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2)

개미남 | 2019.06.12 11:39:23 댓글: 0 조회: 94 추천: 1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com/fiction/3935475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1 - 22.

유키나리가 메구로의 자택에 돌아온 것은 10시를 조금 지났을 때쯤이었다. 다카미네 사오리와의 대화가 재미있게 이어져서 디저트를 다 먹은 뒤에도 커피를 마시며 레스토랑에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대화가 재미있었다는 건 정확하지 않았다. 그녀와 헤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자신이 열심히 이야기를 이어갔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사오리가 식당 경영이며 <도가미 정>에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게 그나마 큰 구원이었다. 거의 그런 이야기만 나누었다.
본심을 말하자면 레스토랑을 나온 뒤에도 다시 어딘가에 데려가고 싶었다. 아자부에는 유키나리가 자주 드나드는 몇 군데의 바가 있었다. 하지만 2차를 가자는 말이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 건 사오리였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런 호의에 슬쩍 올라타는 식의 치사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2차로 바에 갈 거라면 처음부터 분명하게 데이트라는 형식을 갖췄어야 한다는 고지식한 생각이 유키나리에게는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마음속에 후회가 가득한 것도 사실이었다. 다음에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만한 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은회는 이미 끝이 나버렸다. 개업을 앞둔 아자부쥬반 점은 오늘 모두 보여주고 말았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아자부쥬반 점의 오픈 날에 초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아직 조금은 먼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런 날에는 혹시 그녀가 와준다 해도 유키나리 자신이 너무 바빠서 느긋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은 채, 유키나리는 집 현관문을 열었다. 널찍한 현관에 마사유키의 검은 가죽구두가 키를 맞춰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마사유키는 거실에서 뭔가 서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각 체인점의 영업 상태를 보여주는 데이터일 것이다. 요즘 아버지는 요리사가 아니라 완전히 경영자가 되었구나. 하고 유키나리는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 기미코가 부엌에서 나왔다.
"어서 오너라. 저녁은 밖에서 먹고 왔니?"
"응, 아는 사람을 만나서."
기미코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 꼬리를 늘어뜨렸다.
"그럼 연락을 해야지. 네 몫의 생선회를 따로 챙겨놨는데."
"아, 미안. 그 사람에게 아자부쥬반 점포를 안내하고 그 길로 식사하러 가는 바람에 깜빡 연락하는 걸 잊어버렸어."
마사유키가 서류에서 얼굴을 들었다.
"아자부쥬반 점을 외부인에게 보여줬단 말이야?"
"뭐, 괜찮아요. 일부러 감출 일도 아니고, 게다가 그 사람, 나한테는 좋은 조언자예요. 아버지도 본 적이 있지요? 다카미네 사오리 씨."
"아, 그 아가씨?" 잠시 생각을 더듬은 얼굴이더니 마사유키는 유키나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아가씨하고 꽤 자주 만나는구나?"
"자주, 라고 할 정도는 아니구요. 오늘은 그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난번 사은회에서 도중에 몸이 안 좋아 돌아갔다는 손님. 내가 말했었죠? 실은 그게 그 아가씨였어요. 그때 집까지 바래다줬는데, 그 답례를 하겠다고 해서요."
"에이, 그런 거였어?" 그러면서도 마사유키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였다.
"꽤 예의 바른 아가씨구나. 어떤 사람이지?" 기미코가 물어왔다.
아차, 일이 귀찮게 됐다. 하고 유키나리는 생각했다. 사오리와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옛날부터 기미코는 유키나리가 여자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꼬치꼬치 캐묻곤 했다. 가령 그 여자가 유키나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인물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와인 파티에서 알게 된 아가씨야. 아직 학생. 그 외에 자세한 건 몰라."
"함께 식사까지 했으면서 아무것도 모를 리가 있니?"
"이번 체인점 때문에 젊은 여성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만난 것뿐이야. 그러니 상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필요는 없었지. 그런 짓을 하면 도리어 실례가 된다구요."
"흐응, 그런가?" 기미코는 뭔가 미심쩍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뭘 자꾸 캐묻고 그래?" 옆에서 마사유키가 말했다. "새 점포에 관한 건 유키나리에게 전적으로 다 맡겼어. 어떤 방식으로 식당을 꾸려갈 것이냐 하는 건 이 녀석 자유라고. 그러니 젊은 아가씨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도 있겠지. 뭐."
남편의 말에 기미코는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엄마도 유키나리에게 여자친구 하나쯤은 생기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런 상대라면 정식으로 엄마에게 소개해줘야 된다?"
"아이 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 유키나리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흥, 이라며 그녀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유키나리는 양복 상의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거, 다카미네라고 했던가? 그 아가씨는 아자부쥬반 점에 대해 뭐라고 하더냐?" 마사유키가 물어왔다.
"아주 마음에 들었나 봐요. 커플에게는 최고의 가게라고 했어요. 기둥을 많이 만든 그 아이디어도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저 공치사 아니야?"
유키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괜한 공치사를 하는 여자가 아니에요. 원래 그녀의 의견을 듣게 된 것도 <도가미 정>의 결점에 대해 중요한 말을 해줬기 때문이거든요. 단골손님이 분위기를 주도하다시피하는 식당은 처음에는 들어가기가 힘들다. 그 이야기는 했었죠?"
"히로오 점 얘기지? 그건 분명 따끔한 지적이었어."
"기탄없는 의견을 들려주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젊은 여자라면 더욱 그렇죠. 그래서 그런 만남은 잘 유지해나갈 생각이에요."
마사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변명은 할 필요없다. 나는 네 어머니하고는 달라서 네가 누구하고 사귀건 전혀 상관하지 않을 거야."
변명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유키나리는 꾹 참았다. 자꾸 열을 올려 아니라고 하면 도리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 다카미네 씨가 우리 하야시라이스도 아주 좋다고 했어요. 정말 맛있다고 하던데, 하긴 그 아가씨. 다른 추억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니까 그 얘기는 반쯤 접어 들을 필요는 있겠지만."
"다른 추억이라니?" 마사유키가 노안경 틈새로 눈을 치켜뜨며 아들을 보았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네 양식당에서 먹은 하야시라이스하고 맛이 아주 비슷하다나 봐요."
노안경 안쪽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그 안경을 마사유키는 벗어냈다.
"뭐라는 식당이라더냐?"
"식당 이름까지는 안 물어봤어요. 친구네 부모가 하는 가게였다는 것만‥‥‥. 아, 요코스카에 있는 가게라고 했는데."
"요코스카?" 마사유키의 눈이 험상궂어졌다. "틀림없냐?"
"틀림없어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왜요. 어디 짚이는 데라도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마사유키는 아들의 얼굴에서 눈을 돌렸다. 그 시선은 허공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는 다시금 유키나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밖에 다른 얘기는 듣지 못했어? 그 식당에 대해."
"하야시라이스의 맛이 비슷하다는 것뿐이예요. 하지만 그것도 그녀의 착각인지 모른다고 했어요. 그게 너무 어릴 적 이야기라는 모양이니까요."
"어른이 된 뒤로는 그 식당에 가지 않았다는 얘기냐?"
"그럴걸요?" 그렇게 대답하다가 유키나리는 중요한 것을 생각해냈다. "그렇지. 그 식당, 이제는 없어졌대요."
"없어졌어? 어째서?"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돌아가셨어‥‥‥?" 마사유키가 헉 숨을 삼킨 것처럼 보였다. 입을 꾹 다문 채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사고로 그랬다고 했단 말이지?"
"예.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 라고 중얼거리고 마사유키는 다시금 애먼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왜 그래요. 아버지? 그 식당에 대해 알아요?"
유키나리의 물음에 마사유키는 문득 정신을 차린 듯한 표정을 했다.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냐, 그 반대지."
"반대라뇨?"
"동종업계의 소문은 이래저래 내 귀에 들어오게 마련이야. 지금 네가 말한 그런 식당이 없었나. 하고 새각해본 참이다. 하지만 역시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어. 내가 모르는 식당이야."
예예. 하고 유키나리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기미코가 부엌에서 나왔다. 접시를 들고 있었다.
"상할까봐서 죄다 깎았어. 많이 먹어둬라."
접시에 담긴 것은 배였다. 아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남았던 것을 모두 다 깎아 내왔는지 양이 상당했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유키나리는 포크로 쿡 찔러 입에 넣었다. 달콤했다.
"우리 하야시라이스와 맛이 비슷하다니, 그건 말도 안 돼." 기미코가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
"왜요?" 유키나리가 물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거든. 너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네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그렇죠, 여보?" 마사유키에게 동의를 청했다.
"그런 얘기는 하지 마."
"하지 말기는요? 이번에 유키나리가 개업하는 가게에서 그 하야시라이스를 대표 메뉴로 할 거잖아요? 그렇다면 얼마나 고생스럽게 만들어낸 것인지 똑똑히 알려줘야죠."
"그만하라잖아!" 마사유키는 분명하게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대로 거실을 나가버렸다.
"혹시 내가 무슨 기분 상하실 말을 했나?" 유키나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맛이 비슷하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내가 한 말이 아니야. 다카미네 씨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 것뿐이지."
"그게 안 좋다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니? 네 아버지의 하야시라이스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야. 다른 어느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어. 그걸 알고 있다면 그런 젊은 아가씨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건 당장 알아봤어야지."
"거짓말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마세요.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
하지만 기미코는 양보할 기미 없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얘기를 했으니 그야 당연히 거짓말이지. 네 마음을 끌어보려고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한 거야."
"내 마음을 끌려고? 아니, 설마."
"당연히 그거야. 오늘만 해도 그래. 그 아가씨 쪽에서 전화를 했다면서? 이러니저러니 이유를 달아서 네 연인이 되려고 그러는지도 몰라. 조심해야 돼."
두 조각째 배를 입에 넣으려던 유키나리는 그대로 포크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를 쏘아보며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그만 먹을 거야?"
"그 아가씨,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고 거실을 나와버렸다.
자신의 방에 돌아와 상의를 수납장에 넣을 때, 안쪽 호주머니에서 선물상자를 꺼냈다. 사오리가 준 소믈리에 나이프였다. 그것을 가만히 쥐고 있으려니 저절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기미코의 말을 반추했다. 네 연인이 되려고 하는 거다ㅡ.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유키나리는 생각했다.

시즈나의 보고를 듣고 고이치는 저도 모르게 끄응, 신음이 터져나왔다.
"유키나리는 그 하야시라이스가 언제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른단 말이지? 이거, 우리가 잘못 짚었네."
"그 식당이 인기를 끌게 된 건 하야시라이스 덕분이라고 말했으니까 분명 그 조금 전 아닐까?" 시즈나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추측은 내가 요코하마 쪽의 <도가미 정>을 조사했을 때부터 말했어.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건 추측이 아니라 뒷받침이야. 도가미 마사유키와 <아리아케>가 관련된 건 하야시라이스밖에 없으니까."
"이제 더 이상 유키나리에게서 뭔가 알아내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 아버지 쪽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
"접근해서 어떻게 할 건데? 그 하야시라이스를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려고? 그자가 만일 범인이라면 그걸 순순히 말해줄 거 같아?"
고이치의 물음에 시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맥 빠진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형이 지난번에 최후의 수단이 있다고 했지?" 침대에서 책상다리를 틀고 있던 다이스케가 말했다.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을 때는 최후의 수단이 있다고. 그걸 좀 알려줘."
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직 얘기할 단계가 아냐."
"그래도 14년이나 지난 일이야. 이제는 증거 같은 건 하나도 남지 않았을 거라고. 내 눈을 믿는다고 말했잖아? 내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어. 범인은 그자야. 도가미 마사유키라고."
하지만 고이치는 대답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는 건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엇다.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에조차 경찰은 변변한 단서 하나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터에 범인 스스로 그런 것을 자기 주위에 지금까지 놔두고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을 쓸 경우, 뒤로 물러서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내처 앞으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실패했을 경우에는 오히려 자신들이 경찰에게 쫓기게 될 터였다.
그것을 감행해야 할지 어떨지, 고이치는 생각했다. 큰형으로서 두 동생의 장래에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이치는 눈을 떴다.
"시즈나. 그 이야기는 물어봤어? 도가미 마사유키가 요리사 수업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
"<도가미 정>을 개업하기 전의 일? 물론 물어봤지."
"어디서 요리사 수업을 했는지, 유키나리가 알고 있었어?"
"응. 그건 알고 있었어. 기치조지 쪽에 있던 식당이래."
시즈나는 침대 위에 던져두었던 가방을 끌어당겼다. 거기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왔다.
"잊어버릴까봐서 유키나리에게 메모를 해달라고 했어. 이 식당 이름의 한자. 시로가네야. 라고 읽는대."
고이치는 메모를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白銀屋"라고 적혀있었다.
"기치조지에 있던, 이라고 하는 걸 보니 지금은 없어진 식당인가?"
"그건 모른대. 유키나리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모양이야."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라고 중얼거렸다.
"어쩔 생각인데?" 다이스케가 물어왔다.
"최종 확인을 할 거야. 그게 끝나면 결행하자구." 고이치는 두 동생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최후의 수단을 꺼낼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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