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70회)

죽으나사나 | 2024.04.16 07:46:03 댓글: 17 조회: 987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61383
너를 탐내도 될까? (70회) 그분과의 마지막 인사. 

한국은 멈출 줄 모르는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태국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태국공항에서 나온 하정은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에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대기 중인 택시에 금방 올라탔고 주소를 보여주었다. 

택시는 도로를 한참이나 달렸다. 도로변엔 녹지가 잘 돼 있었고 그냥 겉보기에는 한국이랑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광경이었다. 한국이 아니라는 걸 굳이 찾자면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는 점. 그것뿐이었다. 

택시가 멈추자 하정은 엄마가 병원에 도착했다는 걸 알았다. 어설프게 태국어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하정은 택시요금을 지불하고 내렸다. 

하정이 큰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아빠…

내 아빠가 이 안에 있다.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하얀 벽면으로 둘러싸인 복도를 걸었다. 복도의 끝에 있는 병실에 우뚝 멈춘 하정은 바로 병실 문을 열었다. 

하정의 시야에 바로 들어왔다. 아빠의 모습이….

원체 작은 체구가 아니었고 나름 키도 크고 큰 몸집을 자랑하던 분이었는데 수년간 병마와 싸운 아빠는 온몸에 뼈만 남은 듯 앙상하기 그지없었다.

”여보, 하정이 올 때 되지 않았어?“

멍하니 창밖에 시선을 두었던 아빠가 인기척에 고개를 틀었다. 

아내인 줄 알았는데 앞에는 저 자신이 그리도 보고 싶었던 딸이 우뚝 서있었다.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직접 마주한 그의 주름진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내 딸… 하정아.”

가쁜 숨을 겨우 내쉬며 하정을 애타게 불렀다.

“아빠. 그래. 나야.”

하정이 고개를 숙여 그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더 잘 보라고. 당신의 딸 하정이가 왔으니 어서 일어나라고.

12년 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거의 다 죽어가는 건 반칙이라고.

하정의 담담해 보이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눈 가득 또 눈물이 차올랐다.

참으려고 했다.

암 진단을 받고도 여태 12년이나 기적처럼 살아있었다.

뭐,

설마 지금이 마지막이겠나 싶었다.

힘없이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은 저 야윈 모습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빠가…

진짜 이대로 갈 것만 같았다.

안 되는데…

난 그럼 아빠가 없어지는 건데.

난 아빠 없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은데…

하정은 아빠의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엄마가 제 곁에 다가와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는 건 한참 후에나 알았다. 


하정은 아빠인 민섭의 곁에 붙어서 떠나지를 않았다. 어릴 때랑 똑같이 그랬다. 다만 다르다고 하면, 민섭이가 바라본 하정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극도의 불안감이 없다는 거였다. 

“우리 하정이 이제 제법 어른이 다 되었네.”

민섭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하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서른둘이야. 알고 있지?“

”그럼~ 매년 네 생일에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몰라.“

민섭이 씁쓸한 표정을 짓자,

”덕분에 내가 이렇게 강해졌잖아. 엄마 아빠밖에 모르던 철부지에서.“

하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을 원망을 할 거라 여겼던 딸애는  지나간 과거는 연연하지 않아 보이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미안해. 하정아.“

민섭이 마른 손으로 하정의 손을 제 앞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

무얼 얘기하려는지 알아서 하정은 묻지 않았다. 

“너를 입양한 그 순간부터 아빤 너한테 죄인이었어.”

“… 아빠. 그런 말은…”

무슨 영문인지 밝히지도 않고 떠난 일에 대해 말하는 줄 알았다. 

민섭은 하정을 처음 만났던 그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른인 우리가 어리석었어. 아픔으로 비워진 자리를 네가 차지해 줄 거라 생각했어. 우리가 곁에 있기만 하면 너는 그대로 크는 줄 알았어. 우리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고 아팠을 줄은 모른 채. 아빠는 너의 아픔을 너무 늦게 알 게 되어서 그게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어.”

“아빠….”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해서 그런가. 민섭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빠… 괜찮아?”

엄마인 미연은 급히 의사를 찾으러 갔다. 

“하정이 너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야… 사랑한다… 딸아.”

하정의 손을 꼭 잡았던 민섭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복통이 오는지 배를 끌어안았고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연거푸 흘러나왔다. 

곧 병실에 의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들어왔고 하정은 그들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하정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부산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민섭의 몸과 눈을 살피더니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미연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하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의 느려진 움직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쉬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입이 차츰 벌어졌다.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잖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아빠는 내 앞에서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태국에서의 장례식은 한국이랑 달랐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무교였던 그분들은 이곳에 와서 불교신자가 되셨고 인근 사원에서 장례식을 진행했다. 고인을 보내 슬프고 어두운 분위기가 아닌 밝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빠는 태국에서 아프기만 한 게 아니었다. 덜 아프거나 몸이 괜찮을 땐 현지 대학교 강당에 초청을 받기도 했었단다. 3대 째 교수 집안이었고 아빠의 어린 시절은 거의 태국에서 살아서 아는 지인들도 꽤 있었던 거 같았다. 누구도 없을 것 같았던 장례식장에 꽤 많은 조문객들이 방문을 했다. 

장례식 두 번째 날 아침,

여전히 장례식장엔 아빠의 마지막 길을 뵈러 온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엄마는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하정은 최대한 마음을 추스르며 그런 엄마의 곁에서 도왔다. 

그러다 잠시 밖에 나온 하정에게 영어를 모르는 태국인이 무언가를 묻자 난감해진 하정이가 엄마한테 다시 가려고 할 때였다. 

제 앞에 익숙한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은 저 사람…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들어 올렸다. 

순간, 알 수 없는 울컥함에 목구멍이 막혔다. 

터벅터벅,

흔들림 없는 발걸음이 저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윤하정 씨.”

권기혁이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하정은 혼란스러워지려고 할 때, 뒤에서 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 대표님이신가요?”

“네. 처음 뵙겠습니다.”

기혁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린다. 하정은 제 옆으로 다가온 미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엄마가 어떻게 권대표를 아는 건지, 그리고 이리 올 줄을 당연히 알았다는 듯이 그를 대하는 건지. 

“어제 연락이 왔었어. 권 대표한테서. 아빠 얘기를 해서 바로 오셨나 보다.“

미연이 궁금해할 하정에게 해명을 했다. 그러고는 이들 앞에 우뚝 서있기만 한 기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허,

하정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그런 하정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둔 기혁은 미연의 뒤를 따라 조용히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하정은 뭐라고 해야 하는데 또 그리하지 못했다. 아빠를 보내는 자리라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기혁은 장례식 내내 별말이 없었다. 문상을 온 조문객을 맞이하는 미연과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또 뭔가를 할 정신이 없는 하정을 케어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남의 나라에서 하는 장례식이라 낯설었지만 가장 정신이 멀쩡한 자신이 이 모녀를 돕고 싶었다. 

셋째 날, 아빠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몇몇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웠다. 불교 식 의식인 거 같았다. 누군가가 급히 잠깐 자리를 비웠던 기혁이와 같이 하정이 옆에 머물렀다. 

고개를 숙이며 하정에게 인사를 했다. 누군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말을 모르는 하정에게 통역을 해줄 사람이었다. 

조문객이 하정이 손을 잡으며 태국어로 뭐라고 말하던 그 모습을 보았던가.

곧이어 아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는 하정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하정은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서 끝날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아주 담담하게…

스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러 하정이네 앞에 마주 섰다. 

손을 잡았고 태국어였다. 

옆에 있던, 기혁이와 같이 나타났던 남자가 스님의 말을 옆에서 나지막이 통역을 해 주었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니 운명이다. 하지만 그건 영원한 끝이 아니라 다른 영혼으로 환생하는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스님의 말은 더 있었지만 하정은 귀에서 들려오는 이명 소리에 더 자세히 듣지 못했다. 말이 끝난 스님에게 그저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국으로 모시고 갈 아빠의 유골함을 챙기고 장례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정은 미연과 함께 이들이 태국에서 살던 집 앞까지 도착했다. 

“같이 들어가요.”

미연이가 조용히 뒤따라온 기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 대표님이랑 할 말이 있어요.“

손에 들고 있던 유골함을 미연에게 조심스레 건네주며 먼저 들어가라는 의사를 표했다. 미연은 하정과 기혁을 번갈아 보다 이내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래로 떨구어있던 시선을 기혁에게 돌린 하정의 표정엔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았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얼굴이라고 해야겠다. 

”엄마 말대로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고마워요. 정신이 없을 저희 대신에 하신 일이 많으신 걸 알아요.“

기혁은 하정의 담담한 말투에 그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은… 

저를 바라보는 눈빛엔 안타까움이라는 슬픔이 물들어있었다. 

하정이 제 입술을 깨물었다. 기혁이 그런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고 하자 하정은 뒤로 한발 뺐다. 

“오신 건 고마운데… 이만 돌아가 주세요.”

“… 하정 씨.”

“전 사실… 대표님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

서늘한 표정으로 바뀐 하정이 입에서 뾰족한 말들이 새어 나왔다. 

기혁은 하정에게 뻗었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대표님 때문이에요. 아빠를 하루라도 더 빨리 볼 수가 있었는데… 대표님 때문에 제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되어서 아빠를 늦게 만난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하정의 음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흐트러졌다. 

차고 오른 눈물을 거칠게 팔뚝으로 닦아낸 하정이가 저를 내려다보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마디 더 뱉어냈다. 

”그러니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건 진심이에요.“

하정의 가늘어진 두 눈에 독기가 서려있었다. 그의 짙은 두 눈은 그래도 아까와는 별반 다를 게 없이 축 늘어뜨려있었지만.

”… 알겠습니다.“

그러나 순순히 하정의 말을 받아들인 기혁은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돌아갈게요. 그러니… 저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지 말아요.“

하…

여전히 제 입술을 깨문 하정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굳이 태국까지 찾아온 사람한테 꼴 보기 싫다고 하는데도 왜 그러는지 다 안다는 듯 저를 대하는 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아빠는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중환자실에 있어도 모자랄 아빠가 굳이 일반 병실로 옮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중환자실에서 딸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아빠의 마지막은 어차피 더 빨리 온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었다는 걸 하정은 모르지 않았다. 

근데도… 그 원망의 화살은 권기혁에게 향했다. 

언제나 그랬 듯 그는 저한테서 떨어져 나가야 할 사람이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이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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