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피장편 3

3학년2반 | 2022.01.02 07:33:33 댓글: 0 조회: 357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054
  제 3장 사화
  1
  해가 다 저녁때가 된 뒤에  덕순이가 집으로 돌아온즉 그 어머니가 “너 어디 
갔었니? 아까 너의 처가에서  사람이 와서 너의 장인이 갑자기 병환이 나셨다고 
기별하는데 온  사람이 호들갑스러워서 곧 시각대변중이라는  것같이 말하여 네 
댁이 그 말을 듣고 초설해하기에 너의 아버지께  말씀을 여쭙고 네 댁을 보냈다. 
그런데 갔다 온 하인의 말을 들은즉 병환이  대단치도 않은가 보더라. 어제 낮에 
도야지고기라나 무슨 고기라나 자신  것이 눌려서 어젯밤부터 좀 편치 못하시다
가 오늘 낮에 일시 고통이  심하여서 집안에서 황황히 지냈다는데 네 댁이 갔을 
때는 그저 그만하시다고  하더란다.” 하고 며느리 근친 보낸 것을  말하니 덕순
이는 자기가 집에 없는 동안  안해의 간 것이 불만하여 “체증이 났다고 데려가
고 고뿔 들렸다고  데려가고 딸을 데려가다가 볼일 못 보겠네요.  체증쯤으로 편
치 못한데  기별은 무슨 기별이에요.” 하고  상을 찌푸리었다. 이튿날 덕순이는 
하루 동안 그린 아내를 보기 겸 장인  문병하려고 처가에를 가게 되었다. 덕순의 
장인은 숭선부정이니 종친 중에  현명한 사람이라 같은 종친에도 성심으로 나랏
일을 걱정하는 파성군과  자별한 친분이 있었다. 덕순이 간 때에  마침 파성군이 
문병 왔다는 까닭에  덕순이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었다. 덕순의 안해  이씨는 속
으로 십년 그리던  남편을 만난 것같이 반가왔으나  겉으로 시침을 떼고서 말이 
없이 잠깐 웃는 것으로 알은 체하고 덕순이도 역시 끄덕이는 듯 마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덕순이가 한동안 안방에 앉았었는데, 섰다 앉았다 하여도 별로 
안방을 떠나지 아니하는 이씨가  그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다락에 올라가는 길에 
덕순의 옆을  지나가며 나직이 “저녁때 가겠세요.  할 이야기가 많아요.” 하고 
한번 덕순을 돌아보니 덕순이는  넌지시 “무슨 이야기? 병환 구원한 이야기?” 
하고 소리없이 웃었다.  파성군이 갔다고 한 뒤에 덕순이가 장인  사랑으로 나가
니 누비처네를 덮고 누워 있는 그 장인이 반갑게 “너 왔느냐?” 하고 덕순이가 
가까이 앞으로 나가서 “좀  어떠십니까?” 하고 병환을 물은즉 그 장인이 “오
늘은 그만하다.” 하고  덕순이더러 일으켜 달라고 하여 처네로 앞을  두르고 뒤
에 의지하여 앉은 뒤에 “거기  앉아라. 내가 이야기 할 것이 있다.” 하고 덕순
이가 쪼그리고 앉는 것을 보고 조용히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너의 아버지 친구 몇 분들이 성심으로 나랏일을 바로잡으려는 것은 누가 모
르겠느냐만, 소인들의  원망이 나날이 심해서  여러 가지 간계가  있는 모양이니 
뒤가 걱정이다.  지금 화천군 심정이와  남양군 홍경주가 예조판서  남곤 집에서 
거의 하루돌이로 모이다시피  한단다. 님곤이가 간특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꾀주
머니라는 심정이가 합했으니 무슨 간계가 안  나오겠느냐. 심정이는 경빈 박씨에
게 소식을 통하여 홍경주는 그  딸 희빈에게 말을 들여보내서 갖은 참소를 다하
게 하는데 제일 조대헌을 몹시 몰아 말하는 모양이란다. 
  일전에 위에서 내전에 듭셨을  때 곤전도 계시고 희빈과 경빈도 뫼시었었는데 
희빈이 조광조가 길거리에 나서면 늙은  것이나 젊은 것이나 모두 우리 상전 우
리 상전 하고 절들을 한답니다 말씀하고. 경빈이  뒤를 이어서 지금 조정에는 조
광조의 당이 아니면  간신으로 몰려서 쫓겨나지 않을 수 없답지요  말씀하고, 그 
뒤에 경빈과 희빈이 번갈아가면서  조광조가 인심 수습을 잘한다는 등 조광조가 
당파를 잘 세운다는 등 갖은  말씀을 다하니까 위에서 듣기 싫어하시는 빛을 보
이시며 아무리 하기로 조광조가 역적이야 되랴 꾸중하다시피 말씀하셔서 희빈과 
경빈은 입을 다물게 되었고,  그때 곤전께서 그렇게만 하실 말씀도 아닙니다. 조
광조야 그런 맘이 없겠지요만  조광조에게 붙쫓는 것들이 추대를 한다면 조광조
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강헌대왕께옵서도 개국공신들 까닭에 맘에 없으신 왕
위를 받으시더란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조대헌이나  너의 아버지
나 좌우간 조심들 하여야 할  것이니 너의 아버지께 가서 조용히 말씀을 여쭈어
라. 지금 파성군도 한걱정을 하다 갔다.
  2
  숭선부정은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보이며 말을 그치었다가 다시 동강동강 하
는 말이 “ 심정이로  말하면 이판으로 논박을 당해서 떨어진 일이  있지. 또 형
판으로 탄핵을  당해서 쫓겨난 일이  있지. 심지어 한성판윤까지  다니지 못하게 
되었었구나. 그러니 독이 여간 났겠느냐?” “남곤이는 글자  하는 것을 믿고 이
편에 붙으려고 애를 쓰나 남상인으로 고변할 때부터 소인놈이니까 누가 그걸 붙
이겠니? 신의정이 대제학을 물려준 까닭에  신의정은 고맙게 생각하는가 보더라.
” “홍경주는 남곤의  글도 없고 심정의 꾀도  없는 위인이 찬성으로 논박맞은 
것을 분하게 생각해서  둘에게 섭쓸리는 모양이야.” “궁흉극악한  것들이 별짓
을 다  생각해 내는 모양이다. 주초위왕이란  비결 비슷한 말까지 지어냈단다.” 
“정암의 일도 걱정이지만 일 불행하면 장기 튀김이구나. 너의 집이 걱정이다.” 
덕순이가 장인의 하는 말만  듣고 앉았다가 “가친이 조대헌장과 같이 양근으로 
낙향하실 생각이 계신 모양이니  가친을 만나시거든 낙향하시라고 권하십시오.” 
하고 말한즉 그 장인은 “나더러 권하라느니  네가 말씀을 여쭈려무나.” 말하고 
덕순이가 “저는 어린아이로 아시니까  말씀을 여쭈어야 들으실 것 같지 않습니
다.”하고 말한즉 그 장인은  “뛰엄질 같은 어린아이 장난을 너무 하지 말지.”
말하고 웃는데 아이종이 미음상을 들고  나와서 한번 방을 들여다 보고 뒤를 돌
아보며 무어라고 말하더니 덕순의 안해가 뒤를 따라 나와서 곧 방으로 들어오며 
“아버지 속미음 좀  잡수시지요.” 하고 미음상을 받아서 그 아버지  앞에 갖다
놓았다. 덕순의 안해는 더 있다가 저녁때가 다 된 뒤에 돌아왔다.
  그말 밤에 덕순이가  안해 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며 곧 “아무리 친환이 
있다기로 나도  보지 않고 가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 하고  논죄하듯 말하니 
그 안해는 “그러지 않아도 오시거든 보입고 가고 싶었지만 어머님이 곧 가라고 
하인들 지휘까지 하시는데 유난스럽게  보입고 가겠다고 할 수가 있어요? 할 수 
없이 그대로 갔지요.”  하고 진정 반 웃음 반으로 발명하다가  덕순이가 “여러 
가지로 생각해서 십분  용서하지.”하고 거짓 점잔빼는 것을  보고는 “황송무지
하외다.” 하고 순전히 장난조로 사과하였다. 그다음에 덕순이가 “아까 낮에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지. 무슨 이야기야?” 하고 물어서  이씨가 친정에서 들은 이
야기를 옮기는데 그 이야기는 대개 이러하였다.
  “경복궁 안 함원전 뒤에 배나무가  한 주 섰는데 그 배나 무에 글자 쓰인 잎
새가 생기었다. 희빈 홍씨가 그 잎새를 따서  상감께 보시게까지 하였는데 이 글
자는 조씨가 임금  된다는 뜻이라 한다. 이것이 실상은 희빈이  만들어낸 것인데 
희빈이 일찍이 익은 배를 따서  즙을 내고 거기다거 꿀물을 타서 배나무 잎새에 
글자를 써놓았더니 벌레가 즙이 묻은 자리를 갉아먹어서 글자 모양이 된 것이라 
한다. 어느 어스름 달밤에  희빈이 남몰래 배나무 밑에 가서 높은  발판 위에 올
라서서 여러 잎새에  글자를 썼는데 벌레가 먹기는 한 잎새뿐이었다고  한다. 이
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희빈의 심복 나인이고 하나는 그 나
인 아래 있는  무수리다. 그 무수리는 숭선부정의 집에서 자라난  사람이라 일전
에 다니러  왔다가 이씨의 어머니를  보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씨가 이야기를 
대강 끝내고 “그  무수리가 글자 쓸때 발판을  들고 따라가기까지 했더라니 그 
말이 믿을 만하겠지요.?”  하고 말하니 덕순이는 그 장인이  말하던 주초위왕이
란 말을 생각하고 “희빈이  글자를 쓰다니 진서를 알든가?” 하고 얼굴에 걱정
스러운 빛을 보이었다. 
  3
  덕순이는 그의 부친이  사랑에 혼자 있는 때에  조용히 들어가서 전후에 들은 
이야기를 말하여 드리고 그 끝에  속히 양근으로 낙향할 것을 말하니 그의 부친
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응, 알았다.” 하고 저으기 고개를 끄덕이는 외에 별로 
말이 없었다. 덕순이가 맘이 초조하여 “조대헌장을  청하셔서 조용히 의론해 보
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다시 말씀한즉 그의 부친은  “알았다니까 
그러는구나.”하고 섰는 덕순을  치어다보는데 말을 더하면 꾸지람이  내릴 눈치
가 보이었다.
  덕순이가 한동안 우두커니 섰다가 방 밖으로 나오자 그의 부친의 한숨짓는 소
리가 귀에 들리었다.  덕순이는 그 한숨 소리에 맘이 더욱  초조하여 ‘조대헌장
을 가보입고 말씀이나  해보겠다.’생각하고 사헌부에서 나올 만한  때를 헤아려
서 조대헌에게 와서 본즉 조대헌  사랑에 여러 손님이 모이어서 무슨 공론이 있
는 모양이었다.
  덕순이가 그 사랑에 바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여 청지기를 시켜 조용히 뵙고 싶
다는 뜻을 통하니 청지기가 들어갔다 나와서 말이 잠깐 기다리라신다고 하여 덕
순이는 한동안 다섯 살 먹은  조대헌의 아들 정이를 데리고 실없는 말을 물었었
다. “너 지금도 젖 먹니?” “동생이 있는데.” “네 동생 이름이 무어냐?” “
아기” 옆에 있던  상노가 “애기가 이름이야? 용이올시다 그러지.”  하고 가르
치니 정이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고 “용이올시다.” 하고 따듬따듬 옮기었다. 
“아버지가 이쁘냐?  어머니가 이쁘냐?”“어머니는 때려주어.”  “그러면 아버
지가 이쁘냐?” 아이는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너 글 배우니?” “그럼. 하늘  천, 따지, 아비 부, 어미 모, 다 아는데 무어.” 
“잘 아는구나.”하고 덕순이가  칭찬하는 바람에 아이는 까불기  시작하여 상노
더러 이놈아, 저놈아 하며  장난을 치는 중에 큰사랑에서 “이리 오너라.” 하는 
조대헌의 목소리가 나니 상노가  “아이구 장난한다고 아버지가 걱정하시어.”하
고 공동을 시키어서 아이는 장난을 그치었다. 
  조대헌이 혼자 앉아서  덕순을 불러들이었다. 덕순이가 절하고  꿇어앉은 뒤에 
궐내 이야기를 말씀한즉 조대헌은 웃으면서 “위에서  간계에 속으실 리가 없네. 
또 신자  된 도리는 성심을 다할  뿐이니.” 하고 다시 말이  없으므로 덕순이가 
“어르신네시나 시생의 가친이나 지금쯤 조정에서 물러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
다. 가친과 의론하시고  속히 양근 미원으로 낙향하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
고 조대헌의  의향을 물으니 “자네  말이 옳아. 그렇지만  조정에서 물러가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닐세. 자네 어르신네나  내나 작록을 탐해서 사로에  나선 것 
같으면 벌써 물러가게 되었을 것일세.” 하고  조대헌이 대답하는데 그 말소리부
터 간곡하게 들리었다.  “자네 어르신네 말씀은 무어라시다?” “별  말씀이 없
으셔요.” “내가 이따가 자네 어르신네를 보이러  갈 터일세. 먼저 가게.” 하고 
조대헌이 말하는데 덕순이 더 앉았기가 어려워서 일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때가 다 된 뒤에  조대헌이 김사성을 찾아와서 이야기하다가 저녁밥을 같
이 지시게 되었는데,  덕순의 형제가 뫼시고 서서 시중을 들자니  조대헌이 덕순
을 돌아보며 “내년  봄쯤 두 집에서 같이  낙향하자고 지금 어르신네와 의론했
네.” 하고 말하여서 덧순의 초조하던 맘은 너누룩하여졌다. 저녁상이 끝나고 덕
순의 형제가  나온 뒤에 조대헌과  김사성 사이에는 아들들의  이야기가 났었다. 
“덕순이가 기골만  든든한 줄 알았더니 식견도  제법 있는 모양이야.” “무어, 
공부를 해야지 사람이 되지.” “자네는 맏자제가  청수하고도 그릇 같아 보이니
까 뒷걱정이 없네. 집의 정이는 아직 어린  것이지만 원대한 기상이 보이지 아니
하는 것이 수를 못할  것 같아.” “정이는 좀 약해서 걱정이지만  둘째 자제 용
이는 튼튼하더군.” “덕순의 아우 어린아이의  이름을 무어라고 지었어?” “덕
무라고 지었지. 덕무나 용이나 한 이십 되어서  사람 노릇하게 될 때에는 우리가 
육칠십 노인이 될 모양이지.” 하고 김사성이  웃으니 조대헌은 “우리가 그때까
지 살까?”하고 저으기 한숨을 지었다.
  4
  그날 낮에  조대헌의 사랑에 모이었던 사람들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인데 
병인년 반정공신들 중에 아무 공로도 없이 외람히 참예한 사람이 많으니 이것을 
골라서 처치하도록 하자고 그들이 공론하였었다.
  이튿날부터 사헌부,사간원 양사에서 무공한  사람들의 공신 칭호를 깍아버리자
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대사헌, 대사간 이하 여러 간관들이 복합까지 
하였으나 임금이 좇지 아니하였고 그 뒤에 옥당에서 양사의 주장을 따라서 상소
를 아뢰고 대신과 각조 판서가 양사의 주장을 좇아서 말씀을 아뢰었으나 임금이 
종시 좇지 아니하였다.  이때 좌의정 신용개는 병으로 수유하고 집에  누워 있던 
중이라 예조판서 남곤이가 문병하러  왔다가 “근래 조정 의론이 과격하여 걱정
입디다.” 하고 말하니 병이 중하여 기신을 잘  못하는 신정승이 벌떡 일어 앉으
며 “과격하다니? 소인들이 옳은 일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워서 모함하려고나 할 
말이지 대감이 할  말이오? 대감이 어째 그런 말을  하오? 나는 병이 좀 나아서 
등연하게 되면  힘껏 말씀을 아뢸  작정이오.” 하고 얼굴빛을  붉히며 나무라서 
남판서는 무료하게 앉았다가 돌아갔다. 
  그 뒤 얼마동안 지나지 아니하여 신정승의 병이 더치어서 다시 등연하지 못하
고 마침내  돌아가니 대신의 초상이라 임금님이  별전에서 망곡하려고 하교까지 
있었는데, 예조판서 남곤 이외 몇 신하가 중난한 일이니 중지하시라고 밀막았다. 
조대헌이 입궐하여 임금께  알현하고 “신용개 초상에 망곡하옵시려다가 중지합
시는 것은 무슨 일이오니까? 신은 듣사오니 세종대왕께옵서는 대신 상사 백관을 
거느리시고 친림까지 하옵시고 곡하실 때 곡성이 밖에까지 들리었다하오니 일전
에 망곡하옵신다는 하교를 봉행하지  아니한 것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신자의 
할 바이 아니외다.”  하고 말씀을 아뢰니 임금도 무안하였거니와 남곤  이외 몇 
사람은 무안이 지나서 양사 간관들이 공신 문제로 일제히 시작하게 되었는데 임
금이 조대헌을 인견하고 “이미 봉한  공신을 깎아 없이 하는 것이 국가의 중대
한 일이라 이때껏 지난한 것인데  경들이 사직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아니
한가?” 하고 말씀하니 조대헌은 외람한 공신은 삭훈함이 마땅하다고 누누이 아
뢰고 그 끝에 예조판서 남곤이가  조정의 중대한 의론이 있을때 영릉에 진향 간
다고 서울을 떠나서 위론에 참예치 아니하였으니 이것이 조정 중신의 도리가 아
니라고 논박하여 그때 같이 입시하였던 남곤이는  등에 찬땀이 흘렀었다. 나중에 
임금도 할 수 없이 하고  삼등공신은 추리어 없이 하여 화천군 심정이와 남양군 
홍경주도 군 칭호를 빼앗기게 되어서 분심이 더욱이 돋히었다. 
  공신 문제가 낙착난 뒤 어느 날 밤에  혜화문 안 갖바치가 조대헌을 찾아왔다. 
이때까지 조대헌에게 한번도 온 일이 없는 사람이 졸지에 찾아오니 조대헌은 반
갑게 맞아들이면서 괴상히  생각하여 “오늘은 웬일인가?” 하고 물으니 갖바치
는 첫마디에 “조상  왔소이다.”하고 슬픈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조대헌이 
“조상이라니?”하고 놀라니  갖바치는 “영감께서는 가실  길을 가시는 것이나 
옆에서 보입는 사람은 개연한 맘이 없지 않습니다.  이 다음날 동소문 밖에서 하
직할 틈은 있을 듯하나 말씀까지는 여쭙게 될지 모르는 까닭에 오늘밤에 일부러 
왔습니다.” 하고 화가 박두하였으니 집일을 미리  정돈하여 두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말한 뒤에 “이목이 번다하여 오래 있지  못하고 갑니다.” 하고 일어서 나
가는데 조대헌은 무슨 셈인지를 몰라서 별로 붙잡지도 아니하였다.
  5
  갖바치가 왔다 가던 이튿날 조대헌은 심신이 불쾌하여 종일 집에 누워 있었는
데, 이른 저녁때 김사성이 찾아와서 외조부 제사  참사를 가는 길에 잠깐 들리었
노라고 말하고 수어하다가 바로 일어서려고 하니 조대헌이 조금 더 앉았다 가라
고 붙들어서 나중에  저녁밥까지 같이 먹게 되었었다. 저녁상을 치운  뒤에 조대
헌이 김사성을 돌아보며 “오늘은 종일 신기가 불편하여 밥 생각이 별로 없더니 
자네와 같이 먹는  덕에 저녁을 잘 먹었네.” 하고 치사하듯  말하는데 김사성이 
“우리가 이 다음날은 같이 밥 먹기도 어려울  것일세.” 하고 한숨을 쉬니 “갑
자기 앞 짧은  소리가 웬일인가? 자네가 몹시 심약해졌네그려.”  하고 조대헌이 
도리어 위로하는 어조로 말하다가  “벌써 함정의 고동을 밟았으니 천장만장 빠
질 것은 눈앞에 닥친 일이지.” 하는 김사성의  말을 듣고 맘이 따라 약하여졌든
지 “글쎄, 그렇다고 하겠지.” 하고 역시 한숨을 쉬었다.
  이리하여 주객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한동안 서로 대하고 앉았다가 나중에 김
사성이 “제사나 지내러 가겠네.” 하고 일어서려고  하니 조대헌이 “이리 오너
라.” 하고  상노를 불러서 “대사성댁 하인에게  등불을 켜라고 일러라.” 하고 
분부하고서 곧바로 “아니  달이 밝겠구나. 등불은 그만두고 나오라구나 일러라.
” 하고 고쳐 분부한 뒤 일어서는 김사성을  보고 “내일 만나겠지.” 하고 작별
인사까지 하더니 김사성이  마당에 내려서서 몇 걸음도  걷기 전에 영창을 열고 
“노천 외조 제사에  꼭 참사하여야 하겠나?” 하고 묻지  않을 듯한 말을 물은 
까닭에 김사성은 괴상히 생각하여  “그것은 왜 묻나?” 하고 고개를 돌이켜 바
라보니 작은 촛불이 찬바람에 후리어서 방안이 밝지 못한 중에 조대헌이 손으로 
문틀을 짚고 구부슴하고  서있는데, 그 머리에 짐승의 발톱 같은  손이 내려와서 
관 속에 있는  상투를 꿰어들려는 것같이 보이었다. 김사성이 속으로  놀랍게 여
기어 다시 뜰  위로 올라와서 가까이 서서 본즉  짐승의 발톱 같은 손이 아니라 
문방장을 걷어 다는 갈고리의 끝이 나온 것이었다. 
  조대헌은 김사성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가까이서 말하려는 것인 줄로 알고 마
루로 마주 나와서 달빛이 들기  시작한 뜰 위에 섰는 김사성을 내려다보며 “닭
이 밝으네그려. 오늘밤은 공연히 맘이 소란하니  자네와 이야기나 하고 지냈으면 
좋겠으나 자네가 제사지내러 간다니 붙들 수가  있어야지.” 하고 은근히 붙들었
으면 좋은 눈치로 말하나 김사성은 “간다고 기별까지 하였으니까 아니 갈 수가 
없어. 자네는  일찍이 자게. 내일 만나지.”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서 중문 
밖으로 나오는데 공연히 맘에 섭섭한 것 같았다.  김사성이 외가에 와서 보니 주
인 되는 외사촌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외사촌이 김사성을  분주히 맞아
들이며 “형님댁에서는 일찍 나서셨다는데 어디서 늦으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김사성이 “효직이에게서 늦었네.” 하고 대답한 뒤  “집에서 일찍이 나선 것은 
어떻게 알았나?” 하고 도리어  물은즉 그 외사촌은 “덕순이가 석후에 와서 다
녀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김사성이 외사촌 이외 여러 사람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그의 외척 되는 사람 하나가 “근래에 조정일이 어떠합니까?” 
하고 물으니 김사성이 손을  내저으며 “오래간만이니 서로 서회들이나 하지 조
정일은 물어 무엇하나.”  하고 말하기를 즐겨 아니하는데 그 사람이  굳이 듣고
자 하여 나중에 김사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로 말하면 공명이 분수에 넘치는 
까닭으로 어느 때 화를 받을지 모르는 사람이라 다음날은 이렇게 모이기도 어려
울 것이니 이런 때 서로 서회나 하세나.” 하고  말하여 그 사람은 더 말하지 못
하고 김사성의 외사촌이 “형님, 화 받으실 줄  알면서 왜 진작 피하지 아니하십
니까?”하고 말하니 김사성은 “지금 와서는  진퇴유곡이야.” 하고 한숨을 지었
다. 
  김사성의 외가는 닭 운 뒤에라야 비로소 행사하는 예문가가 아닌 까닭에 제사
를 일찍 지냈다. 그러나  제사를 파하고 음복을 시작할 때 밤이  벌써 삼경이 가
까웠다. 음복상이 채  다 끝나기 전에 덕순이가 도적에게 쫓긴  것같이 장달음을 
쳐 뛰어들어오며 바로 사랑으로  들어와서 양치하는 김사성을 보고 “아버지 큰
일 났습니다.”  하고 벅찬 숨을 돌리려고  할 때 벌써 중문  밖이 술렁술렁하며 
여러 사람의 발짝 소리가 들리었다.
  6
  덕순이가 김사성 앞으로 가까이 가서 “벌써 왔습니다. 사랑 뒤로 피하시지요.
” 하고 나직이  말하니 김사성이 눈을 부릅뜨며  큰소리로 “지각없는 것 같으
니, 어디를 피한단 말이냐?” 하고 꾸짖었다. 이러할 때 선전관 하나가 금위군사 
십여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김사성의 외사촌이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고 나서서 “웬일이오?” 하고 물
으니 그 선전관이 “웬일?”  하고 뇌며 어깨를 으쓱하고 “대사성 김식이 여기 
왔지?” 하고 호기 있게  묻는데 김사성의 외사촌이 무어라고 대답하기 전에 김
사성이 방 밖으로  나와서 “내가 김식이오.” 하고 나서니 그  선전관이 어명을 
받들고 나왔다고 말한 뒤에 금위군사를 지휘하여 김사성을 끌어내리어 전후좌우
로 에워싸고 중문 밖으로 나가는데, 덕순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신을 부르
르 떨다가 잡혀가는  부친의 뒤를 따라나섰다. 뒷전에서 가는 군사  하나가 돌치
어서며 “이놈아, 따라오지 말아!”  하고 호령하는데 덕순이가 “아무더러나 이
놈이야. 따라가면 어찌할 테냐?” 하고 맞호령하다시피 하였더니 “이놈 보아라.
”하고 덕순에게 달려들어 손찌검을 하려는 것을 옆에서 가던 다른 군사가 “앗
게 이 사람아, 잡혀오는 이의  자질인가 보에. 인정에 따라오고 싶지 않겠나? 이 
사람 고만두고 어서  가세.” 하고 말리어서 그 군사는 “양반의  자식은 법도도 
모른단 말이, 봉명한 사람에게  호령질을 하다니. 내일쯤은 연좌로 경치게 될 것
이니 어디 보자.” 하고  벼르고 돌아섰다. 덕순이는 그렇지 않아도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한두 번에 그 군사를 반쯤 죽여놓고 싶었으나 억지
로 참고서 광화문  앞까지 따라왔다. 궐내는 따라들어갈 길이 없는  까닭에 광화
문 밖에서 미친 사람같이 왔다갔다 하다가 수문장에게 “누구냐? 저리 가거라” 
하는 꾸지람까지 받았다. 
  얼마 동안 지난 뒤에 금부도사가 앞을 서고 그 뒤에 금위군사 한 떼가 덕순의 
부친 이외 여러  사람을 둘러싸고 나오더니 의금부로 향하였다. 군사  속에 싸여
서 끌려가는 그 부친의 얼굴을 언뜻 보고서는 이때껏 말똥말똥하던 덕순의 눈에
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금부 앞까지 따라 오기는 왔으나  황토마루 큰길로 
돌아왔는지 수진방골  사잇길로 내려왔는지  덕순이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이때 
달이 대낮같이 밝아서 기어가는 개미도 보일 만하였으나 달이 밝은지 날이 밝았
는지 덕순이는 요량하지 못하였다. 그날 밤에  궐내에 입직하였던 승지며 옥당들
도 잠깐 금부에  내려 갇히었다가 바로 놓이었는데, 두서너 사람이  놓여나올 때
마다 덕순이는 그 부친도 섞이어 나오나 하고 번번이 쫓아가서 보았다.
  금부 안에서는 잡히어 온 사람들이 넓은 뜰에 늘어 앉았는데 금부도사의 인정
으로 공석 한 닢씩을 주어 깔고 앉았으나,  언 땅에서 올라오는 찬기운과 기왓골
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에 몸이 벌벌 떨리었다.  잡혀온 사람들은 대사헌 조광조와 
형조판서 김정과 대사성 김식과  부제학 김구와 우승지 윤자임과 좌부승지 박세
희와 동부승지 박훈과 응교 기준  등 여러 사람인데 무슨 죄로 잡히었는지는 알
지 못하지만, 죽음을 면치 못할 줄은 다 각기 짐작하였다. 
  그러나 조광조 외에는 모두  일없는 사람같이 웃고 이야기하고 윤자임이 금부
도사에게 사정하여 술을 사다가 돌려 마신 뒤에는 시까지 읊조리는 사람이 있었
는데, 조광조 한  사람은 이야기도 하지 아니하고 술도 마시지  아니하고 처음부
터 통곡하여 그칠 줄을 모르니 여러 사람들이  “효직이 울지 말게.” 하고 말리
기도 하고 “효직이  창피하지 아니한가?”하고 조롱하기도 하는 중에 기준이가 
“죽음을 당하여는 끝까지 옹용한 것이 글자 배운 보람인데 통곡할 까닭이 무어 
있소?” 하며 책망하니 조광조가 목메인 소리로 “낸들 그걸 모르겠나? 나는 우
리 임금을 뵙고 싶어. 우리  임금이야 이렇게 하실 리가 없어.” 하고 다시 울음
을 내놓았다. 조대헌이  깔고 앉은 공석은 떨어진 눈물이 얼어붙어서  달빛에 번
쩍거리니 나졸 중에 한 사람이  이것을 보고 새 공석을 한 닢 가지고 와서 “이
것을 깔으십시오.” 하고  조광조를 붙들어 일으키고 새 공석을 덧깔아  주니 조
광조가 그 나졸을 돌아보며  “필묵을 좀 얻어주겠소?” 하고 청하니 그 나졸이 
“도사 나리께  말씀을 여쭈어 보리라.” 하고  가더니 필묵과 벼루를 가져왔다. 
조대헌이 눈물로 묵수 삼고 웃옷자락으로 종이 삼아 상소 한 장을 써놓았다.
  7
  여러 사람이 조광조의  써놓은 상소를 보니 말은 간단하나 뜻은  곡진한데, 끝
으로 말한 소원은 임금이 친히  한번 심문하여 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것이
었다. 성미 괄괄한  윤자임이 이것을 보고 대번에 “친국 당하기가  소원이란 것
은 좀 우습소그려.” 하고 옷자락 상소를  손등으로 밀어치우니 조광조가 그것을 
정성스럽게 접어서 품에 품으며 “우리 임금은 잘못된 일을 아시고 고치시지 않
을 리가 없으셔.” 하고 또 눈물이 방울방울  옷깃에 떨어지는데 눈물 자국이 완
연히 불그스름한 물이 묻는 것 같았다. 
  김식이가 이것을 보고  “여보게 중경이!” 하고 윤자임의  옆구리를 지끈거리
어 윤자임이 자기를 돌아다보게 하고는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 김구를 가리키며 
“저 대유의 글을 들었나? 명월장천야 구가 좋지?” 하고 말한즉 윤자임이 “아
까 같이  듣고 들었느냐고 묻는단 말인가?  노천도 정신이 빠졌네  그려.” 하고 
허허 웃으니 김식이는  “그랬던가?” 하고 저으기 웃었다. 김식이가  말하고 웃
고 하는 모양으로 윤자임도 조광조의  맘을 더 상하게 하지 말라는 눈치를 알고 
다시는 옷자락 상소에 대하여 말을 내지 아니하였다.
  잦은 닭이 울  무렵에 덕순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덕순이는 금부문  밖에서 돌
아다닐 묘리도 없지마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역시 없었는데 어찌하다가 집에 
있는 어머니의 생각이 나며 발이 제대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처
음에 선전관이 금위군사를 지휘하여 집 안을 뒤지는 틈에 덕순이는 슬그머니 사
랑 뒷담을 뛰어넘어서 한달음에 그의 부친이 있는 진외가로 갔었는데 그 어머니
와 그  형님까지도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만, 
덕순의 안해 이씨는 사람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 시어머니가 수족에 자개바람이 
나서 맏동서와 같이  시어머니 옆에 붙어 있느라고 틈을 타지  못하였다. 덕순이 
집에를 돌아왔을 때  이씨와 그 동서는 아직도  시어머니 방에 있었는데 중병을 
치른 사람같이 얼굴이 해쓱한 덕순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형수가 “아이
구!” 하고는 곧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시어머니에게 “서방님 오셨습니다.” 하
고 말하였다.  덕순의 어머니가 기운 없이  눈을 뜨고 한번 둘러  보더니 “너의 
아버지 오셨느냐?” 하고 묻는 것이 정신이 깨끗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덕순
이는 그 형수가 가까이 있는  것도 헤아리지 않고 어머니 앞으로 달려들어서 그 
안해가 주무르느라고 쥐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빼앗는 것같이 당겨 쥐고 “어머
니, 아버지가  금부로 가셨어요.” 하고 눈물이  텀벙텀벙 떨어지니 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이 고개만 가로 흔들 뿐이었는데,  그 고개가 남편의 일이 글렀다는 
뜻인지 또는 아들더러 울지 말라는 뜻인지 알지 못할 고개이었다.
  덕순의 형 덕수가 들어왔다.  덕수는 울어서 눈이 부었었다. 그 어머니는 덕수
를 보고 또  알지 못할 고개를 흔들었다. 이씨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시어머니의 
발치로 가서 섰으니 맏동서가  “여보게 앉게. 어머니 발을 주무르세.” 하고 자
기도 발치로 가서 두 동서가  시어머니의 발을 하나씩 갈라 쥐고 주무르기 시작
하고 덕수는 계수가  내놓고 일어선 자리에 와서 덕순과 나란히  앉았다. 앉았는 
사람의 속을 답답케 할 만큼 조용하였다. 소리는  어린 덕무의 코고는 색색 소리
와 등잔불의 심지가 타는 빠지직  소리 뿐이고 움직이는 것은 두 동서의 흰손들
뿐이었다. 이때 광경을 갑자기 보게 된 사람이  있다면 아들 며느리가 어머니 임
종에 모이어 앉은 것으로 잘못 보기 쉬울 만하였다.
  동이 틀 때  그 어머니가 깨끗한 정신이  돌아나서 아들들을 보고 “너희들이 
이리하여서는 아니 된다. 큰일을  당한 사람일수록 잠 잘 자고 밥  잘 먹어야 한
다. 나가서 눈들을 좀 붙여라.” 하고 또 발치에 있는 며느리들을 보고 “너희들
도 방으로들 가거라.”  하고 말한 뒤에 아니들 나가는 것을  야단치다시피 하니 
이씨의 두 동서가  먼저 나와서 상직군과 아이종을  들여보내고 그 뒤에 덕수의 
형제들도 일어서 사랑으로  나왔다. 덕수는 기질이 약한 까닭에 앉아  배기지 못
하고 목침을 베고 눕고 덕순은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았는데 밖에서 “작은서방
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8
  덕순이가 문을 열고  내다본즉 박연중이가 댓돌 위에 올라서 있었다.  “왜 부
르니?” “이리 좀  오시오.” 덕순이가 마루 끝에 나와 앉은  뒤에 “소문은 더
러 들으셨소?” 하고 연중이가 물으니 덕순이는 듣지 못하였다고 고개를 흔들었
다. 연중이가 “소인이  몇 군데 다니며 알아보니까 예조판서 남곤이가  일을 꾸
며낸 모양입디다.” 하고  “오밤중에 이디 가서 알아보았단 말이냐?”  하고 덕
순이가 의심하는 것같이 말하니까 연중이는 “어젯밤에 문 닫고 잠잔 댁이 이디 
있단 말씀이오.”  의심하는 것을 나무라듯이  말하고 우선 알아본  데를 대려고 
“소인의 친구가 회동 정정승댁의 청지기를 다니고 소인의 일가가 흥인문 밖 이
판서댁의 별배를 다니지요.” 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그래 고만두고 알아본 이
야기나 해라.” 하고  연중의 이야기를 재촉하였다. “정정승댁 청지기의 이야기
를 들으니까 어제 새벽에 남판서가  패랭이를 쓰고 헌 베옷을 입고 걸어서 정정
승댁에를 왔더랍니다. 정정승이 중문간에 나가 보는데  그 청지기가 부축하고 나
갔더래요. 남판서 말이 남의 이목이 무서워서 이  모양을 하고 왔노라고 하고 지
금 위에서 조광조 당을 없이 하시려고 하시는데 위에서 대감께 문의하시거든 아
무쪼록 위의  뜻을 거스르시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을 하나라도  뒤에 남겨두면 
해가 무궁할  것이라 씨를 없애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하게 되실지도 모르니 깊이 생각하십시오. 말하고는  잘하면 큰 수가 생길것
이요, 잘못하면 큰 탈을  당할 것이라고 별말을 다 하더랍니다. 그런데 정정승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여보 대감이 조정 중신의 몸으로  상것들의 모양을 하고 
큰거리를 지나오시다니 해괴한 일이오. 또 그러고  사림을 모함하려는 것은 나의 
본심이 아니오, 하고 말하여 남판서가 골을 내고  인사도 변변히 아니하고 간 일
이 있었는데, 어제 밤중에 궐내에 큰일이  났다고 입궐하시라고 해서 들어가시게 
되니까 그 댁에서도 큰일이 나는가 보아서  안팎없이 야단들이랍디다. 또 이판서
댁 별배의 말을 들으니까 이판서가 댁에 아니 계신 동안에 남판서가 연 사흘 찾
아왔더랍니다. 어제 저녁때 남판서에게서 무슨 편지가  왔는데 이판서가 그 편지
를 보더니 군복을  차리고 말을 빌어다 타고 문안을 들어왔답니다.  처음에는 남
판서 집으로 갔었다가 남판서와같이 경복궁 대궐 뒷문으로 가서 그 문으로 입궐
하였다는데 그 별배가  주인대감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나왔다고  합디다. 그러고 
신무문으로 입궐하는 것은 전에  본 적이 없는 일이라고 합디다. 그래  이 말 저 
말 합해서 생각한즉 이번에 영감마님이 당하신 일은 남곤이가 꾸며낸 것이 분명
하지 않아요?” 정신 놓고  연중의 이야기를 듣던 덕순이가 “남곤이는 원래 간
특한 놈이니까 못된 짓을 하겠지만 이장곤이로 말하면 점잖다는 말을 듣는 자가 
남곤이와 부동해서  못된 짓을 했단 말인가?”  하고 열을 내어  소리를 질렀다. 
덕순이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방에  누웠던 덕수가 놀라서 뛰어나오며 “무얼 그
러니?” 하고 물으니 덕순이가 눈을 크게  뜨고 “여보 형님, 이장곤이가 남곤이
와 부동해 가지고  아버지를 모함했다는 구려.” 하고 분하여 하니  덕수가 얼마 
동안 말이 없이 생각하더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판서가 점잖다는 이고 
또 조대헌장이시나 아버지시나 서로 친하신 터인데  그럴 리가 만무하다.” 하고 
이판서를 두둔하여  말하였다. “아니요, 형님. 연중이가  듣고 온 말이  있을 뿐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 본즉 그 말이  근리한 것이, 이장곤이가  병판이 아니오? 
병판이 아니  들면 금위군사를 풀 수가  없지 않소?” “글쎄,  그렇다면 인심이 
무섭다.” “인심이다 무어요? 친한 것으로  말하면 남곤이는 친하시자들 아니한
지요? 우리가 원수를  갚자면 첫째 이장곤이고 그 다음에  남곤이오.” 덕순이가 
주먹을 쥐고 일어서니 덕수가 차차 더 알아보자고 말하였다.
  9
  덕순이가 이장곤을 때려죽일 놈같이 벼를 때에 금부 안에서는 벌써 좌기할 기
구를 차리느라고 나졸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중이었다.  해가 높이 솟은 뒤
에 조광조, 김정  등을 잡아들여 문초를 받게 되었느데 문초받는  관원은 위관에 
김전이요, 금부당상에 이장곤이요,  이품에 홍숙이었고, 문초받는 죄목은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 네 사람은  붕당을 지어 성세를 잡고 궤격한 버릇을 길러 조정
을 그르친다는 것이요, 윤자임,  기준, 박세희, 박훈 네 사람은 조광조 무리를 따
라 궤격하다는 것이었다. 조광조가 계하에 꿇리어  앉아서 당상에 좌기한 이장곤
을 치어다보고 “희강이, 희강이.” 하고 자를 부르니 이장곤은 바늘방석에 앉은 
사람같이 몸을 편히  가지지 못하고 차마 계하에  꿇린 사람을 바로 내려다보지 
못하던중에, 조광주의 자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무안한 듯이 부끄러운  듯이 얼굴
을 붉힐 뿐이었는데 김전이가 “죄인이 당상의 자를 부르다니 가만두지 못한 일
이다.” 하고 같지  않게 화를 내며 좌우에 벌려선 나종을  내려다보고 “너희들 
그 주둥이를 부비어 놓지 못하느냐!”  하고 호령하였다. 나졸들이 긴 대답을 하
고 조광조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이장곤이가 “가만히 물러들  섰거라.” 하고 
분부하여 나졸들을 물리치고 곧 손 위에 앉은 김전을 돌아보며 “선비는 죽일망
정 욕보이지 못합니다. 또 어제까지 친구로 지내던  사람이 자 좀 불렀다고 욕보
이는 것은 인정이  아닙니다.” 하고 점잖게 말하여 김전은 입맛을  다시고 말이 
없었으나 손 아래에 앉은 홍숙이가 이장곤을 돌아보며 “그것은 대감 말씀이 틀
린 말씀이십니다. 충역이 한번 갈린 바에야 친구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
것은 고만두고 얼른 죄인들의 문초나 받으십시다.”  하고 계하를 내려다보며 “
너희들의 죄목은 다  알았지? 광주부터 바로 아뢰라.” 하고  호령하니 조광조가 
홍숙을 치어다보며  “네가 나의 문초를 받다니?  만일 법대로 국문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 말하여 홍숙은 분이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금부에서 여러 사람
의 문초를 받아서 궐내에 드리고 형장쓰기가  청하였으나, 이일에 대하여는 조정 
의론이 정한 것이 있으니 형장을  쓰지 말고 조율하라고 위의 하교가 있어서 여
러 사람이 형장은 당하지 아니하였다.
  이때 문 밖에  사는 사람들은 문 안으로 모여들고  문 안에 사는 여염 사람과 
시정 사람들은 길거리로 몰려나오고 성균관에 거재하는 유생들과 중부, 동부, 서
부, 남부 사부학당에  있는 유생들은 경복궁 대궐 앞으로 몰려들어서  광화문 앞
에서 황토마루로 종로 큰길거리까지 사람 천지가 되었는데 해태 앞과 금부 앞에
는 사람이 천여 명씩 뭉치었었다. 해태 앞에  뭉치었던 유생 중에 신명인이란 선
비가 앞으로 나서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섰기만 하여서 무엇하는가? 우리가 신
원상소나 올려보자.” 하고  섰던 자리에 주저앉아 상소를 초하는데 붓이  쉴 새 
없이 적어냈다. 여러  유생들이 상소 든 유생을 앞세우고 궐문  앞으로 달려드는
데, 수문장이 문  지키는 군사를 좌우에 벌려세우고 앞을 막으니  황계옥이란 유
생이 군사 하나를 떠다박질러서  유생과 문군사 사이에 살풍경이 나기 시작하였
다. :“쳐라, 때려라.” 소리와 “밟아라, 죽여라.”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유생 
중에 갓 부시고 옷 찢긴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고 머리가 깨어져서 피투성이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먼저 손찌검을  시작한 황계옥이는 슬슬 피하여 
옆으로 비켜선 까닭에 옷고름 하나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막아도 물러가지 아니
하고 점점 더  달려드는 유생들을 문군사 몇  사람이 막아내지 못하여 나중에는 
유생들이 물밀듯이 광화문 안으로 몰려들어와서 악머구리 울듯이 통곡하기 시작
하였다. 난데없는  곡성이 궐내를 진도하여  위에서 놀라 곡성  출처를 하문하니 
정원에서 사실을 아뢰었다. 위에서 “이것은 천고에 없는 변이다. 금위군사를 풀
어서 몰아내라. 그러고 수두  몇 놈은 잡아 가두어라.” 하고 하교하여 금위군사
들이 유생들을  내쫓는데 “수두가 누구냐?” 물어서  몇 사람을 잡으려고 하니 
여러 유생들이 “나도  수두다. 나도 수두다.” 하고 달려들었다.  금위군사가 처
음에 잡기는 네다섯 사람에 불과하였지만 나중에 앞을 다투어 잡히는 사람이 수
가 없이 많은  까닭에 철쇄가 부족하여 새끼로 목을  얽힌 사람이 여러 백 명이 
되었다. 위에서 이것을 알고 조광조가 인심을  얻었다는 것이 사실이구나 생각하
고 눈살을 찌푸릴  때에 마침 금부에서 조광조의  옷자락 상소를 올리니 위에서 
“상소는 다 무어냐?” 하고 감하지 아니하였다.
  10
  옥당 하인 이학년은 속량하지 못하여 하인 노릇을 할망정 근본을 따지면 종친
의 서자라 종친  중에 안면이 넓었었다. 그날 식전에 파릉군에게  쫓아가서 의논
한 결과로  왕자, 군 이하 종친들의  힘을 모아서 조광조 등을  구원하기로 되어 
낮이 지난 뒤에 파릉군 이하 여러 종친들이 예궐하여 임금께 면대하기를 청하다
가 정원에 막히어  면대하지 못하고 그대로 퇴궐들 하게 되었다.  파릉군은 빈청
에 와서 대신들을  보고 나랏일을 걱정하여 울며불며  하는 중에 마침 빈청으로 
들어오던 이장곤을  보고 인사도 채  아니하고 “희강이, 나는  대감을 사람으로 
알았더니 불여우 새앙쥐들 틈에서 꼬리를 흔들고 다닌단 말이오? 대감이 사람이
오? 대감이  효직이 일파를 해칠 줄은  몰랐소.” 하고 나무라며  눈물을 좌르르 
흘리니 이판서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얼빠진  사람같이 두리번거리기만 하다가 
영의정 정광필 앞으로 나아가서  금부의 처치를 말하는데 영의정은 상을 찡그리
었다. 
  금부에서 조광조 이하 여덟  사람의 죄를 간당률에 비추어서 당자들은 참형에 
처하고 처자는 노비를 박고 재산을 적몰하기로 정하고 위관 김전이가 위에 품하
려고 궐내로 들어왔다. 죄를 정할 때에 이판서는  너무 중하게 매는 것이 불가하
다고 다투었으나, 남곤, 심정의  뜻을 받은 홍숙이가 무능한 김전과 부동하여 이
판서의 다투는 것을  돌보지 아니하고 이렇게 정하게 된 것이다.  이판서가 만일 
모리악을 쓰다시피 다투었다면 병조판서로 금부당상을 겸한 중신의 말이 허무해
지도록 될  것이 아니었지만, 거제  귀양살이와 함흥 도망질의  광경이 머릿속에 
떠 오르는 중에  정다운 봉단과 귀여운 함동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어 맘이 
약하여져서 굳세게 말을  세우지 못하였다. 두 사람에 한 사람이라  힘이 자라지 
못하여 간당률에 비추어 죄를  정하게 되었다고 이판서가 영의정에게 말하고 부
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었다. 
  이때 위관 김전이가 임금께 봅고 금부에서 조율한 것을 아뢰니 임금은 조광조 
무리의 인심 얻은 것을 근심하던 터이라 그 죄가 죽일 것이 없는 것은 통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나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  네 사람은 죽이고 그  나머지 네 
사람은 귀양보내라고 하교하여 다 저녁때 위관 김전과 당상 이장곤과 이푼 홍숙
이가 다시 금부에  좌기하고 조광조 등의 지만을 받게 되었는데,  이당상만은 머
리가 아프다고 손으로  머리를 짚고 벼로 말을 입에 내지  아니하였다. 조광조는 
옷자락 상소를 올린 뒤에 한번 친국이나 당하게 될까 기다리었더니 금부에서 지
만을 두게되는 것을  보고 소원이 틀린 것을 알았다. 어젯밤에는  친구들의 말하
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통곡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조광조가 지만을 둔 
뒤로부터는 여러 친구와 웃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 집 사랑에 모여 앉았을 때
나 다름이 없었다. 
  영의정 정광필은 날이 저물어 불을 켠 뒤까지 빈청에 앉았었는데 혼잣말로 ‘
개지가 살았더면 혹 선처할 도리가  있었으련만 나 혼자 남아서 이런 변고를 당
한단 말인가?’  하고 죽은친구 신용개를 생각하며  긴 한숨을 쉬기까지 하였는
데, 조광조 등의 죄를 한번 다시 대신에게  수의하게 되어 입시하라는 전교가 위
에서 내리니 정광필은  즉시 입시하여 탐전에 부복하고  “광조 등은 나이 젊고 
어리석사온 까닭으로 사리를 몰라서  그렇게 된 것이옵지 만일 중죄를 범하였사
오면 신인들 어찌 죄주시기를 청하지 아니하오리까? 죄가 있사와도 죽이도록 중
할 것이 없사오니 감사정배케 하옵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아뢰는데 눈물이 관
복 깃을 적시니  임금도 “과연 중대한 일이니 다시 생각하여  보지.” 말씀하고 
얼마 뒤에 가승지 성운을 불러서 “광조 등 네 사람은 원방에 안치하고 그 나머
지 네 사람은 원방에 부처하라.” 하고 하교를 내리었다.
  11
  조광조 등 여덟 사람은 다같이  귀양 가게 되었는데 조광조는 능주로 가고 김
정은 금산으로 가고  김식은 선신으로 가고 김구는  개령으로 가고 또 박세희는 
상주로, 박훈은 성주로, 윤자임은  온양으로, 기준은 아산으로 가게 되었다. 임금
이 가승지 성운을 금부에 보내어  귀양 갈 사람들에게 전교를 내리는데 그 전교 
말씀이 “너희들은  모두 시종근신으로 상하동심하여 국사를  잘 다스리려고 한 
것이 맘이 그른 것은 아니로되  근래에 너희들의 하는 일이 그릇됨이 많아서 임
신을 부편케 한 까닭으로  부득이 죄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맘이 어찌 편
할 수 있으며  청죄한 대신인들 어찌 사심이 있으랴?  만일 율대로 정하게 되면 
귀양에만 그칠 것이 아니나 너희가 국사를 잘 다스리려든 본뜻을 생각하여 죄를 
경하게 주는 것이니  너희들은 그리 알고 가거라.” 하고 특별히  조광조에게 “
광조 너는 죄가  제일 중하나 특별히 관대하게 처분하는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하니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이 엎드려  들을 뿐이었으나 조광조는 고개를 
들고 “신이 이렇게 가온들  상심을 어찌 모르오리까? 신들의 한일이 과연 과격
하였사외다.” 아뢰어 달라고 대답하였다. 조광조 등은 전교를 받은 뒤에 금부에
서 동소문 밖으로 나가서 사처를  정하고 행장을 수습하게 되고 잡혀 갇혔던 유
생들은 모두 그대로 방송하게 되니 복잡하던 금부가  일이 없는 빈집 같았다. 나
졸 몇 사람이 모이어 앉아서  조광조 등의 인물을 평하는데 어느 사람은 “김식
이가 단아하더군.” 말하고 또 어느 사람은 “윤자임이 나내다워.” 말하는데 그
중에 나이 지긋한 한 사람이 “말들을 마라. 내가  금부에 다닌 지 수십 년에 죄 
당하는 대관들을 한둘 본 것이 아니지만 조대헌 같은 지성스러운 사람은 처음으
로 보았다.” 말하여 여러 사람의 말을 막으니  이 사람이 조광조에게 필묵을 갖
다 주던 나졸이었다.
  조정암이 동소문 안을 지나갈 때 길가에 섰는 여러 사람들 틈에 한 사람이 눈
물을 뿌리며 섰었으니 이 사람은 갖다치다. 이날  저녁때 갖바치가 문 밖으로 나
와서 조정암에게 하직할 틈을  타려고 애썼으나 금부도사가 잡인 출입을 엄하게 
금하여 사처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얼마 동안 근처로 돌아다니다 덕순을 만나
게 되었다. 덕순이가  창황한 중에도 갖바치를 보고 반색하여  “어째 나왔소?” 
하고 말을 물으니 갖바치가 “조정암의 얼굴이나  한번 더 보려고 나왔소이다.” 
하고 “나를 하인이라고 하고 사처집을 좀  같이 들어가십시다.” 말하여 덕순이
가 금군과 말다툼을 조하 하고야 갖바치가 구차히 집 안에 들어왔으나 조정암의 
사처방에는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조정암이  저녁상을 받을 때에  사처방 문이 
열리며 조정암이 밖에 있는 갖바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니 갖바치는 허리를 구
부리어 하직하는  뜻을 보이었다. 정암이  문 앞으로 가까이  나앉으며 갖바치를 
손짓하여 부르려고 한즉 마침  사처방에 들어앉았던 금부도사가 고개를 가로 흔
들고 방문을 닫았다.  갖바치가 조정암에게 말 한마디 못하여 보고  돌아서 나가
는데 덕순이가 뒤를  따라나오며 “인제 문안으로 들어가려오?” 묻고서 “나도 
내일은 아버지를 뫼시고  떠날 터인데 이따가 집으로 들어갈 때  잠깐 들리리다.
” 말하니 갖바치는 “그리하시오. 기다리리다.” 
하고 대답하였다.
  초저녁이 다 된 뒤에 덕순이가  갖바치 집에서 방문을 열어 보니 아랫목에 누
워 있던 갖바치가 일어나서 마주 나오며 “오셨소? 우리는 이 다음에도 만날 터
이니까 섭섭할 것이  없소. 어서 가셔서 금실 좋으신 내외분이  작별이나 오래오
래 하시오.” 하고  웃으니 덕순이는 “창황 분주한 중이지만 잠시  이야기할 틈
이야 없겠소.” 하고 방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갖바치가 “고만두고 가시지
요.” 하고 막다시피  말하여 덕순이가 “그러면 작별이오.” 하고 돌아서려는데 
갖바치가 “여보시오.”하고 불러서 “내가 말씀 한마디 할
것을 잊었소그려. 일은 중이 낭패시킬 터이니 조심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12
  덕수 덕순 형제 중에 덕순만 그 아버지를  따라가게 되었다. 덕수는 그 아버지
가 “너의 아우만 데리고 갈 터이니 너는  아직 집에 있어서 집일을 보살펴라.” 
하고 일렀을 뿐이 아니라 그 어머니가 아직도 편치 못한
것을 보고 형제 함께 떠나가기도 어렸웠다. 그  아버지가 죽지 않고 귀양을 가게 
되고 삼수 갑산 같은 먼 곳으로 가지 않고 선산을 가게 되니 불행중의 다행이라 
덕수는 맘이 적이  놓이었다. 행장을 대강 수습하고 형제 서로  대하여 “하인은 
누구를 데리고 가신다더냐?”“연중이를 데리고  가시자고 여쭈었어요.” “주동
이가 사람이  영리하니까 낫지 않을까?” “연중이  모자에게 벌써 다 일렀는걸
요. 그러고 기운꼴 쓰는  연중이가 나올 겝니다.” 말말끝에 덕수가 안심되는 모
양으로 한번 한숨을  쉬고서 “이번 일은 참말 천은이 망극하다.”  말하니 덕순
이는 대답이 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왜  고개를 흔드느냐?” “망극할 것
도 없어요.” “어째 그렇단  말이야? 너는 감축한 생각이 없니?” “없어요. 부
모를 귀양  보내는데 감축한 생각이  날 까닭이 있나요.”  “귀양만으로 그치게 
된 것이 감축하지  않아?” “죄없는 부모의 귀양만도 분한  일이지요.” “소인
들이 모함한 것을 어떻게 하니?” “임금이 밝으면 소인들이 모함할 수 있나요?
” “이애 그게 다 무슨  말이냐? 아예 그렇게 지망지망히 말을 마라. 큰일날라.
” “큰일은 벌써 난 걸요.” “큰일이 작게 되었으니까 천만다행이지.” “뒤의 
일이 또 없을는지 지내보아야 알지요.” “아무리  소인들이기로 설마 가죄야 청
할라구.”“소인들의 심장을 누가 알아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시각에 남
곤의 집에서는 이장곤 심정 홍경주  김전 홍숙 성운 뭇소인놈들이 가죄 청할 계
획을 꾸미는지도 모르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 사람이  치가 떨리지 않아요?” “
그야 알 수 없지. 그렇지만 소인들의 원이  여러 어른을 조정에서 내쫓으면 고만 
풀릴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장곤만은 그 자들 축에 섞이지 않을 것이다.”
  형제가 사랑에서 이러한 수작을 하다가 덕순이가 “어머니 보이려나 들어가십
시다.” 하고 말하여 형제가 같이 안방으로 들어와서 또다시 한동안 앉았었다.
  밤이 든 뒤에 덕순이가 아랫방으로  내려와서 보니 그 안해 이씨가 자리도 펴
놓지 않고 넋잃은 사람같이 앉아 있었다. “왜  자리를 펴지 않았소?” “여기서 
주무시겠어요?” “그럼 어디 가 자란 말이오?”  “펴지요.” 하고 이씨는 일어
서서 자리를 내리는데 팔의 맥이 풀리었느지 요이불을 들어다가 놓는 것이 무거
운 농짝을 드다루는  것같이 보이었다. 덕순이가 딱하게  여기어서 “품앗이합시
다. 게서 자리는 내가 펴주리다.” 하고 일어서니 이씨가 웃는지 마는지 하게 적
이 웃으며  “고만두세요.” 하고 말리는데  “고만두기는 왜?” 가고  덕순이가 
요와 이불을 번쩍번쩍 들어다가  펴놓으며 “내일은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할 터
이니까 일찍 잡시다.” 하고 말하니 이씨는 “일찍 주무시지요.” 하고 대답하는
데 그 얼굴이  다시 시름 속에 싸이었다. “게서는 아니  자려오?” “이따가 자
겠어요.” “그러면 나도 이따가 자지.” “그러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
  덕순이가 입을 이씨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한마디 속살거리니 이씨는 고개를 
외로 돌리며 “딱하신 양반.” 하고 입속으로 말하였다. “아버지가 귀양 가시게 
되니까 어머니가 병나셨지. 귀양 가시는 데 내가  따라가게 되니까 게서 따라 병
이 날 것 같기에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라고 칭찬했지. 딱하기는 무에 딱해.?
” “실없은 말씀  할 겨를이 있어요? 그것이  딱하지 않아요?” “실없이 말한 
것은 근심하는 안해를 위로하려는 것이니까 용혹 무괴지만 멀리 떠날 남편을 책
망하는 것은 겨를이 있어 하는 일이오?” 
  이씨는 대답이 없었다.  “늦었소. 고만 잡시다.” 하고 덕순이가  우기어서 내
외가 함께  눕기는  하였으나, 베개 위의 잔사설은 날이 샐  때까지 그치지 아니
하였다.
  13
  그 이튿날 여러 귀양 행차가 떠나는데 서관이나 북관으로 가는 사람이 없느니
만큼 과천까지는 모두 동행할 수 있었다. 서울서는  느직이 떠나게 된 까닭에 과
천이 첫날 숙소참이  되었다. 숙소는 군데군데 정하였으나 석반 후에는  여러 사
람이 모두 조정암의 숙소로 모이었다. 내일이면 조공조  김정 윤자임 기준 네 사
람은 수원 진위길로 가고 김식 김구 박세희 바훈 네 사람은 용인 죽산길로 가게 
되어 길이 서로  갈릴 터이라 여러 사람이  한숨을 지어가며 생리사별의 괴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중에 낯모르는 유생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이 유생은 서
울서 뒤쫓아내려온 사람이었다.  조정암과 친한 재상 몇 사람이 일이  생긴 연유
를 자세히 알아가지고 “효직이가 죄를 당하고도 연유를 모르고 갈 터이니 사람
을 보내서라도 가르쳐 줍시다.” 하고 공론한 뒤에  그중의 한 재상이 자기의 친
근한 이 유생을 전위하여 보낸 것이었다. 이  유생이 조정암 이하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마치고 한옆에 꿇어 앉아서  그 재상에게서 듣고 온 이야기를 자세히 전
하였다. “처음에 남곤이가  일을 시작하려 할 때 병조판서가 없으며  금위 군졸
을 풀어 쓸 수가 없으니까  이삼 일 전부터 이장곤 이판서가 집에 없는 틈을 엿
보아 찾아가서 이판서의 맘에 의심이  생기도록하여 놓고 일 나던 날 다 저녁때 
국가의 큰일이 있어서 바삐  들어오라는 어명이 내렸다고 기별하여 이판서가 창
황히 들어와서 바로  예궐하려고 궐문 밖에 가서  보니 표신이 내리지 아니하여 
궐문을 열지 못한다고  문군사가 들이지 아니하였다. 이판서가  괴이쩍게 여기어 
기별한 남곤의 집에  가서 본즉 남곤 홍경주 홍숙  몇 사람이 모여 앉았다가 이 
판서을 보고 반겨 맞아들이고  남곤이가 홍경주를 가리키며 이 홍판서에게 밀지
가 내리어 신무문 밖으로 대령한랍신다고 하여 이판서가 남곤 일파와 같이 신무
문으로 입궐하였다. 닫은 궐문 열쇠는 모두 정원에  있고 오직 북문인 신무문 열
쇠만이 내시들의 사약방에 있으므로 다른 궐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정원과 사관이 
먼저 알게 되면 귀찮으니까 남곤 심정이가 꾀를 모아서 북문으로 입궐할 계획을 
낸 것이었다. 밤이 이경 때쯤 되어 남곤 심정  이외 여러 사람이 합문 밖에 모이
었을 때 입직하였던 승지 주서  검열들이 비로소 알고 쫓아와서 정원 모르게 입
궐하는 법이 어디 있느야고 여러 사람을 책망하니 이판서가 불안하게 섰다 앉았
다 하다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심정이가 표신이 나리어 들어왔노라고 대답하였
다. 승지 사관 들도 합문 안에 들이지  않고 소인들만 드나드는데 이판서에게 어
필이라고 종이쪽을 주고  강박하다시피하여 금위군졸을 풀어서 입직하였던 승지 
사관 들을 먼저 금부로 내려 가둔 뒤에  사람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남곤 심
정 등이 세조정난 때와 같이 잡아들이는 대로 박살할 거조를 차리는데 이장곤은 
국가 대사를 대신에게 알리지 않는  법이 없으니 대신을 불러 수의한 뒤에 처치
하시라고 임금께 아뢰고 홍경주는  급한 일은 급하게 조처하여야 하니 대신까지 
알릴 것이 없다고 임금을 권하였다. 이판서가  홍경주를 돌아보고 임금으로서 도
적의 일을 행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호령하다시피 말하여 당장에 박살할 
계획은 시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임금이 대신을  부르라고 하교하여 삼경이 지난 
뒤에 영의정 정광필이 창황히  입궐하여 임금께 면대하고 눈물을 흘리며 간하였
고 그 뒤에 우의정 안당이도 오경 때쯤  예궐하져 정광필과 같이 주선하였다. 일
이 남곤 심정의 꾀한  대로 되지 못한 것이 처음에는 이판서의  힘이요, 그 다음
에는 영의정의 힘이었다.  그러나 소인들의 일을 지은 버이 가장  교묘하여 붕당
을 지어 국가를 위태케 하는 일파를 그대로 두면 국가의 화가 조석에 있다고 임
금을 공동하고 그 자리에서 반대하는 이장곤의 이름은 고사하고 그 자리에 없는 
대신들의 이름까지 함께 섞어가지고  온 조정이 청죄하는 것같이 임금을 기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유생의 이야기고 일의 연유를 여러  사람이 알게 된 뒤 유자임은 승지로 입직
하였던 사람이라, 자기의 본 일과 맞추어 생각하고  그렇게 된 일일 것이라고 말
하고 조정암은 “소인들이 임금을  기망한 까닭이지 우리 임금이야 당초에 그러
하실 리가 없지.” 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14
  조정암 이하 여러 사람이 쫓겨나고  보니 조정은 남곤 심정의 판이라 썩은 고
기에 쉬파리 꾀듯이 남고 심정의 집 문에 사람의 얼굴 가진 물건들이 수없이 많
아 모여들었다. 엊그제까지 조광조를 정암 선생이라, 김식을 사서 선생이라 하던 
무리들이 “광조는 미친  놈이다.” “식은 소견없는 놈아다.” 하고 욕설하기를 
예사로 하고 남곤 심정을 개오야지같이 여기고 죽일 놈같이 벼르던 사람까지 밑 
못 씻겨서 한을  하고 얼굴 보는 것을 큰  영사로 생각하게 되니 권에에 붙좇는 
쥐 같은  무리의 행사가 예나 이제나  다를 것이 없다. 유생들이  광화문 앞에서 
야료하던 날 금부에 갇히는  축에까지 끼였던 황계옥이가 무리에 섞이어서 남곤 
심정의 문하에 출입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뒤에  황계옥이가 두어 유생과 연명하
여 상소 한 장을  올이었는데, 그 상소는 광조 등의 죄상이  만만 중하여 죽이어 
마땅하다고 말한 것이었다.  계옥의 상소 뒤를 받아서 남곤 심정의  동류인 대관
과 간관들이 좌의정 안당 이하  삼십여 인을 조광조의 당으로 몰아 죄를 주자고 
성명 단자를 올리었다.  조광조등 여러 사람이 귀양길을 떠나던 날  김전이 우의
정이 되어 정부에 들어오며 안당이 좌의정으로  승차하였었다. 위에서 영으정 정
광필과 우의정 김전을 불러서 계옥의 상소와 대간의 단자를 보이고 어떻게 처치
할 것을 하순하니 정광필은 물론 불가하다고 말씀하였거니와 김전까지도 궁극스
럽게 다스릴 것이  없다고 아뢰었다. 위에서까지 “광조 등도 죄를  당한 뒤에는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치겠지.  지금 그 동류를 죄로 다스리는 것이  불가할 뿐 아
니라 애초에  붕당이란 말이 불가한  말이야.” 하고 말씀하는데  남곤 심정에게 
불좇는 중신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대간의 의사인즉 사와 정을 함께 섞어 
둘 수 없다는 것인 듯하외다.” 하고 얼굴이  뻔뻔한 말을 아뢰니 임금이 도리어 
“사라고야 할  수 없지.” 하고 말씀하였다.  그리하여 조광조 등에게 가죄하지 
아니하고 안당 등에게  죄를 주지 아니하기로 작정이  되었더니 불과 수일 후에 
뒤에서 엄교가 내리어서 이왕 죄받은 사람에게는 다시 죄를 더하고 아직 죄받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새로  죄를 주게 되었다. 이것은 그 동안에  안팎에서 참소가 
들어간 까닭이다. 조광조는  능주서 사약을 받고 나머지 일곱 사람은  제주 남해 
의주 온성 등 원방에 안치를  당하고 안당은 대간 단자 첫비두에 오른 사람이라 
파직을 당하고 정광필은 안당을  구하다가 또 황계옥의 상소를 만나서 영중추로 
좌천되고, 이장곤은 죄인이  자 부른것을 가만두었다는 죄목으로  대간의 탄핵을 
만나서 삭직을 당하고 파성군과  숭선부정은 대간 단자에 이름이 올라서 원찬을 
당하고 이학년까지도 결곤을 당하였다.
  가죄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뒤에 덕수가 처가 하인 우음산이라는 장사와 
자기 집  하인 주동을 데리고 밤  도와서 선산을 내려갔다. 덕수가  그 아버지를 
보고 서울 소문을 말하니  그 아버지는 “불이 사방에서 일어나니까 무엇이든지 
다 탱고 나서야 말  터이겠지.” 하고 한숨을 쉬는데 마침 김식을  보러 왔던 그 
제자 이신이가 자리에 나앉으며 “가죄가 소인들의 농간인지 알 수 없으니 잠시 
피하셨다가 사실로 임금의  뜻인 줄 아신 뒤에 자수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소인
들의 농간에  목숨을 바치시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하고  말하니 옆에서 
듣던 덕수와 덕순은 그 말이 일리가 없지  아니한 줄로 생각하였다. 이신이가 김
식이 모르게 덕수  형제와 의논하고 도망할 계획을 세웠다. 김식에게  양에 겨운 
술을 권하여 정신없이  취케 하고 이웃의 마소까지  잠이 든 오밤중에 도망하게 
되었는데,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이 취한 김식을  장사 우음산이 등에 업고 덕
순과 연중이가 좌우 양옆에  따라가며 부축하고 덕수와 주동과 이신이는 자갑자
박 걸어서 뒤를 따라갔었다. 십리길을 넘어 간  뒤 새벽녘 찬바람에 김식의 술이 
깨었다. 일이 이렇게 된바에  김식이도 할 길이 없어 영산 사는  제자 이중의 집
에 가서 은신할  곳을 작정하기로 하고 여러  사람을 데리고 영산길을 찾아가게 
되었다.
  15
  이중은 학식이 유연하고 가세가  풍족하여 영산서 높이 행세하는 사람이라 그 
집에 내인거객이 그치지 아니하여 분요한 때가 많았다.  어느 날 해진 뒤에 김식
의 일행이 그 집에 들어가니  이때 마침 이중이는 서울 가서 없고 그의 서제 이
용이가 집을 맡아보고 있는  중이라 이용이가 김식의 행색을 수상하게 생각하며 
일행을 맞아들이었다. 이용이는 김식이가 도망길 나선  것을 안 뒤에 “내일이라
도 곧 하인 하나를 서울 보내서 형님을  내려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집의 사
랑은 사람의  왕래가 많아서 비편하니  형니 소실의 집을  치워 드리겠습니다.” 
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하여 이중이 없는 것을 은근히 걱정하던 김식 삼부자가 일
제히 안심이 되었다. 이중의 첩의 집을 치우고  일행이 옮긴 뒤에 이용이가 틈틈
이 와서 보고 밤저녁 일 없는 때는 오래 앉아 이야기하여 도망꾼들의 맘이 적지 
아니 위로되었다. 하룻밤은  이용이가 김식 삼부자와 같이 은신할   곳을 이야기
하다가 “형님이나  오고 한 뒤에  차차 의론하면 은신하실  곳은 있겠지요마는, 
어디로 가시든지 일행이 많은 것이 걱정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자연히 탄로나기 
쉬우니 저의 소견 같아서는  자제들과 하인들은 보내시고 홀몸으로 피하여 다니
시는 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말하니 김식이는 옳게 듣고 덕수 형제를 돌아보며  “이 사람의 말이 옳다. 너희
들은 다 가는 것이 좋겠다. 나 혼자 여기  있다가 이 사람의 백씨 오거든 의논하
여 할 터이니  너희들은 곧 가도록 해라.”  하고 말하였다. 덕수는 그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렇기도 합니다만  혼자야 말씀이 됩니까? 주둥이나 연중이나 하나
를 데리고 다니시지요.” 말하고 덕순이는 그  형을 돌아보며 “형님이 하인들과 
이신이를 데리고 가시면 내가 아버지를 뫼시고  다니지요.” 말하여 의논을 얼른 
정치 못하는데 이용이가 “하인 하나쯤은 관계없을  듯합니다.” 말하고 덕수 형
제를 돌아보며  “형제분이 가신대도 따로따로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체 이신이란  자는 하인도 아니고 그거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서 김식이가 
“그자는 본래 관노  출신으로 중노릇한 일도 있고  또 퇴속하여 미장이 노릇한 
일도 있는 자인데, 내 집에 담을 치러 왔을  때 우연히 사람이 공부할 정이 있는 
것을 보고 집에 두고 글자를 가르쳐 준   일이 있어.” 하고 이신의 내력을 말한
즉 이용이는 “목자가  보기에 시원치가 않습니다. 그자를 먼저 보내십시지요.” 
하고 말하였다. 
  이튿날 김식이가 이신을 불러서  “우리가 여럿이 함께 다니기도 비편하고 하
여 서방님 형제도  장차 보낼 작정인즉 너부터 떠나가거라.” 하고  이르니 이신
의 말이  “영감께서 어디 가서든지  안신하시는 걸 보입고  가야지, 인정도리에 
중도에서 떠날 수가 있습니까?” 하고 이신은 고만두고 덕수더러 주동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니 덕수가 가더라도  좀더 뫼시고 있다 가겠다고 말하다가 “집일이 
어찌 될지 몰라서 심려가  적지 않으니 너는 우선 서울로 도로  가보아라. 더 같
이 있다 가면 무엇하느냐? 잔말 말고 떠나거라.”  하고 일러서 덕수는 할 수 없
이 내려올 때 같이 왔던 주동을 데리고 서울길을 떠나게 되었다. 
  김식이가 영산을  온 뒤 십여 일  만에 이중이가 서울서 내려왔다.  그 선생의 
은신할 곳을 이중이가 이리 저리  생각하여 보다가 영축산 절벽 위에 있는 법화
사에 친한 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김식에게 말한즉 김식의 말이 “일전에 내
가 괘를 하나  뽑아본즉 산인훼사란 말이 있고 또  덕순이가 서울서 올 때 어떤 
점쟁이가 중이 일을 낭패한다고  말하더라니 절로 갈 묘리가 없지 않은가?” 하
여 이중이는 “글쎄요.” 하고 생각하는데 이용이가  옆에서 김식을 보고 “이신
이가 중노릇한 일이 있다셨지요?” 하고 일깨우니 김식부터 이신을 믿지 못하는 
까닭에 “그러면  보내지.” 말하고 이중이도  “신이도 중노릇한 일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올곧지  못하니 곧 보내십시다.” 말하여 이신 보낼  공론을 하는 
중에 이용이가 “큰일을  당하여는 조그만 인정을 돌볼  수 없으니 만일 의심이 
나거든 보낼 것이  아니라 죽여 없이 합시다.” 하고 권하였으나  김식이가 “점 
같은 것을  믿고 사람을 죽이는 법이  있나? 길양식이나 후히  주어서 보내지.” 
하고 곧 이신을 불러 가라고 말하여 떠나보내었다.
  16
  이때 철원 현감 하정은 김식의  철친한 사람이라 김식은 칠원 가면 잠시 피시
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여 덕순을 앞서 보내어 통기하고그 뒤에 곧 칠원으로 오
는데, 현감을 찾아오는  예사 손님의 행색을 차리느라고 김식은 말을  타고 연중
과 우음산은 말  뒤를 따랐엇다. 하현감이 중로까지 하인을 내보내서  관아로 맞
아들이어 팔구 일 동안 같이 거처하였다. 관속들의  눈이 있어 관아에서 더 오래 
묵이기가 어렵게 되니 하현감은 김식에게 말하고 자기의 본집으로 가게 하였다. 
  내일이면 떠나기로 되던 그 전날 밤에 김식이가 덕순을 조용히 불러가지고 “
부자가 같이 다니자면 탄로나기 쉬운 것은 고사하고 남에게 누가 적지 아니하니 
우음산만 남겨두고 너는 연중이를 데리고 서울로  가거라. 서울집도 성하게 있을
는지 모르나 만일  위태한 일이 있거든 어디로든지  피신하여 구명도생하려무나. 
너는 망명죄인의 아들일 뿐이지  무슨 죄야 있느냐. 그다지 위태한 일도 없겠지.
” 덕순이가 우음산 대신 남아 있겠다고 눈물을 흘려가며 말하였으나 그 아버지
가 “아비의 맘을 더  괴롭게 하지 마라.” 하고 말하여 덕순이는  더 말하지 못
하였다. 이튿날 덕순은  그 아버지의 말대로 연중을 데리고 서울로  떠나고 김식
은 우음산을 데리고 현감의 본집으로 와서 이곳에서 달포 넘어 묵었었다. 
  이신이가 영산서 떠나는  길로 곧 서울 올라가서  김식이가 지금 이중의 집에 
있는데 그 아들과 문객을 데리고  남곤과 심정과 홍경주 세 사람을 해치려고 음
모하는 중이라고  고발하여 김식의 부자를 잡으려고  금부도사가 영산을 내려갔
다. 하현감이 서울  소문을 듣고 곧 기별하여 김식이는 조마조마하게  며칠을 지
내는 중에 금부도사가 칠원읍으로 가더라는 소문을 듣고 자기를 잡으러 간 것이
라고 생각하였다. 그날로 현감의 집을 떠나서 무주  사는 제자 오희안의 집을 찾
아가는데 그 동네 가까이 와서 길가 농군에게 집을 물으니 농군이 “저기 저 산 
밑에 있는  큰 집입니다.” 하고  집을 가리키고 “오서방님은  망명죄인을 집에 
붙였다고 엊그제 서울로  잡혀 갔지요. 동네서 다 알다시피 언제  붙이기나 했나
요.” 하고 분히 여기는  말이었다. 김식이가 이 소식을 듣고는 오희안의 집으로 
들어갈 덧정이 없어서 그대로 돌아섰다. 지향 없는  길을 걸어서 지리산 속을 들
어왔다.
  우음산이가 인가를  찾아가서 보리밥술을 얻어다가 한두  끼 먹기도 하였지만 
김식은 며칠 동안 생솔잎을 씹어 허기를 면하고  바위 밑에서 잠을 잤다. 김식이
가 사약받은 조정암을  생각하고 또 원방 안치된  여러 친구들을 생가하여 선산 
있다가 가죄를 당하여 절도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을 공연히 망명하여 누명을 입
게 되었다고 후회하였다. 면치  못 할 죽음을 면하려고 헛애 쓸  것이 없다고 맘
을 먹었다.  “내가 배가 정히 고파  견디기 어려우니 고사리라도 캐어오너라.” 
하고 우음산을 보낸 뒤어 옆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에 목을 매었다.
  덕순이가 서울 집에 온 뒤  얼마 되지 아니하여 금부도사가 금부 나졸을 거느
리고 김식의 집을  나오는데 다행히 선통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덕수는 상투를 
풀어 머리를 쪽지고 그 안해는 옷을 입고  안여편네들 틈에 숨어 있었다. 그때는 
백호를 처지 아니하였던 까닭에  머리를 고치기가 용이하였고 덕수는 수염이 없
던 까닭에 사나이  표가 나지 아니하였다. 금부도사가 와서 집안을  뒤지니 사나
이는 하나도 없고  젊은 여편네들만 마루 구석에 뭉쳐 섰었다.  금부도사가 김식
의 부인을 보고 말을 물었다. “자제들은 어디 갔소?” “선산서 아니 왔세요.” 
“큰자네는 왔다는데?” “몰라요. 아직  집에는 오지 아니했세요.” “알 수 없
는 일이군. 저 젊은이들은  다 누구요?” “며느리하고 먼촌 조카딸이에요.” 그
중의 한 여편네가  얼굴은 조금 여편네답게 어여쁘지  못하나 손은 분같이 희고 
가냘폈다. 금부도사가 “그러면  당신이나 갑시다.” 하고 김식의 부인을 잡아갔
다.” 우음산이가 지리산에서  내려와서 자수하여 어명으로 김식의  시체를 검시
까지 하게 된  뒤에 김식의 부인이 놓여나왔다. 김식의 시체는  영남서 운구하여 
충주 권폄하게 되었는데  일을 주장하여 한 사람은 김식의 부인  이씨요, 부인의 
뒤를 받들어 일을 보살핀 사람은 김식의 제자 신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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