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22)

혜원1008 | 2018.12.22 12:33:53 댓글: 11 조회: 2752 추천: 16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3799847

나 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혜원

5 장 새삶의 꽃

(1)

1997년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야말로 국가부도를 맞을수 있는 그런 상황에까지 직면했고 외환부족에 국가는 결국 외환거래 금지조치까지 취했고 수많은 무역회사들이 무너졌다. 거기에 은행들은 순식간에 금리를 최대치로 인상했고 한 때 잘 나가던 서울신사들 강남사장님들은 순식간에 수억대의 빚을 떠안게 되었다. 뉴스는 매일과 같이 한강에서 혹은 어느 옥상건물에서 아니면 집에서 누가누가 어떤식으로 자살을 했다고 보도를 했다. 한동안 정부에서는 한강다리양쪽으로 그물을 칠가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삶에 희망을 잃고 차디찬 강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건져낼수 있을가 하고 말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IMF를 터뜨렸고 외국자본이 대량 흘러들었고 외국계 대기업들은 원하는대로 조건들을 만들어 가지고 쳐들어왔다. 총질을 한다고 폭탄을 터뜨린다고 전쟁인게 아니였다. 머리좋은 현대인들은 번쩍거리는 달러들을 싸들고 인구 채 5천만밖에 않되는 이 자그마한 나라를 집어삼켰다. 경제적으로 말이다. 그때 부터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주변국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90년대초반 그 작은 몸집으로 세계대국들과 나란이 하던 어깨가 점점 위축되어갔다.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주섬주섬 주어 모으면서 새 삶을 새 인생을 계획하고 있을때 경숙이는 집에서 손바닥 만한 자신의 방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커텐을 두껍게 쳐놓은 방안엔 해빛이 들길이 없었고 대충 드러누운 경숙이는 지금이 몇시인지 며칠이 흘렀는지 관심이 없었다. 머리속은 계속 흐리멍텅 했고 잠이 든 것인지 깨어 있는것인지 모를만큼 뿌연 안개속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누워있기만 했다. 처음엔 꼬르륵 꼬르륵 배꼽시계가 재촉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동안 지나니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몸이 병이나야지 사람이 죽어가는게 아니였다. 마음의 병은 가끔 몸을 좌지우지 해 건강하던 몸을 며칠만에 병나게 만들수도 있었고 그건 곧 죽음으로 이를수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나름대로 흘러만 갔다. 누군가 방 문을 정신없이 두드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엔 그냥 꿈속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져서 집이 무너질듯한 울림을 주었다. 경숙이는 귀찮아서 그냥 저러다 말겠지 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좀처럼 멈출줄 모르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결국 경숙이는 눈을 떳다. 며칠만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알수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날려고 했으나 기운이 없었다. 경숙이는 거의 기다싶이 해서 두 손으로 벽을 집고 간신이 문고리를 돌렸다. 이윽고 문이 확 열리고 시원한 바깥바람과 함께 누군가 경숙이 앞에 떡하니 자리차지하고 섰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채 알아보기도 전에 경숙이는 다시금 쓰러졌다.

우진이는 사실 경숙이를 포기한적이 없었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으나 언제나 경숙이만 눈에 보이면 심장이 쿵쾅거렸고 명치끝이 지끈거리며 저려왔다. 그러한 부분은 경숙이가 누구인지 알기전보다 알고난 뒤에 더 심해졌다. 사실 가슴이 아팠다. 저렇게 어리고 여린 여자가 이 타향에 와서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저렇게 자기마음을 꼭꼭 닫아걸고 가시돋힌채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같아서는 그냥 무작정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자기의 뜨거운 심장으로 저 얼어붙은 경숙이 마음을 다 녹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그 성탄절이브날 그 사실들을 다 듣고 멍청하게 그자리에 굳어져서는 그건 괜찮다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도 못한 병신같은 자기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어떻게 다시 다가가야 하는지 방법을 찾을수가 없었다. 우진이가 할수 있었던건 그냥 경숙이 등뒤에서 묵묵히 바라보는것뿐이였다. 바보처럼...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경숙이가 학교에 나오지를 않았다. 처음엔 그냥 볼일이 있어서 며칠 쉬나 했는데 일주일이 넘어가기 시작해서부터는 웬지 불안했다. 거기다가 팀과제 같이 하는 동급생 여자애는 경숙이가 알바로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고 그 대표가 돌아가셔서 경숙이가 힘들어 하드라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며칠만 정리하면 돌아오겠지 마냥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론 가서 위안이라도 해줘야 하는것아닌지 찾아가도 되는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그렇게 며칠이 더 가고 교수님은 자꾸 수업에 빠지는 경숙이 한테 학점 영향이 있을거라고 전해주라고까지 하셨다. 더이상 참을수가 없게된 우진이는 경숙이 한테 함 찾아가보기로 했다. 경숙이는 학교근처 원룸빌라에 세들어 살고 있었고 그 위치를 우진이는 안다. 하지만 정확히 어느 집인지는 모르는 상태라 빌라 밑에서 경숙아~ 경숙아 하고 목이 터져러 불러댔다. 한참을 불렀으면서도 대답이 없자 이 방법으로는 도저히 않되겠다고 생각한 우진이는 복도에 있는 편지함들을 급하게 뒤졌다. 마음속은 점점 더 불안해졌고 급하게 편지함을 뒤지다가 손가락이 긁혀서 피가나는것도 무시한채 정신없이 박경숙이라는 이름을 찾았고 다행이 맨 끝에309호 경숙이 한테 공과서통지서가 한장 있었고 우진이는 정신없이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곤 무작정 문이 부서져라 두드려댔다. 웬지 느낌으로 알수가 있었다. 경숙이가 안에 있다는것을.... 그렇게 두드리기를 수십분 손바닥이 아려올때즘 누군가 문을 열었고 집에 들어설려는 찰나 얼굴이 핏기 하나도 없이 창백한 경숙이가 우진이쪽으로 쓰러졌다. 우진이는 바보 같이 밍기적거린 자기자신을 한없이 원망했다. 언녕 와봤어야 했다. 중국에서 왔다고 했는데 이 한국에 아는사람이 많지도 않을것인데 몇년을 함께 일했다는 대표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원망을 하면서 우진이는 경숙이를 들쳐 없고는 가까운 응급실로 냅다 뛰었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경숙이가 다시금 눈을 떳을땐 온통 하얀색으로 뒤덥힌 병실이였다. 창문으로 비춰들어온 해빛이 너무나도 눈부셔서 한순간 경숙이는 자기가 천당에 온줄 알았다. 하지만 침대 옆에서 삑삑 거리는 심장 혈압측정장치에서 나는 소리가 아직은 경숙이가 살아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침대 옆에는 먼 검사서 같은걸 뒤적이는 잘생긴 청년도 앉아있었다. 우진이였다. 눈을 뜬 경숙이를 본 우진이는 안도했다는 듯 누워있는 경숙이를 와락 껴안았다.그리곤 채 말릴새도 없이 뛰어가서는 의사를 불러왔고 이것저것 추가로 검사하던 의사는 청진기를 내려놓으며 이젠 시름놓아도 된다고 하고 병실에서 나갔다. 경숙이는 급성영양실조라고 했다. 말그대로 너무 오랫동안 굶어서 아사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때 혈압이 40도 채 않되는 상태여서 좀 더 늦게 발견했더라면 정말로 죽었을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우진이는 경숙이의 생명의 은인인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우리의 경숙이는 한동안 우울해했다. 우진이는 그런 경숙이를 극진히 보살폈다. 수업이 끝나면 경숙이한테 뛰어와서는 죽치고 있었다. 쫓아낼수도 없을만큼 능청스럽게 들러붙었다. 찰거머리 같다고 경숙이가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우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진이는 경숙이의 삶에 막무가내로 쳐들어와서 한자리 차지했다.

우진이덕이기도 하고 더이상 아버지를 걱정시키기도 미안하고 그리고 우리의 경숙이는 의지력이 강한만큼 서서히 마음의 병을 의겨나갔다.경숙이는 차차 기운을 차렸고 다시 학교에 나가 수업도 듣고 여러가지 알바자리 찾아서 생활비도 벌고 했다. 우진이는 꽤 사는 집 아들인거 같았다. 생활비는 지가 다 대준다고 큰소리 쳤지만 경숙이는 자기 고집대로 수업끝나고 학교구내식당이랑 근처 식장에서 서빙알바랑 닥치는대로 일을 찾아서 했다. 처음엔 그냥 우진이가 저라다가 말겠지 했다. 하지만 우리의 잘생긴 이 청년은 꽤 끈기가 있었고 무슨 신념이라도 생긴것마냥 경숙이한테 공을 들이고 또 들였다. 결국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하듯이 경숙이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우진이가 적어준 시 한구절에 그만 이제까지 쌓아왔던 마음의 성이 와르르 무너졌더랬다. 그날 우진이가 들고온 장미 한송이에 매달려 있던 자그마한 카드에 적혔던 그 시구를 경숙이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경숙아~ 넌 나의 꽃이야!

나도 너의 소중한 무엇인가 되고 싶어~

인생에 더이상 사랑이란 없을거라는 예측은 그렇게 빗나갔다. 1997년 한국 전국민이 우울에 빠져 한없이 차갑고 쓸쓸한 한해를 보낼때 경숙이 옆은 우진이라는 사람이 지켰고 경숙이는 지난 20여년의 삶을 통털어 최고의 사랑을 맛볼수 있었다. 그대는 누군가 한테 꽃이였던적이 있는가? 한 사람한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것은 참으로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느낌이였다. 더 이상 화려한 말도 화려한 선물도 필요없었다. 그들의 사랑은 순수했고 열정적이였고 단순했지만 상상할수 없을만큼의 힘이 있었다. 경숙이는 그런 사랑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았다. 잊은지 오래된 자기가 여자라는 그런 믿음 또한 다시 찾았다. 우진이는 경숙이가 자기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제일로 강인한 그래서 빛이 나는 그런 꽃이라고 했다. 처음엔 그저 귀 간지런 입발린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들은 그런 마음에 대한 믿음은 한없이 큰 사랑의 힘이 되어주었다. 7년전 경숙이는 철민이라는 한국남자를 만나서 이 세상에 없을법한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에 대한 남자에 대한 믿음에 자기가 여자라는것까지 지웠더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쌓아온 상처는7년뒤인 그때 우진이라는 똑같은 한국남자를 만나서 서서히 치유돼가고 있었다. 세상은 무서우리 만큼 공평하지 않은가?!

우진이는 항상 든든했다. 자기가 남자니까 자기한테 기대라고 하면서 경숙이의 모든것을 책임질려고 하였다.그리고 우리의 우진이는 로맨틱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주인공만큼 잘생겼고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처럼 이벤트라는것도 많이 해줬다. 가끔 같은 컬러의 면티를 사들고 와서 같이 입고 다니자고 졸랐고 튀는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경숙이지만 그런데 서서히 물들어 갔고 사귄지 3개월이 넘어갈때즘엔 두사람은 커플티에 커플신발에 손깍지까지 끼고 대학 캠퍼스에서 뭇학생들의 부러움의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산책까지 했다. 물론 많은 여학생들은 경숙이를 질투하기도 했지만 머 그런것즘은 두사람한테 일도 아니였다. 사랑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1998년 졸업을 몇달 앞두고 두 사람은 아예 살림을 합쳤다. 어차피 우진이는 경숙이 자취방에서 살다싶이하였고 그 때 마침 떠들석하게 유행되었던 구성애선생님의 성해방이라는 주제를 받들어 대학생들이 너도나도 자취방을 얻어 동거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리 이상한것도 아니였다.두 사람의 신혼살림은 참 깨가 쏟아졌었다. 우진이는 경숙이의 모든부분을 사랑했다. 몸에 있는 상처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우진이는 경숙이가 해주는 중국요리들에도 환장을 했다. 처음 경숙이가 중국식으로 토마토와 계란을 볶아줬을때 그 맛을 보곤 환성을 질렀었다. 이건 그냥 요리가 아니라고 이건 동서양의 아름다운 하모니이며 색과 향과 맛과 의미까지 완벽한 이 세상 요리가 아니라고 극찬을 했다. 사랑은 입맛도 바꿔줄수 있었다.우진이는 대학 졸업하면 해외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그때 되면 우리의 경숙이를 데리고 같이 간댄다. 경숙이는 좀 걱정되기는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쨋든 그때의 마음은 우진이가 가는데면 그게 지옥이라고 해도 따라갈 생각이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경숙이도 우진이를 많이 사랑하고 의지 하였다. 우진이와 함께한 매일매일이 천당이였다. 아주많이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할수록 웬지 모를 불안감은 계속 커져만 갔다. 이런 행복을 잃을것만 같다는 생각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그 날 경숙이는 여느때와 같이 대학구내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정신없이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같이 일하던 후배가 밖에 누가 찾아왔다고 나가보라고 전해주었다. 경숙이는 대충 손을 씻고는 식당 문밖에 나갔고 거기엔 어떤 우아한 연세가 좀 있는 여자분이 서있었다. 그 분은 자기가 신우진의 엄마라고 소개를 했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 경숙이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얘기를 좀 나누자고 하는 우진이의 엄마를 따라 경숙이는 식당앞 좀 떨어져 있는 벤치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 어뜩하지? 어디까지 알고 온걸까? 무엇이라고 답해야 하지?) 경숙이는 떨리는 손을 힘주어 맞잡고 애써 진정하며 우진이 엄마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아가씨가 우리 우진이랑 동거한다면서요. 우진이 한테 얘기 들었어요.> 우진이 엄마는 말투도 굉장히 우아 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진이 아버지는 연세대의 대학교교수님이라고 한다. 우진이는 막내아들이고 위로 형이랑 누나가 각 한명씩 있다는것까지는 경숙이도 알고 있었지만 그 형이랑 누나가 다 대기업에 해외지사에 파견나갈정도로 짱짱한 실력파이며 우진이네는 엄청 잘나가는 집안이라는것을 경숙이는 알지 못했다. 아마 우진이가 의도적으로 말을 않했을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왔다는 우리의 경숙이가 그것까지 안다면 우진이 마음을 받아줬을리가 없으니 말이다. <우진이가 대학졸업하면 영국으로 유학가기로 되어 있는데 지금 아가씨랑 같이 갈거라고 고집부려서... 사실 아가씨 동의 없이 제가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머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우진이를 떠나주세요. 우리 집이 그렇게 꽉막힌 집은 아니지만 어찌어찌해서 외국며느리를 데려오는것까진 이해를 하겠는데 이혼녀까지는 그것도 그런식으로... 미안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아가씨를 받아줄 마음이 없습니다.> 우진이 엄마는 끝까지 우아함을 지켰다. 욕한마디 섞지 않고 언성한번 높히지 않았지만 마디마디 칼날이 되어 경숙이 심장에 찔렸다. 다 듣고 난 경숙이는 도리여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이리 될줄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진이 엄마는 사정도 덧붙였다. 늦은 나이에 막내아들을 가져 귀하게 키운 자식인데 지금 그 아이가 이 여자 아니면 자기는 결혼도 유학도 않간다고 했다고 한다. 제발 경숙이한테 우진이 인생 가로막지 말라고 부탁까지 하고는 갔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따귀를 갈기고 물뿌리고 돈따발 면상에 던지는 그런 드라마틱한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경숙이는 충분히 치욕스러웠고 절망스러웠다. 우진이 엄마가 떠나고 난뒤에도 경숙이는 멍하니 그 벤치에 앉아 있었다. ‘도망가자고 할까라고도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렸다. ‘제발 우리 아들 앞길은 막지말아 주세요라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우진이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앞에 둔 유망한 청년이였다. 거기에 영국에 유학다녀오고 아버지의 빽에 형과 누나의 도움까지 받으면 인생은 그야말로 꽃피울수 있는 기회로 가득한 사람이였다. 하지만 경숙이를 선택하면 어떻게 될가? 결국 부모 형제와 다 사이가 멀어지고 대학 간신히 나와서는 그 어떤 배경도 없이 출퇴근을 해가며 뼈빠지게 일해서 처자식 먹여살리는 불쌍한 가장이 되어 늙어가겠지... 대부분 사람들은 그리 사니까 괜찮겠지 라고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 모든게 경숙이때문에 포기한것이라면 경숙이는 과연 그렇게 늙어가는 우진이를 보면서 행복할수가 있을까?

결국 경숙이는 떠나야만 했다. 머리속이 백지장이였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명확했다. 우진이가 잘되게끔 해줄려면 경숙이가 멀리멀리 떠나야만 했었다. 결심이 서고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경숙이는 마치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것처럼 한달음에 자취방에 뛰어가서는 서둘로 짐을 쌋다. 지금 우진이는 친구들과 팀과제를 한다고 학교에서 한창 바삐 보낼시간이였고 경숙이한테는 도망칠시간이 충분했다. 그렇게 캐리어 하나에 짐들을 다 싸담고는 문을 나서기전 마지막으로 지난 몇달동안 한없이 행복했던 우진이와의 보금자리를 한번 더 눈에 담았다. (내 평새에 다신 이런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을거야) 경숙이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애써 참을려는 눈물은 것잡을수 없이 흘러떨어졌고 경숙이는 쪽지 조차도 남기지 않은채 이세상에 존재한적이 없는 사람인마냥 우진이의 인생에서 깜쪽같이 사라졌다. 우진이는 열병환자처럼 허둥지둥 정처없이 경숙이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휴학계까지 내고 핸드폰번호까지 정지시켜놓고 작정하고 사라진 경숙이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었다. 처음엔 엄마한테 울부짖으면서 따지기도 했었다. 반드시 엄마가 무언가를 했을거라고 단정을 지을수가 있었다. 자신이 엄마한테 여친에 대하여 말한 며칠뒤에 경숙이가 없어졌으니까 경숙이랑 같이 알바하던 애가 그날 어떤 여자분이 찾아왔었단 말도 들었으니 말이다. 모진 말들을 듣고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진채 울면서 떠낫을 경숙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와서 견딜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컷던 만큼 그 고통또한 너무 크게 다가와 맨정신으로는 버틸수가 없었다. 그 뒤로 한동안은 술로 버텼다. 매일 매일 술이 흥청망청 취한채 경숙이랑 같이 살던 빌라밑에 가서 경숙이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그리곤 앓아누웠다. 고열이 며칠 지속되고 잠결에 헛소리까지 해댔다. 우진이네 집에선 귀한 막내아들을 그렇게 잃는줄 알았다. 그때 어디서 왔는지 보내는 주소가 없는 편지가 한통 날아왔다. 편지속엔 한수의 시가 있었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미당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우진이는 알수가 있었다. 그건 경숙이가 보내는 마지막 메세지라는것을... 끝끝내 우진이는 그 끝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사랑음 짧지만 강열하게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끝사랑이였다 ..그게.. 경숙이한테는...

사랑은 아름답다.끝나버린 사랑일지라도 가슴시리게 아름다웠다. 언젠간 끝날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사람은 태초에 그리되게끔 만들어졌었다. 사람 인()자를 유심히 바라보라. 꼭 두사람이 서로서로 기대여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세상이란 삶이란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제 아무리 용감한 자라고 해도 오로지 혼자일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데이고 사랑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사랑을 찾아서 나선다. 그래서 마침내 사람이() 된다. 그 과정은 험난하고 힘들다.책에 쓴것처럼 우리들의 발목마다에 삼신할매가 묶어놓은 빨간 연줄이 보였으면 참으로 쉬웠을텐데 그렇지가 않은이상 우리는 아파하면서도 부딪히고 싸우면서도 서로 맞춰가며 내 반쪽을 찾을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 결국은 아주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닳는다. 그건 찾는다고 찾아지는게 아니라 언젠가 눈앞에 척 하고 나타나서 피해갈수 없을만큼 강력한 인연이라는 힘에 의하여 서로 묶여지는 과정이라는것을... 그러니까 괜찮다. 모든게 다 괜찮다. 죽지못할 만큼 목을 매던 사랑이 깨여졌다고 해도 목숨을 나눠줄만큼 사랑하던 사람이 떠났다고 해도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한 또다른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것이고 우리 앞에는 아주 아주 예전에 우리한테 이미 점지어준인연이 기다리고 있으테니까...

다음회에 계속......

추천 (16) 선물 (0명)
IP: ♡.167.♡.229
monica (♡.136.♡.121) - 2018/12/22 13:04:47

잠간이나마 행복햇엇네요.ㅠㅠㅠ

해무리 (♡.29.♡.201) - 2018/12/22 13:04:48

글 너무 잘 쓰시네요..
우리 경숙이가 이젠 해뜰날만 남았을거라고 생각했는데...또 이런 고통을 겪네요..
이러면서 성장하는거겠죠...

동해원 (♡.205.♡.40) - 2018/12/22 13:32:36

드라마같은 실화라서 참으로 가슴아프네요...

작가님 오늘도 추천입니다

해브꿋타임 (♡.234.♡.102) - 2018/12/22 13:38:16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 아픈 사랑이네요~

핑핑엄마 (♡.194.♡.121) - 2018/12/22 16:32:51

사무실에서 글 보고 울었습니다.경숙이는 渣男철민이, 优质男우진이, 다음엔 어떤 남자 만날가요? 첫사랑 정호 같은데요.마직막 구절 사랑에 관한 분석 참 의미깊게 잘 봤습니다. 헤원님의 글에 열광하는 일인입니다.

형단 (♡.189.♡.223) - 2018/12/22 17:48:43

너무 슬프네요,너무 짧았던 행복이였네요......

독신남자 (♡.111.♡.233) - 2018/12/22 19:22:51

포인트 마이너스라.

이쁜아짐 (♡.147.♡.242) - 2018/12/22 19:25:33

진짜 드라마틱한 인생이네요ㅠ

해피엔딩이길 바라면서

다음집도 기다릴게요

잘살아보세839 (♡.164.♡.104) - 2018/12/22 20:25:01

두사람 이별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시대에는 그런 선택을 할수밖에 없었죠.가슴 아프네요.

해피투투 (♡.60.♡.134) - 2018/12/22 22:45:45

어린 나이임에도 정확하고 끊고 이음이 명확한 경숙이~~~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louis777 (♡.236.♡.236) - 2018/12/23 02:25:12

시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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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8
1
270
여삿갓
2024-01-18
5
828
죽으나사나
2024-01-18
2
166
죽으나사나
2024-01-18
2
139
죽으나사나
2024-01-17
2
173
죽으나사나
2024-01-17
2
131
죽으나사나
2024-01-15
2
167
죽으나사나
2024-01-15
2
132
죽으나사나
2024-01-14
2
144
죽으나사나
2024-01-14
2
583
죽으나사나
2024-01-13
2
146
죽으나사나
2024-01-13
2
187
죽으나사나
2024-01-12
2
179
죽으나사나
2024-01-12
3
198
죽으나사나
2024-01-11
2
208
죽으나사나
2024-01-11
1
207
죽으나사나
2024-01-10
2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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