜 궁금중은 드디여 풀리였다. 어처구니없이 풀리였다. 서울서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신문에 련재되는 김동인의 력사소설 <운형궁의 봄>을 읽어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한동안 허전한 느낌이 사로잡혔다. 이름 못할 비애 같은것을 느꼈다.

재능있는 한 작가의 타락상을 눈앞에 보는 슬픔이였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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