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마사

단밤이 | 2023.12.27 09:55:36 댓글: 2 조회: 287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4467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마사
다음 날 메리는 어린 하인이 벽난로 불을 피우려고 들어와 그 앞에 깔아놓은 깔개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재를 요란하게 긁어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메리는 침대에 누워서 하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비로소 방을 둘러보았다. 태어나서 그런 방은 처음이었다. 그 방은 신기하면서도 우울했다. 벽마다 숲풍경을 수놓은 벽걸이 양탄자가 걸려 있었다. 나무 아래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짜 넣었고, 멀리 성의 작은 탑들이 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사냥꾼들과 말들, 개들, 부인들이 있었다. 메리는 그들과 함께 숲에 있는 기분이었다. 두꺼운 벽에 난 창문으로 저 멀리 오르막으로 이어진 땅이 보였다. 나무가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 듯한 그곳은 끝없이 펼쳐진 탁한 보라색 바다 같았다.
"저게 뭐야?" 메리가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린 하인 마사가 막 일어서려다, 메리처럼 그곳을 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말이여요?" 하인이 말했다.
"그래."
"황무지여요." 착한 심성이 다 드러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에 드셔요?"
"아니." 메리가 대답했다. "저곳은 너무 싫어."
"아직은 낯설어 그러지요." 마사가 깔개로 다시 돌아가며 말했다. "지금은 넓기만 한 황량한 데라구 생각하실 테지요. 하지만 곧 좋아허게 되실 거여요."
"너는 좋아해?" 메리가 물었다.
"말해 뭐 한대요. 좋아허지요." 마사는 쇠살대를 광이 나도록 닦으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저곳을 사랑헌다니깐요. 저긴 절대 황량허지 않다구요. 저긴 달콤한 향기가 나는 꽃들루 뒤덮일 거여요. 봄과 여름이 되어서 가시금작화, 양골담초, 히스가 꽃을 활짝 피우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러요. 꿀처럼 달콤한 향기가 진동을 허고 공기는 정말 신선허다니깐요. 하늘이 저만치 높아지구요, 꿀벌들이 윙윙거리구, 종달새 노래하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에휴! 뭘 준다고 해두 절대 황무지를 떠나지 않을 거여요."
메리는 어둡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메리가 인도에서 흔히 보던 인도인 하인들은 절대 저런 식으로 굴지 않았다. 그들은 늘 아부를 하고 굽실거릴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주인과 대등한 사람이라는 투로 말하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람(이마에 손을 대는 이슬람 인사법-옮긴이)를 했고 주인들을 '가난한 자들의 수호자'나 그 비슷한 이름으로 불렀다. 인도인 하인들은 무슨 일을 할지 지시를 받았지 부탁을 받지는 않았다. 그곳에는 하인에게 "부탁해"나 "고마워"라고 말하는 관습은 없었다. 그곳에서 메리는 화가 나면 아야의 뺨을 때리곤 했다. 메리는 저 하인의 따귀를 때리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졌다. 마사는 얼굴이 통통하고 두 볼은 발그레했고, 무척 착해 보였다. 하지만 다부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따귀를 맞으면 냅다 되갈기지 않을까 싶었다. 뺨을 때린 사람이 자그마한 여자아이라고 해도 말이다.
"넌 이상한 하인이구나." 메리가 베개에 몸을 기대고 꽤 건방지게 말했다.
마사는 새까매진 솔을 든 채 쪼그리고 앉아 별로 화를 내는 기색 없이 깔깔 웃었다.
"에휴! 알아요." 마사가 말했다. "미슬스웨이트에 마님이 계셨다면 아래층 하인조차 되지 못했을 거여요. 부엌데기 하인에 만족하구, 절대 위층으루 올라오지 못했을 테지요. 너무 촌스러운 데다 요크셔 말투두 굉정허게 심하니깐요. 근데 이 저택은 엄청나게 크기만 하구 괴상한 곳이여요. 이곳엔 주인님두 주인마님두 없구, 피처 씨와 메들록 부인만 있는 것 같애요. 거기다 크레이븐 씨는 이곳에서 지내실 때면 아무 일도 신경 쓰지 않으셔요. 어차피 거의 이곳을 떠나 계시기도 하구. 메들록 부인이 친절하게두 제게 이곳에서 일하게 해주셨어요. 미슬스웨이트가 딴 대저택과 같은 곳이라면 절대로 일자리를 만들어주실 수 없었을 거여요."
"네가 내 몸종이야?" 메리가 여전히 인도에서 몸에 밴 오만한 태도로 물었다.
마사가 다시 쇠살대를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저는 메들록 부인의 하인이여요." 마사가 당차게 말했다. "부인은 크레이븐 씨 하인이구. 허지만 저는 이 저택에서 하인으로 일하니깐 아가씨 시중두 조금 들 거여요. 근데 아가씨는 시중받을 일이 별루 없겠구먼요."
"누가 내게 옷을 입혀줘?" 메리가 발끈해 물었다?
마사는 다시 꿇어앉더니 메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많이 놀랐는지 심한 요크셔 말투로 말했다.
"옷두 혼저 못 챙기셔요?" 마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메리가 말했다.
"아이 참, 깜박했어요." 마사가 말했다. "주의하지 않으면 아가씨가 하나도 못 알아들으실 거라고 메들록 부인이 말씀허셨는데. 그니까 아가씬 옷을 직접 입을 줄 모르셔요?"
"몰라." 메리는 몹시 분개하며 대답했다. "한 번도 내 손으로 입은 적이 없어. 당연히 아야가 입혀줬으니까."
"그럼." 마사가 불쑥 말했다. 분명 자신이 무례했다는 사실을 눈곱만큼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제 배울 때가 되시었네요. 지금보다두 어려질 수는 없으니깐. 몸단장을 직접 해보시는 것두 좋구요. 우리 어머니는 왜 높으신 분들 자제들이 대단한 멍청이가 안 되는가 모른다구 입버릇처럼 말씀하셔요. 그 사람들이 강아지라두 되는지 유모가 씻겨주구 입혀주구 산책두 시켜주잖아요!"
"인도에서는 달라." 못된 메리가 업신여기듯 말했다. 메리는 이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사는 전혀 주눅 들
지 않았다.
"에이! 제 눈에두 달라 보이셔요." 마사는 동정이라도 하듯 말했다. "감히 말씀드리는데, 거긴 점잖은 백인들 대신에 까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여요. 아가씨가 인도에서 오신다는 말을 듣구 아가씨도 까만 사람인 줄 알았지 뭐여요."
메리가 불같이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뭐라고?" 메리가 말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원주민인 줄 알았다는 거야. 너! 그러는 너는 돼지의 딸이야!"
마사가 얼굴이 벌게져서 메리를 바라보았다.
"아가씨가 그런 욕을 입에 담으시구!" 마사가 말했다. "그렇게 성을 내시면 안 되어요. 어린 숙녀는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아니어요. 저는 까만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 감정두 없구요. 교회 책자에서 그 사람들에 대해 읽었는데, 그 사람들은 언제나 신앙심이 강하답디다. 그 책에는 우리가 까만 사람들을 형제로 대해야 한다구 적혀 있지요. 저는 한 번두 까만 사람들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까만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겠구나 싶어서 몹시두 기뻤어요. 아침에 벽난로 불을 지피려구 방에 들어왔을 때, 아가씨를 보려구 침대에 가서 이불을 살며시 내려다보았거든요. 그런데 아가씨는." 몹시 실망한 듯 말을 이었다. "저만큼 피부가 허옇더라구요. 외려 아가씨 피부는 누르께하셔요."
메리는 자신의 분노와 굴욕을 참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네가 감히 내가 원주민인 줄 알았다는 거야? 네까짓 것이 감히! 네가 원주민들에 대해서 뭘 알아!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그것들은 우리를 받들어 모셔야 하는 하인이야. 네가 인도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네가 뭘 알아!"
메리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하지만 마사의 솔직한 눈빛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무서울 정도로 외로움이 밀려왔고 자신이 잘 아는 것과 자신을 잘 아는 모든 것에서 멀리멀리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메리는 베개에 몸을 던져 얼굴을 파묻고 세상이 떠나가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메리가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마음씨 착한 요크셔 아가씨 마사는 더럭 겁이 나면서 메리가 몹시 가여웠다. 마사는 침대로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에이! 그렇게 울면 안 되어요, 아가씨!" 마사가 간청을 했다. "절대 그러심 안 되어요. 아가씨가 화나신 줄 몰랐어요. 아가씨 말씀대로여요. 저는 암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헐게요, 아가씨. 이제 그만 눈물 뚝 허셔요."
마사의 괴상한 요크셔 말투와 다부진 태도에는 다정하게 마음을 위로해주는 구석이 있었기에 메리는 기분이 풀어졌다. 점점 울음소리가 잦아들더니 마침내 조용해졌다. 마사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 표정이었다.
"이제 일어나실 시간이여요." 마사가 말했다. "메들록 부인이 이 옆방으루 아가씨 놀이방으루 꾸며두었어요. 침대서 나오면 옷을 갈아입으시게 도울게요. 단추가 등에 달렸으면 혼자 단추를 꿸 수 없잖아요."
마침내 메리가 침대에서 일어나기로 하자, 마사가 옷장에서 옷을 가져왔다. 그런데 전날 밤 메들록 부인과 함께 저택에 도착했을 때 메리가 입고 있던 옷이 아니었다.
"그건 내 옷이 아니야." 메리가 말했다. "내 옷은 검은색이야."
메리는 두꺼운 흰색 모직 코트와 원피스를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냉랭하게 덧붙였다.
"내 옷보다 좋네."
"이 옷을 입으셔야 하셔요." 마사가 대답했다. "크레이븐 씨가 메들록 부인에게 런던에서 사라구 하신 옷들이여요. 주인님이 이렇게 말하셨어요. '검은 옷을 입은 아이가 길 잃은 영혼처럼 돌아다니게 하지 않겠네.' 그리고 또 말하셨어요. '그랬다가는 이곳이 더 서글픈 곳이 될 테니까. 그 애에게 알록달록한 색 옷을 입히게.' 어머닌 주인님이 그렇게 말하신 뜻을 아시겠대요. 어머닌 사람이 뭔 생각을 하는지 언제나 다 아셔요. 어머니는 절대루 검은색은 입지 않으셔요."
"나는 검은색 물건이 싫어." 메리가 말했다.
옷을 입고 입히면서, 두 사람은 모두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마사는 지금껏 여동생들과 남동생들의 '단추를 채워'주곤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만히 서서 손도 발도 없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 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아가씨가 직접 구두를 신어보면 어떠셔요?" 마사는 메리가 말없이 발을 내밀자 말했다.
"구두는 아야가 신겨줬어." 메리가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관습이었어."
메리는 걸핏하면 이렇게 말했다. "그게 관습이었어." 원주민 하인들이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지난 천년 동안 그들 조상이 하지 않았던 일을 시키면, 그들은 상대를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관습이 아닙니다." 그러면 상대는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메리 아가씨에게는 인형처럼 가만히 서서 옷 입혀주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관습이었다. 하지만 아침 먹을 준비를 하기도 전부터, 메리에게는 미슬스웨이트 저택에서 지내면 완전히 낯선 일들을 잔뜩 배우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제 손으로 구두와 양말을 신거나 떨어뜨린 물건을 직접 줍는 일 말이다. 마사가 젊은 마님의 하인이라서 훈련을 잘 받았다면, 좀 더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했으리라. 머리를 빗겨주고, 장화 단추를 채우고, 물건을 줍고, 치워두는 일이 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사는 황무지의 시골집에서 자라 하인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요크셔 시골 아가씨일 뿐이었다. 마사의 집에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잔뜩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알아서 자기 일을 했고, 품속 아기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 걸핏하면 물건을 넘어뜨리는 더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는 것 외에 다른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메리 레녹스가 매사에 재미를 느낄 줄 아는 아이였다면, 언제든지 수다를 떨 준비가 된 마사를 보고 깔깔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메리는 그저 심드렁하게 마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사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감탄할 뿐이었다. 처음에 메리는 아무 관심도 동하지 않았지만, 마사가 선하고 푸근한 말투로 계속 재잘거리자 어느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에휴! 아가씨가 제 동생들을 함 보아야 하셔요." 마사가 말했다. "우리는 형제가 열둘이여요. 그런데 아버지가 일주일에 벌어오시는 돈은 고작 16실링이구요. 어머니는 그 돈으루 우리 모두가 먹을 귀리죽을 만드세요. 동생들은 온종일 황무지에 나가서 뛰어놀아요. 어머니는 황무지의 신선헌 공기 땜에 동생들이 통통해진다구 하셔요. 어머니는 또 녀석들이 야생 망아지들만치 풀을 뜯어먹구 논다시구요. 우리 디콘은요. 이제 열두 살인데, 제 것이라구 하는 어린 조랑말이 있어요."
"네 동생은 그 말을 어디서 구했어?" 메리가 물었다.
"제 어미와 함께 있을 때 황무지서 마주쳤어요. 그 말이 아기 때요. 그 후에 말한테 빵두 먹이구 신선한 풀두 뽑아주구 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죠. 조랑말두 점점 디콘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디콘을 졸졸 따라다니구 등에 올라타두 내버려 두구요. 디콘은 상냥한 아이여요. 그러니 동물들이 다 좋아하죠."
메리는 한 번도 동물을 키운 적이 없었지만, 늘 동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디콘이라는 아이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메리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관심은 메리의 마음에 건강한 감정이 싹트는 계기였다. 메리가 제 놀이방으로 꾸며놓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잠을 잔 방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벽마다 걸린 음울하고 오래된 그림들과 무겁고 오래된 떡갈나무 의자들을 보면, 그곳은 아이 방이 아니라 어른 방 같았다. 중앙에 놓은 탁자에는 푸짐한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메리는 언제나 식욕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마사가 앞에 차려놓은 첫 번째 접시를 무관심한 태도로 바라보았다.
"먹기 싫어." 메리가 말했다.
"귀리 죽이 싫다구요?" 마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래."
"이게 얼마나 맛나는지 몰라 그러셔요. 귀리죽에 당밀이나 설탕을 조금 넣어보셔요."
"먹기 싫다니까." 메리가 반복했다.
"에휴!" 미사가 말했다. "이렇게 맛난 음식이 쓰레기통으로 가는 건 차마 못 보아요. 제 동생들이 여기 있으면 5분만에 싹싹 핥아먹을 거구먼."
"왜?" 메리가 쌀쌀맞게 물었다.
"왜냐구요?" 마사가 되물었다. "걔들은 배불리 먹어본 적 평생 없으니깐요. 그 애들은 애기 매하구 여우만치 노상 허기져 있어요."
"허기가 지는 게 뭔지 몰라." 메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마사는 성난 표정이었다.
"그럼, 이걸 먹어보는 게 아가씨에게두 좋아요. 딱 보면 알아요." 마사는 거침없이 말했다. "저는 이렇게 맛있는 빵하구 고기를 두구 멀뚱히 앉은 사람들을 보면 화딱지 나요. 세상에! 디콘하구 필하구 제인하구 나머지 동생들이 여기 음식을 앞지마에 그득 담아가면 얼마나 좋아헐 건지!"
"이걸 그 애들 주면 되잖아." 메리가 말했다.
"이 음식은 제 거 아니여요." 마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거기다가 오늘은 저 쉬는 날두 아니구요. 다른 사람들 하는 거처럼 저두 한 달에 한 번 쉬어요. 그날은 집에 가서 어머니 대신 청소를 해요. 어머니 하루 쉬시라구요."
메리는 차를 좀 마시고 마멀레이드를 바른 토스트를 좀 먹었다.
"옷 든든히 입구 밖에 나가 뛰어노셔요." 마사가 말했다. "그러면 건강에두 좋구 배 속에 고기가 들어갈 자리두 생길테구."
메리가 창가로 갔다. 곳곳에 정원과 오솔길과 큰 나무들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칙칙하고 황량해 보였다.
"밖이라고? 이런 날에 왜 밖으로 나가야 해?"
"음, 밖에 안 나가면 집에 있어야 해요. 여기서 뭘 하시려구요?"
메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 거리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메들록 부인은 놀이방을 준비하면서 정작 장난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정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누가 함께 나가?" 메리가 물었다.
마사가 빤히 바라보았다.
"혼자 가셔요." 마사가 대답했다. "형제자매 없는 애들이 노는 법 배우듯이 아가씨두 배우셔요. 우리 디콘은 황무지루 가서 혼자 몇 시간이구 놀아요. 그러다 보니깐 그 조랑말이랑두 친구가 되었죠. 디콘은 황무지에 친구 양두 있어요. 그 양두 디콘을 잘 알구요. 새들이 날아와서 디콘 손에 있는 모일 받아먹어요. 집에 아무리 먹을 거 없어두 디콘은 노상 제 몫 빵을 조금 남겨 동물 친구들 나누어주어요."
메리 자신은 전혀 몰랐지만, 집 밖으로 나갈 마음이 생긴 건 디콘 이야기 덕분이었다. 조랑말이나 양들은 없더라도 새들은 있을 터였다. 인도의 새들과 분명 다르리라. 그 새들을 구경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마사는 메리에게 코트와 모자, 튼튼한 작은 장화 한 켤레를 찾아주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저쪽으로 돌아가면 정원이여요." 마사는 담장처럼 늘어선 관목들 사이로 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엔 여름 되면 꽃이 만발을 해요. 하지만 지금은 한 송이두 없어요." 마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정원 한 곳은 문이 잠겼어요. 10년 동안 그 정원엔 아무두 안 들어갔구요."
"왜?" 메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이 괴상한 저택에 잠긴 방 백 개도 모자라 잠긴 문이 또 나타나다니!
"마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구 크레이븐 씨가 그 정원을 잠가버리셨어요. 거기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셔요. 그것온 마님 정원이었거든요. 크레이븐 씨가 문을 잠그구 구멍을 파서 열쇠를 파묻으셨죠. 에구, 메들록 부인이 종을 울리시네. 가보아야겠어요."
마사가 그렇게 가버리고, 메리는 관목 담장에 난 문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갔다. 1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정원이 자꾸 생각났다. 메리는 그곳이 어떻게 생겼을지, 아직도 살아 있는 꽃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관목 담장에 난 문으로 들어서니, 어느새 풀밭이 넓게 펼쳐지고 가장자리를 짧게 다듬은 산책로가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넓은 정원에 들어와 있었다. 그곳에는 나무들, 화단들, 괴상한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상록수들, 한가운데 낡고 칙칙한 분수가 서 있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하지만 화단은 텅 비어 겨울처럼 삭막했고 분수도 물을 뿜지 않았다. 문이 잠긴 정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원을 어떻게 잠가버릴 수 있을까? 원래 정원이란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닌가.
이런 생각에 골몰하던 메리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메리가 걷고 있는 오솔길 끝에 담쟁이 덩굴이 무성하게 자란, 기다란 벽 같은 것이 서 있었다. 메리는 영국이 아직 낯설었기 때문에, 자신이 채소와 과일을 기르는 채마밭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벽으로 가보니 담쟁이덩굴 사이로 녹색 문이 있었다. 게다가 그 문은 열려 있었다. 이곳은 분명 잠긴 정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 보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나왔다. 그곳은 벽으로 둘러싸인 여러 정원들은 가운데 하나로, 그런 정원들은 문으로 서로 통해 있는 듯 보였다. 메리는 열려 있는 또 다른 녹색 문을 봤는데, 열린 틈새로 겨울 채소가 자라는 밭고랑들 사이에 난 좁은 길과 덤불이 보였다. 과일나무들은 벽에 납작하게 붙어서 자라도록 다듬어두었고, 어떤 밭고랑 위에는 유리 덮개를 씌워두었다. 메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주위를 돌아보며, 황량하고 보기 흉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이 푸르러지는 여름이라면 보기에 더 좋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도 예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어깨에 삽을 둘러멘 노인이 두 번째 정원과 이어진 문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메리를 보고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쓰고 있는 챙 모자를 슬쩍 만졌다. 나이든 얼굴이었고 메리도 노인의 정원이 맘에 들지 않아 "온통 고집불통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노인이 전혀 반갑지 않은 듯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메리가 물었다.
"채마밭들 중 하나라오." 노인이 대답했다.
"저건 뭐야?" 메리가 또 다른 녹색 문 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또 다른 채마밭이라오." 짧게 대답했다. "저 담장 너머에 또 채마밭이 있구 그 담장 반대편에는 과수원이 있다오."
"들어가 봐도 돼?" 메리가 물었다.
"그러구 싶다면. 허나 볼게 없다오."
메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좁은 길을 따라 걸어 두 번째 녹색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방금 지나온 정원보다 담장이 더 많고, 겨울 채소가 자라고, 유리 덮개도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담장에는 열리지 않은 또 다른 녹색 문이 있었다. 아마 10년 동안 아무도 보지 못한 정원의 문일지도 몰랐다. 메리는 결코 소심한 아이가 아닌 데다 늘 하고 싶은 대로 했으므로, 그 녹색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돌렸다. 메리는 내심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랐다. 신비에 싸인 정원을 자신이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은 꽤 쉽게 열렸고, 안으로 들어가니 과수원이 나왔다. 그곳에도 사방을 에워싼 담장이 서 있고, 나무들이 담 가까이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누레진 겨울 풀밭에는 벌거숭이 과일나무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녹색 문은 없었다. 메리는 문을 찾아다녔다. 과수원 위쪽 끝까지 가보니 담장이 과수원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어떤 장소를 감싸듯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벽 위로 솟은 나무들의 윗부분이 보였다. 가만히 서 있자 그 나무들 중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앉은, 가슴이 붉은 새 한 마리가 보였다. 그 새는 느닷없이 겨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메리를 보고 어서 오라고 부르는 듯 말이다.
메리는 가만히 서서 새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 같은, 경쾌하고 친근한 새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메리처럼 뚱한 여자아이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문을 온통 잠가둔 대저택과 황량하고 광활한 황무지와 거칠고 널찍한 정원들 때문에, 메리는 이 세상에 자신만 남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메리가 다정한 아이였고 사랑을 받는 일에 익숙했다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아무리 '고집불통 메리 아가씨'라도 너무 외로웠다. 그런데 가슴이 붉은 작은 새 한 마리가 메리의 뚱하고 작은 얼굴에 미소나 다름없는 표정을 불러냈다. 메리는 새가 날아갈 때까지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도에서 보던 새와는 달랐다. 메리는 그 새가 마음에 들었고,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그 새는 신비로운 정원에서 살아서 그곳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도 몰랐다.
메리는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버려진 정원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곳이 몹시 궁금했고, 어떤 곳일지 보고 싶었다. 왜 고모부는 열쇠를 파묻었을까? 부인을 그토록 사랑했다면서 왜 부인의 정원은 미워할까? 메리는 고모부를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그러나 고모부를 만나면 싫어하게 될 것 같고, 고모부도 메리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고모부를 만나면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면서도 가만히 서서 입을 꾹 다문 채 고모부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게 뻔했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도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 메리가 생각했다. '난 절대로 크로포드 씨네 아이들처럼 말할 수 없을 거야. 그 애들은 언제나 조잘거리고 웃고 떠들었지.'
메리는 가슴이 붉은 울새와 노래를 들려주는 듯했던 새의 몸짓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새가 앉아 있던 나무 꼭대기를 떠올리는 순간, 길 위에서 우뚝 멈춰 섰다.
'분명히 그 나무는 그 비밀 정원에 있을 거야. 그런 예감이 들어.' 메리는 생각했다. '담장이 정원을 에워싸고 있는데 문이 없었잖아.'
메리는 첫 번째 채마밭으로 되돌아갔다. 그곳에서는 아까 본 노인이 땅을 일구고 있었다. 메리는 노인 곁으로 다가가 노인이 일하는 모습을 평소처럼 쌀쌀맞은 태도로 잠시 지켜보았다. 노인은 메리를 보고도 못 본척했다. 결국 메리가 말을 걸었다.
"다른 정원들을 둘러봤어." 메리가 말했다.
"아가씨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했잖소." 노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과수원에도 갔어."
"문을 지키고 섰다가 아가씨를 콱 물어버릴 개두 없으니깐." 노인이 대답했다.
"그곳에서 다른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없었어." 메리가 말했다.
"무슨 정원 말하는 게요?" 노인이 땅을 파던 손을 잠시 멈추고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담장 너머에 있는 정원." 메리 아가씨가 대답했다. "거기에 나무들이 있었어. 나무 꼭대기가 보였어. 가슴이 붉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어."
놀랍게도 주름살이 깊게 패고 뚱하던 노인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얼굴에 미소가 천천히 퍼졌다. 그러자 노인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메리는 미소를 지으면 훨씬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노인은 과수원이 있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소리였다. 메리는 방금 전까지 뚱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살살 구슬리듯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공기를 빠르게 가르는 소리가 설핏 들였는데, 소리의 주인공은 그들에게 날아오는, 가슴이 붉은 새였다. 그 새는 정원사의 발치에 쌓인 커다란 흙무더기에 내려앉았다.
"녀석이 왔구만." 노인이 싱긋 웃었다. 그러더니 아이에게 말을 걸듯 그 새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갔었냐, 이 까불거리는 꼬마 녀석아?" 노인이 말했다. "어제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더만. 이번 계절에는 벌써부터 짝짓기에 나선 게야? 서두르기는."
그 새는 작은 머리를 갸웃하더니, 부드러운 눈빛을 반짝이며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꼭 까만 이슬방울 같았다. 새는 노인과 꽤 친해 보였고,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녀석은 여기저기 폴짝거리며 씨앗과 벌레를 찾아 열심히 땅을 쪼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리의 가슴속에 기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새는 너무 귀엽고 명랑한 데다 꼭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새의 작은 몸통은 통통하고 부리는 섬세했으며, 두 다리는 가느다랬다.
"부르기만 하면 항상 오는 거야?" 메리가 속삭이는 것처럼 물었다.
"그렇다오, 늘 온다오. 갓 날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던 녀석이오. 녀석은 다른 정원에 있는 둥지에서 왔다오. 처음 담장 위로 날아왔을 때는, 너무 약해서 며칠 동안 둥지로 돌아가지 못했구, 그래서 우리는 친해졌다오. 다시 담장을 넘어 둥지로 돌아갔을 때는 같이 태어난 새들이 모두 둥지를 떠나고 없었소. 그렇게 혼자 남자 되돌아왔다오."
"저 새는 무슨 새야?" 메리가 물었다.
"모르시오? 저 녀석은 붉은가슴울새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구 호기심 많은 새라오. 개들만큼 사람을 좋아하기두 하구. 물론 먼저 저 새들하구 친해지는 방법을 알아야 허지만, 보시오. 녀석이 근처를 쪼구 다니다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잖소. 또 그러는구려. 녀석은 우리가 제 이야기를 헌다는 걸 안다오."
이 노인을 만난 건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일이었다. 노인은 진홍색 조끼를 입은 통통한 작은 새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 녀석은 우쭐거리기 좋아하는 새라오." 노인이 빙그레 웃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 그걸 듣구 좋아허는 게지. 호기심도 많구. 어이쿠, 이렇게 호기심 많구 참견하기 좋아하는 녀석은 처음 봤다오. 내가 뭘 심는지 항상 보러 온다오. 크레이븐 주인님이 굳이 알구 싶어허지 않으시는 것두 녀석은 다 알 게요. 이곳 수석 정원사라오. 아무렴."
울새는 분주하게 폴짝거리며 땅을 쪼았고, 가끔 멈춰 서서 두 사람을 잠깐씩 바라보았다. 메리는 울새가 까만 이슬같은 두 눈을 지대한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며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울새가 메리에 대해 몽땅 알아내는 중인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점점 커졌다.
"같이 태어난 새들은 어디로 날아갔어?" 메리가 물었다.
"모른다오. 부모 새는 새끼들을 둥지에서 내보내 날아가게 헌다오. 어디루 가는지 알아차리기두 전에 흩어진다오. 이 녀석은 영리해서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게요."
메리 아가씨는 그 울새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아주 열심히 바라보았다.
"나도 외톨이야." 메리가 말했다.
지금까지 메리는 늘 심술과 짜증이 나는 이유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울새와 서로를 마주본 순간, 메리는 그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
늙은 정원사가 대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뒤로 잡아당기더니, 잠시 메리를 바라보았다.
"혹시 아가씨가 인도에서 오신 어린 처자요?" 노인이 물었다.
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외로운 것도 놀랄 일이 아니구려. 이제 더 외로워질 테지." 노인이 말했다.
노인은 텃밭의 비옥한 검은 흙에 삽을 깊이 박아 넣으면 땅을 갈기 시작했다. 한편 울새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몹시 분주하게 땅을 쪼아댔다.
"영감은 이름이 뭐야?" 메리가 물었다.
노인은 똑바로 서서 질문에 대답했다.
"벤 워더스태프." 노인은 이렇게 대답한 후 무람없이 껄껄 웃었다. "나도 이 녀석이 곁에 없으면 외롭다오."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그 울새를 가리켰다. "저 녀석이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오."
"난 친구가 없어." 메리가 말했다. "원래 없었어. 아야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놀아본 적이 없어."
생각한대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요크셔의 관습이었다. 게다가 벤 웨더스태프는 요크셔 황무지 토박이였다.
"아가씨하구 나는 꽤 비슷허구려." 벤 워더스태프가 말했다. "우리는 한 콩깍지에서 태어난 모양이구려. 우리는 둘 다 못생겼구 둘 다 뚱한 표정이지. 아가씨도 나처럼 성격이 고약하지 않겠소. 분명 그럴 테지."
솔직한 말이었다. 메리 레녹스는 난생처음 자신에 대해 솔직한 말을 들었다. 메리가 무슨 짓을 해도 원주민 하인들은 항상 비위를 맞춰주고 복종했다. 메리는 지금껏 자기 외모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벤 웨더스태프처럼 못생겼는지는 궁금했다. 울새가 찾아오기 전의 벤처럼 뚱해 보이는지도 궁금했다. 게다가 자신이 정말 '성격이 고약'한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문득 마음이 불편해졌다.
갑자기 바로 근처에서 물결이 퍼지듯 맑은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메리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어린 사과나무가 서 있었는데, 울새가 그 나무의 가지에 앉아서 노래 한 소절을 부르고 있었다. 벤 웨더스태프가 껄껄 웃었다.
"새가 왜 저러는 거야?" 메리가 물었다.
"녀석이 아가씨하구 친구가 되기루 마음을 먹은 모양이오." 벤이 대답했다. "녀석이 아가씨를 좋아허는 게 아니면 날 욕해두 되오."
"나를?" 메리가 되물었다. 그리고 그 작은 나무로 살며시 다가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너, 내 친구가 되어줄 거야?" 메리는 사람에게 말을 하듯 울새에게 물었다. "정말?" 이렇게 묻는 메리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는 작은 소리도 아니고, 인도에서처럼 오만한 말투도 아니었다. 어찌나 진심을 담아 상냥하고 부드럽게 말을 했는지, 메리가 벤의 휘파람 소리에 놀란 것처럼 벤도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정원사가 소리쳤다. "고약한 할멈이 아니라 진짜 아이처럼 상냥하게 말을 허는구려. 꼭 디콘이 황무지에 사는 야생동물들과 이야기허는 모습 같았다오."
"디콘을 알아?" 메리가 몸을 홱 돌리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없지. 디콘은 온 데를 돌아다닌다오. 나무딸기두 히스꽃두 디콘을 알 게요. 디콘이라면 어미 여우들은 새끼들 은신처를 보여주구, 종달새들은 둥지를 숨기지 않는다오. 아무렴."
메리는 묻고 싶은 게 더 있었다. 버려진 정원만큼이나 디콘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동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울새가 노래를 끝내더니, 날개를 살짝 흔들었다가 활짝 펼치고 날아갔다. 친구를 만났으니 다른 볼일을 보러 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울새가 저 담 위로 날아갔어!" 메리가 새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과수원으로 날아갔어....... 그리고 또 다른 담장을 넘어갔어......, 문이 없는 정원으로 들어갔을 거야!"
"울새는 그곳에 산다오." 벤이 말했다. "녀석은 거기서 알에서 깨어났지. 녀석이 짝짓기를 하려면 그 정원의 늙은 장미 나무들 사이에 사는 울새 아가씨한테 구애를 허지 않겠소."
"장미나무들." 메리가 말했다. "거기 장미나무들이 있어?"
벤 웨더스태프는 다시 삽을 집어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10년 전에는 있었다오." 벤이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 장미나무들을 꼭 보고 싶어." 메리가 말했다. "녹색문은 어디에 있어?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벤이 삽을 땅속 깊이 박아 넣더니, 어느새 메리가 벤을 처음 봤으 때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로 돌아갔다.
"10년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소." 벤이 말했다.
"문이 없다고!" 메리가 소리쳤다. "분명 있을 거야."
"아무도 못 찾을 테지. 우리가 신경 쓸 일두 아니구. 참견쟁이 여자애처럼 볼일두 없으면서 쑤시구 다니지 마시구려. 자, 이제는 할 일을 해야겠소. 다른 데 가서 노시오. 난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오."
그러더니 벤은 땅파기를 멈추고 메리를 쳐다보거나 작별인사도 하지 않은 채, 삽을 어깨에 둘러메고 가버렸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2/31 03:55:44

부잣집에서 태여나두 부모사랑 받지못하구 하인들손에서 오만하게 자란 메리가 불쌍하기도
하네요.

그리고 미슬스웨이트도 여주인이 떠나니 암울하기 그지없고 남편도 무너지고 집안에서 여주
인의 작용이 너무 크다는걸 다시한번 느꼇어요.

고집불통 고약한 메리가 낯선환경에 적응할려면 시간이좀 필요하겟네요.

단밤이 (♡.252.♡.103) - 2023/12/31 06:51:47

네. 이해가 가니 주인공이 밉지 않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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