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탐내도 될까? (24회)

죽으나사나 | 2024.03.02 04:24:26 댓글: 2 조회: 240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1049
너를 탐내도 될까? (24회) 내가 흔들려.
"기사를 올린 기자가 누구라고?"
"태양 일보 김재중이라는 기자입니다. 지방에서 일하다가 작년에 태양 일보 본사로 이직을 한 케이스인데 전에 대표님 뒤를 쫓던 그 기자들이랑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겁대가리가 없다고 업계에선 소문이 났던 인물이라 합니다. 전에는 정치부였고 지금은 재벌과 연예인부 기자입니다."
텐프로 룸살롱을 드나드는 재벌 3세가 기자들 눈에 한 번도 띈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다만 그때마다 언론 윗선에 심어 놓은 제 편 덕분에 기사들을 미리 막을 수가 있었다.
이번은 윗선 동의가 없이 홀로 저질러 버린 케이스라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다.
"기사를 내리라고 압박이 들어갔으니 다 정리 될 겁니다. 다만 이미 본 사람들이 많아서..."
이한이 뒷말을 흐렸다.
그날 본가 저택 밖에서 누군가를 만났다고 대충 둘러대던 권대표가 진짜 사람을 만났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다름 아닌 윤하정 팀장을 만났을 줄은.
거기까지 쫓아온 윤 팀장한테도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그때 기자도 뒤를 따른 거 같고.

“다른 쪽에서 연락 오면 무대응으로 일관해. 그 김재중이란 기자는 따로 만나봐야겠어.”

“네.”

“그리고… 아니야.”
뭔가를 더 지시하려다 기혁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변화가 없는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는 기혁을 보며 이한도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지이이이잉..“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기혁이 휴대폰이  진동으로 부르르 떨었다. 

발신자는 은서. 업무시간에 문자를 하면 했지 전화를 안 하던 은서가 전화를 했다는 건, 벌써 기사를 보았구나.  

“응. 은서야.”

전화를 받으며 이한한테 눈짓을 하자 그는 바로 머리를 끄덕이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괜찮으신 거죠?“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은 내가 아니라 너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말이다. 

“은서야. 설명이 필요한 거 같아.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저 때문에 난감하시죠? 일면식도 없던 은지와 자꾸 대면해야 하니. 저 때문에 신경도 쓰일 테고요. 대표님한테는 항상 고마운 마음뿐인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알 거 같다. 은서가 어떤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은서는 무슨 말을 나한테 그렇게 거리를 두면서 얘기를 하는지. 다시 만난 그때부터 쭉 이래왔지만 새삼 서운해지기 시작한 기혁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고맙단 말 그만하면 안 돼? 맨날 뭐가 그렇게 고마워. 네가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숨 막히는지 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아무리 예민해도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은서는 나한테 어떤 존재인데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기혁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화기 너머는 조용했다. 

분명, 상처를 받았을 거다. 은서는. 

“은서야. 미안해. 내가 요즘 좀 예민해져서… 진짜 미안해.“

“… 아니에요. 회사 일도 바쁘실 텐데 전화를 한 제가 잘못이 크죠.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럼 업무를 보세요.”

몇 초 정적이 흐르던 전화기 너머에서 은서가 급하게 마무리를 하며 통화를 끝냈다. 

“하…”

뭐라 변명할 여지도 안 주고 뚝 끊긴 폰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새어나가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그 어떤 일에도 동요가 없던 나인데. 

자꾸 조바심이 나고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혁은 괴로움에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었다. 

***

하정은 요 며칠 집에 틀어박혀 바깥출입을 아예 안 했었다.  정연이한테서 온 전화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을 거였다. 

정연이가 통화 중 그랬다. 권대표가 처음으로 스캔들이 터졌는데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기사는 지금은 이미 내려갔지만 후폭풍이 크다고 했다. 다들 그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고 했다. 

모자이크를 해서 얼굴이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바보 같은 정연은 나란 걸 모르고 있었다. 

그냥 빅뉴스라고, 자기도 누군지 궁금하다고만 했다.

그래, 어떻게 보면 나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인 걸지도. 

<사별 남 권기혁 대표 새 인연이 닿았나? 본가 저택 앞에서 손을 잡아.>

기사는 없었고 한 인플루언서가 개인 블로그에 퍼올린 뉴스 글과 사진을 보았다. 

그것마저 화면을 잘못 눌러 뒤로 갔다가 다시 누르려고 하니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대기업이라 그런지 손쓰는 거 하나만은 빨랐다. 

그로써 공식적으로 올라와 있는 글은 하나도 안 보였다. 

권대표는 지금쯤 날 얼마나 원망할까,

따로 장소를 잡고 얘기했어야 했나, 아무래도 그렇게 뒤를 밟은 건 너무 경솔한 행동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런 뉴스도 안 떴을 텐데…

정연에게서  들어보면 권대표는 지금은 이미 돌아가신 사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종종 루머가 돌기는 했었단다. 따로 만나는 여자가 있어 바깥으로 나돈다는. 

근데도 한 번도 공식적으로 뉴스가 나온 적은 없었으니 그냥 헛 소문으로 쉬쉬하기 급급했는데 이번 스캔들은 의외라는 반응들이 컸다고 했다. 전에 소문들이 그냥 헛소문이
아니라 진짜인 게 아니었는지. 

이제 3년 상이 끝나니 슬슬 그동안 만났던 내연녀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려고 일부러 뉴스를 흘린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회사 내에서 들끓는다고 했다. 

정연이한테 사실 그게 나라고 말해줄까 하다가 일단은 말을 조심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정연을 안 믿는 게 아니라 일단은 사태 파악을 더 하고 말하든지 해야 할 거 같았다. 또 내가 무대포로 일을 싸지르면 안 되니. 

내연녀가 있었는지 나는 알 턱이 없지만 이번 일은 나의 충동으로 빚어낸 결과였다. 

괜히 권대표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떡하지, 미안하다고 하면 받아줄까.

근데 미안하단 말은 어떻게 전하지.

“띠리리링…”

혼자 갈피를 못 잡고 거실에서 왔다 갔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때,

모르는 번호가 떴다. 

“여보세요?”

“윤하정 팀장님이시죠? 저는 권기혁 대표님 비서실장 이한입니다.”

다행히 연락이 제 발로 찾아왔다. 

“대표님이랑 윤 팀장님이 같이 있는 사진이 기자한테 찍힌 걸 아시죠? 저희 대표님이 한번 보자고 하십니다. 오늘 저녁 시간 되십니까?”

약속 시간은 늦은 10시로 잡혔다. 그 이유인즉, 권대표의 스케줄이 꽉 찬 하루라 그 시간 밖에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된 나는 저녁 10시에 이 실장이 보내 준 주소로 권대표네 집으로 가야 했다. 

***

“제가 국회의원은 여럿 만나봤어도 재벌 회장님을 또 이렇게 독대하기는 거의 처음인 거 같습니다.”

겸손한 듯, 또 그러지 않은 듯한 어투의 김재중 기자가 그리 높지 않은 콧대로 인해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입꼬리를 올렸다. 

조용한 한정식 가게, 
가장 프라이빗 한 공간에서 기혁은 이 말라 틀어진 김재중에 무감한 시선만 꽂고 있었다. 

“제가 올린 대표님 스캔들 기사는 30분도 안 되어서 다 삭제되었어요. 제 윗선 목을  얼마나 쳐댔는지 감이 갑니다. 연예인 기사로 자신의 추악한 사건들을 덮으려는 정치인들과는 또 다르시네요. 여기저기서 궁금해할 텐데 대응도 안 하시고.“

김재중의 말엔 반응이 없던 기혁은 맞은 켠에 앉은 그의 안경이 조명에 의해 반사되면서 눈에 비치자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었다. 무겁기만 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게도 찾아갔습니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웨이터에게서 전달을 받았다. 기자 몇 명이 와서 조금 시끄럽게 굴었다고. 

언제부터 뒤를 캐고 있었을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뭔가를 알고 내 뒤를 쫓았단 말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정보를 흘리기라도 했을까. 몇 년 새 특종에 눈알이 돌아간 기자들 몇 명이 있긴 했었다. 무참히 그 꿈이 밟혔고 조용히 안 할 시에는 지방으로 전근을 가던가, 업계에서 쫓기던가를 택해야 했지만. 

거만한 태도를 일관하는 김재중은 이한 말대로 겁대가리가 없어 보였다. 

“네. 예쁘시더군요. 딱 한 번만 뵀는데도 잊히지가 않을 얼굴이던데요.”

김재중이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어댔다. 그런 그를 담담하게 쳐다보던 기혁이 역시 실소를 터뜨렸다. 

생각지 않은 실소에 살짝 당황한 김재중의 표정이 바로 굳어버렸다. 초조함이란 하나도 안 느껴지는 저 차가워진 얼굴은 꼭 마치 꽁꽁 얼린 얼음장 같았다. 

“그분한테 관심을 꺼야 할 겁니다.”

“네?”

“나한테 관심을 갖는 건 뭐라 안 할 겁니다. 단, 그 여자를 이제 한 번이라도 더 건드리면,”

싸늘해진 눈매에  꺼내는 단어마다 무게가 실렸다. 

“또 건드리면 여기서처럼 이렇게 곱게 대화로만 끝내진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뒤로 기혁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식당을 나섰다. 기혁이 기에 눌린 김재중이 한참이나 벙한 표정으로 까딱을 안 했다. 

***

“후훕~ 후우~”

하정은 이한이가 알려준 주소대로 잘 찾아왔다. 고급 오피스텔 앞에서 높디높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주차는 혹시나 해서 공영주차장에 했다. 경비가 삼엄해 보이는 이곳은 왠지 방문 기록을 남기는 것도 문제가 될 듯했다. 

1층 공동현관 비번은 미리 알려주어서 안다. 더 심호흡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다 또 누군가의 눈에 띌 가봐 얼른 비번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갔다. 

권대표와 시간을 정해서 만나기 전엔 항상 이 사달이다. 왜 이리도 평정심이 가출을 하는 건지. 

“풉.”

하정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뿜었다. 혹시나 권대표 집까지 찾아온 자신을 또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댈 가봐 나름 변장을 했다. 

몇 년 전에 뜬금없이 등산을 한다면서 사 놓고 한 번도 안 써본 네이비 벙거지 모자를 꾹 눌러썼고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은 두 눈을 빼고는 다 막았다. 

옷도 튀지 않게 입으려고 …

… 아니네.

무장한 사람 치고는 화사한 체크무늬  어깨에 뽕 들어간 블라우스에 딱 붙는 청바지를 입었다. 

권대표를 만난다고 꼴에 챙겨 입었다…

하,

윤하정. 정신 차려!  이럴 때가 아니란 말이야!!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음을 다지고 있으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들려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용한 복도를 기웃거렸다. 

긴 복도에 문이 두 개만 달랑 있었다. 어느 집인지 훑어볼 것도 없었다. 거의 도착했다고 했으니 빼꼼 문이 열려 있는 저 집이겠지. 

조심스레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 녕하세요. 계신가요?”

쭈볏거리며 들어서는데 긴 그림자가 눈앞에 드리웠다. 

권기혁이다.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보는 그 시선은 얘 뭐냐?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재빨리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허리를 굽혔다. 이제 거래처 대표도 아닌 사람인데 회사 생활에 잘도 익힌 몸은 저절로 허리가 굽혀졌다. 

”슬리퍼 신고 들어와요.“

허둥지둥 신발을 벗어던지고 바로 그를 따라서니 먼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가 내게 눈짓했다. 

”아,“

옆에 놓여있던 실내화는 그제야 발견하고 쏙 집어넣었다. 

“커피? 차?”

”저는… 차요.”

쭈볏거리고 현관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층고가 몇인지 모를 높고 엄청나게 넓은 거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그리 밝지는 않지만 또 그리 무겁지 않은 월넛 톤 원목으로 통일한 인테리어였다. 

대충 눈으로 펜트하우스 안을 감탄하며 훑던 하정이가 거실 가장자리에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검은색 가죽 소파에 바짝 힘주고 앉았다. 

당연히 이 실장도 있을 줄 알았는데 권대표 혼자였다. 

어느새 하정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유 모를 긴장감에 등골이 서늘했다. 

“긴장 푸시죠. 안 잡아먹을 테니.“

언제나 그랬듯 긴장은 하정이 꺼였다. 

기혁은 갓 우린 차를 하정이 앞에 내려놓고는 그녀의 맞은 켠에 앉았다. 

고저 없는 말투와 함께 하정을 쳐다보는 시선도 고요했다.
추천 (1) 선물 (0명)
IP: ♡.101.♡.171
나단비 (♡.252.♡.103) - 2024/03/02 04:42:31

쌍둥이라서 일이 이렇게 꼬이기도 하네요. 재밌어요.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죽으나사나 (♡.214.♡.18) - 2024/03/02 17: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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