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4)

개미남 | 2019.06.12 11:42:45 댓글: 0 조회: 47 추천: 1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com/fiction/3935477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1 - 24.

"나는 그거 잘 모르겠어. 사설 도박이란 게 뭐야? 텔레비전 같은 데서 들은 적은 있지만 전혀 모르겠어." 시즈나가 침대 위에 벌렁 누운 채 물어왔다. 다이스케가 애용하는 베개를 두 팔에 껴안고 있었다.
"사적으로 경마 도박을 하는 거야." 다이스케가 말했다.
"사적으로? 돈을 걸고 자기들이 키운 말을 경주에 참가시키는 거?"
"어휴, 아니지. 그런 사치스런 놀이가 아니라고.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도 나는 모르겠단 말이야." 시즈나는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고이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보통 하는 경마는 알고 있지?" 고이치가 물었다.
"그 정도야 알지. 어떤 말이 이길 것인지 예상해서 마권을 사고, 그게 맞아떨어지면 상금을 받는 거잖아?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사설 도박단이라는 건 그 마권의 매매를 사적으로 중개하는 자들을 말하는 거야. 어떤 말이 이길 것인지 손님이 예상해서 마권을 주문하겠지? 그러면 그 주문대로 마권을 구입해서 그게 맞아떨어지면 그에 해당하는 상금을 손님에게 내줘."
시즈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집었다.
"요컨대 마권을 사러 가기가 귀찮은 손님을 위해 대신 사다준다는 거야?"
"손님으로서는 그런 메리트도 있겠지."
"그래서 그 수수료를 받아먹는 거구나?"
"아니, 기본적인 수수료를 받는 게 아냐. 그런 돈을 요구하면 손님은 자기가 직접 사러 가버리겠지."
"그럼, 다방에 손님을 모으기 위해 그런 서비스를 해줬다는 얘기인가?"
고이치는 시즈나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음, 혹시 적발되면 아마 그런 식으로 변명했을 거야."
"아이, 뭐야. 그게? 무슨 말이냐구.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봐."
"사설 도박단의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지금 말한 건 가장 기본적인 것, 하지만 그런 거라면 도박판 주인은 전혀 이익이 없어. 손님 쪽에서도 자기가 직접 마권을 사러 나가는 수고가 줄어드는 정도의 메리트밖에 없을 거고. 그러니까 일단 도박판 주인은 마권이 맞아떨어졌을 경우의 배당금을 정규보다 한참 크게 잡아. 경마 같은 공영 도박은 마권 금액의 4분의 1가량을 운영 경비로 처음부터 떼어가기 때문에 100엔을 따더라도 실제로는 75엔밖에 받지 못하는 셈이야. 그런데 사설 도박판에서는 이 경비를 낮춰서 계산해주기 때문에 배당금도 불어나. 그러니 손님으로서는 사설 도박판을 이용할 메리트가 생기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도박판 주인아저씨는 손해를 볼 거 아냐."
시즈나가 도박판 주인아저씨. 라고 말한 게 재미있어서 고이치는 웃었다.
"손님이 주문한 대로 마권을 사들인다면 당연히 손해가 나겠지. 하지만 손님의 의향을 무시하고 자기들 생각대로 마권을 사들이면 어떻게 될까? 손님의 예상은 빗나가고 자기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지면 배당금은 자기들 것이 돼."
"하지만 자기들의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도 있을 텐데?"
"물론 그렇지. 그러니까 확실한 방법은 손님에게서 주문을 받을 만큼 실컷 받고. 실제로는 마권을 사지 않는 방법이야. 이렇게 하면 마권비가 통째로 도박판 주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돼."
"손님의 마권이 맞으면 어떻게 해?"
"그럴 경우에는 배당금을 내줄 수밖에 없어. 하지만 실제로는 마권이란 게 그렇게 척척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야. 손님의 예상이 맞는 일도 있겠지만 대개는 빗나가는 일이 많아. 길게 보면 반드시 도박판 주인이 돈을 벌게 되어 있어. 마권이란 게 그런 거야. 그러니 일본 경마협회가 그렇게 돈을 벌어들이지. 물론 만에 하나라는 일도 있으니까 손님이 고액 배당의 마권을 주문했을 경우에는 도박판 주인도 보험 삼아 실제로 구입하기는 할 거야."
고이치가 해주는 설명을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려는 듯 시즈나는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한참 뒤에야 빙그르르 몸을 돌려 반듯하게 누웠다.
"뭐라고 했지. 그 다방?"
"<썬라이즈> 말이야?"
"응. 그 <썬라이즈> 다방에서 했던 게 그런 일이었다는 거야?"
"대충 그 비슷한 짓이었지." 고이치는 의자를 빙글 돌려 컴퓨터 모니터 쪽으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신문기사 검색 사이트에 연결하고 있었다. "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 ㅡ이 다방에서는 점원이 손님의 주문을 받아 전용전표에 경주번호와 마번의 예상을 기입하고 그 반권(半券)을 건네주는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이긴 손님에게는 정규 배당금보다 5퍼센트 높은 상금을 지급했지만, 실제로는 마권을 구입하지 않았다ㅡ. 어때, 내가 설명해준 대로지?"
"그래서, 아버지가 거기에 빠졌었다는 얘기?" 시즈나의 얼굴이 흐려졌다.
고이치의 얼굴이 심각한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고객 리스트에 이름이 있었으니까 단골이었다는 얘기겠지."
시즈나는 고개를 흔들며 품에 안고 있던 베개를 벽을 향해 내던졌다.
"그딴 거, 나는 못 믿어. 아버지가 경마를 했었다니. 나는 전혀 모르는 얘기란 말이야."
고이치는 다이스케와 서로 마주 보았다. 시즈나의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색깔이 배어 있었다. 아마 자신도 똑같은 표정일 거라고 고이치는 생각했다.
"시즈나, 너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어." 다이스케가 불쑥 말했다.
시즈나가 몸을 일으키며 다이스케를 노려보았다.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다이스케는 대답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고이치에게로 던져왔다. 제 입으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이치는 컴퓨터 책상에 팔꿈치를 짚었다.
"아버지. 도박광이었어. 특히 경마라면 정신이 없었어."
"아니, 나는 그런 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시즈나의 말투는 강경했다.
"그러니까 시즈나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이야기라니까. 식당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항상 경마장에 갔어.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아, 엄마 말로는, 돈을 잃으면 화가 나서 술을 마시고, 돈을 따면 땄다고 신이 나서 지갑을 털고 오기 때문이래. 그것 때문에 항상 부부싸움을 했어. 하지만 아버지는 그만두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 그건 그만뒀다는 거 아니야?"
"그만 뒀지. 학교 작문시간에 그 얘기를 써냈거든."
"작문?"
"어휴, 형. 그 얘기는 하지 마." 다이스케가 크게 팔을 내둘렀다.
"그 얘기를 안 하면 시즈나가 어떻게 알아듣겠냐?" 고이치는 시즈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다이스케가 학교 작문시간에 그런 얘기를 썼어. 우리 아버지는 쉬는 날만 되면 경마를 하러 나가서 너무 서운하다. 우리와 좀 더 놀아줬으면 좋겠다. 하고 쓴 거야. 그 글을 읽은 담임선생이 일부러 우리 식당에 찾아오셔서 어떻게 좀 해주실 수 없겠느냐고 했어. 그러니 아버지도 그만 마음을 접었던 모양이야. 다시는 경마를 안 하겠다고 우리하고 엄마에게 약속했어."
"거짓말‥‥‥."
기억 속의 아버지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인지 시즈나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다이스케가 혀를 찼다.
"이런 걸 거짓말해서 뭘 어쩌겠냐? 학교 작문에 왜 그런 이야기를 썼느냐고 나중에 아버지한테 된통 훈나고. 나 혼낸다고 또 엄마가 엄청 화를 내고‥‥‥, 어휴."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고이치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딱히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의 귀중한 한 페이지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그만두지 않았던 거야. 경마." 그렇게 말하고 다이스케는 입술을 깨물었다. "경마장에는 안 갔지만 더 간편한 곳에서 그걸 계속했다는 얘기야."
"엄마 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일요일이면 조합 모임이네 뭐네 해서 자주 나갔어. 경마장에 들락거릴 때처럼 늦게 오는 일은 없었지만, 그러니까 아마 그런 때에 <썬라이즈>에 갔던 모양이야. 게다가 사설 도박장은 전화 주문도 받아주니까 집에서도 할 수 있고."
"형은 언제부터 알았어?" 다이스케가 물어왔다.
"아버지가 사설 도박장에 드나드는 거? 그거야 어렸을 때는 나도 몰랐지."
"그러니까 언제 알았느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걸 알았으니까 (NAPAN)에서 이야기 듣자마자 곧바로 사쿠라기초로 달려간 거잖아?"
다이스케의 질문에 고이치는 일순 말이 막혔다. 가시와바라와 연락하고 있다는 건 두 사람에게는 비밀이었다.
"4년 전이야. <썬라이즈>가 적발되었을 때. 아버지 이름이 고객 리스트에 실려 있다고 가나가와 현경에서 연락이 왔었어."
그때까지 벽에 기대고 있던 다이스케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우리 사는 데를 경찰에게 알려줬어?"
"그거, 안 되는 거 아냐?" 시즈나도 얼굴빛이 변했다.
"아동시설 나올 때, 연락처를 남겨놓고 왔잖아. 그 뒤로 몇 번 이사는 했지만.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내가 어디 사는지는 금방 알아내. 별로 안 좋을 것도 없어. 우리 일을 들킨 건 아니니까 걱정 마."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시즈나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었다.
"그때는 강도 살인과의 관련은 찾아내지 못했대?" 다이스케가 물었다.
"경찰이 밝혀낸 건 아버지가 도박장에 3백만 엔의 빚을 졌다는 것뿐이야. 액수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도박장은 판돈을 자꾸 빌려주는 데라서 다음에 돈을 따면 갚겠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더라. 도박장 쪽에 의하면 아버지가 기한까지 꼭 빚을 갚겠다고 했대. 그 차용증도 남아 있어. 살해된 건 그 기한 전이야. 도박장 측에서 아버지를 살해할 동기는 없었다는 얘기지. 하긴 기한이 지났다고 해도 빚진 사람을 살해해서는 아무 의미도 없어."
"오빠, 왜 우리한테 그 이야기 안 해줬어?" 시즈나가 나무라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눈 주위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 아버지가 도박에 빠졌다는 얘기 같은 거,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도‥‥‥." 시즈나는 분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그 <썬라이즈>에 도가미 마사유키도 출입했다는 얘기야?" 다이스케가 말했다.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NAPAN> 주인이 말했던 다방이라는 게 99퍼센트 <썬라이즈>야. 도가미는 배달하러 그 다방에 자주 갔던 거지. 거기서 아버지를 알게 됐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도가미가 배달을 나갔을 때, 어떤 손님이 맛없다고 잔소리했댔지? 그 손님이 아버지였을까?"
"그건 아직 뭐라고도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아버지라면 그런 말을 할 만도 해."
"그렇군. 음식 맛에는 까다로웠던 분이었으니. 다른 식당 음식이 어떻건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았을 텐데." 다이스케는 침대 위에서 책상다리를 틀고 그 참에 팔짱도 꼈다. 음식이 맛없다고 툴툴거린 손님이 아바지라고 단정하고 있는 듯했다. 이윽고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 얼굴을 번쩍 들었다. "앗, 혹시?"
"뭔데?"
"자기네 식당 음식이 맛없다고 욕을 먹고, 그래서 화가 뻗쳐서 도가미가 아버지를ㅡ?"
다이스케는 말끝을 흐렸지만 무슨 뜻인지는 고이치도 알아들었다. 하지만 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정도로 살인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 첫째로, 그렇다면 도가미가 <아리아케>의 하야시라이스를 만들어낸 게 설명이 안 돼."
아, 그렇지. 하고 다이스케는 중얼거렸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아버지와 도가미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을 거야." 고이치는 말했다. "그것도 상당히 긴밀한 사이. 그래서 아버지는 도가미에게 하야시라이스의 레시피를 가르쳐주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그쪽에서 돈을 빌렸는지도 몰라. 레시피는 그 교환조건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아버지는 그때 돈이 급했으니까. 응, 그럴 수도 있겠네." 시즈나도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시기에 도가미도 식당이 잘 안 되어서 돈이 없었어. 아버지에게 레시피는 배웠지만 빌려줄 돈은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
"그래서 살해했다?" 다이스케가 목소리를 높였다.
"야. 목소리가 너무 커." 고이치가 얼굴을 찌푸렸다. "남의 얘기는 끝까지 들으라구. 빌려줄 돈이 없다는 정도로는 아직 사람을 죽일 동기가 되지 않아. 하지만 눈앞에 큰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잘 아는 사람이 큰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랬다면 경영난에 허덕이던 도가미가 좋지 않은 생각을 품었을 만한 충분한 동기가 되지 않을까?"
"누구야. 그 큰돈을 가진 사람이란 게?" 다이스케가 물었다.
고이치는 코를 흥 울렸다.
"그야 당연히 아버지지."
"아버지?"
"아, 알았다." 시즈나가 가슴 앞에서 짝 손뼉을 쳤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아버지하고 엄마가 여기저기 돈을 얻으러 다녔지? 그건 도박장에서 빌린 돈을 갚으려던 것이었고, 그렇게 해서 돈을 다 준비했다면 그날 밤 우리 집에는 3백만 엔이 있었다는 얘기가 돼."
"바로 그거야. 그걸 도가미가 알았다. 이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고이치는 말했다. "어때. 이거라면 동기가 되지 않을까?"
다이스케가 침대에서 펄쩍 내려왔다. 두 주먹을 움켜쥐고 인왕상처럼 버티고 섰다.
"그럼, 결론은 나왔네. 도가미가 범인이야. 이걸로 이제 오케이 아니야?"
"흥분하지 마. 분명 도가미와 <아리아케>는 연관이 있었어. 하지만 그 점 외에는 모두 다 추측일 뿐이야. 그날 밤, 우리 집에 큰돈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어."
"그런 소리 해봤자, 우리한테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답답함을 억누르지 못하겠는지 다이스케는 두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래. 그날 밤에 작은오빠가 목격했던 사람이 도가미 마사유키였다는 건 이걸로 확실해졌잖아? 그밖에 뭐가 더 필요하다는 거야?" 시즈나도 말했다.
"시즈나 말대로 우리는 확신을 가졌어. 하지만 현 시점에서 경찰을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해. 좀 더 확고한 증거가 필요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대체 무슨 수로 확고한 증거를 잡겠느냐는 듯, 시즈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시즈나에게 증거를 찾아내라고 하지 않을 거야. 전에도 말했지? 최후의 수단을 쓰겠다고."
"그게 대체 뭔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묻는 다이스케에게 고이치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더 이상의 증거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뿐이야. 증거를 만들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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