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7)

개미남 | 2019.06.21 14:59:46 댓글: 0 조회: 91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com/fiction/3941366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2.
도서관에서 만난 이틀 뒤, 다에코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병문안을 왔다. 여자아이 세 명, 남자아이 두 명으로 모나미와 특별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라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갑자기 네 이름이 나오지 뭐야? 너무 놀라서 간이 콩알만 해졌어. 처음에는 이름만 똑같은 사람인가 생각했지만, 모나미라는 이름은 그렇게 흔하지 않고 나이도 똑같잖아. 그 다음에는 어떡해야 좋을지 몰라서 엉엉 소리내서 울기만 했어."
고집이 세고 야무져 보이는 가와카미 구니코라는 소녀가 말했다.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사고를 접했을 당시의 충격이 되살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러자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나미, 즉 나오코의 눈도 촉촉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랬겠지. 깜짝 놀랐을 거야. 구니코와 모나미는 언제나 함께 다녔으니까. 크리스마스 때도 너희 집에서 놀았잖아? 게다가 모나미는 뻔뻔스럽게 커다란 케이크까지 선물로 받아오고‥‥‥."
그녀는 콧물을 훌쩍이며 배어나온 눈물을 닦느라 눈언저리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그 애는, 구니코와 친구들에게 무슨 선물을 사갈까 하며 들떠 있었단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말다니‥‥‥."
그녀의 말투는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애틋한 말투로 변해 있었다. 헤이스케는 한순간 목이 메이고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과 다에코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모나미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 그게 말이지. 모나미. 네가 출발하기 전부터 무슨 선물을 사올지 고민하지 않았니? 그것은 이 아빠도 기억하고 있단다. 안 그러니. 모나미?"
모나미의 모습을 빌린 나오코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즉시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처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참. 그렇지. 얘들아. 걱정 끼쳐서 정말 미안해."
그녀는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쓰러움과 애틋함을 담은 눈길의 다에코가 모나미의 손을 잡으면서 물었다.
"이제 몸은 완전히 괜찮은 거니?"
"예. 선생님 덕분이에요.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요."
"머리가 아프지는 않니? 교통사고라는 건 원래 시간이 지나야 여러 가지 증상이 나온다고 하더구나."
"예.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요. 물론 나중에 증상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요. 어쨌든 이제 스키 버스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나요."
본인은 조심해서 말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나미의 말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녀답지 않았다. 다에코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즉시 맑은 미소로 되돌아왔다.
"새 학기부터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렴.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최고니까. 아플 때는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된단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어요."
모나미가 다시 고개를 숙였을 때,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꽃다발을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 이거. 선물로 가져왔는데."
"어머나!"
나오코의 얼굴이 아침 햇살처럼 갑자기 환하게 빛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은 꽃이 아니라 소년을 향했다.
"어머! 넌 이마오카잖아?"
"응!"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깜짝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모나미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머! 정말 많이 컸구나! 지난번에 만난 것은 분명히 2학년 때‥‥‥."
"꽃이 정말 예쁘구나."
헤이스케가 꽃다발을 받으면서 황급히 끼어들었다. 그냥 두었다가는 그녀의 입에서 얼토당토않은 말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꽃은 퇴원한 다음에도 집에 꽂아두자꾸나. 흠, 정말 예쁜데. 안 그러니, 모나미?"
"예? 아, 너무 예뻐요. 꽃병을 사야겠군요."
그 뒤에도 잠시 대화가 계속되었지만 모나미의 기묘한 말투는 그다지 고쳐지지 않았다. 본인은 어떻게든 어린애처럼 말하려고 시경 쓰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가중시켜 헤이스케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많은 분들이 위로의 선물이나 격려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제대로 인사하려면 역시 답례품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초등학생 꼬마가 과연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라는 말을 사용할까 생각하면서 그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어색한 순간이 끝나고 드디어 다에코와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병실에서 나가자마자 그는 몰래 뒤를 쫓아갔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구니코였다.
"모나미, 조금 이상하지 않니?"
"그래. 우리 엄마처럼 말하던데."
다른 여자아이가 맞장구를 치자 다에코가 아이들을 설득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긴장해서 그래. 그리고 얼마 전까지 말을 하지 못해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거야."
"아아, 그렇구나. 모나미, 정말 불쌍하다."
울먹이는 구니코의 말에 다를 아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아이들 나름대로 납득한 것 같아서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병실로 돌아갔다. 앞으로는 아이들처럼 말하라고 모나미에게, 아니 나오코에게 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실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안에서 소리를 죽여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황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나미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작은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살며시 그녀의 등을 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나오코."
"미안해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밀물처럼 슬픔이 밀려왔어요. 그 아이들은 세상에 모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잖아요. 갑자기 그 아이들도 모나미도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잠자코 아내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이런 때는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머릿속은 텅 빈 공백이 되어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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