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4회)

죽으나사나 | 2024.02.10 22:37:53 댓글: 2 조회: 497 추천: 3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6506
너를 탐내도 될까?  (4회)  처음 느낀 이 간질거리는 감정. 

달칵 하고 문이 열렸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은서가 룸 안에 들어서니 손님한테 머리채를 잡혔던 수미가 구원자를 보고는 바로 손님의 불룩한 배를 꽉 웅켜잡았다. 순간 깜짝 놀란 손님이 잡았던 머리채를 풀었고,

”윽, 저 년이!!“

수미는 또 머리를 잡힐 세라 바로 은서의 뒤에 숨었다. 한껏 취한 손님은 은서 앞까지 뛰어갔다가 한치의 흔들림이 없이 자신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고는 들었던 손을 거칠게 내렸다. 

”수미 저년, 오늘 2차로 빼줘.“

소파로 성큼 걸어가 등받이에 머리를 젖힌 채 던지는 말이었다. 

”사장님, 저희 가게 이제 나가요 걸이 없어진지 벌써 2년도 넘었어요. 술만 드시면 그 중요한 걸 잊으시면 안 되죠~“

은서가 능청스레 킥하고 웃었다. 

”그걸 언제 우리한테 동의를 받았냐고! 운영 방침을 아예 싹 갈아치운다고 그러더니 이건 소비자 우롱이야!“

손님이 비웃음을 쳤다.  

”네??! 이제 무조건 2차로 가야 하는 룸살롱은 격 떨어져요. 사장님. 그때 결국 징역까지 받은 유 실장님처럼 안되려면 저희도 혁신이 필요했어요. 대신 저희가 다른 이벤트를 많이 해드리잖아요.“

예를 들면 반라 술안주라던가, 테마성 복장을 한다던가,

“저희도 2차가 없는 대신 나름 노력하고 있으니까 사장님께서 이해해 주실 거죠?”

생글생글 웃으면서 손님을 구슬렸고 뒤에 여전히 숨어있던 수미한테 손짓했다. 그러자 수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룸 밖으로 나갔다. 

“저!! 아, 씨 X, 수미 못 주면 강 실장이 나랑  나가. 오늘은 누구라도 필요한 날이니.”

뛰쳐나가는 수미를 보면서 더러운 욕까지 담던 손님이 은서를 아래위로 훑으며 입맛을 다졌다. 

”사장님. 강 실장은 건드리면…”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손님이 다 들리는 귓속말을 한다. 

“영진 그룹 대표…”

“나도 알아!!”

사장이라 불리는 손님이 역정을 크게 냈다. 

”제가 진짜 좋은 양주 하나 넣어 드릴 테니까 노여움 푸시고요. 저희 운영 방침이라 어쩔 수 없는 점 이해 바래요. 사장님. 제가 한 잔씩 올려드릴게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들 잔에 양주를 쫄쫄 따랐다. 

“이건 죄송의 의미에서 제가 먼저 한 잔.”

자기 잔에도 채우고 끄떡없는 이들 앞에서 쭉 들이켰다. 

“불편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시고요. 다른 친구 금방 들어오라고 할 테니…”

“됐어. 수미 그년 아니면 안 돼.”

“아…”

단호한 손님의 반응에 은서의 작은 입에서 옅은 감탄사가 나왔다. 이내 활짝 웃으며 또 자기 잔에 양주를 채운다. 

“사장님 그러고 보니 처음 왔을 때부터 수미만 찾으셨죠? 어쩜 이렇게 순정파실까. 제가 너무 부러운걸요? 수미가 요즘 감기 기운도 있고 그래서 오늘은 먼저 퇴근 시키려고 그러는데 죄송하네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한잔 마실게요.”

말을 끝내고 한 잔을 들이켜는데 손님의 비꼬는 말투가 뇌리에 박혔다.
“강 실장만 하실까, 강 실장한테는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아껴주는 권대표가 있는데. 그래서 가끔은 자기가 술집 아가씨였다는 걸 까먹는 건지 모르겠네. 오만하기 그지없고. 권대표야말로 세기를 넘나드는 클래식 순정 파지. 아니야? 강 실장?”


옆에 같이 앉아있던 일행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못했고 생글생글 웃던 은서의 입꼬리가 스르르 내려갔다. 

몇 초 그렇게 정적이 흘렀다. 

“호호호… 사장님도 참!“

조용하던 룸 안에 은서의 교태가 섞인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권대표님은 저한테 친오빠같은 분이시라는 걸 알잖아요. 항상 저를 동생으로만 생각하죠. 저를 아끼시는 건 잘 아실 테고. 그래서 말인데요. 사장님도 우리 수미 좀 아껴주세요~ 수미는 아직 애란 말이에요.”

“애가 술집에서 일하나?”

혼자 중얼거리고는 은서가 따라준 양주가 들어간 술잔을  비웠다. 

은서는 몇 번 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천천히 즐기다 가라고 전하고는 돌아섰다. 

“친오빠 같은 존재는 무슨. 그런 사람이 지 와이프가 죽자마자 여길 바로 인수하나? 둘이 불륜이었던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참 술집 아가씨가 큰 거물을 하나 잘 물었지. 나도 다음 생엔 술집 아가씨로 살련다.”

여지없이 비꼬는 손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은서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러나 은서는 귀에 안 들린 것처럼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진짜던 가짜던 하루 이틀 수군대는 말도 아니니 이젠 대꾸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다시 아까 기혁이가 있던 룸으로 갔을 땐 기혁은 이미 가고 없었다. 

또 심기가 불편해져서 간 거구나. 

은서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

기혁이가 은서를 처음 만난 건 꽤 오래전에 일이었다. 

해병대로 군 복무 시절, 언제 한번 놀러 오라는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휴가가 떨어진 그날 오랜만에 진주에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깜짝 놀래줄 생각으로 나오긴 했지만 차가 없이 이동하려니  처음 발을 들인 버스터미널 안은 너무나도 생소한 공간이었다. 

“진주역은  36.400원입니다.“

매표소 직원이 꽤 늠름하게 군인 복장을 하고 있는 기혁이한테 한 번 더 눈도장을 찍으며 미소를 짓는다. 

백팩 앞 칸에 넣었던 지갑을 찾아 손을 넣었다. 

“어?”

가방 안으로 끝없이 내려가더니 뻥 뚫린 구멍을 지나 쑥 밖으로 튀어나온 기혁의 손가락. 잡혀야 할 지갑이 없다. 

설마,
소매치기를 당한 건가?

기혁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직원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당황해서 가방 곳곳을 들쑤셨다. 

없다. 진짜 소매치기를 당한 거 같았다. 

어이가 없어 허- 하고 감탄을 하며 두뇌가 멈춘 이때,

“같은 거 두 장이요.”

당찬 여자 목소리가 기혁이 앞으로 불쑥 튀어들어왔다. 순간, 살짝 밀치고 들어온 그녀한테서 향긋한 복숭아 향이 주위에 번졌고 은은한 그 향은 기혁이 코를 자극했다. 기혁과 여자를 번갈아보던 직원은 두말없이 표를 끊어주었다.

은서는 키가 유난히 큰 이 군인 아저씨 때문에 창구 상황이 거의 안 보였지만 아저씨가 당황해서 가방을 마구 뒤지는 걸 보고 바로 알았다. 지갑을 안 챙겼거나 잃어버렸거나. 뒤에서 보다 못해 카드를 내밀었다. 

“아, 아닙니다.“

손사래를 치며 카드를 내미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쳐다보았을 땐 아직 교복을 입고 있는 애송이가 바로 눈 아래에 있었다. 

버스를 타는 것도 처음인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무척 당황했을 기혁이 손에는 어느새 버스 티켓이 들려있었다. 

“입금해 줄게.“

이름이 강은서네. 은서의 명찰을 확인하며 하는 기혁이 말이었다.

“네. 그래요.”

은서의 딱 떨어지는 대답과 함께 가방 속에 다시 손을 집어넣었던 기혁이의 행동이 멈추었다. 넋 나간 듯이 멈춰 있는 기혁을 힐끗 쳐다보던 은서가 피식 웃었다. 

“휴대폰도 소매치기당한 거죠? 군인 아저씨.”

그렇게 벙어리처럼 아무 말 못 하고 같은 버스 티켓을 끊은 은서 뒤를 졸졸 따라갔다. 가끔 은서가 이상하게 뒤를 돌아보기도 했지만. 
처음 타보는 버스이기도 하고 성큼 걸어가는 보폭을 보아 자신보다는 여기를 잘 알 거 같은 은서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은서의 뒤를 밟으며 해당 버스를 찾았고 자리에 앉고 보니 은서랑 나란히 앉은 옆자리였다. 

은서는 어쨌을지 몰라도 아까부터 가시방석 같은 기혁이가 그녀의 앞에 메모지와 볼펜을 내밀었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직원한테 미리 빌린 물건들. 말이 빌린 거지 터미널 안에 있는 직원한테 빌렸으니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돌려줄 수도 없는 노릇. 웃으며 빌려줄 수 있냐고 하니 두말없이 빌려주길래 갖고 올라왔다. 

“뭔데요?”

두꺼운 책을 꺼내들던 은서가 기혁이가 내민 메모지를 쳐다만 보았다. 

“계좌.”

“에? 안 돌려줘도 돼요. 지갑에 휴대폰까지 소매치기를 당하셨는데 이 정도는 제가 해드릴 수 있어요.”

은서가 군복을 곱게 차려입은 기혁을 아래위로 훑으며 마저 말했다. 

“그것도 해병대 군인 아저씨잖아요. 너무 멋있어요.”

담담한 표정으로 칭찬을 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시 책에 집중을 했다. 

기혁이 또 한 번 허- 하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요.”

조용히 책을 펼치던 은서가 다시 기혁이한테 고개를 돌렸다. 

“군인 아저씨들 말투가 원래 다 나 까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아저씨는 왜 말이 그리 짧아요?

입 밖으로 내뱉으려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기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애한테는 굳이 안 하고 싶은데? 그리고 여기에 계좌 빨리 적어.”

”와아…“

이 아저씨 길게 얘기하기도 하는구나. 너무 짧게 말하길래 언어 발달에 문제가 있는 줄. 근데 그것보다 내가 표도 끊어주었는데 이러기라고?

은서는 기가 찼다. 

“나 몇 개월 안 있으면 성인이거든요?”

오기가 생겼다. 애 취급을 하다니. 

다음 달이면 수능이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새해가 금방 올 거고 그러면 자신은 성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수능까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버티나 생각하다 이틀만 머리를 식히려고 여행을 선택했다. 여행지는 진주로 결정했고 그게 오늘이었다. 

“아, 네. 그러시군요.”

너무 무감한 태도의 기혁이었다. 약간 비꼬는 거 같기도 했다. 

“아저씨는 많이 드셔서 좋으시겠어요? 어리다고 비꼬기나 하고.”

심기 불편해진 은서가 기혁을 꼬나보며 하는 말이었다.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간 기혁이가 화가 제법 난 듯 얼굴이 발개진 은서를 내려다보았다. 

“애는 애네. 그런 거에 발끈하고.”

하, 

이 아저씨 봐라?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사람 약 올리네?

고3의 히스테리를 부려봐?

은서는 책을 탁 덮고 몸을 아예 기혁이한테 돌렸다. 

“솔직히 오늘 저 아니면 이 버스도 못 탔잖아요.”

“그렇지.”

기혁은 옆에서 앵앵대는 은서가 귀찮은지 창밖에 시선을 꽂은 채 기계처럼 답했다. 

“나한테 고맙기나 해요? 아저씨.”

“고맙긴 한데 그 아저씨란 말은 빼지?”

나 그 정도로 늙은 사람 아니니까.

“싫은데요? 아저씨니까 아저씨라 하지. 군인 아저씨라 국가를 위해 훈련으로 고생을 하신다 생각을 해서 도와드렸는데 괜한 짓을 한 거 같네? 미래의 꽃봉오리를 이렇게 무참히 짓밟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면.”

“뭐?”

씩씩거리면서 읊어대는 은서의 이상한 논리에 주혁은 마침내 고개를 돌려 그녀와 마주했다. 

“미래의 꽃봉오리?”

“뭐, 꽃봉오리는 아니라도 이제 피려고 하는 꽃송이? 근데 지금은 아저씨 같은 어른 때문에 활개도 못 치고 지려고 하는 꽃이라고 하면 될까?“

단연코 기혁이가 본 사람 중에 이런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친구도 아무나 사귀지를 못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사람들만 친하게 되어있었다. 사회적 위치가 비슷한 집안 자제들끼리만. 

대중교통도 탈 일이 없었으니 이런 꼬맹이도 언제 따로 만날 일이 있었을까.

신기했다. 자신 앞에서 이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다들 그가 누군지 알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뭘 그리 빤히 쳐다봐요? 왜요. 어린 꽃송이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예요? 뭐, 내가 꽃송이 중에서도 꽤 예쁜 꽃은 맞지만…”

“그만.”

콧대 높이며 계속 달달 토해내려는 은서의 말을 끊었다. 

“한 번에 반할 정도는 아니니 그만하지?”

“쳇.”

기혁이 말에 은서의 앵두 같은 작은 입이  더 작게 오므려지며 삐쭉 튀어나왔다. 

진주로 가는 버스는 꽤 오래갔다. 가는 내내 옆에서 재잘재잘 거리는 은서가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쉴 틈없이 말하니 지친지 한참을 지나 조용하더니 은서의 몸이 스르르 기혁이한테로 기울어졌다. 

살짝 밀어보았지만 바로 다시 그한테 기울어졌고 그도 다시 한번 은서를 밀었다. 

“어엇.”

저도 모르게 힘이 많이 들어갔나,

은서가 복도 쪽에 앉아 있으니 망정이지. 창가 옆이었으면 기혁이 때문에 머리를 크게 박을 뻔했다. 

미안. 은서 학생. 

기혁은 옆으로 복도 라인까지 머리를 푹 떨구고 깊은 잠에 빠진 은서의 어깨를 잡고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하였다. 

불편할 줄 알았던 그녀의 머리가 기혁이 어깨에 닿으니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복숭아 향이 또 은은하게 올라왔다. 

보아하니 고집이 엄청 센 여자애니 계좌번호를 줄 거 같지 않다. 메모지에 슥슥 제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은서가 꼭 연락했으면 좋겠다. 메모지는 그녀의 학생 가방에 넣었다.

그러나 몇 개월을 기다려도 전화는 없었다. 

수능 때문에 바빠 그렇겠지?

이제 수능이 끝났을 텐데.

새해네. 이제는 진짜 어른이겠네. 은서 학생. 

원하는 대학은 갔으려나.

똑 부러진 게 갔겠지. 

이제 연락이 오면 그때 고마웠으니 비싼 밥 사준다고 할까. 

기혁이가 전역을 할 때까지 연락은 없었다. 

복숭아 향이 좋고, 당돌하고 예쁜 은서는 그렇게 기혁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서서히 잊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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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01.♡.169
글쓰고싶어서 (♡.208.♡.65) - 2024/02/11 11:03:14

설기간에도 수고하십니다,잘 보고갑니다.

죽으나사나 (♡.214.♡.18) - 2024/02/11 23: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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