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ㅡ가장 단순한일을 하는사람

뉘썬2뉘썬2 | 2024.04.11 22:35:48 댓글: 2 조회: 138 추천: 1
분류단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0292

이책은 단비씨를 생각하면서 산 책이예요.우리같이 메트에대해 연구해봅시다.

ㅡㅡ


원제ㅡ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지음/김희정.조현주 옮김

2024년 발행

2008년 가을.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한 저자는 미술관을 찾는
각양각색의 관람객들을 관찰하고 푸른제복아래 저마다 사연을지닌 동료경비원들과 연대하며 차츰
삶과죽음.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나간다.

ㅇㅣ책은 가족의 죽음으로 고통속에 웅크리고잇던 한남자가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얻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냇ㄷㅏ.

<세상을 살아갈힘을 잃어버렷을 때 나는 내가아는 가장 아름다운곳에 숨기로햇다.>

ㅡㅡ

인적없는 회랑을 순찰하며 그림과 대화를 나누는 저자의 발길을따라 나는다시 메트에서 낯선고독을
어루만지던 그시절로 되돌아갓다.이책은 미술관의 그림을 지킨 이야기같지만 사실은 예술을통해 제
마음의 소중한 부분을 경호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ㅡ곽아람.

관객으로서 미처 알지못햇던 작품들 이면의 이야기와 이이야기들을 지키는 사람의삶을 관조할수잇
는 이책은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기분을 선사한다.

ㅡ김소영

잊을수없을 정도로 아름답다.슬픔에빠진 그를 위로해준 오래된 명화만큼이나 빛나는 예술작품들.

AP통신

ㅡㅡ


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하층의 경비원배치 사무실앞에 빈 예술품 운송상자들이 쌓여잇다.1층의 무
기와 갑옷전시관 바로 아래에잇는 사무실이다.놓여잇는 운송상자들은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이여서
커다란 박스처럼 생긴것도잇고 캔버스처럼 폭은넓고 두께가 얇은것도잇다.

그러나 하나같이 위풍당당하고 옅은색의 가공하지않은 원목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희귀한 보물
혹은 이국적인 야수까지도 담아 운반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듯 보인다.근무복을 입고 출근한첫날 이
견고하고 낭만적인 물건들 곁에서서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일들을 하게될지 상상해본다.그러나 지금
당장은 ㄴㅏ를둘러싼 모든것에 너무 강렬하게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들지않는다.

한 여자경비원이 나를 데리러왓다.나의사수 아다다.키가크고 밀짚 같은 머리를가진 그녀는 동작도
갑작스러워 마치 마법에걸린 빗자루가 움직이는것처럼 보인다.그녀는 낯선억양으로(핀란드계일까?)
인사하며 내 짙은 푸른색 상의에 떨어진 비듬을 털어내고는 근무복이 잘맞지않는것에 눈살을 찌푸린
.그러고는 운송중인 예술품 우선이라는 경고표지판들ㅇㅣ 붙어잇는 노출 콘크리트 복도쪽으로
휘휘 손짓하며 나를 데려간다.성배하나가 카트에 실린채 미끄러지듯이 옆을 지나간다.


우리는 이동식 리프트옆의 닳아빠진 계단을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리프트의 한쪽바퀴옆에는 반으로
접은 데일리뉴스신문과 종이컵,읽던곳을 접어둔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한권이 놓여잇다.”지저분
.”아다가 내뱉는다.”개인 소지품은 라커에 보관하도록.”

그녀가 평범한 철제문을 밀어열자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흑백세상에 갑자기 색이입혀지듯 환상같
톨레도 풍경이 우리를 마주한다.감탄할 시간은없다.아다가 걸어가는 속도대로 플립북을 넘기듯
그림들을 스쳐 지나가며 수세기를 넘나든다.

그림의 내용은 신성과 세속을 오가고 배경은 스페인이엿다가 프랑스가 되엿다가 네덜란드엿다가 다
시 이탈리아가 된다.마침내 우리는 높이가 2.5미터에 달하는 라파엘로의 대작 성좌에앉은 성모자와
성인들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여기가 첫근무지인 C구역이야.”아다가 말한다.”우리는 10시까지 여기에 서잇어야해.그다음은 저기.
11
시에는 저쪽A구역으로 갈거야.조금씩 돌아다니거나 서성거리는건 괜찮지만.친구.우리자리는 여기
.명심해.자 그다음에는 커피를 마시러 갈거야.여기가 당신의 전속근무지지?옛거장의 회화전시실.”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그러면 운이좋은거야.”

그녀는 계속 말을잇는다.”결국에는 다른곳으로도 배정받게 되겟지.고대 이집트 전시실에 서잇다가
갑자기 잭슨폴록으로 보내질수도 잇고.하지만 처음몇달간은 당신을 여기로 배치할거야. 나중에는 흠
아마 근무일의 60퍼센트 정도만 여기서 일하게 될테지.여기서 근무하는 동안에는..”그녀는 발을 두번
구른다.


나무바닥이라 발이 덜 피곤할거야.믿어지지 않을수도 잇겟지만 날믿어.나무바닥에서 열두시간 근무
하는건 대리석바닥에서 여덟시간 근무하는거랑 동급이야.여기서 열두시간 근무는 정말 아무것도 아
니지.발이 거의 아프지도 않을거야.”

우리는 전성기 르네상스 갤러리에 잇는듯하다.모든벽에는 웅장한 그림들이 가느다란 구리선에 매달
려잇다.방자체도 위용이 넘친다.크기는 세로12미터에 가로6미터 정도이고 쌍여닫이식 출입문이 세방
향으로 나잇다.바닥은 아다가 장담한대로 말랑하고 천장은 높다랗고 천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램
프의 불빛이 전략적인 각도로 작품들을 비추고잇다.방가운데에는 벤치가 하나 놓여잇는데 그자리에는
중국어로된 관람객용 지도가 버려져잇다.벤치를 지나니 비여잇어서 더 눈길을끄는 벽위로 한쌍의 철
사가 느슨하게 드리워져잇는 모습이 보인다.

아다가 그것을 의식하고 이야기한다.”벽면에붙은 라벨의 서명을보면..”이곳이 충격적인 범죄현장이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가잇는쪽을 그녀가 몸짓으로 가리키며 말한다.”프란체스코 그라나치 작품이 여
기 전시되여 잇엇는데 보존연구원이 청소를 하려고 가져갓어.그게아니라면 어딘가로 대여돼서 반출
됏거나 큐레이터 사무실에서 살피는중이ㄱㅓ나 스튜디오에서 작품촬영중일수도 잇겟지.누가알겟어.
하지만 어떤경우에도 항상 이런 라벨이 남겨져잇을거야.”

우리는 관람객이 그림에 약 1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쳐져잇는 정강이높이의 방지선을따라 서
성이며 관리해야하는 다음전시실로 들어간다.이곳에서는 보티첼리가 가장 유명인사인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는 더많은 피렌체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이 들어차잇는 조금작은 세번째 전시실이 잇다.

여기까지가 오전10시까지의 순찰영역이고 이후에는 그다음 세개의 전시실로 이동할것이다.”인명과
재산을 보호해.반드시 그순서대로.”아다는 한결같이 스타카토처럼 강조하는 말투로 강의를 이어간다.


이건 복잡할거없는 일이야.젊은양반.하지만 바보같이 굴어서도안돼.항상 눈을열고 주위를 둘러보고
성가신일들을 허수아비처럼 쫓아버려야해.작은사건이 일어나면 알아서 처리해.만약 더 심각한 일이
발생하면 사령실에 통보하고 교육때 배운 프로토콜을 따라야해.우리는 얼간이들이 경찰역할을 하게
만들 때 빼고는 경찰이 아니야.다행히도 그건 자주잇는일은 아니고 아침이니까 우리가 가장먼저 해야
하는일이 몇가지 잇는데..”

라파엘로 전시실쪽으로 돌아간 아다는 까치발을 들고서는 관람객용 계단으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쇠
로 열엇다.그다음 아무렇지도않게 관람객 접근방지용 케이블을 넘어갓다.놀라운 범죄현장을 목격하
는 느낌이다.묵직한 황금색액자 아래에 쭈그려앉은 그녀는 계기판의 스위치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보통은 심야에 근무하는 야간순찰대가 조명을 켜둘테지만 만약 아니라면..”그녀가 스위치 여섯개를
한꺼번에 내리자 우리가 서잇는곳은 길고어두운 터널이되고 벽에걸린 르네상스 그림들은 뿌연 은빛
범벅이 되엿다.스위치를 다시올리자 놀랄정도로 큰 덜컹소리와함께 전ㅅㅣ실들에 차례로 하나씩 불
이들어왓다.

935분정도가 되니 관람객들이 조금씩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옆구리에 낀 포트폴리오로 보아 미대
생인듯한 첫방문자는 전시실에 자기혼자라는 것을 깨닫고 놀란나머지 글자그대로 숨을삼킨다.그녀가
나와 아다를 인원으로 고려하지않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한 프랑스인 가족이 뉴욕메츠라고 적
힌 캡모자를 맞춰쓰고 뒤를이어 들어오자 아다의눈이 가늘어진다.그녀는 우리 방문객들은 대체로 멋
진사람들이지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그림들은 매우오래됏고 손상되기 쉬워.이걸 알고도 사람들은 아주 바보같은짓을 할수잇
.어제는 아메리카 전시관에서 일햇는데 하루종일 사람들이 애들을 세마리 청동곰 동상위에 앉히고
싶어햇어.상상이나 할수잇어?여기옛거장 전시관은 훨씬낫지.아시아 미술전시관만큼 조용하지는 않지
19세기 전시관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야.물론 어디에서 일하든 생각없이 다니는 사람들을 주의해야
.저기좀봐.바로저쪽!”

복도건너편에서 프랑스인 아버지가 방지선너머로 손을뻗어 라파엘로풍의 디테일을 가리키며 딸에게
설명하고잇다.”무슈!”아다는 필요한것보다 약간 더크게 소리친다.”실부플레!그렇게 가까이는 안돼요!”

잠시후 나이든 남자가 익숙한 근무복을 입고 어슬렁거리며 들어온다.”오 잘됏다.우리 훌륭한동료 알
리씨!”아다가 그 경비원을 보면서 말한다.

최고의 경비원 아다!”그는 그녀의 말투를 바로 캐치하고 같은리듬으로 대답한다.알리씨는 자신을 우
리팀의 교대병으로 소개하며 우리를 B구역쪽으로 밀어낸다.아다는 격렬하게 동의하며 묻는다.”알리
당신이 1소대예요?”

“2소대야.”

일ㅡ월휴무?”

금ㅡ토휴무.”

아 그럼 이건 오버타임 근무군요.브링리씨 알리씨는 오늘아침 우리보다 조금일찍 일을시작햇어.
지만 그래서 5시반이면 집에 갈수잇지.이분은 당신이나 나 같은 3소대원처럼 터프하지않아.아름다
운 아내를 보러 집에가야하는 분이지.무슨요일에 일한다고햇지.브링리씨?아 맞다.말해줫지.금토일
.열두시간.열두시간.여덟시간.여덟시간.좋다.긴근무일이 평범해질거고 보통 근무일은 짧게 느껴
질거야.오버타임 근무를 선택하면 3일째에는 무조건 쉴수잇어.우리3소대에 붙어잇으라고.”

이어지는 순찰구역은 13세기와 14세기 이탈이아의 그림뿐만아니라 바로옆 커다란 전시실의 프랑스
혁명시기 그림들까지 아우른 곳이라 우리는 역사의 타임라인을 오르락내리락한다.돌아다니면서 때
때로 아다는 필요하긴 하지만 능력은 자신보다 한수아래로 치는 감시카메라와 경보기의 위치를 알
려준다.


인간 노동자들을 더 대단하다고 여기는 그녀는 우리 경비원들과 거의맞먹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곳의 숨은 조연들을 열거하는데 더 열을 올린다.


관리인.우리의 노조형제자매.진통제를 나눠주는 간호사.한달에 하루밖에 쉬지않는 계약직 엘리베
이터관리인.은퇴햇거나 비번일 때 미술관에 상주하는 소방관두명.무거운 작품을 옮기는인부.더섬
세한 작품들을 다루는 전문아트 핸들러.목수.페인트공.목공기술자.엔지니어.전기기술자.조명기술
자 그리고 우리가 비교적 덜마주치게 되는 큐레이터와 보존연구원.경영진까지.

이모든 것이 매우 흥미롭지만 나는 우리가 1300년경에 그려진 두초의 <성모와 성자>로부터 불과
몇걸음 떨어진곳에서 수다를 떨고잇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수없엇다.오전내내 어떤 그림과도
마주서서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없던터라 나는 4500만달러라고 알려진 이그림의 가격을 화제삼
아 아다의 주의를 이쪽으로 끌수잇을까 고민한다.그러나 아다는 내가 그런 저속한 이야기를 햇다는
사실에 슬퍼할뿐이다.

그녀는 그작은 그림패널 가까이 나를 끌어당기며 속삭인다.”액자하단에 검게그을린 자국들 보이
?봉헌촛불 때문에 생긴 그을음이야.아름다운 그림ㅇㅣ지?이모든게 아름다운 그림들이야.안그
?나는 이사람들.학생들.관광객들..이곳을찾는 모두에게 여기 그림들은 거장의 작품이라는걸 상
기시키려고 노력해.너와나.우리는 거장들과함께 일하는거야.두초.페르메이르.벨라스케스.카라바
.뭐와 비교해서?”그녀는 아래층 아메리카 전시관의 이웃들을 내려다본다.”조지워싱턴의 초상화
?오 제발 말도안되는 소리.”

알리씨가 전시실의 반대편에서부터 양팔로 우리를 익살스럽게 밀어내는 동작을하며 다가온다.그래
서 우리는 유리문을통해 미술관의 그레이트홀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전시실로 밀려난다.옛거장
전시관에서 거의 벗어나다시피한 이곳이 우리가 다음으로 담당할 구역이다.

복잡한 교차로 같은 곳이라 아다는 미라.사진.아프리카가면 등을 찾는 사람들의 요청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고대의료기구나 뭐 그런것들은 없나요?”같은 질문에는 이곳에는 없습니다라고 자신잇
게 대답하며 대화를 끝낸ㄷㅏ.아다는 질문의 수준이 낮은것에대해 내게 양해를 구하면서 주위가 좀
조용해지면 흥미로운 질문들도 듣게되리라 말한다.

드가의 발레리나 조각상으로가는 경로를 능숙하게 설명하고난후 그녀는 나를 툭툭치며 때마침 지나
가는 고급수트 차림의 남자를 가리킨다.”이 전시실의 큐레이터.모건인가 뭔가하는 사람이야.”그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채 우리를 지나 두초의 작품들이 잇는 복도를따라 황급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본다.”사무실로 가는거야.”아다가 설명해준다.”루벤스 전시실의 초인종이 붙어잇는 문뒤에잇어.”
리둘다 그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는다.탁트인 이쪽바깥에서 걸작들과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같은 싸구려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엿다.

11시가 다되여 곧 휴게시간이다.이즈음 아다의 안내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짧은줄이 생겻
고 나에게는 동굴 같은 그레이트홀을 내려다볼 짬이생겻다.관람객들은 연어떼가 강을 거슬러오르듯
이 중앙계단을 올라와 마치 냇물에 박혀잇는 돌인것처럼 나를 빠르게 스쳐지나쳐간다.미술애호가들.
관광객들.뉴요커들이 물밀 듯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는 대신 이계단을 오르내렷던 과거의 많은 시간
들을 떠올린다.


그들대부분은 세상의 축소판과도 같은 이 미술관에서 보낼수잇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다고 느낄
것이다.이곳에서 보낼 나의시간은 더는 짧을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새삼놀란다.

누구도 메트를 처음 방문햇던때는 잊지못한다.그때 열한살이엿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시카고외곽에
잇던 우리집에서 뉴욕으로 여행을 왓엇다.머나멀게 들리는 어퍼이스트 사이드라는 곳까지 지하철
을 타고갓던 긴여정과 동화책같앗던 동네의 느낌이 기억난다.

제복을입은 문지기들.자랑스럽게 솟아잇는 브라운스톤 아파트들.파크애비뉴.매디슨애비뉴에 이어 5
번가까지 넓고유명한 거리들.입구의 넓은 돌계단이 처음본 메트의 모습이엿던것으로 유추하면 우리
는 이스트82번가를 따라 미술관으로 향햇던것같다.돌계단은 어느 색소폰 연주지에게 원형극장무대
가 되여주고잇엇다.기둥이많은 메트의 정면은 고대 그리스양식 같다는 인상이라 놀라우면서도 친숙
햇다.

오히려 마법같앗던 것은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건물이 점점더 넓어보여서 미술관앞의
핫도그트럭과 물을뿜는 분수옆에 서서도 건물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엿다.너비따위
는 가늠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이해햇다.

우리는 대리석 계단을올라 문지방을 넘어 그레이트홀로 들어섯다.전형적인 모린형인 어머니는 자신
이 적정기부금을 내기위해 줄을서는동안 로비를 돌아다녀보라고 독려햇다.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못
지않게 웅장한 모습의 로비는 기차역에서 모험을떠날 준비를하는 사람들이 내뿜는것과 맞먹는 에너
지로 가득차잇엇다.


로비한쪽 입구를통해 나는 눈이부시도록 하얀.아마도 고대그리스 시대의것인듯한 조각상들을 볼수
잇엇다.반대편입구 너머로는 모래빛무덤이 살짝 보이는걸로봐서 고대이집트로 가는길이 분명햇다.

정면에는 넓고곧은 장엄한 계단이 마치 범선의 돛처럼 크고팽팽한 형형색색의 캔버스에 닿도록 뻗
어잇엇다.입장권대신 받은 작은 양철배지를 옷깃에 꽂고나니 계단을 오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
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졋다.

미술에관해 내가아는 모든건 부모님에게서 배웟다.대학생때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한 어머니 모
린은 자신의 아마추어적 열정을 형 톰과 누이 미아 그리고 나에게 전도햇다.우리는 적어도 1년에 몇
번씩 시카고 미술관으로 모험을 떠낫다.그곳에서 마치 도둑질을 준비하는 도굴꾼들처럼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고르며 살금살금 걸어다니고는 햇다.어머니는 시카고 극단소속 배우엿는데 시카고 극
단에관해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화려하거나 영화롭기보다 근면과 굳은믿음으로 사
는삶이라는 것을 알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차를타고 시내로 나가면 배우친구들이 그녀를 모린이 아니라 라고 부르며 반기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잇다.또한 공연장의 불이꺼지고 무대조명이 밝아지는 장면을보며 밖에서 울리
는 차들의 경적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이 신성한 놀이가 계속될수잇는 충분한 공간이 세상에는 늘 잇
다는 것을 깨닫던 날들이 생생하다.


집에서는 어머니의 큰침대ㅇㅔ 다함께모여 모리스센닥의 그림책을 읽곤햇는데 거대한 괴물이 튀여
나와 우리 머릿속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게 만드는 이책이 예사롭지않다고 생각햇다.미술은 달빛
가득한 다른세계에 속한다는 인상을 갖게되엿고 여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컷다.

아버지는 좀더완고한 사람이엿지만 우리에게 나름대로 여러교훈을 주엇다.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의
지방은행에서 일햇던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미스터포터들을 본능적으로 경멸하는 현대판조지베일
엿다.아버지는 일과가 끝난후 집에잇던 업라이트 피아노를 몇시간이고 연주하곤햇다.그는 피아노
를 사랑햇다.한동안 자동차범퍼에 피아노라고만 적힌 스티커를 붙여놓을 정도엿다.아버지는 언제
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된 부지런함이라고 말햇다.

그래서 비록 뛰여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햇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산맥인 바흐와 듀크엘링
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않고 연주햇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
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소리로 노래를 불럿다.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생각은 분
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메트를 처음방문햇던 그날 나는 다음 모퉁이를돌면 계속해서 더욱더 놓칠수없는 광경
이 펼쳐질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일행의 선두에서서 엄청난 속도로 미술관을 통과햇다.1880년에 개
관한이래 미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이미술관은 부속건물에 또 부속건물을 이어짓는식으로 무질서하
게 확장돼서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가 난데없이 펼쳐지곤한다.


우리는 꿈속에서 저택을 탐험하듯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방황햇다.방들이 우리앞으로 홀연히 나타
낫다가 뒤로는 소리없이 사라졋고 두번째 방문하는 전시실도 새로운 각도에서 보면 낯설뿐이엿다.
용돌이 같앗던 그날의 방문에서 명확히 기억나는 작품은 단두점이다.그때까지 나는 파푸아뉴기니의
아스마트 부족이만든 나무조각.그중에서도 기둥하나당 사고야자나무 한그루씩을 써서 만든 토템들만
큼 상상력이 뛰여난 작품은 보지못햇다.

그중 내가 가장좋아한 토템폴은 문신을한 남자들을 서로의 어깨위로 쌓아올린뒤 가장위에잇는 남자
의 성기를 야자나무 이파리 모양으로 넓어지도록 조각한것이다.그건마치 세상이 내가 생각햇던것보
다 훨씬더많은 가능성을 갖고잇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앗다.

그리고 옛거장 전시관에서 피터르 브뤼헐의 1565년 작품인 <곡물수확>에 사로잡혀 발걸음을 멈췃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가진 특별한힘에 반응하듯 그위대한 그림에 반응햇다.
시말해서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랏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것이
.


그때는 내가느낀 감상을 말로는 분출할 수가 없엇다.사실 할수잇는말이 별로없엇다.그그림의 아름다
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여서 생각으로 번역하는것조
차 거부하는듯햇다.

그래서 그림에대한 나의반응은 새한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안에 갇혀잇엇다.그감정을 어떻
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수없엇다.어쩌면 지금까지도 늘 어려운일이다.이제는 경비원으로서 수많은
방문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신비로운 감정에 반응하는 것을 지켜볼수 잇게되엿다.

그로부터 7년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뉴욕으로 이사햇다.그가을의 메트로폴리탄 기획전은 우연히도 브
뤼힐의 그림과 판화컬렉션이엿고 나는다시 장엄한 중앙계단을 올랏다.이번에는 노트를 움켜쥔 빛나
는 눈과 야심을품은 학생으로서엿다.평생나는 똑똑한형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신세엿다.나보다
두살위엿던 톰은 말하자면 수학천재엿고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의 부푼꿈을가진 패기넘치는 남동생
쯤으로 여겻다.

1학년1학기 나는 영문학 강좌중에 제목이 가장 진지해보이는 존밀턴 세미나를 수강햇고 12주동안
낙원열두권을 구문별로 해석하게됏다.

겸연쩍음을 안 악마는 그곳에서서 선의 지독 함을 느끼엿네

페이지마다 위와 같은 구절이 나왓고 이것들만 해석하기에도 12주는 족히더 걸릴 것 같앗다.위대한
책과 위대한 예술은 나에게 그렇게 엄청난것으로 다가왓다.

몇과목밖에 듣지않앗던 미술사강좌는 학부수업중 가장설레는 시간들이엿다.강의실의 불이꺼지고
슬라이드 프로젝터가 웅웅거리며 살아나면 스크린위로 성당들.이슬람사원들.궁전들과 같은 세상의
모든 웅장함이 딸깍.딸깍.딸깍소리를 내며 튀여올랏다.르네상스시대의 작은 초크그림이 백배로 부
풀어올라 초기영화의 한장면처럼 밝은 스크린위에서 고요히 진동하는 더 정적인 순간도 잇엇다.

공부를 하면서 겸손도 배웟다고 말할수 잇다면 좋겟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어렷던것같다.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벽화 청소작업에 참여하셧던 교수님께 수업을 받을때면 마치내가 촉망받는 학자가
되여 그현장의 작업대위에 올라선것 같은 기분이 들곤햇다.

브뤼헐 전시회를 방문한날 나는 큐레이터들이 작품캡션에 빼곡히 짜넣은 모든단어를 흡수하는데
열중햇다.첫방문에서 <곡물수확>을 보고 멍해졋던 느낌.유치하고 심지어 바보처럼 여겨지기까지
하는 반응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됏다고 생각햇다.세련되여지고 싶엇던 나는 적절한 학
문적 도구를 갖추고 최신용어를 익히면 예술을 제대로 분석하는 법을 배울수잇고 따라서 예술을
대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햇다.가슴속에서 작은새가 날개짓하는 것이 또 느껴졋나?하지
만 문제될 것은 없엇다.

나는이제 그림의 모티프에 정신을 집중하거나 유파나 화풍을 파악하면서 그묘한 느낌을 가라앉
힐수 잇지않은가.이러한 전략은 소리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인식을 뛰여넘어 현실세계에서
나의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수 잇도록 해줄 언어를 찾기위함이엿다.

하지만 형인톰이 갑자기 병상에 눕게되면서 모든 우선순위가 뒤바뀌엿다.대학을 졸업하고 28
개월동안 나에게 현실세계란 베스 이스라엘 병원의 병실과 퀸스에잇는 방 하나짜리 형의아파트가
전부엿다.졸업후 뉴욕 중심가의 고층빌딩에서 화려한 직장생활을 시작햇지만 정작나에게 아름다
.우아함.상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준 것은 그런조용한 공간들이엿다.

20086.형이 세상을 떠나고나자 나는 내가아는 공간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수잇
는 가장 단순한 일을하는 일자리에 지원햇다.열한살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햇다.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듯햇다.한동안
은 그저 가만히 서잇고싶엇다.

오후에 아다가 내어깨를 잡으며 말한다.”젊은이.이제당신을 혼자잇게 해줄게.당신은 여기잇어.
나는 저기 잇을테니.”그러고는 스페인 전시관쪽으로 사라진다.물론 완전히 혼자남은 것은 아니
지만 지나가는 낯선이들은 별로 동행처럼 느껴지지않고 뉴욕평균크기 아파트 약3천개를 합친
면적의 미술관은 너무도 장황하게 펼쳐져잇어서 이런 전시실정도는 거의 붐비지않는다.

몇분간 C구역에서서 멈춘게 아닐까싶은 느린속도로 시간이 서서히 전진하는 것을 느낀다.나는
앞으로 손깍지를 낀다.뒤로 손깍지를 낀다.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어본다.문설주에 기댓다가 잠시
서성거렷다가 벽에 기대여본다.새끼오리처럼 아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주위를 경계하며 가만
히 서잇는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에 준비가 되지않은듯 안절부절못하고 잇는것이다.

생각해보니 지난몇주동안 형이 죽은뒤 처음으로 내삶이 방향을 잡앗다고 느끼게 해준일들을
지나오고잇엇다.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보고 훈련을받고 뉴욕주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하고
지문을 등록하고 근무복 제작실에서 미술관의 재단사가 내 치수를재고..그리고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것이다.그런데 이제 내가할 유일한일은 고개를 들고잇는것이다.


망을보는 것.두손은 비워두고.두눈은 크게뜨고.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
돌이속에 뒤엉ㅋㅕ 내면의 삶을 자라게하는것.이는정말 특별한 느낌이다.기나길게 느껴진 몇
분이 더지난후 나는 이것이 진정으로 나의역할이 될수잇겟다고 믿기시작한다.

아침은늘 쥐죽은듯 고요하다.더욱이 미술관문을 열기까지 30분정도 남겨두고 근무자리에 도착
하는 날이면 말을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없다.그저 나와 렘브란트.나와 보티
첼리.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명에 달한다.주민들은 596점의 그림속에 살고잇는
데 우연히도 거의 그숫자에 맞먹는 햇수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가장 나이가많은 주민은 1230년대에 태여난 성모마리아와 그녀의 품에안긴 아기예수ㅇㅣ고
가장젊은 주민은 프란시스코 데고야가 1820년에 탄생시킨 초상화속 인물이다.그이후의 그림
들은 여기서 훌쩍떨어진 미술관 남쪽끝에산다.거기는 현대세계가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고잇
는 전시관이다.대외적으로는 기계의힘.자본주의나 독일.이탈리아 같은 이름의 민족국가가 등
장하고 예술계 내부에서는 사진과 튜브에든 기성품 물감이 등장한다.

옛거장 전시관에사는 주민들의 공통점은 이모든 것 이전에 탄생햇다는 사실이다.이쪽주민들
은 칠흑같은 어둠속에 도사린 위험이 발을 들이지못하게 밤이면 성문을 닫는 중세도시에 사는
장인들.실크스타킹 차림에 누구누구 부인을 알현하기위해 애를끓이는 궁정의 신사들이다.
은 신앙심이 두터운 수도사.앞장서서 제국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사람들.막 형성되기 시작한
중산층이 고용할수잇는 비싸지않은 초상화 화가들이다.

그들이 누구엿든간에 현대인들로서는 상상력을 극한까지 펼쳐야 닿을수잇는 사람들이라는건
모두같다.옛거장중 우리시대와 가장근접한 시대에 살앗던 고야만해도 적어도 여덟명의 자녀
를 두엇지만 성인이 되기까지 살아남은건 그중한명뿐이엿다.

전시관을 거닐다보면 낯설고먼 땅의 여행자가 된것처럼 느껴진다.옆구리를 찌르는 동반자도
없이 혼자서 말도 통하지않는 외국도시를 돌아다녀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놀랍도록 몰
입하게되는 경험인지 알것이다.가로등.작은 물웅덩이.다리.교회.1층에난 창문으로 슬쩍 들여
다보이는 광경들에 자신이 녹아서 스며드는 느낌말이다.

살아숨쉬는듯한 이국적인 디테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날개를 퍼덕이는 평범한 비둘기마저 이
상하리만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거리를 걷는다.어딘가 시적이다.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거
리를 누비면 마법은 깨여지지 않을것이다.

일을시작하고 처음몇주는 뇌가반쯤 작동하지 않은듯햇다.정말 그정도로 몰두가 됏기때문이다.
모든그림이 하고 커튼을 열어 안을 보여주는 건물1층의 창문들처럼 보엿다.보통 한 전시실
에는 네면의 벽에걸쳐 열개에서 스무개정도의 금테를두른 창문이 나잇다.어느창문은 돌벽을
단숨에 뚫고 바깥으로 이어져서 굽이치는 언덕과 요동치는 바다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다른창문은 창틀에 턱을받치고 들여다보라는듯 집안의 광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혹은 고개를들면 빤ㅎㅣ 쳐다보는 낯선사람과 눈이 마주치게되는 창문들도잇다.그들은 코를
유리에 박다시피하고 이쪽을 바라본다.

그렇게 조용하던 어느날아침.눈을비벼 남아잇는 졸음을 쫓으며 고개를 들엇는데 바로눈앞에
<스페인왕녀 마리아 테레사>가 잇엇다.작품을 보는순간 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녀와 같
은 공간에 잇엇다는 사실을 감지햇다.그는 허리를 깊이굽혀 절을하고 몇미터 떨어진곳에 이젤
을 세운다음 마법을 부리기 시작햇을것이다.그녀의 총명함을 바로 눈앞으로 가져와 보여주는
마법말이다.정말 독특한 얼굴이다.마리아 테레사는 열네살이라는 나이에 비해서는 어려보엿
지만 나이보다 성숙한 눈을가졋다.

예쁘거나 활발한 편은아니다.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고 무엇을 보여주지도 감추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꽤 솔직하고 침착해보인다.자신의 이상한삶에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그것을 이
상하다고 느끼지못하고 후퇴나 양보에 익숙하지않은 모습.거울에비친 내얼굴을 보듯 그녀의
얼굴이 똑똑히 보엿다.

어떨때는 허수아비로서의 내 역할을 더뚜렷이 의식하게 되기도한다.허수아비라는 단어는 아다
가 쓴것인데 조금더 근사하게 말하면 왕실근위병이라고 할수도 잇을것이다.일을 시작한 다음주.
나는 처음으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잇는곳에 배치됏다.현재 서른네점밖에 남아잇지
않은 귀중한 그의작품들중 어이없게도 메트가 다섯점이나 소장하고잇다.그사실을 아는 나는 허
리를 좀더 곧게편다.이른아침이지만 영국.일본.미국중서부 등에서 온 관광객 몇 명이 그림에 경
의를 표하러 왓기때문이다.


포니테일을 한 예쁘장한 젊은엄마가 1665년경에 그려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초상화앞에
선다.헤이그에잇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잇는 같은테마의 더유명한 그림으로 착각햇을수도 잇
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굳이 설명해서 그녀를 실망시킬 이유는없다.

모두가 규칙을 잘지키고잇다.내시선이 페르메이르가 즐겨그렷던 조용한집안 풍경으로 가서 멈
춘다.뺨을 손으로 받치고 졸고잇는 하녀가 보이고 그뒤로는 잘 정돈되고 텅빈듯한 집안의 모습
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가특유의 빛을받으며 펼쳐진다.그림을 보다가 페르메이르가 포
착한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는 깜짝놀랏다.

가끔 친숙한 환경 그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움이 깃들어잇다는 느낌이 들곤하는데 그가바로 그
느낌을 정확히 포착한것이엿다.그것은 나의형 톰의병실에서 끊임없이 들엇던 느낌이엿고 쥐죽
은듯 고요한 메트의 아침이면 떠올리게되는 바로그느낌이기도 햇다.

일을 시작하고 한달이 지난후 배치될팀이 어디인지 듣기위해 대장의 자리로 향하는데 나답지않
게 마음이 초조햇다.오늘은 괜스레 베네치아 전시실에 배치되기를 원하고잇기 때문이다.아다가
대장책상에 당당한 포즈로 앉아서 진짜대장이 오기를 기다리고잇다.내가 희망사항을 이야기하
자 그녀는 별로 흥미없는 이야기라는듯 고개를 끄덕이는둥 마는둥한다.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소리.철컹거리는 열쇠소리와 함께 싱대장이 나타나다.경험이많아 경비과
의 베테랑으로 통하는 40세의 그는 우리과 소속의 수많은 가이아나계 미국인들중 하나다.싱대
장은 아트핸들러들이 일할구역에 관람객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봉을 세워줄 사람이 잇는지
물엇고 아다가 자원햇다.덕분에 그녀는 배치될 구역을 선택할수 잇엇다.”고마워요.과장님.”그녀
가 말한다.”3팀두번째 조를 맡을게요.”그리고 잠시후 덧붙인다.”그리고 여기 브링리씨가 3팀세
번째조를 맡으면 되겟네요.”

아다는 B구역 소속의 나머지 열네명중 누가 우리팀으로 올지 알게될때까지 남아잇자고 고집
을 부린다.결국 나와함께 일을시작한 열여덟명의 신입중 두명이 우리팀에 배치되엿다.허드슨
밸리 출신의 블레이크는 내또래로 곱슬머리에 책을많이읽는 사람이다.내나이의 곱절은 되는
테렌스는 쾌활하고 떠들썩한 성격으로 가ㅇㅣ아나 출신의 이민자다.나와테렌스는 만나자마자
친구가됏다.하지만 교육기간이 끝나고 그는 중세예술품을 전문으로 전시하는 맨해튼북쪽에
위치한 메트의 분관인 클로이스터스에 ㅂㅐ치되엿다.

오늘은 오버타임 근무를 하느라 이쪽으로 온것이다.나는 블레이크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해왓
는데 별다른 이유가 잇어서라기보다는 그저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여기고 비슷한
또래의 친구를 만들 마음의 준비가 되지않앗기 때문이다.우리넷은 기분좋게 대화를 나눳다.
료들이 얼마나 수월한 대화상대인지 깨닫고 살짝 감명을 받는다.하지만 각자 자리를찾아 네방
향으로 흩어지고나자 마침내 완벽한 고독으로 충만한 하루를 시작하며 짐을벗듯 가벼운 마음
이된다.

베네치아는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자체가 불가능해보일정도의 도시엿다.파도가 철썩이는 118
개의 섬을 연결해서 만든 이도시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밝고 가장선명한 색을 자랑햇다.아프가
니스탄에서 온 군청색.이집트에서 온 청록색.스페인에서 온 적색.심지어 베네치아라는 이름도
바닷물처럼 푸른이라는뜻의 라틴어 베네투스에서 파생한것이다.


16
세기 베네치아의 가장위대한 화가는 티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티치아노 베첼리오다.
치 물웅덩이와 적포도주를 섞어서 색을 빚어내기라도 하듯 그는 자신이 그려내는 광경을 장미
빛으로 감쌋다.나는 그의명작 <비너스와 아도니스>에 다가간다.

이작품은 너무나 아름다운 침묵의 시와도같아서 앞에선 내가 내기분까지 거기에 함몰되여버린
.죽을수밖에없는 운명인 인간 아도니스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는 아마빛 금발의 비너스와 여
신의품을 거부하고 위험가득한 속세로 돌아가려는 자신만만한 젊은이 아도니스.둘중 누가더
아름다운지 고를수가없다.나도 티션이 본 고대의시를 읽엇기 때문에 이야기가 결국 어떻게 끝
나는지 알고잇다.아도니스는 죽고 비너스는 가눌수없는 슬픔에빠져 그의 흐르는 피에서 붉은
아네모네꽃이 피여나도록한다.아네모네라는 이름은 바람에서 태여나다라는 뜻이다.

아직 관람객이 없는시간.나무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전시실안을 걷다가 티션의 또
다른 작품을 발견한다.<비너스와 아도니스>보다 훨씬작고 덜알려진 작품이다.티션이 젊엇을
때 그린 <남자의초상>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애를써서 수정을 많이하거나 공을들인 흔적없
이 너무도 능숙한 솜씨로 완성한 작품이라 마치 햇빛이 어른거리는 연못에 우연히비친 얼굴처
럼 보인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긴머리에 턱수염을 길럿지만 그것들이 그의 천사 같은 얼굴을 가리지는
못한다.온화하고 생기넘치고 젊음으로 가득한 얼굴이다.그는 생각에 잠겨잇으면서도 무슨생
각을 하는지는 자신도 모르는듯하다.표면적으로는 그가 장갑을벗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지
만 단지 짧은찰나를 보는것같지가 않다.그림안의 시간은 한순간에 얼어붙엇다기보다 흘어들
어 고인느낌이다.과거와 미래가 생명력넘치는 현재에 휩싸인듯이 젊은이는 가차없는 시간의
화살을 피할수잇기라도 하는듯하다.

이초상화의 묘한특징을 어느정도는 물리적으로 설명할수잇다.티션은 반투명유약을 겹겹이
발라서 빛이 끊임없이 새로운 느낌으로 흐르고 반사되고 굴절하도록 만들엇다.그러나 작품이
내안에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피할수는없다.그림은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부드럽게 생명으
로 가득차서 그자체로 살아숨쉬는듯하다.살아숨쉬는 기억.살아숨쉬는 마법.살아숨쉬는 예술..
뭐라불러도 좋지만 그자체로 완전하고 밝고 더 이상 단순화할수없고 퇴색하지않는 그무엇이
.인간의 영혼이 그랫으면하는 바로그상태 말이다.

내 라커의 맨위선반에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톰의 사진들이 든 해진봉투가 놓여잇다.그스냅 사
진들과 이그림들 사이에는 큰차이가잇고 나는 왜그런지 이해하기위해 여러사진을 머릿속에서
떠올려본다.결혼식날 턱시도를입은 사진속 톰은 덩치가크고 건장하고 소년처럼 행복한 표정이
.


박사학위 수여식에서는 암 때문에 수척해진몸에 벗겨진 머리를 헐렁한 박사모로 가리며 약간수
줍고 자랑스러운 표정이다.히커리로드의 빨강벽돌집에서 보낸 어린시절에 찍은 스냅사진들도
많다.낙엽더미위에서 뛰고 생일케이크를 먹고 침대위에서 씨름을하는 모습들.포착된 그모든순
간과 수많은 기억은 낡아진 사진들처럼 시간속으로 사라져버릴 듯 위태롭다.

그러나 그모든 것을 합친총합은 그보다 훨씬큰 것 바로 톰에관한 기억을 만들어내서 눈을감으
면 언제라도 떠올릴수 잇는것이된다.그기억은 티션의 초상화와 매우비슷하다.밝고더이상 단순
화할수없고 퇴색하지않는 이미지말이다.

오늘의 첫방문객이 도착한다.나는 경비원이 서잇기에 좋은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그러
면서 미술관에서는 눈을감지않아도 느끼고싶은 것을 느낄수잇음을 깨닫는다.

맙소사! 여기도 예수그림이잖아!”

가장 기억에남는 불평중 하나는 일을시작한지 몇주되지 않앗을 때 듣게되엿다.옛거장 전시관안
에서도 가장오래된 그림들을 소장한 전시실들이 잇는 복도를 순찰하다가 들은말이엿다.전시관
중앙에 나란히난 두개의 널찍한 복도를따라 한쪽에는 이탈리아.다른한쪽에는 플랑드르와 네덜
란드의 후기고딕.르네상스초기 작품들이 걸려잇엇다.


망치로 두드려 얇게편 금박을 입힌 배경에 특수도구를 써서 새겨넣은 후광.잔금이간 유리처럼
크레이징이 잔뜩보이는 표면등으로 구현한 기원후1세기 갈릴리에 살던 한남자에게 집착하는
이그림들은 그냥 나이만 많은게아니라 보기에도 느끼기에도 오래된것들이엿다.B구역에만 210
명의 예수가산다.

관람객의 불만도 이해가된다.그런데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여도 예수의 그림을 정말좋아한다.
전시실을 거닐다보면 우울하지만 유난히 내밀한 가족앨범을 보는 느낌이든다.그중 아기시절의
예수를담은 그림들이잇다.경배.성가족.성모와 아기예수를 담은 그림들말이다.물론 젊은이의 삶
이 변화를맞는 순간들을 포착한 그림들도잇다.침례.황야의 예수가 그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수
난의 여러장면을담은 그림들이 보인다.


수난이라 번역되는 영어단어 ‘Passion’은 원래 고통을받다.견디다.참아내다라는의미다.예로
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종교적자학.십자가에 못박힌예수.수탄.피에타 등이잇다.옛거장들
은 자신이가진 재능과 에너지를 전부쏟아 한사람의 짧고힘든 삶을통해 모든 경의와 두려움을
묘사한것같다.

그런데 이전시실을 다시 지나가다가 이렇게 포착된 예수의 삶중에서 그가설교를 하고다니던 시
.다시말해 그의 말자체가 주역이 되엿던시기는 거의모두 빠져잇다는 사실을 문득깨닫고 충격
을 받앗다.그의설교인 산상수훈을 묘사한 그림은 하나도 보이지않고 교훈을담은 우화를 그리려
는 노력도 거의 찾아볼수없다.옛거장들은 예수의 삶에서 가장반향이 큰부분은 그의인생이 시작
된 지점과 끝난지점이라고 확신햇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부활.승천.왕좌에앉은 그리스도와 같이 초인간적인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를 묘사한 그림
들보다 인간의 육신을 가졋을때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이 대여섯배는 많앗다.그가 고통을 받고
잇는 그림에서는 머리뒤의 후광이 아니라면 그가 인간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힘
들정도다.

메트에 소장된 작품들중 가장슬픈 그림은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박힌예수>일것이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엄청나게 슬픈광경이지만 유난스럽게 묘사되여 잇지는않다.그리스
도의 몸은 위엄을 잃지는 않앗지만 축 늘어져잇다.온화한 우아함이 우러나오는 분위기로 보아
그는 용감하게 고통에 맞섯던듯하다.마리아와 요한은 생각에잠겨 땅에앉아잇다.

두사람은 무엇보다도 지쳐보인다.미친듯 흘러간 하루가 끝나고 남은건 죽음뿐이다.죽음이라는
그 단도직입적인 사실.불가해한 수수께끼.거대하고도 돌이킬수없는 최종적 단호함만이 두사람
을 감싸고잇다.

작품들을 지켜보는 일을하는 나는 이작품을 본래의 의도 대로 바라볼수 잇다는 사실이 고맙다.
14
세기 화가는 언젠가 예술품 비평가라는 직업이나 마술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과서가 등
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햇을것이다.베르나르도 다디에게 그림은 고통스럽지만 꼭해야할 필
요가잇는 생각을돕는 도구엿을것이다.나는 예수의 그림들에서 새롭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찾는
데 관심이없다.

내가이해한건 다디는 고통그자체를 그렷다는점이다.그의그림은 고통에 관한것이다.고통말고는
아무것도없다.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위해 그림을본다.
그렇지않다면 그림의 정수를 보지못한것이다.

많은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듯하다.’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게 전부다.나도 지금이순간에는 고통이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
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잇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사실을 잊고만다.점점 그명확함을 잃어가
는것이다.같은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현실을 다시 직면해야한다.

추천 (1) 선물 (0명)
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IP: ♡.169.♡.51
나단비 (♡.252.♡.103) - 2024/04/11 23:33:54

글을 읽으면서 저도 같이 미술관을 돌아다닌 기분이었어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4/11 23:38:16

소리없는 시각적인 미술은 역사와 현재를 넘나들며 강력한 치유의힘이
잇는것 같아요.가장 아름다운 위로속으로 빠져들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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