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8권 15~16

나단비 | 2024.04.18 10:52:36 댓글: 0 조회: 63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1943
15
날이 밝을 때까지






수잔이 신문에서 얼굴을 들고 실망한 듯 말했다.
“독일군이 다시 프셰미실을 점령했어요. 그럼 그곳을 또 야만스러운 이름으로 불러야 해요. 우편물이 왔을 때 소피아가 와 있어서 같이 그 기사를 읽었는데 소피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군요, 사모님. 그러더니 이러더라고요. ‘다음번에는 그놈들이 틀림없이 페테르부르크를 차지해버릴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지리에 관한 내 지식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프셰미실에서 페테르부르크까지는 상당히 걸어야 할 거야.’ 그랬더니 소피아는 또다시 한숨을 쉬면서 말하더군요. ‘니콜라이 대공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내가 ‘그 사실을 그 사람은 모르게 해야 해. 안 그러면 그 사람 기분이 상할 거라고.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인데.’ 하고 대꾸해줬죠. 그런데 내가 아무리 빈정거려도 소피아는 도무지 기운을 내지 못하더군요, 사모님. 소피아는 세 번째로 한숨을 쉬며 신음소리처럼 내뱉더군요. ‘하지만 러시아군이 빠르게 물러나고 있잖아.’ 그래서 내가 말해줬어요. ‘그게 어떻다는 거야? 물러날 곳은 얼마든지 있는데, 안 그래?’ 내가 소피아 앞에서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요, 사모님. 나도 동부전선 전황이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수잔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곳 상황을 우려치 않는 사람은 없었다. 여름 내내 계속되는 러시아군의 퇴각으로 걱정이 그칠 날이 없었다.
“제가 다시 우편물을 침착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될 날이 올지 모르겠어요. 기분 좋게 기다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구요. 밤이나 낮이나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독일군이 러시아군을 완전히 쳐부수고 그 승리의 기세를 몰아 동부전선의 병력을 서부전선20)으로까지 밀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거트루드 올리버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미스 올리버.”
수잔이 예언자 역할을 하고 나섰다.
“첫 번째로는 하느님이 그런 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니콜라이 대공이 우리를 좀 실망시키기는 했지만 체면을 차려서 질서 있게 도망치는 법을 알고 있거든요. 그것도 독일군에게 쫓기고 있을 때는 꽤 유용한 방법이에요. 노먼 더글러스는 니콜라이 대공이 독일군을 꾀어내려는 수법을 쓰는 거래요. 아군 한 명을 희생시켜 적군 열을 죽이려 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내 생각에는 니콜라이 대공이 지금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도 자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하는 거죠. 그러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생각하며 쓸데없는 걱정일랑은 하지 말아요, 미스 올리버. 걱정은 이미 우리 집 문턱까지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잖아요.”
월터는 6월 1일에 킹스포트로 갔다. 낸, 다이, 페이스도 방학 동안 적십자 봉사활동을 하려고 떠났다. 7월 중순이 되자 월터가 해외로 나가기 전 1주일 동안 휴가를 받아왔다. 릴라는 그 1주일을 고대하며 월터가 없는 나날을 견디었고, 지금 애타게 기다렸던 순간을 소중히 누렸다. 잠을 자는 시간마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싫었다. 슬프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한 주였고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릴라와 월터는 오랫동안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둘 다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릴라 혼자서 월터를 다 차지했고, 오빠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해주어 힘과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오빠에게 자기가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만도 너무나 기뻤다. 그런 생각으로 그 순간들을 견디었고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며 약간은 소리 내어 웃을 수까지 있었다. 그것도 아니었으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월터가 가고 났을 때 릴라는 마음껏 울었지만 같이 있는 동안만큼은 눈물을 삼켰다. 릴라는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부어 운 것을 들키지나 않을까 밤에도 울지 못했다.
마지막 날 둘은 ‘무지개 골짜기’로 가 ‘하얀 숙녀’ 아래 개울가 둑에 앉았다. 그곳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해맑기만 했던 그 옛날의 즐거움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무지개 골짜기’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석양빛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얼마 안 있어 별빛 어린 아름다운 잿빛 어둠이 서서히 세상을 덮어왔다. 어둠 언저리 어디에 달빛이 숨어 내려다보다 다른 곳은 벨벳처럼 부드러운 어두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버려두고 저기 작은 골짜기와 분지에만 밝게 달빛을 내리비추었다.
월터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 골짜기의 아름다운 정경을 담으려는 듯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프랑스 어딘가에 가 있더라도 이슬에 젖고 달빛에 빛나는 이 아름다운 골짜기가 생각날 거야. 향긋한 이 전나무 향기, 달빛이 하얗게 채운 이 평화로운 골짜기. 산들의 힘이 느껴져. 릴라! 저기 저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들을 봐. 어렸을 때 난 저 산들을 올려다보며 저 너머 넓은 세계에서는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했어. 얼마나 조용하고 힘차 보이니. 참을성 있고 변함없는 모습이지. 훌륭한 여인의 마음 같아. 릴라, 나의 릴라, 지금까지 네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아니? 가기 전에 그걸 너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 네가 없었다면, 너의 애정과 날 믿어주는 마음이 없었다면 난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몰라.”
릴라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월터의 손 안에 자기 손을 밀어 넣고 꼭 쥐었다.
“내가 하느님을 저버린 사람들이 이 땅에 만들어놓은 지옥 같은 곳에 있을 때 가장 날 위로해주는 건 바로 너일 거야. 올해 네가 보여준 것처럼 넌 씩씩하고 인내심 있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아. 난 네 걱정은 하지 않아, 릴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너는 너 자신을 지켜갈 수 있을 거야. 릴라, 나의 릴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야.”
릴라는 눈물과 한숨은 참을 수 있었으나 몸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만은 멈출 수 없었다. 월터는 할 말을 다 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둘은 말 없는 약속을 서로 주고받았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할 거야. 몇 년 후를 기대하며 살아야겠지. 전쟁이 끝나고 젬 형과 제리, 내가 모두 집으로 돌아올 때. 그래서 우리가 다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때…….”
월터는 말했다.
“예전처럼 행복해지지는 못할 거야.”
릴라가 말했다.
“그래, 전과 똑같이 행복해질 수는 없겠지. 이 전쟁의 손길이 닿은 사람은 누구나 전과 같은 행복을 되찾지는 못할 거야. 그렇지만 더 차원 높은 행복을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쟁취해낸 행복일 테니까. 전쟁이 나기 전에 우리는 무척 행복했는데, 그렇지? ‘잉글사이드’ 같은 좋은 집이 있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부모님이 계시고,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어. 인생으로부터 행복과 사랑을 선물 받았지. 하지만 그것이 진정 우리 것은 아니었어. 언제든 삶이 그 행복을 다시 빼앗아가 버릴 수도 있었던 거라고. 우리가 의무를 다해가면서 우리 힘으로 얻어낸 행복이라면 삶이 빼앗아갈 수 없어. 그 사실을 군에 지원해서야 깨달았단다. 때로는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며 겁쟁이처럼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5월의 그날 밤 이후로 난 행복하다. 릴라야, 내가 없는 동안 어머니에게 잘해드려라. 전쟁 중에는 어머니로 살기도 무척 괴로울 거야. 어머니, 누이, 아내, 연인, 모두가 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우리 릴라, 너도 연인이 있니? 있으면 내가 떠나기 전에 말해주지 않겠니?”
“아니.” 
릴라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지금은 월터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이제 언제 다시 오빠와 이런 대화를 나누어볼 수 있겠는가? 릴라는 달빛 속에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만일 케네스 포드 오빠가 원한다면 그의 연인이 되고 싶어.”
“그렇구나. 케네스도 군대로 가버렸으니. 어디를 보나 네게는 괴로운 일뿐이구나. 난 그 누구의 가슴도 아프게 하고 떠나는 것은 아니니 그것만큼은 참 다행이야.”
릴라는 언덕 위 목사관을 흘끗 바라보았다. 우나 메러디스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릴라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렇지만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은 아니라도 단지 그럴 거라고 짐작할 뿐 잘은 모르는 일이니까.
월터는 다정하지만 안타까운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언제 보아도 정다운 곳이었다. 어린 시절 여기서 모두들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 모른다. 달빛이 얼룩얼룩 그늘을 드리운 오솔길을 기억의 환영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장난스럽게 엿보기도 하는 것 같았다. 햇볕에 그을려 온통 시꺼메진 젬과 제리는 맨발로 돌아다니며 개울가에서 송어를 잡아 불을 피우고 구워먹었다. 보조개가 쏙 들어가고 눈은 생기로 넘치던 낸과 다이 그리고 페이스는 얼마나 귀여웠던가! 내성적이지만 상냥한 우나, 개미며 곤충을 무척 좋아하던 칼, 말은 좀 곱지 않았지만 마음씨는 좋던 메리 밴스. 그 시절 월터 자신은 풀밭 위에 누워 시를 읽거나 꿈의 궁전을 지으며 공상에 빠져 있고는 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옆에 있는 듯했다. 지금 릴라를 보듯 모두가 다 눈에 똑똑히 보이는 것 같았다. 전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황혼 아래서 골짜기를 걸어 내려가던 모습을 보았던 것처럼. 그 옛날의 명랑한 꼬마 유령들이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제의 아이들이야, 오빠. 오늘의 아이들 그리고 내일의 아이들을 위해 잘 싸워줘.”
릴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월터 오빠, 무슨 생각에 그렇게 깊게 빠져 있어? 이제 그만 돌아와.”
월터는 긴 한숨을 내쉬며 현실로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달빛이 내린 아름다운 골짜기를 돌아보았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모두 가슴과 머리에 새겨두려는 듯. 은빛 하늘에 우뚝 솟은 크고 검은 기둥 같은 전나무, 기품 있는 ‘하얀 숙녀’, 춤추듯 흐르는 개울물이 부리는 마법, 언제나 일편단심인 ‘연인 나무’, 장난치며 손짓하는 오솔길. 

“꿈속에서라도 여기 이 모든 것을 볼 거야.”
월터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두 사람은 ‘잉글사이드’로 돌아갔다. 메러디스 목사 부부가 와 있었고, 거트루드 올리버도 로브리지에서 작별 인사를 하러 와 있었다. 모두들 밝고 명랑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젬이 갈 때와는 다르게 전쟁이 곧 끝날 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전쟁 이야기는 꺼내지조차 않았다. 그러면서도 모두의 머릿속에는 전쟁 생각밖에 없었다. 모두들 피아노 주위로 빙 둘러서서 찬송가를 불렀다.

“예부터 도움 되시고, 내 소망 되신 주.
이 세상 풍파 중에도, 늘 보호하시리.”

“영혼을 정화하고 체질해야 하는 시기에는 우리 모두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을 수 없네요. 전 지금까지 하느님을 믿지 못하던 때도 많았어요. 하느님으로서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말하는 식의 비인격적인 위대한 조물주로서만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하느님을 믿어요. 믿지 않을 수 없어요. 하느님 말고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겸손하게 절대적으로, 무조건 믿어요.”
미스 올리버가 존 메러디스 목사에게 말했다.
“예부터 도움 되시고, 과거에 그런 것처럼 오늘도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를 보호하시리. 우리가 주를 잊는다 해도 주는 우리를 기억하시리.”

목사가 조용히 읊조렸다.
글렌 역에 월터가 떠나는 것을 보러 나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제는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첫 기차를 타고 떠나는 광경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블라이드 식구들 외에 역에 나온 사람은 목사관 가족과 메리 밴스뿐이었다. 메리는 바로 지난주에 밀러를 떠나보냈다. 결심을 아주 단단히 하고 단호한 미소를 지은 채. 그래서 이제 자기는 이런 이별 장면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에 관해 전문적인 의견을 내놓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메리는 ‘잉글사이드’ 식구들에게 조언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고 행동해야 한다는 거야. 군대에 가는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은 누가 독약이라도 삼킨 것처럼 울고 난리를 치는 거라고. 밀러도 내게 울고 난리 칠 거면 역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난 미리 다 울어놨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그에게 ‘행운을 빌어, 밀러. 네가 돌아올 때까지 변치 않고 기다릴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난 언제나 너를 자랑스럽게 내 마음에 간직할 거야.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프랑스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리는 일은 없도록 해줘.’ 하고 말해줬어. 밀러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맹세했지. 하지만 멋진 외국 여자들을 보면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장담하겠어. 어쨌거나 난 마지막 순간에 밀러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그러고 났더니 온종일 내 얼굴이 미소를 지은 채로 풀을 먹여서 다리미로 다려놓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
메리의 조언과 모범적인 예인데도 블라이드 부인은 젬을 웃는 얼굴로 떠나보냈건만 월터는 도저히 웃는 얼굴로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눈물을 흘린 사람은 없었다. 먼데이는 화물 창고 자기 집에서 나와 월터 곁에 앉아 있었다. 월터가 자기한테 말을 걸 때마다 승강장 바닥에다 꼬리를 힘차게 탁탁 내리치면서 “난 당신이 젬을 찾아서 내게 데려와 줄 거라고 믿어요.” 하고 말하듯 월터를 올려다보았다.
“잘 가, 형. 가서 거기 있는 군인들에게 전해줘. 용감하게 싸우라고. 나도 곧 따라갈게.”
칼 메러디스가 명랑하게 말했다.
“나도.”
셜리가 짧게 말하고 갈색 손을 내밀었다. 이 말을 들은 수잔은 새파래졌다.
우나는 애틋함과 슬픔에 젖은 짙푸른 눈으로 월터를 바라보며 조용히 악수했다. 하지만 우나의 눈은 언제나 그렇게 애틋해 보였다. 월터는 카키색 군모를 쓴 보기 좋은 검은 머리를 기울여 우나에게 따뜻하게 입 맞추어주었다. 오누이간의 친밀감이 담긴 입맞춤 같은 것이었다. 전에 월터가 우나에게 키스한 적이 없어서 한순간 우나의 얼굴은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으나, 속마음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장이 기차에 오르라고 소리쳤다. 모두들 명랑한 얼굴을 유지하려고 애써야 했다. 월터는 릴라 쪽으로 돌아섰고, 릴라는 월터의 손을 잡고 올려다보았다. 릴라는 그 얼굴을 어둠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밝아오는 새벽도 무덤의 이쪽에서 맞게 될지 그 너머에서 맞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잘 다녀와, 오빠.”
릴라는 말했다.
릴라의 입에서 나온 이 말에는 모든 서글픔이 사라져 있었고 그 대신 모든 여자들이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겪으며 간구하고 다진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자주 편지 보내주고, 짐스를 모건의 말에 따라 충실히 잘 키워.”
월터는 가볍게 말했다. 심각한 말은 어젯밤 ‘무지개 골짜기’에서 다 해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두 손으로 릴라의 얼굴을 감싸고 그 씩씩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하느님의 보살핌이 있기를, 릴라, 나의 릴라.”
월터는 작은 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이며 생각했다.
‘이런 딸들을 낳은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는 게 힘겨운 일은 아닐 거야.’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월터는 기차의 승강기 계단 맨 뒤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혼자 서 있는 릴라 곁으로 우나가 다가왔다. 월터를 사랑하는 이 두 소녀는 서로의 차가운 손을 잡고 함께 나무가 우거진 언덕 모퉁이를 돌아가는 기차를 바라보았다.
릴라는 그날 아침 ‘무지개 골짜기’에서 보낸 한 시간 동안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을 일기장에도 쓰지 않았다. 그런 다음 집으로 가서는 짐스의 놀이옷을 만들었다. 오후에는 적십자 소녀단 위원회 회의에 나갔으나 무척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릴라의 모습을 보고 바로 오늘 아침에 월터가 전쟁터로 떠났다고 누가 믿겠니? 어떤 사람들은 정말이지 감정이란 게 없는 것 같더라. 나도 가끔씩은 릴라 블라이드처럼 모든 일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중에 아이린 하워드가 올리브 커크에게 말했다.


20. 서부전선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일어난 전쟁터로 프랑스 동북부와 벨기에 전역이 폐허화되었다. 동부전선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동맹군과 러시아군이 대치했던 전선이다.




16
현실과 낭만





더운 8월의 어느 날, 우편물을 들고 들어온 블라이드 의사가 단념한 투로 말했다.
“바르샤바가 함락당했어.”
미스 올리버와 블라이드 부인은 망연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철저히 소독한 스푼으로 짐스에게 모건식 아기 죽을 떠먹이던 릴라는 세균이 묻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잊어버리고 스푼을 쟁반 위에 놓으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어쩌면 좋아요!”
그 비극적인 어조로 보아서는 지난주부터 들어오던 소식으로 이런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미리 짐작하고 있던 일이 아니라 날벼락처럼 불어닥친 소식이라도 들은 듯했다. 이들은 모두 바르샤바 함락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고 여겼었으나 지금 보니 언제나 마찬가지로 요행이라도 바라는 심정이었던 모양이었다.
“자, 기운을 내도록 해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요. 내가 어제 <몬트리올 헤럴드>신문에 3단에 걸쳐 실린 급보를 읽었는데 바르샤바가 군사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전략지가 아니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니 이제 우리도 군사적으로 생각하기로 해요, 선생님.”
수잔이 말했다.
“저도 그 기사를 읽고 정말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 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라는 것을 읽는 순간부터 알았지만요. 지금 제 심리 상태가 그래요. 거짓말이라도 밝은 거짓말이라면 위로가 돼요.”
미스 올리버가 말했다.
“그렇다면 미스 올리버는 독일군의 공식발표를 읽으면 되겠네요. 난 요즘 그런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아요. 그런 걸 읽으면 너무 화가 나서 도무지 일을 할 수 없어요. 이 바르샤바 소식도 내가 오후에 하려고 했던 일들을 방해하고 있잖아요. 재앙은 결코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 법이죠. 난 오늘 빵을 망쳐버렸고, 바르샤바는 함락되었고, 키치너 아기는 이렇게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니 말이에요.”
수잔이 빈정댔다.
짐스는 스푼을 삼키려 들고 있었다. 세균이고 뭐고 다 함께. 릴라는 기계적으로 짐스에게서 스푼을 빼앗아 다시 죽을 먹이려 했지만 아빠가 한 아무것도 아닌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이 뛰는 바람에 다시 그 운 나쁜 스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케네스 포드가 항구 건넛마을 마틴 웨스트 씨 집에 와 있다더군. 케네스네 부대가 전선으로 향하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겨 킹스포트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기회를 이용해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들르려고 휴가를 냈대.”
블라이드 의사가 말했다.

“우리도 보러 와주었으면 좋겠네요.”
블라이드 부인이 소리쳤다.
“하루나 이틀밖엔 시간이 없을 거야.”
블라이드 의사는 무심히 말했다.
릴라의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떨리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리 사려 깊고 주의 깊게 자녀를 보살피는 부모라도 바로 자기 코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 릴라는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 짐스에게 세 번째로 죽을 먹이려 시도했지만 릴라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케네스 오빠가 떠나기 전에 나를 만나러 와줄까?’ 하는 의문이었다.
릴라는 오랫동안 케네스에게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케네스는 릴라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일까? 만일 이번에 만나러 와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잊어버린 것이리라. 토론토에 여자 친구가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럴 것이다. 케네스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바보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와준다면, 그럼 좋은 일이다. 케네스가 ‘잉글사이드’ 식구들에게 남도 아닌데 작별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 예의 바른 행동일 것이다. 만일 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뭐 괜찮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다. 그 일로 야단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 이제 마음은 다 정리되었다.
릴라는 꽤 무관심한 척하고 있을 수 있었지만 짐스에게 죽을 먹이는 것을 모건이 보았으면 놀라 나자빠졌을 만큼 급하고 부주의했다. 짐스도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당한 간격으로 알맞게 한 숟갈씩 죽이 입에 들어오고는 하던 일에 익숙해진 짐스에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짐스는 반항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릴라는 지금 아기를 돌보고 먹이고 할 정신이 못 되었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 울리는 일이 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보통 ‘잉글사이드’에선 10분마다 전화벨이 울리니까. 하지만 릴라는 또다시 짐스의 스푼을 떨어뜨렸다. 그것도 이번에는 카펫에다. 그리고 전화기를 향해 달렸다. 살고 죽는 일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저 전화기에 닿느냐 마느냐에 달렸다는 듯. 짐스는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잉글사이드’인가요?”
“네, 그런데요?”
“너, 릴라니?”
“네, 네.”
아이구, 짐스는 왜 저렇게 악을 써대는 거야. 잠깐만 좀 조용히 할 수 없나? 누가 와서 저놈의 목을 졸라버렸으면 좋겠어.
“나 누군지 알겠니?”
누군지 알겠느냐고! 어디서, 어느 시간에 그 목소리를 듣는다고 릴라가 그 목소리를 모르랴!
“케네스 오빠지, 그렇지?”
“그래, 나 잠깐 여기 왔어. 오늘 밤에 ‘잉글사이드’에 가서 좀 만날 수 있을까?”
“물론이지.” 
케네스 오빠가 지금 나를 만나고 싶단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모두 만나고 싶다는 건가? 지금 릴라는 짐스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케네스 오빠가 지금 뭐라고 했지?
“있잖니, 릴라.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도록 조치를 좀 취해줄 수 있겠니? 내 말 알아들었어? 이 시골 전화선으로는 내 마음을 더 이상은 명확하게 전달할 수 없어. 지금 수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열둘은 될 테니까.”
릴라는 알아들었다. 그렇다, 알아들었다.
“애써볼게.”
릴라는 대답했다.
“그럼 있다가 8시쯤 갈게. 있다가 보자.”
릴라는 수화기를 놓자 짐스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불만스럽게 울어대는 아기의 목을 비틀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의자에서 아기를 안아 올려 자기 얼굴에 찰싹 붙이고는 우유로 범벅이 된 아기 입에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거기다 아기를 품에 안고 미친 듯이 방 안을 빙빙 돌며 춤까지 추었다. 잠시 뒤에 제정신이 돌아온 릴라는 짐스를 놓아주고 남은 죽을 제대로 천천히 먹여주었다. 그러고는 짐스가 가장 좋아하는 자장가를 불러주며 낮잠을 재웠다. 오후에는 적십자에 보낼 셔츠 바느질을 하며 여기저기 온통 무지개가 걸린 꿈의 수정궁을 그렸다. 케네스 오빠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 나 혼자만, 나와 단둘이서 만나고 싶어 한다. 그거야 어렵지 않다. 셜리 오빠가 둘을 방해할 리는 없고, 엄마와 아빠는 목사관에 가실 것이다. 올리버 선생님은 우리 옆에 같이 있겠다고 할 사람도 아니다. 짐스야 날마다 밤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잠을 자니까 문제없다. 오늘 밤은 달이 밝을 것 같으니까 케네스 오빠를 베란다에서 맞으면 된다. 흰 조젯21)드레스를 입어야겠어. 머리는 어떻게 하지? 그래, 머리는 목 부분에서 한 번 묶은 다음 낮게 올려야지. 그 정도면 엄마도 반대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 얼마나 멋지고 로맨틱한 밤이 될 것인가! 케네스 오빠는 무슨 말을 할까? 뭔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만 혼자서 만나고 싶다고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비가 오면 어쩌지? 수잔 아줌마가 오늘 아침 우리 박사가 하이드 씨가 되었다고 투덜거렸는데!
만일 나서기 좋아하는 적십자 소녀단 단원이 벨기에 사람이나 셔츠 일로 상의하겠다고 오면 어쩌지? 프레드 아널드가 지나다가 불쑥 들어오면 어쩌지? 그럼 정말 난처할 텐데. 그 사람은 종종 우리 집에 들르잖아.
드디어 약속한 저녁 시간이 왔다. 상황은 모두 바라던 대로 되었다. 의사 부부는 목사관에 갔고, 셜리와 미스 올리버는 같이 나갔는데 어디 갔는지는 둘만이 알 것이고, 수잔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게에 갔으며 짐스는 꿈나라로 갔다. 릴라는 조젯 드레스로 갈아입고 머리를 올린 다음 머리를 빙 둘러 진주를 두 줄로 감았다. 그리고 허리에는 작고 연한 분홍색 장미꽃 묶은 것을 꽂았다. 케네스가 마음의 정표로 이 장미꽃 한 송이를 달라고 할까? 릴라는 젬이 플랑드르 참호에 시든 장미꽃 한 송이를 가져간 것을 알고 있다. 젬이 떠나기 전날 밤 페이스 메러디스가 입을 맞추어준 것이었다.
달빛과 덩굴나무 이파리 그림자가 어우러진 커다란 베란다에서 케네스를 맞이한 릴라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케네스를 향해 내미는 릴라의 손이 찼다. 릴라는 혀 짧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긴장한 채로 얌전하게 인사를 건넸다. 중위 복장을 한 케네스는 키도 크고 무척이나 잘생겼다! 군복을 입으니 훌쩍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였다. 너무 의젓해 보이는 케네스보다 자기는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 멋지게 생긴 젊은 장교가 글렌 세인트 메리의 릴라 블라이드에게, 아무것도 아닌 자기에게 뭔가 특별히 할 말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다니 너무 어리석었다. 릴라는 자기가 케네스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케네스는 그저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소란을 피우며 자기를 무슨 유명인사 다루듯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의미로 한 말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항구 건넛마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었나 보았다. 그래, 케네스는 그런 의미로 말한 거였다. 그런데 바보처럼 다른 사람은 말고 자기만 보고 싶다는 말로 잘못 알아듣다니. 케네스는 아마 내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것으로 생각할 거야. 속으로 날 몹시 비웃고 있을 거라고.
“이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운이 좋은데. 난 릴라, 나의 릴라만 만나고 싶었어. 분명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케네스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릴라를 바라보는 눈에 감탄의 빛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릴라의 ‘꿈의 성’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분명 현실이었다. 그가 여기 온 이유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젠 이 집에도 예전처럼 북적거릴 사람이 별로 없는걸요.”
릴라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겠다. 젬도 월터도 떠났고, 언니들도 없지. 많이 허전하겠다. 그렇지? 그렇지만 프레드 아널드가 그 허전함을 메워주지 않니? 그런 말을 들었는데.”
케네스는 까만 고수머리가 릴라의 머리에 닿을 정도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바로 그 순간, 릴라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두 사람 바로 위로 열린 창문을 통해 짐스가 목청이 터져라 악을 쓰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밤에는 거의 울지 않는 아이가, 더군다나 저렇게 악을 쓰며 우는 것을 보니 이미 아까부터 울었는데 아무도 와주지 않아 화가 단단히 난모양이었다. 짐스는 한번 저렇게 울어대기 시작하면 절대로 그냥은 그치지 않는다. 그냥 모른 척 앉아 있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서 저렇게 악쓰고 울어대면 이제 대화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또 저렇게 우는 아기를 내버려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케네스가 릴라를 무정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모건의 육아 책》 같은 것을 케네스가 읽어보았을 리도 없을 테니까.
릴라는 일어섰다.
“짐스가 무서운 꿈이라도 꾼 모양이에요. 가끔 그런 꿈을 꾸면 무척 겁을 먹거든요. 잠깐 가보고 올게요.”
릴라는 2층으로 뛰어올라가며 수프 단지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원망도 해보았다. 릴라의 모습이 보이자 짐스는 애원하듯 작은 팔을 내밀며 흐느꼈다. 볼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에 릴라의 화난 마음도 스르르 녹아버렸다. 이 가여운 아이는 단지 무서웠을 뿐이었다. 릴라가 따뜻하게 짐스를 안아 부드럽게 앞뒤로 흔들어주자 아기는 흐느끼기를 멈추고 눈을 스스로 감았다. 릴라는 짐스를 침대에 눕히려 했다. 그러자 짐스는 또다시 울어댔다. 릴라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이제 더 이상 케네스를 혼자 있게 할 수도 없었다. 벌써 30분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릴라는 하는 수 없이 울어대는 짐스를 안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가 베란다에 앉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작별 인사를 나누자고 왔는데 이 전쟁고아를 안고 어르는 우스운 꼴을 보여야 하다니.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릴라의 품에 안겨 있는 짐스는 더없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얀 잠옷 밑으로 분홍빛 발바닥을 기분 좋은 듯 차대며 좀처럼 없는 일이건만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짐스는 점점 더 귀여워졌다. 작고 동그란 머리는 온통 곱슬곱슬한 금발이 물결쳤고 눈도 무척이나 예뻤다.

“정말 귀여운 아기인데, 그렇지?”
케네스가 말했다“보기는 아주 예쁜 아기죠.”
릴라는 이 아기에게 봐줄 만한 점은 그것뿐이라는 듯 씁쓸하게 말했다. 눈치 빠른 아기인 짐스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릴라를 바라보며 아주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엄므, 엄므.” 하고 넋을 쏙 빼놓도록 귀여운 소리를 냈다.
짐스가 말을 한 것도 처음이고, 뭔가 말을 해보려고 한 것도 처음이었다. 릴라는 너무 기쁜 나머지 짐스에게 품었던 미운 마음도 다 잊어버리고 짐스를 끌어안고 마구 입을 맞추어주었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 짐스는 릴라에게 바짝 달라붙어 안겼다. 거실의 램프 불빛이 짐스의 머리칼에 비치자 릴라의 가슴에 황금빛 후광이 둘러진 것처럼 보였다.
케네스는 조용히 앉아 말없이 릴라를 바라보았다. 섬세하고 여자다운 몸매에 긴 속눈썹, 오목하니 예쁜 입술, 사랑스러운 턱 선. 희미한 달빛 속에서 릴라는 짐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램프 불빛을 받은 진주는 가느다란 후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케네스는 이런 릴라의 모습이 어머니 책상 위에 걸린 성모상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이 릴라의 모습을 가슴속에 담고 위험한 프랑스의 전쟁터로 갈 것이다. 케네스는 포 윈즈에서의 댄스파티가 있었던 그날 밤 이후로 죽 릴라 블라이드에게 강하게 이끌리고 있었지만, 자기가 릴라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짐스를 안고 앉아 있는 지금 이 모습을 보면서였다. 하지만 릴라는 그것도 모르고 케네스와의 마지막 밤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왜 자기 하는 일은 마음먹은 것과는 반대로만 되는지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무슨 말을 걸기에도 어색하고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케네스도 저렇게 돌처럼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자기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짐스가 잠이 푹 든 것 같아 거실 소파에 눕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순간 희망이 되살아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짐스를 눕히고 나와 보니 수잔이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수잔은 한동안 그대로 있을 작정인 듯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보닛 끈을 풀었다.
“네 아기는 잠들었니?”
수잔이 상냥하게 물었다.
네 아기라니! 수잔도 좀 눈치 있게 굴면 좋으련만.
“네.” 
릴라가 짧게 대답했다.
수잔은 자기 의무를 다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처럼 장 본 꾸러미를 갈대로 만든 탁자에 놓았다. 지금 수잔은 몹시 피곤했지만 릴라를 도와주어야 했다. 케네스 포드가 찾아왔는데 하필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여서 ‘저 가여운 아이’ 혼자 케네스를 상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 수잔이 아무리 피곤해도 릴라를 구해주러 왔으니 자기 소임을 다할 것이다.
“어쩜 이렇게 어른이 다 되어버렸을까.”
수잔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케네스의 키도 크고 당당한 군복 차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잔은 이제 카키색 군복에도 익숙해져 있었고, 예순넷이라는 나이에는 중위 제복도 그저 옷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어쩌면 이리도 빨리 자라버리는지 참 놀랍다니까. 여기 있는 우리 릴라도 이제 곧 열다섯이지?”
“난 열일곱 살이 되어가요, 아줌마.”
릴라가 거의 소리 지르듯 외쳤다. 릴라는 지금 열여섯 살이 지난 지도 한 달이나 되었다. 수잔 아줌마는 어쩜 저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너희들이 모두 갓난아기였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난 너희처럼 예쁜 아기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케네스, 그래도 네 엄마는 네 그 엄지손가락 빠는 버릇을 고치느라 몹시 애를 먹었어. 케네스, 너 나한테 볼기짝 맞았던 일 기억하니?”
수잔은 릴라의 항의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아니요.” 
케네스가 대답했다.
“그래, 네가 아주 어렸을 때니까 기억나지 않겠지. 네 살쯤 되었을 때였어. 네 어머니와 함께 여기 왔을 때 낸을 너무 귀찮게 해서 낸이 울어버렸어. 내가 몇 번이나 널 말렸지만 도대체 내 말을 듣지 않아서 때려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널 들어서는 내 무릎에 올려놓고 볼기짝을 찰싹찰싹 때려주었지. 그랬더니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며 울던지. 그래도 그다음부터는 낸을 골리지 않았어.”
릴라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수잔은 자기가 지금 캐나다 육군 장교와 말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분명 모르는 모양이야. 아, 케네스가 어떻게 생각할까?
수잔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늘 밤 수잔은 오로지 옛 추억에 잠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네 어머니한테 볼기짝을 얻어맞은 일도 기억나지 않을 거야. 나는 그 일도 절대,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네가 세 살 정도 되었을 때 어느 날 밤에 네 엄마가 널 데리고 여기 왔었다. 너랑 월터는 부엌 뜰에서 새끼 고양이를 갖고 놀고 있었지. 내가 비누 만드는 데 쓰려고 빗물이 내려오는 배수구 앞에 커다란 물통을 놓아두었어. 그런데 너와 월터가 고양이를 놓고 싸움을 벌였다. 월터는 이쪽 의자 위에 서서 고양이를 잡아당겼고, 넌 저쪽 의자에 올라서 고양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잡아당겼지. 너희 둘 다 물통 위로 몸을 앞으로 내밀고 고양이를 밀고 당겼어. 넌 원래 네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빼앗아버리는 데 명수였거든. 그런데 월터도 고양이를 단단히 쥐고 놓지 않아서 가엾게도 고양이는 비명을 질러댔어. 네가 월터와 고양이를 너한테로 가까이 잡아당겼는데 그만 너희 둘 다 균형을 잃고 고양이와 함께 물통 속에 빠져버렸지 뭐냐. 만일 내가 거기 없었더라면 너희 셋 모두 아마 물에 빠져 죽었을 거야. 내가 얼른 달려가 셋을 다 끄집어내서 무슨 일이 나지는 않았지. 네 어머니가 2층 창문에서 그 장면을 모두 보고 있다가는 내려왔어. 당장 너를 집어 올려서는 흠씬 두들겨주었지. 아, 그 시절 ‘잉글사이드’는 참 행복했는데.”
수잔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고말고요.”
케네스가 대꾸했다.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딱딱했다. 릴라는 케네스가 무척 화가 나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케네스는 미친 듯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목소리가 이상해진 것뿐이었다.
“여기 있는 우리 릴라는 한 번도 볼기짝을 맞은 일이 없었어.”

수잔은 아주 애정 어린 눈으로 지금 전혀 행복하지 못한 릴라를 보았다.
“아주 얌전한 아이였으니까. 그래도 한 번 아버지한테 맞은 일이 있긴 있었지. 아버지 진찰실에서 알약이 든 약병을 두 병이나 꺼내 와서는 앨리스 클로와 누가 먼저 약을 먹는지 내기를 했거든. 그때 마침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았으면 그날 밤에 두 아이는 시체로 변했을 거야. 죽지는 않았어도 둘 다 그 뒤로 한참이나 앓았지만.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릴라를 용서 없이 때려서 그 뒤로 두 번 다시 아버지 진찰실에서 뭘 내오는 일은 없었지. 요즘은 아이들을 알아듣게 타이르고 설득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지만, 나는 볼기짝을 실컷 때려주고 그 후로는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릴라는 수잔이 우리 집 아이들 엉덩이 맞은 이야기를 모두 늘어놓을 모양이라고 심술궂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잔은 그 화제를 그것으로 끝내고 또 다른 명랑한 화제로 옮아갔다.
“항구 건넛마을에 사는 아이인 토드 매컬리스터도 바로 그런 일로 죽은 것을 내 아직도 기억하지. 설사약이 사탕인 줄 알고 한 통을 다 먹어버렸거든. 무척이나 슬픈 일이었지. 난 그 아이처럼 예쁜 아이 시체를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설사약을 아이 손이 닿는 곳에 두다니 그 애 엄마가 부주의했던 탓이었지. 그 여자는 부주의하기로 소문이 난 여자였어.”
“가게에서 만난 사람은 없어요?”
릴라가 수잔의 이야기를 좀 더 적당한 주제로 돌려보려고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물었다.
“메리 밴스 말고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어. 메리는 꼭 아일랜드 벼룩처럼 통통 튕기며 걸어가더구나.”
수잔이 말했다.
‘어쩌면 비유를 해도 저렇게 상스럽게 할까! 케네스 오빠가 우리 식구들은 다 저렇다고 생각할 거 아냐!’
수잔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메리가 밀러 더글러스 얘기 하는 소리를 들으면, 글렌에 군대에 간 젊은이는 밀러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 하기야 옛날부터 메리가 허풍 떨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고. 그러면서도 성격은 괜찮거든. 그렇지만 말린 대구를 들고 우리 릴라를 몰았던 일을 생각하면 내 아무리 해도 좋게 생각할 수가 없어. 온 마을을 쫓아 뛰어다니다가 결국은 카터 플래그네 가게 앞 웅덩이에 콱 처박게 했잖아.”
릴라는 다시 한 번 분노와 수치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불명예스러웠던 장면들 중에 수잔이 끄집어낼 일이 더 남았을까? 케네스는 수잔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실례가 될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참느라 심각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릴라는 케네스가 기분이 상해 그러고 있는 줄 알았다.
“아까 가게에서 잉크 한 병에 십일 센트나 주었어.”
수잔이 불평했다.
“잉크 값이 작년보다 갑절이나 올랐으니 내 원 참. 이건 분명 우드로 윌슨이 성명서를 남발한 탓이야. 그 많은 걸 쓰려면 잉크가 얼마나 들었겠어. 우리 사촌 소피아 말에 따르면 우드로 윌슨은 자기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래. 하지만 어떤 남자는 안 그런가. 노처녀로 살다 보니 남자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난 남자를 잘 아는 척도 하지 않아. 소피아는 남자라면 좋은 말을 안 하지. 그래도 소피아는 결혼을 두 번이나 해서 남편도 둘이나 가져보았으니 그 정도면 뭐가 불만이라고. 앨버트 크로퍼드네 굴뚝이 지난주 태풍에 날아가 지붕 위로 떨어졌어. 지붕 위로 벽돌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소피아는 체펠린 비행선이 폭격을 가하는 줄 알고 히스테리를 일으켰대. 앨버트아내는 차라리 체펠린 비행선의 습격을 당한 것이 나았을 뻔했다고 하더구먼.”
릴라는 최면이라도 당한 듯 의자에 꼼짝도 못 하고 앉아 있었다. 릴라는 수잔이 자기 스스로 말을 그만 하고 싶을 때까지는 말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을 잘 알았다. 그만 말을 끝내게 하려고 무슨 짓을 한들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보통 때는 수잔을 무척 좋아했지만 지금은 미운 마음이 뼈에 사무쳤다. 벌써 10시가 되었다. 이제 곧 케네스는 돌아가야 한다. 다른 식구들도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아직 프레드 아널드가 내 허전함을 메워주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란 말도 하지 못했다. 릴라의 무지갯빛 성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결국 케네스는 일어섰다. 그도 자기가 거기 머무는 한 수잔도 같이 있을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항구 건넛마을 마틴 웨스트네 집까지 가려면 거의 5킬로미터를 걸어야만 해서 그만 일어서야 했다. 케네스는 릴라가 일부러 수잔을 이 자리에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프레드 아널드의 연인으로서 자기에게 혹시나 원치 않는 말을 듣게 되지나 않을까 단둘이 있게 될 일을 피하려고. 릴라도 일어서서 말없이 베란다 끝까지 케네스와 함께 걸어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잠시 멈추어 섰다. 케네스는 아래쪽 계단에 서 있었다. 계단이 땅 아래로 절반쯤 꺼져버린 것 같았고, 두 사람 주변으로 박하향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이 축복처럼 진한 향기를 뿌려주었다. 케네스는 릴라를 올려다보았다. 달빛을 받은 릴라의 머리칼이 반짝였고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케네스는 프레드 아널드에 관한 이야기가 헛소문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릴라, 너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어.”
케네스가 갑자기 긴장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릴라는 얼굴을 붉히며 수잔 쪽을 봤다. 케네스도 그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수잔은 이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었다. 케네스가 릴라를 안고 키스했다. 릴라에게는 첫 키스였다.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화가 나지 않았다. 화를 내기는커녕 케네스의 갈구하는 듯한 눈을 겁먹은 듯 바라보았다.
“릴라, 나의 릴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다른 아무한테도 키스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겠어?”
케네스가 말했다.
“네.” 
릴라는 가슴이 뛰고 몸이 떨렸다.
수잔이 몸을 돌렸다. 케네스가 얼른 릴라를 놓아주고 걸어 나갔다.
“잘 있어.”
케네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릴라도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릴라는 그 자리에 서서 케네스가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나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나무 숲에 가려 케네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릴라는 갑자기 “오!” 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문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릴라의 치맛자락에 예쁘게 활짝 피어난 꽃송이가 걸렸다. 대문에 기대서서 릴라는 빠르게 길을 걸어 내려가는 케네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달빛 너머로 그의 크고 건강한 모습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모퉁이에 이르자 케네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되돌아보았다. 릴라가 대문 옆 키 큰 백합꽃 속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케네스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릴라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케네스는 길을 돌아가 결국 보이지 않게 되었다.
릴라는 그대로 그곳에 선 채 밤안개가 내려 은빛으로 빛나는 들판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릴라는 어머니가 구부러진 길을 좋아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구부러진 길 너머로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매혹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릴라는 구부러진 길이 싫었다. 젬과 제리가 자기 눈앞에서 구부러진 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월터도 갔으며, 이제는 케네스마저 사라지려 했다. 오빠도, 놀이친구도, 연인도 모두 가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는 들려오고 죽음의 춤은 계속되고 있다.
릴라가 천천히 집으로 걸어 돌아왔을 때도 수잔은 베란다 탁자에 앉아 있었다. 뭔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는 듯한 눈치였다.
“옛날 ‘꿈의 집’ 시절이 생각나는구나. 케네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직 결혼을 하기 전에 아주 로맨틱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고 젬은 갓난아기에다 릴라 너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지. 아니, 태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을 때였어. 케네스 어머니와 릴라 네 어머니는 아주 친한 단짝이었어. 그때는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서 그 아들이 군대에 가는 걸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케네스 어머니는 앞으로 당할 일이 아니더라도 젊었을 때 이미 고생이라면 충분히 했는데! 그렇지만 우리 모두 마음을 굳게 먹고 이겨나가야 한다.”
수잔의 말에 릴라의 노여움이 깨끗이 사라졌다. 케네스의 키스가 릴라의 입술에 아직 타는 듯 남아 있고, 케네스가 요구한 약속에 담긴 멋진 의미를 생각하면 릴라의 머리도 마음도 다 팔딱거려 누구에게 화낼 마음 같은 것은 없었다. 릴라는 자기의 가냘픈 흰 손으로 수잔의 햇볕에 타고 마디마디 굵은 손을 꼭 잡아주었다. 수잔은 믿음직하고 다정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의 삶을 다 바칠 사람이었다.
“피곤했겠구나, 릴라. 이제 얼른 가서 쉬어라. 오늘 밤 케네스를 상대하느라 아주 피곤했을 거야. 내가 일찍 집에 돌아와 거들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런 일을 많이 해본 것도 아닌데 젊은 남자를 상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잔이 말했다.
릴라는 짐스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가 잠자리에 들었으나 그전에 오랫동안 창가에 앉아 무지개 성을 다시 한 번 쌓아올리고 거기에 둥근 지붕과 작은 탑까지 더했다.
“내가 케네스 포드와 약혼을 한 걸까, 하지 않은 걸까?”
릴라는 중얼거렸다.


21. 날줄은 왼쪽으로, 씨줄은 오른쪽으로 되게 번갈아 꼬아서 짠 견포나 면포. 여름철에 입는 여성 의류에 많이 쓰며 물속에 들어가면 급히 수축되고 말려서 다리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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