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7권 19~20

나단비 | 2024.04.15 13:50:26 댓글: 0 조회: 6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1171
19
불쌍한 애덤!






우나가 집에 왔을 때 페이스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떤 위로의 말도 다 거부하고 있었다. 마사 이모할머니는 애덤을 죽였다. 지금 애덤은 식품 보관실 접시에 놓여 몸통은 꼬챙이에 꽂히고 간이며 심장, 내장은 몸통 둘레로 빙 둘러져 있었다.
마사 이모할머니는 페이스의 비통함이나 분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목사님 점심 상 차릴 것이 필요했어. 넌 늙은 수탉 갖고 야단 떨 나이도 아니지 않니. 언젠가는 그놈을 잡아먹게 되리란 걸 알았잖아.”
마사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집에 오시면 할머니가 한 짓을 죄다 이를 거예요.”
페이스는 흐느꼈다.
“불쌍한 네 아빠를 귀찮게 하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문제가 많아. 그리고 이 집의 가정주부는 나다.”

“애덤은 내 거란 말이에요. 존슨 부인이 내게 주었어요. 왜 애덤을 할머니 마음대로 잡아요.”
페이스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 그만 해. 그 수탉은 이미 잡아버렸어. 징징거려봐야 소용없단 말이다. 우리 집에 처음 오시는 목사님에게 차디찬 양고기나 내놓을 수는 없잖아.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이 나이까지 세상을 살지는 않았다.”
페이스는 그날 밤 저녁도 먹지 않았고, 다음 날에는 교회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점심식사 때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에 성이 나 부루퉁한 얼굴로 식탁에 나와 앉았다.
제임스 페리 목사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불그레한 얼굴에 콧수염과 눈썹이 모두 희고 숱이 많았으며 대머리가 번들번들했다. 분명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고 같이 있으면 금방 지루하고 잘난 체나 할 사람 같았다. 하긴 지금 페이스에게는 페리 목사가 미카엘 대천사 같은 얼굴을 가졌고 천사처럼 상냥한 사람이었더라도 죽어라 밉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페리 목사는 멋진 솜씨로 애덤을 잘랐다. 통통한 흰 손과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드러내보이면서. 애덤을 자르면서 아주 우스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제리와 칼이 킬킬거렸고 우나의 얼굴에도 희미하지만 분명 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나는 예의상 그랬을 뿐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는 음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제임스 목사는 페이스가 아주 못된 아이라고 생각했다. 아까도 제리에게 아주 듣기 좋은 말을 했는데 페이스가 끼어들어 건방지게 대꾸했다. 페리 목사는 페이스를 노려보았다.
“조그만 여자아이가 어른 말에 끼어들면 못 쓴다. 자기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말에 반대나 하면 못 써.”
목사가 말했다.
이 말로 페이스는 더욱더 화가 났다. 자기가 무슨 ‘잉글사이드’의 그 통통한 릴라 블라이드나 되는 듯이 ‘조그만 여자아이’라니! 이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거기다 페리 목사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게 먹기도 잘 먹었다. 가여운 애덤의 뼈까지도 쪽쪽 빨아 먹었다. 페이스나 우나는 한 입도 먹으려 들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애덤을 먹고 있는 남자아이들을 마치 식인종 꼬마들이나 된다는 듯 바라보았다. 페이스는 이 무시무시한 식사가 당장 끝나지 않으면 무슨 일을 내고 말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번들거리는 페리 목사의 머리에 뭔가를 집어던져 버린다든지. 다행스럽게도 아무리 씹는 힘이 좋은 페리 목사라도 마사 할머니의 가죽 같은 애플파이에는 굴복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음식을 내려준 자애로운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자는 페리 목사의 제안에 따라 긴 감사 기도가 이어졌다.
“하느님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요. 하느님이 목사님한테 애덤을 내려준 게 아니라고요.”
페이스가 씩씩거리며 반항적으로 말했다.
남자아이들은 이때다 하며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고, 우나는 마사 이모할머니 설거지를 돕겠다며 부엌으로 갔지만 할머니의 불평만 듣고 쫓겨났다. 페이스는 벽난로에서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는 서재로 숨어들었다. 페리 목사는 자기 방에서 낮잠이나 자겠다고 해서 서재로 가면 보기 싫은 페리 목사를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스가 책을 들고 구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페리 목사가 들어오더니 난로 앞에 섰다. 그러고는 서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어질러진 방 안을 빙 둘러보았다.
“네 아버지 책들이 무척 어지럽게 널려 있구나, 얘야.”
심각한 목소리로 페리 목사가 말했다.
구석에 앉은 페이스의 인상이 굳어졌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저 사람과는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저 피조물과는.
페리 목사는 멋진 시곗줄을 만지작거리며 페이스를 놀리기라도 하듯 말을 계속했다.
“네가 방을 치워야지. 너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었잖니. 내 딸은 나이가 열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집안일을 썩 잘한단다. 제 엄마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어.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모른단다. 너도 그 아이를 알고 지내면 좋을 텐데. 여러 면에서 네가 배울 점이 많을 거야. 물론 너는 훌륭한 어머니의 교육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으니, 서글픈 일이지. 아주 서글픈 일이야. 내가 그 문제로 네 아버지와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다만 아직까지 아무런 효력이 없구나. 하지만 난 네 아버지가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자기 책임을 깨달을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러고 말이다. 너한테는 너희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 맡아서 일을 해야 할 의무와 특권이 있어. 동생들은 네 본을 받을 거란 말이다. 그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주어야 해. 난 네가 그런 문제는 생각해보려고도 들지 않는 게 아닌가 염려스럽다. 그런 면에서 네 눈을 뜨게 해주고 싶구나.”
페리 씨의 느끼하고 자기만족에 겨운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꼭 그다운 일이었다. 법칙을 따지고, 은혜를 베푸는 척하고, 훈계하는 일만큼 그에게 어울리는 일도 없었다. 페리 씨는 말을 멈출 의향도 없었고, 멈추지도 않았다. 그는 난롯불 앞에 서 있었다. 깔개에 발을 굳게 붙이고 서서 젠체하는 진부한 충고들을 홍수처럼 쏟아놓았다.
페이스는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 목사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대신 목사의 긴 검은색 코트 뒷자락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짓궂어 보이는 페이스의 갈색 눈을 보니 뭔가 무지 즐거운 일이 있는 듯했다. 페리 목사는 난롯불에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 그의 코트 뒷자락이 처음에는 오그라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타들어가면서 연기를 피웠다. 하지만 페리 목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전히 자기 이야기에 취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코트 자락에서는 더욱 심하게 연기가 났다.
불타고 있는 나무들에서 조그만 불꽃들이 탁탁 터지더니 가운데에서 불꽃이 확하고 일었다. 거세진 불꽃들은 서로 합해져 연기를 피웠다. 페이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페리 목사는 갑자기 이야기를 중단했다. 버릇없는 페이스의 행동 때문에 버럭 화가 났다. 하지만 목사도 별안간 옷이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 바퀴를 빙 돌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손으로 늘어진 옷자락을 움켜잡아 앞쪽으로 끌어와 보니 옷자락에 벌써 꽤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얼마 전 새로 맞춘 옷인데. 페이스는 페리 목사의 크게 낙심한 모습과 표정을 보고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너는 내 옷이 타는 것을 알고 있었니?”
페리 목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페이스에게 따져 물었다.
“네.”

페이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
페리 목사가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어른 말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하셨잖아요.”
페이스가 말했다.
“내가 네 아버지라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네 엉덩이를 호되게 때려줬을 거다.”
몹시 화가 난 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서재에서 휭 나가버렸다.
그날 저녁 페리 씨는 옷자락이 까맣게 탄 옷을 입고 교회에 가야 했다. 메러디스 씨의 두 번째로 좋은 코트는 몸에 맞지 않아 빌려 입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페리 씨는 평상시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교회 통로를 걸어 설교단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메러디스 목사와 교환 설교 따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페리 목사는 다음 날 아침 역에서 메러디스 목사를 만나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페이스는 여전히 우울했지만 얼마간 만족감을 느꼈다. 이로써 조금은 애덤의 복수를 해준 셈이니까.




20
페이스에게 친구가 생기다






다음 날 페이스는 학교에서도 힘든 하루를 보냈다. 메리 밴스가 애덤 이야기를 다 퍼트려놓아서 블라이드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킬킬거렸다. 여자아이들은 페이스에게 참 안됐다고 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고, 남자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위로의 편지를 써 보냈다. 가여운 페이스는 온통 상처입어 아리고 쑤시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잉글사이드에 가서 블라이드 아주머니와 이야기라도 나누어야겠어. 블라이드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비웃지 않을 거야. 내가 얼마나 속이 상한지 이해해줄 사람과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
페이스는 흐느껴 울면서 생각했다.
페이스는 ‘무지개 골짜기’로 달려 내려갔다. 지난밤에 세상이 마법을 부려놓았는지 땅에는 엷게 눈이 쌓였고 가지마다 눈꽃을 피운 전나무는 다가올 봄의 기대로 즐겁게 꿈꾸고 있었다. 저 너머 기다란 언덕들도, 잎이 다 떨어진 너도밤나무 가지들도 자줏빛으로 변했다. 장밋빛 저녁놀이 분홍빛 키스를 한 것처럼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요정의 마법이 서린 동화나라 중에서도 그 겨울날 저녁때의 ‘무지개 골짜기’가 가장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엾고 상처 입은 페이스에게는 그 꿈같은 아름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개울가에서 페이스는 소나무 고목에 걸터앉아 있는 로즈마리 웨스트를 만났다. 로즈마리는 ‘잉글사이드’에서 쌍둥이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로즈마리는 한참 동안 꿈속을 거닐 듯 온통 하얗게 변한 아름다운 ‘무지개 골짜기’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 떠오른 표정으로 보아하니 즐거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연인 나무’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희미한 종소리가 로즈마리의 입술에 미소를 피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월요일 저녁이면 바람이 세찬 언덕 위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회색 집으로 존 메러디스 목사가 찾아오리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로즈마리의 꿈속으로 느닷없이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페이스 메러디스가 뛰어 들어왔다. 페이스는 로즈마리를 보자 얼른 멈춰 섰다. 로즈마리를 우연히 만났다고 해서 정답게 대화를 나눌 만큼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블라이드 부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페이스도 자기 눈과 코가 부어오른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낯선 사람에게 울고 있었던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미스 웨스트.”
페이스는 머뭇머뭇하면서 인사했다.
“무슨 일이 있었니?”
로즈마리가 상냥하게 물었다.
“아니에요.” 
페이스가 짧게 대답했다.

“낯선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거니?”
로즈마리는 빙그레 웃었다.
그 말에 페이스는 문득 흥미가 생겨 로즈마리를 바라보았다. 이해심이 아주 많은 사람 같았다. 게다가 무척 아름답기도 했다. 깃털 장식 모자 밑으로 보이는 머리는 멋진 금발이고, 벨벳 코트 위로 보이는 뺨은 장밋빛이다. 저 푸른 눈은 또 얼마나 상냥해 보이는지! 페이스는 미스 웨스트가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았다. 낯선 사람이 아니라 친구!
“전 할 얘기가 있어서 블라이드 아주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아주머니는 언제나 절 이해해주시고 비웃거나 하지 않거든요. 전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블라이드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눠요.”
페이스가 말했다.
“어머나, 얘야, 그런데 지금은 블라이드 부인이 집에 없단다. 오늘 에이번리에 가셨는데 주말이나 되어야 돌아오실 거야.”
로즈마리가 안됐다는 듯 말했다.
페이스의 입술이 떨렸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야겠네요.”
페이스가 비참한 심정으로 말했다.
“내 생각엔 말이다. 나한테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은데. 문제가 있더라도 얘기를 해버리면 마음이 후련해지거든. 내가 블라이드 부인만큼 이해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널 비웃거나 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할게.”

로즈마리가 상냥하게 말했다.
“겉으로는 비웃지 않아도 속으로는 그럴지 모르잖아요.”
여전히 페이스는 주저했다.
“아니야. 속으로도 비웃지 않을게. 내가 왜 널 비웃겠니? 네가 무슨 상처를 받은 모양이구나. 나는 남이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란다. 너의 괴로운 마음을 내게 이야기해준다면 기꺼이 들어줄게.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페이스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오랫동안 미스 웨스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은 진지했고 비웃음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눈동자 저 뒤쪽에서도. 페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소나무 의자 위 새로 사귄 친구 곁에 앉아 애덤과 그의 잔혹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로즈마리는 비웃지 않았고, 비웃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진심으로 이해했고 동정했다. 거의 블라이드 부인만큼이나 좋은 사람이었다.
“페리 씨는 목사님이잖아요. 그런데도 그 사람은 고기 자르는 걸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정육점 주인이나 하는 것이 더 나았겠어요. 그 사람은 우리 가여운 애덤을 조각조각 자르면서 너무나 즐거워했어요. 우리 애덤이 무슨 평범한 수탉이나 되는 듯이 잘랐어요.”
페이스가 비통하게 말했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인데, 페이스, 나도 페리 씨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로즈마리는 말하고 나서 방그레 웃었다. 하지만 페리 씨를 두고 웃은 거지 애덤을 두고 웃은 건 아니었으며, 페이스도 그것을 분명히 알았다.
“난 아주 옛날부터 그 사람을 싫어했어. 어렸을 때 페리 씨랑 학교에 같이 다녔거든. 그 사람은 글렌에 살았단다. 그때도 아주 거드름만 피우는 혐오스러운 사람이었어. 여자아이들은 모두들 손을 잡고 빙빙 도는 놀이를 할 때 페리 씨의 그 통통하고 축축한 손을 잡지 않으려고 했지. 하지만 너도 한 가지는 알아야 해. 페리 씨는 애덤이 네 애완수탉인지 몰랐다는 거야. 그 사람은 그냥 평범한 수탉인 줄 알았겠지. 지금 우리는 견딜 수 없이 속이 상해도 그 점만은 알고 있어야 해.”
“그래요.” 
페이스도 인정했다.
“하지만 왜 다들 내가 애덤을 귀여워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미스 웨스트. 고양이라면 못생긴 할머니 고양이였더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요. 로티 워런이 기르던 새끼 고양이가 바인더 기계에 다리를 모두 잘렸을 때는 모두들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로티는 이틀 동안 학교에서 울었지만 아무도 그 애를 비웃지 않았어요. 댄 리즈마저도 비웃지 않았다구요. 친구들이 다 함께 새끼 고양이 장례식에 가서 고양이를 땅에 묻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그 불쌍한 다리도 같이 묻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리를 찾아낼 수 없어서 같이 묻어주지 못했지만요. 물론 그 일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내 애완동물을 먹어치우는 일을 본 것만큼 끔찍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날 비웃었어요.”
“수탉이란 이름이 우스웠던 게 아닐까. 그냥 닭이란 말과는 좀 다르잖아. 병아리가 귀엽다는 말도 우습지않고.”
로즈마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애덤은 정말 귀여운 병아리였어요, 미스 웨스트. 정말이지 그냥 아주 작은 황금 공 같았다고요. 나한테 달려와서 내 손의 모이를 콕콕 쪼아 먹고는 했지요. 애덤은 다 자랐을 때도 정말 잘생긴 닭이었어요. 눈처럼 하얗고 꼬리도 멋지게 꼬부라졌죠. 메리 밴스는 꼬리가 너무 짧다고 했지만요. 자기 이름도 알아서 내가 부르면 언제나 내게 달려왔어요. 머리도 아주 좋았구요. 그리고 마사 이모할머니는 애덤을 죽일 권리도 없다고요. 애덤은 내 거였으니까요. 이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지요, 미스 웨스트?”
“그럼, 공정한 일이 아니지.”
로즈마리도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도 공정하지 않아. 나도 어렸을 때 암탉을 귀여워했단다. 그 암탉은 정말 예뻤어. 온통 황금빛이 도는 갈색에다가 얼룩무늬도 있었지. 다른 애완동물만큼이나 난 그 암탉을 좋아했단다. 그 닭은 잡아먹지 않았어. 나이가 많아 죽었지. 우리 엄마도 내가 그 닭을 좋아하니까 잡아먹지 않았단다.”
“우리 엄마도 살아계셨더라면 애덤이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예요. 아빠도 이 일을 알았더라면 그랬을 거구요. 아빠도 정말로 그랬을 거예요, 미스 웨스트.”
페이스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어.”
로즈마리가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로즈마리는 자기가 얼굴을 붉힌 것을 의식했지만 페이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페리 씨의 옷이 타고 있는데 말해주지 않은 것은 무척 나쁜 일인가요?”
페이스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그럼, 그건 아주 나쁜 일이지. 그렇지만 나라도 그렇게 짓궂게 굴었을 것 같아. 나라도 목사님 옷이 타고 있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내가 못되게 굴었다고 후회하는 마음도 없었을 거야.”
로즈마리가 재미있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우나는 그래도 목사님인데 이야기해줬어야 했대요.”
“아무리 목사님이라도 신사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면 존경할 수 없어. 나라도 페리 씨의 옷이 타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고소하다고 생각했을 걸.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둘은 함께 웃었다. 그러나 페이스는 비통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애덤은 죽어버렸어요. 난 이제 절대로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말은 하지 마. 사랑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단다. 사랑을 많이 할수록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져. 털이 난 것이든, 날개가 있는 것이든. 페이스, 카나리아를 좋아하니? 황금빛 카나리아인데, 네가 좋아한다면 한 마리 줄게. 우리 집에 두 마리 있으니까.”
“와, 좋아요. 난 새를 아주 좋아해요.”
페이스가 외쳤다.

“그런데 마사 이모할머니 고양이가 잡아먹지 않을까요? 애완동물이 잡아먹히는 일을 보는 건 너무 끔찍해요.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그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거예요.”
“새장을 벽에서 멀리 떨어지게 걸어두면 고양이가 잡아먹지 못할 거야. 카나리아를 어떻게 돌보아주어야 하는 건지는 내가 다 말해줄게. 다음번에 올 때 ‘잉글사이드’에 맡겨둘 테니까 가져가도록 해.”
로즈마리는 혼자 생각했다.
‘이 일은 말 많은 글렌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줄 거야. 하지만 나는 저 가여운 페이스를 위로해주고 싶어.’
 페이스는 위로받았다. 아픈 마음을 이해받고 위로받는다는 것은 너무 달콤했다. 페이스와 로즈마리는 저녁 어둠이 하얀 골짜기에 살그머니 숨어들고 저녁샛별이 잿빛 단풍나무 숲 위에서 반짝이기 시작할 때까지 소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페이스는 로즈마리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며 희망을 이야기했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목사관 안팎에서 일어난 일, 학교에서 일어난 좋고 나쁜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다. 둘은 아주 다정한 친구가 되어 헤어졌다.
메러디스 씨는 그날 저녁 식탁에서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꿈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름이 그의 머릿속으로 뚫고 들어와 그를 현실로 불러왔다. 페이스가 우나에게 로즈마리를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분은 참 아름다웠어. 블라이드 아주머니랑은 다른 분이지만 꼭 블라이드 아주머니처럼 상냥했어. 꼭 안기고 싶었다고. 그리고 그분은 날 안아주었어. 아주 편안하고 기분이 좋더라.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페이스’라고 불러주었단다. 정말 기분이 좋았어. 그분에게는 어떤 이야기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페이스가 말했다.
“미스 웨스트가 좋던, 페이스?”
메러디스 씨가 좀 이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요, 그분을 사랑해요.”
페이스가 외쳤다.
“오! 오!”
메러디스 씨의 감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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