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원수와 벗

더좋은래일 | 2024.04.27 13:44:47 댓글: 2 조회: 133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4471


소설


원쑤와 벗


전일 연변대학의 정판룡선생이 전갈해오기를 일본에서 교수 한분이 왔는데 그의 말이 자기는 일본에서 김학철의 작품을 번역 출판한 사람이니까 김학철을 꼭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어떤가, 한번 만나보는게 좋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나는 국경을 격하고 바다를 격하여 피차에 문자상으로만 알고있던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의 교수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선생과 첫대면을 하게 되였다.

50살 고개를 갓 넘어선 오오무라선생은 대학교수보다는 영화배우가 더 알맞을것 같은 미남자로서 조선말을 상당히 잘하였다. 오오무라선생은 조선문학을 연구하는분인데 남, 북 조선에만 국한되지 않는 전 조선민족의 문학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까닭에 자연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민족의 문학에도 큰 관심을 갖고있다. 그래서 연변을 그 연구기지로 골랐는데 외국인이 우리 대학에 연구원으로 들어가자면 많은 액수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문제를 대학당국과 상의한 결과 약 1년 동안 일어강좌를 담임하는것으로 주고받을 셈을 맞비기자는 원만한 타합이 이루어진것이였다.

오오무라선생은 내외동반하여왔는데 알고보니 부인 아기꼬(秋子)녀사는 조선혈통으로서 남편의 연구사업에 없지 못할 조력자였다.

우리는 처음에 조선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것이 차차 조선말, 일보말 섞어작으로 변하다가 나중에는 아주 일본말을 유일한 사교언어로 쓰게 되였다.

대인접물에 능란한 아끼꼬부인이 말참네를 하여 좌중의 분위기를 더한층 화기롭게 만들었다.

<<저더러두 무얼 좀 해볼 생각이 없느냐구 묻지 않겠습니까. 그래 <좋습니다. 청소두 좋구 무엇두 좋구 다 좋습니다. 뭐나 시켜주시면 다하겠습니다.> 하구 대답을 올렸습지요. 하니까 <아니, 그런게 아니구, 저 일본에 류학보낼 우리 선생들에게 일어회화를 좀 가르쳐달라는 말입니다.> 하잖겠습니까. 그래 어쩌겠습니가, <좋습니다, 하라시는대루 하겠습니다.> 하구 수락을 했습지요.>>

<<그래 아주 결정이 됐습니까?>>

<<그러면이요. 그것때문에 우리 저이하구두 한바탕 웃었는걸요.>>

그 한바탕 웃었다는 연유를 물은즉 아끼꼬부인은

<<남편은 학생을 가르치구 안해는 선생을 가르치구... 을추갑자(乙丑甲子)루 셈판이 잘된다구요.>>

하고 또 한바탕 우리를 웃기는것이였다.

웃음을 거둔 뒤에 오오무라선생이 좀 신기스러운듯이

<<여기는 사무실을 <판공실>이라구 하더군요.>>

하고 말을 내여서 내가

<<녜, 방석을 <자부동>이라구 하구 옷장을 <단스>라고 하는 사람두 있지요.>>

하고 웃으니 아끼꼬부인이 웃으면서

<<식료품집 녀점원도 통졸임을 <간즈메>라구 하잖겠어요.>>

하고 말곁을 달았다.

전에 나는 일본잡지에 실린 오오무라선생의 <<일본>>대학에서의 조선어교육의 현상>>이라는 글을 적잖은 흥미를 갖고 읽어본적이 있었다. 그밖의 오오무라선생이 번역소개한 소설들로는 리기영의 <<개벽>>, <<민촌>>, 박태원의 <<춘보>>, 조명희의 <<락동강>>, 김사량의 <<류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 <<창랑전기>>, 김동리의 <<무녀도>>, 김학철의 <<담배국>> 등을 들수가 있다. 그리고 그의 <<대역(对译)조선근대시선>>에는 김소월, 한룡운, 리상화, 림화, 김지하, 김순석, 민병균, 김귀련, 백인준, 김조규, 박팔양, 김상오 등 수많은 남,북 조선 시인들의 대표작이 수록되여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던 끝에 나는 오오무라부부가 바라는대로 내가 알고있는 일본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1942년, 내가 석가장 일본총령사관경찰서 류치장에 갇혀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키가 작달막하고 몹시 약하게 생긴 중년수인 하나가 들어왔다. 당시 감방에서는 새로 들어온자를 변통옆에 앉히고 마구 부려먹기 마련이였다. 범죄자들이 집중되여있는 곳이라 분위기는 언제나 험악하였다. 때로는 살벌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팔로군간부출신의 정치범이였으므로 일반형사범-파렴치범들속에서 자연 우두머리격으로 행세하게 되였어다. 속된 말로는 왕노릇을 한것이다.

나는 심심파적으로 그 새로 들어온 수인을 가까이 불러다가 한번 물어보았다.

<<이름이 무어야?>>

<<구리시게... 구라시게 히사오(仓茂久男)라고 합니다.>>

<<나이는?>>

<<마흔두살입니다.>>

<<흠, 액년(厄年)이구먼, 그래 어디서 뭘 하던 사람이야?>>

<<원래는 도꾜에서 택시운전을 했었는데... 작년에 이곳 석탄회사에 취직이 됐습니다.>>

<<그래 무슨 죄루 들어왔지?>>

알고보니 마음이 약해서 석탄을 실어가는 놈이 전표에 적힌 수량보다 더 퍼담는것을 말리지 못하고 어물어물 눈감아주었다는것이다.

<<보아하니 허리를 잘 못쓰는것 같으데... 얻어맞았는가?>>

<<아닙니다. 허리앓이루 벌써 여러해째 고생을 하는중입니다.>>

그의 악의 없어보이는 선량한 얼굴이 호감을 자아내고 또 그 약하디약한 몸이 동정을 불러일으켜서 나는 다른 수인들에게 지시하였다.

<<저 사람의 <변통당번>을 변제해주두룩.>>

변통당번이란 아침저녁 두차례 변통을 들고 나가 말끔히 부셔가지고 들어오는것을 말하는것인데 일반적으로 새로 들어온자가 도맡아하는것이 상례로 되여있었다. 나는 마루바닥에 걸레질하는 일도 면제해주라고 하였다. 다른 수인들이 속으로는 불만스러웠으나 내 기안에 눌리워 꿀꺽 소리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것을 나는 물론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제몸 하나도 바로 가누지 못하는 인간을 마구 부려먹는것을 나는 차마 눈앞에 볼수가 없었던것이다.

서너달 같이 지내는 동안에 나는 구라시게의 보호자노릇을 착실히 잘하였다. 내 덕에 구라시게는 그 무지막지한자들의 구박을 받지 않고 무사히 그날그날을 보낼수 있었다. 자기가 사람이 변변치 못하여 아이는 죽고 안해는 집을 나가버렸다는 그의 신세타령을 듣고 나는 더욱더 그를 동정하였다. 그는 내가 중국사관학교(군관학교)출신의 장교(군관)로서 사상범(정치범)이라는것을 알고는 나를 굉장히 우러러보았다. 일본군대에서는 군조(중사)나 오장(하사) 따위 하사관나부랭이도 세도를 쓰기때문에 보통평민인 그의 머리속에는 무릇 장교는 다 공경해야 한다는 계급관념이 깊이 박혀있는 모양이였다. 조선에서 국민학교(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하고있는 우리 누이동생 성자(性子)에게서 편지가 오면 나는 번번이 다 그에게도 보여주었다(그에게는 편지가 올데가 없었다). 그는 마음이 워낙 여린 사람이라 그 편지들을 읽어보고는 감동되여 눈시울을 슴벅거리며 목멘 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정말 훌륭한 매씨를 두셨습니다. 정말 훌륭한 매씨를 두셨습니다.>>

구리시게는 나보다 나이 열대여섯살이나 맏이였다. 그래도 그와 나는 강도, 절도범, 강간범, 아편장사 따위들이 우글우글하는 감방속에서 아주 친숙한 사이로 되였다. 총칼을 들고 일본침략군과 마주 겨루던 나에게 철창속에서 뜻하지 않은 일본벗 하나가 이렇게 생기였다.

서나달후, 구리시게가 무죄석방으로 류치장에서 나갈 때 그와 나는 간수가 보는 앞에서 서로 손을 마주잡고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몸조심...>>

<<몸조심하십시오.>>

겨우 한마디씩 하는데 구라시게의 눈시울이 붉어지는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언짢아서 얼른 고개를 돌리였다.

밤에 잘 때 나는 소슬한 가을바람속에 혼자서 허허벌판에 누워있는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구라시게가 무사히 풀려나건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생사미복(生死未卜)의 험난한 앞길이 여전히 가로놓여있었다.

이튿날아침 10시쯤 간수가 와서 감방의 자물쇠를 덜컥 열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또 그 빌어먹을 취조겠거니 생각하고 개구멍같은 감방문을 빠져나오니 간수가 싱글거리며 한마디

<<차입입니다.>>

귀띔해주었다.

<<차입? 내게 무슨?...>>

나에게는 애당초부터 차입이라는것이 있을수가 없었다.

<<나가보면 알아.>>

나는 간수의 압송하에 사법계로 나왔다. 수인들에 관한 일반사무는 사법계에서 취급하였었다.

<<자, 여기다 서명해.>>

사법계순사가 시키는대로 서명을 하고나서 다시 보니 차입인은 뜻밖에도 <<구리시게 하시오>>. 그리고 내앞에 놓여진것은 <<교오야(京屋)>>라는 고급과자점의 생과자 한상자였다. 사법계순사가

<<구리시게하구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지.>>

하고 웃으며 서명장을 덮을 때, 나는 구라시게와 갈라진 석별의 정이 새삼스레 왈칵 북받쳐오르는것을 느꼈다.

(영원히 다시 만나볼 길 없는 나의 벗 구라시게!)

몇달후 나는 일본에 압송되여 나가사끼형무소 이사하야(谏早) 본소에서 복역을 하게 되였다. 그러다가 몇해후에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한 뒤에 비로소 풀려나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10여년만에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만나서 오랜 세월 쌓이고쌓인 회포를 풀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그 험악한 전쟁판과 옥고의 시달림속에서 아주 철석간장의 사나이로 되였던것이다. 누이동생 성자가 눈물을 거두고나서 묻기를

<<오빠, 구라시게 히사오라는 일본사람을 알지?>>

하는데 나는 너무도 의외로와서 또 한번 가슴이 찡하였다.

<<엉?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아니?>>

<<그 사람이 우리 집에를 왔었지 뭐요.>>

<<집에를 와? 집에를 오다니? 구라시게가?>>

<<예, 그렇다니까요. 그가 석가장경찰서에서 나와서 일본으루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차에서 내려서 학교루 나를 찾아왔더라니까요. 이름두 들어본적 없는 일본사람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대바람... 나는 당신 오빠의 친구요, 당신의 편지를 다 읽어보았소, 당신 오빠의 신세를 많이 졌소... 이런 소리를 하니 어떡허지요. 난 꼭 헌병대의 끄나불인줄루만 알았다니까요. 그전에두 오빠 일루 헌병대에서 싸이드카 탄 헌병들이 왔다갔었으니까. 그래 속이 자꾸 떨리지 뭐예요. 별도리없이 난 그저 <우리 오빠는 나쁜 사람이예요, 우리 오빠는 나쁜 사람이예요>... 대구 오빠를 쳐서 말했지. 하니까 그는 <아니야 아니야 오빠는 좋은 사람이야, 훌륭한 사람이야.> 하구 기가 나서 오빠를 변호해주지 뭐요.>>

<<응, 그래 어떻게 됐니?>>

<<집으루 모시구 왔지요. 모시구 와서 엄마하구 둘이서 또 오빠가 어떻게 나쁘구 어떻게 나쁘구 자꾸 곱씹어 말하니까 나중에는 그 량반이 역정을 내겠지... 오빠는 절대루 좋은 사람이라는데 왜들 이러느냐구.>>

<<흠, 그런 이이 있었구나... 정말 뜻밖이다.>>

<<그런데 그가 허리를 잘 못쓰니 웬 일이죠? 자꾸 앓음소리를 하더라니까요. 경찰서에서 얻어맞아서 그랬던가?>>

<<아니야, 허리앓이를 해, 그 사람은 맞지 않았어.>>

<<응... 그런걸 난 또... 오빠두 그렇게 맞았을것 같아서...>>

(구라시게가 이다지도 살뜰하고 다정할줄이야!)

이튿날 떠나갈 때 어머니와 성자가 려비를 좀 보태주려고 하니까 구라시게는 한사코 싫다거라는것이였다. 억지로 호주머니에 밀어넣어주기는 하였으나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정체를 알수 없어서 이날 이때까지 모녀는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있었다는 것이였다...


나의 이야기가 일단 끝이 나니 오오무라부부의 얼굴에는 다같이 감동된 빛이 떠올랐다.

<<아마 무척 고마웠던 모양입니다. 감방에서 그렇게 보호를 해주는게...>>

하는 남편의 말에 그 안해가 동을 달았다.

<<왜 안 고마왔겠어요,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이야깁니다.>>

나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나는 그때 왼쪽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었었는데 뼈를 맞았던 까닭에 3년이 다되두록 상처가 어디 나아줘야지요. 나아지는게 다 뭡니까. 점점 더하지! 줄곧 고름을 흘리며 3년을 견지한 끝에 정 안되겠기에 나중에 할수없이 감옥병원 원장이라는자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무어라구요?>>

오오무라선생이 웃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재쳐 물었다.

<<절단수수를 좀 해달라구요.>>

<<저런!>>

<<그럼 어떡합니까 사람이 죽겠는데.>>

<<그래 어떻게 됐습니까?>>

아끼꼬부인이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이 원장이라는자가 하는 수작을 좀 들어보십시오. 소위왈 의사라는 작자가 하는 수작을 좀 들어보십시오. -<너는 비국민이니까... 황국의 적이니까... 내 자의루 수술을 해줄수 없다. 그러니 사법대신의 특별허가를 맡아오너라.>>

오오무라부부의 얼굴에 다같이 이름 못할 분격의 빛 같은것이 서리였다.

<<도꾜가 미군의 폭격으루 불바다가 된 판에 사법대신의 특별허가란게 되기나 할 소립니까! 그럭저럭 또 서나달이 지났습니다. 고통스럽기짝이 없는 서너달이였지요. 그런데 내가 살 운수가 뻗쳤던지 아니면 하늘이 굽어살폈던지... 그 개만두 못한 원장녀석이 갈려가구 새 원장이 오잖었겠습니까. 그 새 원장의 이름을 나는 영원히 기억하구있을겁니다. -히로다 요쯔구마(广田四熊)!>>

<<히로다 요쯔구마... 어떻게 씁니까?>>

오오무라선생이 이렇게 물으며 만년필을 집어들어서 나는

<<넓은 밭, 네마리의 곰.>>

글자를 대주고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는데 그 내용을 대강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나는 정치범이였으므로 <<엄정독거(严正独居)>>라는 명목으로 독감방에 수용되여 다른 수인들과의 접촉이 엄격히 금지되여있었다. 한주일에 두번씩 하는 목욕도 독탕에서 해야 하고(여름에는 사흘에 한번 겨울에는 나흘에 한번) 그리고 병원에 입원을 해도 독병실에 혼자 갇혀있었야 하였다. 진찰실에서 진찰을 받을 때도 다른 형사범들과 같이 장의자에 앉지 못하고 혼자 벽을 향하고 따로 서있어야 하였다. 나를 압송하는것은 일반간수가 아니고 간수부장이였다. 다른 간수들은 수인을 한꺼번에 칠팔명씩, 십여명씩 거느리고 다녔지만 나는 언제나 간수부장과 1대1이였다. 이것은 나만이 아니고 무릇 정치범들은 다 그런 <황송한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였다. 페스트환자, 콜레라환자 취급을 받아야 하였다. 정치범외에도 흉악범인 즉 수시로 간수를 습격할 념려가 있는 수인들은 다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였다.

새로 부임해온 원장은 50살 가량의 아주 가냘프게 생긴이로서 무테안경을 썼었다. 그는 나를 압송해온 간수부장더러 벽을 향하고 혼자 따로 서있는 나를 가리키며

<<이리 데려오시오.>>

례사롭게 말하였다. 간수부장이 좀 당황한듯

<<저 이건 엄정독거입니다 원장님.>>

하고 대답을 올리니 원장은

<<응 그래?>>

하고 안경너머로 나를 한눈 여겨보고나서 형사범들을 압송해온 간수에게 손짓하였다.

<<하나씩 차례루.>>

맨나중에야 내 차례가 되여서 나는 비로소 새 원장앞에 나섰다.

<<어디가 아픈가?>>

나는 옷우로 상한 다리를 가리켜보았다.

<<총상... 벌써 3년쨉니다.>>

<<총상?>>

새 원장은 나를 흉악한 살인강도로 지레짐작한 모양이였다. 그런 기색이 얼굴에 현연히 나타났다. 내 가슴에 붙어있는 번호표를 한눈 보자 그는 부지런히 카르테를 뒤져서 (1454)-나의 번호를 찾아내였다. 다음 순간 그의 얼굴에는 놀라는 기색이 스쳤다. 죄명란에 적혀있는것은 생각지도 않은 <<치안유지법 위반>>-정치범이였기때문이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말문을 열었다.

<<의술은 인술이라구 합니다. 내 이 다리의 총상이 제대루 치료를 받지 못해서 3년째 이렇게 썩어가는것을 뻔히 보면서두 그전 원장은 사법대신의 특별허가를 맡아오라구 전연 가망성이 없는 난문제를 내세워가지구 내 정당한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절단수술을 해달라는 박부득이한 요구마저 거절했단 말입니다. 과학자적량심이 조금이라두 있는 의사라면 어떻게 환자의 정치적신념이 자기하구 다르다구 해서 의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겠습니까. 허떻게 환자를 죽으라구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나의 이 열렬한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새 원장-히로다 요쯔구마선생은 내 말이 다 끝나기를 기다려서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말하는 취지는 잘 알았으니... 오늘은 일단 그냥 돌아가두룩. 내 좀더 생각해보구나서 조처할테니까.>>

그로부터 닷해후에 나는 설비가 보잘것없는 감옥병원에서 대퇴부절단수술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물론 히로다선생였는데 그 조수노릇을 한것은 젊은 준의사(准医师) 하나와 수인간호원 둘이였다.

나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안심시키려고 수술받은 경과를 곧 집에다 알리였다. 수인들은 한달에 한통씩 봉함엽서로 가족에게 편지를 쓸수 있었다.

그런데 불행한것은 히로다선생이 나에게 수술을 베푼 뒤 석주일도 채 못되여 지병인 복막염이 도져서 세상을 뜬것이였다. 히로다선생은 병석에서 우리 누이동생의 감사의 편지를 받고 그 따님을 시켜서 답장을 써보내였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히로다 요쯔구마선생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지당한 말씀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깁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직두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수술을 거들던 수인간호원 하나와 내가 맺었던 우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허두를 떼여놓고 나는 다시 천천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25살 먹은 그 수인간호원은 이름은 스기우라 쥰스께(杉浦俊介)라고 하는데 감옥에 들어오기전에는 해군소위였었다. 직속상관인 중위가 공연히 자꾸 트집을 잡아 못살게 구는데 참을 줄이 끊어져서 그는 분김에 차고있던 단검을 뻬서 한번 콱 찔렀다는것이다. 그러니까 상관을 찔러서 부상을 입힌것이다. 그 죄로 그는 군법회의 즉 군사재판에서 7년 징역형을 언도받고 나가사끼형무소 이사하야본소에 와 복역을 하는중이였다.[나가사끼시내에 있는 형무소의 지소(支所)는 그후 원자탄을 맞고 완전히 파멸되였다.] 스기우라는 제국군인의 자존심이 있었으므로 다른 형사범-파렴치범들과 대등으로 추측하는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있었다. 하물며 그는 장교출신이다. 그러던차에 나를 만나게 되였으니 어찌 마음을 트지 않을것인가.

스기우라와 나는 곧 가까운 벗으로 되였다. 너나들이를 하게 되였다. 그의 누이동생도 우리 성자처럼 국민학교 선생이였으므로 우리는 집에서 온 편지가 무엇보다도 소중하였다. 스기우라는 병원안에서만은 행동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간호원이고 나느 <<엄정독거>>였으므로 다른 수인들의 눈을 꺼릴것이 없어서 서로 접촉하는데 편리한 점이 많았다.

일본감옥병원에서는 환자의 정상에 따라 하루에 우유 한 고뿌를 공급하거나 콩물 한 고뿌를 공급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직접 그 일을 맡아하는것은 스기우라였으므로 나는 우유도 받고 콩물도 받고 두가지를 다 받아먹었다.

<<그까짓 콩물 한 고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잘 모르는 소리다. 먹을것이 극도로 결핍한 수인들에게 있어서 가외로 얻은 한 고뿌의 콩물은 인삼록용 맞잡이로 귀중한것이기때문이다.

스기우라가 하루는 의논을 걸어왔다.

<<너 나 영어 좀 그러쳐주겠니?>>

<<어렵잖지.>>

<<앞으로... 영어가 필요하겠지?>>

<<필요하다말다... 더 말할게 있나.>>

<<그럼 좀 부탁한다.>>

<<OK!>>

이때는 벌써 대일본제국의 해군소위도 패전의 냄새를 어렴풋하게나마 맡고있었던것이다. 련합군이 상륙하면 영어가 필요하리라는것을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던것이다. 이라하여 팔로군의 한 간부가 제국해군의 한 장교에게 감옥안에서 영어를 개인교수한다는 기모한 국면이 벌어졌다.

스기우라는 간수 몰래 목욕물 데우는 증기에다 고구마를 쪄서 한 밥통씩 나에게 갖다주었다. 더 말할것도 없이 그것들은 다 훔친것이다. 그 고구마맛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해진미였다!

어느날 나는 허허실실로 스기우라에게 청을 한번 들어보았다.

<<오이, 스기우라, 너 어디서 아무 책이구... 책 좀 구할수 없겠니? 볼 책이 없어서... 정말 죽을 지경이다야.>>

<<바보 같은게, 진작 말하지-기다려!>>

스기우라는 득돌같이 달려가더니 잠시후에 먼지가 켜켜이 앉은 잡동사니책을 한아름 안고 달려왔다.

<<야, 고맙다! 인제 살았다!>>

<<창고속에 얼마든지 무져있다. 다 보면 내 또 갖다주마.>>

행동의 자유를 완전히 구속당한 철창속에서 정신의 식량까지 이렇게 무더기로 공급해주는 스기우라를 내가 어찌 감지덕지 아니하랴!

어느날 스기우라가 식기구(食器口)로 나를 들여다보며 소근소근 묻는것이였다.

<<네 보긴... 일본이... 질것 같니?>>

<<꼭 진다. 시간문제다.>>

내가 확신을 갖고 잘라 말하니 스기우라는 아름이 찬듯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무서운 일 물어보듯 묻는것이였다.

<<꼭 진다구? 꼭 지면... 그럼... 우린 어떻게 되니?>>

<<어떻게 될것 있니? 더 잘살게 되지!>>

<<정말이냐?>>

<<두구보렴.>>

내가 스기우라에게 단언을 한지 석달만에 일본은 무조건항복을 하였다. 히로히도천황의 그 알아듣기 어려운 반벙어리소리로 항복선언이 방송되던 날 오후부터 감옥안에서는 방공호를 파는 작업이 중지되였다. 어리석은것들이 망하는 그 시각까지 무얼 얻어처먹겠다고 기를 쓰고 방공호를 파고있었던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하고있는 중간에 오오무라선생이

<<일본이 꼭 진다는 그런 신념을 갖구계셨단 말씀이지요.>>

하고 경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아서 나는

<<녜, 이본필패의 확고한 신념은 시종일관 추호두 동요돼본적이 없었습니다.>>

대답한 뒤 한번 싱긋 웃고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히틀러가 패망한 뒤에 난 누이동생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멀지 않아 내가 돌아가서 어머니를 모실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달라구 말입니다. 개가 시집을 가게 되면 년로한 홀어머니를 어떡하겠습니까. 그게 걱정이 돼서였지요. 한데 뜻밖에두 그 편지는 전연 엉뚱한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이것두 나중에 전쟁이 끝난뒤에 귀국을 해서 안 일입니다만 우리 누이동생은 학교에서 그 편지를 받아보구 눈물을 흘리며 집으루 돌아왔답니다. 그리구 어머니하구 모녀 목을 그러안구 대성통곡을 했답니다. 오빠가 감옥에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정신이상에 걸렸다구 말입니다. 분명히 나올수 없는 오빠가 멀지 않아 돌아오겠다구 조금만 더 참아달라니 이게 그래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하는 말입니까? 우리 누이동생은 대일본제국을 하늘루 아는, 빈틈없는 <황국신민!>이였거든오! 정치적안광이란게 꼬물두 없었단 말입니다.>>

오오무라부부는 이 단락에서 서로 마주보고 혼연해하는 웃음을 웃었다.

나의 이야기는 다시 원줄기로 돌아온다. 해군소위 스기우라와 내가 감옥병원에서 환난을같이 겪던데로 돌아온다.


<<야, 인제 우리가 정말 나가게 됐다!>>

<<집에서들두 아마 굉장히 좋아할게다.>>

<<넨장할, 난 인제 다시는 군복을 안 입겠다. 그 지긋지긋한 놈의 군복!>>

<<군복은 안 입더라두... 상선 같은거야 탈수 있잖니.>>

스기우라와 나는 흥분하여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우리들의 마음은 벌써 감옥의 높은 담을 거침새없이 날아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스기우라가 와서 나를 들여다보고 킥킥거리며 말하는것이여다.

<<야, 네 그 다리 묻어놓은걸... 개들이 들어와 싹 파헤쳤다. 서루 물어가겠다구 쌈질하는걸... 내가 마구 때려 쫓았다. 묻을 때 아마 너무 옅게 묻었었나와. -네 뼈다귀... 한번 보겠니?>>

나는 들었다보았다하고

<<오냐오냐.>>

그를 재촉하였다.

<<빨리 가서 가져오나! 어디 좀 보자. 개한테 또 뺏기진 말아!>>

스기우라는 해군소위식동작으로 민첩하게 행동하여 물과 몇분후에 내 그 백골화한 다리를 새끼오래기에 매여들고 신바람이 나서 돌아왔다. 무슨 보물이라도 발굴해낸것 같았다. 뼈는 희지않고 거뭇거뭇하였다. 엷게 덮인 흙으로 노상 비물이 스며들어서 썩은 모양이였다. 그래도 무릎마디와 복사뼈와 발가락들은 다 깔축없이 고스란하고 온전하였다. 나는 제 해골의 일부를 눈앞에 보는것이 신기해서 웃고 스기우라는 나에게 희한한 구경을 시켜준것이 대견해서 웃고... 민족이 다른 두 젊은 친구는 잠시 옥중인것도 잊어버리고 유쾌하게 웃음통을 터뜨렸다...


나의 이야기가 이 단락에 이르렀을 때 오오무라부부의 얼굴에는 다같이 처참한 빛이 떠올랐다.

<<그런 지꿎은짓을...>>

하고 오오무라선생이 말끝을 흐리여서 나는

<<다들 청춘시절이였으니까요.>>

하고 한번 껄껄 웃고 다시 이야기의 원길로 잡아들었다.


10월 9일, 일본 전국의 정치범들이 일시에 석방되였다.(도꾸다 규우이찌(德田球一), 시가 요시오(志贺义雄), 미야모도 겐지(宫本显治) 등도 다 같은 날 석방되였다.) 련합군사령부의 명령이 떨어진것이다. 나가사끼형무소의 근 2천명 수용자들가운데서 정치범이라는것은 겨우 넷밖에 없었다. 그 넷가운데서도 일본사람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셋은 다 조선사람이였다. 그 조선사람 셋중에도 공산당원은 나 하나뿐이고 나머지 둘은 다 민족주의자 김구선생의 부하였다.[그중의 한사람 송지영(宋志英)은 후에 한국방송공사-KBS의 리사장으로 되였다.]

출옥할 때 신문기자들이 와서 취재를 하였는데 이튿날-10월 10일 <<나가사끼신붕>>에는 조선독립이 투사 아무개가 어찌고어찌고하는 기사가 실렸었다. 바로 어제까지도 <<비국민>>이라고 죽일놈 살릴 놈 하던것이 하루밤사이에 <<조선독립의 투사>>로 변하는것을 보고 우리는 쓴웃음을 웃었다. 일본신문기자들의 손바닥을 뒤집은것 같은 둔갑술에 <<경탄>>을 한것이다.

나는 극도의 영양부족과 결핵균의 감염으로 수술한 자리가 몇달이 되도록 아물지를 아니하여 출옥할 때 감옥병원에서 림시처치할 알콜 한병과 탈지면 한봉지를 얻어가지고 나왔다. 스기우라는 간수부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알콜병과 탈지면봉지를 내 량쪽 호주머니에 하나씩 넣어주었다.(나는 송엽장을 짚었으므로 아무것도 손에다는 들고 다닐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하여 작별인사를 하였다.

<<몸조심... 잘 가라.>>

그의 실심한 얼굴을 보자(그도 나랑 함께 석방이 될줄 알고있었던것이다) 나는 너무도 언짢아서 그와 함께 감옥에 떨어져있을가 하는 미친 생각까지 났다. 나는 남을 동정하면 자기라는것을 잊어버리는 성질이였다.

<<너두 곧 풀려나게 될거니까... 안심하구... 견지해!>>

이것이 내가 스기우라에게 한 마지막 말이였다.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는 옥고를 같이 치른 나의 친구 스기우라 쥰스께가 어떻게 되였는지 그 소식을 감감히 모르고있다.

감옥의 철문을 나서기전에 저장고에 보관되여있던 곰팡내 풍기는 보따리를 찾아서 펼쳐보니 헌옷가지속에 헌 신발 두짝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필요없게 된 한짝을 콩크리트바닥에 동댕이치고 나머지 한짝만 발에 꿰고 나왔다.


오오무라부부는 나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긴장감에서 풀려난듯 가볍게 숨을 몰아쉬였다. 일본에는 내가 미워하는 원쑤도 있고 또 내가 사랑하는 벗도 있다는것을 그들은 똑똑히 알았을것이다.

내가 가는 인사하고 일어나니 오오무라선생은 얼른 앞서나가 내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놓아주었다. 그러나 신발이 한짝만 있고 다른 한짝은 보이지가 않아서 그는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내가 웃으면서

<<본래 한짝뿐입니다.>>

하고 일깨우니 오오무라선생은 비로소 깨도가 되여서

<<오 참 그렇지!>>

하고 내외 같이 거뜬한 웃음을 웃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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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알렌프러스 (♡.242.♡.132) - 2024/04/28 16:11:19

좋은글 잘 봤습니다

더좋은래일 (♡.162.♡.178) - 2024/04/28 17:10:26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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