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 8 泰伯

단밤이 | 2024.01.02 11:59:41 댓글: 0 조회: 236 추천: 0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36349
제8 태백(泰伯) 태백님

선생 “태백님은 실로 지극히 곧은 마음씨를 가진 분이었다. 천하를 세 번이나 사양하였으나 백성들은 칭송할 길조차 없었다.”
子 曰泰伯 1) 其可謂至德 2) 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3)

1) 태백(泰伯): 주태왕(周太王)에게 아들 삼형제가 있는데 태백(太(泰)伯), 우중(虞仲), 계력(季歷)이다.
태왕(太王)이 계력(季歷)의 아들 창(昌)에게 서통(緖統)을 물려주려 하자, 태백(太伯)과 우중(虞仲)은 남방(南方)으로 피하여 오(吳)나라를 세워 그의 선조(先祖)가 되었다.
2) 지덕(至德): 이름조차도 남김이 없으니 지극한 덕(德)이 아닐 수 없다.
3) [평설] 태백은 끝내 천하(天下)를 아우에게 사양하였으나 은미(隱微)한 마음가짐의 행동이라 흔적인
들 볼 수 있을 것인가? 지극한 덕(德)은 자취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선생 “공손하되 예절을 모르면 지치고, 조심하되 예절을 모르면 얼떨떨하고, 용감하되 예절을 모르면 거칠고, 꼿꼿하되 예절을 모르면 퉁명스럽다. 지위 있는 이들이 가까운 친족들께 후정을 베풀면 백성들도 본받아 사람 구실을 하게 되고, 예전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도 본받아 경박한 짓을 않을 것이다.”
子 曰恭而無禮則勞 4) 愼而無禮則葸 5) 勇而無禮則亂 6) 直而無禮則絞 7)
君子篤於親 則民興於仁 故舊 8) 不遺 9) 則民不偸 10)

4) 노(勞): 불안(不安)한 모습.
5) 사(葸): 화평(和平)하지 못한 모습.
6) 난(亂): 문란하다.
7) 교(絞): 졸린 목처럼 다급하다.
8) 고구(故舊): 돌아가신 분이 남기신 신하.
9) 유(遺): 버리다. 잊다.
10) [평설] 공(恭) 신(愼) 용(勇) 직(直) 등의 덕(德)이라 하더라도 예(禮)로써 그의 지나친 점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예(禮)란 인격형성의 윤활유요, 사회질서 유지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예(禮)의 작용(作用)을 강조하고 있다.



증 선생이 병석에 누워서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떠들고 내 발을 보아라. 떠들고 내 손을 보아라. 옛 시에 ‘부들부들 조심조심, 깊은 늪가를 지나듯, 엷은 얼음장을 밟듯’이라 하였는데 이제야 겨우 면한 줄을 알겠다. 얘들아!”
曾子 有疾 召門弟子 曰啓 11) 予足 啓予手 詩云 12)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 13) 夫小子 14)

11) 계(啓): 열다.
12) 시운(詩云): ≷시경(詩經)≸ 「소민(小旻)」편.
13) 오지면(吾知免): 죄인의 형륙(刑戮)을 면하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신체에 손상을 주는 형벌(刑罰)이 있었기 때문이다.
14) [평설] 증자는 본시 효자로서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평생을 두고 상할까 조심하였는데, 손상 없이 죽게 됨을 못내 기뻐하고 있다. 이러한 효심(孝心)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았던 간접적 효(孝)라 함 직한 것이다.



증 선생이 병석에 눕자 맹경자가 문병을 왔다. 증 선생은 말하기를 “개도 죽을 때는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도 죽을 때는 그 말이 옳습니다. 윗사람 노릇하는 데 중요한 일 세 가지가 있습니다. 몸집을 간추릴 때는 무뚝뚝한 데가 없어야 하며, 얼굴빛이 발라야 믿음직스 러울 것이요, 말솜씨는 지꺼분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삿상 차리는 것쯤이야 맡아보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曾子 有疾 孟敬子 15) 問 16) 之 曾子 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 17) 慢 18) 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 19) 氣 20) 斯遠鄙 21) 倍 22) 矣 籩豆 23) 之事 則有司 24) 存 25)

15) 맹경자(孟敬子): 중손씨(仲孫氏)의 후예. 노(魯)나라 대부. 이름은 첩(捷), 자는 의(儀), 시호는 경자 (敬子)라 한다. 맹무백(孟武伯)의 아들.
16) 문(問): 문병(問病).
17) 포(暴): 급하게 서둔다.
18) 만(慢): 게으르다.
19) 사(辭): 말 20) 기(氣): 말소리의 숨결.
21) 비(鄙): 천속(賤俗). 누추(陋醜) 22) 배(倍): 배(偝). 패(悖).
23) 변두(籩豆): 제기(祭器).
24) 유사(有司): 담당자.
25) [평설] 증자(曾子)가 죽음에 임한 태도는 극히 담담하다. 그의 유언(遺言)은 슬픔도 아니요, 당부도 아니다. 오로지 격언(格言)을 남김으로써 군자(君子)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증 선생 “재능이 있으면서도 무능한 이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별로 아는 것 없는 이에게 묻고, 있어도 없는 듯, 알이 찼어도 텅 빈 듯, 덤벼도 엉클어지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전에 내 친구 중에 있었지.”
曾子 曰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26) 昔者吾 友 27) 嘗從事於斯矣 28)

증 선생 “어린 임금을 맡길 만도 하고 한 나라의 정치를 위임함 직도 하며, 큰일을 당하더라도 까딱하지 않는다면, 쓸모 있는 인간 일까? 쓸모 있는 인간이지!”
曾子 曰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 29) 之命 臨大節 30) 而不可奪也 君子 人與 君子人也 31)

26) 교(校): 갚는다.
27) 오우(吾友): 안연(顔淵)을 가리킨 듯.
28) [평설] 여기서 지기지우(知己之友)라는 참뜻이 그대로 나타난 듯하다. 증자(曾子)가 안연(顔淵)의 사람됨을 말한 것이지만 그것은 또 군자(君子)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29) 백리(百里): 제후의 나라.
30) 대절(大節): 나라에 험난한 일이 생긴 시절. 마치 대의 마디처럼 한 시점(時點)이 그어진다.
31) [평설] 세 가지 임무가 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어린 임금을 맡아서 국정을 요리하며 제후국과 같은 큰 나라의 국정을 처리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더욱이 국난(國難) 시절에도 신념(信念)을 굽히지 않는 인물(人物)이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증자(曾子)가 목표로 한 군자상 (君子像)인지도 모른다.



증 선생 “선비는 굳센 대목이 있어야 한다.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지. 사람구실을 제 책임으로 여겨야 하니 무겁지 않을까! 죽어야만 끝이 나니 멀지 않은가!”
曾子 曰士 32) 不可以不弘 33) 毅 34)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35)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36)

32) 사(士): 군자(君子)의 도(道)를 업(業)으로 삼는 자.
33) 홍(弘): 포용력이 크다.
34) 의(毅): 떳떳한 힘.
35) 임(任): 짐.
36) [평설] 사(士)는 사군자(士君子)란 말이 있듯이 군자(君子)의 다른 칭호다. 곧 인(仁)을 그의 기본임 무로 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실로 한 인간(人間)이란 사람노릇-인(仁)-하는 책임보다도 더 무거운 임무는 없을 것이오, 그것도 죽음과 더불어 끝난다는 점에서 더욱 절실(切實)하다. 증자(曾子) 는 언제나 공자학의 핵심(核心)을 찌르고 있다.


선생 “서로 정서를 일깨우고, 예로 행동을 바로잡고, 음악으로 인격을 완성하라.”
子 曰興於詩 37) 立於禮 38) 成於樂 39)

37) 시(詩): 사무사(思無邪)-선심(善心)-의 진정(眞情)을 일깨운다.
38) 예(禮): 형식적(形式的) 구속(拘束)을 가(加)하며 윤리적(倫理的) 행동(行動)을 규제(規制)한다.
39) 락(樂): 정서(情緖)를 화평(和平)하게 만든다.
[평설] 흥어시(興於詩)는 거짓 없는 참된 경지이니 진(眞)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입어예(立於禮)는 윤리적(倫理的) 규범(規範)이니 선(善)이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성어악(成於樂)은 조화(調和)의 극치(極致)이니 미(美)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소위 흥(興), 선(善), 미(美),를 시(詩), 예 (禮), 악(樂)을 통하여 깊이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선생 “백성이란 절로 따르게 할망정 깨우치도록 하기는 힘들다.”
子 曰民 40) 可使由 41) 之 不可使知 42) 之 43)

40) 민(民): 농(農) 공(工) 상인(商人)들.
41) 유(由): 선왕의 도를 따르게 한다.
42) 지(知): 선왕의 도를 알게 한다.
43) [평설] 흔히 이 장을 우민정책(愚民政策)의 근거로 삼고 있으나 그것은 “불가(不可)”를 “안 된다”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不可)”를 “할 수 없다”로 한다면 그 뜻이 달라질 것이다. 곧 백성 들은 선왕(先王)의 도(道)의 깊은 뜻은 알기가 어려우므로 거저 따르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선생 “뚝뚝한 주제꼴에 가난뱅이가 싫으면 난리를 꾸민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지나치게 미워해도 난리를 꾸민다.”
子 曰好勇疾貧 44) 亂也 人而不仁 疾 45) 之已 46) 甚 亂也 47)

44) 빈(貧): 천(賤)과도 통한다. 관직(官職) 없는 빈천(貧賤).
45) 질(疾): 질(嫉). 미워한다.
46) 이(已): 너무. 지나치게.
47) [평설] 가난 속에서도 자기 본분에 만족해야 하고 남의 잘못도 지나치게 미워하면 반동(反動)-난 (亂)-이 일어날 것이다. 어쨌든 자기 본분에 만족해야 하고 지나치게 남을 나무라는 태도도 삼가야 한다. 책선(責善)도 지나치면 정(情)이 성그러지는 것은 이 까닭인 것이다.



선생 “주공 같은 재주가 있다손 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면 다른 점은 더 보잘 것도 없단 말이야!”
子 曰如有周公 48) 之才之美 使驕 49) 且吝 50) 其餘 不足觀也已 51)

선생 “삼 년 공부에 벼슬 뜻이 없는 사람은 손쉽게 찾아내기 어렵다.”
子 曰三年學 不至於穀 52) 不易得也 53)

48) 주공(周公): 주(周)나라 문왕의 아들. 이름은 단(旦).
49) 교(驕): 잘난 체한다.
50) 린(吝): 남 돕기를 싫어한다.
51) [평설] 한 사람이 교만하면 동료들이 따르지 않고 그 사람이 인색하면 대중이 멀리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주가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됨이 그러하다면 쓸모 없는 위인이 아닐 수 없다.
52) 곡(穀): 녹(祿).
53) [평설] 배움이란 어딘가 쓰이기 위한 것이 아님이 아니나 삼년(三年) 정도에서 곧장 녹(祿)-사관(仕
官) 또는 사회진출(社會進出)-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나친 조급(躁急)이 아닐 수 없다. 꾸준히 학업(學業)에 정진(精進)하면서 호기(好機)를 기다리는 조용한 자세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선생 “굳은 신념으로 학문을 좋아하며, 죽기로써 도를 닦되, 찌우 둥거리는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도 살지 말아야 한다. 정치 질서가 섰을 때는 나서야 하고, 질서가 깨지면 숨어야 하는데, 질서가 섰을 때 굶주리고 천한 것도 수치요, 질서 없을 때 영화를 누림도 부끄러운 일이다.”
子 曰篤 54) 信好學 守死善 55) 道 危邦不入 亂 56) 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 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57)

54) 독(篤): 아주 굳게
55) 선(善): 닦는다.
56) 난(亂): 통치가 안 된다.
57) [평설] 독신(篤信) 선도(善道)는 군자(君子)의 신념(信念)이요, 생활태도다.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 不入 亂邦不居)’는 불의(不義) 부조리(不條理)와 타협(妥協)하지 않으려는 자세(姿勢) 때문인 것이 다. 현은(顯隱)이 자재(自在)한 것은 군자(君子)의 시중(時中)이 아닐 수 없으며, 방국(邦國)의 유도무 도(有道無道) 간에 부귀(富貴) 빈천(貧賤)을 가릴 줄 모른다면 슬기롭다[知(지)] 할 수 없을 것이다.
[평설] 군자(君子)의 도(道)는 어느 일점(一點)에 집착(執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은 결코 좌고우
면(左顧右眄)하는 기회주의(機會主義)는 아니다. 맹자의 말처럼 오직 배의여도(配義與道)할 따름인 것이다.



선생 “제 일도 아닌데 일 참견해서는 안 된다.”
子 曰不在其位 58) 不謀其政 59)

58) 위(位): 벼슬자리. 기위(其位)는 자기가 앉아 있는 그 벼슬자리.
59) [평설] 대신의 지위에 있으면 대신다운 정책을 논하고 도지사의 지위에 있으면 도지사다운 정책을 논하되 아무런 지위도 없으면 정책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식 차별을 통한 언로(言路)만을 허용하는 공자의 입장은 “자기의 처지” 밖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신중성 때문이리라.
[평설] 천자(天子)가 아니면 예악(禮樂)을 만들 수 없다(≷중용(中庸)≸)는 사상이 형성되었으니 마치 의정단상(議政壇上)에서 비로소 국정(國政)이 논의(論議)되어야 한다는 사상과도 일맥상통(一脈相 通)하는 것이 아닐까?


선생 “악사장 지가 읊던 첫 곡 ‘증경이’의 끝장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구나!”
子 曰師摯 60) 之始 61) 關雎之亂 62) 洋洋乎盈耳哉 63)

60) 지(摯): 노(魯)나라 악사장(樂師長).
61) 시(始): 처음 시작하다.
62) 란(亂): 끝 장.
63) [평설] 공자의 음악감상의 술회로서 어쩌면 ≷시경(詩經)≸을 편술한 후 이를 악곡(樂曲)에 올려 늘감상했던 것이나 아닌가 여겨진다. 공자의 예(禮)와 악(樂)에 대한 깊은 이해와 거기에 심취(心醉)한 정도를 짐작하기에 넉넉하다.


선생 “납신거리되 솔직하지 못하고, 무식하되 착실하지 못하고, 멍하면서 미덥지 못한 사람은 난들 어찌할 수 없거든.”
子 曰狂 64) 而不直 侗 65) 而不愿 66) 悾悾 67) 而不信 吾不知之矣 68)

64) 광(狂): 함부로 한다.
65) 동(侗): 무지한 모습.
66) 원(愿): 근엄하다.
67) 공공(悾悾): 무능한 모습.
68) [평설] 어느 한 군데도 쓸모 없는 인간은 아무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됨이란 모든 것이 제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선생 “공부란 아직도 먼 양 하되 놓칠까 봐 걱정도 되거든.”
子 曰學如不及 猶恐失之 69)

선생 “순⋅우는 덩실하게 천하를 차지했으나 아랑곳없는 양하셨다.”
子 曰巍巍 70) 乎 舜禹 71) 之有天下也 而不與 72) 焉 73)

69) [평설] 학(學)이란 본시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내 것으로 만들기란 그리 손쉬운 일이 아니 다. 해 떨어지기 전에 주막에 도착해야 할 길손이 해 전에 도착하지 못할까 걱정하듯 해야 하며, 눈앞에 있는 보화덩이를 행여나 잃게 될까 걱정하듯 해야 한다.
70) 외외(巍巍): 높고도 큰 것.
71) 우(禹): 夏나라 시조. 순 임금의 뒤를 이었다. 이름은 문명(文命). 제전욱(帝顓頊)의 손자요, 곤(鯤)
의 아들이다.
72) 여(與): 간여(干與)한다.
73) [평설] 천하를 차지하고도 내사 아랑곳없다는 태도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릇이다. 남은 그를 천자로 우러러보지만 나야 천하가 어찌 내 것이냐는 듯한 담담(淡淡)한 태도 속에 순(舜) 우(禹)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선생 “위대하지! 요의 임금 노릇은! 덩실한 양은 하늘만이 그처럼 크시므로 요는 오직 그를 본받았을 따름이요, 넓고도 아득한 모습에 백성들은 이름 붙일 길조차 몰랐다. 덩실하지! 그가 마련한 일터는!
뚜렷하지! 그가 마련한 문화는!”
子 曰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 74) 之 蕩蕩乎 民無能
名 75) 焉 巍巍乎 其有成功也 煥乎其有文章 76)

74) 칙(則): 본받다.
75) 명(名): 이름지어 말하다.
76) 문장(文章): 예악(禮樂). 전장법도(典章法度).
[평설] 고대(古代) 상징적(象徵的) 성왕(聖王)으로서의 요(堯)는 그의 덕(德)은 이미 하늘에 견주어 완전무결(完全無缺)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위대성은 말로는 이루 다 형언(形言)할 수 없지만 그 의 행적(行蹟) 속에서 찬연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행적(行蹟)에 역점(力點)을 둔 점을 간과해서는안 될 것이다. 맹자의 인용문(引用文)(「등문공(勝文公) 상(上)」)에서는 순(舜)으로 되어 있다.



순에게는 신하 다섯 사람이 있어 천하를 다스렸다. 무왕은 말하기를 “내게는 솜씨 있는 신하 열 사람이 있었다.” 선생 “인재를 얻기 어렵다더니 그렇지 않은가요? 순 시절보다 이때가 많기는 하지만 부인이 끼었으니 아홉 사람뿐이다.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두 간을 차지했건만 은나라를 섬겼으니, 주나라의 바른 모습은 지극하다고 할수밖에!”
舜 有臣五人 77) 而天下治 武王 78) 曰 予有亂臣十人 79) 孔子曰 才亂 80)
不其然乎 唐虞之際 於斯 81) 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三分天下有其二 以 服事殷 周之德 其可謂至德也已矣 82)

77) 오인(五人): 우후(禹后)⋅직(稷)⋅계(契)⋅고요(皐陶)⋅백익(伯益).
78) 무왕(武王): 주(周)나라 제1대 왕. 이름은 발(發), 문왕(文王)의 아들.
79) 십인(十人): 주공단(周公旦)⋅소공석(召公奭)⋅태공망(太公望)⋅필공(畢公)⋅영공(榮公)⋅굉요(閎夭)⋅
산의생(散宜生)⋅남궁괄(南宮适) 읍강(邑姜)인 읍강(邑姜)은 무왕(武王)의 부인으로서 여자가 낀 셈
이다.
80) 재난(才難): 인재난득(人材難得).
81) 어사(於斯): 무왕(武王)시절.
82) [평설] 당요우순(唐堯虞舜)시절에서 무왕(武王)에 이르기까지의 현신(賢臣)이란 손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처럼 인재(人材)란 얻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주(周)나라가 천하(天下)를 향유(亨有)하 기에 이른 것은 현재(賢才)가 많았기도 하지만 천하(天下)의 삼분(三分)의 이(二)를 차지하고도 은 (殷)나라를 섬긴 그의 지덕(至德) 때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교의 덕화주의(德化主義)의 극치(極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생 “우에게서 나는 흠집을 찾아낼 수가 없다. 자신의 음식은 검소하지만 귀신께의 제사는 지극하고, 자신의 의복은 허술하지만 예복차림은 극진히 하였고, 살림집은 움막이었지만 논밭 두렁 고르기에 힘을 쏟았으니, 우에게서 나는 흠집을 찾아낼 수가 없다.”
子 曰禹 吾無間 83) 然矣 菲 84) 飮食 而致孝乎鬼神 85) 惡衣服 而致美乎
黻 86) 冕 87) 卑宮室 88) 而盡力乎溝洫 89) 禹 吾無間然矣 90)

83) 간(間): 틈. 사이가 벌어지다.
84) 비(菲): 박하다.
85) 귀신(鬼神): 조상의 신(神).
86) 불(黻): 가죽으로 무릎을 가리는 제복(祭服).
87) 면(冕): 예관(禮冠).
88) 궁실(宮室): 집. 궁궐(宮闕)의 궁(宮)이 아니다.
89) 구혁(溝洫): 도랑.
90) [평설] 우(禹)는 순(舜)의 뒤를 이어 사사로운 식생활(食生活)은 검소하지만 그 대신 부모의 제사는 극진히 모시었고 사사로운 의복(衣服)은 보잘것없었지만 예복(禮服)은 미(美)의 극치(極致)에 이르게 하였고, 제 집은 몇 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관개수로(灌漑水路)를 트기 위하여 온 정성(精誠)을 쏟았으니 흠잡을 데가 없는 왕이다.
[평설] 흔히 공자(孔子)는 요(堯) 순(舜)만을 떠받든 양하지만 우왕(禹王)에 대하여도 깊은 찬사(讚
辭)를 아끼지 않았음을 여기서 본다.
[평설] 공자학파(孔子學派)에서는 우왕(禹王)의 검소(儉素)를 취하여 절장비악(節葬非樂)에까지 이르렀지만 공자(孔子)는 그의 사생활(私生活)의 검소(儉素)를 취했을 뿐이요, 예악(禮樂)에 이르러서는 미(美)의 극치(極致)를 또한 우왕(禹王)에게서 본 점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왕(禹 王)의 시중(時中)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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