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前半生(7)

말가죽인생 | 2019.01.29 14:27:32 댓글: 11 조회: 4131 추천: 6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3835697
내가 좋아하는 수자 7로 연재로 썼던 나의 전반생 시리즈를 접을가한다. 40중반에 다달으니 삶의 중압감을 느껴서 한동안 맘의 여유도 없이 몇년간을 보냈던 기억이다. 초년시절은 그나마 공부 좀 잘하여 대학교까지 순리롭게 졸업하고 졸업배치로 사업단위에도 출근하게 됐지만 7년을 견지못하고 뛰쳐나와 십여년 돈벌이에 미쳐살았던거 같다. 이제 좀 먹고살만하게 됐지만 날로 못해가는 몸뚱아리와 앞날에 대한 근심으로 그때 철밥통을 버리고 험한 길을 택해 걸어온 지난 십여년이 살짝 후회될때도 있지만 후회약이란 없는법이여서 하루하루를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중이다. 6회에 걸쳐 내가 어찌하여 태여나고 어떻게 초중시절까지 지냈는지를 보여줬었는데 그 시절을
보낸 동년배들은 기억나는 부분들도 있을것이다. 요즘 부족할것이 별로 없는 세월, 별로 잘 입고 잘 먹고 잘살지는 못했어도 방학이면
친척집에 맘대로 놀러다니고 동네집을 제집 나들듯이 놀러다니던 인심좋던 그 시절이 더 그리워난다. 토장국냄새 풍기던 옛 골목들이
떠오르고 단층집들이 대부분이였던 90년대 초반이 사람 사는 냄새가 더욱 짙은 삶의 현장이였던거 같다. 그 시절을 쓰다보니 또다시
그 나날들이 그리워나고 많이 추억할수 있어서 좋았었다.
나의 고중시절도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초중시절 농촌에서 올라와 현성에서 공부하며 고생 좀 한 덕분으로 고중에 입학하니 나도 시내학생티를 낼수 있을 정도로 세련?됐고 이런저런 일들을 적잖게 겪어서 고중시절 반장직을 맡았어도 힘든줄을 몰랐었다. 고중시절은
다 그러했겠지만 그야말로 공부했던 기억밖에 거의 없다. 기억나는거라면 골목길 돌아다니며 정교처주임선생님과 함께 담배피우는 학생들 붙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국기계양식 기수도 자주 했었다. 아주 모범적인 나였지만 한번은 고2때인가? 음식점에서 친구놈하고 맥주 서너병 마셨는데 공교롭게 정교처주임한테 발각된것이다. 정교처주임은 넘 억울해서 미닫이문을 확 닫아버리고 나가시더라는것. 하긴 규률 젤 잘 지켜야 될 놈이 선생님들이 다니는 음식점에 가서 술마시다 들켰으니 ㅋㅋㅋ 그때는 담배피우다 들켜도 싸움질해도 항상 통보비평을 써붙였댔다. 나도 이튿날 통보비평 받을 각오로 주임선생님한테 찾아갔댔는데 그냥 웃어넘기시더라. 후에는 먼데 가서 조용하게 먹으라면서.ㅎㅎㅎ 고중1학년때 문과,리과 나누기전 반주임선생님이 참 좋았었다. 글쎄 반장시켜준것도 감사하겠지만 많이 믿고 밀어주셨다. 헌데 1학년 후학기부터 바꾼 반주임선생님은 진짜 내 생에 만난 최악의 반주임이였던거 같다. 지금도 유일하게 연락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항상 찌푸린 얼굴로 웃을줄 거의 모르고 옛날 고중 졸업하고 여차하다 그때 나이 사십넘어 내 지금 나이만큼 됐겠는데 반장인 나와 잘 맞지 않았다. 학생들을 넘 편애하는것이다. 글쎄 뒷돈 좀 챙겨서 특별히 곱아했는지는 몰라도 자기가 원래 문리과 나누기전에 맡았던 반의 학생들 위주로 그것도 공부 잘하는 애들중에서도 딱 두명만 죽기내기로 티를 팍팍 내면서 곱아했는데 항상 민주선거에서 절대다수 득표로 반장에 선거되는 내가 미웠던지 엄청 날 갈구었다. 내가 드디여 참지 못하고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반주임을 바꿔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는데...ㅎㅎㅎ 반주임교체에는 성공 못했지만 그 선생님도 위신은 없었던지 누구 하나 옆에서 귀띔해준 사람도 없이 2년 지난뒤 대학입시 당안을 써줄때 그 일이 탄로났고 나에 대한 그 선생의 최대한 보복은 나의 고중시절 반장역사를 지우기였다. 허지만 고중때 입당 신청서를 쓴 나의 당안을 정교처에서 반장직을 안쓴데 대해 반주임한테 문의했고 그때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내 당안에 반장직을 했다고 썼던것이다. 휴...자기가 젤 곱아하던 남학생을 반장했다고 당안 만들어주느라 그랬단다. 후에
대학간후에도 반급애들을 조직해 다시 반주임 보러 가지도 않았고 다른 과임선생님을 청해서 모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분과는 악연이였던거 같다. 후에 전해들을라니 그 주제에 바람써서 이혼당하고 말단 과임으로 있다가 퇴직했다는거 같더라. 후에 또 들을라니 그렇게
고와했던 애들도 그 선생 찾아간애 한명도 없었다는것이다. 대학입시 지원을 우린 시험치기전에 썼던거 같다. 그 시절 반급에 50명정도였는데 본과에 15명정도 붙을 정도였으니 승학률이 낮았던거 같다. 울반애는 내하고 성적이 똑같았건만 이 못난 반주임탓에 승학률을 높이겠다고 그애더러 단과대학에 지망을 쓰게 했던것이다. 결과 그애는 무슨 장춘량식학교에 가버리게됐다. ㅠㅠㅠ 그 시절 그애 점수면 연변과기대랑 큰 소리 치며 붙을 성적이였는데...하긴 운수놀음인거 같다. 대학입시전 우린 일주일정도 집에서 자습하게 했었는데
한놈은 집에 가서 일주일간 물고기잡이만 다니다가 대학시험을 개판쳐서 중등전문학교에 가기도 했다. 그애도 반에서 십여등은 그냥 했는데 ㅠㅠㅠ 난 입학할때 12등이더만은 졸업할때도 반에서 12등이였다. 고중에 가니 공부가 약한걸 알게 됐다. 문과중 암송과목은 다 되는데 수학이 딸렸다. 아무리 통째로 공식을 암송한다해도 안되더라. 먼데서 수학선생님만 봐도 막 머리 아파날 지경이였으니깐 대학입시에 수학을 몇십점밖에 못맞았던거 같다. 하도 다른 과목에서 많이 맞아서 그나마 본과선은 많이 넘겼었다. 특히 역사는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교과서가 너덜거릴 정도로 암송했었고 정치는 원래 정치세서 ㅋㅋㅋ 일어도 괜찮았고...조선어와 한어는 합쳐서 150점을 줬는데 그것도 120점 넘었던거 같다. 하여간 수학은 약했다. 대학가서 수학이란 과목이 없는걸 보고 넘 좋아서 한주일 잠도 못잤다는거.ㅎㅎㅎ 그러니 내가 수학을 얼마나 못하고 얼마나 싫어했는가를 알만할것이다.
대학교는 속칭 피주대학이라 불리는 연변대학에 붙었다. 그것도 연변대학에서 유일하게 내세울만한 전업 ㅋㅋㅋ 조문학부, 피주대학,명태계,도라지전업에 다녔었다. 대학시절은 그야말로 거칠게 없이 즐거웠었다. 200원남짓한 생활비로 빠듯하게 생활했지만 꽃밭에서 학교다녔는지라 여학생들의 밥표랑,채표랑 많이 짜팬해서 먹었고 선후배들과 술도 곧잘 나눴었다.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우리반엔 성적경고(한학기 두개 이상 낙제)받은 학생도 없어서 전성 대학교에서 그해에 뽑는 성급 우수반급으로 당선되기까지 했고 나도 반장직을 쭉 맡아왔고 학생회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하다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한학기동안 다녀오기도 했었다. 교환학생시절
학비는 무료였고 원룸하나 사용하게 했고 월 30만원씩 생활비도 대주었다. 그 시절 함께 중대 신방과에 다니던 한국학생들은 내가 부자라고 하며 억수로 부러워하더라. 게다가 대학생 세명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줘서 50만원정도 받았고 일주일에 두번씩 대학교식당에 가서 사발씻기까지 해서 돈벌었다는거 ㅎㅎㅎ 왔다갔다 티켓비용 제하고도 5천원돈은 모아갖구 귀국했으니 제노릇 톡톡히 했었다. 졸업 학기에 가는 바람에 좋은 직장 몇개는 놓친거 같아 아쉬움도 있지만 하여간 비교적 일찍 한국에 나가보니 배운것도 많았고 느낀 바가 많다. 내 당안은 모 방송국 국장이 우리 교수님한테서 내 소개를 듣고 그냥 들고가버리는 바람에 난 그곳에 배치받아 7년정도 방송국 기자로 일했었다. 집도 사고 살만했는데 내가 맡은 프로그램 하나 있었는데 <...기자가 만난 사람들>이런식이였다. 2년 가까이 한주일에 한사람씩 전성의 성공인사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방송에 내보내느라니 보람도 있었지만 그분들이 자꾸 날 꼬드기는 바람에 ...
<기자선생은 우릴 취재만 하시지 말고 좀 자기 인생스토리를 쓰고픈 생각이 없나? 내 보기엔 당신은 꼭 성공할거 같은데...우리보다 더 성공할거야...>이런 말을 들은 이십대 피끓는 청춘은 머리가 뜨거워져 결국엔 사표를 바치고 삼십에 들어서서 심천행 뱅기에 몸을 실었다. 지금 나이에 그렇게 뿌리치고 나가라면 당연히 못나갈것이다. 헌데 그때는 무슨놈의 배짱이였던지? 헌데 금덩이가 많아서 허리아파 못 주을 정도라던 심천은 고생한번 못해본 나에게 심하게 채찍질을 해댔다. 심천에서의 나날들 써내려가자니 막 눈물부터 앞선다.
하여간 광동에서 어영부영 십여년간 직업 7가지 바꾸면서 뒹글다가 자그마한 사업체도 가져봤고 집도 사고 잘나가다가...여차여차하게 돼서 지금은 또다시 연변에 돌아와 살고있다. 아직도 연변대학 정문앞을 산보하느라면 20여년전 풋풋했던 우리 모습들을 다시 보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초로의 늙은이로 변해가는 자신이 한스러워 밤잠을 설칠때가 많다. 아-나의 전반생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지금 살아온것만큼 더 살고싶고 건강하게 90살까지는 살았으면 좋겠는데... 파란만장했던 나의 전반생을 줄이면서 여러분들도 2019년 모든 일들이 잘 되길 바랄게요. 구정 잘 보내세요.
추천 (6) 선물 (0명)
IP: ♡.193.♡.247
캠코더 (♡.226.♡.89) - 2019/01/29 15:18:16

나의 전반생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쭉 공부도 잘하셨고 심천에서 성공하셨다는걸 보니깐 멋있네요~ 다음집도 기대해 봅니다.

금금이 (♡.112.♡.139) - 2019/01/29 20:59:21

잘보고갑니다

kim제니하루 (♡.34.♡.209) - 2019/01/30 09:43:52

작가님 글 첨부터 잘 보앗습니다.다음의 좋은글도 올려주세요.

babya (♡.216.♡.34) - 2019/01/30 10:17:23

문필이 보통이 아니다싶었는데 역시나 기자출신이엿군요. 보면서 자꾸자꾸 빠져들어서 1-6까지 단숨에 읽어버렷다는 ㅋㅋㅋㅋ 저도 문학을 사랑하고 안정적인것보다 모험적인것을 더 추구하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라 요번글은 너무나도 남일같지 않네요.. 인생에 정답은 없기때문에 매순간의 선택이 다 맞다고 믿고싶습니다. 반백살쯤 살았을때 저도 이렇게 나의인생을 글로 쓸수 잇을만큼 괜찮은 인생이였으면 좋겠어요ㅋㅋ 항상 응원합니다~~

향눈 (♡.161.♡.55) - 2019/02/02 10:19:31

음ᆢ 우리 나이 되면 어쩐지 자꾸 걸어온 인생 한번 돌이켜보고 ᆢ 뭔가를 써서 내 메세지를 공유 하고 싶고 ᆢ 모이자에 안 온지 넘 오래되여서ᆢ옛날 작가님들 다게시는지???

화이트블루 (♡.39.♡.103) - 2019/02/03 01:13:48

굿~

8호선 (♡.50.♡.145) - 2019/02/03 07:56:14

어쩌다 이방에 들려 단숨에 다 읽어내려갓네요

저보다 조금 후배인것같은데 문필이 좋다햇더니 기자셧네요 아이디도 독특한 아이디라 인상깊어요 글 쓰느라 수고하셧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묘산 (♡.41.♡.21) - 2019/02/06 07:40:08

잘보구갑니다

Mee13 (♡.27.♡.201) - 2019/02/17 10:11:35

글이 너무 잼잇슴다 ~ 그 화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거 같슴ㄷ ㅏ ~

사원찻슴다 (♡.36.♡.254) - 2019/02/25 15:11:08

잘보구갑니다

흥원국제 (♡.117.♡.13) - 2019/02/27 20:24:11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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