查拉图斯特拉如是说 3部 해 뜨기 전에

단밤이 | 2023.12.30 08:44:34 댓글: 0 조회: 165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562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 뜨기 전에
오, 내 머리 위의 하늘이여, 그대 순수한 자여! 깊은 자여! 빛의 심연이여! 나는 그대를 바라보며 신성한 욕망에 전율한다.
그대의 높이로 나를 던지는 것, 그것이 나의 깊이다! 그대의 순결함 속에 나를 숨기는 것, 그것이 나의 순진함이다!
신의 아름다움이 신을 가린다면 그대는 그대의 별들을 가린다. 그대는 말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렇게 자신의 지혜를 나에게 알린다.
그대는 오늘 사나운 바다 위로 말없이 나에게 떠올랐고, 그대의 사랑과 겸손은 사나운 내 영혼에 계시의 말을 전한다.
그대는 자신의 아름다움 속에 자신을 숨기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에게 왔다. 그대는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며 말없이 나에게 말한다.
오, 내가 그대 영혼의 온갖 부끄러움을 어찌 짐작하지 못하겠는가! 해 뜨기 전에 그대는 더없이 고독한 나에게 왔다.
우리는 처음부터 벗이다. 우리는 비통도 공포도 세상도 나누어 갖는다. 우리는 태양마저도 나누어 갖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침묵하며, 우리는 우리의 지식에 대하여 미소를 짓는다.
그대는 나의 타오르는 불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던가? 그대는 나의 통찰과 자매인 영혼을 갖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든 걸 함께 배웠다. 우리는 함께 우리를 넘어 우리 자신에게 올라가는 법과 구름 한 점 없이 환하게 미소 짓는 법을 배웠다. 우리의 발밑에 충동과 목적, 죄악이 비처럼 흐를 때, 밝은 눈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아래를 향해 구름 한 점 없이 미소 짓는 법을.
내가 혼자 방랑할 때, 나의 영혼은 밤마다 정처 없이 누구를 갈망했는가? 그리고 내가 산에 올랐을 때, 산에서 그대가 아니라면 누구를 찾았겠는가?
나의 모든 방랑과 산행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서투른 자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나의 모든 의지는 오로지 날아가고자 한다. 그대 안으로 날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떠다니는 구름과 그대를 더럽히는 모든 것을 무엇보다 미워하지 않았던가? 또한 나는 그대를 더럽히는 나의 미움도 미워했다.
떠다니는 구름,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이 도둑고양이를 보면 나는 화가 난다. 고양이들은 우리가 나누어 갖고 있는 것, 저 광대하고 무한한 "그렇다." 와 "아멘." 이라는 말을 그대와 나에게서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처럼 중간에 끼어 있는 자와 섞여 있는 자, 즉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화가 난다. 진심으로 축복하지도 않고 저주하지도 않는 이도저도 아닌 자들을 보면.
나는 그대 빛나는 하늘이 떠다니는 구름으로 인해 더럽혀지는 것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닫힌 하늘 아래 커다란 통 속, 하늘 없는 심연 속에 앉아 있고 싶다!
나는 때때로 톱니 모양으로 생긴 번개의 황금 줄로 구름을 꽁꽁 묶어두고 싶었고, 구름의 속이 비어 있는 배를 천둥처럼 북을 치듯 두둘기고 싶었다!
북을 치는 분노한 고수가 되리라. 그대들이 나에게서 그대의 "그렇다!" 와 "아멘!" 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대 내 머리 위의 하늘이여, 그대 순수한 자여! 그대 빛나는 자여! 그대 빛의 심연이여! 떠다니는 구름이 나에게서 나의 "그렇다!" 와 "아멘!" 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신중하고 의심 많은 고양이의 조용함보다는 오히려 소음, 천둥, 폭풍우의 저주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들 중에서 살금살금 걸어 다니는 자, 이도저도 아닌 자, 의심하고 망설이며 떠다니는 구름, 이 모두를 가장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축복할 줄 모르는 자는 저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밝은 하늘에서 이러한 밝은 가르침이 나에게 내려왔고, 이 별은 어두운 밤에도 나의 하늘에 떠 있다.
그대 순수한 자여! 빛나는 자여! 그대 빛의 심연이여! 그대가 내 주위에 있기만 하면 나는 축복하는 자이고 "그렇다." 라고 말하는 자가 된다! 그때 나는 모든 심연 속으로 나의 축복하는 "그렇다." 라는 말을 지니고 간다.
나는 축복하는 자이자 "그렇다." 라고 말하는 자가 되었다. 나는 언젠가 축복을 내리는 두 손의 자유를 얻으려고 오랫동안 애썼고 애쓰는 자다.
그런데 이것은 만물 위에 그 자신의 하늘로서, 그 자신의 둥근 지붕으로서, 하늘색 종과 영원한 보증으로서 내리는 나의 축복이다. 이렇게 축복하는 자는 행복하다!
만물은 영원의 샘과 선악의 저편에서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악 자체는 어중간한 그림자일 뿐이고, 눅눅한 슬픔이자 떠다니는 구름일 뿐이다.
내가 "만물들 위에는 우연이라는 하늘, 순진함이라는 하늘, 우발성이라는 하늘, 오만이라는 하늘이 있다." 라고 가르칠 때, 이는 참으로 축복이지 모독이 아니다.
'우발적인 것',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고귀함이다. 나는 만물에 이것을 되돌려 주었고, 만물을 목적이라는 노예 상태에서 구해 주었다.
내가 어떠한 '영원한 의지' 도 만물 위에 군림하고, 그것에 깃들기를 원치 않는다고 가르칠 때, 나는 이러한 자유와 천상의 명랑함을 하늘색 종처럼 만물 위에 걸어놓았다.
내가 "모든 것들 가운데 한 가지 불가능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분별력이다!" 라고 가르칠 때, 나는 저 의지 대신에 이 오만과 무지를 내세웠다!
약간의 이성, 별마다 흩어져 있는 지혜의 씨앗, 이러한 신맛나는 반죽이 만물에 섞여 있다. 즉 지혜는 어리석음을 위해 만물에 섞여 있는 것이다!
약간의 지혜는 가능하다. 나는 이러한 행복한 확신을 만물에서 발견했다. 즉 모든 것은 오히려 우연이라는 발로 춤추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오, 내 머리 위의 하늘이여, 그대 순수한 자여! 높은 자여! 나에게는 영원한 이성이라는 거미도 거미줄도 없는 것이 그대의 순수함이다.
그대는 나에게 신성한 우연을 위한 무도장이고, 신성한 주사위와 주사위 놀이43)를 하는 자를 위한 신의 탁자다!
그렇지만 그대는 얼굴을 붉히는가?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했는가? 내가 그대를 축복하려고 한다면서 모독했는가?
아니면 우리 둘이 있는 것이 부끄러워 그대가 얼굴을 붉혔다는 말인가? 이제 낮이 오니까 나더러 가서 침묵하라고 명령하는 건가?
세계는 깊다. 일찍이 낮이 생각한 것보다 깊다. 낮이 된다고 무슨 말이든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낮이 오고 있으므로 우리 이제 헤어지기로 하자!
오, 내 머리 위의 하늘이여, 그대 부끄러워하는 자여!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자여! 오, 해가 뜨기 전의 나의 행복이여! 낮이 오고 있으므로 우리 이제 헤어지기로 하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3) 아이들의 주사위 놀이에서는 같은 행위가 반복되고 생성이 반복되지만, 차이와 다양성을 지니며 새롭게 그것이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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