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맛이 문제

더좋은래일 | 2024.05.07 14:43:00 댓글: 0 조회: 125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763


수필


맛이 문제


어린아이들에게 쓴약을 먹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것은 우리 누구나가 다 잘 아는터이다. 그러나 단 알약이나 단 물약은 아이들이 싫다 않고 납작납작 잘 받아먹으니까 문제가 또 다르다. 쓰건달건 그 약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기때문에-병을 고치거나 또는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먹이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의 반응은 각기 다르다. 어른이 두셋씩 달려들어 싫다는 놈의 코를 쥐고 우격다짐으로 쓴 약물을 떠넣다가 사레가 들리여 란리를 겪는 광경을 우리는 대개 다 목도하였고 또 직접 겪어보기도 하였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것은-일반적으로 말하여 인지상정이니까 억지로 그러지 못하게 하기도 좀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문제로 되는것은 <<맛>>이다. 다냐 쓰냐 하는 맛이 문제로 되는것이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약의 맛을 달게 하는것이다. 그렇게 하면 억지다짐할 필요도 없고 또 사레 들릴 념려도 없다. 손쉽게 치료 또는 보신강장의 목적에 달할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저게 로망이 나잖았나? 우릴 소학교 1학년생으루 아는 모양이지... 저따위 헌 설교를 늘어놓게!>>

이렇게 나를 비웃을분들도 계실것이다. 그런분들은 너무 결론부터 서두르지 마시고 담배 한대 피울 동안만 참고 끝까지 내 말을 들어주시기 바란다.

한때 우리 이 고장에서는 외국에서 들어온 노래들이 판을 쳐서 본고장 노래들은 겨울을 만난 개미새끼들처럼 다 어데론가 피신을 하여 아주 종적을 감추었었다. 그러던것이 이 근래에 와서는 세상이 또 바뀌여서 그 외국의 권위들이 싹 다 어데론가 <<추방>>을 당하고말았다. 그와 갈아들어서 또 판을 치기 시작한것은 <<눈물젖은 두만강>>, <<황성옛터>>, <<나그네의 설음>>, <<목포의 눈물>>, <<방랑자의 노래>>, <<꿈꾸는 백마강>> 따위따위따위다.

이 새 권위들은 기실 뭐 별로 생소한것도 없는, 말하자면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구면이다. 40년 동안 피차격조히 지내온 옛친구들이다. 예전에는 조선팔도와 우리 이 고장을 거침새없이 넘나들던 그들이였건만 그후 모종의 인위적인 장벽으로 하여 38선이남(후에는 군사분계선이남)지역에서만 생존이 권리를 보장받아왔던것이다. 그러던것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생존공간을 좀 넓힌것이 이번의 기이한 교체현상을 뱆어낸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교체현상은 어찌하여 일어나는가? 한마디로 말하여 밀려나온것의 <<맛>>이 갈마드는것보다 좀 못해서라고밖에는 달리 더 어떻게 해석할 방도가 없다. 맛이 못한것을 버리고 맛이 나은것을 좇는것은 인지상정이니까 억지로 그러지 못하게 하는것은 흐르는 두만강의 물을 막아보겠다는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건전하고 순수하고 고상하고 혁명적이고 인민적이고 진보적이고 좌익적이고 프로레타리아적인 노래라 하더라도 <<맛>> 즉 예술성이 부족하면 얼굴이 정원의 괴석 같이 밉게 생긴 딸을 시집보내기만큼이나 애를 먹어야 할것이다. 인민대중속에 펴먹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도태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는 말이다.

지난겨울 나는 새로 나온 고서점에를 몇번 들려보았다. 의심할바 없이 이런 서점의 출현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그 서점에는 소규모이기는 하나 <<세놓이책>>도 마련되여있었다. 일정한 액수의 보증금을 들여놓고 책을 빌어다 보는데 하루에 2전인가 3전인가 세를 내면 되였다. 그런데 우리같이 소설쓰기를 업으로 삼는 족속들을 무색하게 만드는것은, 빌어가는 책들이 모두 <<수호전>>, <<홍루몽>> 따위 고전작품들인것이였다. 현대작품을 빌어가는것은 하나도 못 보았다. 더더구나 본지방작품들은 애당초부터 <<세놓이책>>행렬에 끼지도 못하였었다. 그러니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붙잡고

<<여보 당신 왜 우리 책은 좀 빌어가지 않소? 무슨 원쑤 졌소?>>

시비를 붙을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러한 입이 쓴 현상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옳은가? 이 역시 <<맛>>, 맛이 문제다. 예술성이 문제란 말이다. 그 고전작품들에는 풍부한 예술성이 있는데 비하여 우리 작품들에는 그것이 못하거나 퍽 못하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봄날 들놀이를 가는데 일반적으로 과자, 사탕, 과일, 사이다, 술, 통졸임 따위 맛있는것들을 싸갖고 가는것은 많이 보았어도-내가 보고 들은것이 적어서 그런지-무슨 <<륙미환>>, <<십전대보환>>, <<록용토니쿰>>, <<종합비타민쩨리>> 따위를 싸갖고 가는 놈은 하나도 못 보았다. 아무리 영양가가 높아도 맛이 없으니 안된다는 또 하나의 례를-나는 이렇게 들었다(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답시고).

우리의 점령당한 <<노래의 진지>>, <<소설의 진지>>에서 다른 세력을 밀어내려면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하고 비분강개만 할것이 아니라 제가 쓰는 작품에다 <<맛>>을 가미하기에 골몰해야 할것이다. 우리 작품의 예술성이 그것들을 릉가하거나 대등한 수준에 이르기전에는 아무리 10만명의 군중대회를 열고 <물러가라!> 하고 웨치고 부르짖어도 그것들은 물러가지를 않을것이다.

소설은 치료제도, 보신강장제도 다 아니다. 소설은 사과, 귤, 카스텔라, 쵸콜레트 같은것이여야 한다. <<맛>>이 있어서 소비자의 식욕을 돋우어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게 만들어야 한다. 우격다짐을 아니하여도 그러는 동안에 일정한 영양은 저절로 보충이 되는것이다.

소설가는 당학교의 교원이 아니다. 따라서 소설책도 정치학교의 교과서는 아니다. 물론 설교로 가득찬 성경책은 더군다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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