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63

더좋은래일 | 2023.11.13 18:18:23 댓글: 1 조회: 173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375


63

형대성안 일본헌병분견소와 일분군려단사령부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다까야마라는 창씨성(본성은 고)을 가진 조선사람이 경영하는 아시히라는 간판을 내건 리발소가 생겼는데 영업이 어지간히 잘되였다. 고객은 주로 조선거류민, 일본관헌, 일본거류민들인데 어느 고장의 리발소도 다 그러하듯이 이 아사히리발소도 곧 할일없이 심심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담설화를 하는 장소로 되였다. 이때 형대에 사령부를 설치한 일본군려단의 려단장은 조선인 홍사익소장이였으므로 형대에 거류하는 조선사람들은 공연히 코가 우뚝하였었다. 아닌게아니라 형대의 일본관헌이나 일본거류민들도 다른데서처럼 조선사람을 반도인이라고 함부로 다루지는 못하였었다. 홍사익각하의 간접적인 덕택임이 분명하였다. 아사히라는 간판이 일본인과 친일파들에게 친절한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얼마 오래지 않아 곧 부대와 헌병대의 조선인통역들이 일본사람들과 함께 단골손님으로 되였다. 그들의 입을 통하여 다까야마형제는 헌병분견소와 려단사령부의 밥 끓고 죽 끓는것을 눈으로 보듯이 알고 지내였다. 려단사령부에 하야시라는 창씨성(본성은 림)으로 불리는 스물네살 먹은 조선인통역 하나가 있었는데 다같은 신의주사람이라고 해서 특히 리발사형제와 가깝게 지내였다. 어느 일 없는 밤저녁에 리발소로 놀러 왔던 하야시가 마침 리발소가 조용하것을 보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던 끝에 웃으면서

<<내 지난번 장군묘에 토벌을 나갔다가... 희한한걸 하나 얻어 보잖았겠소.>> 하고 말하며 큰다까야마가

<<무슨 희한한거... 어떤?>> 하고 흥미를 가지며 물으니 하야시는 유리창으로 내비치는 불빛에 희읍스름한 거리를 한번 내다보고나서 장하목에 손을 디밀더니 착착 접은 종이 한장을 꺼내였다.

<<이런거요.>>

<<그게 뭔데요?>>

불갈구리로 난로를 쑤시던 작은다까야마도 불갈구리를 손에 쥔채 와 목을 늘이고 들여다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삐라가 아닌가요? 하고 큰다까야마가 놀라니 햐야시는 얼굴에 뽐내는 기색을 띠우며 주인형제를 반반씩 갈라보았다.

<<대체 무슨 삐란데요?>>

<<글쎄 태항산속에.>> 하고 하야시는 목소리를 푹 낮추어가지고

<<우리 사람들이 있다는게 정말이란 말이요.>> 하고 소근소근 말하였다.

<<우리 사람이라니요?...>>

<<조선사람... 조선의용군이란... 항일부대가 있단 말이요.>>

주인형제가 다같이 놀라며

<<아니 그게 웬 말이요?...>> 하고 서로 돌아보기만 하고 더 말을 잇지 못하니 하야시는

<<쉬, 걔들이 알았다간... 내 이 목두 아마...>> 하고 삐라를 보라고 큰다까야마에게 건네주었다.

글머리에 서로 어기친 태극기 한쌍이 눈에 번쩍 띄우는 그 삐라에는 또렷한 한글로 <<조선동포에게 고함>> 이라고 찍혔는데 아닌게아니라 글의 끄트머리에는 <<조선이용군>> 다섯자가 분명하지가않은가! 다까야마형제가 덤덤히 서서 마주보기만 하는데 하야시는 큰다까야마의 손에서 삐라를 잡아채듯이 하여 얼른 접은 금대로 도로 접어가지고 장화목에다 밀어넣었다. 그리고 탄식조로

<<우리 민족은 죽지 않았소. 죽지 않구 아직두 살아있단 말이요. 삐라에 찍힌 태극기를 보는 순간 난 제 나라를 도루 찾은것 같아서... 속이 다 찡합디다. 그런데 제길할 난 여기서,>> 하고 하야시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한번 콱 박고

<<왜놈의 통역노릇을 하구있단 말이야!>> 하고 통탄을 하는것이였다. 사람이란 울적한 감정은 알아줄만한 사람에게 다 털어놓아야만 속이 후련한 법이다.

나중에 돌아갈 때 하야시통역은

<<말씀 안해두 다들 아시겠지만... 이런 일은 두 형제분만 알구 계시우. 입 한번 잘못 뻥긋했다간 큰일나는 세상이니.>>

당부를 하고 갔다. 통역이 돌아간 뒤에 다까야마형제는 한동안 멀거니 마주보고 섰다가

<<저거 우리 속을 떠보느라구 저러는건 아니겠지?...>>

<<설마...>> 하고 서로 지껄였다.

<<그럼 어떻건다?>>

<<어떻거다니?>>

<<한번 시험적으루 포섭을 해볼가 말이야.>>

<<해보자구 까짓꺼. 사람은 미더워. 통역이라구 뼈속까지 다 민족반역자란 법이야 없겠지.>>

<<아까 그 한탄을 하는게... 바이 거짓스럽진 않지?>>

<<진정이야, 내보기엔... 진정이야. 고민속에서 방황하구있다는게 환히 알리던데 뭐.>>

사람들이 보는데서는 형님동생하던 두 사람의 말씨가 어느새 너나들이로 변하였다.

<<그럼 한번 해보자구.>>

<<좋겠지.>>

아사히리발소가 조선이용군의 아지트인것을 아는 사람은 형대성안에 몇이 없었다. 그 몇 사람도 큰다가야마의 본성명이 우지강이고 작은다까야마의 본성명이 림상수인것은 모르고들 있었다. 두 사람은 본시 리발사출신이였다. 그래서 이러한 변장이 가능하였고 또 이러한 착상을 할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아사히리발소를 차려놓고 뒤구멍으로 애국적인 조선청년들을 포섭하고 삐라공작을 하고 그리고 정보수집까지를 하고있었다. 이때 중국의 묵은 동전을 수매해다가 일본군수산업부문에 납입하는 바람이 불어 돈벌이에 눈이 뒤집힌 어중이떠중이들이 린근의 장거리와 마을들을 가을중 소대듯하였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형대성안의 아사히리발소와 서황촌 부근에 주류하는 윤대성지대와의 사이를 련결하는 선일줄을 성문을 지키는 일본병들이 어찌 알았으랴. 자전거 짐받이에 동전마대를 싣고 형대성문을 무상출입하다싶이 하는 그 반도인 동전장수 시라가와(본성은 백)는 우자강과 림상수가 아사히리발소를 차려놓고 포섭에 성공을 한 첫번째 대상자였었다.

12월 31일-이해도 마지막 가는 날 밤에 서황촌에 주류하는 윤대성지대에서는 우등불모임을 가지고 한바탕 뛰놀았다. 일본군은 양계장의 닭모양 날만 어두우면 조만해 밖에는 나올념을 못하고 성안이나 포대속에 들어박혀있는 까닭에 맘놓고 오락을 즐겨도 무방하였다. 각기 다른 여러 목소리가

붉은해 동방에 고루 비치고
자유이 신(神) 마음껏 노래불러
......
항일의 봉화 태항산상에 타오른다
......

한 노래를 때로는 우렁차게 또 때로는 구슬프게 불러댈 때 부르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는 격정의 파도가 사납게 일었다가 서정의 멀기가 느리게 쳤다가 하는것이였다. 이밤을 자면 1942년-항일전쟁도 여섯해째로 접어든다. 아, 언제나 끝이 날것인가 이전투의 나날. 우등불둘레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불빛이 우줄우줄 춤을 추어 표현한 인디안의 전사들을 방불케 하는데 양씨동이가 촉경생정(触景生情)으로 고향이야기를 내놓았다.

<<우리 원산서는 이맘때두 제주도 해녀들이 바다가에다 이렇게 불을 피워놓구... 물속에 들어가 굴조개두 따구 갈미, 해삼두 잡지. 추우면 나와서 불을 쬐구 또 들어가구 추우면 나와서 불을 쬐구 또 들어가구... 종일 그렇게 하는데... 한참씩 자맥질을 했다가 물우에 솟아올라가지고 가뒀던 숨을 몰아쉴 때는 그 소리가 마치 무슨 고동소리와도 같지...>>

<<이 불에다 그놈의 갈미(광삼)나 좀 구워먹었으면 오죽 좋아... 넨장할.>>

<<우리 거기선 날걸루들 먹지.>>

<<그 문둥이 같은걸 징그러워서 날걸루야 어떻게 먹누.>>

<<징그럽긴 뭐가 징그러워, 뱀을 다 잡아먹는 인간이.>>

<<괜히 양간한체해보는 수작이지.>>

<<감이구 배구 다 우리 나라꺼보단 월등 크지만 맛은 아무래두 좀 못하거든.>>

<<잉어나 메기 같은것두 다 그렇지 뭐, 크기야 우리 나라것에다 비해 몇배 더 크지. 그렇지만 맛은... 아무래두 못해. 해감내가 난단 말이야.>>

<<메기 말 말아, 혼이 났다.>>

<<아, 룡왕님을 잡아먹었는데 버력을 안 받아?>>

<<아하하!...>>

<<그때 향로를 받들구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꼴 참 보기 좋더라니.>>

<<돼지고기두 그렇지 뭐. 작아두 우리 나라 돼지고기가 고소하지.>>

<<먹는것만?... 녀자두 우리 녀자들이 상냥하지. 사근사근하구 부드럽구...>>

<<연연하구 말랑말랑하구...>>

<<아이구 죽겠다!>>

<<그 자식, 공연스레 남의 맘을 휘저어놓잖나.>>

<<쉬, 고향생각은 금물!>>

<<야, 말 마라, 속상한다.>>

<<그러게 빨리빨리 따후이로쟈취(打回来家去)해야지.>>

<<하오(好), 따후이로쟈취!>>

한동안 받고치기로 지껄이다나니 밤이 이윽하였다. 속들이 출출하였다. 망년회를 맨입으로 재낼수 없는노릇이였다. 제각기 전대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옥수수미시를 더운물에 풀어가지고 요기들을 하였다. 조선의용군식의 밤참이였다. 말 그대로의 풍찬로숙이였다.


한구를 떠난 북평행 렬차가 안양까지 왔을 때는 벌써 해가 서산에 너울너울 지고있었다. 트렁크 하나와 바스케트 하나를 량손에 갈라든 서른살 가량의 젊은 녀자가 많지 않은 려객들과 함께 차에 올라가지고 빈자리를 찾느라고 이러저리 휘둘러볼 때 가까운 좌석 창가에 아들 같아보이는 네댓살짜리 사내아이와 마주앉았던 이 역시 30 전후의 젊은 녀인이 얼른 아이를 끌어당겨 안으며 어서 와 앉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갓 오른 녀자는 고개를 까닥여 치사하고 곧 트렁크와 바스케트를 선반에 올려놓은 뒤 까만색 오바코트를 입은채로 걸앉더니 시름없는 얼굴로 황혼이 비끼는 창밖의 전야를 바라보았다. 맞은편 좌석에 앉았는 녀인의 아들아이가

<<엄마 나 과자.>> 하고 엄마를 조르는것을 듣고 갓 오른 녀자는 비로소 얼굴을 아이 엄마에게로 돌리고

<<조선분이세요?>>

묻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 일어나 선반에 얹었던 바스케트를 들어내려 무릎우에 놓고 뚜겅을 열었다. 투명한 종이봉지에든 카스테라 하나를 꺼내여 어린아이에게 건네며

<<애기 몇살?>> 하고 상냥하게 물었다.

<<아니 고만두세요, 여기두 있어요.>>

아이 엄마가 밀막는것을

<<내버려두세요.>>

갓 오른 녀자는 듣지 않았다.

<<다섯살입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해야지. 이 애는...>>

<<다섯짤입니다.>>

<<고맙습니다는?...>>

<<고맙쯥니다.>>

<<오호호! 정말 귀여우네요. 이름은요?>>

<<인석입니다. 대답을 해야지.>>

<<인쩍입니다.>>

<<오호호... 대답을 아주 썩 잘하네요.>>

차칸에서 오가다가 만난 두 녀인이 피차에 조선사람인것을 안 뒤에는 잠간동안에 십년지기로 친숙해졌다. 만리이역인 까닭이다.

<<어디 사세요?>>

<<신향이예요.>>

<<녜 신향이요. 그래 지금 어디를 가시는 길이세요. 애기를 데리구 이렇게?...>>

<<북평 오빠네 집엘 다니러 가는 길이예요.>>

<<녜 북평으루요. 그럼 왜 바깥어른하군 같이 가시잖구?...>>

<<아이 아버지야 어디 그럴 겨를이 있어야지요.>>

<<사업이 무척 바쁘신 모양이군요.>>

<<되지 못한 영업이 괜히 분주만 하지요.>>

<<무슨 영업을 하시는데요?>>

<<잡곡도매를 한답니다.>>

<<녜 잡곡도매... 좀 좋아요.>>

<<좋긴 뭐가 좋아요, 사람 골만 빠지지.>>

어린아이가 물을 먹겠다고 하여 그 엄마는 렬차원이 끓인 물을 고대 따라놓은 차잔을 들고 훌훌 불어 식혀가지고 한모금씩 한모금씩 아이를 먹였다. 어린아이가 물을 다 마시고 먹다 남은 카스테라를 저의 엄마를 주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딱지를 꺼내가지고 혼자 노니 그동안 중둥무이되였던 두 녀인이 이야기가 가시 이어졌다.

<<그래 댁에선 어딜 가시는 길이지요. 혼자서?...>>

<<고향으루 돌아가는 길이예요.>>

<<고향이 어디신데요?>>

<<원산이예요.>>

<<원산? 함경도 원산?>>

<<녜.>>

<<그런데 바깥어른이랑 애기랑은 다 어떻거시구요?>>

<<아이는... 없어요.>>

<<녜, 애기는 없어요. 그럼 바깥어른은요?>>

<<바깥량반은... 세상떴에요.>>

<<아니 어떡해서요?>>

<<안양... 안양 아시죠? 안양서 살았는데... 바깥량반은 내처 삼륜차를 몰구... 수매를 다녔지요. 그런데 지지난달에... 호두를 수매하러 나갔다가... 팔로군이 묻어놓은 지뢰에 걸려가지고... 폭사를 했답니다.>>

<<어머, 저걸 어쩌지요.>>

<<사람이구 차구 다 박산이 나버렸지 뭐에요.>>

<<아이고 가엾어라.>>

<<다 내 팔자지요. 팔자를 험하게 타구난탓이지요. 그래 생각다못해... 끈 떨어진 조롱박이 돼버렸으니... 할수 있에요. 살림을 되는대루 걷어치우구... 고향에나 돌아가볼가 해서... 이렇게 떠났지 뭐예요.>>

<<정말 안되셨네요.>>

<<전남편은 명색은 뇌일혈인가 무언가루 덜컥 죽어버리구... 이번건 또 이번것대루 날벼락을 맞아죽구...>>

<<그래 고향엘 돌아가신다면?...>>

<<아무도 없에요 고향에두. 어머니하구 단둘이 살다가 어머니까지 세상을 떳으니... 혈혈단신 외도토리예요.>>

<<참말 딱하시네요.>>

렬차는 어느덧 한단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줄기차게 달리고있었다. 차창밖은 인제 아주 캄캄해져 먼 인가촌의 불빛만이 깜박거렸다.

<<저 성씨를 어떻게 쓰시죠?>>

<<손가예요. 손쌍년이라구 해요. 이름이 우습지요?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주신거예요.>>

<<어머, 우리 아이 아버지하구 동성이시넹. 그이두 손씬데요.>>

<<녜 그래요. 거참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고항엘 가셔선 어떻거나요?>>

<<어떻게든 되겠지요. 설마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이야 칠라구요.>>

참으로 딱한 사정이였다. 동정을 못하는 녀자와 그 동정을 받게 된 녀자가 다 입을 다물고 고르로운 차바퀴의 률동에 몸만 흔들리고있었다. 렬차가 어느 불빛 밝은 역구내에 들어서며 서서히 멎어섰다.

<<예가 어딘가요?>>

<<형대야요.>>

<<형대... 형대에두 우리 사람이 많이 있다지요?>>

<<그렇단갑디다.>>

<<이러다간 석문은... 한밤중에나 지나겠네요.>>

<<열한시 몇분이라지요 아마.>>

신발을 벗겨서 한옆에 눕혀놓은 어리아이는 쌔근쌔근 곤하게 잠이 들었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살스러워졌다. 일본인렬차장이 부랴부랴 달려와 출입문 바로 옆의 좌석에 앉았는 승객들을 딴데로 옮기게 하여 자리를 비워놓자 군도 차고 권총 메고 누른색 소가죽장화를 신은 일본헌병 셋이 저벅저벅 차칸으로 걸어들어오는데 수갑 채운 청년 둘을 중간에 세웠었다. 머리들이 헝클어진 두 청년을 차장밑에 하나씩 갈라 앉히고 바로 그옆에 헌병 둘이 각각 붙어앉았다. 그리고 인솔자로 보이는 하사관은 통로 건너 넓은 좌석에 혼자 따로 편히 앉았다. 두 녀인은 다른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어마한 분위기에 짓눌려 숨들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쌍년이의 앉았는 좌석하고는 비슥맞은쪽인데 어떻거나 압송되는 두 청년과 눈길이 마주칠 때면 쌍년이는 이름 못할 동정과 숭모로 가슴이 마구 죄여드는것 같았다. 얼마나 씩씩한 모습들인가. 얼마나 철학적인 깊이를 가진 얼굴들인가. 얼마나 태연한 몸가짐들인가. 쌍년이는 불현듯 밤중에 보따리 하나를 들고 망명길에 오르던 양씨동이의 생각이 났다. 경찰에 체포되여가던 한지사댁 장손-정실이의 남편-한정희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또 선장이의 담임선생이던 김영하선생의 생각도 났다.

(저이들은 필시 우리 독립군들일거예요.)

쌍년이와 맞은 좌석의 아이 엄마는 입들은 다물고 눈으로만 말을 주고받았다.

(틀림없어요. 얼마나 훌륭한 젊은이들인가요.)

렬차는 쉬지 않고 달려 관장 못미처까지 왔을즈음이다. 기관차가 느닷없이 기적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고 또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그저 선자리에서 자꾸 허우적거리기만 하였다. 객차안의 사람들이 모두 무슨 영문을 몰라 의아쩍어하는중에 별안간 객차의 출입문을 와락 밀어붙이며 총을 든 사람들이 뛰여들었다. 선두에 선 얼굴이 시커먼 권총을 든 팔로군과 통로건너 좌석에 따로 앉았던 헌병하사관이 눈 깜박하는 일순간에 서로 대고 맞총질을 하였다. 하사관은 배를 부둥키고푹 어푸러지고 팔로군의 왼편팔목에서는 선지피가 주르르 흘렀다. 쌍년이는 그 얼굴이 시커먼 팔로군을 한눈 보자 소스라쳐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손수건 쥔 주먹으로 입을 막았다.

동전을 수매하러 다니는 시라가와가 짐받이에 마대를 실은 자전거를 타고 부랴부랴 서황촌 근처의 지대본부를 찾아왔던것은 두주일전의 일이다. 그가 가져온 소식은 온 지대를 뒤흔들어놓았다. 형대성안의 아지트-아사히리발소가 적들에게 불의의 수색을 당하는통에 다까야마형제로 위장을 하였던 우자강과 림상수가 꼼짝 못하고 체포되였다는것이다.

<<이 일을 어쩌지?>>

<<이걸 어떻건다?>>

얼굴빛들이 노래져가지고 아무리 궁리를 해보았자 헌병대에 갇히운 사람을 빼내온다는 재간은 없었다. 한개 려단이나 쏟아져 들어간다면 또 모를가 그외에는 구출을 할 묘리가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속들을 지글지글 끓이는중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고 또 한주일이 지났다. 두주일째 되는 날 늦은아침때 련락원 시라가와가 또 자전거를 타고 진동한동 달아와 보초장을 앞세우고 지대장실에를 들어서는데 숨이 턱에 닿았었다.

<<오늘 밤차루 떠난답니다.>>

시라가와가 밑도 끝도 없이 웨치는 말을 미처 해득 못한 윤지대장이

<<밤차로 떠나? 뭐가?>> 하고 채쳐물으니 시라가와는 가쁜숨을 돌린 뒤에 바로소

<<다까야마형제 말씀입니다.>> 하고 주사를 말하였다.

<<오. 어디루?>>

윤지대장과 보초장이 다같이 놀랐다.

<<석가장으루 간답니다. 석문헌병대에서 벌써 압송할 헌병들이 내려왔답니다. 하야시통역이... 하야시통역 아십지요? 하야시통역이... 새벽같이 쫓아와 일러주면서 빨리 가 알리라구 당부를 하잖겠습니까. 그렇지만 성문이 열려줘야 나옵지요. 그러구 또 너무 일찍 서두르면... 의심을 받기가 쉽겠구... 그래서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백동무.>>

윤지대장은 너무도 고마와 시라가와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고 또 흔들고 하였다.

(동전수매를 하는 애국자! 이 얼마나 대견한가!)

시라가와는 우러러보는 윤지대장이 너무나 뜨겁게 동지적으로 대해주는데 감격하고 또 황송하여 잠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윤지대장이 곧 비상소집을 해가지고 구출할 방도를 강구하는데 격앙한 동지들이

<<렬차를 습격합시다.>>

<<무조건 습격해야 합니다.>>

<<시각을 천추해선 안됩니다.>>

<<총출동합시다.>>

<<간나새끼들, 본때를 보여줍시다.>>

<<시간이 촉박한데 서둘러야 합니다.>>

<<현장까지 가재두 여섯시간이 걸리잖겠습니까.>>

입입이 습격을 하자고 주장하여 의제는 책장 한장을 뒤지듯이 간단하게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세우는데로 넘어갔다.

<<렬차를 멈춰세울 방도부터 토의를 해봅시다.>> 하는 윤지대장의 말에 여러 사람이

<<물론 궤도를 폭파해야지요.>>

<<아니, 레루(레일) 한개를 들어내는게 더 좋습니다. 요란스럽잖구.>>

<<그렇게 되면 기차가 탈선을 할텐데?...>>

<<위험합니다 그 방법은.>>

<<탈선은 재미적습니다. 우리 사람까지 상할 념려가 있습니다.>>

중구난방으로 나서는것을 양씨동이가

<<내 말부터 좀 듣구나서... 내말부터 좀 듣구나서...>> 하고 손을 내저어 누르고 자신의 생각한바를 이렇게 피로하였다.

<<렬차를 멈춰세우는데... 폭파를 한다든가 레루를 들어낸다든가 하는건 다 하지하책입니다. 우리 사람을 구해내는게 이번 작전의 목적인 이상 더더구나 쓸수 없는 방법입니다. 내가 전에 원산총파업때 철도로동자들에게 배운게 있습니다. 그때 외지에서 모집해오는 파업깨기군들을 저지하려구 기차를 중도에서 멈춰세우는데 원산철도로동자들은 우둔한 방법을 써서 경찰놈들에게 구실을 주지 않으려구 교묘한 방법을 썼습니다. 구배(句配)가 심한 지점을 골라가지구 레루에다 몇십메터 잘되게 모빌유를 잔뜩 발라놨습니다. 그랬더니 미끄러워서 그놈의 차바퀴가 자꾸 공전을 하잖겠습니까. 생전 기관차가 앞으루 나갈 재간이 있어야 말이지요. 다급해난 기관사놈이 모래통의 모래를... 언덕을 올라갈 때 쓰는 모래를... 드립다 쏟습디다. 결국 올라가긴 가까스루 올라갔지만 동안이 착실히 걸리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두 이번에...>>

씨동이가 말을 다 마치기도전에

<<그거 참 된 수요.>>

<<옳소!>>

<<절대 찬성!>>

열렬한 분위기속에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였다.

시간이 촉박하므로 지체없이 행동으로 넘어가는데 윤지대장의 포치로 더러는 차단호를 넘을 발판을 마련하고 또 더러는 기름을 구하러 나갔다. 윤지대장은 양씨동이와 리태성이를 데리고 뒤에 남아가지고 시라가와에게 그가 이번 행동에서 맡아할 역할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를 해들렸다. 시라가와를 납득시켜 돌려보내고나니 해가 한낮때다. 장만한 발판은 그런대로 쓸만하였으나 기름은 모빌유가 없어서 대용품으로 유채기름과 돼지기름을 듬뿍 구해들였다.

렬차를 습격하려고 떠난 대오는 해질녘에 관장에서 오륙마장 떨어진 촌락에 들어가 저녁을 지어먹고 한동안 휴식한 뒤 야음을 타고 행동을 개시하였다. 먼촌의 개짖는 소리를 들으며 유령의 행렬처럼 기척없이 사전에 미리 정찰하여 선정한 지점에 접근을 하였다. 10여명 사람이 번갈아 목도질해온 한쪽끝에 긴 삼바줄이 달린 널판대기를 도개교(跳开桥)처럼 차단호가장자리에 60도각으로 세웠다가 천천히 줄을 주어 발판을 놓았다. 이제 렬차가 통과할 시각-9시 20분까지는 반시간이 채 못 남았다. 대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판을 건느며 곧 철뚝 량옆에 매복을 하였다. 여기는 구배선-철길이 어지간히 경사가 진 지점이다. 씨동이 지휘하에 칠팔명 사람이 두패로 나뉘여 준비해온 유채기름과 돼지기름을 레루 안쪽 절반에다만 몇십메터 잘되게 마구 발라나갔다. 두가지 성질이 다른 기름으로 레루를 아주 범벅을 만들어놓았다.

먼 형대역에서 기차가 떠나는 기적소리가 들려오자 윤지대장은 허리를 구푸리고 각 분대의 분대장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다시한번 주의를 주었다.

<<저항만 하면 가차없이 해치우시오. 기관사두 마찬가지요. 순종하면 살려주구... 안하면 해치우시오. 일반려객들은 상하지 않두룩.>>

이윽고 앞등으로 철길을 눈부시게 비추며 렬차가 달려왔다. 매복한 사람들은 제각기 총을 배밑에 깔고 납작납작 엎드려 얼굴을 땅에다 파묻었다. 이런것을 모르고 기세 좋게 달려오던 기관차는 기름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구배선에 서슴없이 들어섰다. 그러나 얼마 못 올라가서 곧 차바퀴가 헛돌이를 시작하였다. 육중한 기관차가 선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양은 마치 무슨 마귀의 술법에라두 걸린것 같아 매우 신기스러웠다. 웬 영문을 모르는 기관사와 화부가 눈들이 휘둥그래져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 꿈에 보일가 무섭던 팔로군이 기관사실로 뛰여올랐다. 그리고 다짜고짜로 총부리를 들이대며

<<세워라!>>

호통을 치는것이 아닌가. 혼비백산한 화부는 손에 들었던 부삽을 얼른 놓고 들라고도 하지 않은 두손을-영화에서 본대로-번쩍 들었다. 기관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저를 겨눈 총구멍에다 눈을 못박은채 거의 본능적인 동작으로 제동기를 더듬었다.

렬차가 멎어서느라고 덜거덩거릴 때 끝으로 세번째 객차의 승강구의 문이 안으로 덜컥 열렸다. 근처에서 대기하고있던 양씨동이를 선두로 손에 총을 든 습격대원들이 우르르 차에 뛰여오르니 문을 열어준 사람-시라가와가 얼른 한옆으로 비켜서며 맞은편 차칸의 출입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씨동이가 알아차리고 서너걸음에 달아가 문을 와락 밀어붙이며 차칸으로 뛰여들었다. 오른편 좌석에 따로 앉았던 헌병하사관이 재빨리 권총을 빼들었다. 일순간의 맞불질. 헌병사관은 배를 맞고 푹 어푸러지고 씨동이는 왼편팔목에 총알을 맞았다. 뒤따라들어온 리태성이와 윤지팽이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와락 대들어 눈 깜박할 사이에 두 헌병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눈들을 부라리며

<<열쇠!>>

<<냉큼 열지 못할가!>>

으르딱딱거리니 도놈중의 한놈이 꼼짝없이 열쇠를 꺼내여 우자강, 림상수 두 사람의 차고있는 수갑을 잘칵잘칵 열어주었다. 그러자 우자강이와 림상수는 벗겨준 수갑을 재치있게 두 헌병의 손목에다 되잡아 채워주었다. 그리고 한놈의 손에 쥐인 수갑열쇠를 홱 잡아채였다. 정치투쟁, 무장투쟁이란 원래 이렇게 전변이 급작스러운 법이다. 이때 양씨동이는 바로 눈앞에 까만색오바코트를 입은 젊은 녀자 하나가 서있는것을 피뜩 보았다. 그 녀자와 씨동이의 네 눈이 마주쳤다. 번개같이 알아보았다.

<<쌍년이!>>

소리치며 씨동이가 한발을 앞으로 내디디는 찰나에 등뒤에서 총소리 한방이 났다. 날아온 총알은 씨동이의 잔등어리를 뚫고 들어와 면바로 심장에 박혔다. 씨동이는 쌍년이 발밑에 머리를 처박듯이 하며 고꾸라졌다. 소리 한번 지를 겨를도 없었다. 씨동이를 쓰러뜨린 흉탄은 고대 그의 총알에 배때기를 맞고 어푸러졌던 헌병하사관이 몸을 겨우 일으키고 최후발악으로 쏜것이였다. 분이 치민 리태성이가 헌병하사관놈의 등판에다 거꾸로 잡은 총창을 콱 내리박으니 그놈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고 곧 사지를 폈다.

쌍년이가 무너앉으며 씨동이의 주검앞에 두무릎을 끓었다. 덧없고 애달픈 열두해만의 해후상봉이였다.

추천 (3) 선물 (0명)
IP: ♡.50.♡.58
로즈박 (♡.43.♡.108) - 2023/11/13 22:00:29

참 마음이 아프네요..두사람이 만나서 같이 손잡고 돌아갈줄 알앗는데..어쩌면 쌍년이는 이름을 잘못 지은거 같애요...
휴...만나자마자 이별이라더니..어떻게 이런 일이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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