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간판왕

더좋은래일 | 2024.05.06 15:39:18 댓글: 0 조회: 109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549


수필


간판왕


<<뭐라구? 미국엔 왕이 많다구? 무슨왕이?>>

<<록펠러-석유왕, 카네기-강철왕, 포오드-자동차왕, 알리-권투왕...>>

<<으응... 그런 왕... 난 또 무슨...>>

<<아주 대수로와하지 않는군그래?>>

<<그럼 내가 찔끔할줄 알았나? 그 잘난 왕!>>

<<희기는 까치 배바닥일세!>>

<<왜, 내가 흰소리하는줄 알아?>>

<<그럼 뭐야?>>

<<제게두 세상에 자랑할만한 왕이 있다는걸 왜 몰라? 이 사대주의-양국놈의 졸도야!>>

<<뭐야? 제게두 왕이 있어? 야 거 금시초문이다. 도대체 그 왕이 무슨 왕이야!>>

<<무슨 왕이냐구? -간판왕? 인제 알겠어?>>

<<간판왕?... 간판왕이란게 뭐 말라뒈진게야?>>

<<뭐 말라뒈지긴! 이 세상에서 제일 긴 간판... 몰라? 글자가 제일 많은 간판... 몰라?>>

<<헤? 그런게 어디 있어?>>

<<<길림시 광주항주련합유한책임주식회자 연길분회사>-스물두자. <연길시물자국로동복무공사제2상점>-열여섯자. <연길시부식물공사 공원식료품상점>-열다섯자...>>

<<알았다. 알았다! 이제 고만해라.>>

<<비둘기장만한 상점에다 이런 굉장한 간판을 내건건 이 지구상에서 우리 여기밖에 없어. 이래두 세계에 내놓구 자랑할만한 간판왕이 아니란 말이야?>>

이것은 어느 재담군이 지어낸 재담이 아니다. 공원 긴걸상에 걸터앉아서 한담설화하는 어느 두친구가 주고받는 말을 필자가 우연히-귀결에 얼핏-들은 말이다. 그 웃음의 소리가운데 무슨 철리가 담겨져있는것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혼자 자꾸 더듬었다.

일본에 <<오다뀨(小田急)라는 석자짜리 간판을 내건 백화점이있다(네온싸인이고 뭐고 다 석자다). 칠팔층의 큰 빌딩인데 지하층은 바로 지하철도역이고 그리고 옥상은 아동공원이다. 영화관, 연예장, 무도장, 화랑(회화전람관), 미장원, 양복점, 사진관, 식당(양식당과 일본료리점), 다방, 바... 안 갖춘것이 없는 별천지다. 하루의 매상고가 딸라로 환산하여도 6계단 수인것은 더 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그렇건만 그 간판은 단 석자-<<오다뀨>>다.

이와 비슷한, 엄청난 규모의 백화점들도 다 <<시라끼야(白木屋)>>가 아니면 <<미쯔꼬시(三越)>>... 두자가 아니면 석자다(세계에서 제일 큰 미국의 석유회사는 <<액소>>, 전날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던 백화점은 <<화신>>).

얼마나 외우기 쉬운 이름들인가.

<<그거 어디서 샀소?>>

<<<오다뀨>에서.>>

<<또 있습니까?>>

<<얼마든지.>>

얼마나 간단한 시민들의 대화인가.

<<우리 <시라끼야>에 가볼가?>>

<<아니 먼저 <미쯔고시>에 들려보자구.>>

<<아무려나.>>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데 그들은 이미 습관이 되였다. 한데 만약 그들더러

<<이봐, 우리 <길림시 광주항주련합유한책임주식회사 연길분회사>에 좀 가볼가, 거기 파는게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아니, 먼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농학원공급판매공사>에 들려보자구.>>

<<그럴바엔 차라리 <연길시물자국로동복무공사제2상점>으루 가자구.>>

<<아무려나, 그것두 좋겠지.>>

이런 대화를 하라구 한다면 그들은 숨이 차서-한끈에 잇대여 쥐여치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아주 나가 누워버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렇거니와 초련 웬만한 총기를 갖고서는 그 긴 상호-20여자자리 상호-를 외워낸다는 재간이 없을것이다.

단지 세계기록을 수립해서 간판왕의 영예를 쟁취할 생각에서라면 그것은 또 별문제다. <<길림성>>우에다 <<중화인민공화국>> 일곱자를 더 붙여서 스물아홉자를 만들어도 좋고 또 보다 더 상세하게 <<아세아주>>, <<지구>>, <<태양계>>, <<우리 은하계>>까지 덧붙여서 아주 우주무역의 길을 튼대도 무방할것이다.

일본이나 련방독일에서 시민들에게 도난, 폭력, 화재 등의 사고로 긴급전화를 걸 때는 <<110번>>, <<09번>>에다 걸면 경찰이 곧 출동된다고 거듭거듭 선전하는것은 시민들이 외우기 쉽고 편리하라고 하는것이다.

이 바쁜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스물몇자짜리 간판을 한자한자 내리외운다던가! <<능률>> 두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전연 모르는 사람들만이 그런 간판왕식판을 걸어놓고 자아도취의 선경에서 도끼자루 썩는줄을 모르고있을것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오다뀨>>, <<미쯔꼬시>>식으로 모리속에 쏙쏙 들어오게 써야지 <<길림성 광주항주련합유한책임주식회사 연길분회사>>,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농학원공급판매공사>>식으로 빈틈없이 자상하게 루락없이 구전하게-완전무결하게-써놓으면 실수야 없지만서도 그것을 끝가지 다 읽는 사람 또한 없을것이다. 하품이 련달아 나오고 눈까풀이 나꾸 내리덮여서.

모름지기 우리 문학도들은 쏙쏙 들어오게 하는 묘기를 배우고 익히기에 힘써야 할것이다. 간판왕식소설을 쓰지 말아야 할것이다. 소설왕이 되지 말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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