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12ㅡ안노와 윌로

뉘썬2뉘썬2 | 2024.01.13 07:03:00 댓글: 5 조회: 345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0022

12


그래서 요즘 누굴만나?누구엿지,전에 만나던사람?”

송이의 옛남자친구들은 연대표로 정리해야 할만큼 복잡하지만 필립은 삼년째 잘 붙어잇엇다.
나는 송이보다는 덜해도 나대로 좀처럼 오래가지 않앗다.송이는 전화로만 듣던 사람들 이야기
를 늘 헷갈려햇다.


지난번에 물어봣을 때랑같아.로케담당이엿다가 요즘은 다트바해.”

아 필립 다트 좋아하는데.주연이는 누구안만나?”

안만나.우리나라엔 백석이후로 그만큼 잘생긴 남자가 태여나지 않앗어.”

나타샤냐.”

웃기시네.언제는 옛날사람들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받는다 그래놓고는.”

무슨말인지 못알아듣는 필립을위해 송이가 간단한 설명을햇다.옛날시인이야.잘생겻엇나?
생겻엇지.몇년생이지?찬겸이가 얼른 찾아보고 1912년이라고 말해줫다.그러자 필립이 주연이
를 놀리기 시작햇다.나타샤가 아니라 버지니아라 이름하라고 짓궂게 굴엇다.그렇게 남자를
안만나면 버지ㄴㅣ아라고.


이양놈새끼가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주연이가 웃으면서 하지만 확실하게 쏘아붙엿다.필립은 한국어는 거의 알아듣지 못하지만 금
방 눈치를 채고 놀리기를 그만두엇다.살기는 만국 공통어엿다.


매운건 전혀 소화를 하지못햇기 때문에 필립은 주로 간장소스가 들어간걸 좋아햇다.고춧가루
엔 넌더리를 냇다.거기까진 뭐 상관없는데 냉면이 무슨맛인지 도저히 모르겟다는 말에 다같이
충격에 빠지고말앗다.이해할 수 없는 신국물ㅇㅔ 이해할 수 없는 질긴 국수라고햇다.우리도
난감하게 느낄 폴란드 음식이 잇겟지만 냉면이 맛이없다니 냉면이 맛이없다니.엄청난 문화차
이엿다.


그래도 우리집국수는 좋아햇다.엄마는 송이와 필립이오면 임금님이나 받을만한 상을 차려줫
.그럴것까지는 없엇는데 한식 문화대사라도 된듯한 사명감으로 며칠전부터 준비를햇다.
전에 찬겸이가 학회에서 친해진 케냐치과의사를 데리고왓을때도 엄마는 그 타이딕스를 닮은
잘생긴 사람의배를 뻥 터뜨려서 보냇다.




주로 외국인 위장혹사 전문ㅇㅣ엿고 엄마가 그럴땐 말릴수가 없다는것도 알고잇엇다.나는왜
말릴수없는 여자들 틈새에서 살고잇을까 자조하며 보조해서 상을차렷다.




필립은 의외의 메뉴인 갈치구이를 좋아해서 혼자 열토막씩 먹어댓다.큰한마리가 넘지않나싶
을 양이엿다.엄마는 젓가락으로 갈치를 바르는법을 필립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햇지만 결국 포
기하고 포크를 주엇다.필립은 포크로 먹다가 손으로 먹다가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맛잇는 생
선이라고 햇다.


송이와 필립이 언젠가 헤여진다면 우리엄마도 슬퍼할거란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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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장사준비를 하고잇는 주방.엄마와 할머니와 요리사 두분이 바삐 움직이고잇다.

나 ㅡㅡ엄마 나 하다하다 안되면 여기와서 일해도돼?

엄마 ㅡ웃기지마.이게 장난인줄 알아?안돼.그리고 가게 넘기라는 사람이 몇인데.넌 네가 알
아서해.다팔고 노후엔 편하게 살거야.

나 ㅡㅡ할머니 나안돼?

할머니 ㅡ나한테 묻지마라.난곧 죽고없다.

엄마 ㅡ우리 이사갈거야.강화도든 이천이든 도자기가마 잇는데가서 도자기나 굽고살거야.

나 ㅡㅡ엄마 도자기 굽는거 그렇게 재밋어?

엄마 ㅡ배울수록 재밋어.왜더 일찍 안배웟나 몰라.

나 ㅡㅡ나도 엄마닮아서 똑같은거 반복해서 여러개 만들라고하면 잘만든다?손이 엄마손인
가봐.

엄마 ㅡ그래?

ㅡㅡ


남자친구는 로케이션 매니저엿다.그럭저럭 긴밀한 팀이기도햇고 이영화 저영화에서 몇번만
낫다.인상이강한 사람은 아니엿다.청바지핏이 좋네 정도엿다.길이와 밑위와 품과 워싱이 어
느것도 과한것없이 딱 적당햇다.그런바지를 찾으려면 노력이 들지않나 싶엇다.스스로를 잘
알고잇다는 증거로도 보엿고말이다.


예산 예산 예산이라고요?우리팀은 주차 주차 주차인데.”

그렇게 말하며 남자친구가 웃엇다.우연히 차를 얻어탄 날이엿다.그럴법하다고 생각햇다.
명씩 움직이면 주차야말로 큰문제다.팀마다 고충이 잇구나 끄덕엿다.주차문제에 짜증이 나
서는 아니엿지만 그무렵부터 남자친구는 영화일을 그만하고 싶어햇다.


돈 제때 못받는거 지긋지긋해요.지긋지긋해 죽겟어요.돈은 제대로 줘야지.”

영화에 아무런 환상을 가지고잇지 않다는 것이 왠지좋앗다.주완이와 닮은구석이 정말 하나
도 없다는 것도 좋앗다.아무리 생각해도 공통점을 찾을수 없엇다.외향적이엿고 친구가 많앗
고 뾰족한 구석도 그늘도 없엇다.눈밑에 흉터가 없엇다.남중 남고에서 쓰레기 같은 급식을
와그작와그작 먹고자란 덩치가 신기햇다.둔한덩치는 아니엿지만 씨름을 잘할것 같은 몸이엿
.나는 머릿속으로 남자친구의 완벽한 청바지를 벗기고 샅바를 감아보다가 아 이남자랑 사
귀겟구나 생각햇다.


남자친구는 나에 대해서도 아무런 환상이 없엇다.내가 예쁘지도 착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걸 잘알고잇엇다.


난 애기들이랑 별로 안친한데 이상하게 후원하는데는 두군데다 어린이관련 단체다?사실
모성애가 넘치는게 아닐까?”

드라이브를 하다가 내가 별생각없이 이야기하자 남자친구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
햇다.


아니 너진짜 애들이랑 떨떠름해.비용대비 효율이 제일낫다고 생각하는거겟지.”

“..그런가.”

후원 얼마나 하는데?”

고정수입이 없으니 조금이지.”

거봐 그러니까 그돈이 최대한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쓰이길 원해서 애들인거야.”

날카로운 분석이여서 다른대꾸를 하지못햇다.그게 내가원하는 방식인줄은 모르겟으나 남자
친구가 나를 정확하게 보고잇는것만은 확실햇다.


남자친구는 중고다트기계 몇대사다가 마포에 다트바를 차렷다.엘리베이터가 정말 좁아서
세명만 타도 꽉찬느낌이 나는 빌딩의 사층이엿다.누가 오나 싶엇는데 사람들이 오긴왓다.
자친구네 가게에서 파는 칵테일은 기이할 정도로 표준이엿다.특별히 맛잇는 칵테일도 없고
그렇다고 레시피에서 뭐가빠져서 말도안되는 맛이나는 칵테일도 없엇다.


다트는 썩 늘지않고 남자친구와도 그다지 통하지않는다.그런데 통하지 않는데서 오는 안심
같은게 잇다는게 신기하다.통하지 않으므로 크게 해칠수없다.통하지 않으므로 그사람의 일
부가 내게 옮아붙지 않는다.통하지 않으므로 내안의 아주나쁜 부분을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통하지 않으므로 기억나는게 없다.통하지 않으므로 눈이마주쳐도 아프지않다.


심지어는 모욕마저도 통하지않앗다.가벼운 싸움이 벌어질때마다 나는 우리사이의 끊어진
혹은 존재한적없는 회로를 짚어보이며 남자친구를 화나게 하고싶엇다.너는나한테 어떤영
향도 끼칠수없다.우리는 아주 미미한 관계다.헤여지고 몇 년지나면 이름도 얼굴도 잊을거
..내가 상대방이엿으면 결코 참지않앗을 암시들마저 남자친구는 그냥 넘겨버렷다.분개하
게 될만큼 신경줄이 굵은 인간이엿다.


영화쪽 친구들은 기함하지만 역시 난 차태현 영화가 짱인거같아.차태현이 나오면 무조건
짱이야.복잡한 영화를 왜 그렇게들 좋아하나 모르겟어.”

그말을 들은뒤로 남자친구가 어떤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차태현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라고 말햇고 사람들은 바로 본질을 간파햇다.


다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사람이 ㄷㅏ트를할때의 평안함같은걸까.점수가 깎여나가 딱
맞아떨어지면 좋고 아니면 그냥 리셋하면된다.쓰는건 주로 손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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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용오빠네와의 페이스타임.

인영언니 ㅡ애들이 너보고싶대.그래서 걸엇어.바쁜거 아니지?

나 ㅡㅡ아니예요 안녕!

안노 ㅡ이모 안녕!

윌로 ㅡ이모 안녕!

그런데 애들은 인사만하고 둘이서 미친듯이 뛰여다닌다.화면의 보이지않는 부분에서 깨지
는 소리가 들린다.

나 ㅡㅡ애들이 아니라 언니가 나 보고싶엇던 것 같은데?

인영언니 ㅡ응 죽겟다.언제크나싶어.

나 ㅡㅡ아들둘 힘들죠?

인영언니 ㅡ딸이려니하고 하나더 낳앗다가 (속삭이며)망햇어.

창용오빠 ㅡ내욕해?

인영언니 ㅡ응 자기욕해.욕하면 어쩌게?

창용오빠 ㅡ..어쩌진 못하지.이제와선.

나 ㅡㅡ강원도는 이계절에 더좋죠?시원하죠?

창용오빠 ㅡ계절이 어떤지도 모르고살아.안놀러와?

나 ㅡㅡ가야죠.

안노,윌로 ㅡ이모 이모 놀러와!

나 ㅡㅡ(내레이션)내가 이모인지 고모인지 어떻게 결정햇을까?

ㅡㅡ


창용오빠와 인영언니가 처음 안노의 이름을 지을 때 바랏던건 한가지엿다.발음이 어렵지 않
아서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쉽게 불릴수잇는 이름이엿으면 좋겟다는것이엿다.두사람은 그
때 이민도 고려하고 잇엇다.결국 가지는않앗지만 언젠가 아이가 외국에서도 본래의 이름으
로 친구들을 사귈수 잇으면 좋겟다고 햇다.창용이나 인영이나 확실히 외국에서 좀 고생할
이름들이긴 하다.


너 외국에사는 친구많잖아.좀물어봐.아이디어를 얻어와봐.”

많지않고 송이하나인데 내가말햇지만 창용오빠는 그래도 부탁한다고햇다.물론 송이는 아이
이름을 짓는데는 별로 소용이 없엇고 결국 바통은 주연이에게 넘어갓다.


남자애라면 안노,여자애라면 윌로.”

무슨뜻인데?”

안노는 기러기가 무리지어 잘 때 자지않고 경계하는 기러기야.윌로는 버드나무.이상하게 윌
로란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좋더라.”

나는 주연이가 이름을 지엇다고는 창용오빠네에 전하지 않앗다.주연이가 연상시킬 다른한명
을 창용오빠가 잊길바랏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이 지엇다고하고 이름들만 전햇다.오빠네가 안
노를 첫아이의 이름으로 정한건 그렇다치고 둘째가 남자아이인데도 윌로라고 한건 뜻밖이엿
.딸을 얻지못햇으니 둘째가 버드나무처럼 유연하고 유려하기라도 하길 바랏던걸까.기대를
저버리고 윌로는 점점 씩씩해졋다.하긴 꺾어다 아무데나 꽂아도 자라는 수종이니 이름그대로
인것도 같다.


언젠가 네가 아이들을 낳으면 지어주려던 이름 아니엿어?괜히 줘버린거 아냐?”

안낳을거야.”

마음바뀌면?”

그럼 그때까지 또 좋아하는 단어들이 생길거야.”

주연이는 사전을 좋아햇다.사전을 내내 찾아야하는 자기직업도 좋아햇다.


국립국어원에서 뱃속을 찾아봐.진짜 배 말고 마음을 말할때의 뱃속말야.예시문이 무시무시
.내가 읽어줄게.’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이엄마는 너의 뱃속을 들여다보니까.’진짜
야 진짜 예시문이 이래.누구 엄마인지 되게무섭다 그치?”

“’한눈팔다의 한눈말야.어떻게 설명되여잇는지 알아?’마땅히 봐야할곳을 보지않고 다른곳을
이래.마땅히라는 부사가 쓰엿을줄이야.마땅히는 강한 어감이잖아.대단한 태도아냐?넌나
를 마땅히 봐야하는데 어디를보니 하고묻는 사람은 자신감도 솔직함도 잇을것같아.”

괜히 ‘unforgettable’을 찾아봣다가 움찔햇어.’보통 너무 아름답거나 재미잇거나 해서 잊지못
이래.아름다워도 안잊히지만 재밋어도 안잊히는구나.우리 왜이렇게 재미없게 사니?잊혀
버릴거야.”

아직한번도 사전을 만들어본적은 없지만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최고인것같아.’첫사랑
쳐봣더니 뭐라는줄 알아?’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사랑이래.느낀것과 맺은 것은 별개인거지.
별개이지만 둘다에 의미를 부여한거고.그리고 북한에는 이렇게 웃긴말이잇어.’첫사랑에 할퀴
는격이란 말인데 첫사랑을 하다가 배반을 당하고 봉변을 당하는 격이라는 뜻으로 누구와함
께 처음으로 어떤일을 재미잇게 하다가 잘못되여 망신까지 당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말
이라는데 딱인듯싶어.”

단하나도 띄여쓰고 단셋,단넷도 다 띄여쓰는데 단둘만 붙이는게 다정한 것 같아.’함께하다
도 함께쓰는게 좋아.사전은 다정해.”

갈치에 비늘이 전혀없는것도 호루라기가 옛날에는 살구씨를 깎아 만들엇던 물건인것도 사
전에서 배웟어.”

사전이 서로 경쟁하면서 증식하는것도 이제는 웹상의 거대한 데이터 덩어리가 된것도 신기
.모든게 다 들어잇는데 순수해.그러기 쉽지않잖아.”

하지만 가끔 오버할때가 잇어.헬스클럽을 건강방으로 순화해서 쓰래.레미콘트럭은 양회 반
죽차고 말야.팬레터는 애호가 편지란다.아니 그건싫거든.생각만해도 싫어.”

제임스 머레이는 제임스머리로 표기해야 한다는데 이건역시 못따르겟어.제임스머리는 제
임스대가리 같은 느낌이란말야.”

“’거침없이는 붙여쓰면서 가차 없이는 왜띄여쓸까?붙이면 좋을텐데.”

“’불후가 뒤에 그런 것이 또 오지않는 불후가 아니라 부패하지 않는다는 불후인거 알고잇엇
?한자를 뒤늦게 배워서인지 매번신기해.”

“’타계하다라는 말은 정말예뻐.죽지말고 타계하면 좋겟어.”

나는 전혀 관심이없는 사전얘기를 듣는게 좋앗다.내부성분의 98.2퍼센트 정도가 불신으로 이
루어진 주연이가 사전을 경전처럼 여기는게 보기좋앗던걸지도 모른다.읽고 찾고 해석하고 비
교하고 던졋다가 안아들엇다가 하는 모습이 인간적이여서.


언제부터 사전이 좋앗던거야?”

음 아마 처음에는 다른나라 말 배우느라 봣겟지.근데 오래 떠낫다온게 잇으니까 한국말에 거
리감이 생겨서 국어사전을 더 자세히 보게되엿고.”

누구닮아서 말배우는ㄱㅓ 좋아해?”

주연이가 고개를들고 나를봣다.내가괜히 묻는게 아니라 정말 묻고잇다는걸 알아챈 모양이다.


엄마닮앗어.그쪽가족들이 다그래.다른나라 말해서 먹고살아.이모들도 삼촌들도 전부.거슬러
올라가면 역관집안인가 찾아봣는데 그건 아니더라.어쨌든 다른건 못하는데 언어쪽으로만 다들
발달햇어.열살쯤 되엿을때엿나.인도가기 전이엿을거야.엄마랑 이태원에 갓엇어.
해밀턴 호텔아래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잇는데 귀엽게생긴 외국꼬마애들이
잇엇어.나랑 나이가 비슷해서 자꾸 눈이마주쳣지.엄마가 그애들 이야기하는걸 듣다가 불어로
말을걸엇어.아마 프랑스나 프랑스령이엿던 어딘가에서 왓겟지.애들이 난리가 난거야.약간 떨
어져잇던 부모를 부르면서 이아줌마 불어를 해요!불어를 해요!’하고.”

어머님 불어를 하셧구나.”

대단히 오래배운건 아니고 취미로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나라 말을 배우는건 엄마내림인 것
같아.어린마음에는 그게 멋잇엇어.엄마가 신기한 다른ㄴㅏ라 말을 한다는게.내가 좋아하니까
엄마는 바바파파를 읽어줫어.집에는 엄마가 불어를 배우려고 사둔 바바파파 시리즈가 잇엇거
.”

바바파파가 뭐야?”

동화책이야.동그랗게 생긴 분홍거인 비슷한게 나와.나는 사회에 대해서 배워야할건 다 바바
파파한테 배웟어.”

어머님 멋지셧네.”

그런사람인것치고 너무 행복하지 않앗지 뭐.”

내 기억에도 그랫다.내내 불행의 표상이엿다기보다는 미묘하게 존재감이 없엇다.집에 잇을
때도 없는것같은 사람이엿다.


어쨌든 넌 사전도 좋아하고 일도 좋아하는거네 그치?”

좋아해.조용히 책을 만들고 잇으면 언어가 투명한 생물이고 나는 그생물의 몸속에 손을넣어
서 척추를 만지고 잇는것같아.멋진일이야.편집일 자체는좋아.”

그런데?”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형복합기 같은게 되여버린것처럼 바쁘기만해.와라라라 종이를 삼키고 뱉
어내는 그런기계.출판은 더 화려한 미디어들과 경쟁이 쉽지않고 전세계 어디서나 예전만큼 책
이 팔리지는않지.그러니까 사람을 적게뽑아서 그사람들이 기계처럼 일하게 된거야.그런데 이게
기계처럼 할수잇는 일일까?대충 맞춤법이나 맞추겟지 밖에서는 여길지 몰라도 언제나 그이상이
.
인간의 뇌를 거름망으로 쓰는걸.한사람의 정신을 다른사람의 정신에 통과시키면서..못난 인간들
은 너희가무슨 예술가냐 시비걸때도 잇는데 누가 예술가래?여술가는 아니지만 장인이라고는 생
각하거든.장인에게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공을들일 여백이 필요하고.여백없이는 책의
밀도가 떨어져.완성도가 못미쳐.”

환경이 나빠지면서 노동강도가 높아진게 부담스러운거구나?”

나빠지는 환경을 좋은사람들이 참고잇어.떠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덕에 그나마 이정도 유지되
는건데 싸울여건조차 안되는곳이 더많아.”

너는?”

나는 모르겟어.이배가 가라앉고 잇구나 생각은해.나 말고도 사전 좋아하는 인간은 널리고 널렷
을거야.내발로 나가거나 교체당하거나겟지.작년에 과장님 한분이 해고당햇어.아랫사람들은 따르
고 윗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이엿어.아부도 못하고 자기홍보도 못하는 성격이거든.그과장님이
자전거 사고를 당햇어.”

많이다치셧어?”

응 가로등 불빛이 어두운 길에서 턱에 세게 걸리는 바람에.쇄골이랑 갈비뼈랑 다 부러졋어.그런
상태로 누워잇는데 회사에서 그과장님을 해고한거야.”

뭐라고?”

그직전에 낸책에 작은사고가 잇엇거든.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완벽한 책이잇나?쇄를 거듭하며 고
쳐나가는거지.과장급의 연봉이 부담스럽다 싶다가 비용이 덜들고 말잘듣는 사원급으로 교체하려
고 누워서 못움직일 때 해고한거야.”

어떡하냐.”

이제 출판계로 안돌아오신대.퇴원한 다음에 콘텐츠관련 스타트업 쪽으로 가셧어.그쪽도 힘든모
양이긴 해도 잘된거같아.그렇게 사람들이 다 빠져나갈거야.”

회사는 어디나 다 그런 것 아닐까?”

그치 업계도 업계지만 회사의 속성이지.크고나쁜 괴물이야.뭘만들든 관계없이 회사는.구성원이
좋으면 천천히 나빠지고 구성원조차 흐리면 급속하게 나빠지는것같아.”

크고나쁜 괴물.그말이 아마 빅배드 몬스터의 직역일거라는 생각에 나는 주연이의 작은머릿속에
몇개의 언어들이 우글대고 잇을까 궁금해졋다.저들끼리 충돌도하고 번역도 하면서 가득할것이다.


그래도 책은 그런 괴물들과 싸우기위한 무기인데 하고 기대하는 나는 아직 여길 떠날때가 아닌
가봐.깃털 부풀리기나 하는 사기꾼들만 남으면 그때 고민하지 뭐.아직 괜찮은 사람들도 잔뜩 남
아잇어서.”

나는 괜찮다는 사람들과 우리보다 가까워지지는 말길,얕은 질투를 하면서 더 이상 말은 걸지않고
주연이가 커다란 교정지 뭉치로 돌아가게 두엇다.


0040.MPEG


민웅이네 과수원 벤치를 여러각도에서 찍는다.비가온다음 날이라 습기어린 벤치에는 조그만 귤
색 곰팡이들이 피여잇다.모양도 귤의과립에 가깝다.

나 ㅡㅡ(내래이션)민웅이가 이 벤치를 대체 어디서 가져왓는지 모르겟다.과수원에 어울리지 않게
아르누보 장식이 된 벤치는 고정부에 시멘트가 남아잇다.나는종종 어딘가의 아름다운 공원
에서 민웅이가 이 벤치를 뽑아오는 상상을한다.어쩌면 정말 그랫는지도 모른다.

민웅이가 일하는 것을 원경에서 찍는다.일을하다말고 조끼주머니에서 민웅이가 껌을꺼낸다.분홍
색 길쭉한 껌을 하나 입에 집에넣고 한동안 일하다가 먼젓번 껌을 뱉지않고 하나더 잠시후 또하
나를 넣는다.나중에 껌세개를 한꺼번에 뱉어낼때는 마치 잇몸을 뱉어내는것만 같다.

나 ㅡㅡ껌을 왜그렇게 씹어?

민웅 ㅡ담배 끊으려고.주연이가 자기네 창고 비운다고 껌 세박스나 줫어.

나 ㅡㅡ..그거 유통기한 지낫을지도 몰라.

민웅 ㅡ안죽어.턱은아프다.

나 ㅡㅡ담배는 갑자기왜?

민웅 ㅡ나 취직햇어.조경회사에.

나 ㅡㅡ조경?

민웅 ㅡ호텔 정원 같은거 외주로 맡아하는거야.나 호텔 좋아하잖아.(웃음)일하러 다니면 담배피
울 짬도 없을 것 같아서.

나 ㅡㅡ예쁜벤치나 몇개더 훔쳐와.

민웅 ㅡ알앗어.정자도 하나 훔쳐올게.근데 대체 뭘찍는거야?맨날 찍기만하고 왜 보여주질않아?

나 ㅡㅡ좀더쌓이면 보여줄게.

민웅 나 초상권 비싼남자다?

ㅡㅡ



지하실 세트를 스케치하며 이런 스릴러는 이제 질린다고 생각햇다.어린이 납치와 장기밀매가 엮
인 플롯으로 아이의 부모가 제한된 시간안에 뛰여다니는 내용이엿다.그런일들이 없지야 않겟지
만 그것과는 별개로 진정성이 결핍되여 보엿다.정말로 비슷한 일을당한 가족이보면 견디지 못할
것같은 영화다.



영화를 만들고잇는 누구도 집중을 하지않고잇는 느낌이랄까.나도 마찬가지다.하고싶어서 하고
잇기보다는 어쩌다보니 거절할 타이밍을 놓쳣다.스릴도없는 스릴러라니 거절햇어야 햇는데 한
동안 쉬다가 들어온 일이라 마음이 약해졋다.


주된작업은 아이의 부모가 뛰여다닐 때 아이가 갇혀잇을 지하실방을 구현해내는 것이엿다.감독
은 수십군데의 지하실 후보를 거부하고는 나한테 세트를 만들라고 햇다.처음에는 모형도 보여
주고 세트일부에 페인트를 칠햇다 벗겻다도 해보이고 그래픽으로도 제시하고 햇으나 감독은 시
종일관 어정쩡해하는 반응이엿다.




자기가 뭘원하는지 바로 알기를 바랏던것도 아니고 뭘 원하지 않는지만 확실히 해줘도 일하기
가 수월할텐데 분명 이러다가 촬영일정을 더 어찌할수 없어지면 아무렇게나 해버릴 인간이엿다.
영화가 산으로 가고잇다는걸 이미 모두 눈치챗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분위기가 이상햇다.




다른사람의 작업을 퇴짜놓는것만이 자기일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한데..나는 일을하는척,하지않
으면서 감독이 꺾일 타이밍만 기다렷다.의욕이 없엇다.


그전영화를 해서 받은돈으로 영상편집이 가능한 좋은 노트북을삿다.원래 내 노트북은 수명이
다해서 세탁기 소리가 낫엇다.새 노트북을 삿더니 편집이 그렇게 쉬울수가 없엇다.딱히 어떤목
적이 잇어서 이어붙이기 시작한건 아니엿다.정신없이 흩어져잇는 파일들이 싫어서엿다.


내가 찍은것들은 길어봐야 오분도 안되엿다.주로 일분남짓한 분량이엿고 길게 찍은것들도 대
개 별내용이 없엇다.어느파일이 어디뒤에 붙든 큰차이가 나지않앗다.처음엔 시간순으로 편집
을 햇다가 다시 인물별로 편집을햇고 그도 마음에 차지않아 결국은 화면의 질감대로 뒤섞엇다.
색온도와 계절,초점의 날카롭고 부드러움 따위의 잘 설명할 수 없는 직관적인 기준으로.이래
서야 내가 싫어하는 감독들 같지않은가,웃음이낫다.


그러니까 나는결국 시각적인 언어를썻다.출신성분을 못속이는구나 싶엇다.연출부는 미술부가
배경지문을 자꾸 무시하고 저 예쁜 것 만든다고 불만을 토로햇고 미술감독들은 애써 끌어올린
질감을 보여줘봣자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엇다.나는 가상의 시나리오 작가가 내 결과물을 욕하
는걸 상상햇다.욕먹어 마땅하지만 어차피 나는 영화를 만들고싶은게 아니엿다.그저 내가 할수
잇는 언어로 유치하고 지지부진한 일기를 썻던것뿐이다.


최종파일의 이름을 뭘로 해야할까 잠시 생각햇다.생각해봐야 나는 그쪽언어를 쓸수없으므로
하주들의 언어를 쓰기로햇다.언젠가 주완이의 방에 붙어잇던 수많은 메모중의 하나에서 따왓
.


언더,선더,텐더.

추천 (2) 선물 (0명)
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IP: ♡.169.♡.51
단밤이 (♡.252.♡.103) - 2024/01/13 07:57:38

단둘, 함께하다 좋아요. 서로 달라도 안심이 된다는게 신기하네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1/13 08:22:56

첨엔 주완이와 닮은남자만 고집하더니 이젠 주완이의 그림자에서 조금 벗어낫나봐요.

서로달라도 어울릴수잇죠.예하면 우리가 옷입을때 서로다른 색상도 어울릴때가 많잖
아요.

단밤이 (♡.252.♡.103) - 2024/01/13 08:28:03

너무 똑같아도 안 맞는 경우가 있었어요.
애인은 보통 비슷비슷한 사람을 고른다던데 다른 사람 찾은걸 보면 주인공이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봐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1/13 08:30:20

떠나간 사람은 서서히잊고 살아잇는 사람끼리 계속해서 삶의역사를 써내려가야죠.

뉘썬2뉘썬2 (♡.169.♡.51) - 2024/01/13 09:09:20

텐더하면 치킨텐더가 생각나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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