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10ㅡ주완이의 죽음

뉘썬2뉘썬2 | 2024.01.04 05:43:59 댓글: 7 조회: 362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7024

10



다른사람들이 기억하는건 소리다.그리고 아마 주완이도 그소리를 들엇던 것 같다.그랫을거라고
주연이가 그랫다.결국 그날의 기억은 주연이가 집요하게 재구성해낸것에 살을붙인 여러버전에
불과하다.


집안에 잇엇더라면 듣지못햇을것이다.큰개가 아침부터 문을 긁엇다고햇다.누렁이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큰개만 찾아왓다.주완이는 내가사준 운동화를신고 털이엄청 빠지는 파카를 입은채 집
을나섯다.웬일로 장갑도 끼고잇엇다.가족중에 누가삿을지 모를 길에서파는 얇은 니트장갑이엿
.



아이손만햇다가 손을넣으면 늘어져 손끝이 하얗게 벌어지는 그런장갑.눈이 새로내려서 큰개에
게 장난을칠 마음이엿을 것이다.눈을 몇덩이 맞고 눈밭에 비벼지고나면 큰개는 흰개가 되지않을
까 햇을지도 모른다.큰개는 씻기면 아마도 흰색일거 같다고 자주얘기햇고 실제로 나중에 씻겨보
니 흰색이엿다.


마이클케나의 설경사진들을 생각한다.이상하게 주완이를 생각할때의 풍경은 매일딛는 땅이아니
라 마이클케나의 사진집속 같다.마이클케나가 또 내한한다면 파주에서 작업을 해보라고 말해주
고싶을 정도다.


선과면으로 풍경이잇고 점두개로 하주와 큰개가 잇다.씻기기전인 큰개는 짙은회색점이다.두점
은 별로 움직이지 않다가 그소리가 들리자 둘이함께 조금커졋다 작아진다.먼곳에서부터 실려온
폭발음이엿다.귀가 움찔 움직이는것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둘의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살짝 밀
려낫다가 다시 말려든것에 가깝다.온몸으로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되듯이.


시점은 멀리멀리 잇다.두점이 움직이는걸 볼수잇을만큼 간신히 거리를 유지한다.소리를따라 빠
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직선을 그렷다가 곡선을 그렷다가 하면서 장난을치고 그장난을 무시하기
도 하면서 엎드린 생물과 선 생물이 함께 걸어간다.


주완이와 큰개는 이제 폐축사로 걸어들어간다.흰색과 검은색의 세계는 사라진다.아름다운 원경
의세계,적절한 거리감의 세계에서 둘은쫓겨난다.희미한 악취가 나지않을까 주완이가 조심스레
킁킁거렷지만 눈냄새만 날뿐이엿다.큰개는 더 포착햇을지도 모른다.




여러해동안 눈의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반쯤 무너져버린 폐축사를 둘러본다.언제 폐해진건지도
알수없는곳.주완이는 생각한다.어쩌면 이곳이 할아버지가 돼지를 키우던 곳인지도 모르겟다고.
아버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곤햇다.


내가 파주에서 돼지잡는 몽둥이로 맞고자란 사람이다.거기서 그렇게 맞고자라 여기까지 왓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도 아버지는 흡족한 것 같앗다.동시에 돼지잡는 몽둥이로 널 때리지 않
는것에 만족해라 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햇다.


어쨋건 주완이는 틀렷다.그축사는 젖소들을 키우던 곳이엿다.규모가 그리 크지않아 착각할만
도 햇지만 말이다.점박이 젖소들은 사라진지 오래엿고 어떤무늬도 남아잇지 않앗다.주완이가
폐축사에서 돌아나가려 할때엿다.


큰개가 다시 커졋다 작아졋다.잠시후 주완이도 커졋다 작아졋다.작은개가 축사 끄트머리 가장
낮고 어둡게 무너진 곳에서 그들을 불럿던것이다.


작은개는 보온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않을 것 같은 방수천 뭉치위에 여섯마리의 새끼들과 누워
잇엇다.이미 몇마리는 죽은게 확실햇다.나머지도 희망적인 상태는 아니엿다.


큰개가 흥분해서 짖기시작햇고 주완이도 크지않지만 괴로운 소리를 냇을것이다.주완이마저 비
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몇걸음깊이,텁텁이가 철망에 매달려잇는걸 발견하고서부터엿
.목이매달린채로 흘린피는 굳고 진득해진채로 철망에 엉겨붙어잇엇다.




단순히 죽고 부패한 것 이상으로 텁텁이는 개의형체를 잃고 해체된 모습이엿다.텁텁이는 큰개
보다도 컷는데 납작해져버렷다.차가운 공기중에 냄새가 나지않앗으니 부패마저 거의 끝낫다는
얘기엿다.


주완이가 낸소리는 아무도 듣지못햇다.우리중에는 아무도.한사람만 들엇다.

수호는 사십미터쯤 떨어진 풀숲에 엎드려 사격연습을 하고잇엇다.막한발을 가까이서 쏴보곤 좀
더멀리온 참이엿다.그총을 발견한후로 늘 쏴보고싶엇다.탈영병을 찾으러 다니다가 제설함에서
발견햇다.아직 눈이오기전이라 아무도 열어보지 않앗던 제설함에 자살한 탈영병이 두고간 것이
엿다.




수호는 총과 제설삽을 훔쳣다.오래기다렷다.아무도 총을 찾지않게 된만큼오래.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보는 데에도 시간이 걸렷다.가스조절기며 장전손잡이며 모형과는 달랏다.반동을 예상햇는
데도 어깨가 빠질뻔햇다.하루에 두발씩만 쏘기로 마음먹은게 얼마전이엿다.


총을 쏜다해도 문제가 되지않을줄 알앗다.그비슷한 소리는 얼마든지 나니까.온갖기계에서 무언
가 수월하지 않을때면 그런터지는 소리가낫다.농기계에서 공장에서 타이어에서 보일러에서 항
.그게 아니라도 가깝고먼 사격장들에서 그런소리가 실려올때가 잇엇다.이동네 사람들은 눈하
나 깜짝하지 않을줄 알앗다.




죽은개의 머리를 맞히고싶엇다.목졸라 죽인개의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고싶엇다.이럴줄 알앗으
면 살려둘걸 그랫다.그게 나앗을텐데.사십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맞힐수 잇을지가 궁금햇다.
까이에서 쐇을땐 몸통에 맞앗는데 거의다 터져버리고 말앗다.한번마저쏘곤 표적을 바꿔야겟다
고 생각햇다.새끼개들이 시시한 표적일지 아닐지 고민할 때 웬남자가 갑자기 나타낫다.


들켯다는 두려움보다는 더나은 표적이 나타난것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으로 총구가 미끄러졋을
것이다.우리는 수호가 아이처럼 당황하는 모습을 상상할수 없엇다.수호는 무언가 우리는 알수
없다는것 알기싫은것에 잠겨잇어서 쳐다보기 불편한 얼굴이엿다.이를 테면 포르말린에 잠겨잇
는 태여나지 못한동물을 볼때의 얼른 고개를 돌리고싶은 꺼림칙함이 잇엇다.


그소리가 모두가 들엇다고 장담하는 소리가 울렷고 수호는 머리를 맞히지 못햇다.

하주는 목과어깨 사이를 맞고쓰러졋다.큰개는 도망쳣다.수호가 아이로 돌아왓다.

수호가 아이로 돌아온 것을 어떻게 알앗느냐면 침착하게 제설함에서 훔친삽으로 폐축사 바닥에
주완이를 묻지않앗기 때문이다.그랫으면 주완이는 오래도록 실종상태에 잇엇을것이다.


대신 하루종일 쏘다니다가 더 걸을수도 더 흥분할수도 없는 상태가되여 수미에게 말햇다.뭐라고
말햇는지 기억하지못할 정도로 울면서 수미는 다시 삼촌에게 말햇다.늘 사람을 때리던 그삼촌에
게 말이다.어쨌든 삼촌은 어른이엿고 어쩌면 그런문제엔 딱인 어른이엿는지도 모른다.




삼촌은 수호가 숨겨놧던 케이투 소총과 탄몇개가 빈 스무발들이 스타나그 탄창을 보고 폭발햇다.
케이투가 1980년대 중반에 보급된 총이므로 전방에서 복무한 삼촌은 그총을썻던 초기세대에 속
햇다.오랜만에 잡아보는 낯설고 검은 무늬가 삼촌의 폭력성을 한층 자극햇는지도 모른다.


폐축사는 안된다.거기 집들이 들어선다고 햇다.”

수호를 죽기직전까지 팬다음에 삼촌이 말햇다.

한밤중에 수미와 삼촌은 방수천에싼 주완이와 개들을 끌고 산으로 들어갓다.도처에 산이 얼마
나 많은가.그속에 얼마나많은 사람들이 묻혀잇을까.그러나 주완이는 묻히지 않앗다.


창용오빠가 수미네가 낙점한산에 먼저 들어가잇엇다.오빠도 아주 바람직한 이유로 산에 잇엇던
것은 아니다.밤에 등산이아닌 목적으로 산에들어가는 사람들이 주로 그렇듯이 오빠만의 이유가
잇엇다.오빠는 가끔 나무를 몰래 훔치곤햇다.조각에 쓸 자잘한 목재엿다.죽은나무도 조금 산나무
도 조금해서 묶어내려올 참이엿다.


그러다가 수미가 우는소리를 들엇다.엉망으로 울고잇엇을 것이다.나무그늘 아래 멈춰 수미네 외
삼촌을 보앗다.동네 다른청년들처럼 창용오빠도 수미네 삼촌을 매우싫어햇다.그냥 가야할지 고
민햇을것이다.얽혀서 좋을사람이 아니엿다.여자애를 때릴 것 같으면 그때나서자.때리지 않으면
그냥내려가자.창용오빠는 나무처럼 나무사이에 서잇엇다.


우려햇던 손찌검은 없엇다.보지 않앗을 때 이미 맞은건지 여자애는 울면서 손전등을 비추고잇엇
고 여자애의 삼촌은 평소 성질이면 날뛸만도한데 나지막하게 욕만 계속햇다.언땅을 파려면 욕이
나올수밖에 없엇을것이다.삽날이 나가지않는게 다행인 겨울이엿으니까.뭘묻으러 왓나 창용오빠
는 몇분만 더보고 가기로햇다.닭들인가?죽은닭들을 이런데다 버리나?


작은동물들이 몇마리 구덩이로 떨어지는걸 보고 돌아서려 햇을때엿다.창용오빠는 운동화를 보앗
.


본인이 고른 운동화엿다.나와함께.크림색 운동화가 방수천 바깥으로 나왓던것이다.

수미네 삼촌은 제설함에서 수호가 훔친 삽을 들고잇엇다.그일이 끝나면 씻고또 씻어서 돌려놓을
참이엿다.수미네 삼촌과 삽이라니 좋지않은 조합이엿다.


하지만 창용오빠가 들고잇엇던건 도끼엿다.평소라면 예술적인 조합이엿겟지만 이때는 아니엿다.
삽과 도끼라면 도끼가 이긴다.늙은 망나니와 젊은 조각가라면 조각가가 이긴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거기없엇던게 나앗을지도 모르겟어.”

이삿짐을 싸다가 창용오빠가 말햇다.인영언니가 목장갑을 낀 손으로 남편의등을 어루만지고 다
시 짐을싸기 시작햇다.아니예요 아니예요 하고 내가 대답햇던 것 같은데 속으로 햇는지 밖으로
햇는지 모르겟다.


그일이 잇고 반년이 지나지않아 창용오빠네는 강원도로 이사를갓다.동료작가들이 다같이 강원
도로 옮기던 참이기도 햇지만 오빠도 끝내 그날밤을 이겨내지 못한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용오빠의 신고로 수미네 외삼촌은 징역을 살아야햇고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진범으로 끝까지
의심되엿지만 결국 모든 것이 밝혀졋다.수미와 수호는 각기다른 감호시설에 갓다.남매가 떠나
고 축처진 할머니가 업자에게 닭들을 헐값으로 판다음에 조용히 동네를 등졋다.


14세미만은 중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분의 대상이 아니다.살인을해도 집단강간을 해도 처벌받
지 않으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사면과 복권으로 기록이 사라진다.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는 아이들
은 보통 그자신이 끔찍한 세계에 갇혀잇다는걸 아무도 그아이들을 거기서 구해주지도 심지어 똑
바로 쳐다보지도 않앗으리라는걸 알지만 현실에서 어떤지독한 사건이 실제로는 끝나지 않앗는
데 법제적인 차원에서는 끝나버리면 기이한 불일치감이 남고만다.




분노나 억울함 같은게 아니라 불일치감이 잘 낫지않는 습진처럼 남앗다.수호를 떠올릴 때마다
그아이가 커서 만원전철을 타고잇는 모습을 지울수 없엇다.수많은 사람과 몸이닿은채로 수호가
수호특유의 멀고잠긴 표정으로 서잇는걸.


수호가 어떻게 살고잇는지 궁금하지않다.만약에 내가 수호에게 다른누군가가 수호를 어떻게든
미리..그런 부질없는 가정들은 때로 균형감각을 흩트리고 구역감을 동반햇다.수미가 제대로 인
사도 못하고 우리인생 밖으로 걸어나가야 햇던것에 대해서도 생각하는걸 미루엇다.벽제에서 주
완이를 태울 때 내앞에 서잇던 주연이의 뒷모습만이 계속 어른거려서 위태롭게 정적이던 그 단
발머리 뒷모습만이 끈질기게 엉겨서 얼얼햇다.


안벗겻어.”

돌아보지도않고 주연이가 말햇다.

운동화 안벗겻다고.벗기려고 햇는데 내가 안된다고 햇어.”

그때 주연이가 어떤표정으로 그렇게 얘기햇는지 타고 녹앗을 운동화는 어떻게 되엿을지 영원히
알수없을것이다.끝까지 보지않고 나왓으니까.


얼얼하지 않앗으면 좋앗을것이다.그때 그모든 감정들을 제때 소화해냇어야 햇다.그랫으면 나는
망가지지 않앗을것이다.주완이말을 빌리자면 제대로 펑션햇을지도 모른다.적어도 덜 망가졋을
것이다.



0032.MPEG


엄마가 오렌지를 깐다.아이머리만한 커다랗고 껍질이 두꺼운 오렌지인데 그걸마치 배고픈 다람
쥐처럼 양손으로 들고 앞니를 과격하게 껍질에 박아넣는다.그다음에 일어난 껍질밑에 손톱을넣
어 전체적으로 까기시작한다.


나 ㅡㅡ엄마는 오렌지를 왜그렇게 까?

아빠 ㅡ응 나도궁금햇어.

엄마 ㅡ나평생 이렇게 깟는데?

나 ㅡㅡ오렌지 칼이라는것도 잇고 그런걸 쓰지않더라도 보통은 꼭대기를 칼로잘라낸 다음에 손으
로 까잖아.아니면 통째썰어서 껍질부분을 잡고먹든가.

아빠 ㅡ그치 말은못햇지만 좀 이상햇어.

엄마 ㅡ왜?더러워?침 묻힐까봐?

나 ㅡㅡ전혀 그런건 아닌데 그런식으로 계속 까다간 이가 다 상할거같아.

엄마 ㅡ(입에손을 가져다댄다.)상하려나..

아빠 ㅡ도구를 사용해 도구를.사람이잖아.쥐처럼 이빨이 계속 자라는것도 아니고.

엄마 ㅡ나 쥐같나 역시?쥐상이란 말은 자주 들엇는데.

나 ㅡㅡ다람쥐같아.쥐는아니고.

아빠 ㅡ어머니 안드려도 될까?

엄마 ㅡ어머님은 외국과일을 안좋아하셔.주무시게둬.

나 ㅡㅡ(내래이션)엄마가 오렌지를 그런식으로 깐다는걸 최근에 알앗다.평생을 같이살아도 낯선습
관들을 발견할 때 이상한 안도를 느끼는건 어째서일까.


ㅡㅡ



엄마아빠는 미술학원을 끊어줫다.도저히 어째야할지 몰랏을 때 내가한말이 미술학원에 보내달라
는 것이엿으므로 구원처럼 여기고 그대로 들어주엇다.그렇게 마비된 상태가 아니엿다면 그지겨운
입시미술을 참아내지 못햇을것이다.끝나지않는 계단이라든지 열기구라든지 크게확대한 나사같은
걸 끊임없이 긋고잇엇다.그리는게 아니엿다.그냥 긋는거엿다.




한번은 컴퍼스를 침으로 고정하고 연필쪽을 돌리는게 아니라 반대로 연필을 고정하고 침을 돌리
는바람에 손에 원형으로 핏금이 가기도햇다.그렇게 말끔하고 완벽한원의 일부로 상처가 생겻는데
얕은상처라 안도햇는지 더깊이 나길바랏는지 어긋난 기분이 들엇다.




그날 돌아오는길에 외울 단어장에는 ‘numb’이 잇엇다.넘 넘넘 하고 발음해보니 감각이 없다는 뜻
을닮은 어감이엿다.주완이가 좋아햇던 단어일거란 확신도 들엇다.확신이란건 얼마나 쓸데없는지.



친구들에게서 조금 멀리잇을 필요도 잇엇다.주연이를 보면 주완이가 생각낫고 모두모여 잇으면 수
미가 생각낫다.나는 미술학원에 일찍가서 늦게까지 잇엇고 학교에는 일부러 지각햇다.늦은버스를
타면 버스기사님들은 나와함께 파주의 부족한 버스대수를 욕햇다.차도 부족하고 정비상태는 형편
없으며 기사도 모자라다고 햇다.




세시간씩 걸리는 운행을 하루에 네번해도 힘든데 다섯번씩 시킨다고 가끔 자고잇는지 운전하고
잇는지 모르겟다는 고백도햇다.그런고백을 저한테 하셔도 되나요,저그런 버스에 타고잇군요,기겁
할만도 햇지만 그러지 않앗다.무섭지않앗다.무섭지않은 상태는 정말 무서워해야 할 상태다.



미술학원 남자애들 더나아가 강사들 대학동기들 다른과 남자애들 동아리 선후배들 회사원들을 사
귀기 시작햇다.그런일을 겪으면 그러니까 첫사랑이 초등학생한테 살해당해버리면 다시는 연애를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앗다.나는 주완이와 조금이라도 닮은 남자애만 보면 저돌적으로 접근
햇다.




이를 테면 비슷한체형,비슷한 옷,비슷한 머리카락 굵기,ㅂㅣ슷하게 외국에서 살다온경험,비슷한
입술,비슷한손발,비슷한체취,뭐라도 비슷한게 잇다면 사람이란건 크게봐서 얼마나 다 비슷한가.
심지어 나는 주완이처럼 눈밑에 자그만 흉터가잇는 남자애들도 만낫다.




남자애들은 늘 눈밑을 다친다.그런흉터는 널리고 널렷다는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여하튼 망설임
없이 달려갓다.의외로 남자애들은 저돌적인 여자애를 좋아한다.



그중에 기민한 축들은 금방 나한테서 뭔가 죽은것의 냄새를 맡앗다.무슨일이 잇엇느냐고 물어본
사람도 잇엇고 알면서도 모르는척한 사람도 잇엇다.모르는척하는 표정을 고마워햇다.죽은것의
냄새가 나는것치고 나는 좋은 여자친구엿고 남자애들도 결혼할게 아니라면 약간 미친여자애가
연애하기 더재밋다는걸 잘알고 잇엇다.




안기고 안기고 안겻다.충돌하듯이 안겻다.속해잇는 모든집단의 추문이 되엿지만 어떤충격파도
안쪽까지 닿지않앗다.납옷을입고 걸어다니는 것 같앗다.그렇게 마취된 상태로 이년을 보냇다.
그리고 감각이 돌아올때는 저리기 마련이다.

ㅇㅓ느날 나는 주연이에게 전화를걸어 물엇다.

앤트워프는 어떻대?”

무슨 앤트워프?”

주완이 앤트워프에 잇는거아니야?”

“..?”

그주연이의 ?”가 너무나 억누른 ?”라서 나는나한테 이상이 생겻음을 바로알앗다.정말로 이
상햇던점은 내가 지도에서 앤트워프를 짚어낼수 잇긴커녕 그게 어느나라에 잇는 도시인지도 어
떤풍경을 한 도시인지도 몰랏다는것이다.

대체 어디서 앤트워프를 들엇을까.어디서부터 엉클어진걸까.



0033.MPEG


엘 그레코의 그림,’복음서 저자 성 요한’.슬라이드를 벽에 비추고잇다.

요한은 놀랍게도 주완이를 닮앗다.요한이 든잔에는 빛깔이 묘한 새끼용 같은게 들어잇다.

나 ㅡㅡ(내래이션)연기로 피여오르는 용이 독배를 상징한다는건 나중에 알앗다.주완이를 닮앗다.
어느도시의 어느 미술관에 가든 주완이를 미친것같이 닮은 초상화가 잇다.그런얼굴들이 어
느나라에나 어느시대에나 잇엇던 것이 분명하다.나는 한동안 주완이가 독살당햇다고도 생
각햇다.


ㅡㅡ



우리는 다만 멀어졋다.


주완이는 앤트워프에 잇기도햇고 시카고에 잇기도햇고 멜버른에 잇기도햇고 싱가포르에 잇기
도햇고 그것도 아니면 서울에 잇엇다.어찌되엿든 우리는 멀어졋다.이어져 잇다는 기분은 예전
에 사라졋고 서로가 서로를 부끄러워하고 불편해하는 사이가 되여버렷다.흑역사라고 말하는 십
대때의 착각.실수.부주의.


일년에 한두번 마주쳣다.아예 마주치지 않는해도 잇엇다.나보다 훨씬 근사하고 품위잇는 여자
를 만날때도 잇엇고 때론 실망스러운 상대를 만날때도 잇엇다.관망하거나 기분나빠햇다.


주완이의 얼굴은 변햇다.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투명하던 부분은 사라지고 칙칙해졋다.노화가
시작되엿다.마르고 뼈대가 크지않은 사람이 늙을대 주로 그러듯이 점점 줄어들고 파삭해졋다.
그와중에 배는나왓다.좋은슈트를 입엇으며 파주의 맨땅엔 부적절하기 그지없는 가죽창로퍼를
신고 세단을 몰앗다.도무지 회색티셔츠라곤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여버렷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직업들을 가졋다.직함을 듣고도 대체 뭘하는지 알수없는 직업들이엿
.동시에 혹은 연속적으로 결혼을하고 이혼을하고 재혼을햇다.딸을 데리고 다니기도햇고 아
들을 데리고 다니기도햇고 개를 데리고 다니기도햇다.여전히 개는좋아햇다.하지만 그개조차
어째선지 마뜩잖앗다.무슨무슨 먼나라의 왕족이 키우던 순혈중의 순혈을 유지하느라 기형이
된 불행한 개들이엿다.개의종은 계속 바뀌엿다.


서로를 무시햇고 서로의 명함을 찢으며 살앗다.멀어졋다.단지 그뿐이다.부식토 같은 냄새와
질감을띠며 자연스럽게 변질되엿다.


아냐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앗어.그런나이까지 가지못햇어.오빠는 죽엇어.”

한번만더 말해줘.”

오빠는 죽엇어.”

죽엇구나.알고잇어.죽은거 알고잇는데.”

“..대머리가 되엿을거야.만약 살아잇엇더라면.양쪽 할아버지들 다 대머리엿으니까.안어울렷
을까.”

똑똑한 프랑스 남자처럼 보엿을지도 몰라.”

그랫을까.”

잘생긴 대머리가 되지못하고 죽어버렷구나.”


습지에 빠졋다.?낚시를 하려고햇나?습지에는 어째선지 항상 축구공이나 농구공 같은 것이 하
나씩 떠다녓다.물이 천천히 흘러 일년넘게 비슷한 자리에 떠잇는 공도잇엇다.눈에 거슬려서 바
람빠진 공을 건지려고 햇는지도 모른다.그런공들은 외로워보이고 불쌍해보이니까.얕은곳은 낚
시꾼들도 종종찾지만 의외로 깊은곳이많다.어둡고 발목을 잡는것들이 잔뜩도사린 물이다.주완
이는 빠졋고 죽엇고 건져냇더니 물이끼가..


차에치엿다.건설장비를 실은 커다란 트럭에 신호등이 없는길에서 파주는 신호등잇는 길이 더
드물엇으므로 둔해빠진 녀석이 치여버렷다.노인들이 종종 치이곤햇다.밭과밭사이를 빨리 건너
려다가 하루에 네다섯번씩 먼길을 오가는 혹사당하는 운전사가 미처못본 사이에 그처럼 치여
운동화가 멀리날아갓다.


차에타고 잇다가 죽기도햇다.주완이의 부모님이 귀국해서 넷이 차를타고 가다가 추돌사고가
나서 주완이만 죽어버렷다.다른가족들은 가볍게만 다쳣는데 혼자 머리를 부딪혀서 눈에보이
는 상처도없이 죽어버렷다.


피를 토하기도햇다.바닥이 찬 그집에서 엎드린채 경련을 일으켯다.알수없는 누군가가 주사기
로 우유팩에 무언가 더럽고 나쁜 것을 넣엇다.주완이를 노린것인지 아무나 먹고 죽어버렷으면
햇던 것인지도 분명치 않앗다.우유팩의 입구를 옆으로 한방울도 흐르지않게 삼각형이라 해야
할지 오각형이라 해야할지 뾰족하게 뜯던 주완이가 그렇게 죽엇다.


군대에서 의문사를 당하기도햇고 자살을 하기도햇고 오인사격으로 죽기도햇다.군인이된 주완
이를 떠올리면 가능한 죽음의 수도 급격하게 증식햇다.모든죽음이 동시에 진행되엿다.그중에
어떤 것이 진짜 일어난 일인가 가려내려다가 그중에 어떤것도 일어나지 않앗다는 것을 깨달앗
지만 그과정은 반복되엿다.


동맥류가 터졋다.손쓸수없이 부풀어잇던 혈관이 터졋다.림프종에 걸렷다.위암처럼 흔한암과
탯줄암처럼 흔하지않은 암에걸렷고 뇌종양도 주먹만하게 자라낫다.길고느리게 진행되는 유
전병들도 잇엇으며 미확인 급성바이러스,독감,비브리오 패혈증,심각한 간질환과 신장질환,
갖종류의 이물질로 인한 질식이 잇엇다.평소에 건강섹션은 잘읽지도 않는데 어째서 이모든것
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혓는지 아직도 알수가없다.


한번은 전철역에서 누군가 철로로 뛰여내려 자살햇을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던 이상한 덧씌우
기가 또 발동되고 말앗다.역사 사람들과 119구조대가 상황을 파악할때엿다.이용객이 적은역
이라 목격자가 없엇다.플랫폼까지 체액이 흥건히 튀여잇엇는데 붉을줄 알앗던 체액은 쥬시쿨
색깔이엿다.복숭아맛 쥬시쿨의 옅은 분홍색 체액위로 뒤늦게 내려온 엄마와 어린아기가 무슨
일이 일어낫는지 모르고 걸어갓다.아기의 신발이 체액을 밟는걸보고 내머리 어딘가에서 퓨즈
가 잘못되엿다.




그래서 나는 주완이가 떨어졋다고 뛰여내린게 아니라 누군가 밀엇다고 햇고 사람들은 그말을
믿엇다.울고잇는 나를 역장이 벤치에 앉혓다.누군가 CCTV를 확인하러 갓고 사람들이 힘을합
쳐 전차를 밀어 들어올렷다.물론 주완이가 아니엿다.사십대 여성이엿고 사람들은 당황햇다.
드백에서 유서가 발견될때까지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엿고 구조대원은 안정될때까지 나를 보
내주지 않앗다.한번더 다른역에서 같은일을 겪엇으나 그때는 괜찮앗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철을타고 죽은사람위로 지나갓다.소생이 완전히 불가능한걸 확인하면 그
렇게 그위로 지나가기도 한다는걸 알앗다.스크린 도어가 생긴건 얼마나 다행인지.한사람의 죽
음이 여럿의 균열을 더크게 벌리던 시절이 끝낫다.몇사람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현장과 뛰여내
린 사람의 시신을 찍고잇던 모습이 기억난다.그건 그것대로 망가진게 아닌가한다.



이상한 얘긴데 나는 오빠가 결국 못살아남앗을거라 생각해.”

?”

“오빠한테는 그런구석이 잇엇어.시편 같은.”

시 얘기하는거야?”

아니 도자기를 구울 때 시험삼아 불을보려고 혹은 유약을 가늠하려고 넣는 파편이야.아니
면 포도밭에 심는 장미같은거.”

장미는뭐지?”

일부러 병충해에 약한종의 장미를 포도밭 앞줄에 심어서 미리 다가올 피해를 파악하는거야

카나리아 비슷한거구나?광산의.”

응 오빠가 이모든걸 견디지 못햇을것같아.아니면 이모든게 오빠를 견디지 못햇거나..결국 죽
엇을거야.겨우 버틸만큼 예민하고 부서져잇엇어.오빠는 이미 그랫다고.”

나는 그래도 주완이가 결국은 그금간 부분을 흔적 정도로만 남게 이어붙여서 뭔가 다른게 되
엿을거라 생각해 죽지않앗더라면.가끔 머릿속에서 주완이랑 영화를 만들어.온갖 고장난 부분
들을 제어하는 법을배워서 그불안을 가지고 아름다운걸 접어내고 병든부분을 오려서 모빌처
럼 바람에 흔들리게해.”

그건멋지네.나는 단정짓는걸로 버텻는데 너는 그반대로 갓구나.그리고 넌꼭 오빠처럼 말해.”

너처럼 말하기도해.나는 너희 두사람처럼 말해.”


때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도햇다.주완이는 결국 그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폐된 상태
로 어른이 되엿고 나는 그런 주완이를 사랑하기도 질려하기도 다시 사랑하기도 하면서 파주와
서울을 오갓다.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것에 우울해하기도 하고 감사해하기도 햇다.서로를 소
모하고 소모하다가 헤여지는 결말과 그래도 헤여지지 않는 결말이 잇엇는데 빈도수는 비슷햇
.


주연이와 엄마가 나의 상태에대해 이야기를 나눈다음 적지않은 시간을 들여서 대학병원에서
검사와 상담을 받게되엿다.숨죽이고 기다렷던 결과는 내게 큰이상이 없다는것이엿는데 허탈
햇다.

그럼 뭐가 잘못된건가요?”


애도를 정상적으로 하지못한 경우같습니다.다큐멘터리에서 엄마 침팬지가 새끼가 죽엇는데
놓지못하고 안고다니는거 본적 잇으신지요?사람도 생각보다 자주 그럽니다.더심각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조금 지켜봅시다.”


건조하디 건조하게 생긴 의사가 지금나를 침팬지에 비유한건가 아니 침팬지 친근하긴한데 기
가막혓지만 어쨋거나 휴학을하고 심신의 안정을 찾아야햇다.아무리 생각해도 주연이가 끊임
없이 나와 이야기해준게 무엇보다 도움이 된것같다.나의망상을 삭제하고 삭제해줫던 주연이
는 정작 그시간을 어떻게 지낫는지 모르겟다.내가너무 잔인햇다.


한번만 더말해줘.여기 쳐다보면서 말해줘.녹화해두게.다시는 말해달라고 안할게.미안해.”

아니 괜찮아.언제든지 말해줄게.오빠는 죽엇어.”

어떻게 죽엇어?내가 기억하는게 맞아?”

맞아.어린애가 탈영병이 제설함에 두고간 총으로쐇어.”

수호가.”

수호가 그랫어.지금은 공사장이 된 축사에서.”

개가 개들이.”

두마리는 죽고 한마리는 어디갓는지 모르고 한마리는 내가키웟어.씻기니까 흰색이엿던
큰개.작년에 늙어서 죽엇어.”

수호친구들을 봣어.”

봣구나.언제?”

지난주에.지지난주에.”

그런데?”

엄청 커버렷더라.걔네는 몰랏을까?”

뭐를?”

수호가 축사에 드나들던걸.남자애들은 자랑하고 싶어하지않나?총이고개고 뭐든 숨겨둔걸.”

이제와서는 알수없지.”

알고싶지않아?”

별로.너는?”

추천 (1) 선물 (0명)
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IP: ♡.169.♡.51
단밤이 (♡.252.♡.103) - 2024/01/04 08:28:41

친밀한 사람의 죽음은 한 인간의 영혼을 깨뜨릴수도 있네요.

뉘썬2뉘썬2 (♡.203.♡.82) - 2024/01/04 20:53:31

제발 이소설은 슬픈장면이 없길 바랫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직접
겪어보진 못햇지만 많이 힘들것 같아요.오늘도 살아잇음에 감사하며.

딘밤씨가 햇던말이 생각나네요.내일로 미루지말고 저기말고 여기에서 지
금당장 시작하라.

단밤이 (♡.252.♡.103) - 2024/01/04 20:57:56

저도 그걸 안 다음에 할말 미루는 습관은 고치려고 노력중이에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1/05 04:12:23

지금 실행하라 이것두 니체사상이지요?

단밤이 (♡.252.♡.103) - 2024/01/05 07:47:40

니체가 쓴 글에 나와요. 니체가 말을 많이 했더라고요.

Figaro (♡.136.♡.201) - 2024/01/08 17:03:22

이 소설은 혹시 자필(?)로 자수성가?ㅋ자기두손으로, 직접 타이핑 하신거예요?
더 없는지?재밌는데 ㅋ

뉘썬2뉘썬2 (♡.169.♡.51) - 2024/01/09 04:34:56

예,내손타이핑입니다.아직 안끝낫어요.끝나면 최종회라 적습니다.
시간짜내서 올릴께요.요즘 제빵하느라 못올렷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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