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난 콜린이야"

단밤이 | 2024.01.12 19:35:41 댓글: 6 조회: 305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9912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난 콜린이야"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갈 때, 메리는 그 그림도 가져가 마사에게 보여주었다.
"아이구!" 마사가 몹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우리 디콘이 이렇게 똑똑한 줄은 몰랐네요. 울새가 제 둥지에 앉아 있는 그림이여요. 눈앞에 진짜 울새가 있는 것 같어요."
바로 그때 메리는 디콘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그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디콘은 자신이 비밀을 꼭 지킬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메리의 정원은 메리의 둥지이고, 메리는 울새와 같았다. 오, 재미있게 생긴 엉뚱한 디콘을 메리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메리는 내일 디콘이 다시 와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서 아침이 오기를 고대하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요크셔에서는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절대 짐작할 수 없다. 특히 봄에는 말이다. 메리는 한밤중에 굵은 빗방울이 방 창문을 사정없이 때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가 굵은 물줄기처럼 쏟아졌고, 바람은 거대한 낡은 저택의 모퉁이마다, 굴뚝마다 '휘몰아쳤다'. 침대에 일어나 앉은 메린느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비가 꼭 옛날의 나처럼 고집불통이네." 메리가 말했다. "내가 비 오는 걸 싫어하니까 이렇게 오는가 봐."
메리는 훌렁 누워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대신 침대에 누워 거세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원망했고, 바람과 그 바람의 '휘몰아침' 을 원망했다. 메리는 다시 잠이 들지 못했다. 구슬픈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메리도 구슬픈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메리가 행복한 기분이었다면, 그 소리는 아마 자장가처럼 들렸을 것이다. 바람이 어찌나 '휘몰아치고' 굵은 빗방울들은 어찌나 유리판을 두드려대던지!
"황무지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계속 배회하며 울부짖는 것 같아." 메리가 말했다.
메리는 한 시간 정도 뒤척이며,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났고, 메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귀를 기울였다. 메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이 소리는 바람이 아니야." 메리가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바람이 아니야. 소리가 달라. 전에도 들은 적 있는, 그 울음소리야."
메리의 침실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저 멀리에서부터 짜증 섞인 울음소리가 복도를 따라 희미하게 흘러들어 왔다. 메리는 몇 분이나 귀를 기울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그 소리가 무엇인지 꼭 찾아내야만 할 것 같았다. 비밀 정원과 땅에 묻힌 열쇠보다 더 희한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항심에 욱해서, 더 대담하게 굴었을지도 모른다. 메리는 침대에서 발을 내리고 바닥에 우뚝 섰다.
"이 소리의 정체를 꼭 알아내고 말겠어." 메리가 말했다. "지금은 모두 자고 있고 메들록 부인이 뭐라 하건 신경 안써. 신경 안쓴다고!"
침대 옆에 양초가 한 자루 있었다. 메리는 그 초를 들고 살며시 방을 나섰다. 복도는 무척 길고 컴컴해 보였지만, 너무 흥분을 해서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벽걸이 양탄자로 가려진 문이 있는 짧은 복도로 가려면, 어느 모퉁이들을 돌아야만 하는지 기억이 날 듯했다. 길을 잃었던 날 메들록 부인이 나왔던, 바로 그 문 말이다. 소리는 분명 그 복도에서 들렸다. 그래서 메리는 흐릿한 양초 불빛에 의지해, 벽을 더듬으며 걸어갔다. 심장 소리가 너무 쿵쾅거려서 소리가 정말 들릴 것만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흐릿한 울음소리가 정말 들릴 것만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흐릿한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으며 메리를 이끌었다. 그 소리는 가끔 멎었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가야 하나? 메리는 잠시 멈춰서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이쪽이야. 그 통로를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돌고, 넓은 계단 두 개를 올라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랬더니, 양탄자 벽걸이 문이 눈앞에 있었다.
메리는 문을 아주 살며시 밀어서 열고는 들어가서 닫았다. 그러고는 복도에 가만히 서 있으니, 우는 소리가 크지는 않아도 꽤 선명하게 들렸다. 그 소리는 메리의 왼쪽 벽 너머에서 들렸고, 조금 더 가니 문이 있었다. 그 문 아래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그 방에서 울고 있었다. 그것도 꽤 어린 '누군가'였다.
이윽고 메리는 문으로 다가가 밀어서 열었다. 다음 순간 그 방에 들어가 있었다!
근사한 고가구들로 꾸민 커다란 방이었다. 벽난로에는 사그라져 가는 불이 약하게 타고 있었고, 조각을 한 기둥 네 개에 양단을 휘장처럼 걸쳐둔 침대의 옆에서는 양초가 밤을 밝혔다. 그리고 그 침대에 남자아이가 누워서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다.
메리는 자신이 정말 그 방에 있는 건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소년은 턱이 뾰족하고 섬세한 이목구비에, 안색은 상앗빛이었다. 작은 얼굴에 비해 두 눈이 너무 커 보였다. 머리는 숱이 많았는데, 덥수룩한 앞머리가 이마를 뒤덮어 안 그래도 깡마른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아이는 몹시 병약한 듯했지만, 아파서라기보다는 지치고 심통이 나서 우는것 같았다.
메리는 양초를 들고 숨을 죽인 채 문가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방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손에 든 양초 불빛이 아이의 관심을 사로잡아, 소년은 베개에 누운 채 머리를 돌려 메리를 바라보았다. 회색 두 눈이 어찌나 큰지, 거대해 보일 정도였다.
"누구야?" 마침내 소년이 반쯤 겁에 질려 소곤거리듯 말했다. "너, 유령이야?"
"아니, 유령 아니야." 메리도 반쯤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대답했다. "너는 유령이니?"
그 소년은 메리를 보고, 보고 또 보았다. 메리는 그 아이의 두 눈이 너무 이상해보였다. 새까만 두 눈은 눈ㄴ 주위에 빽빽하게 난 검은색 속눈썹 때문에 얼굴에 비해 너무 커 보였다.
"아니."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나는 콜린이야."
"콜린이 누군데?" 메리가 당황한 듯 말했다.
"콜린 크레이븐이야. 너는 누구야?"
"나는 메리 레녹스야. 크레이븐 씨는 내 고모부고."
"그분은 내 아버지야." 남자아이가 말했다.
"네 아버지라고!" 메리가 깜짝 놀랐다. "아무도 고모부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이리 와봐!" 남자아이는 여전히 기묘한 두 눈으로, 불안한 기색이 엿보이는 메리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메리가 침대에 다가가자, 아이가 손을 내밀어 메리를 만졌다.
"진짜 사람이네, 그렇지?" 아이가 말했다. "난 이렇게 생생한 꿈을 자주 꿔. 너도 그런 꿈일지도 몰라."
메리는 방에서 나오기 전에 모직 숄을 걸쳤는데, 손가락으로 숄을 쥐었다,
"이걸 문질러봐. 그러면 천이 얼마나 두툼하고 따뜻한지 알게 될 거야." 메리가 말했다. "괜찮으면 널 살짝 꼬집어볼게. 내가 진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게. 나도 잠깐 네가 꿈이라고 생각했어."
"너는 어디에서 왔어?" 콜린이 물었다.
"내 방에서. 바람이 어쩌나 휘몰아치는지 잠을 잘 수 없었어. 그런데 누군가 우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내고 싶어졌지. 너는 왜 울고 있었어?"
"나도 잠이 오지 않아서. 게다가 머리가 아팠어. 네 이름을 다시 말해줘."
"메리 레녹스. 내가 이 저택에 살려고 왔다는 이야기를 아무도 해주지 않았어?"
콜린은 여전히 메리가 두른 숄의 접힌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메리가 진짜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는지 조금씩 메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응." 콜린이 대답했다. "감히 못 했겠지."
"왜?" 메리가 물었다.
"네가 나를 볼까봐 겁을 냈을 테니까.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 이야기를 수군거리게 내버려 두지 않아."
"왜?" 메리는 점점 수수께끼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며 물었다.
"왜냐하면 난 늘 이런 상태니까.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해. 아버지도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셔. 하인들은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돼. 계속 살아 있으면, 나는 등이 굽을 거야. 하지만 난 곧 죽을 테지.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처럼 될 거라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셔."
"오, 여기는 정말 이상한 집이야!" 메리가 말했다. "정말 괴상한 집이라니까! 모든 게 다 비밀 같아. 방들은 잠겨 있고 정원도 잠겨 있어. 그리고 너! 너도 이 방에 갇혀 있는 거야?"
"아니. 늘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 이 방에서 나가는 게 싫어서 그래. 나가면 너무 피곤하거든."
"네 아버지는 너를 만나러 와?" 메리가 큰맘 먹고 물어보았다.
"아따금. 대게 내가 자고 있을 때. 아버지는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으셔."
"왜?" 메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난 기색이 콜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보면 마음이 괴로워지신대. 다들 내가 모르는 줄 알지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들었어. 아버지는 나를 미워하시는 거나 다름이 없대."
"고모부는 정원도 미워하셔. 왜냐하면 고모가 돌아가셨으니까." 메리가 반쯤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무슨 정원?" 콜린이 물었다.
"오! 그, 그거 말이지 고모가 좋아하셨던 정원." 메리가 말을 더듬었다, "너는 항상 여기에 있었어?"
"항상 있는 거나 다름없어. 가끔 바닷가에 있는 집으로 데려가 줘. 하지만 사람들이 자꾸 나를 힐끔거려서, 그곳에서 있는 게 싫어. 등이 곧게 펴지라고 쇠로 된 기구를 댄 적도 있어. 유명한 의사가 나를 진찰하려고 런던에서 왔는데, 그건 멍청한 짓이라고 했어. 의사는 당장 그 기구를 벗기고, 밖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해줘야 한다고 했지. 난 신선한 공기가 싫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때 그랬어." 메리가 말했다. "그런데 왜 자꾸 나를 그렇게 보는 거니?"
"꿈치고 너무 생생해서." 콜린이 칭얼거리듯 대답했다. "가끔 눈을 뜨고 있어도 깨어 있다는 사실을 못 믿겠어."
"우리 둘 다 깨어 있어." 메리가 ㅁㄹ했다. 메리는 천장이 높고, 구석마다 그림자가 져 있고, 벽난로 불빛이 흐릿한 방안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꿈처럼 보이기는 해. 게다가 지금은 한밤중이고, 이 집 사람들은 전부 잠들어 있잖아. 우리를 빼고 전부 다 말이야. 우리는 말똥말똥하게 깨 있어."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면 좋겠어." 콜린이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그때 메리에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너를 보는 게 싫으면." 메리가 말했다. "나도 가버렸으면 하는 거 아냐?"
콜린은 여전히 메리가 두른 숄의 접힌 부분을 쥐고 있었고, 살짝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아니야." 콜린이 말했다. "네가 가버리면 정말 꿈이었다고 여기겠지. 네가 진짜 사람이라면, 저 커다란 발 받침대에 앉아서 이야기를 해봐. 너에 대해서 듣고 싶어."
메리는 가져온 양초를 침대 근처 테이블에 내려놓고, 쿠션을 댄 받침대에 앉았다. 메리도 가고 싶지 않았다. 이 신비로운 숨겨진 방에 남아서, 신비로운 남자아이와 이야기를 나우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어?" 메리가 물었다.
콜린은 메리가 미슬스웨이트 저택에 산 지 얼마나 되었는지, 방은 어느 복도에 있는지,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자신처럼 메리도 황무지를 싫어하는지, 요크셔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서 살았는지 궁금해했다. 메리는 이 질문에 다 대답하고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콜린은 쿠션을 받치고 기대 누워 귀를 기울였다. 콜린은 메리에게 인도에 대한 이야기며, 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온 이야기도 해달라고 했다. 메리는 콜린이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다 아는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릴 때 유모가 콜린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콜린은 늘 장정이 화려한 책을 읽고 거기 실린 삽화를 보며 지냈다.
콜린의 아버지는 아들이 깨어 있을 때 보러 오는 법이 드물었지만, 즐겁게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면 얼마든지 주었다. 하지만 무엇을 가지고 놀아도 재미가 없는 것 같았다. 콜린은 뭐든지 요구할 수 있었고,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내 기분을 맞춰줘야 해." 콜린이 무관심하게 말했다. "화를 내기만 해도 나는 몸이 아프거든. 아무도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살 거라고 믿지 않아."
콜린은 그런 생각이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말했다. 콜린은 메리의 목소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메리가 계속 이야기를 하면, 졸린 듯하지만 흥미로운 태도로 들었다. 한두 번 메리는 콜린이 잠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콜린은 대화를 새로운 방향을 트는 질문을 했다.
"넌 몇 살이야?" 콜린이 물었다.
"열 살이야." 메리는 잠시 조심성을 잊고 대답했다. "너랑 동갑이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콜린이 깜짝 놀란 목소릴로 되물었다.
"너는 그 정원 문을 잠그고 열쇠를 묻어버린 해에 태어났으니까. 그 정원은 10년 째 잠겨 있었어."
콜린은 메리 쪽으로 몸을 돌리고 팔꿈치를 베개에 받쳐 반쯤 일어나 앉았다.
"무슨 정원 문이 잠겼다는 거야? 누가 그랬어? 그 열쇠는 어디에 묻혀 있었어?" 콜린은 갑자기 흥미가 솟구치는 듯 질문을 퍼부었다.
"그건, 그건 고모부가 싫어하는 정원이었어." 메리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고모부가 문을 잠갔어. 아무도, 아무도 열쇠를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거기는 어떤 정원이야?" 콜린이 끈질기게 물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메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조심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콜린은 메리와 똑같았다. 생각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감춰진 정원에 메리가 흠뻑 빠진 것처럼 콜린도 흠뻑 빠져들었다. 콜린은 질문을 하고 또 했다. 그 정원은 어디에 있어? 문을 찾으려고 해본 적은 없어 정원사들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어?
"사람들은 그 정원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해." 메리가 말했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나 봐."
"내가 대답을 하게 할 거야." 콜린이 말했다.
"그럴 수 있어?" 메리는 점점 겁이 나기 시작하면서 불안해졌다. 콜린이 하인들을 대답하게 만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누구나 내 기분을 맞춰줘야 해. 아까 말했잖아." 콜린이 말했다. "내가 살 수 있으면 이 저택은 내 것이 될 거야. 하인들도 다 알아. 그 사람들이 내게 다 말하게 할 거야."
메리는 예전엔 자신이 얼마나 버릇없는 아이인지 모랐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소년이 얼마나 버릇없는 아이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콜린은 온 세상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희한한 아이였다.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넌 네가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해?" 메리는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동하고, 한편으로는 콜린이 정원에 대해 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물었다.
"그럴 거라고 내가 짐작하는 게 아니야." 콜린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무관심한 태도로 대답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늘 사람들이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하는 말을 들어왔어. 처음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 그런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더니, 요즘은 내 귀에 안 들린다고 생각해. 하지만 다 듣고 있어. 내 주치의는 우리 아버지의 사촌이야. 그 사람은 무척 가난한데, 내가 죽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미슬스웨이트를 물려받게 될 거야. 그 사람은 내가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아."
"너는 살고 싶니?" 메리가 물었다.
"아니." 콜린은 지긋지긋하고 피곤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죽고 싶지도 않아. 몸이 아프면 여기 누워서 계속 그런 생각만 해.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울음이 터지지."
"네가 우는 소리를 세 번 들었어." 메리가 말했다. "하지만 누가 우는지 몰랐지. 그런 생각 때문에 울었던 거야?" 메리는 제발 콜린이 정원에 대해 잊어주기를 바랐다.
"그런 셈이지." 콜린이 대답했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그 정원에 대해서 이야기해줘. 넌 그곳이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어." 메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그래." 콜린이 고집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까지는 진심으로 보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 정원을 꼭 보고 싶어. 열쇠를 파내고 싶어. 그 열쇠로 문을 열고 싶어. 사람들에게 나를 휠체어에 앉혀서 그곳으로 옮기라고 할 거야. 그러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사람들이 정원 문을 열게 할 거야."
콜린은 점점 흥분했다. 그러자 기묘한 두 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래졌다.
"하인들은 내 기분을 맞춰줘야 해." 콜린이 말했다. "사람들에게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가라고 할 거야. 너도 가게 해줄게."
메리는 양손을 꼭 쥐었다. 모든 것이 박살이 날 위기에 몰려 있었다. 모든 것이! 디콘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메리는 안전하게 숨겨놓은 둥지의 울새가 된 기분을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러면 안 돼!" 메리가 울부짖었다.
콜린은 메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왜?" 콜린이 소리쳤다. "너도 그곳을 보고 싶다고 했잖아."
"보고 싶어." 메리는 거의 흐느끼듯 대답했다. "하지만 네가 사람들에게 그 문을 열게 하고 너를 그렇게 데려가게 하면, 그곳은 더는 비밀이 아니잖아."
콜린이 좀 더 몸을 앞으로 숙였다.
"비밀이라." 콜린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말해봐."
메리의 입에서 단어들이 마구 쏟아지는 듯했다.
"있잖아, 있잖아." 메리가 숨을 헐떡였다. "우리 말고 아무도 모르면...... 그러니까 담쟁이덩굴 아래 어딘가에 문이 있다면, 그 문이 정말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문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그 문으로 살짝 들어가서 문을 꼭 닫은 후에 그곳을 우리 정원이라고 부른다면 말이지. 그러면 우리가 울새고 그곳이 우리 둥지인 양 노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그 정원에서 거의 매일가타이 놀면서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그곳을 되살아나게 한다면......"
"거기는 죽었어?" 콜린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무도 그곳에 관심이 없다면, 곧 그렇게 될 거야." 메리가 계속 말했다. "알뿌리들은 살아남겠지만, 장미들은......"
콜린은 메리만큼 흥분해서 또 말을 끊었다.
"알뿌리가 뭐야?" 콜린이 허겁지겁 말했다.
"나팔수선화와 백합과 아네모네를 말해. 그 알뿌리들은 지금 봄이 오고 있기 때문에 연두색 싹을 밀어 올리면서 땅속에서 자라고 있어."
"봄이 오고 있어?" 콜린이 물었다. "봄은 어떤 모습이야? 네가 아파봐, 방에서는 봄을 볼 수 없어."
"비가 오는데 햇살이 반짝이고, 햇살이 반짝이는데 비가 와, 땅속에서는 식물들이 열심히 자라서, 새싹을 땅 밖으로 밀어 올리지." 메리가 말했다. "정원이 비밀이고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식물들이 매일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장미들이 살아 있는지 알 수 있겠지. 모르겠어? 오, 그곳이 비밀로 남으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모르겠어?"
콜린은 베개에 툭 드러눕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겐 비밀이 하나도 없었어." 콜린이 말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살지 못한다는 걸 제외하면. 사람들은 내가 그걸 안다는 사실을 몰라. 그러니 비밀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이런 비밀이 더 마음에 들어."
"네가 사람들에게 그 정원으로 데려다달라고 하지 않는다면." 메리는 간절하게 말했다. "어쩌면, 내가 언젠가는 그곳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때는 의사 선생님이 네게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보라고 하실테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아마, 아마, 네 휠체어를 밀어 줄 남자아이를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우리끼리 갈 수 있고 그곳은 언제까지나 비밀 정원으로 남는 거야."
"나도...... 그리고...... 싶어." 콜린은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천천히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비밀 정원에서라면 신선한 공기를 마셔도 좋아."
메리는 이제야 숨이 편하게 쉬어지고 더 안전해진 기분이 들었다. 비밀을 간직한다는 생각에 콜린이 즐거운 듯 보였기 때문이다. 메리는 자꾸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메리가 그랬듯이, 콜린도 마음의 눈으로 정원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콜린도 그 정원이 너무 좋아져서 아무 때 아무나 그 정원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우리가 그 정원에 들어갔을 때 그곳이 어떤 모습일지, 내 '상상'을 들려줄게." 메리가 말했다. "그곳은 너무 오랫동안 잠겨 있었기 때문에, 식물들이 마구 자라 다 엉켜 있을 거야."
콜린은 차분하게 누워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기어가 아래로 축 늘어졌을지 '모르는' 장미며, 그곳이 안전하기 때문에 둥지를 틀었을지도 '모르는' 새들에 대한 메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끝내자 메리는 울새와 벤 웨더스태프 영감에 대해 들려주었다. 특히 울새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가 쉽고 편하게 술술 나온 덕분에, 중간에 말문이 막힐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울새 이야기에 콜린이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미소까지 지었는데, 그 표정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에 메리는 눈이 크고 머리 숱이 많은 콜린이 훨씬 더 매력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새들이 그럴 수도 있는지 몰랐어." 콜린이 말했다. "하지만 너도 방 안에만 있으면 그런 것들을 절대 못 볼거야. 넌 정말 아는 게 많구나. 마치 그 정원에 들어갔다 온 사람같아."
메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콜린도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 같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메리에게 깜짝 놀랄 말을 했다.
"보여줄 게 있어." 콜린이 말했다. "저기 장미색 비단 가리개 보이지? 벽난로 선반 위 벽에 걸린 거?"
메리는 그 말을 듣기 전엔 그런 것이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콜린 말한 것을 보았다. 그림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며 걸려 있는 부드러운 비단 가리개였다.
"응." 메리가 대답했다.
"그 가리개 줄이 달렸어." 콜린이 말했다. "가서 그걸 잡아당겨 봐."
메리는 호기심에 사로잡힌 채 일어서서, 끈을 찾았다. 끈을 잡아당기자 비단 가리개가 고리를 따라 걷혔다. 그리고 그림이 드러났다. 웃고 있는 여자아이를 그린 그림이었다. 그 아이는 푸른 리본으로 머리를 묶었고, 쾌활해 보이고 사랑스러운 두 눈은 푸른 리본으로 머리를 묶었고, 쾌활해 보이고 사랑스러운 두 눈은 눈 주위에 난 새까만 속눈썹 덕분에 실제보다 두 배나 더 커 보였고, 적회색에 불행해 보이는 콜린의 두 눈과 똑같았다.
"우리 어머니야." 콜린이 불평하듯 말했다. "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지는 몰라. 때로는 나를 두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워."
"정말 이상해!" 메리가 말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나는 이렇게 늘 아프지 않았을 거야." 콜린이 투덜거렸다. "어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을 테고. 그리고 아버지도 나를 보는 걸 싫어하지 않으시겠지. 분명 내 척추도 튼튼했을 거야. 가리개가 다시 닫아줘."
메리는 콜린 말대로 한 다음 앉아 있던 발 받침대로 돌아갔다.
"고모는 너보다 훨씬 예뻐." 메리가 말했다. "하지만 눈은 네 눈이랑 똑 닮았어. 적어도 모양과 색깔은 똑같아. 왜 어머니 그림 위로 가리개를 쳐놓은 거야?"
콜린이 불편한 듯 꼼지락거렸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콜린이 말했다. "가끔 날 보는 어머니가 싫을 때가 있어. 나는 이렇게 아프고 비참한데, 어머니는 너무 환하게 웃고 계시잖아. 게다가 저분은 내 어머니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게 싫어."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메리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곳에 온 걸 메들록 부인이 알면 어떻게 하지?" 메리가 물었다.
"메들록 부인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해." 콜린이 말했다. "메들록 부인에게 네가 이곳에 와서 매일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할 거야. 네가 와줘서 기뻐."
"나도 그래." 메리가 말했다. "될 수 있는 한 자주 올게. 하지만." 메리가 잠시 망설였다. "난 매일 그 정원 문을 찾아봐야 해." 콜린은 선뜻 대답하지 않고 누워서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윽고 다시 말했다.
"내 생각엔 너도 비밀로 해야겠어." 콜린이 말했다. "사람들이 알아내기 전에 먼저 말하지 않을 거야. 간호사를 밖으로 보낼 수 있어.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되니까. 너, 마사 아니?"
"음, 아주 잘 알지." 메리가 말했다. "내 시중을 들어주거든."
바깥 복도 쪽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다른 방에서 지금 자고 있는 사람이 바로 마사야. 간호사는 언니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어제 외출을 했어. 간호사는 외출을 하고 싶을 때면 항상 마사에게 나를 보살피게 해. 네가 언제 올 수 있는지 마사에게 알려주라고 할게."
메리는 울음소리에 대해 물었을 때, 마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은 이유가 이제야 이해되었다.
"마사는 너에 대해 전부터 알고 있었지?" 메리가 물었다.
"그래, 종종 나를 보살펴줘. 간호사는 나를 두고 어디론가 가버리곤 해. 그럴 때면 마사가 와."
"여기 너무 오래 있었나 봐." 메리가 말했다. "이제 갈까? 네 눈이 졸려 보여."
"네가 가기 전에 잠이 들었으면 좋겠어." 콜린이 부끄러운 듯 말했다.
"눈을 감아." 메리가 발 받침대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러면 인도에서 내 유모가 해주던 대로 해줄게. 네 손을 토닥거리고, 어루만지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러줄거야."
"그러면 좋을 것 같아." 콜린이 졸린 듯 말했다.
어쩐지 메리는 콜린이 가여웠고, 뜬눈으로 밤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로 몸을 숙이고, 콜린의 손을 토닥이고, 어루만지며, 힌두스탄 말로 짧은 노래를 아주 작게 부르기 시작했다.
"참 좋다." 콜린의 목소리에 점점 더 졸음이 묻어났다. 메리는 계속 자장가를 부르며 손을 어루만졌다. 그러다 콜린을 보니, 새까만 속눈썹이 볼에 딱 붙어 있었다. 눈을 꼭 감은 채 깊이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리는 살며시 일어나서, 가져온 양초를 들고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갔다.
​​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1/13 09:48:25

두아이가 마주보며 서로 유령이냐고 물어보고 손으로 만져보구 사람임을 확인하는게
넘나 유치해요.비밀은 항상 고소한 법이죠.삶의의욕을 잃엇던 콜린도 비밀정원얘기를
하니 흥분하네요.

단밤이 (♡.252.♡.103) - 2024/01/13 09:55:24

비밀이란 단어가 주는 자극이 좀 있는 것같아요.
유치한게 있는데 애들이 10살이니 그런가싶고 그래요 ㅋㅋ

뉘썬2뉘썬2 (♡.169.♡.51) - 2024/01/13 10:55:30

콜린의 상태를보니 집에 여주인이 없으니 남편도 자식도 엉망진창으로 무너진다는걸
느꼇어요.갑자기 그노래 생각나요.

녀성은 꽃이라네 생활에 꽃이라네 한가정 알뜰살뜰 돌보는 꽃이라네.

단밤이 (♡.252.♡.103) - 2024/01/13 10:56:29

여성은 꽃이 맞아요. 아름다운 꽃 여신님은 아이리스.

뉘썬2뉘썬2 (♡.169.♡.51) - 2024/01/13 11:02:43

단밤이는 무슨꽃 하고싶어요? 좋아하는꽃은?
프리지아?

단밤이 (♡.252.♡.103) - 2024/01/13 11:05:59

원래는 튤립 좋아했는데 프리지아로 바꾸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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