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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21)

혜원1008 | 2018.12.21 09:30:16 댓글: 11 조회: 2725 추천: 14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3798609

나 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혜원

4 장 투쟁의 꽃

(5)

1996년 어느덧 엄마가 떠나신지도 일년이 넘어가고 경숙이도 아버지도 또다시 바쁜 일상에 빠져든채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경숙이네 회사는 점점 더 커져가고 그 형세에 맞게 정대표는 제조공장까지 두군데 추가로 인수했다. 이제 경숙이도 수업이 있는 시간들 제외하곤 본격적으로 대리직함까지 달고 정대표 밑에서 일을 하였다. 중한수교는 이 회사에 새로운 봄바람을 특히 경숙이 한테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어 줬다. 그때당시 한국보다는 중국이 인건비가 많이 저렴한 상태라 경숙이네 회사는 중국에서 많은 생활용품들을 수입해서 한국국내서 유통했다. 저렴한 인건비에 저렴한 원자재 값으로 한국 업체들은 그 제품들의 단가를 따라 올수가 없었고 거기에 힘입어 어떤 제품들은 아예 한국에서 재가공을 거친뒤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모든것이 잘 흘러가고 있던 그해에 강변은 미국으로 떠났다. 와이프랑 아들이랑 함께... 결국 푸념만 하던 와이프가 이겼고 강변은 한국에 있는 모든 살림들을 정리해서 미국은 달도 더 둥글다는 와이프소원대로 미국가서 살기로 했다. 떠나기 며칠전 경숙이 한테 또 짜장면을 사줬다. 경숙이는 꼭 성공할것이라면서 자기가 멀리 가더라도 안부는 꼭 서로 전하자고 하면서 그렇게 훌쩍 떠났다. 강변이 떠나고 난뒤 경숙이는 한동안 많이 허전해 했다. 비록 맨날 얼굴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 어딘가에 강변이 있다고 생각하고 등뒤에 변호사 빽이 있다고 경숙이는 많이 든든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훌쩍 떠날줄이야.. 경숙이는 이제 홀로 싸워야 했다. 다행이 경숙이는 쓸쓸함을 많이 느낄새 조차도 없이 항상 바빴다. 대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회사로 뛰어가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경숙이는 반에 있는 친구들과는 별로 교류가 없었다. 그럴새도 없었지만 혹여나 애들이 경숙이가 중국에서 시집온 아니 팔려온 조선족이라는걸 알가봐 항시 조심하기도 했다. 지난 과거가 수치스러워서가 아니다. 더 이상 그 무시하는 눈빛 그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빛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였다. 다행이 4년넘는 한국생활덕에 경숙이는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할수가 있었고 어쩌다 연변사투리가 튀어나와도 다들 그저 강원도사람이라 그런줄 알고 쉽게 넘어갔다. 거기다가 경숙이는 딱 필요한 팀과제 할때 빼곤 애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그런 경숙이를 다들 그저 강원도에서 온 집이 가난해서 대학편입이 늦어진 얌전한 애라고 생각했을뿐 크게 건드리지를 않았다. 그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이름이 신우진이라고 했다.올해 군복무 마치고 복학한 복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경숙이랑 동갑인 우진이는 키가 훤칠한데다가 얼굴도 엄청 잘생겨서 복학한 그날부터 대학캠퍼스에서 엄청 인기가 많았다. 거기다가 목소리도 시원시원하고 말투도 다정해서 항상 다니는데마다 애들이 몰려들었고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다들 우진이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 반엔 딱 한명 눈길도 않주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우리의 경숙이였다. 그 부분이 오히려 우진이는 신경이 씌였다. 저 여학생은 누구지? 왜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지? 라고 말이다. 우리의 신께서는 항상 그렇게 장난스럽게 상황을 만들어갔고 관심 많은 그 수많은 여학생들을 제쳐두고 우리의 킹카 우진이는 하필이면 경숙이 한테 꽂혔다. 시간만 나면 경숙이랑 얼굴대면할 기회를 만들려고 했지만 경숙이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그게 우진이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경숙이는 완전 밀당고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경숙이는 사실 밀당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철민이랑 힘겹게 이혼하고 지난 세월동안 경숙이는 남자의 자 조차도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아니 남자라면 지긋지긋했다. (내 인생에 더이상 남자나 결혼이란 있을수가 없어)라고 경숙이는 항상 생각했다. 그런데다가 워낙 회사 업무도 바빠지다보니 사실 경숙이는 딱히 우진이 만날 시간을 낼 새도 없었다. 그렇게 몇달동안 이어진 경숙이의 냉대에 결국 우진이가 뿔났다. 1996년 성탄절이브... 우진이는 그날에 마지막으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성탄절이브에 마침 회사도 휴가인지라 경숙이는 간만에 집에서 좀 쉬기로 했다. 그때당시 경숙이는 학교근처에 자취방을 구해서 혼자 살고 있었다. 성탄절 며칠전 정대표도 간만에 애들 본다고 미국갔고 아버지는 그때 마침 천안쪽에 건설장에서 일하고 계셔서 서울에서 만나기도 힘들었다. 결국 경숙이는 늘 가던 포장마차에 가서 떡볶이에 순대 좀 사가지고 자취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빌라 입구에서 우진이랑 딱 맞닥드렸다. 경숙이는 보자 우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볼은 빨갛게 얼어 있었지만 그래도 그 잘생김을 덮을수는 없었다. 경숙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경숙아~ 인제 와? 이브날 놀러도 않가고? 머 사들고 오는거야? 나랑 같이 가서 맛있는거 먹자.> 경숙이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우진이는 경숙이 손목을 덥석 잡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먼가가 잘못된거다.. 경숙이는 그렇게 한창을 끌려가다 우진이 한테 잡혔던 손을 확 뺐다. <머 하는거야? 나 어디도 않가.> 막 돌아서려는 경숙이 앞에 우진이가 더이상 참을수가 없다는듯이 막아섰다. <경숙아..박경숙. 나 너 좋아한다. 아주 많이... 넌 내가 어떻게 해야지 내 마음을 받아줄건데?> 경숙이는 잠깐 뜸을들였다. 무언가를 망설이는듯하더니 이윽고 결심하듯 우진이 한테 입을 열었다. <우린 서로 어울리지가 않어... 왜냐면....나 중국에서 왔어..> 이번엔 우진이가 말문이 막혔다. 잠간 머리를 긁적이던 우진이가 재차 물었다. <중국사람이라는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잘할수 있어? 어떻게 우리나라 대학에 붙을수가 있어?> 경숙이는 결국 다 털어놓았다.아예 다 터뜨리고 눈 앞에 이 남자로 하여금 단념케 하는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우진이는 그자리에 얼어붙은채로 한참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경숙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가 할 말들을 폭포마냥 쏟아내고는 이내 자리를 떳다. 그날밤 우진이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자기가 몇달동안 쫓아다닌 여학생이 중국에서 태어난 교포라는것도 그것도 모자라 한국에 시집왔다가 이혼한 이혼년라는것까지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들이라서 우진이는 그걸 한동안 받아드릴수가 없었다. (아니야~ 그럴리가.. ) 한동안 경숙이가 한 말을 머리속으로 애써 부정하기도 했다. (만약 전부 다 진짜라면...과연 나는 그걸 다 감당해낼수 있을까? 결국 내가 경숙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정도밖에 않되는거 였는가....) 우진이는 그렇게 한동안 갈팡질팡하는 자신의 마음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

로맨틱할뻔했던 성탄절은 그렇게 무난하게 지나갔고 경숙이는 더이상 우진이를 신경않쓰기로 했다. 홀가분했다. 어차피 가능성 없는 사이 정들이고 나중에 힘들어 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딱 잘라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다행이 우진이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였고 경숙이 한테 들었던 내용을 굳이 다른 학생들께까지 떠벌리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애써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채 그저 평범한 학우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우진이가 경숙이 한테 공을 한창 들인거로 알고있던 주변 학생들은 우진이가 결국은 우리의 도도한 경숙이한테 보기좋게 차였다고들 소문을 냈다. 우진이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 뒤로 더이상 우진이가 그 어떤 여학생을 쫓아다니는걸 볼수는 없었다.

1997년 경숙이는 26살이 되었고 무역실무는 물론 외국거래처 응대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경숙이는 많이 성숙되어 갔지만 요즘들어 자꾸만 회사에 자금문제가 발생하는걸 눈치챌수가 있었다. 해외바이어 입금이 자주 지연이 되었고 거기에 중국에서 들여온 부자재들이 불량율이 높아 한국내 공장에도 비상이 자주 걸렸다. 그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고 정대표는 그새 부쩍 늙었다.하지만 정대표는 그 흔한 푸념 한번 없이 묵묵히 혼자 감당해나갔다. 경숙이는 무역실무에는 꽤 능통했으나 회사 경영이나 재정관리 등 문제는 문외한이였다. 솔직히 회사의 재정상황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터놓고 물을수가 없었다. 돈문제라서 좀 예민한 부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경숙이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드는건 티비에서 매일마다 떠들어대는 뉴스였다. 뉴스에 따르면 한국은 전례없는 외환위기를 겪는다고 했다.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님께 외환위기라는게 무엇인가고 질문을 했었다. 외환위기란 대외 경상수지의 적자 확대와 단기유동성 부족 등으로 대외 거래에 필요한 외환을 확보하지 못하여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현상이라고 했다. 즉 한국내 보유한 달러가 턱없이 부족하여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한참동안 설명을 들었음에도 경숙이는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그 문제가 경숙이네 회사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것도 몰랐다. 하지만 문제가 터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날따라 차분하던 정대표가 안절부절 못하고 여기저기 통화한다고 바빳고 오후즘 해서는 거래처 사장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사무실에선 고성이 오갔고 차분하기만 했던 정대표는 얼굴도 못든채 그저 미안하다고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채 이틀이 못가 은행직원들이 또 한무리 찾아왔었다. 대출금을 상환하라고 독촉장을 들고 말이다. 해외거래처들의 전화를 받아낸다고 경숙이는 정신이 없었다. 물품대금 결재하라는 독촉전화였다. 공장은 더 이상 원자재 구입을 할수가 없어 생산정지가 되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빚쟁이들이 쳐들어와서는 대놓고 남아 있던 원자재까지 뺏어가느라고 난리 피웠다. 1997년 여름 정대표는 파산을 했다. 모든게 그렇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피해를 본 사람은 정대표뿐이 아니였다. 수없이 많은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대표들이 줄줄히 파산신청을 했고 한때 짱짱하던 기업들이 망해나갔다. 그 중엔 그 유명한 대우라는 기업도 있었다. 이제 사무실곳곳에 빨간 차압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었고 직원들은 다 떠나고 경숙이만 정대표 옆에 남아 마무리를 도왔다. 그렇게 J&International의 한때 휘황했던 역사는 마지막 페이지를 썼다. 서류랑 이런저런것들을 닥치는대로 정리하고 있는 경숙이 한테 정대표는 말없이 다가와 봉투하나를 건넸다. 꽤 두꺼운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였다.의아해하는 경숙이 한테 정대표가 말을 열었다. <경숙아~ 몇년동안 나 따라 다니면서 고생했다. 이건 마지막 월급이랑 퇴직금이야.. 많이 못줘서 미안하구나...> 사양할려는 경숙이한테 정대표는 견결했고 급기야는 봉투를 경숙이 주머니에 억지로 찔러주고는 이제 더이상 사무실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대표님은 어쩌시려구요?> 경숙이는 걱정스레 물었다. <나 애들 곁에 갈거야. 우리 아들 미국에서 취직해서 잘 살아. 거기가서 살거니까 이제 더이상 찾아오지마. 그리고 경숙아...> 잠깐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정대표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경숙아~ 잘 살아라>

경숙이는 사무실 건물을 한창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4년넘게 몸담고 일했던 터전이였다. 그 건물은 단순한 직장 일터만은 아니였다. 경숙이한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줬고 경숙이가 인생역전을 했었던 그런 곳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따뜻한 인정을 느꼈던 그런 곳이기도 했었다. 이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경숙이는 마음이 너무 서글퍼졌다. 그렇게 집에 온 경숙이는 며칠동안 생각없이 학교랑 집으로만 오갔고 결국 며칠지난 시점에 옷장안 그날 입었던 윗옷주머니에서 두툼하게 찔러져있던 돈봉투를 꺼내보았다. 이제 그 직장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이구나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찡해났다. 봉투안에는 만원권 천원권이 꽉 들어차 있었다. 세어보니 총 1947000원이였다.어떤 기준에서 계산이 되었는지 왜 천원권들까지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경숙이가 생각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있었다. 그때까지 경숙이는 몰랐었다. 그게 정대표의 마지막 전부의 현금재산이였다는것을...

은행에 가서 입금을 하고 그중에 일부를 들고 경숙이는 다시금 회사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정대표가 미국으로 떠나기전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사드리고 싶었다.걸음을 재촉해서 도착했지만 사무실은 텅텅 비어있었다. 빨간 딱지만 그날 그 대로 원위치에 붙어 있었을뿐 며칠동안 비워놓은듯 여기저기 먼지만 쌓여 있었다. 그길로 경숙이는 정대표네 집으로 향했다. 사무실에 않계시면 집에 계시겠지... 하지만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정대표의 휴대전화도 집에 전화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경숙이한테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나신건 아니겠지? 경숙이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경비실로 달려갔다. 경숙이가 그 아파트에서 한동안 살았던지라 경비아저씨는 경숙이를 한눈에 알아보곤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학생이 오랫만이네, 잘 지냈어요?> <아저씨 저기 3동에 707호에 사시는 분 혹 이사가셨나요? 아니면 해외에라도 가셨나요?> 경비 아저씨는 잠깐 등록책자를 뒤적이고는 이내 대답했다. <최근에 이사가거나 이사들어온 기록은 없는데요.. 그리고 며칠전에 그 사모님 저녁늦게 들어오는걸 보았는데.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경숙이는 정대표가 전화를 않받아서 그런다고 너무걱정이 된다고 울상을 했고 경비아저씨는 같이 함 가보자며 따라나섰다. 아파트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덩달아 걱정이 된 아저씨가 결국 열쇠수리공을 불렀고 문을 따고 들어선 경숙이는 눈앞의 광경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커텐까지 꽁꽁 쳐진 빛한점 들어오지 않는 거실 천장으로 부터 무언가 기다랗게 매달려 있었다. 그림자로만 보아도 알수가 있었다. 사람이였다. 정대표였다. 경비아저씨는 허둥지둥 달려가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천장 샹들리에에 노끈으로 목을 매단 정대표를 경숙이는 달려가서 발을 부여잡고 위로 치켜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였다. 가슴에 느껴지는 정대표의 다리는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렇게 된지 며칠이나 되었는지 정대표얼굴색은 완전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빛 한오리 들어오지 않는 십수년을 살았던 그 익숙했던 공간에서 익숙치 않은 빨간색 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그 공간에서 정대표는 매일 쳐다보던 그 반짝이는 크리스탈 샹델리에에 목을 매였다. 경숙이 한테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현찰을 탈탈 털어서 퇴직금을 만들어준 그날 저녁에. 이후에 일은 경숙이는 잘 기억을 못한다. 경찰들은 와서 이것저것 묻고는 자살이라며 조사를 금방 마감했다. 요즘 이렇게 자살하는 기업가들이 많아서 별로 놀랩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때 잘 나가던 유망한 기업가는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 했다. 있을법한 유서한장도 않남긴채 단호하게 하지만 처량하게 떠났다. 장례식장은 허전했다. 그 예전 매일같이 찾아들었던 유명한 기업가 한테 한수 배울려고 시도때도 없이 찾아들었던 방문객들은 그림자도 않비췄다. 미국에서 들어온 정대표의 아들과 딸은 쓸쓸히 빈소를 지키고 있었고 경숙이는 묵묵히 띄염띄염 들어오는 문상객한테 국밥을 날라주면서 거들어줬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장소에서 또 한무리의 빚쟁이들이 와서 정대표 아들딸 멱살을 잡고는 돈 갚으라고 저렇게 무책임하게 죽을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한동안 난리를 피우고 갔다. 착해보이는 정대표 아들은 울면서 미안하다고만 했다. 딸은 몇번을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삼일장을 그렇게 쓸쓸히 보내고 정대표는 한줌의 재가 되었다. 정대표의 아들딸은 엄마의 유골함을 들고 다시금 미국으로 떠났다. 자식들 가까운데 계시고싶어 했던 엄마의 유골을 가까운데 수목장을 하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자식들과 떨어질 일 없이 맨날 맨날 새끼들 보면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는것 또한 나쁘지는 않겠다고 경숙이는 생각했다. (이제는 마음편히 쉬세요..정대표님~) 경숙이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빌었다.

정대표의 빚은 다행이 아들딸한테 물려지지는 않았다.대한민국에는 상속포기할수 있는 권리가 있어서 재산상속을 포기하면 그 빚상속 또한 같이 포기되었다. 정대표의 집이며 차 등 재산은 경매에 부쳐져 일부 빚으로 상환이 되었고 그걸 보면서 경숙이는 어쩌면 그게 정대표가 자살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대표의 죽음은 경숙이 한테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한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쉽게 끝을 맺을수 있는지 몰랐다. 경숙이네를 위해 떠나기를 선택한 엄마가 생각났다. 두 사람 다 자식들을 위해서 자식들이 좀더 편하라고 그 최후의 선택을 한것이였다. 엄마가 돌아가셨을때 경숙이는 많이 슬펐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고 여기까지 왔다.자신은 장녀였고 밑에 책임질 동생도 있었고 엄마의 기대를 저버릴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대표의 죽음은 경숙이한테 다른 식의 충격이였다. 한때 그렇게 멋있던 유능하던 자신의 본보기였던 사람이 그런식으로 생을 마감할줄 예상도 못했다. 한평생을 열심히 똑똑하게 살아오신 분이였다. 외환위기가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였다. 그런데 왜 아무 죄 없는 우리의 정대표가 죽음을 선택했어야 하냐 말이다. 그동안 피나게 노력하고 이 사회에 기여하고 했던 부분은 다 무용지물이였고 다 부질없는 짓이였다. 삶이란 무었인가? 이리 될줄 알았으면 왜 그리 열심히 살았던가? 과연 이렇게 사는게 맞기는 한걸가? 경숙이 마음속엔 점점 더 많은 의문과 자신에 대한 불신의 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확고했던 노력하고 또하고 기회를 잡으면 결국은 성공에 이를것이라는 그런 믿음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경숙이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너무너무 우울했고 그 어떤 희망도 즈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하늘은 무심하기만 한데 굳이 왜 그리도 열심히 살아야 한단 말인가.

경숙이 마음속엔 검은색 늪이 생기기 시작했다. 밑도끝도 모르겠는 그 검은색 늪이 경숙이의 의지와 열정을 서서히 삼켜버렸고 그 속에 빨려들어 경숙이는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한없이 한없이 가라앉아 이젠 더이상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눈을 떠볼 힘조차도 없었다. 경숙이는 끝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버렸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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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48.♡.5
dew80 (♡.228.♡.82) - 2018/12/21 09:50:21

작가님 글은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참 박식하신 분인거 같아요.
어쩜 경숙이 사연뿐 아니라 지난 30년을 그렇게 잘 풀어서 쓰실수 있는지...
탄복합니다.
다음회 기대합니다.

kim제니하루 (♡.34.♡.209) - 2018/12/21 10:09:55

오늘도 또 래일 작품을 기대하게 됩니다.이전에 아이메품 소리 들어지만 이렇게 엄중한건 저희는 관심도 없엇는대 오늘은 그당시 사업가들 얼마나 힘들엇다는걸 마음속 깊이 느꼇습니다.정대표 아깝네요.

이쁜아짐 (♡.131.♡.162) - 2018/12/21 10:48:11

IMF 그때 참 많은 분들이 무너졌었죠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대기업들이

철수하면서 조선족들도 일자리 잃고

작가님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해브꿋타임 (♡.167.♡.131) - 2018/12/21 10:52:05

정대표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잘살아보세839 (♡.164.♡.104) - 2018/12/21 11:03:10

정대표님 안됐습니다.경숙인 어떻게 깊은 절망의 늪에서 헤여져나올까요? 담집 기대합니다.

핑핑엄마 (♡.194.♡.121) - 2018/12/21 11:05:15

쌰하이, 한국바람, 변호사에 관한 관점, 아엠에푸 또 그리고 인생철학 등등이 담겨있어 참 무게와 가치가 있어 보이는 글입니다.작가님이라고 불러도 하나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글을 참 멋지게 잘 쓰시네요. 저는요 막 작가님 직업이 궁금합니다.매일 매일 고대하게 되는 글입니다.

해피아이디어 (♡.239.♡.11) - 2018/12/21 11:25:20

오늘 글은 더없이 마음이 무겁네요.
엄마로서 기업가로서의 정대표님의 인생, 평범한 엄마로서의 주인공 어머님의 인생,
걸어온 길은 서로 다르지만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만은 똑같네요. 눈물이 납니다.

글에서 아이엠에프에 관한 내용을 보고
요즘 한국에서 <국가부도의 날>이 방영되고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사람들은 상처가 잊혀질쯤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되는것 같아요.

<어제의 교훈을 잊지말자>
오늘의 글을 통해 경제사공부를 더 강화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뷰티불미너 (♡.90.♡.189) - 2018/12/21 17:37:46

정대표가 안타까워 눈물이 나네요!

미요니 (♡.235.♡.204) - 2018/12/21 18:05:21

수고하셧어요

해피투투 (♡.37.♡.93) - 2018/12/21 19:01:24

항상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monica (♡.104.♡.159) - 2018/12/21 20:52:16

매일 매일 제일 기다려지는 연재 입니다. 주말에도 기대하는건 무리 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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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죽으나사나
2024-01-28
1
170
여삿갓
2024-01-28
3
522
죽으나사나
2024-01-28
1
159
죽으나사나
2024-01-27
1
158
원모얼
2024-01-27
8
973
죽으나사나
2024-01-27
2
153
죽으나사나
2024-01-26
2
175
원모얼
2024-01-26
5
717
죽으나사나
2024-01-26
1
124
죽으나사나
2024-01-25
1
146
죽으나사나
2024-01-25
1
164
죽으나사나
2024-01-24
2
159
죽으나사나
2024-01-24
2
160
원모얼
2024-01-23
3
335
죽으나사나
2024-01-23
1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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