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7)

개미남 | 2019.06.20 11:33:59 댓글: 0 조회: 91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com/fiction/3940361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의혹 - 가가 형사의 기록

이번 사건에서 내가 특히 주목한 것 중의 하나는 범인이 흉기로 문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문진은 히다카 구니히코의 작업실에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히다카의 집을 방문한 당초에는 히다카 구니히코를 살해할 의사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처음부터 살해할 마음이었다면 당연히 그 도구를 준배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를 해왔지만 뭔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살해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경우도 생각할 수 있지만, 방법을 바꾼 뒤에 선택한 수단이 문진에 의한 타격이라는 건 너무나도 계획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역시 범행은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것이었다고 추리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히다카 집안의 문단속 방식이 마음에 걸리게 된다. 제1발견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집 현관 및 히다카 구니히코의 작업실 문은 잠겨 있었다.
이 점에 대해 히다카 리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5시 넘어서 내가 집에서 나올 때, 현관문을 잠갔어요. 남편은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면 바깥에서 누가 들어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나름대로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마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감식과에서 지문을 조사해본 결과로는 현관문 손잡이에서는 히다카 부부의 지문밖에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장갑을 낀 흔적도, 천 따위로 닦아낸 흔적도 없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현관문이 잠겨 있었던 것은 히다카 리에가 집을 나설 때 잠가둔 그대로였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또한 작업실 문은 범인에 의해 안쪽에서 잠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현관문의 경우와 달리 명백하게 지문을 닦아낸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점에서 역시 범인은 창문으로 침입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조금 전의 내용과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생각된다. 애초에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범인이 과연 창문으로 침입할까? 무언가 물건을 훔쳐갈 생각으로 침입했다는건 가능성이 낮은 얘기다. 이미 이삿짐이 다 나가서 히다카 가에 훔칠 만한 물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다는 것은 가령 당일 처음 찾아온 사람이라도 금세 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추리가 실은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범인이 히다카 가를 당일 두 차례에 걸쳐 찾아왔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본래의 목적을 위해 현관문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범인은 일단 히다카 가를 떠난 뒤에(정확하게는 떠난 척한 뒤에) 다시 두 번째로 찾아왔다. 그때 그 인물은 모종의 결심을 가슴에 품고 이번에는 창문을 통해 침입한 것이다. 모종의 결의란 말할 것도 없이 살의를 의미한다. 그 살의가 싹튼 원인은 그 전의 첫 번째 방문 때에 생겼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야기가 그렇게 되면 사건이 일어났던 날, 누가 히다카 가를 방문했느냐 하는 점에 가 닿게 된다. 현재 판명된 바로는 두 사람이다. 후지오 미야코와 노노구치 오사무.
우리는 이 두 사람으로 범위를 좁혀서 수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두 사람 모두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었던 것이다.
후지오 미야코는 당일 저녁 6시에 자택에 돌아와 있었다. 그것을 증언해준 것은 약혼자인 나카즈카 다다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의 중매인 역할을 맡은 우에다 기쿠오라는 인물이었다. 다음 달에 치를 예정인 결혼식 절차에 관해 셋이서 상의를 했다고 한다. 우에다는 나카즈카의 직장 상사여서 후지오 미야코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인물이다. 부하직원의 약혼자를 위해 일부러 허위 증언을 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히다카 리에의 증언에 의하면 후지오 미야코가 히다카 가를 나온 것은 5시쯤이었지만, 히다카 가에서 미야코의 자택까지의 거리나 교통망을 고려하면 그녀가 6시에 자택에 도착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후지오 미야코의 알리바이는 일단 완벽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노노구치 오사무.
이 인물에 대해 생각할 때, 다소 사적인 마음이 개입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예전 직장의 선배이며 나의 씁쓸한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로 인해 수사에 영향을 받아서는 이 직업에서도 부적격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되도록 그와 공유한 과거를 객관시하면서 이번 사건에 임할 결심이다.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버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 해결의 커다란 무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노노구치 오사무 자신이 주장하는 당일의 알리바이는 다음과 같다.
4시 20분 경. 후지오 미야코가 찾아왔을 때 그는 히다카 가를 나왔다. 곧바로 귀가하여 6시쯤까지 일을 했다. 6시에 도지 출판사 편집자인 오시마 유키오가 집에 찾아와서 일에 대한 협의를 시작, 잠시 뒤에 히다카 구니히코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8시까지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
노노구치 오사무는 오시마와 함께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 히다카 가로 향했다. 도착한 것은 정각 8시 경.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히다카 리에에게 연락. 그녀가 올 때까지 가까운 찻집 '램프'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8시 40분 경, 히다카 가로 돌아가자 히다카 리에가 막 도착하는 참이었다. 둘이서 집 안으로 들어갔고 사체를 발견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으로 보자면 노노구치 오사무의 알리바이 역시 완벽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도지 출판사의 오시마도, 찻집 '램프'의 주인도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언하였다.
단지 완전히 틈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가 한 진술 중에서 히다카 구니히코를 살해할 찬스를 찾아보자면 필시 히다카 리에에게 전화하기 전일 것이다. 즉 오시마와 헤어져 히다카 가를 찾은 그는 즉시 히다카 구니히코를 살해하고 그 뒤에 몇 가지 조작을 해둔 뒤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피해자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고 추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법의학 팀이 증명해주고 있다. 당일 점심에 히다카 구니히코는 아내와의 쇼핑 도중에 햄버거를 먹었는데, 그것의 소화상태를 통해 추정되는 사망시각은 오후 5시부터 6시. 아무리 늦더라도 7시 이후일 수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역시 노노구치 오사무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건가.
하지만 나는 솔직히 범인은 그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사건 당일 밤에 그가 말했던 별 것 아닌 작은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그가 범인일 가능성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 직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사실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번만은 거기에 매달려본 것이다.
노노구치 오사무가 이번 사건에 대해 수기를 쓰고 있다는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만일 그가 범인이라면 사건의 세세한 부분을 낱낱이 드러내는 그런 글쓰기는 결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수기를 읽는 사이에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기는 실로 정연하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정연하게 기록된 것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읽어나가는 사이에 그 내용이 반드시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깜빡깜빡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 노노구치 오사무의 노림수가 숨어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나는 상상해보았다. 범인인 노노구치 오사무는 어떻게든 경찰의 자신에 대한 혐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할 것이다. 그는 시간에 관한 문제로 자신이 의심을 받으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예전에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 형사였다. 그는 이 사람을 이용하기로 했다. 가짜 수기를 써서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교사로서 미숙했던 사람은 분명 형사로서도 형편없을 게 틀림없다. 이 트릭에 널름 속아 넘어갈 것이다.
이건 그저 잘못된 추리일까.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수사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지나치게 강해서 도리어 진실을 바라보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일까.
하지만 이윽고 나는 그의 수기에 감춰진 몇 가지 함정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또한 우스운 일은 그 이외에는 범인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황 증거까지도 그의 손으로 직접 쓴 기록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현재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은 그의 알리바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말해보자면 그 혼자서 주장하는 것뿐인 알리바이라고 할 수 있다. 6시 넘어서 걸려온 전화가 정말로 히다카 구니히코에게서 걸려온 것인지 어떤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사건에 관한 몇 가지 의문과 수수께끼를 다시 처음부터 점검해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그것들이 실로 단순한 한 줄기 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힌트 또한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세운 추리를 다시 한 번 살펴본 뒤에 상사에게 보고했다. 우리 팀의 상사는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내 생각에 동조해주었다. 상사 역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에서 노노구치 오사무가 수상하다고 내심 노리고 있었던 눈치였다. 그의 수기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밤, 그는 이상하게 흥분하고 유난히 말수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 것이 통상 진범이 드러내는 표정의 전형이라는 것을 상사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증거로군."
상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 점에 대해 나도 동감이었다. 내 추리에 자신감은 있었지만 그것이 상황 증거에만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나아가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동기였다. 히다카 구니히코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노노구치 오사무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보를 수집한다고 해봤지만,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를 살해한 이유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문단에 데뷔할 때에 신세를 졌다는 점에서 히다카는 노노구치 오사무에게는 은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존재일 터였다.
나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노구치 오사무라는 인물의 개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시점의 그는 매사에 냉정하고 모든 것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또한 한 치의 실수 없이 해내는 사람이었다. 학생에게 뭔가 불상사가 일어나는 돌발적인 사태를 직면해도 결코 흐트러지는 법이 없이 과거의 사례 등을 참조해가며 그 시점에서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났다. 나쁘게 말하자면 스스로는 판단을 내리는 일이 없는 매뉴얼주의자였다. 그의 그러한 특징에 대해 어느 여자 영어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해준 적이 있었다.
"노노구치 선생님은 사실은 교사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학생 일로 골머리를 썩이거나 괜한 일로 책임을 지는 건 피하려고 저런 식으로 매사를 최대한 쿨하게 처리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녀에 의하면 노노구치 선생은 한시바삐 교사직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교사들끼리의 술자리에도 좀체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집에서 원고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추측했던 대로 노노구치 오사무는 작가가 되었지만, 실제로 그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당시 그가 내게 이런 식으로 말했던 일이 있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건 착각 위에 성립되는 거야.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착각하고 학생은 뭔가를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지. 그리고 중요한 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행복하다는 거야. 진실을 알아봤자 좋을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거든. 우리가 하는 일은 말하자면 교육놀이에 지나지 않는 거야."
어떤 체험을 바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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